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2007-03-11 00:00:00
관리자
조회수   34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최고로 복음을 누리는 날이 되십시오.
오늘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인도를 받고자 한다.
오늘은 광고가 나갔지만 총신주일이다. 매년마다 3월 둘째 주를 총신주일로 정하고 총회 산하에 있는
총회신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늘 한번 단순히 헌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얼마만큼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담겨져야 되는가 하는 부분을 생각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도 구좌를 넣어서 매달마다 총회신학교를 위해서 헌금하는데 참여하고 있지만 아마 뒤편에 보면 DRB 캠페인이라고 유인물이 있다. 여기에 보면 다락방 렘넌트 엘리트 뱅크라고 해서 매월마다 한 구좌에 1만원이다. 몇 구좌씩 넣어서 전 세계에 있는 엘리트들을 전도신학을 통해서 정립하는 일에 쓰임 받고자 이런 일에 함께 인도를 받고 있다. 기도하시면서 오늘 헌금하시고 기도하면서 이 일에 참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가정과 삶 속에 나타날 것이다. 총회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엘리트 렘넌트들, 또 전 세계의 엘리트들이 전도신학을 정립하는 일에 배울 수 있도록 그렇게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런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류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전도만큼은 사실 우리 총회신학교가 하버드대로 일컬을 수 있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세계에 나가있는 모든 유학생들이 다시 이 전도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우리 총회신학교에 역유학을 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물질이 많다 적다를 떠나서 마음과 중심을 담고 기도를 하고 이 일에 헌금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손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쓰임 받는 그 자체가 축복받는 일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과 재앙의 역사가 그냥 단순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교회가 타락했고 교회가 타락한 그 중심에 그 중심의 지도자들이 복음을 가지지 않아서 교회가 타락을 했다, 그리고 교회가 타락한 시대마다 하나님은 교회사에, 또 세계 역사 속에 전쟁과 재난, 재앙의 역사를 일으켜서 새롭게 시작하신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을 복음으로 전도와 선교로 현장을 아는 일꾼으로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한 시대를 살리는 일이고 우리가 여기에 씀임을 받는다는 것은 모든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다. 마6:33에 보면「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말씀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셨고 또 무엇 때문에 축복하실 것인가에 대한 이유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 핵심에서 히스기야왕에 대한 부분이 나왔는데 히스기야왕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가. 감히 다윗 왕과 같은 엄청난 축복된 역사에 쓰임 받게 된 사람이 히스기야왕이다. 모세의 놋뱀을 제하고 모든 우상, 주상을 깨뜨려 버리고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쓰임 받게 된 사람 중의 한사람이 히스기야왕이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축복을 주신 이유를 히스기야왕이 알지 못하니까 결국은 실수, 실패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자기 집에 있는 모든 내탕고를 다 보여주고 그 결과로 앗수르 군사들이 쳐들어와서 다 빼앗기게 된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왜 우리를 축복하셨는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실 것인가? 그 이유를 알 때 실패하지 아니하고 실수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 후대, 렘넌트들을 바른 복음 안에 전도와 선교, 현장을 아는 일꾼으로 세워놓기 위한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삼상3:19에 보면「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사무엘의 하는 말이 다 성취되었다는 말이다. 사무엘 같은 지도자 한사람이 세워지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살아났다. 삼하7장에 보면 미스바 회개 운동을 통해서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을 사무엘이 감당을 했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전쟁이 없었더라’했다. 그 시대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윗과 같은 엄청난 일꾼을 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옳은 종 한사람이 나오니까 이런 엄청난 결과들이 나타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왕상19:1-20에 보면 엘리야같은 선지자 한사람이 나오니까 그 시대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을 꺾어버리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와 더불어 그 엘리야로 말미암아 찾아진 인물이 누구인가? 엘리사이다. 왕하2-6장에 보면 엘리사가 세워짐에 따라 아람나라 왕이 쳐들어오지를 못했고 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왕조차도 엘리사 선지자에게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말리이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 엘리사 선지자에게 묻게 되어지는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였던 사실을 보게 되어진다. 이것보다 더 축복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는 신학생을 올바로 키우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딤후2:1-7에 보면 바울이 올바른 제자 한사람을 세웠는데 그 제자가 바로 디모데라는 일꾼이다. 성경에 세월을 거쳐 오면서 올바른 주의 종을 만들어 낸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볼수록 확인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참된 복음을 알고 현장을 아는 올바른 일꾼을 세우는 일에 우리를 세우셨다. 세상적으로 볼 때, 세상적으로 앞서가고 눈이 열리는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투자를 하고 사람에 대해서 투자를 하고 후대에 대해서 투자를 한다. 그렇다면 하물며 복음의 가치를 알고 있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고 후대를 준비하고 교육에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복음의 가치를 알면 알수록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이 부분들이 분명히 깨달아지게 되어있고 우리 인생의 가장 축복된 일이 무엇인가가 복음의 가치를 알아갈수록 깨달아지게 되어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이 복음의 역사를 계속 전달하기 위해서는 바른 후대들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결과적으로 나오는 답이 후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보면서 우리 후대들을 일으켜 세워나갈 것이고 우리의 일꾼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일꾼, 후대들을 세우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오늘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어떤 일꾼을 세워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꾼이 되어야할 것인가? 이런 부분을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32절에 보면「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영원히 잊어버리지 말라고 돌에 기록하였다. 우리 후대들을 어떤 일꾼을 세우고 어떤 것을 전달하고 우리가 어떤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그러면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에발산에서 단을 쌓았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에서 승리하고 나서 에발산에서 단을 쌓고 화목제와 번제를 드렸다고 했다. 그 에발산에서의 단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 에발산에서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선포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어떤 후대를 세워야 할 것인가? 우리가 어떤 일꾼으로 쓰임 받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이 축복의 길이 무엇이고 멸망의 길이 무엇인가. 그 에발산의 단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부분을 통해서 기도제목을 붙잡길 바란다.
먼저 오늘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아이성을 다시 정복하게 되어진다.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잘것없는 아이성에서 여지없이 실패를 하였다. 그것이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부분이다. 그런데 실패한 아이성에 대해서 재차 군사를 재정비하고 그런 다음에 아이성을 정복하는 역사들이 나온다. 그 아이성을 정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나갔다는 것이다. 수8: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여기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아이성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다. 하나님의 말씀에 언약에 순종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지적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 아이성을 정복하게 된 시작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나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작고 큰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갈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분명히 승리하게 되어있다. 그러면서 이미 보장된 응답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 네 손에 붙였다’ 7절에 보면「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사람은 승리하기 위해서 나가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한 싸움이다. 불신자들은 쟁취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벌이는 전쟁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한 그 축복을 확인하고 누리는 삶이 이 땅의 삶이다.
그러면서 또한 이 아이성을 정복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18절에「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26절에 보면「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서 가리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에 의지해서 단창을 들고 가리켰는데 그것이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그 손을 거두지 아니했다고 했다. 출17장에 보면 모세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전쟁에서 이기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가 힘이 없어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지게 되어지는데 그래서 아론과 훌이 그 모세의 손을 계속 들고 전쟁에서 기도함으로 결국은 이기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단순히 우리가 필요한 것, 소원을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의 수준이 아니다. 엄청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 비밀이 기도의 비밀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 다윗이 이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시35편에 보면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시옵소서’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고 하나님이 대신 다투어 달라는 말이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아이성을 정복하게 된 비결이 말씀에 의지했고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종을 통해서 결국 아이성을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엄청난 축복임을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분명히 언약 잡은 우리들이 예비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하늘의 문이 열리고 거기에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어진다.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언약 붙잡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이다. 단순히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싸움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오늘 아이성을 정복하게 된 중요한 원인을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35절에 보면 온 회중이 다 참여하고 여인들이 참여하고 아이들이 참여하고 그들 중에 거하는 객들도 참여해서 에발산에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에발산에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은 피를 뿌리는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그 가나안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피를 흘리실 메시야의 언약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하게 하는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에발산에 대한 부분을 알아야 한다. 에발산은 세겜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세겜 골짜기에 마주보는 두 산이 있는데 한 산은 에발산이고 다른 한 산은 그리심산이다. 에발산은 돌로 험악한 산령을 이루고 있는 산이고 그리심산은 아주 아름답고 풍부한 산이다. 그런데 그 두 산이 마주보고 있는데 어느 정도로 가까운가 하면 에발산 꼭대기에서 말을 하면 그 말을 통해서 그리심산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알아듣고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산이 마주보고 있는 산이 에발산과 그리심산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33절을 보면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신다. 에발산과 그리심산 두 편으로 나누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언약궤가 놓여있고 거기에서 여호수아가 제사장들과 함께 백성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저주와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33, 34절을 보면「33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신27장에 보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대해서 나온다. 에발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저주의 선고가 내려졌단 산이 에발산이고, 그리심산은 하나님을 순종하고 따를 때 오는 기쁨과 영광과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그리심산이다. 거기에서 여호수아와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34절에 보면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다고 했다. 말씀에 순종을 하면 복을 받고 말씀에 불순종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런 사실들을 선포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축복받는 길이 있고 저주받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복이다. 생명의 길이 있고 저주의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를 볼 수 있어야 참된 일꾼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잠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분명히 바른 길을 간다고 하는데 사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요3:16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멸망 받는 세상이 있고 그와 더불어 그 속에서 영생을 얻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땅에는 분명히 축복받는 길이 있고 저주받는 길이 있다. 생명의 길이 있고 사망의 길이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창3장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30:19에 보면「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생명의 길이 있고 사망의 길이 있다. 복과 저주의 길이 있다. 인간에게 그 중립은 없는 것이다.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느냐 축복의 길을 가고 있느냐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느냐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느냐 그 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참된 일꾼인가? 축복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저주의 길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의 후대를 어떤 일꾼으로 세워나가야 하는가? 축복의 길이 무엇이고 저주의 길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닫게 하는 것이 우리 후대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이다.
두 번째로 축복의 길, 멸망의 길에 대해서 정리를 하겠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이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복음을 몰라서 그렇다. 분명히 생명으로 주어진 복음이 있는데 그것을 몰라서 그렇다. 성경 66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축복 받았고 언제 실패를 했는가? 그 기준이 무엇인가? 성경66권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있다면 복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이 언제 멸방 받았고 언제 축복을 받는가? 그 기준이 무엇인가? 복음을 알게 될 때 축복을 받았고 복음을 모를 때 저주를 받았다. 다른 것이 기준이 아니다. 지식과 삶과 인격이 기준이 아니다. 무엇이 기준인가? 복음이 기준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난과 눈에 보이는 고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다. 눈에 보이는 고난이라고 하면 질병과 경제와 가정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이상하게 세상은 가면 갈수록 발전하고 과학과 문명은 발달을 하는데 이상하게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해야 하는데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고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새벽기도 때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나라가 OECD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들이 많다. 자살률이 세계1위를, 또 이혼율이 세계3위이고, 음주와 흡연율이 세계1위, 교통사고도 세계1위를 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악한 사단이 말세에 공격을 하는 것이 있다면 가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이혼하는 가정 중에 원인이 64%가 성격 탓이라고 하고 있다. 결국은 개인이 갖고 있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정을 이루니까 무너지는 것이고 하나 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는데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혼을 청구했다. 평생 살아오면서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살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이혼청구를 했는데 위자료 1억 주고, 재산분할로 7억을 주라고 판정이 내려졌다. 가면 갈수록 가정들이 문제를 당하고 있다. 개인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그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결혼을 하니까 그 가정생활이 바르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면 갈수록 결혼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들이 달라지는 것이 나온다. 통계에 나왔는데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앞으로 결혼을 할 것인가 이야기를 하니까 한10%정도만 결혼을 하고 나머지는 결혼이 필요없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점점 가정이 무너지고 붕괴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가정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드러나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 경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실업자는 당연하고 경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경제가 모두 타락의 경제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3:18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심판과 사단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셨다. 창3:18에「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이때부터 벌써 고통의 경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타락으로 경제가 흐르면 그 타락 속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경제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제, 영적인 문제와 정신의 문제와 후대의 문제들로 우리의 현장이 죽어가고 있다. 분명히 악한 사단이 건재하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계시록에 보면 엄청난 영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와 정신의 문제와 후대의 문제로 죽어갈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 지구상의 재앙의 역사가 무엇 때문에 온 것인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떠남이 결국에는 개인에게 미침으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나오는 해결책을 찾아서 몸부림을 치지만 그 해결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 빠지고 점술, 역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원죄 때문이다.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된 원죄의 문제 때문에 결국은 보이는 고난과 보이지 않는 고난으로 인생들이 실패하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도 경제인들도 학문하는 사람들도 이 원죄의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참된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다. 우리 후대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주어야할 것이 있다면 이 원죄 문제를 알고 정치, 경제, 산업 현장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일꾼들로 세워나갈 수 있도록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땅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원죄 때문에 모든 인생들이 고난당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여기에 빠져있고 성도들조차도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장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문제의 해결자로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멸망의 세상에서 생명의 길로 그리스도를 주셨다. 골로새서에서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냈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이 사실을 바로 알아듣는 순간에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지게 된다. 사53:5-6에 보면 원죄문제를 인간들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멸망의 길을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생에게 하나님께서는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누구인가?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담당시키셨다. 고후5: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여기에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고 했다. 그 한사람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저의 안에서, 그리스도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19:30에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의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다 이루셨다 말씀하셨다.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만큼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 사실을 모르면 누구든지 불구하고 저주와 재앙의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사찰에 가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누구나 와서 비는 곳인데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와서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자녀들이 잘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고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일에 저주와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지 않은 열심, 기도는 빌면 빌수록 저주와 재앙이 귀신의 역사는 더 오게 되어있다.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꺾는 길이 생명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절대 복음 말고는 그리스도 말고는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길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창3장과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야 한다. 모든 문제를 볼 때마다 창3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 그리스도로 보는 그 때부터 모든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창3장의 사건, 문제와 그리스도로 이 땅을 바라보고 사람과 사건을 봐야 그 문제를 바르게 볼 수 있다. 그 속에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어지고 그 속에 참된 승리의 역사와 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이 번 한 주간에도 창3장의 문제와 그 속에서 해답되신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봄으로 참된 승리를 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144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143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142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141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140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139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138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137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136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13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134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133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132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 3:8-18 2024-12-15
1131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1130 뜻을 정한 자 단1:1-9 2024-12-01
1 2 3 4 5 6 7 8 9 10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