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양식은
2007-02-1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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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금요일 전도학교를 마치고 토요일날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이 “목사님 세계 대학 수련회를 다녀와서 기도를 열심히 하셨습니까? 목소리가 왜 그렇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했다. 기도 열심히 하고 돌아와서 목소리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감기가 걸려서 불편한 목소리로 여러분 앞에 대하게 되었는데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이 신령한 복으로 복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오늘도 합당한 은혜의 역사가 말씀을 통해 나타나실 줄 믿는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축복된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주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마음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계획 붙잡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상관없이 주의 성령께서 특별히 말씀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한주간도 현장에서 승리할 메시지로 붙잡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참된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혹여나 한주간 현장에 살면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상처진 자가 있다면 오늘 말씀 가운데 치유 받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의 축복이 회복되어지는 축복된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응답들이 있다.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도가 되어지는 것이다. 응답을 발견해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미래가 나오게 되어있다. 미래가 나와야 그 속에서 참된 감사가 회복되게 되어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에서 감사했다. 감옥에 들어간 일들이 어떻게 감사한 일이 되겠는가. 괴로운 일이다. 성경에 보면 착고에 발이 묶였다고 말하고 있다. 착고에 묶였다는 말은 움직일 수 없는 그런 환경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감옥에서 감사했다.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감사했다. 왜 그런가?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법정 앞에 서야하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감사를 한 사실을 보게 되어진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응답을 정확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나오는 렘넌트 7명 전부다 하나같이 문제 속에서 정확한 응답을 봤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기도가 있다면 주신 응답들을 발견하는 기도이다. 그 응답들이 발견되어져야 응답이 나오고 그 미래 속에서 참된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1-12절에「11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12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여기에 보면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광야 길을 걸어오는 동안에 주신 하나님의 응답과 가나안 땅에서의 응답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나안땅에서 주신 응답을 발견해야 오늘 우리의 양식이 무엇인가를 분명한 답을 내리게 되어있다.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크게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오면서 유월절을 행했다. 오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행한 것이 유월절에 대한 부분이고 그리고 그 유월절을 행할 때 그 땅의 소산으로 말미암아 유월절을 행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하는 축복된 약속을 붙잡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먼저 우리에게 주신 유월절의 축복을 알기 위해서는 유월절의 배경을 먼저 설명을 드리겠다. 유월절은 바로왕, 즉 사단의 밑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해답으로 주신 것이다. 출12:21-28에 유월절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다.「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4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전혀 그 어떤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도 재앙이 내리는 그 사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될 때 거기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다느이 종노릇하던, 바로왕의 노예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거기에서 해방되었는가? 거기에 대한 유일한 답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거기에서 완전 해방되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답은 오직 한가지이다.
지구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 참 행복이 있다. 지식을 가짐으로 행복하다, 많은 것을 소유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현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으면 참된 물질과 환경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창1:27-28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과 평안과 안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물질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편리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지식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지식 때문에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들은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성공하기도 출세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공했다고 해서, 출세했다고 해서,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참된 행복은 있는 것이 아님을 현장을 통해서 보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이 있도록 되어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면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을 떠나 아담의 족보아래 태어나게 되고 아담의 족보 아래 태어난 인간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가 아닌,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야,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구약에서 예언하셨다. 그것이 바로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유월절 어린양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린 사건이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예표를 유월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바로 길을 열어주셨는데 창3:15이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드릴 것을 말씀하셨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창3:21을 보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피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실을 히브리서에 말씀하고 계신다. 히9:12에「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그렇게 말씀하시면서 9:22에「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말씀하셨다. 유월절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해결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피를 바르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이라는 것은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애굽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출애굽된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사실을 후대에게, 자손들에게 물려준 것을 보게 된다. 이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월절을 말씀하실 때마다 결국은 이 유월절 사건을 후대에게 전하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교훈하도록 하는 것이 유월절의 절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되면 밤중에 한참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자면서 깨어난 아이들이 불평과 짜증을 토로할 때 그때에 부모들이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한다. 전혀 빠져나오지 못했던 애굽에서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잡아 문설주에 바르고 그 어린양의 구운 고기를 먹으면서 지팡이를 잡고 허리에 허리띠를 띠고 한 밤중에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사실적으로 교육하게 되어지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을 행사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든 절기를 가지고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교육을 시키는 장으로 명절을 이용한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단순히 그들만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지킨 것이 아니라 그날을 자녀들에게 언약을 전달하고 생명의 축복의 비밀의 역사를 전달하는 계기가, 도구가 되어지는 것이 바로 명절을 이용해서 후대들에게 가르친 사실을 보게 된다.
이번 주간에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고하는 구정 명절이 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구정 명절을 통해서 생명에 대한 부분, 하나님의 축복을 가르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할 것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제사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기도하면서 자녀들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드리는 것을 알리고 제사를 두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게 하고 자녀들이 명절 때가 되면 그들이 기도를 한다. 이번 명절은 제사를 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교육이다. 거기에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그 교육이 엄청난 언약, 생명에 대한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진다. 이번 명절을 기회를 통해서 사실적인 언약을 전달하는, 생명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축복된 기회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유월절 절기를 통해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것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는가, 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나야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노예 되었다. 그래서 그 노예에서 해방되어지고 그 노예에서 빠져나온 것이 바로 유월절 절기이다. 생명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지 못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이 생명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지 못해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해방된 것이 유월절 절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원의 축복, 그 속에 모든 것들이 다 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축복,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해서 지금도 세상 앞에, 명예 앞에, 물질 앞에 노예 되어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연이어서 매스컴 상에 유명 연예인들이 목을 매서 자살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내용을 보니까 하나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표시를 해놓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참된 교회가 영적인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현장의 사람들이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출세에 노예 되어있고, 명예에 노예 되어있고, 성공에 노예 되어있는 부분을 보게 된다. 결국 그것을 쫓아가다가 거기에 빠져서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끊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 안에 주신 이 생명의 풍성한 축복의 비밀을 바르게 누리지 못해서 그렇다.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을 요20:31에 기록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성경을 기록했는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고 있고,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주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 창1:26-28에 보면 우리 가 우리의 모양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천지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창2:7에 보면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는 육체의 생명이 있는 것이고 영혼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 영혼의 생명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사실. 우리가 가치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물들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만큼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신다. 그래서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다.
그런데 창3:1-6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죄와 허물 속에 빠지게 되었고 엡2:1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다. 죄와 허물 속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로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의 손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손에 장악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였더니. 롬3:23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그 죄의 값으로 롬6:23에 보면 사망이, 죽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는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떠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바로 이어서 창3:15에 언약을 주셨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관계를 회복하는 축복의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여자의 후손. 다른 일반 씨를 통해서 나오는 자녀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일반적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온 그런 아담의 족보에서 나오는 아이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같은 말이다. 그러면서 처녀가 잉태하여 말씀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성령으로 잉태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7:14에 보면「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요19:30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데 그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래서 요14:16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17절에 보면 ‘너희 속에 거하심이라’ 18절에 보면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이 땅의 보혜사 다른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조건을 이루셨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전에는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우리 속에 내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이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사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에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11:25-26에 보면 죽은 나사로 앞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 창1:26-28에, 그리고 창2:7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이, 생령이 함께 하는 이 생명의 역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이 속에서 참된 자유함과 해방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는 그 어떤 것도 망하게 할 수 없다. 반드시 생명가진 자는 살아남게 되어있다.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살리게 되어있다. 가정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현장에서 낙심하지 말고 또 절망하지 말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분명히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다. 살아남아서 또한 살리는 축복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이다. 그래서 롬8:1-39에 중요한 생명을 가진 자에게 주신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즉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했다. 참된 생명이,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그러면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생명관계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롬8:31-39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기어코 살아남게 될 것이고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살리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생명이 언약, 생명의 축복이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우리를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귀중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수5:12 마지막에 ‘그 해에 가나안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그 땅의 소산을 먹었다는 말이다. 그 땅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간단한 것 같지만 많은 부분을 의미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받았다. 그 응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받지 못하니까 광야 길을 40년 동안 늘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을 쫓고 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땅의 열매를 먹어야 되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이 누려져야하고, 그 땅에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된 열매를 먹어야 되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결국은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떠나온 세상, 그 세상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고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그 땅은 원망과 불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 그 땅의 소산을 통해 유월절을 지키게 되고 그 땅의 소산을 먹었더라 말씀했다. 이 땅에서는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몸부림해서 거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다. 잘 알아들어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하고 수고한대로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땅의 열매를 내가 먹을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내가 열심히 한대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축복 가운데 승리하게 되어있고 응답을 누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53:5에 보면「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시는데 우리가 평안을 누린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이다. 채찍 맞은 것은 예수님인데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축복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주신 영적인 축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축복,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양식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왔다면 그 가나안 땅의 그 소산을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 안에 있는 그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양식이다.
가나안땅에 있는 축복은 바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이 세계복음화는 군사력으로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군사력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뛰어난 전략에 승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에서의 영적인 싸움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복음화의 언약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영적인 싸움의 주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다고 하는 것이 종교이다. 우리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나가는 중에 누가 싸우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신다. 그래서 영적인 싸움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14절에 보면 여호수아 앞에 군대의 장관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4절에「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바로 가나안의 싸움, 세계복음화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다. 내가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호와의 군대의 장관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보장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계복음화가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 세계복음화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누구를 동원하시는가?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여호와의 군대 장관, 다시 말해서 하늘의 천군과 천사를 동원시키신다. 그래서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나가는 걸음 속에 중요한 일을 항상 행할 때마다 성도들을 돕는 하늘군대가 동원됨을 보게 된다. 그와 더불어 성도들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먼저 앞서서 주의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언제든지 동일하게 역사하는 현장의 역사에 바로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시103:20에 보면「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말씀을 이루는 자가 천군과 천사이다. 그 말씀을 듣는다고 했다. 21절에 보면「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여호와를 봉사하면서 그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에 쓰임 받는 천군의 역사를 말씀하면서 22절에 보면「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여호와께서 다스리는 모든 곳에 천사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일하는 곳에 주의 천군과 천사들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혹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가? 그 문제들을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해서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고질적인 문제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싸움은 우리가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겨놓은 싸움이다. 승리의 깃발을 꽂는 싸움이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다. 우리는 언약만, 그리스도만 붙잡고 나가면 되게 되어있다.
말씀을 맺는다. 영적인 싸움을 싸울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배경이 움직여지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된 배경이다. 그래서 이 한 주간에 여러분의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에 서게 될 것이다.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확인하면서 더욱더 깊이 할례와 유월절을 지켜라하신 것처럼 언약 속에 깊이 들어감으로 언약 안에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체험하는 한주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금요일 전도학교를 마치고 토요일날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이 “목사님 세계 대학 수련회를 다녀와서 기도를 열심히 하셨습니까? 목소리가 왜 그렇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했다. 기도 열심히 하고 돌아와서 목소리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감기가 걸려서 불편한 목소리로 여러분 앞에 대하게 되었는데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이 신령한 복으로 복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오늘도 합당한 은혜의 역사가 말씀을 통해 나타나실 줄 믿는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축복된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주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마음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계획 붙잡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상관없이 주의 성령께서 특별히 말씀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한주간도 현장에서 승리할 메시지로 붙잡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참된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혹여나 한주간 현장에 살면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상처진 자가 있다면 오늘 말씀 가운데 치유 받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의 축복이 회복되어지는 축복된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응답들이 있다.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도가 되어지는 것이다. 응답을 발견해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미래가 나오게 되어있다. 미래가 나와야 그 속에서 참된 감사가 회복되게 되어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에서 감사했다. 감옥에 들어간 일들이 어떻게 감사한 일이 되겠는가. 괴로운 일이다. 성경에 보면 착고에 발이 묶였다고 말하고 있다. 착고에 묶였다는 말은 움직일 수 없는 그런 환경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감옥에서 감사했다.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감사했다. 왜 그런가?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법정 앞에 서야하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감사를 한 사실을 보게 되어진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응답을 정확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나오는 렘넌트 7명 전부다 하나같이 문제 속에서 정확한 응답을 봤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기도가 있다면 주신 응답들을 발견하는 기도이다. 그 응답들이 발견되어져야 응답이 나오고 그 미래 속에서 참된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1-12절에「11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12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여기에 보면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광야 길을 걸어오는 동안에 주신 하나님의 응답과 가나안 땅에서의 응답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나안땅에서 주신 응답을 발견해야 오늘 우리의 양식이 무엇인가를 분명한 답을 내리게 되어있다.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크게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오면서 유월절을 행했다. 오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행한 것이 유월절에 대한 부분이고 그리고 그 유월절을 행할 때 그 땅의 소산으로 말미암아 유월절을 행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하는 축복된 약속을 붙잡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먼저 우리에게 주신 유월절의 축복을 알기 위해서는 유월절의 배경을 먼저 설명을 드리겠다. 유월절은 바로왕, 즉 사단의 밑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해답으로 주신 것이다. 출12:21-28에 유월절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다.「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4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전혀 그 어떤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도 재앙이 내리는 그 사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될 때 거기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다느이 종노릇하던, 바로왕의 노예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거기에서 해방되었는가? 거기에 대한 유일한 답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거기에서 완전 해방되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답은 오직 한가지이다.
지구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 참 행복이 있다. 지식을 가짐으로 행복하다, 많은 것을 소유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현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으면 참된 물질과 환경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창1:27-28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과 평안과 안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물질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편리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지식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지식 때문에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들은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성공하기도 출세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공했다고 해서, 출세했다고 해서,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참된 행복은 있는 것이 아님을 현장을 통해서 보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행복이 있도록 되어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면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을 떠나 아담의 족보아래 태어나게 되고 아담의 족보 아래 태어난 인간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가 아닌,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야,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구약에서 예언하셨다. 그것이 바로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유월절 어린양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린 사건이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예표를 유월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바로 길을 열어주셨는데 창3:15이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드릴 것을 말씀하셨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창3:21을 보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피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실을 히브리서에 말씀하고 계신다. 히9:12에「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그렇게 말씀하시면서 9:22에「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말씀하셨다. 유월절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해결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피를 바르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이라는 것은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애굽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출애굽된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사실을 후대에게, 자손들에게 물려준 것을 보게 된다. 이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월절을 말씀하실 때마다 결국은 이 유월절 사건을 후대에게 전하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교훈하도록 하는 것이 유월절의 절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되면 밤중에 한참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자면서 깨어난 아이들이 불평과 짜증을 토로할 때 그때에 부모들이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한다. 전혀 빠져나오지 못했던 애굽에서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잡아 문설주에 바르고 그 어린양의 구운 고기를 먹으면서 지팡이를 잡고 허리에 허리띠를 띠고 한 밤중에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사실적으로 교육하게 되어지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을 행사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든 절기를 가지고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교육을 시키는 장으로 명절을 이용한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단순히 그들만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지킨 것이 아니라 그날을 자녀들에게 언약을 전달하고 생명의 축복의 비밀의 역사를 전달하는 계기가, 도구가 되어지는 것이 바로 명절을 이용해서 후대들에게 가르친 사실을 보게 된다.
이번 주간에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고하는 구정 명절이 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구정 명절을 통해서 생명에 대한 부분, 하나님의 축복을 가르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할 것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제사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기도하면서 자녀들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드리는 것을 알리고 제사를 두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게 하고 자녀들이 명절 때가 되면 그들이 기도를 한다. 이번 명절은 제사를 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교육이다. 거기에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그 교육이 엄청난 언약, 생명에 대한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진다. 이번 명절을 기회를 통해서 사실적인 언약을 전달하는, 생명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축복된 기회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유월절 절기를 통해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것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는가, 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나야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노예 되었다. 그래서 그 노예에서 해방되어지고 그 노예에서 빠져나온 것이 바로 유월절 절기이다. 생명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지 못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이 생명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지 못해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해방된 것이 유월절 절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원의 축복, 그 속에 모든 것들이 다 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축복,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해서 지금도 세상 앞에, 명예 앞에, 물질 앞에 노예 되어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연이어서 매스컴 상에 유명 연예인들이 목을 매서 자살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내용을 보니까 하나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표시를 해놓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참된 교회가 영적인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현장의 사람들이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출세에 노예 되어있고, 명예에 노예 되어있고, 성공에 노예 되어있는 부분을 보게 된다. 결국 그것을 쫓아가다가 거기에 빠져서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끊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 안에 주신 이 생명의 풍성한 축복의 비밀을 바르게 누리지 못해서 그렇다.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을 요20:31에 기록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성경을 기록했는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고 있고,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주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 창1:26-28에 보면 우리 가 우리의 모양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천지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창2:7에 보면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는 육체의 생명이 있는 것이고 영혼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 영혼의 생명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사실. 우리가 가치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물들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만큼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신다. 그래서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다.
그런데 창3:1-6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죄와 허물 속에 빠지게 되었고 엡2:1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다. 죄와 허물 속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로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의 손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손에 장악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였더니. 롬3:23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그 죄의 값으로 롬6:23에 보면 사망이, 죽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는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떠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바로 이어서 창3:15에 언약을 주셨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관계를 회복하는 축복의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여자의 후손. 다른 일반 씨를 통해서 나오는 자녀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일반적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온 그런 아담의 족보에서 나오는 아이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같은 말이다. 그러면서 처녀가 잉태하여 말씀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성령으로 잉태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7:14에 보면「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요19:30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데 그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래서 요14:16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17절에 보면 ‘너희 속에 거하심이라’ 18절에 보면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이 땅의 보혜사 다른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조건을 이루셨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전에는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우리 속에 내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이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사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에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11:25-26에 보면 죽은 나사로 앞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 창1:26-28에, 그리고 창2:7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이, 생령이 함께 하는 이 생명의 역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이 속에서 참된 자유함과 해방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는 그 어떤 것도 망하게 할 수 없다. 반드시 생명가진 자는 살아남게 되어있다.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살리게 되어있다. 가정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현장에서 낙심하지 말고 또 절망하지 말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분명히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다. 살아남아서 또한 살리는 축복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이다. 그래서 롬8:1-39에 중요한 생명을 가진 자에게 주신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즉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했다. 참된 생명이,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그러면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생명관계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롬8:31-39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기어코 살아남게 될 것이고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살리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생명이 언약, 생명의 축복이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우리를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귀중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수5:12 마지막에 ‘그 해에 가나안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그 땅의 소산을 먹었다는 말이다. 그 땅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간단한 것 같지만 많은 부분을 의미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받았다. 그 응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받지 못하니까 광야 길을 40년 동안 늘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을 쫓고 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땅의 열매를 먹어야 되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이 누려져야하고, 그 땅에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된 열매를 먹어야 되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결국은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떠나온 세상, 그 세상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고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그 땅은 원망과 불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 그 땅의 소산을 통해 유월절을 지키게 되고 그 땅의 소산을 먹었더라 말씀했다. 이 땅에서는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몸부림해서 거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다. 잘 알아들어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하고 수고한대로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땅의 열매를 내가 먹을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내가 열심히 한대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축복 가운데 승리하게 되어있고 응답을 누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53:5에 보면「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시는데 우리가 평안을 누린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이다. 채찍 맞은 것은 예수님인데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축복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주신 영적인 축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축복,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양식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왔다면 그 가나안 땅의 그 소산을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 안에 있는 그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양식이다.
가나안땅에 있는 축복은 바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이 세계복음화는 군사력으로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군사력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뛰어난 전략에 승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에서의 영적인 싸움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복음화의 언약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영적인 싸움의 주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다고 하는 것이 종교이다. 우리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나가는 중에 누가 싸우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신다. 그래서 영적인 싸움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14절에 보면 여호수아 앞에 군대의 장관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4절에「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바로 가나안의 싸움, 세계복음화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다. 내가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호와의 군대의 장관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보장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계복음화가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 세계복음화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누구를 동원하시는가?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여호와의 군대 장관, 다시 말해서 하늘의 천군과 천사를 동원시키신다. 그래서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나가는 걸음 속에 중요한 일을 항상 행할 때마다 성도들을 돕는 하늘군대가 동원됨을 보게 된다. 그와 더불어 성도들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먼저 앞서서 주의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언제든지 동일하게 역사하는 현장의 역사에 바로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시103:20에 보면「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말씀을 이루는 자가 천군과 천사이다. 그 말씀을 듣는다고 했다. 21절에 보면「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여호와를 봉사하면서 그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에 쓰임 받는 천군의 역사를 말씀하면서 22절에 보면「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여호와께서 다스리는 모든 곳에 천사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일하는 곳에 주의 천군과 천사들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혹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가? 그 문제들을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해서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고질적인 문제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싸움은 우리가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겨놓은 싸움이다. 승리의 깃발을 꽂는 싸움이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다. 우리는 언약만, 그리스도만 붙잡고 나가면 되게 되어있다.
말씀을 맺는다. 영적인 싸움을 싸울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배경이 움직여지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된 배경이다. 그래서 이 한 주간에 여러분의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에 서게 될 것이다.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확인하면서 더욱더 깊이 할례와 유월절을 지켜라하신 것처럼 언약 속에 깊이 들어감으로 언약 안에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체험하는 한주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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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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