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
2007-04-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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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제목이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 1절에 보면「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이 구절을 중심으로 해서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에 인도받기를 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전도와 선교를 통한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또 정말로 사단의 세력을 꺾고 현장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는 비밀이 무엇인가를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여호수아서의 전체 주제를 말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원주민들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정복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나갈 때에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발걸음마다 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언약 붙잡은 우리가 나가는 걸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통해서 모든 현장을 정복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정복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인도받아야 할 것인가를 두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 두 번째로 우리의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이다. 오늘 말씀은 정복한 땅을 분배하는 내용인데, 6절까지 읽어가는 가운데 보면 정복되지 않은 땅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1절에 “얻을 땅에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고 하고 있고, 2절에「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그술 사람의 전경」3절에「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쭉 계속해서 정복되지 않은 땅들에 대한 부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곳에서 모든 응답을 예비하셨는데, 남겨놓은 부분들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의미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정복하라고 하셨는데 남겨둔 부분들이 결국은 사단의 불씨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점령할 것을 말씀하실 때에 가나안땅에 들어가거든 7족속 31왕, 가나안땅에 기거하는 원주민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멸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 가나안땅을 상징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사단과 흑암과 우상의 도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나안땅을 정복한다는 말은 사단의 도성을 꺾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이다. 언약 붙잡은 주의 백성들로 말미암아 우상과 사단과 흑암의 세력을 꺾고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땅의 점령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땅에 있는 모든 족속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멸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정복해야할 땅 속에서 결국 남겨둔 부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보면 영적인 안일함 속에, 영적인 자만감 속에, 영적인 나태함 속에 빠질 수 있는 부분들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영적인 안일함 속에 우리가 자칫 잘 못하면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우리 신앙생활에서 위험한 것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린다”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한 순간도 우리가 영적인 나태함, 안일함, 자만감 속에 빠지지 않아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자치 잘못하다 보면 무언가 ‘이제는 되었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것으로 빠질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대부분을 차지하고도 영적인 안일함에 빠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불완전하게 순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는 불완전의 순종, 일부분의 순종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순종은 100% 순종해야지, 조금만 순종하고 다른 것은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언약에 대해서만큼은 100% 순종해야 되어진다. 이 언약에 대해서 100% 순종하지 않을 때, 불완전한 순종, 일부분의 순종은 그것은 결국 불신앙과 똑같은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것을 기억을 해야 한다. 창12장에 보면 갈데아 우르의 우상동네에 살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완벽한 축복을 약속하셨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복을 줄 것인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할 것이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하면서 완벽한 축복을 예비하고 아브라함을 불러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완전한 축복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그의 살아가는 생애동안 순종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불신앙하고 순간순간 인본주의를 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순간순간 불신앙을 할 때마다 결국 실패의 역사들로 주어진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그러면서 내가 네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모든 것을 내어버려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올 것을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나온다. 그것이 창1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야 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관계를 같이 있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두 사람 다 축복하셔서 떼어놓게 되는 작업이 나온다. 롯 때문에 어려움들을 아브라함이 당하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된다. 그게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이다. 그뿐만 아니라 22장까지 이삭을 바치는 완전한 순종을 이루는 때까지 아브라함은 순간순간 불신앙하게 된다. 순간순간 불신앙 할 때마다, 그때마다 그때만큼 실패와 재앙의 어려운 역사들을 다가온 사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에 100%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마지막에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 하면서 에그론을 남겨두었다고 했다. 삿3:12-14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에그론을 강성케 한 사실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를 들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도록 그 일에 에그론이 쓰임 받을 것을 보게 된다.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는 걸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밥이 되어졌지만 그러나 우상숭배와 영적 안일에 빠졌을 때는 주변의 모든 강대국을 하나님이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몽둥이로 쓰게 되는 사실을 보게 된다. 오늘 여기에 에그론을 남겨두었다고 하고 있는데, 이 에그론을 결국은 나중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안일에 빠졌을 때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 에그론을 강성케 해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는 일에 쓰시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그론에 18년 동안 노예 살이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슨 말인가? 결국 남겨진 이 에그론이 사단의 불씨가 되어서 택한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3절에 보면 “가드사람과 에그론 사람”이라고 했다. 이 가드를 전멸했다면 가드사람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드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골리앗이라는 인물이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겁을 주면서 두려움에 떨게 만든 사람이 바로 가드에서 나온 골리앗이라는 인물이다. 결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참된 축복을 누리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다음에 아스돗과 아스글론 사람도 나오는데 이들은 나중에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수와 무능함이 아니다. 불신앙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이 바로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수 때문에, 무능함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불신앙 속에서 실패하게 되어있고 그 불신앙 속에서 결국은 악한 사단의 통로가 열려진다. 사람마다 성품이 다르다. 기질도 있고 습관도 나름대로 다 가지고 있다. 괜찮다. 좋은 성품도 그렇지 못한 성품도 있다. 무언가 성격 자체도, 습관 자체도 사람마다 다르다. 이는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통해서 사단의 통로가 열려진다면 그것이 결국은 실패를 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게으를 수도 있다. 그것도 괜찮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도 있고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그것도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게으르기 때문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문제가 되어지면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열려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지런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게으르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훨씬 낫다. 게으른 사람, 부지런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열려질 때 거기에 결국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 아무리 좋은 습관과 아무리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성령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면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되어진다. 반대로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고 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충만 받게 될 때 그 좋지 않은 습관과 단점들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있느냐, 받지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남아있는 사단의 통로로 남겨둔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점검하고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복음 위에 세워지는 우리 가정을 보면, 특별히 하나님이 가정마다 복음을 회복시키시고 현장을 회복시키는 역사 속에서 더불어 사단의 역사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분명히 하나님은 복음의 역사 위에 우리 가정들을 세워 가는데 반면에 사단의 역사도 그만큼 강하게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음 위에 현장을 정복하는 귀한 축복된 역사 속에 세워졌다고 해도, 가정 안의 약한 부분을 통해서, 가정의 연약한 사람을 통해서 사단이 틈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가정 전체가 어려워져가는 것을 보게 된다. 복음 안에 회복되어지는 역사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사단은 강하게 역사하면서 가정의 약한 사람을 통해서 흔들어 놓고, 약한 부분을 통해서 가정을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복음화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어지는 이 악한 사단의 통로,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단은 교회를 다니는 것도 방해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중요한 그리스도를 모르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 중의 전략이다. 어제 핵심에서 메시지가 나왔지만, 사실은 조금만 눈을 들어서 현장을 보면 현장에는 복음이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결국은 근본문제를 가지고 그 속에서 네피림, 우상에 빠지게 되어있고 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바벨탑을 쌓고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옛날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장 모습이다. 현장에 복음이 없어서 근본문제 가운데 우상숭배에 빠지고 결국은 무너지는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영적인 문제로 빠져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현장이 복음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정확한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진짜 복음을 말해야할 교회조차도 복음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보다도 교회 안에 더 큰 문제가 오는 것을 보게 된다. 무슨 말인가? 결국은 악한 사단이 교회는 다니되, 그리스도를 모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이 거기에서 실패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인 힘을 주셔서 모든 현장을 정복하도록 축복을 주셨는데 이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해서 현장을 하지 못하고 현장에 정복당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교인들의 모습이다. 복음의 깊은 부분을 알지 못하고, 전도의 참된 축복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교회들의 모습이다. 왜 그러한가? 교회는 다니긴 다니되, 참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악한 사단이 예배를 드리기는 드리도록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배는 드리되 진짜 중요한 언약을 붙잡지 못하고 가인처럼 실패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단의 교묘한 전략이다. 기도를 못하게도 하지만 기도는 하기는 하되, 참된 기도제목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전략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합리적인 말들로 말미암아 무언가 모르게 우리의 믿음을 제한하는 불신앙의 역사를 사단에게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걸림돌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신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늘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완전한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도 사단은 적은 부분, 사소한 부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을 통해서 결국 우리 인생을 실패시키기 때문에 정말로 틈을 허용하지 말고 성령충만함 속으로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을 이해하고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갈 때 사단의 역사는 꺾여진다. 복음, 그리스도만이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 있다. 완전한 것, 유일한 것,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을 주셨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절대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고, 유일한 것이고 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 안에 들어가게 될 때 모든 사단의 역사와 저주와 재앙의 역사는 끊어지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사단이 부려놓은 불신앙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그것 때문에 고통하게 되어있고 실패하게 되어있다.
또 한 가지는 여기에 남겨둔 많은 땅을 보면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것이 있다면, 우리가 정복해야하는 땅이 많이 있다는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누리면서 승리해야할 땅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우리가 정말로 누려야할 땅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정복의 현장을 준비해 놓고, 축복의 현장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중요한 것은 완전복음의 역사 속에서 나를 세우는 만큼 이 정복되어질 수밖에 없는 현장들이 보여 진다. 다시 말해서 내가 복음으로 살아나는 만큼 나로 말미암아 살아나야할 현장들이 사실적으로 보여 지게 되어있다. 내가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일으켜져야할 현장들이 사각지대로 변하였고, 그 사각지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들이 재앙지대로 바뀌어졌다. 분명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서 정복해야할 현장이 있는데 그 현장을 놓치는 순간, 모든 현장들이 사각지대와 재앙지대로 바꿔져버렸다. 내가 복음 안에서 힘을 얻는 만큼 정복해야 될 사실적인 현장이 보여 지게 되어있고, 모든 현장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붙여준 현장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복음을 누리는 만큼, 나를 복음화 하는 만큼, 나로 말미암아 정복될 현장들이 모든 현장 속에 널려져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의 6절에 보면「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 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여기에 “쫓아내리니” 미래형을 쓰고 있다. 무슨 말인가? 앞으로 틀림없이 쫓아내실 테니까 미리 분배하라는 말이다. 미리 땅을 나누어 가지라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우리의 가정을 맡기셨다. 우리의 자녀, 산업현장, 지역을 맡기셨다. 어떤 현장을 맡기셨는가? 정복할 현장으로 맡기셨다.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우리의 가정과 가문과 자녀와 산업현장, 지역 속에 어떻게 하든지 복음의 역사를 다 듣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다. 지금 당장에 정복되지 않은 것 같지만 여기를 향해서 기도가 시작되어질 때 이미 정복되어지는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가정을 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자녀를 예수 이름 권세로 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모든 산업현장과 모든 지역을 예수 이름 권세로 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쫓아내리니” 앞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쫓아내실 테니까 그 땅을 미리 분배하라는 것이다. 미리 그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 우리를 통해서 정복되게 하실 것이다. 남은 생애를 계산하면서 내가 어떤 부분을 정복해야할 것인가를 하나하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가만히 눈을 열어서 보면 사실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복하도록 이미 다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사단에게 정복당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현장을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아는 우리에게 이미 정복하도록 다 준비하고 계신다. 참된 정복의 축복이 이번 한 주간 누려지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33절에 보시면「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의 분배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응답을 주셨다.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요, 우리의 분깃이라는 사실이다. 성도의 기업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임마누엘과 그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나오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오늘 본문인 수13장에 보면 기업에 대한 것이 많이 나온다. 상속자로 주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성경의 룻3,4장에 보면 “기업 무를 자”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기업을 무를 자라는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가? 친척을 살리는 자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127편에도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업은 상속을 이어받을 자라는 내용을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면서 기업을 주었다고 하는 것도 사실 이 상속을 이어받을 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서 말하는 기업을 무를 자라는 것에 대한 중요한 뜻이 있다면, 메시야, 그리스도의 구원자의 이야기를 할 때 기업 무를 자라고 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역이 단순한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할, 그 언약의 바통의 역사를 전달할 주자들로 우리를 세우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계복음화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창3:15의 언약의 바통을 주었다. 그것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언약의 바통을 아벨이 붙잡았고 노아가 붙잡았고, 이 언약의 바통을 아브라함이 붙잡고 승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한 120명의 성도들이 이 언약의 바통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결국은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그 시작이 되어진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된다. 시대 시대마다 위기 때마다 이 언약을 붙잡을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셨고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의 약속을 붙잡은 우리에게 이 언약의 바통이 주어졌다.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은 보통 축복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바통을 이어갈 주자라는 말씀이다. 이 축복된 일에 우리를 세우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분깃이요, 우리의 기업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이요 기업이다. 그래서 본문의 마지막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이 바통을 들고 우리가 바로 끝까지 달려가야 될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세계복음화에 방향을 맞추어서 달려가야 될 것이다. 가나안 정복은 결국은 세계복음화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내 안에 남아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게 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길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땅, 정말로 내가 복음의 역사,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내가 정복하고 누려야하고 승리하게 될 땅이 무엇인가를 바라보면서,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들을 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벧전2:9의 말씀처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세우셨다. 임마누엘과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 무를 자의 축복을 얻게 하셨다. 이 사실을 붙잡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모든 걸음 속에 사실적인 정복의 축복이 누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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