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세가지 축복 받은 르우벤 자손
2007-05-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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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나서 여호수아서 마지막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 앞에서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그것을 오늘 찬양대가 아름다운 찬양을 불러주셨습니다. 이 찬양이 오늘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인사하십니다. 가정의 에단동산의 축복을 누립시다.
지난주일 2부 메시지 가운데서 목사님께서 눅12:13-21말씀으로 <어리석은 자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다. 거기에 말씀 가운데서 21절에 어떤 자가 어리석은 자인가를 결론지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수13:21에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어리석은 자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지는 축복이 보여지지 않는 영적인 사실을 알고 영적인 것을 심고 영적인 축복을 바라보고 나갈 때 우리와 우리의 후대들이 하나님 앞에 부요한 자로 서게 될 것이다. 특별히 오늘 어린이주일이다. 저와 여러분을 부모가 되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부요한 삶이 어떤 삶인가를 그대로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이고 전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모된 자들로 세워주신 것이다. 자녀들이 다른 것을 통해서 보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정의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하나님에 대한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되어있고, 또 영적으로 전달되게 되어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웠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의 생애에 ‘영원한 것을 심어야겠다, 영원한 것에 투자 해야겠다’ 마음과 결단을 내리게 될 때 그 축복이 그대로 우리의 후대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 축복을 모두가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이 땅의 영원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40:8의 말씀처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있으리라 하라’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마르고 시드는 것이지만 영원한 것이 있다. 그것이 복음인 것이고, 말씀인 것이고, 그를 위해서 헌신하는 모든 것들이 이 땅에 영원한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투자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서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침에는 정말로 우리와 우리자녀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 기본적인 영적인 축복을 확인하고 누리게 될 때 삶에 대해서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으로 생각고자 한다.
먼저 날마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후대들에게 날마다 확인시켜 나가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복음과 기도와 전도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복음이다. 이 땅에는 완전한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구상의 완전한 것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하나님의 모든 시작이 복음이며, 모든 마지막도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복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작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마지막도 복음이다. 무슨 말인가? 유대인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포로되고, 속국되고, 노예가 되었는가? 홀로 코스트 뮤지엄이라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이 있다. 세계에 가장 중요한 요지에 유대인들이 우리 선조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했는가, 모든 유물들을 어디서 그렇게 끌어 모았는지 끌어 모아서 기념관을 세워놓고 거기에 유대인의 모든 자녀들이 왔다가도록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 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한바퀴 돌고나면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가하면 ‘절대 이 역사적인 사건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와 더불어 ‘반드시 세계를 정복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놓고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영상에 담아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모든 그 당시에 전 세계를 유리방황하면서 어려움을 당했던 그 모습 그대로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유물로 남겨서 그 곳을 한번 돌고나면 그들의 마음속에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그토록 실패를 했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다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복음 하나를 몰라서 유대인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 속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왜 경건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사는 성도들에게 계속적인 실패가 오는가? 시작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작이 복음인데, 복음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삶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실패와 고통이 계속해서 오게 되어있다. 세상에 불신자들은 그의 시작들을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열심으로 시작해서 노력하는 만큼 성공도 한다. 많은 재물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세상적인 시작, 노력과 열심으로 시작된 것은 그 어떤 것에도 반드시 한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시작이 어떤 시작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노력과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복음, 임마누엘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기도제목이 나오고 그 속에서 응답을 받아야 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속에서 우리에 대한 분명한 방향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는 만큼 결국은 실패하게 되어있다. 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것에서 오해하게 되어있고, 모든 것에서 틀리게 되어있다. 우리 인생에 왜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까? 이러한 의문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복음을 바로 깨닫고 누리면 거기에 대해서 분명한 답이 내려질 것인데 이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늘 인생 그 자체가 의문투성이의 인생이 되어지는 것이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드릴 것을 말씀하셨다. 이 사실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하는 것이고, 이 사실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봐야하는 것이고, 이 사실을 가지고 자녀들을 봐야 하는 것이고, 이 사실을 가지고 이 땅의 모든 문제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모든 것들이 왜라는 의문투성이로, 그래서 문제를 당하면 오해하게 되어있고 그 문제 속에서 틀린 해석을 하게 되어있다.
세계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왜 그러한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것으로 이 지구상에 우리 인생들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희미하게 깨닫기 때문에 세계교회는, 한국교회는 가면 갈수록 위기가 오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무엇 때문에 축복하셨고, 우리를 무엇 때문에 축복하시는가? 다른 것이 아니다. 참된 복음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이 땅과 이 민족과 전 세계를 향해서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우리교회를 축복하시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축복하셨다. 그래서 우리 하나교회를 통해서 무엇이 증거 되어야 하는가? 금요일 날 저녁에 말씀을 드렸지만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복음이 모든 것이구나’ 이것이 이 지역 속에 다른 교회들 속에 증거 되어야 한다. 복음 외에 다른 것이 전달되고 증거 되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이다. 다른 것이 강조되고 전달된다면 교회 안에 저절로 당연하게 찾아오는 것이 복음을 놓치고 희미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 많은 선행도 행할 수 있고, 인권운동, 여성운동도 할 수 있고, 민주화 운동도 할 수 있고, 많은 부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오직 복음이 모든 것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생명운동, 그리스도 운동이 모든 것임을 말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를 통해서 이 지역 속에 전달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만이구나’ 개개인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인생이 되는가?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보면서 ‘완전복음이구나’를 깨닫게 될 때 여러분의 인생은 대성공을 하게 되어있다. 이 땅의 문제는 다른 것에서 온 것이 아니다. 복음이 희미해져가서. 교회의 문제도 세계교회의 문제로 복음이 희미해져 가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오고 있는 것이다.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골2:3에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 복음 그 안에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복음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완전 복음을 가진 자로서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한다. 복음을 가진 자로 복음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어떤 인생도 구경꾼이 되어질 수밖에 없고, 복음의 구경꾼이 되어지면 결국은 자신도 망하게 되고 시대도 망하게 된다. 그러나 복음이 가진 자로 완전 복음 속에 들어갈게 될 때 그 복음을 통해서 온 세계를 살리는 역사를 나타낸다. 초대교회가 10일 동안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성령 충만함을 기도했는데 그 성령 충만함을 가지고 전 세계를 복음화한 사실을 보게 된다. 복음을 가진 자로서 완전 복음 속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인간의 시작이 무엇인가? 인간의 결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시작과 마지막이 복음이라면 인간의 시작과 마지막도 복음이다. 인간의 시작이 복음이라는 것은 창1:27-28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을 주셨다. 창2:1-14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로 인간을 축복하시고 에덴동산에 인간을 두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창6:14에 방주의 비밀을 주셨다. 네피림,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완전히 이 땅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새로운 약속을 하셨는데 창6:14에 방주,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또 이 사실을 놓쳐버렸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 노예살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애굽에 40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는 동안 새롭게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을 하셨는데 출3:18에 희생제사의 비밀을 가지고 또 새로운 인간의 시작을 약속하셨다. 또 잊어버려서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그 상황에서 사7:14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시작을 하게 되었다. 또 놓치고 속국이 되었을 때에 마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 새롭게 시작하셨다. 인간의 시작이 무엇인가? 복음이다.
인간의 마지막도 결론도 복음이다. 인간의 결론도 결국은 그리스도 아니고서는 인생의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꺾은 왕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여신 선지자가 되셨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이 사실에 고백이 있어져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모든 답을 내어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가 복음 안에서 모든 인생의 결론을 가지게 될 때 그 인생은 영원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으로 늘 확인하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복음이다.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에게 날마다 기본적으로 확인을 시키고 또 우리 자신도 확인하고 나가야하는 것이 있다면, 바른 복음을 깨달았다면 올바른 기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기도 중의 기도가 무엇인가?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기도이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도 중의 기도이다.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우리가 간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려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조금만 이 부분에 대해서 눈을 열러준다면 그 어떤 타락의, 그 어떤 흑암의 세력에도 넘어지지 않게 되어있다. 복음을 깨닫고 누리는 기도를 조금만 깨닫는다면 그 어떤 문화조차도 우리의 자녀들을 넘어뜨리지 못하게 되어진다.
지난 주간에 어떤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손녀 이야기를 했다. 자기 손녀가 5학년인데 학교에 갔는데 치마를 조금 짧은 것을 입고 가니까 뒤에 따라오는 6학년 언니들이 막 씹었다. 그러니까 이 5학년 아이가 선생님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선생님이 6학년 언니들 선생님한테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들께 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왔는데 그 6학년 언니들이 인터넷상에 ‘너 그렇게 하면 죽을 줄 알아라’하면서 악성 글들을 올렸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학교가기가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보내놓고도 이 할머니가 너무 겁이 나서 혹이나 손녀가 어디 구석에 끌려가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 아이들이 자기를 어떻게 했다고 자기 남자친구들을 통해서 전체 성폭행을 시키고 그것이 아이들의 학교 문화이다. 예사롭게 요즘 아이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이다. 그러자 할머니가 그것을 알고 자기 손녀에게 어떤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 운동장을 뱅뱅 돌았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가려고 아이들이 결단을 하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문화 자체가 그런 문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거기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조금만 영적인 비밀, 영적인 힘이 회복되어지면 그 문화를 이길 수 있는 참된 능력이 나오는데 이것을 알지 못해서 그 문화에 동화되어서 어렵고 힘들어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지금 다른 집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집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적인 힘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로 복음을 누리는 기도의 힘, 영적인 힘이 없으면 공부도 안되는 것이고 살아갈 수도 없고, 문화권도 이길 수 없다. 왜 우리가 RUTC(렘넌트 공동체 훈련장)를 계속 이야기 하는가? 우리는 복음을 붙잡은 것이 그래도 ‘복음이 안되면 안되는구나’라는 복음의 필요성을 알고 붙잡고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통하고 갈등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어코 그런 부분을 통해서 복음만 붙잡도록 하시고 복음 아니면 안되게 하셨다. 아마 여러분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오직 복음 밖에 없구나.’ 복음의 필요성을 가지고 복음을 붙잡았고 조금 갈등하고 문제 앞에 흔들리더라도 결국 복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훈련받게 되어있고 복음 속으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복음의 필요성, 사실은 세상의 부분들, 세상의 이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복음에 대한 절박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조그만 문제 앞에도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후대들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후대들을 RUTC를 통해서 완전히 복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복음을 누리는 기도, 이를 통해서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학업도 성공하게 되어있고 학교생활에도 승리하게 되어있고, 모든 삶 속에 승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올바른 기도, 복음을 누리는 기도, 틀린 기도가 아니라 복음을 누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힘을 얻어서 학업 현장을 정복하고, 친구의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문화권을 정복하도록 세워져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전도이다. 복음을 바로 알고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게 되면 당연히 나오는 응답이 되어지는 전도가 누려지게 되어있다. 틀린 전도, 하는 전도가 아니라 되어지는 전도가 되게 되어있다. 전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하는 것이 전도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가? 원죄 가운데 빠져있지 말고, 포로에 있지 말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이다. 이 약속을 전달하는 것이 전도이다. 창3:15에 원죄 가운데 빠진 인생에게 답을 주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노예 가운데 빠진 인생에게 출3:18의 희생제사의 비밀. 포로에게 빠진 인생에게 답을 주셨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니’ 사7:14. 속국에 빠진 인생들에게 답을 주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이다. 이 약속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전도이다. 이 사실 속에 서게 되면 생명운동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어있고, 이 사실을 확인할수록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것이고, 이 사실이 붙잡혀지는 만큼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주의 사자들이 동원되게 되어있고, 이 사실이 누려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전도자의 모든 걸음을 완벽하게 책임지신다는 것들이 체험되게 되어있다. 전도의 축복을 깨닫기까지 고생이 계속 되어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와 우리 후대들에게 반드시 확인하고 확인시켜야 할 것이 있다면 복음 가진 자로서 복음 속에 있음을 확인시켜야 한다. 복음의 구경꾼이 아니라 복음을 가진 자로서 복음 안에 있음을 확인시켜야 하고, 틀린 기도가 아니라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도록, 되어지는 전도를 통해서 참된 승리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사실이 되어지고 이 속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면 삶에 나타나는 축복이다. 삶에 나타나는 축복이 많은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본문을 통해서 한가지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만남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 르우벤 자손의 세 가지 축복에 대한 부분을 15절에 보면「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그 지경은 설명하면서 23절「르우벤 자손의 서편 경계는 요단과 그 강 가라 이상은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여기에 보면 모세가 르우벤 지파에게 준 것이 그 기업이 되었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해서 가족이 구성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요단 동편의 땅이 르우벤 자손에게 주어진 땅이다. 그런데 그 땅은 모세가 주었던 땅이다. 그 기업이 자손 대대로 전해질 것이기 때문에 가족대로 분류하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자손 대대로 기업이 되어 누려지게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받은 축복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이 기업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복음과 기도와 전도의 축복 속에 서게 되어있고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될 때에 어떤 축복이 있게 되는가? 세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로 조상과 부모의 축복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어있고, 두 번째로 믿음의 지도자를 만나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고, 세 번째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 사람이 되어진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음과 기도와 전도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만큼 만남의 축복이 일어나는데 첫 번째로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이 그냥 부모를 공경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된 관계로서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부모를 만나는 만남의 축복과 자식이 부모와 자식으로서 만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의 만남의 축복이 회복되어진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르우벤은 그냥이 아니라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어진 축복과 언약의 조상인 이삭,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세계를 정복한 야곱, 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서의 르우벤. 무슨 말인가? 부모와 조상의 축복을 만남의 축복으로 가진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를 만나는 만남이 축복된 만남으로, 여러분들이 자녀를 만나는 축복된 만남으로, 지지난 주에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서 그냥 부모와 자녀가 아니라 제자정신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냥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아니라 제자정신으로 되어진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가능한가? 복음과 기도와 전도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 그런 축복된 만남으로 주어진다. 그와 더불어 믿음의 지도자로 만나는 축복의 사람으로 여기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모세르 만났고 여호수아를 만났고, 그 후에 주어진 땅의 축복이 르우벤 자손에게. 무슨 말인가? 믿음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기도할 것은 하나님이 축복된 만남을 우리 자녀에게 주시도록 기도해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후대들에게 축복된 만남을 주시도록. 그래서 류목사님이 여러분의 자녀들의 만남을 위해서 기도를 할 때, 세 가지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첫째로, 부모에게 인정받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이것이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관계가 회복되어질 때 부모에게 인정받는 자녀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믿음의 지도자들에게, 주의 종들에게 인정받는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그러면 그 자녀들은 성공한다고 말씀하셨다. 세 번째로 학교의 스승들에게 인정받는 자녀들이 되도록.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르우벤 자손, 축복의 기업을 받았는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을 르우벤이 갖게 되었고 믿음의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축복의 역사를 이 르우벤이 가지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마지막에 보면 약속의 땅을 얻은 사람이 되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5절에 보면 모세가 준 땅을 쭉 이야기하고, 13:16에 보면「그 지경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메드바 곁에 있는 온 평지와」골짜기에서 성읍까지 약속의 땅을 받은 것을 말씀하고 있고, 바로 모세가 정복한 땅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 것이 르우벤 자손이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일어나도록 축원한다. 믿음의 부모와 조상의 만남의 축복, 믿음의 지도자들과의 만남의 축복, 그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받은 약속의 역사를 여러분의 후대들이 그대로 기업으로 물려받는, 오늘 르우벤 자손이 약속의 땅을 그대로 받게 되었다. 모세로 말미암아 정복한 땅을 이 르우벤 자손들이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약속의 땅, 이 엄청난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은 르우벤 자손처럼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축복의 대열에 서게 되고, 이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대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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