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매
2006-12-3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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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2006년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놓고 우리의 신앙의 고백을 하십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고등학생이 성적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가게 되었다. 근데 마침 담임선생님이 역사 담당하는 선생님이었다. 부모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과 하다가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께 물었다. “우리 아이 역사 성적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반문하기를 “아버님께서는 학교 다니실 때 역사공부를 어떻게 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역사는 늘 새롭게 보여지지만 되풀이되고 있다. 2006년에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새로운 축복을 확인하고 누리기도 했지만 2005년 과거의 모든 삶의 결과로 이루어진 삶이 2006년이 되었고 또 2007년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소원하지만 2007년도도 2006년까지의 삶이 어떠한 삶인가하는가 그것을 바탕으로 2007년이 세워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이 어제까지의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한 세기에 지난 과거의 모든 삶이 지금 세기의 사람들이 그 삶의 결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열심히 살아라 잘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이 우리 후대의 삶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름 있는 분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눈길 위를 함부로 걷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뒤에 따라오는 모든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길을 함부로 걸은 그 걸음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진다는 사실. 앞서간 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걸어가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도 그것이 이정표가 되어서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고 어제까지의 우리의 삶의 모든 결과가 오늘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에 받은 응답들을 확인해야 하고 2006년에 받은 응답 위에 2007년에 응답하실 부부들이 보여지게 되어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된 메시지가 있다. 본부에서 나온 메시지가 있다면 개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개혁은 잃어버린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인생개혁, 종교개혁, 문화개혁의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다시 말해서 잃어버린 인생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문화와 종교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2006년도 한해에 우리에게 계속 역사하셨던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oneness의 축복이다. 복음의 공동체, 제자공동체, 전도․선교공동체, 렘넌트 공동체의 축복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와 더불어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제목으로 2006년도를 시작했다. 출14:13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이 일을 위해서 다락방 회복과 훈련회복과 경제회복의 한해가 되기 위해서 계속 기도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경제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경제회복을 위한 네가지 기도제목을 주셨다. 그것이 교회건축을 위해서 십의일조, 선교를 위해서 십의일조, 교회의 주의 종들이 마음껏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십의일조, RUTC를 위해서 십의일조. 그래서 중요한 경제개혁에 중요한 축복된 언약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그리고 매주 강단을 통해서 주어진 언약이 있다면 렘넌트에 대한 언약이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은 메시지를 주어서 그 메시지를 성취시킴으로 응답하신다. 메시지를 성취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메시지를 주어서 그 메시지를 하나님이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6년을 시작하면서 받은 메시지, 그 자체가 응답이다. 다른 것이 응답이 아니라 우리에게 준 개혁과 oneness의 축복, 그리고 교회에서 주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 그 속에서 다락방회복과 훈련회복과 경제회복, 또 경제회복을 위해서 네가지 구체적으로 주신 것, 강단의 매시간 마다 주신 렘넌트의 언약, 그 메시지를 받은 것 자체가 응답이다.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앞으로 또한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인가를 계속해서 확인해가야 한다. 그래서 이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메시지로 주신 응답을 다시 정리하길 바란다. 물론 그 부분을 통해서 성취하는 것을 맛보고 또 이루어진 것을 체험도 했겠지만 그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방법이 있다면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주시는 것 그 자체가 응답 속에서 주신다. 그러면 그 부분을 두고 내게 어떻게 응답하셨고 2007년 한해에 응답하실 것인가를 보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2007년에 우리에게 새로운 응답으로 분명하게 확신있게 증거해주실 것이다.
오늘 성구영신 예배의 메시지가 나오겠지만 목사님이 2007년 한해 주제를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라는 제목을 주셨다. 수1:1-9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 우리의 모든 전 구석구석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모든 현장을 다 차지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현장을 2006년 받은 응답을 가지고 우리가 속한 모든 현장 구석구석을 누리고 정복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세가지 기도제목을 주셨다. 나 자신이 복음으로 살고 교회 안에 300지교회, 3000제자의 현장조직을 통해서 지역을 살리고, RUTC운동을 통해서 후대가 살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제목을 주셨다. 받은 응답들을 메시지 속에서 확인하고 그 메시지 속에서 내년 한해 어떻게 그 응답을 이루어갈 것인가를 보면서 오늘 중요한 응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006년에 출1장부터 오늘 출40장의 마지막을 잃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다면 성막에 관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고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림으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셨다. 그 중심된 장소가 성막이다. 성막과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성막을 찾을 필요도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성막을 만들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다. 언약궤를 찾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언약궤를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언약궤가 일본에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신사모양이 언약궤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 그러면서 언약궤가 일본에 있는데 그 언약궤를 찾아야한다고 모든 전력을 거기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그 언약궤를 없애셨고 성막을 없애버리셨다. 그것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막과 성전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성막과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속에서 피를 흘리게 하셨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그 성막을 통해서 열어가셨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는 성막, 성전을 통해서 양의 피를 뿌리고 하나님을 만났으며 성막을 따라 가게 되었다. 본문에 이 성막이 완성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본문의 34절을 보면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절에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으며’ 성막을 완성 지으니까 그 속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적용시켜본다면 왕, 제사장, 선지자, 그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것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단의 세력을 꺾은 왕,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한 제사장,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길을 여신 선지자, 참왕이요 참제사장이요 참선지자인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누리는가 여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로 위기에 시대에 진정한 참된 교회운동을 회복하게 될 때에 여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여 진다. 이 시간에는 참된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가 다락방 훈련을 받고 있는데 다락방 운동이라고 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락방 운동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적인 참 교회의 회복운동이 바로 다락방이다. 올바른 교회운동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분들이 전도, 교회가 어렵다고 한다. 또 사실상 증명되고 있고 사실은 전도가 되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옆에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그래서 교회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교인의 수는 줄어가고 있다. 현장에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당장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답을 찾아서 교회를 찾아오지만 교회조차 와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는데 자기도 교회를 가봤다고 했다. 교회를 가서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교회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그래도 그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하니까 여전도회 회장도 하고 모든 것들을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 영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모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사모님이 그것은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것 같으니까 점쟁이를 찾아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지금 교회의 실상이다. 지금 당장 옆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영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문제조차도 모르고 있고 그들에게 진정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교회를 오게 되는데 교회조차도 답을 주지 못해서 방황하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진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이 한해 통계상으로 드러났지만 천주교나 불교는 급상승하게 부흥을 했지만 기독교는 유교수준으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일년에 작은 교회가 3000개씩 문을 닫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지금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 있는 교회가 과연 성경에 있는 교회인가?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고 이 교회 속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부분을 두고 기도해야할 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응답받을 제목들이 나오게 되어있다. 누가 뭐라해도 지금 교회는 진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교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없어서 흔들리고 있다. 왜 확신이 없는가? 복음을 강조해야할 교회가 복음을 강조하지 않아서 흔들리고 있다. 복음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복음 아닌 다른 것을 누릴 수 있다. 다른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 이외의 것을 강조하는 것을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결국은 교회가 흔들리게 되어있다. 처음에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을 강조하지 않고 다른 것을 강조하고 자꾸 이야기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가 복음과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고 결국엔 흔들리게 된다.
또 왜 교회가 흔들리고 있는가? 빨리 벗어나야할 것이 있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도 모르게 뿌리내려진 것이 있어서 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는 것이다. 교회와 개인을 두고 기도해야할 제목이다. 인본주의, 신비주의, 율법주의이다. 인본주의란 불신앙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염려들을 응용하고 그 염려를 커버한 것이 인본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염려들을 다른 것으로 커버하는 것이 인본주의이다. 이것이 불신앙 중의 불신앙이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야 한다. 이것이 있는 동안에는 참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진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하나님의 축복을 자꾸만 육신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충만함이 육신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의 정상적인 것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자꾸 육신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신비주의이다. 이것이 우리 속에 뿌리내려지면 본질적으로 복음의 능력에 대해서 안믿게 되어진다. 그 다음에 우리 안에 뿌리내려져 있는 율법주의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경건을 포장해서 나오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바리새인들은 생명이 없었다. 성경을 모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경건으로 대체를 해서 포장해서 나왔다. 그래서 결국은 율법주의에 빠져서 철저하게 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가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 개인 안에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진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없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에 흔들리는 이유 또 확신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 다니면서도 갈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전부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 갈등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가? 그 갈등은 내게 있는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 받지 못할 때에 그 상처들이 얽혀서 갈등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놓고도 그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진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흔들리는 확신없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참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이러한 교회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교회회복이 무엇인가? 네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본분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있다면 위기시대를 살리는 온전한 참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인데 참 성경적인 교회회복은 네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네 번째가 문화를 복음의 문화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의 회복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다락방을 허락하신 것이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축복 가운데 인도하셨다.
그 첫 번째가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복음회복은 다른 말로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종교단체나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복음, 그런데 성경 전체에서 설명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무슨 말인가? 복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다는 것이다. 교회가 복음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육신적으로 빠져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참된 회복이 되어지는 것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복음이 메시지로 드러났고 이 복음의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 교회회복의 첫 번째 중요한 요인이다. 교회가 복음을 놓치니까 점점 육신의 것을 추구하고 따라가고 있다. 복음, 영적인 메시지가 없어서 영적인 문제가 왔고 지금도 사실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도 알지 못하고 당하고 있다. 육신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영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또한 육신의 문제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니까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없고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이 점점 무기력화 되어간다는 것이다.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흑암권세에 당하게 되어있고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참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장에 참된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교회의 회복이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복을 받고 안받고가 아니다. 안될 수가 없는 것이다. 참된 교회 회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복음의 회복인데, 그것은 다른 말로 복음의 메시지를 교회가 회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 회복은 제자회복이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무리도 있었고 제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중요한 메시지들를 무리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다. 참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들이 제자가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성도요 그냥 신자로 다니지 제자로서의 축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내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현장을 살리는 길이 있다면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 중심에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메시지로 현장을 보는 사람이 제자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신앙에 성공하기를 원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에 승리하는가? 내가 제제가 되어지고 나로 말미암아 현장에 제자가 세워질 때 그 인생은 축복받는 인생이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어진다.
전도합숙을 담당하시는 이병무 목사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이목사님께서 처음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가 성장을 하고 많은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훌륭한 장로님들이 세워지고 성도들도 많고 경제적인 축복도 많이 받았고 성도들 개개인의 산업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하셔서 축복도 받았다. 그런데 이목사님이 이 복음 메시지를 듣고 나서 이 복음운동, 말씀운동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하고 교회 앞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 전까지는 그렇게 충성, 헌신, 봉사하던 장로님들이, 진짜 목사님에게 잘해드리고 모든 것을 내어놓던 장로님들이 하나같이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목사님이 본인이 개척한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켰던 교회를, 그리고 그 교회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목회가 되어지고 안일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해야겠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를 그대로 넘기고 그냥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셨는가하면 정말로 제자들로 말미암아 교회를 축복하시는데 지금 오히려 어떤 면에서 광주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로, 구역 한사람 한사람이 제자들로 세워져서 목사님의 목회사역을 위해서 목이라고 내어놓을 수 있는 제자들로 세워진 것을 간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훌륭하고 잘해주시던 중직자분들이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하겠다고 하니까 전부 돌아섰다고 한다.
진짜 우리가 성공하는 길이 있다면 신앙생활에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제자가 되어야하고 우리를 통해서 제자를 세우는것만큼 축복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들이 되어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인생을 신앙의 결산을 할 떄 헛된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는데 제자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이요, 우리 개인에게 주신 축복이다. 제자 한사람이 세워지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직장과 모든 삶이 변하게 되어있다.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남기셨다. 좀 더 나아가서 70인을 남기셨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120문도를 남기셨다. 그런데 그들로 말미암아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의 생전에 바울을 따르던 제자들이 30여명이 있다. 그 30여명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죽고난 이후에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복음화되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제자가 되어지고 나로 말미암아 제자가 세우질때 그 제자로 말미암아 현장이 변화되어지고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제 주변에 어떤 한 자매가 있는데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늦게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귀한 비밀을 가지고 직장안에서 계속 기도를 했다. 근데 그 한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직자 안의 상사가 복음을 받게 되고 심지어 그 직장의 사장이 영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가 너무 갈급한 나머지 평생을 그 영적인 문제에 시달리다가 복음을 받게되면서 복음 앞에 결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직장안에 전도의 문이 열려지면서 그 뿐만 아니라 이 자매가 직장에 근무할 수 없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표가 되니까 이상하게 하나님이 정확하게 시간표를 맞추어서 또 한 제자를 드러낸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 전화가 와서 “목사님, 오늘 핵심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길래 연말이라 핵심이 없다고 하니까 “오늘 갈려고 했는데 안됐네요”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제가 요즘 말씀인도와 다락방인도를 받고 있냐고 물으니까 이 자매가 “제가 그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다.
한사람의 제자가 세워질 때 그 제자로 말미암아 다른 제자가 세워지고 그 제자로 말미암아 또다시 그 지역에 그 직장 속에 지속적인 복음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다 빼앗긴 현장. 어떤 면에서 이단 사상과 종교들이 현장을 다 장악하고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에 그 일이 맞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 부분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고 거기에 류목사님이 지난 메시지에거 말씀하시기를 불교에서는 33조를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서 다 일을 하고 월급을 주면서 일을 해나가고 통일교에서는 8조를 지원받아서 다 먹고 살고 사람을 채용해서 다 월급주고 하는데 기독교만 이러한 데서 제외되어 있다고 한다. 현장을 이미 다 뺴앗겨 버렸다는 것이다. 복음 가진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하길 원하신다. 이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회복이다.
네 번째로 문화를 복음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복음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의 회복이다. 지금의 문화가 어떤 문화인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문화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워지는 문화이다. 그리고 다른 힘의 역사로 세워지는 문화가 지금의 문화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창3장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니까 4장에 나오는 것처럼 종교에 빠지게 되고 6장에 나오는 것처럼 네피림 우상 문화에 빠져들게 되고 창11장에 나오는 것처럼 바벨탑 문화에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무언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문화에 빠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바로 신이다 하는 문화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러한 문화가 지금 우리 주변에 우리 현장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어떤 문화로? 복음의 문화로. 복음을 깨닫게 될 때 창1:27, 28이 회복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고 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통해서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땅에 충만케 되어지는 문화를 정복하는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참된 교회의 회복은 복음을 회복하는것이고 참된 교회회복은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고 참된 교회의 회복은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고 참된 교회회복은 복음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할 이유가 있다면 이것 때문이다. 부족하고 모자란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왜 우리를 축복하고 왜 우리의 후대를 축복하시고 왜 우리의 산업을 축복하시는가? 우리를 통해서 참된 교회를 회복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이 충만하매.
말씀을 맺는다. 복음회복이 무엇인가? 복음의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제자회복이 무엇인가? 제자공동체. 현장회복이 무엇인가? 전도와 선교공동체. 문화회복이 무엇인가? 렘넌트공동체. 렘넌트를 통해서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 사실의 언약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역사였고 초대교회 이후에 사라졌던 교회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이 일을 누가 이루시는가? 여기에 중심을 담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사9: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시라. 우리 인생을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구원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성공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가신다. 우리도 우리의 미래인 렘넌트도 하나님의 열심 속에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2006년 한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 가운데 아직까지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승리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어느 고등학생이 성적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가게 되었다. 근데 마침 담임선생님이 역사 담당하는 선생님이었다. 부모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과 하다가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께 물었다. “우리 아이 역사 성적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반문하기를 “아버님께서는 학교 다니실 때 역사공부를 어떻게 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역사는 늘 새롭게 보여지지만 되풀이되고 있다. 2006년에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새로운 축복을 확인하고 누리기도 했지만 2005년 과거의 모든 삶의 결과로 이루어진 삶이 2006년이 되었고 또 2007년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소원하지만 2007년도도 2006년까지의 삶이 어떠한 삶인가하는가 그것을 바탕으로 2007년이 세워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이 어제까지의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한 세기에 지난 과거의 모든 삶이 지금 세기의 사람들이 그 삶의 결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열심히 살아라 잘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이 우리 후대의 삶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름 있는 분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눈길 위를 함부로 걷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뒤에 따라오는 모든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길을 함부로 걸은 그 걸음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진다는 사실. 앞서간 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걸어가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도 그것이 이정표가 되어서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고 어제까지의 우리의 삶의 모든 결과가 오늘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에 받은 응답들을 확인해야 하고 2006년에 받은 응답 위에 2007년에 응답하실 부부들이 보여지게 되어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된 메시지가 있다. 본부에서 나온 메시지가 있다면 개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개혁은 잃어버린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인생개혁, 종교개혁, 문화개혁의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다시 말해서 잃어버린 인생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문화와 종교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2006년도 한해에 우리에게 계속 역사하셨던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oneness의 축복이다. 복음의 공동체, 제자공동체, 전도․선교공동체, 렘넌트 공동체의 축복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와 더불어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제목으로 2006년도를 시작했다. 출14:13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이 일을 위해서 다락방 회복과 훈련회복과 경제회복의 한해가 되기 위해서 계속 기도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경제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경제회복을 위한 네가지 기도제목을 주셨다. 그것이 교회건축을 위해서 십의일조, 선교를 위해서 십의일조, 교회의 주의 종들이 마음껏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십의일조, RUTC를 위해서 십의일조. 그래서 중요한 경제개혁에 중요한 축복된 언약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그리고 매주 강단을 통해서 주어진 언약이 있다면 렘넌트에 대한 언약이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은 메시지를 주어서 그 메시지를 성취시킴으로 응답하신다. 메시지를 성취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메시지를 주어서 그 메시지를 하나님이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6년을 시작하면서 받은 메시지, 그 자체가 응답이다. 다른 것이 응답이 아니라 우리에게 준 개혁과 oneness의 축복, 그리고 교회에서 주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 그 속에서 다락방회복과 훈련회복과 경제회복, 또 경제회복을 위해서 네가지 구체적으로 주신 것, 강단의 매시간 마다 주신 렘넌트의 언약, 그 메시지를 받은 것 자체가 응답이다.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앞으로 또한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인가를 계속해서 확인해가야 한다. 그래서 이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메시지로 주신 응답을 다시 정리하길 바란다. 물론 그 부분을 통해서 성취하는 것을 맛보고 또 이루어진 것을 체험도 했겠지만 그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방법이 있다면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주시는 것 그 자체가 응답 속에서 주신다. 그러면 그 부분을 두고 내게 어떻게 응답하셨고 2007년 한해에 응답하실 것인가를 보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2007년에 우리에게 새로운 응답으로 분명하게 확신있게 증거해주실 것이다.
오늘 성구영신 예배의 메시지가 나오겠지만 목사님이 2007년 한해 주제를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라는 제목을 주셨다. 수1:1-9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 우리의 모든 전 구석구석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모든 현장을 다 차지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현장을 2006년 받은 응답을 가지고 우리가 속한 모든 현장 구석구석을 누리고 정복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세가지 기도제목을 주셨다. 나 자신이 복음으로 살고 교회 안에 300지교회, 3000제자의 현장조직을 통해서 지역을 살리고, RUTC운동을 통해서 후대가 살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제목을 주셨다. 받은 응답들을 메시지 속에서 확인하고 그 메시지 속에서 내년 한해 어떻게 그 응답을 이루어갈 것인가를 보면서 오늘 중요한 응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006년에 출1장부터 오늘 출40장의 마지막을 잃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다면 성막에 관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고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림으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셨다. 그 중심된 장소가 성막이다. 성막과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성막을 찾을 필요도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성막을 만들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다. 언약궤를 찾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언약궤를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언약궤가 일본에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신사모양이 언약궤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 그러면서 언약궤가 일본에 있는데 그 언약궤를 찾아야한다고 모든 전력을 거기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그 언약궤를 없애셨고 성막을 없애버리셨다. 그것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막과 성전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성막과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속에서 피를 흘리게 하셨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그 성막을 통해서 열어가셨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는 성막, 성전을 통해서 양의 피를 뿌리고 하나님을 만났으며 성막을 따라 가게 되었다. 본문에 이 성막이 완성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본문의 34절을 보면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절에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으며’ 성막을 완성 지으니까 그 속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적용시켜본다면 왕, 제사장, 선지자, 그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것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단의 세력을 꺾은 왕,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한 제사장,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길을 여신 선지자, 참왕이요 참제사장이요 참선지자인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누리는가 여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로 위기에 시대에 진정한 참된 교회운동을 회복하게 될 때에 여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여 진다. 이 시간에는 참된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가 다락방 훈련을 받고 있는데 다락방 운동이라고 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락방 운동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적인 참 교회의 회복운동이 바로 다락방이다. 올바른 교회운동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분들이 전도, 교회가 어렵다고 한다. 또 사실상 증명되고 있고 사실은 전도가 되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옆에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그래서 교회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교인의 수는 줄어가고 있다. 현장에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당장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답을 찾아서 교회를 찾아오지만 교회조차 와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는데 자기도 교회를 가봤다고 했다. 교회를 가서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교회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그래도 그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하니까 여전도회 회장도 하고 모든 것들을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 영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모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사모님이 그것은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것 같으니까 점쟁이를 찾아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지금 교회의 실상이다. 지금 당장 옆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영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문제조차도 모르고 있고 그들에게 진정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교회를 오게 되는데 교회조차도 답을 주지 못해서 방황하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진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이 한해 통계상으로 드러났지만 천주교나 불교는 급상승하게 부흥을 했지만 기독교는 유교수준으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일년에 작은 교회가 3000개씩 문을 닫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지금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 있는 교회가 과연 성경에 있는 교회인가?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고 이 교회 속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부분을 두고 기도해야할 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응답받을 제목들이 나오게 되어있다. 누가 뭐라해도 지금 교회는 진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교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없어서 흔들리고 있다. 왜 확신이 없는가? 복음을 강조해야할 교회가 복음을 강조하지 않아서 흔들리고 있다. 복음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복음 아닌 다른 것을 누릴 수 있다. 다른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 이외의 것을 강조하는 것을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결국은 교회가 흔들리게 되어있다. 처음에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을 강조하지 않고 다른 것을 강조하고 자꾸 이야기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가 복음과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고 결국엔 흔들리게 된다.
또 왜 교회가 흔들리고 있는가? 빨리 벗어나야할 것이 있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도 모르게 뿌리내려진 것이 있어서 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는 것이다. 교회와 개인을 두고 기도해야할 제목이다. 인본주의, 신비주의, 율법주의이다. 인본주의란 불신앙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염려들을 응용하고 그 염려를 커버한 것이 인본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염려들을 다른 것으로 커버하는 것이 인본주의이다. 이것이 불신앙 중의 불신앙이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야 한다. 이것이 있는 동안에는 참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진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하나님의 축복을 자꾸만 육신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충만함이 육신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의 정상적인 것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자꾸 육신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신비주의이다. 이것이 우리 속에 뿌리내려지면 본질적으로 복음의 능력에 대해서 안믿게 되어진다. 그 다음에 우리 안에 뿌리내려져 있는 율법주의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경건을 포장해서 나오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바리새인들은 생명이 없었다. 성경을 모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경건으로 대체를 해서 포장해서 나왔다. 그래서 결국은 율법주의에 빠져서 철저하게 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가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 개인 안에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진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없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에 흔들리는 이유 또 확신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 다니면서도 갈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전부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 갈등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가? 그 갈등은 내게 있는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 받지 못할 때에 그 상처들이 얽혀서 갈등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놓고도 그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진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흔들리는 확신없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참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이러한 교회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교회회복이 무엇인가? 네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본분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있다면 위기시대를 살리는 온전한 참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인데 참 성경적인 교회회복은 네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네 번째가 문화를 복음의 문화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의 회복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다락방을 허락하신 것이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축복 가운데 인도하셨다.
그 첫 번째가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복음회복은 다른 말로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종교단체나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복음, 그런데 성경 전체에서 설명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무슨 말인가? 복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다는 것이다. 교회가 복음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육신적으로 빠져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참된 회복이 되어지는 것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복음이 메시지로 드러났고 이 복음의 메시지를 회복하는 것이 교회회복의 첫 번째 중요한 요인이다. 교회가 복음을 놓치니까 점점 육신의 것을 추구하고 따라가고 있다. 복음, 영적인 메시지가 없어서 영적인 문제가 왔고 지금도 사실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도 알지 못하고 당하고 있다. 육신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영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또한 육신의 문제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니까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없고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이 점점 무기력화 되어간다는 것이다.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흑암권세에 당하게 되어있고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참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장에 참된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교회의 회복이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복을 받고 안받고가 아니다. 안될 수가 없는 것이다. 참된 교회 회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복음의 회복인데, 그것은 다른 말로 복음의 메시지를 교회가 회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 회복은 제자회복이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무리도 있었고 제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중요한 메시지들를 무리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다. 참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들이 제자가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성도요 그냥 신자로 다니지 제자로서의 축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내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현장을 살리는 길이 있다면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 중심에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메시지로 현장을 보는 사람이 제자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신앙에 성공하기를 원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에 승리하는가? 내가 제제가 되어지고 나로 말미암아 현장에 제자가 세워질 때 그 인생은 축복받는 인생이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어진다.
전도합숙을 담당하시는 이병무 목사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이목사님께서 처음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가 성장을 하고 많은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훌륭한 장로님들이 세워지고 성도들도 많고 경제적인 축복도 많이 받았고 성도들 개개인의 산업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하셔서 축복도 받았다. 그런데 이목사님이 이 복음 메시지를 듣고 나서 이 복음운동, 말씀운동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하고 교회 앞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 전까지는 그렇게 충성, 헌신, 봉사하던 장로님들이, 진짜 목사님에게 잘해드리고 모든 것을 내어놓던 장로님들이 하나같이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목사님이 본인이 개척한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켰던 교회를, 그리고 그 교회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목회가 되어지고 안일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해야겠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를 그대로 넘기고 그냥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셨는가하면 정말로 제자들로 말미암아 교회를 축복하시는데 지금 오히려 어떤 면에서 광주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로, 구역 한사람 한사람이 제자들로 세워져서 목사님의 목회사역을 위해서 목이라고 내어놓을 수 있는 제자들로 세워진 것을 간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훌륭하고 잘해주시던 중직자분들이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하겠다고 하니까 전부 돌아섰다고 한다.
진짜 우리가 성공하는 길이 있다면 신앙생활에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제자가 되어야하고 우리를 통해서 제자를 세우는것만큼 축복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들이 되어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인생을 신앙의 결산을 할 떄 헛된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는데 제자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이요, 우리 개인에게 주신 축복이다. 제자 한사람이 세워지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직장과 모든 삶이 변하게 되어있다.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남기셨다. 좀 더 나아가서 70인을 남기셨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120문도를 남기셨다. 그런데 그들로 말미암아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의 생전에 바울을 따르던 제자들이 30여명이 있다. 그 30여명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죽고난 이후에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복음화되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제자가 되어지고 나로 말미암아 제자가 세우질때 그 제자로 말미암아 현장이 변화되어지고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제 주변에 어떤 한 자매가 있는데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늦게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귀한 비밀을 가지고 직장안에서 계속 기도를 했다. 근데 그 한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직자 안의 상사가 복음을 받게 되고 심지어 그 직장의 사장이 영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가 너무 갈급한 나머지 평생을 그 영적인 문제에 시달리다가 복음을 받게되면서 복음 앞에 결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직장안에 전도의 문이 열려지면서 그 뿐만 아니라 이 자매가 직장에 근무할 수 없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표가 되니까 이상하게 하나님이 정확하게 시간표를 맞추어서 또 한 제자를 드러낸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 전화가 와서 “목사님, 오늘 핵심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길래 연말이라 핵심이 없다고 하니까 “오늘 갈려고 했는데 안됐네요”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제가 요즘 말씀인도와 다락방인도를 받고 있냐고 물으니까 이 자매가 “제가 그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다.
한사람의 제자가 세워질 때 그 제자로 말미암아 다른 제자가 세워지고 그 제자로 말미암아 또다시 그 지역에 그 직장 속에 지속적인 복음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다 빼앗긴 현장. 어떤 면에서 이단 사상과 종교들이 현장을 다 장악하고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에 그 일이 맞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 부분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고 거기에 류목사님이 지난 메시지에거 말씀하시기를 불교에서는 33조를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서 다 일을 하고 월급을 주면서 일을 해나가고 통일교에서는 8조를 지원받아서 다 먹고 살고 사람을 채용해서 다 월급주고 하는데 기독교만 이러한 데서 제외되어 있다고 한다. 현장을 이미 다 뺴앗겨 버렸다는 것이다. 복음 가진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하길 원하신다. 이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회복이다.
네 번째로 문화를 복음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복음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참된 교회의 회복이다. 지금의 문화가 어떤 문화인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문화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워지는 문화이다. 그리고 다른 힘의 역사로 세워지는 문화가 지금의 문화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창3장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니까 4장에 나오는 것처럼 종교에 빠지게 되고 6장에 나오는 것처럼 네피림 우상 문화에 빠져들게 되고 창11장에 나오는 것처럼 바벨탑 문화에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무언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문화에 빠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바로 신이다 하는 문화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러한 문화가 지금 우리 주변에 우리 현장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어떤 문화로? 복음의 문화로. 복음을 깨닫게 될 때 창1:27, 28이 회복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고 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통해서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땅에 충만케 되어지는 문화를 정복하는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참된 교회의 회복은 복음을 회복하는것이고 참된 교회회복은 제자를 회복하는 것이고 참된 교회의 회복은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고 참된 교회회복은 복음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할 이유가 있다면 이것 때문이다. 부족하고 모자란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왜 우리를 축복하고 왜 우리의 후대를 축복하시고 왜 우리의 산업을 축복하시는가? 우리를 통해서 참된 교회를 회복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이 충만하매.
말씀을 맺는다. 복음회복이 무엇인가? 복음의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제자회복이 무엇인가? 제자공동체. 현장회복이 무엇인가? 전도와 선교공동체. 문화회복이 무엇인가? 렘넌트공동체. 렘넌트를 통해서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 사실의 언약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역사였고 초대교회 이후에 사라졌던 교회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이 일을 누가 이루시는가? 여기에 중심을 담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사9: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시라. 우리 인생을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구원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성공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가신다. 우리도 우리의 미래인 렘넌트도 하나님의 열심 속에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2006년 한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 가운데 아직까지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승리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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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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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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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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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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