재 언약으로 새 힘은 주시는 하나님
2006-02-26 00:00:00
관리자
조회수 2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우리가 어떤 문제 사건들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했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눈과 생각이 달라진다. 보는 눈과 생각이 달라져야 모든 축복이 시작되어진다. 바로 보는데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바르게 보는데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지고 생각이 바뀌어져야 체질이 변화되고 체질이 변화가 되어야 인생의 개혁들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모든 생각들이 열려지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살아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체험하게 될 때에 우리 자신에게 제일 먼저 오는 증거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거짓된 행복에 속지마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참된 행복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말씀을 성취시킨다는 것을 체험할 때 참된 행복이 찾아오게 된다. 이 사실을 맛보지 못하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으로 행복을 찾게 된다.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계속 세상의 다른 행복으로 우리의 행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맛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시편에 다윗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이야기했다. 맛보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말로 결혼을 해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생활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지식적은 하나님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모든 삶에 함께 하시고 하시고 간섭하기고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것을 맛보아 알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위기를 당하면 위기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초대교회가 엄청난 핍박과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를 보았기에 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로마까지 복음화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붙잡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 출6장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느냐. 오늘 제목을 재언약으로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잡았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모세에게 두 가지를 깨닫기를 원하신다.
첫째,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시켜나가시는 것을 모세에게 깨닫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신앙생황을 하는 가운데 여러 말을 듣는데 맞는 말일지라도 이상하게 어떤 말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힘을 빠지게 하는 말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보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사실적으로 믿어야하고 과학적으로 믿어야하고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모세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오늘 이 본문에 보면 힘이 빠져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언약을 주시는데 그 언약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5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가라고 해서 애굽 왕에게 나갔더니 하나님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였냐하면 이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기는커녕 더 어렵게 했다. 예전에는 짚을 주고 벽돌을 만들게 했는데 게을러서 이러한 말을 한다고 생각을 해서 짚도 주지 말고 그러나 벽돌 수요는 그대로 해서 굽도록 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데 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힘이 빠지고 어려움 앞에서 원망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5장 마지막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힘이 빠져있고 모세도 힘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장 19-21절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이 심해지고 그들이 나올 때 모세와 아론을 만났는데 그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하며 말하는 것이 왜 그런 말을 해서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힘들게 하느냐. 그들에게 칼을 주어서 우리를 죽이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말을 듣고 모세조차도 실망하고 힘이 빠졌다. 22절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완전히 힘이 빠져있는 모세의 모습이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그대로 성취시키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고 있다. 출6장은 다시 한번도 모세에게 말씀하신바가 누구이신가를 바르게 증거하는 언약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셔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다. 3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다시 한번 더 모세에게 언약을 확인하고 계신다. 이 사실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바 언약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이다. 오늘 본문에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2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어가라사대,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는 것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의 성취를 현장에서 보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다.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붙잡고 그 말씀을 붙잡고 정시기도와 무시기도로 사실적인 나의 말씀으로 붙잡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다. 주일날 한번 교회 왔다가 가는 것은 그 만큼 손해가 없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붙잡는 시간이 되어야한다. 히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의 영혼이과 마음이 치유받게 되는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라고 해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우리가 믿든 안믿든 간에 그 말씀은 이 땅위에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 말씀은 이루어졌고 다 확정되었고 이미 다 주어졌다. 새롭게 더 성경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완전한 것이다. 그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는데 믿든 말든 상관없이 이 땅에 다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내가 이해되어지고 깨달아지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을 레마라고 한다. 그 말씀이 내게 이해되어지고 내게 부딪쳐질 때 그때의 그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역사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확인되어지는 만큼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이 담겨진다. 우리의 생각 속에 담긴 말씀은 그 말씀이 우리의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영혼 속에 담김으로써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담겨져야 우리가 틀린 소리, 틀린 마음, 헛된 말을 하지 않게 되어있다. 우리의 생각에 말씀이 담겨지지 않으니까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는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담겨질 때 거기서부터 우리의 영적문제를 해결받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 자신의 계획들이 시작되게 된다. 응답의 시작은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참된 치유의 시작이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개혁의 시작이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위로하는 말조차도 오해하게 되고 결국 더욱더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국민일보에 63인의 사형수의 리포트라는 보고서가 연재형식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사형수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63명인데 그들의 배경을 적어놓았는데 하나같이 그 배경들이 전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편모, 편부, 고아, 가난의 문제, 그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서 범죄를 짓고 그 범죄로 말미암아 사형수로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대개상태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에게 있는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은 잘 모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속에 숨어있는 상처가 들어나서 그 상처로 말미암아 실패하게 되어있다. 왜 이런 상처들이 계속 임하는가? 내 생각과 영혼 속에 마음속에 말씀이 담기지 않음으로 그렇게 된다. 이 상처가 깊어질수록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에 별것이 아닌데도 상처를 받데 된다. 위로하는 말조차도 상처로 들려진다. 상대방이 그냥 하는 말들이 내 속의 상처로 인해 오해하게 되고 자기 자신만 상처를 입게 된다. 이 상처들이 복음에 뿌리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감사로 바뀌어지고 참된 기쁨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가난 때문에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 물질 때문에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가난과 물질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통해서 나에게 예수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듣게 하셨구나라는 기쁨과 감사가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정말 해야 할 헌금도 바로 하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까지도 문제가 오게 된다. 깊이 숨겨진 상처들이 쌓이게 되면 여기에서 잘못된 생각들이 나온다. 바른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훌륭한 응답을 바기 위해서는 훌륭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잘못된 판단과 결정과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셨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행위, 인격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다. 근원적, 대표적, 시대적, 기념비적, 불가항력적 축복을 주셨다. 이것은 내 노력, 행위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분이 되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 사실을 누릴 수록 훌륭한 생각을 하게 되어있다. 이게 안됨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생각 속에서 늘 피해의식, 비교의식, 열등감속에 사로잡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몸부림치는데 결과는 불신앙하게 된다. 그 불신앙은 사단이 역사하는 통로이고, 영적문제를 가져오는 통로이다.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 40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이라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시들고 마르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한 것이다. 이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겔37장에 에스겔 선지자를 이끌어 가시면서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 에스겔 선지자가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이르라. 대언을 했더니 뼈들이 맞춰지고 거기에 큰 군대가 일어나서 큰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받을 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 깨닫게 하시는 것은 모세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은 언약잡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체험을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다른 것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 보면 6장 2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언약의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다. 3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다. 언약의 하나님임을 강조할 때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기에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엘사다이라는 말이다. 강한 자 중에 최고로 강한 자라는 뜻이다. 당신이 세운 언약을 반드시 영원히 지키시는 자라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지키시는 그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언약하신바대로 분명히 응답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언약이 있어야한다. 우리 이 마지막 시대에 말세를 살아갈 수 있는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언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이 있다면 그 응답을 붙잡고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게 되어있다. 말씀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면 출32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증거궤를 받을 때에 모세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원망하며 아론을 중심으로 패물을 다 내어놓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게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면서 그것에 엎드려 복을 달라고 비는 가운데서. 10-12절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하기 위해서 결정을 했다. 그때에 모세가 기도한 내용이다. 13-14절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3절에 보면 모세가 기도하는 내용이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진노를 거두어주옵소서.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는 법이 없는데 이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켰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체험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 묵상기도를 드릴 때 왕상8장 24절부터 나오는 부분을 읽었는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손을 들고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언약하신 말씀을 확실히 성취시켜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왕상8장 24절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 무엇인가?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었다. 그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이 이미 성취되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무엇인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는데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하는 이 사업을 통해서 세계복음화의 응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언약을 붙잡고 언약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하는 학업과 내 가정이 세계복음화에 귀한 축복된 역사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이것이 언약을 붙잡는 것이다. 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때부터 하늘군대를 총 동원하셔서 주의 언약하신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아브라함과 롯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황무지를 선택하고 롯은 돈 되는 물 많은 곳을 선택했다. 그래서 한때 롯은 잘되는 것 같았으나 전쟁이라는 재장이 임하게 되었을 때 롯은 포로로 끌려가고 그 소유물조차도 다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 롯을 구출해 내는, 그 전쟁이라는 재앙을 통해서 더 번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가? 아브라함은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응답을 받고 하나하나 다져짐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를 회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있고 없고가 아니라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은혜를 입고 있으면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그 축복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을 믿기 바란다.
야곱을 보라. 집을 나와서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나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형제들이 에서를 비롯해서 에서가 군사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야곱은 얍복 강가에 꿇어 엎드려서 기도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그 이후에 창33장에 보면 야곱이 기도해서 응답받고 나가는데 이제까지 원한으로 남겨있던 에서가 그의 군사 400명과 같이 야곱을 죽일려고 왔는데 야곱을 보는 순간에 이 에서의 마음이 그냥 녹아버렸다. 그래서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여러분,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언약을 계속 확인시켜 나가고 있다. 6절에 모세에게 이야기를 한 부분이다. 중간에 보면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마지막에 너희를 구속할 것이라. 7절에 보면 너희로 내 백성을 삼겠다. 이스라엘 백성을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는 말이다. 8절에 보면 마지막에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를 함에 100배나 얻었다. 야곱이 사실은 그 땅을 떠나서 애굽에 내려갔지만 43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차지하게 된 그 땅, 그 애굽 땅이 기업으로 주게 한 땅, 그 땅을 구체적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구속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 삼으시며 기업의 땅을 주시겠다. 언약이다.
저와 여러분을 어디에서 구속하셨는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사단과 운명 속에 가두어졌다. 그래서 결국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오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모든 인생이 늪에 빠졌다. 영적인 저주가 임하게 되고 환경의 저주, 육신, 정신, 후대에도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는 늪에 빠졌다. 우리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누군가가 와서 우리를 건져내 주셔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사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롬 8장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군가가 대신은 우리 대신에 죽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는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면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다. 그 기업이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다. 14절부터 27절에 보면 모세의 족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세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언약의 백성들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언약의 백성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가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번 한주간에 말씀의 맛을 보고 기도응답의 맛을 봄으로써 모든 현장 속에서 언약이 확인되어지고 누려지는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면 실수나 환난 당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보는 눈이 달라져야 생각이 바뀌고 체질이 변화되며 인생이 개혁되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기다릴 때 응답의 문이 열린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출6:1,10,13)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임을 체험해야 한다.(히4:12)
2)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여야 한다.
① 말씀(로고스) ② 메시지(레마)
3)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확인되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이 되기에 쓸데없는 마음, 생각, 말이 없어진다.
① 영적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길 - 상처, 잘못된 생각, 피해의식, 비교의식, 불신앙
② 자신개혁 -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질 때
4) 말씀 - 하나님의 능력 - 천지창조 - 하나님이다(사40:8, 겔37)
5)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힘이 없다.
2. 언약잡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출6:2,5)
1)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은 약속있는 사람과 언약을 이루신다.
3)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으라.(메시야, 그리스도, 복음화)
4)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 / 야곱
3. 모세에게 중요한 언약을 재확인시키심. (출6:6-8)
1) 이스라엘의 구축자가 되겠다.(6)
2)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기 백성을 삼겠다.(7)
3) 이스라엘에게 기업의 땅을 주겠다.(8)
-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
① 죄 문제, 사단․운명 문제 , 하나님을 만나는 길도 모르고 하나님의 필요성도 모름
② 그래서 ‘늪’에 빠짐(영적저주, 환경저주, 정신, 육신, 후대저주)
③ 우리 힘으로 절대로 안되기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양자 삼으신 것임
하나님은 모세에게 2가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계속 훈련시키셨다.
말씀의 맛, 기도의 맛을 체험하시고 언약을 재확인하는 한주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출6:1)
오늘 본문에 출6장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느냐. 오늘 제목을 재언약으로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잡았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모세에게 두 가지를 깨닫기를 원하신다.
첫째,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시켜나가시는 것을 모세에게 깨닫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신앙생황을 하는 가운데 여러 말을 듣는데 맞는 말일지라도 이상하게 어떤 말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힘을 빠지게 하는 말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보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사실적으로 믿어야하고 과학적으로 믿어야하고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모세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오늘 이 본문에 보면 힘이 빠져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언약을 주시는데 그 언약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5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가라고 해서 애굽 왕에게 나갔더니 하나님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였냐하면 이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기는커녕 더 어렵게 했다. 예전에는 짚을 주고 벽돌을 만들게 했는데 게을러서 이러한 말을 한다고 생각을 해서 짚도 주지 말고 그러나 벽돌 수요는 그대로 해서 굽도록 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데 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힘이 빠지고 어려움 앞에서 원망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5장 마지막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힘이 빠져있고 모세도 힘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장 19-21절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이 심해지고 그들이 나올 때 모세와 아론을 만났는데 그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하며 말하는 것이 왜 그런 말을 해서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힘들게 하느냐. 그들에게 칼을 주어서 우리를 죽이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말을 듣고 모세조차도 실망하고 힘이 빠졌다. 22절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완전히 힘이 빠져있는 모세의 모습이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그대로 성취시키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고 있다. 출6장은 다시 한번도 모세에게 말씀하신바가 누구이신가를 바르게 증거하는 언약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셔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다. 3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다시 한번 더 모세에게 언약을 확인하고 계신다. 이 사실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바 언약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이다. 오늘 본문에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2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어가라사대,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는 것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의 성취를 현장에서 보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다.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붙잡고 그 말씀을 붙잡고 정시기도와 무시기도로 사실적인 나의 말씀으로 붙잡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다. 주일날 한번 교회 왔다가 가는 것은 그 만큼 손해가 없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붙잡는 시간이 되어야한다. 히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의 영혼이과 마음이 치유받게 되는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라고 해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우리가 믿든 안믿든 간에 그 말씀은 이 땅위에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 말씀은 이루어졌고 다 확정되었고 이미 다 주어졌다. 새롭게 더 성경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완전한 것이다. 그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는데 믿든 말든 상관없이 이 땅에 다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내가 이해되어지고 깨달아지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을 레마라고 한다. 그 말씀이 내게 이해되어지고 내게 부딪쳐질 때 그때의 그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역사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확인되어지는 만큼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이 담겨진다. 우리의 생각 속에 담긴 말씀은 그 말씀이 우리의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영혼 속에 담김으로써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담겨져야 우리가 틀린 소리, 틀린 마음, 헛된 말을 하지 않게 되어있다. 우리의 생각에 말씀이 담겨지지 않으니까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는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담겨질 때 거기서부터 우리의 영적문제를 해결받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 자신의 계획들이 시작되게 된다. 응답의 시작은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참된 치유의 시작이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개혁의 시작이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위로하는 말조차도 오해하게 되고 결국 더욱더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국민일보에 63인의 사형수의 리포트라는 보고서가 연재형식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사형수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63명인데 그들의 배경을 적어놓았는데 하나같이 그 배경들이 전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편모, 편부, 고아, 가난의 문제, 그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서 범죄를 짓고 그 범죄로 말미암아 사형수로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대개상태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에게 있는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은 잘 모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속에 숨어있는 상처가 들어나서 그 상처로 말미암아 실패하게 되어있다. 왜 이런 상처들이 계속 임하는가? 내 생각과 영혼 속에 마음속에 말씀이 담기지 않음으로 그렇게 된다. 이 상처가 깊어질수록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에 별것이 아닌데도 상처를 받데 된다. 위로하는 말조차도 상처로 들려진다. 상대방이 그냥 하는 말들이 내 속의 상처로 인해 오해하게 되고 자기 자신만 상처를 입게 된다. 이 상처들이 복음에 뿌리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감사로 바뀌어지고 참된 기쁨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가난 때문에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 물질 때문에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가난과 물질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통해서 나에게 예수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듣게 하셨구나라는 기쁨과 감사가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정말 해야 할 헌금도 바로 하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까지도 문제가 오게 된다. 깊이 숨겨진 상처들이 쌓이게 되면 여기에서 잘못된 생각들이 나온다. 바른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훌륭한 응답을 바기 위해서는 훌륭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잘못된 판단과 결정과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셨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행위, 인격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다. 근원적, 대표적, 시대적, 기념비적, 불가항력적 축복을 주셨다. 이것은 내 노력, 행위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분이 되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 사실을 누릴 수록 훌륭한 생각을 하게 되어있다. 이게 안됨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생각 속에서 늘 피해의식, 비교의식, 열등감속에 사로잡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몸부림치는데 결과는 불신앙하게 된다. 그 불신앙은 사단이 역사하는 통로이고, 영적문제를 가져오는 통로이다.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 40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이라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시들고 마르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한 것이다. 이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겔37장에 에스겔 선지자를 이끌어 가시면서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 에스겔 선지자가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이르라. 대언을 했더니 뼈들이 맞춰지고 거기에 큰 군대가 일어나서 큰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받을 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 깨닫게 하시는 것은 모세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은 언약잡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체험을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다른 것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 보면 6장 2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언약의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다. 3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다. 언약의 하나님임을 강조할 때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기에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엘사다이라는 말이다. 강한 자 중에 최고로 강한 자라는 뜻이다. 당신이 세운 언약을 반드시 영원히 지키시는 자라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지키시는 그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언약하신바대로 분명히 응답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언약이 있어야한다. 우리 이 마지막 시대에 말세를 살아갈 수 있는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언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이 있다면 그 응답을 붙잡고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게 되어있다. 말씀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면 출32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증거궤를 받을 때에 모세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원망하며 아론을 중심으로 패물을 다 내어놓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게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면서 그것에 엎드려 복을 달라고 비는 가운데서. 10-12절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하기 위해서 결정을 했다. 그때에 모세가 기도한 내용이다. 13-14절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3절에 보면 모세가 기도하는 내용이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진노를 거두어주옵소서.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는 법이 없는데 이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켰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체험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 묵상기도를 드릴 때 왕상8장 24절부터 나오는 부분을 읽었는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손을 들고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언약하신 말씀을 확실히 성취시켜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왕상8장 24절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 무엇인가?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었다. 그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이 이미 성취되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무엇인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는데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하는 이 사업을 통해서 세계복음화의 응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언약을 붙잡고 언약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하는 학업과 내 가정이 세계복음화에 귀한 축복된 역사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이것이 언약을 붙잡는 것이다. 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때부터 하늘군대를 총 동원하셔서 주의 언약하신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아브라함과 롯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황무지를 선택하고 롯은 돈 되는 물 많은 곳을 선택했다. 그래서 한때 롯은 잘되는 것 같았으나 전쟁이라는 재장이 임하게 되었을 때 롯은 포로로 끌려가고 그 소유물조차도 다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 롯을 구출해 내는, 그 전쟁이라는 재앙을 통해서 더 번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가? 아브라함은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응답을 받고 하나하나 다져짐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를 회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있고 없고가 아니라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은혜를 입고 있으면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그 축복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을 믿기 바란다.
야곱을 보라. 집을 나와서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나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형제들이 에서를 비롯해서 에서가 군사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야곱은 얍복 강가에 꿇어 엎드려서 기도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그 이후에 창33장에 보면 야곱이 기도해서 응답받고 나가는데 이제까지 원한으로 남겨있던 에서가 그의 군사 400명과 같이 야곱을 죽일려고 왔는데 야곱을 보는 순간에 이 에서의 마음이 그냥 녹아버렸다. 그래서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여러분,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언약을 계속 확인시켜 나가고 있다. 6절에 모세에게 이야기를 한 부분이다. 중간에 보면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마지막에 너희를 구속할 것이라. 7절에 보면 너희로 내 백성을 삼겠다. 이스라엘 백성을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는 말이다. 8절에 보면 마지막에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를 함에 100배나 얻었다. 야곱이 사실은 그 땅을 떠나서 애굽에 내려갔지만 43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차지하게 된 그 땅, 그 애굽 땅이 기업으로 주게 한 땅, 그 땅을 구체적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구속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 삼으시며 기업의 땅을 주시겠다. 언약이다.
저와 여러분을 어디에서 구속하셨는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사단과 운명 속에 가두어졌다. 그래서 결국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오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모든 인생이 늪에 빠졌다. 영적인 저주가 임하게 되고 환경의 저주, 육신, 정신, 후대에도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는 늪에 빠졌다. 우리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누군가가 와서 우리를 건져내 주셔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사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롬 8장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군가가 대신은 우리 대신에 죽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는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면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다. 그 기업이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다. 14절부터 27절에 보면 모세의 족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세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언약의 백성들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언약의 백성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가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번 한주간에 말씀의 맛을 보고 기도응답의 맛을 봄으로써 모든 현장 속에서 언약이 확인되어지고 누려지는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면 실수나 환난 당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보는 눈이 달라져야 생각이 바뀌고 체질이 변화되며 인생이 개혁되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기다릴 때 응답의 문이 열린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출6:1,10,13)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임을 체험해야 한다.(히4:12)
2)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여야 한다.
① 말씀(로고스) ② 메시지(레마)
3)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확인되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이 되기에 쓸데없는 마음, 생각, 말이 없어진다.
① 영적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길 - 상처, 잘못된 생각, 피해의식, 비교의식, 불신앙
② 자신개혁 -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질 때
4) 말씀 - 하나님의 능력 - 천지창조 - 하나님이다(사40:8, 겔37)
5)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힘이 없다.
2. 언약잡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출6:2,5)
1)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은 약속있는 사람과 언약을 이루신다.
3)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으라.(메시야, 그리스도, 복음화)
4)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 / 야곱
3. 모세에게 중요한 언약을 재확인시키심. (출6:6-8)
1) 이스라엘의 구축자가 되겠다.(6)
2)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기 백성을 삼겠다.(7)
3) 이스라엘에게 기업의 땅을 주겠다.(8)
-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
① 죄 문제, 사단․운명 문제 , 하나님을 만나는 길도 모르고 하나님의 필요성도 모름
② 그래서 ‘늪’에 빠짐(영적저주, 환경저주, 정신, 육신, 후대저주)
③ 우리 힘으로 절대로 안되기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양자 삼으신 것임
하나님은 모세에게 2가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계속 훈련시키셨다.
말씀의 맛, 기도의 맛을 체험하시고 언약을 재확인하는 한주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출6:1)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132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 3:8-18 | 2024-12-15 | |
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1
2
3
4
5
6
7
8
9
10
...
7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