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라
2006-12-2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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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참된 성탄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출40:1-16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2006년 한해 처음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가 출14:13을 본문으로 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이 한해동안 우리에게 개인과 가정과 산업현장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증거들을 주셨다. 그 사실 속에 우리가 있기 되었고 남은 2주간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 결산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출오늘 40장 전반부를 살펴보고 다음 주에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 출40:34-38을 살펴보면서 출애굽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실은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걸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나서 가나안땅을 향해 가는 그들의 걸음 속에 광야길이 있었다. 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누구에게나 광야길이 있다. 실제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광야교회를 걷고 있다. 지난주 2부 메시지에서 말씀하셨지만 광야교회,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걸음이다. 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걸음 속에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님이 광야길을 인도하셨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이 어느 부분을 중요하게 말씀하셨는가,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고 무엇을 알리셨는가를 발견한다면 우리의 광야 길을 걸어가는 걸음 속에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한역사가가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은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과거의 역사를 알면 지금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는 눈이 열려지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않다고 역사가가 말하고 있다. 지난날의 역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오늘 역사 속에서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오늘 역사 속에서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이미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어떻게 승리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신앙생활이 쉬운 이유는 이 사실만 붙잡으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실패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나님이 이미 광야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리에게 거울로 모범으로 본으로 경계로써 교훈으로써 미리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 가운데서 어떻게 승리하는가를 언약으로 붙잡으면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운 부분을 보게 된다.
어제 핵심에서 사사기서에 나오는 렘넌트운동에 대해서 말씀을 주셨는데 사사기를 보면 인간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적인 문제, 타락과 불신앙의 반복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사기서에서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가장 암흑한 시대가 사사기 시대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방향을 상실하고 감각을 잃어버린 시대가 사사기시대이다. 그런데 그 사사기 시대에 보면 계속해서 크게 흐르는 사이클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니까 교만하게 되고, 교만하다가 결국은 타락하게 되고 그 타락의 중심에 우상숭배와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함으로 타락하게 되고 결국 노예로 전락하고 그 노예 속에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게 되니까 또다시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이 사사기의 전체 내용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회복시키시고 축복하시고 축복하시니까 교만하게 되고 교만해서 타락에 빠지는데,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노예 되어지고 노예 속에서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겠다고 부르짖게 되니까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시사 또 회복시키시고 이 부분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어지는가? 사사기 전체를 통해서 보면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왕이 없음으로. 사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왕정시대에 사울로 말미암아 처음 초대 왕이 세워졌다. 그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처음 세워진 왕이다. 그런데 왕정시대에 사울이 세워지기 이전에도 왕이 있었다.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의 축복을 받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음으로라는 말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을 거부하고 거절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땅에 모든 문제들이 온 것이다. 롬1:28에 보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하셨다.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 그냥 유기해 버리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 여기에서 모든 문제들이 다 오게 되었다.
그 다음에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순환이 계속 되었던 이유는 영적싸움의 비밀을 몰랐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이 누구누구의 손에 붙이셨더라’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에 영적인 싸움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여호와께 악을 행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기어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지만 다른 이방인들의 손에 붙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한순간도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일이 잘되고 있는데 영적이 싸움이 안되고 있다면 그 일이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안되고 있는데 영적인 싸움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일이 안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기준은 지금 영적인 싸움이 되고 있느냐가 그렇지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평안하고 잘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영적인 싸움이 되고 있느냐 안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안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게 되는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에 동일하게 떨어진다.
세 번째로 왜 그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에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한 말이다. 17:6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올바른 제자, 올바른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일꾼이 세워지지 않으니까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이유를 붙잡아야 한다. 제자, 일꾼이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붙잡아야 한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사기서를 읽어보면 훌륭한 일꾼들이 많이 나온다. 기드온, 우상을 꺾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역사를 감당했고 삼손같은 인물도 얼마나 훌륭한가. 그리고 여자 중에서 데보라같은 여자들도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이 어디 더 훌륭한 인물들이 나올 수 없는가 하는 것을 갖게 된다. 더 훌륭한 인물들이 있을 수 없는가. 그런데 사시기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하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훌륭한 인물들도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잡으라는 것이 사사기서의 결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을 내보내도 결국은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리스도를 붙잡도록 하는 것이 사사기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 악순환이 반복되어지는 일을 끊을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 후대들을 세우는 일에 생을 거는 것이고 이 후대들에게 영적인 싸움의 비밀을 가르치고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이고 흑암의 문화가 어떻게 역사하고 있고 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할 것인가, 이 비밀을 전달하는 것이 계속적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떻게 해서 사사시대가 온 것인가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해서 반복적인 실패의 역사를 가져온 것인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별히 말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이 말씀을 통해서 이미 실패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고, 그 중에서 렘넌트 7명은 그 문제와 사건 속에서 어떻게 서 있었기 때문에 승리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말씀이다. 우리가 실패한다는 것은 말이 되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한 시대를 살았고 성공했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고 실패했던 사람들을 성경으로 거울로써 보여주고 있다. 그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 신앙생활,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완전 승리할 수 있다.
사사기서의 악순환이 지금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은 종교차원에서의 복음을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다. 종교생활을 하게 되고 사사기시대의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하나님을 찾다가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 축복 가지고 기뻐하다가 교만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또 부르짖게 되고 노예 되면서 또 부르짖게 되고 또 회복하고. 늘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이 종교생활의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은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실패 가운데 살아가지 않고 영원한 승리와 완전한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복음,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말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가 우리 후대들의 삶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는가가 다음 세대에 책임져야 할 부분들로 나타난다. 새벽에 이 부분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정확한 능력의 역사, 당대뿐만 아니라 자손만대를 살리는 완벽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토록 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 세대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오늘을 사는 것은 어제까지의 삶의 결과가 오늘 지금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 세대의 모든 삶의 결과가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그 결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축복을 누리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축복을 누리고 있는가가 우리 후대에게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고 우리 후대에게 책임져야할 부분으로 삶이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밖에 없고 하님의 축복된 역사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눈이 열려지길 축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서 후대를 살려야하고 우리를 통해서 후대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되기 때문에 먼저 앞세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축복을 쏟아 붓도록 되어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본문을 돌아가서 하나님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 네 가지를 알리셨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때에 지난 주 2부 예배에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신8:16을 말씀하셨다. 광야교회를 걸어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왜 광야를 허락 하셨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반드시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반드시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왜 광야교회를 가는 광야 길을 인도하셨는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반드시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오늘 하나님이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알면 알수록 이 축복의 말씀이 내게 사실적으로 붙잡혀지게 되어있다. 이 말씀이 이해되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첫 번째 유월절 비밀을 알게 하셨다. 유월절이란 양을 잡음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지 못하던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사건이 유월절이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의 비밀, 양을 잡고 피흘리는 사건은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만 한 행위가 아니다. 광야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 알리신 것이 어린양의 피를 흘리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으면 됐지 뭐 예수 이름이냐, 왜 예수 예수, 왜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느냐? 그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완전 저주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만 양의 피를 흘린 것이 아니라 광야길을 가는 동안 매일 매일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도록 하셨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않고는 오직 그리스도 안되고서는 우리의 삶이 되어지지 않는다.
왜 계속 예수 예수 이야기를 하고 왜 계속 그리스도 그리스도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지금 역사하는 사단이 어떠한 존재인지 안다면 늘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않고는 완전 저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임금, 세상의 신 악한 사단이 온 인류를 붙잡고 있다. 모든 사람을 지금 붙잡고 있으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으로 역사하고 있다. 옛날이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이다. 그래서 엡6장에 보면 이 악한 사단이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면 선 줄로 알았는데 또 넘어뜨린다고 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또 넘어뜨리는 존재가 사단이다. 이 악한 사단이 믿는 자들에게 계속 불화살을 쏘아대기 때문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하셨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예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고 끝나면 예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금도 악한 사단이 분명히 존재하면서 믿는 자들에게 계속 불화살을 쏘고 있다. 화전을 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계속해서 양의 피의 비밀을 이야기하셨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완전 저주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롬7:24-25에 보면 대전도자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탄식에 빠져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25절에 바로 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공고한데 빠져 있다가 그래도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고백이다. 정말로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알면 알수록 지금 현장에 역사하는 사단의 정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면 알수록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다. 구원받을 때만 ㅍ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데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유일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빠져있다. 이것을 모른다면 그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질 수 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만 말한 것이 아니다. 광야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축복의 비밀이 사실적으로 붙잡혀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죄와 사단과 지옥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 아니면 없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언약궤를 만들도록 하셨다. 너무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 보여준 능력을 설명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언약궤를 만들게 하셨는가? 직접 능력을 보여주시면 되지 왜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는 것이냐? 이 언약궤를 만들도록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를 위해서 언약궤를 만들도록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면 언약궤를 만들라고 만들 필요도 없다. 언약궤를 썩지 않는 것으로 만들라고 하고 그 언약궤를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세밀하게 설명하면서 만들라고 한다. 왜 그렇게 썩지 않는 것으로 세밀하게 설명하면서 만들라고 하는 것인가? 우리와 우리 후대를 위해서 만들라고 한 것이다. 그냥 믿고 나가라고 하면 되는데 왜 언약궤를 만들게 하셨는가?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팡이와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는 만나담은 항아리를 넣으라고 하셨다. 왜 그러한 것을 넣으라고 하셨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무시하는 거절하는 그래서 자꾸만 방황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그 언약궤 안에 말씀을 넣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팡이와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는 만나담은 항아리를 넣으라고 하신 것이다. 앞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을 안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안 믿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안받기 때문에 그러한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언약궤를 통해 알리신 것이다.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솔직해 지자.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는가?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자기 기준,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자기 고집으로 돌아간다. 진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거기에 기적이 일어날 것인데 하나님의 인도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시81:13-14에 중요한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하신다. 잠22:31에 보면 사람들이 싸움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말했다. 너무 중요한 말씀이다. 사람들이 싸움을 위하여 마병을 준비하는데 그런데 이김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모든 삶 속에서 모든 것들을 준비하고 예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것을 가지고 결국 승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도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지난 한 주간 잠21:31을 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하는데 어떻게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가 준비를 하는데 그러나 이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어떠한 고백이 되어져야 하냐면 열심히 해서 성공을 하고 나서 그 결과를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신앙의 믿음의 고백이다. 사람들이 싸움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참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삶에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그것을 언약궤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세 번째로 성막을 만들라는 것이다. 36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성막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성막을 지키는 제사장에 대해서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막을 만들라는 것은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불신자들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교회이다. 저주에 빠진 인생들이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운동하는 곳이 교회이다. 사회운동, 구제운동, 봉사도 좋다. 그렇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교회이다. 성막을 만들라는 것은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성막이 무엇인가? 현장에서 20가지 전략을 하는 것이 성막운동이다. RUTC가 이 한 시대의 성막운동이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영혼을 하나님께로 바라보게 하고 이 일을 하는 일꾼을 키우는 RUTC가 바로 성막운동이다.
그 다음에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성막을 왜 만들라고 하는가?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은혜를 받으면 세상을 건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로 원리이다. 어떻게 세상을 살릴 것인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힘을 얻으면 세상이 변화되고 세상이 살아나게 되어있다.
세 번째로 성막운동,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말씀을 회복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인가? 영적인 메시지이다. 영적인 메시지가 교회 안에 없는 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다. 영적인 메시지가 교회 안에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자꾸 육신적인 것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육신적인 것만 이야기를 하면 세상의 다른 일반 종교에 지게 되어있다. 영적인 사실, 영적인 메시지가 강단에서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에서 실패하고 또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문제에서도 실패를 하는 것이 강단에서 영적인 메시지가 바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할 것이 강단에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영적인 메시지가 나오게 하소서. 기도해야할 부분이다. 교회에 사명이 있다면 영적인 사실을 알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이 부분들을 알지 못하니까, 영적인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영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지고 있고 교회와 성도들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막을 만들라는 것은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인 생명운동을 회복하라는 것이고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이고 영적인 메시지, 말씀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네 번째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략을 계속해서 광야 길을 가는 동안 말씀하셨다. 그냥 전도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성경적인 전도전략들을 가나안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셨다. 교회들이 전도 안하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세계에 나가있는 선교사님들이 선교안하는 선교사님이 어디 있는가? 그들 중심은 다 전도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왜 계속적인 고난 속에서 못 빠져나오는가? 심지어 선교사님 가정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와서 사역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러한 문제들이 왜 나타나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전략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고생하게 되어있다.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 네 가지를 모르면 광야 길을 가는 우리들이 실패하고 죽도록 고생할 수 있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인가? 저주와 재앙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지는 사단의 세력이 꺾여지는 유월절의 비밀.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하는 언약궤, 교회의 사명,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전략을 모르면 분명히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평생 고생하게 되어있다.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언약궤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생시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도록 하신 것이다. 신8:16에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고 하심이라. 이 결론으로 맺어지는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유월절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교회의 사명을 알고 성경적인 전도전략을 바르게 알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는 하나님의 복되게 하시는 기적의 능력들로 세워지게 되어 진다. 이 네 가지를 회복하고 성막, 교회의 사명을 회복함으로 참된 축복의 걸음 들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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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143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142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141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140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139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138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137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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