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길
2006-12-1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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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눈이 열려지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눈을 뜨고 있는데 무슨 문을 열라고 하는가 할 수도 있다. 금요일 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눈이 안 좋은 분이 지팡이를 의지해서 더듬거리면서 가는 것을 보았다.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등도 굽었고 불편한 모습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복음을 모르면 결국은 영적인 문제 가운데서 문제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육신적인 눈만 어두워도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응답하고 축복하시는데 그 응답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세계복음화를 축복을 받아놓고도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방황하고 헤맬 수 있다. 그래서 응답 중의 응답이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서 볼 것을 볼 줄 아는 참된 영적인 눈이 열리길 축원한다.
오늘 <광야의 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주에 <성막을 만들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 성막을 만들라.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역사를 보장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막을 만다는 일을 하는 자들에게 지혜롭다고 하셨다. 본문의 36장-39장까지 성막을 설명하면서 성막 안에 들어가야 할 부분, 제사장과 제사장이 입어야할 옷에 대한 부분을 정리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36:1에 보면「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2절에 보면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계속해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4,8,31,35절에도 말씀하고 계신다. 성막하는 일꾼들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지혜가 어디에 있는가? 성막 만드는 이 일을 하는 일에 참된 지혜롭다 슬기롭다고 한 부분을 보게 된다. 무슨 말인가? 진짜 우상을 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 일에 방향 맞추는 자들에게 참된 지혜롭다고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현장에서 다락방, 팀사역, 미션홈, 전문교회, 지교회를 통해서 현장의 우상의 문화를 돌이키고자 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역임을 확인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006년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까지 개인의 생애를 돌아보고 이번 한해 동안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 한 해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생각하는 한주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파괴시키고 건설치 아니하시겠다고 시28:5에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부분들을 생각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고 응답하셨는가를 생각하고 확인하고 나가는 그 사실 속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게 되어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계획이 발견되어지게 되어있다. 2006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해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 일을 생각하는, 어떠한 걸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는가를 생각하는 남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설명하고 계신다. 성막에 대해서 가장 세밀하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증거를 붙잡으라는 것이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동안에 우리에게 광야의 길은 우리 누구나 지나가야하는 길이다. 이 길이 없는 길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한해도 광야의 길을 우리가 걸어온 것이다.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문제는 물이 없는 것이다. 출15장에 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원망하는 부분들이 보여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신앙생활에 육신적인 부분들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오는 동안에 영적으로 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갈급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언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반면에 영적으로는 갈급함 속에 빠져있고 마음에 갈급함과 공허함 속에 빠져있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바라봐도 답답함이 우리에게 더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함 갈급함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갈급함 때문에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로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속에 있다. 가나안을 향해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주시겠다고 한 것을 잡고 나아가는 걸음이 우리의 걸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에 대한 축복과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누려야될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우리에게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바람이 있을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 것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인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이루시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될 때에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에 빠질 수 없다. 다시 말해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알고 나아가는 우리들의 걸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기어코 하나님의 약속인 세계복음화를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하나님게서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믿음을, 준비들을 다 갖추게 하신 것을 보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가는 우리의 걸음 속에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걸음이 그 문제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오늘 아침에 믿음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오늘 광야의 길은 우리들의 현장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 현장의 이야기이다.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고 신자들은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지식인은 지식인 나름대로, 공직자는 공직자 나름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나름대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엘리트는 엘리트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언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공을 위해서 직업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간다. 그리고 어떤 좋은 직업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을 위해서 생을 투자하고 결혼을 하고나면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그리고 집을 장만하고 나면 이름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은 다 지나놓고 보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진정한 생명 아닌 일에 모든 생애를 투자하고 허비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여기에서 오는 허무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 세상사람들이 광야길을 가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식인일수록 많이 배웠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이 알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알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막 사는 사람들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산다.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지식인일수록 똑똑한 사람일수록,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내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사로잡혀서 불안해하고 염려하게 되고 그 결과로 지식인일수록 어디에 찾아가는가? 점쟁이를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묻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의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없는 지식,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지식은 인생에 더 큰 염려거리와 걱정거리와 결국은 더 큰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정말로 사실을 바라보면 그 안에는 평안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정치하는 현장을 보라. 자신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거짓이 정치를 하고 있다. 복음이 없는 정치현장에 거짓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문제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같이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들의 모습이다. 나름대로 무언가 열심히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 결국은 생명 아닌 것 있다가 없어질 것에 모든 생애를 투자하고 허비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참된 행복을 잃어버리고 그 속에서 열심을 내고 노력을 하니까 더 큰 방황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 그러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부분을 놓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지식도 있고 돈과 명예, 부귀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행복이 없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불신자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다. 우상숭배하고 점하고 굿하고 사주팔자, 운명, 미신에 매여서 그에 생을 투자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니까 실제로 11월, 12월 달에 예식장이나 교회를 봐도 그렇다. 쌍춘년이라고 해서 올해 안에 결혼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앞뒤 다퉈 너나 나나 결혼을 하는 시즌을 맞이해서 호텔이나 웨딩업체는 토요일이나 주일이 되면 사람이 많아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니까 황금돼지띠라고해서 아이들을 그때 놓으면 아이들에게 복이 많다고 해서 지금 중국 같은 경우에는 7월 달까지 이미 산부인과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한다. 한국에도 이미 백화점에서 유아용품을 파는 곳에서는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그냥 이치적으로 생각해서 결혼을 많이 하면 내년에 아이를 많이 놓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무언가 ‘이 해에 결혼하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에는 무슨 띠라서 아이를 놓으면 좋겠다’ 전부 여기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이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서, 이것이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다. 여기에 복을 줄 줄 알고 여기에 빌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결국은 불행한 삶을, 무언가 얻었고 성취했다고 할지라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무언가 모르게 배경도 좋고 지식도 좋고 돈도 많은데 이상한 저주에 걸려서 염려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그래서 노이로제에 빠져있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식도 있고 돈도 있고 다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저주에 빠져서 염려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광야길을 걸어가는 삶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결국은 육신에도 불치의 병, 우환과 질고와 불치의 병들이 오게 된다. 분명히 우리에게 내세가 있는데 내세가 있는 줄을 모르니까 현실에 매여서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현실에 매여서 결국은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영적인 문제들을 후대에게 그대로 물려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서 헤매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알지 못해서 하나같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이 사실을 보고 믿는 신자들이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축복으로 인해서 가장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정말로 세상을 바르게 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으로 바로 양육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내보낼 수 없는 세상임을 보게된다. 오늘 새벽기도 왔다가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집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새벽기도를 가는데 건물을 지나는데 갑자기 나이키 신발이 하나 떨어지는데 그 안에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가만히 있어봐라’, ‘잠깐만 기다려봐라’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하는데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 길을 돌아서 지나왔는데 거기에서 새벽인데 아이들이 밤새도록 놀다가 그 어두침침한 곳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악한 사단이 타락의 문화, 흑암, 음란의 문화로 우리의 현장을 뒤집고 있는 이러한 현장 속에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이 바로 전해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을 가진 남편이 감사한 줄 믿기 바란다.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 복음을 모르는데 남자들이 집에 일찍 들어오면 바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잠시잠깐 둘러봐도 어느 누구나 빠질 수밖에 없는 타락의 문화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타락의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서 어느 것으로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대로 여기에 여기에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광야길이다. 그 광야의 길은 결국은 실패와 저주와 재앙과 고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자들도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이 축복을 알지 못하니까 세상 앞에 서면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하나님이 없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고 현장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까 믿음을 상실하고 산다. 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안보이고 믿음을 상실한 것이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고 세상 앞에 서보니까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모자라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놓치고 살아간다. 엄청난 축복을 주셨는데도 이 축복을 놓치니까 세상 앞에 서면 설수록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모자란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다. 실제적인 응답이 오지 않고 교회를 다니니까 하는 것이 신비주의에 빠지고 율법주의에 빠지고 인본주의에 빠지고 무언가 모르게 열심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응답받고 힘을 얻어야 되는데 그 사실이 안되니까 결국 종교생활에 빠지게 되면서 거기에 눌려있는데 교회에서 사람을 만나면 결국 인간관계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거의 무너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를 통해서이다. 복음을 듣고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아야되는데 은혜를 못받고 힘을 못얻으니 종교생활을 한다. 그런 가운데 교회를 오니까 인간관계에서 부딫히게 된다. 거기에서 인간관계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어떤 상처들, 영적인 문제들이 닥치면 그 문제에 빠져서 자신을 이길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사단을 이길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신자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될때 그 말씀이 내게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믿음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고 왜냐하면 마음과 생각이 무너져있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모양 저모양 이런 상처 저런 상처들로 마음과 생각도 무너져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들려지지 않고 믿음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받긴 맏지만 말씀과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장에서는 힘이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내 걸음 속에서 성취되고 이 말씀이 나와 맞다는 것이 체험되어지면 힘이 될텐데 말씀이 나와 안맞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죄와 죄책감에 시달려서 신앙생활을 놓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죄와 죄책감에 빠져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은 더더욱이 진정한 영적인 축복을 받아야될 우리들이 영적인 존재, 영적인 사실, 영적인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해서 영적인 축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신자들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감사한 것은 강단을 통해서 복음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 영적인 문제나 사실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이 들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신자들조차도 영적인 축복,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서 열심히 하는데 뭔가 모르는 갈등과 방황 속에 빠져있다.
전도학교 때 이야기를 헀지만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분이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교회하는 일을 설명하시면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된다고 부분을 한참 말씀을 하셨다. 그런 가운데서 “제가 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을 살펴보니까 많은 성도님들이 자신의 영적인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믿음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결국은 내 자신이 살고 내 자신이 응답을 받으면 나와 관계된 현장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될텐데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몰라서 힘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이 집사님이 자기가 그렇다고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데 그래서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는데 그래서 자기 교회에서는 독거노인, 사회구제쪽으로해서 또한 그런 교단이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데 하면 할수록 만족감이 있어야하는데 어느정도의 만족은 있지만 궁극적으로 마음에 절대적으로 평안이 없고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광야길을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을 하던 것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때문인가? 광야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해서이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동안에 문제와 사건이 올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늘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다. 왜그러한가?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과 응답이 준비되어있는데 그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빠져든다.
출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광야에 이르렀는데 물이 없어서 원망을 하게 된다. 출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중심으로해서 홍해를 건너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서 15:1-21을 보면 모세로 말미암아 홍해를 건넌 사건을 놓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춤을 추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추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은 어디가고 없고 잠시가다 보니까 물이 없다. 거기에서 물이 없음으로 또 원망하면서 마라에 이르렀는데 쓴물을 얻게 되면서 또 원망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습이다. 출16장에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또 원망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들이 원망하는 소리가「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어떤 면에서 먹을 것이 없다는 것, 마실 것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 줄 알았는데 경제적인 부족함, 돈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불평하는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17:1-7에 보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또 물이 모자랐다. 여기에서 또 원망하게 되고 17:8절에 아말렉의 침공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또 원망을 헀다. 그러다 보니까 우상숭배를 하게되고 우상숭배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리고 또 모세가 40일동안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절하고 또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요, 지금 광야길을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러한가? 광야길, 그 걸음이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응답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만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다. 가정이 어려운가? 물질적으로 어렵고 영적으로도 힘이 드는가? 그러나 반드시 광야길은 가야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실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참된 축복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이다.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를 광야길을 가는동안 준비하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애굽을 배우고 난 뒤에 가나안 정복을 하게 하셨다. 세상을 알게 한 후에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다. 세상을 알게 한 후에 세계를 정복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 속에 그 걸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응답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야 한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을 준비시키셨다. 절대 빠져나오지 않는 애굽의 노예 근성들을 광야길을 걸가는 동안 빠져나오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를 알리셨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열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을 높이게 하셨다. 가나안땅에 있는 7족속 31왕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리셨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열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광야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게 하신 것이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렘넌트들을 준비하게 하셨고, 광야길을 가는동안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영권을 회복하게 하셨고, 가나안을 정복해야할 사명을 회복하게 하셨다. 그것이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광야길에서의 모든 사건과 문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응답 그 자체임을 붙잡길 바란다.
그럼 어떻게 그 과정을 승리할 수 있는가?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원망할때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안 믿을때도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다. 성경에 전체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부의 내용이다. 성경전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곘다는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약속하셨다. 어떻게 우리가 광야길을 가는동안 승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믿는 믿음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주신다. 그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능력 가운데 역사하시게 되어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이 보여지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사실로 들려지고 내가 가는 현장에 응답이 보여지고 그와 더불어 내가 가는 모든 현장에 실제적인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엄청난 축복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성막을 지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 동안에 그들이 모든 행진의 중심을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여 나갔다. 레위지파가 언약궤를 중심으로 성막을 움직여 나갔고 그 성막 중심으로 해서 12지파들이 움직여 나갔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아가야 한다. 학업에도 사업에도 삶에도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승리할 수 있는 열쇠이다. 성막을 지으라,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또한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의 성막을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이 일을 일어나가시는 것이다. 이 중심으로 모든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아갈 때에 광야길은 성공할 수밖에 없고 승리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는 방향이다. 가는 방향은 가나안 땅이다.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왜 우리가 태어나서 먹고 사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 세계복음화를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행1:8에 보면「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말씀하셨다.
출애굽을 한 사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을 가져온 것이라면 분명한 출애굽을 한 이유는 가나안땅에 대한 정복이다. 세계복음화의 약속이다. 그 가나안땅의 목적, 세계복음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할 것이 광야길이다. 그 광야의 길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는 약속,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광야의 길이다. 문제와 사건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고 이 광야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 증거, 응답을 누림으로 실제적은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눈을 뜨고 있는데 무슨 문을 열라고 하는가 할 수도 있다. 금요일 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눈이 안 좋은 분이 지팡이를 의지해서 더듬거리면서 가는 것을 보았다.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등도 굽었고 불편한 모습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복음을 모르면 결국은 영적인 문제 가운데서 문제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육신적인 눈만 어두워도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응답하고 축복하시는데 그 응답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세계복음화를 축복을 받아놓고도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방황하고 헤맬 수 있다. 그래서 응답 중의 응답이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서 볼 것을 볼 줄 아는 참된 영적인 눈이 열리길 축원한다.
오늘 <광야의 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주에 <성막을 만들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 성막을 만들라.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역사를 보장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막을 만다는 일을 하는 자들에게 지혜롭다고 하셨다. 본문의 36장-39장까지 성막을 설명하면서 성막 안에 들어가야 할 부분, 제사장과 제사장이 입어야할 옷에 대한 부분을 정리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36:1에 보면「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2절에 보면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계속해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4,8,31,35절에도 말씀하고 계신다. 성막하는 일꾼들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지혜가 어디에 있는가? 성막 만드는 이 일을 하는 일에 참된 지혜롭다 슬기롭다고 한 부분을 보게 된다. 무슨 말인가? 진짜 우상을 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 일에 방향 맞추는 자들에게 참된 지혜롭다고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현장에서 다락방, 팀사역, 미션홈, 전문교회, 지교회를 통해서 현장의 우상의 문화를 돌이키고자 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역임을 확인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006년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까지 개인의 생애를 돌아보고 이번 한해 동안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 한 해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생각하는 한주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파괴시키고 건설치 아니하시겠다고 시28:5에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부분들을 생각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고 응답하셨는가를 생각하고 확인하고 나가는 그 사실 속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게 되어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계획이 발견되어지게 되어있다. 2006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해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 일을 생각하는, 어떠한 걸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는가를 생각하는 남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설명하고 계신다. 성막에 대해서 가장 세밀하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증거를 붙잡으라는 것이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동안에 우리에게 광야의 길은 우리 누구나 지나가야하는 길이다. 이 길이 없는 길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한해도 광야의 길을 우리가 걸어온 것이다.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문제는 물이 없는 것이다. 출15장에 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원망하는 부분들이 보여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신앙생활에 육신적인 부분들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오는 동안에 영적으로 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갈급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언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반면에 영적으로는 갈급함 속에 빠져있고 마음에 갈급함과 공허함 속에 빠져있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바라봐도 답답함이 우리에게 더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함 갈급함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갈급함 때문에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로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속에 있다. 가나안을 향해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주시겠다고 한 것을 잡고 나아가는 걸음이 우리의 걸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에 대한 축복과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누려야될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우리에게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바람이 있을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 것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인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이루시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될 때에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에 빠질 수 없다. 다시 말해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알고 나아가는 우리들의 걸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기어코 하나님의 약속인 세계복음화를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하나님게서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믿음을, 준비들을 다 갖추게 하신 것을 보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가는 우리의 걸음 속에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걸음이 그 문제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오늘 아침에 믿음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오늘 광야의 길은 우리들의 현장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 현장의 이야기이다.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고 신자들은 어떤 광야길을 걸어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지식인은 지식인 나름대로, 공직자는 공직자 나름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나름대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엘리트는 엘리트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언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공을 위해서 직업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간다. 그리고 어떤 좋은 직업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을 위해서 생을 투자하고 결혼을 하고나면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그리고 집을 장만하고 나면 이름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은 다 지나놓고 보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진정한 생명 아닌 일에 모든 생애를 투자하고 허비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여기에서 오는 허무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 세상사람들이 광야길을 가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식인일수록 많이 배웠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이 알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알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막 사는 사람들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산다.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지식인일수록 똑똑한 사람일수록,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내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사로잡혀서 불안해하고 염려하게 되고 그 결과로 지식인일수록 어디에 찾아가는가? 점쟁이를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묻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의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없는 지식,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지식은 인생에 더 큰 염려거리와 걱정거리와 결국은 더 큰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정말로 사실을 바라보면 그 안에는 평안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정치하는 현장을 보라. 자신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거짓이 정치를 하고 있다. 복음이 없는 정치현장에 거짓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문제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같이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들의 모습이다. 나름대로 무언가 열심히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 결국은 생명 아닌 것 있다가 없어질 것에 모든 생애를 투자하고 허비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참된 행복을 잃어버리고 그 속에서 열심을 내고 노력을 하니까 더 큰 방황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 그러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부분을 놓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지식도 있고 돈과 명예, 부귀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행복이 없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불신자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다. 우상숭배하고 점하고 굿하고 사주팔자, 운명, 미신에 매여서 그에 생을 투자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니까 실제로 11월, 12월 달에 예식장이나 교회를 봐도 그렇다. 쌍춘년이라고 해서 올해 안에 결혼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앞뒤 다퉈 너나 나나 결혼을 하는 시즌을 맞이해서 호텔이나 웨딩업체는 토요일이나 주일이 되면 사람이 많아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니까 황금돼지띠라고해서 아이들을 그때 놓으면 아이들에게 복이 많다고 해서 지금 중국 같은 경우에는 7월 달까지 이미 산부인과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한다. 한국에도 이미 백화점에서 유아용품을 파는 곳에서는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그냥 이치적으로 생각해서 결혼을 많이 하면 내년에 아이를 많이 놓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무언가 ‘이 해에 결혼하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에는 무슨 띠라서 아이를 놓으면 좋겠다’ 전부 여기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이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서, 이것이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다. 여기에 복을 줄 줄 알고 여기에 빌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을 만나야할 인생이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결국은 불행한 삶을, 무언가 얻었고 성취했다고 할지라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무언가 모르게 배경도 좋고 지식도 좋고 돈도 많은데 이상한 저주에 걸려서 염려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그래서 노이로제에 빠져있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식도 있고 돈도 있고 다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저주에 빠져서 염려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광야길을 걸어가는 삶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결국은 육신에도 불치의 병, 우환과 질고와 불치의 병들이 오게 된다. 분명히 우리에게 내세가 있는데 내세가 있는 줄을 모르니까 현실에 매여서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현실에 매여서 결국은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영적인 문제들을 후대에게 그대로 물려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서 헤매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알지 못해서 하나같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이 사실을 보고 믿는 신자들이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축복으로 인해서 가장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정말로 세상을 바르게 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으로 바로 양육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내보낼 수 없는 세상임을 보게된다. 오늘 새벽기도 왔다가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집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새벽기도를 가는데 건물을 지나는데 갑자기 나이키 신발이 하나 떨어지는데 그 안에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가만히 있어봐라’, ‘잠깐만 기다려봐라’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하는데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 길을 돌아서 지나왔는데 거기에서 새벽인데 아이들이 밤새도록 놀다가 그 어두침침한 곳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악한 사단이 타락의 문화, 흑암, 음란의 문화로 우리의 현장을 뒤집고 있는 이러한 현장 속에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이 바로 전해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을 가진 남편이 감사한 줄 믿기 바란다.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 복음을 모르는데 남자들이 집에 일찍 들어오면 바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잠시잠깐 둘러봐도 어느 누구나 빠질 수밖에 없는 타락의 문화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타락의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서 어느 것으로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대로 여기에 여기에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광야길이다. 그 광야의 길은 결국은 실패와 저주와 재앙과 고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자들도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이 축복을 알지 못하니까 세상 앞에 서면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하나님이 없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고 현장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까 믿음을 상실하고 산다. 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안보이고 믿음을 상실한 것이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고 세상 앞에 서보니까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모자라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놓치고 살아간다. 엄청난 축복을 주셨는데도 이 축복을 놓치니까 세상 앞에 서면 설수록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모자란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다. 실제적인 응답이 오지 않고 교회를 다니니까 하는 것이 신비주의에 빠지고 율법주의에 빠지고 인본주의에 빠지고 무언가 모르게 열심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응답받고 힘을 얻어야 되는데 그 사실이 안되니까 결국 종교생활에 빠지게 되면서 거기에 눌려있는데 교회에서 사람을 만나면 결국 인간관계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거의 무너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를 통해서이다. 복음을 듣고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아야되는데 은혜를 못받고 힘을 못얻으니 종교생활을 한다. 그런 가운데 교회를 오니까 인간관계에서 부딫히게 된다. 거기에서 인간관계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어떤 상처들, 영적인 문제들이 닥치면 그 문제에 빠져서 자신을 이길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사단을 이길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신자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될때 그 말씀이 내게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믿음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고 왜냐하면 마음과 생각이 무너져있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모양 저모양 이런 상처 저런 상처들로 마음과 생각도 무너져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들려지지 않고 믿음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받긴 맏지만 말씀과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장에서는 힘이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내 걸음 속에서 성취되고 이 말씀이 나와 맞다는 것이 체험되어지면 힘이 될텐데 말씀이 나와 안맞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죄와 죄책감에 시달려서 신앙생활을 놓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죄와 죄책감에 빠져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은 더더욱이 진정한 영적인 축복을 받아야될 우리들이 영적인 존재, 영적인 사실, 영적인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해서 영적인 축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신자들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감사한 것은 강단을 통해서 복음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 영적인 문제나 사실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이 들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신자들조차도 영적인 축복,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서 열심히 하는데 뭔가 모르는 갈등과 방황 속에 빠져있다.
전도학교 때 이야기를 헀지만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분이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교회하는 일을 설명하시면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된다고 부분을 한참 말씀을 하셨다. 그런 가운데서 “제가 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을 살펴보니까 많은 성도님들이 자신의 영적인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믿음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결국은 내 자신이 살고 내 자신이 응답을 받으면 나와 관계된 현장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될텐데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몰라서 힘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이 집사님이 자기가 그렇다고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데 그래서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는데 그래서 자기 교회에서는 독거노인, 사회구제쪽으로해서 또한 그런 교단이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데 하면 할수록 만족감이 있어야하는데 어느정도의 만족은 있지만 궁극적으로 마음에 절대적으로 평안이 없고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광야길을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을 하던 것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때문인가? 광야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해서이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동안에 문제와 사건이 올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늘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다. 왜그러한가?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과 응답이 준비되어있는데 그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빠져든다.
출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광야에 이르렀는데 물이 없어서 원망을 하게 된다. 출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중심으로해서 홍해를 건너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서 15:1-21을 보면 모세로 말미암아 홍해를 건넌 사건을 놓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춤을 추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추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은 어디가고 없고 잠시가다 보니까 물이 없다. 거기에서 물이 없음으로 또 원망하면서 마라에 이르렀는데 쓴물을 얻게 되면서 또 원망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습이다. 출16장에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또 원망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들이 원망하는 소리가「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어떤 면에서 먹을 것이 없다는 것, 마실 것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 줄 알았는데 경제적인 부족함, 돈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불평하는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17:1-7에 보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또 물이 모자랐다. 여기에서 또 원망하게 되고 17:8절에 아말렉의 침공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또 원망을 헀다. 그러다 보니까 우상숭배를 하게되고 우상숭배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리고 또 모세가 40일동안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절하고 또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요, 지금 광야길을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러한가? 광야길, 그 걸음이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응답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만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다. 가정이 어려운가? 물질적으로 어렵고 영적으로도 힘이 드는가? 그러나 반드시 광야길은 가야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실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참된 축복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이다.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를 광야길을 가는동안 준비하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애굽을 배우고 난 뒤에 가나안 정복을 하게 하셨다. 세상을 알게 한 후에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다. 세상을 알게 한 후에 세계를 정복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 속에 그 걸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응답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야 한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을 준비시키셨다. 절대 빠져나오지 않는 애굽의 노예 근성들을 광야길을 걸가는 동안 빠져나오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를 알리셨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열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을 높이게 하셨다. 가나안땅에 있는 7족속 31왕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리셨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열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광야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게 하신 것이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렘넌트들을 준비하게 하셨고, 광야길을 가는동안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영권을 회복하게 하셨고, 가나안을 정복해야할 사명을 회복하게 하셨다. 그것이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광야길에서의 모든 사건과 문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응답 그 자체임을 붙잡길 바란다.
그럼 어떻게 그 과정을 승리할 수 있는가?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원망할때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안 믿을때도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다. 성경에 전체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부의 내용이다. 성경전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곘다는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약속하셨다. 어떻게 우리가 광야길을 가는동안 승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믿는 믿음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주신다. 그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능력 가운데 역사하시게 되어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이 보여지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사실로 들려지고 내가 가는 현장에 응답이 보여지고 그와 더불어 내가 가는 모든 현장에 실제적인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엄청난 축복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성막을 지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는 동안에 그들이 모든 행진의 중심을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여 나갔다. 레위지파가 언약궤를 중심으로 성막을 움직여 나갔고 그 성막 중심으로 해서 12지파들이 움직여 나갔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아가야 한다. 학업에도 사업에도 삶에도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승리할 수 있는 열쇠이다. 성막을 지으라,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또한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의 성막을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이 일을 일어나가시는 것이다. 이 중심으로 모든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나아갈 때에 광야길은 성공할 수밖에 없고 승리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는 방향이다. 가는 방향은 가나안 땅이다.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왜 우리가 태어나서 먹고 사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 세계복음화를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행1:8에 보면「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말씀하셨다.
출애굽을 한 사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을 가져온 것이라면 분명한 출애굽을 한 이유는 가나안땅에 대한 정복이다. 세계복음화의 약속이다. 그 가나안땅의 목적, 세계복음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할 것이 광야길이다. 그 광야의 길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는 약속,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광야의 길이다. 문제와 사건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고 이 광야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 증거, 응답을 누림으로 실제적은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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