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2007-08-1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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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금요일 저녁에 마무리를 지으면서 ‘우리가 참 중요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이 결론으로 붙잡혀 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는 축복의 날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의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잠시 잠깐 쓰임 받다가 말로에는 비참하게 끝난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처음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귀하게 끝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물이 있다. 특별히 히11장에 보면 믿음의 선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죽고 나서도 그 영향력을 지금까지도 메시지를 주고 있는 인물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아벨이 순교를 했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메시지와 영향을 주고 있다. 신약에 보면 스데반도 마찬가지로 돌에 맞아죽었지만 그 믿음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잠시잠깐 쓰임 받다가 사라지는 사람,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인도받고 쓰임 받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붙잡아야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 속에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12지파가 땅을 차지하고 분배를 하고 마무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인데, 감추어졌던 부분들이 드러난다. 22:1-3에 보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나온다. 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땅을 분배받았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절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분배받고 그 나머지 절반은 강을 건넌 후에 땅을 분배받았다. 그래서 므낫세 반 지파라고 나온다. 그러면 여기에 보면 이들이 이미 땅을 분배받았는데 그 땅에 노인들과 아낙네들을 남겨두고 함께 칼과 창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간다. 왜 인가? 다른 지파가 아직 정복하지 않은 남은 땅들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도우려고 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다른 지파와 함께 요단을 건넌 것이다. 다시 말해 12지파의 땅을 다 정복할 때까지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보면「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끝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그 책임을 다 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누군가 끝까지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시스템에 세워지고 그 시스템을 통해서 열매가 맺혀진다. 오늘 여기에 그 누군가를 하나님은 우리로 세웠다는 것을 확신한다. 여러분 때문에 모든 지역현장에 복음의 시스템이 세워지고 그 바탕 속에서 열매들이 계속 맺혀지는 엄청난 역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끝까지 오래도록 이 책임을 다하는 축복, 오래도록 끝까지 갈등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이 축복을 누리는 역사에 우리를 세우셨음을 믿어야 한다.
첫째로 성경에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일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했던 사람이 있다. 그 몇 명을 예로 들어보겠다. 두 번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심으로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단순히 성실하고 정직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이 축복을 누리는가에 대해서 생각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심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한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을 들 수 있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면 갈렙이라는 사람이 있다. 여호와를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서 변함없이 쫓은 사람 중의 한명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갈렙이라는 사람이다. 45년 동안 원망과 불평 없이 시키는 대로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나안을 정복했던 사람이 갈렙이다. 원래 이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라는 지도자를 섬기던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가 죽고 나니까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 그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여호수아를 모세를 섬기는 것처럼 섬겼던 사람이 갈렙이다. 우리는 누구나 1인자,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로 교회에 필요한 일꾼은 갈렙같은 일꾼이다. 이 갈렙이 자기도 지도자로 나설 수 있었지만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나서니까 그 여호수아를 모세를 섬기던 것 같이 동일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섬겼다.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냥 이 사람이 성실하다는 말이 아니다.
민14:1-10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의 보고가 불신앙의 보고였다. 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면서 지도자를 비난하면서 우리 중에 한 장관을 세워서 돌아가자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왔다. 특히 갈렙은 장대 같은 가나안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다. 민14:8-9에 보면「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그 장대 같은 가나안 사람을 바라보면서 열명의 정탐꾼은 원망을 하고 불신앙에 빠져버렸지만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수14장에 보면 위기를 만나 젊은이들이 다 떨고 있었다. 그 때에 노인된 이 갈렙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너무나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위기 때에 85세의 갈렙이 나타나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9-10「9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어떻게 그때랑 지금이 힘이 같겠는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비밀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12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온전한 헌신, 온전한 충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온전하게 좇은 갈렙에게 주신 축복이 15절에「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재앙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고, 위기 때에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도전했던 갈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인물로는 다니엘이 있다. 단6:10에 보면 다니엘이 자신을 죽이려는 모략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행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를 했다. 여기에 이때의 다니엘의 나이가 80세 정도이다. 포로로 끌려온 청년들 가운데 다니엘이 있었고 그 다니엘이 80세 정도 되는 이때에도 그 중심의 언약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언약을 붙잡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된다. 단1:8에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고 했다. 왜 자기 백성들이 포로로 왔는지를 그 이유를 알고 언약으로 붙잡았다는 말이다. 뜻을 정해서 왕의 진미, 포도주를 마시지 않도록 작정을 했고, 이미 언약을 붙잡은 것이다. 그 중에 80세 되는 이 다니엘이 끝까지 늘 언약을 붙잡고 그 속에 들어왔다. 다니엘은 이미 느부갓네살 왕이나 벨사살 왕, 다리오 왕을 거쳐 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의 자리에 있었다. 낙심치 않고 염려치 않고 끝까지 기도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단9:2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서에 나온 책을 보면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언약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세 왕이 바뀌어지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처음 붙잡은 언약을 끝까지 붙잡고 하나님 앞에 인도받았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나온다. 이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을 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르우벤은 사실은 요셉의 장자이다. 갓과 므낫세는 야곱의 장자이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이다. 이들이 이미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그 애굽에 들어가서 그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에 그 출애굽의 역사에 함께 동참했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유월절의 어린양의 비밀과 그 비밀을 붙잡은 사람들이 400년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광야길 40년 동안 르우벤, 갓, 므낫세 자손은 이미 렘넌트들이다. 그 조상들은 이미 광야길을 가는 동안 다 장사되었다. 이 사람들이 이미 가나안 땅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요단강 앞에 이르고,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서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는 걸음 가운데 여리고가 무너지고 아이성이 점령되어지는 사건과 아모리 연합군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해와 달이 멈춤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낙산지를 점령하는 일에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12지파에게 여호수아가 땅을 그려오라고 했을 때 그린대로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땅을 그려온 대로 나눔을 받았고 나중에 도피성까지 지정을 해주고, 그리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마무리 지으면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에게 한 메시지가 오늘 본문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본문의 22:4에 보면「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이들이 받은 축복은 끝까지 오래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쓰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일과 렘넌트 운동을 위해서 끝까지 쓰임 받았던 이들의 삶을 보면서 이것이 축복된 일인 것이 보여지지 않는가? 끝까지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쓰임받았던 사람들, 나중에 이들이 자신의 땅에 돌아가서 무엇이라고 했겠는가? “얘들아, 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눌 때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저 땅을 취하였노라. 너희도 우리와 같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후손이 되거라.”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너무 멋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들은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과 손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역사를 위해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은 사람임을 보게 된다. 우리가 끝까지 오래도록 책임을 다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축복된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단순히 이들이 성실했고, 정직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보여 지는가? 그들의 중심에는 진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요단 강가에 단을 세운다. 단을 세우는데 그 단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지파, 즉 남은 9지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저들 나름대로 단을 세우는 것이 아니냐. 가서 싸우자고 말을 한다. 그것이 12절에 나온다. 그 때에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중심에 있는 말을 한다. 22:21-25에 보면「2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후일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이들의 후대들이 너희 지파는 우리 지파와 다르다, 하나님의 축복과 관계없다. 그래서 그 후일에 하나님의 축복에서 밀려날까봐. 이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갖고 있었던 후손에게 전달하고 싶은 언약이 무엇이었는가? 여기에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진짜 참된 가치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쓰임 받은 사실을 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그냥 하면 안된다. 최고의 지식이 무엇인가를 알고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된다. 거기에 위기를 만나면 도전할 수 있고, 최고의 지식과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문제 앞에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최고의 지식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는 인간의 유익,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지식을 쌓는다. 그것이 근본적인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지식을 쌓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근본문제를 아는 것이 참된 지식 중의 지식이다. 이 근본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와 사건이 일어나면 떠들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도 없고 답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 것인가? 인간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근본문제 이전의 문제가 있다. 근본문제의 뿌리가 있다. 이는 성경에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깨닫는 것이다. 겔28장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14:12-18에 보면 하나님을 대적해서 저주를 받고 그 존재가 계12:1-9에 보면 타락해서 땅에 내어쫓김을 당했다. 그것이 누구인가? 사단, 마귀, 그 부리는 졸개, 귀신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모르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특별히 인간의 근본문제 속에 있는 그 뿌리를 모르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해결 할 수가 없다. 이것을 모르니까 평생 모르고 싸우는 것이다. 이 사단의 정체가 사람들 속에 보이지 않게 들어가서 대적하도록 하고 분쟁, 갈등하도록 해서 참자유와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이것 때문에 결국은 인간에게 근본문제가 온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사단은 우리를 실수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찾아온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준다. 그러나 한 가지, 생명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용히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하나님을 떠난 그 문제, 결과로 오는 것이 불신자 상태 6가지이다. 정신의 병, 불치의 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왔다. 그 이전에 뿌리가 사단의 뿌리라는 것을 알아야 모든 문제를 바르게 보게 되어있다. 혹이나 무언가 메시지를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가? 그 영적인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부분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았던 바울이 엡6장에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말씀했다. 너무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문제, 그리고 그 근본문제를 가지고온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것이 우리에게 참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 참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문제는 사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고, 죄 가운데 빠졌다. 그것을 가지고 창3장 사건이라고 하고, 그를 원죄문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신학도 달라진다.
왜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우리 인생의 문제가 창3장의 원죄 문제, 사단에게 붙잡힌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진짜 영적인 존재, 사단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롬3:10에「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3:23에「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롬6:23에「죄의 삯은 사망이요」결국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근본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근본문제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골2:8에 보면 철학과 헛된 속임수 안된다고 했다. 우리의 근본문제, 사단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이 땅에는 없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오게 되는 것을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야 되는 것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다.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그 하나님이 사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그 분이 오셨는데 요1:29에 보면「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오셔서 요19:30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십자가의 역사가 우리의 시작과 그 이전의 문제까지도, 우리가 모르고 있던 영적인 뿌리까지도 다 해결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셨다. 그 증거로 부활하신 것이다. 요11:25에「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욜2:28에 말세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 성령께서 지금 계3:20에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고, 그 성령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요14:17에 너희 속에 거할 것이며, 18절에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그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요14:26-27에 보면 참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에 히1:14의 말씀처럼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는 것이다. 빌3:20의 말씀처럼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 이전의 문제 해결, 그 뿌리까지도 완전히 해결하는 지식, 그리스도. 그 참 지식을 알면 알수록 참된 가치가 발견되게 되어있고, 참된 가치를 발견할수록 참된 소망과 참된 비전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 때에 흔들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오면 그 문제 앞에 도전할 수 있고, 때에 따라 필요하다면 생을 걸 수 있는 용기가 거기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그 속에서 참된 비전과 소망을 보면 볼수록 거기에 모든 생을 거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이번 주에 재직자 수련회가 있다. 많이 참석해서 은혜 받으시기 바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얼마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오래도록 끝까지 서있느냐는 무엇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가치를 바울이 발견했던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 모든 것들이 배설물이구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 그리스도가 최고의 지식이구나.’ 정말로 인생의 문제와 이 땅의 문제가 무엇인지 안다면 참된 지식은 그리스도이다. 이 가치를 발견하기만 하고 끝까지 오래도록 여러분이 현장에 서있으면 여러분 때문에 모든 지역, 전 세계 현장에 세계복음화를 위한 시스템이 깔려지게 된다. 그 시스템 속에서 열매들이 맺혀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소중한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이다.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참된 가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오래도록 끝까지 서있느냐가 세계복음화를 하는 길이다. 그것 때문에 전 지역과 세계에 시스템이 깔려진다. 그 시스템을 통해서 열매들이 계속해서 열려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발견하길 바란다. 이번 한 주간에도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의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잠시 잠깐 쓰임 받다가 말로에는 비참하게 끝난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처음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귀하게 끝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물이 있다. 특별히 히11장에 보면 믿음의 선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죽고 나서도 그 영향력을 지금까지도 메시지를 주고 있는 인물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아벨이 순교를 했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메시지와 영향을 주고 있다. 신약에 보면 스데반도 마찬가지로 돌에 맞아죽었지만 그 믿음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잠시잠깐 쓰임 받다가 사라지는 사람,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인도받고 쓰임 받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붙잡아야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 속에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12지파가 땅을 차지하고 분배를 하고 마무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인데, 감추어졌던 부분들이 드러난다. 22:1-3에 보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나온다. 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땅을 분배받았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절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분배받고 그 나머지 절반은 강을 건넌 후에 땅을 분배받았다. 그래서 므낫세 반 지파라고 나온다. 그러면 여기에 보면 이들이 이미 땅을 분배받았는데 그 땅에 노인들과 아낙네들을 남겨두고 함께 칼과 창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간다. 왜 인가? 다른 지파가 아직 정복하지 않은 남은 땅들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도우려고 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다른 지파와 함께 요단을 건넌 것이다. 다시 말해 12지파의 땅을 다 정복할 때까지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보면「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끝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그 책임을 다 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누군가 끝까지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시스템에 세워지고 그 시스템을 통해서 열매가 맺혀진다. 오늘 여기에 그 누군가를 하나님은 우리로 세웠다는 것을 확신한다. 여러분 때문에 모든 지역현장에 복음의 시스템이 세워지고 그 바탕 속에서 열매들이 계속 맺혀지는 엄청난 역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끝까지 오래도록 이 책임을 다하는 축복, 오래도록 끝까지 갈등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이 축복을 누리는 역사에 우리를 세우셨음을 믿어야 한다.
첫째로 성경에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일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했던 사람이 있다. 그 몇 명을 예로 들어보겠다. 두 번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심으로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단순히 성실하고 정직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이 축복을 누리는가에 대해서 생각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심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한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을 들 수 있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면 갈렙이라는 사람이 있다. 여호와를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서 변함없이 쫓은 사람 중의 한명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갈렙이라는 사람이다. 45년 동안 원망과 불평 없이 시키는 대로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나안을 정복했던 사람이 갈렙이다. 원래 이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라는 지도자를 섬기던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가 죽고 나니까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 그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여호수아를 모세를 섬기는 것처럼 섬겼던 사람이 갈렙이다. 우리는 누구나 1인자,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로 교회에 필요한 일꾼은 갈렙같은 일꾼이다. 이 갈렙이 자기도 지도자로 나설 수 있었지만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나서니까 그 여호수아를 모세를 섬기던 것 같이 동일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섬겼다.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냥 이 사람이 성실하다는 말이 아니다.
민14:1-10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의 보고가 불신앙의 보고였다. 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면서 지도자를 비난하면서 우리 중에 한 장관을 세워서 돌아가자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왔다. 특히 갈렙은 장대 같은 가나안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다. 민14:8-9에 보면「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그 장대 같은 가나안 사람을 바라보면서 열명의 정탐꾼은 원망을 하고 불신앙에 빠져버렸지만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수14장에 보면 위기를 만나 젊은이들이 다 떨고 있었다. 그 때에 노인된 이 갈렙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너무나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위기 때에 85세의 갈렙이 나타나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9-10「9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어떻게 그때랑 지금이 힘이 같겠는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비밀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12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온전한 헌신, 온전한 충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온전하게 좇은 갈렙에게 주신 축복이 15절에「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재앙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고, 위기 때에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도전했던 갈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인물로는 다니엘이 있다. 단6:10에 보면 다니엘이 자신을 죽이려는 모략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행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를 했다. 여기에 이때의 다니엘의 나이가 80세 정도이다. 포로로 끌려온 청년들 가운데 다니엘이 있었고 그 다니엘이 80세 정도 되는 이때에도 그 중심의 언약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언약을 붙잡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된다. 단1:8에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고 했다. 왜 자기 백성들이 포로로 왔는지를 그 이유를 알고 언약으로 붙잡았다는 말이다. 뜻을 정해서 왕의 진미, 포도주를 마시지 않도록 작정을 했고, 이미 언약을 붙잡은 것이다. 그 중에 80세 되는 이 다니엘이 끝까지 늘 언약을 붙잡고 그 속에 들어왔다. 다니엘은 이미 느부갓네살 왕이나 벨사살 왕, 다리오 왕을 거쳐 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의 자리에 있었다. 낙심치 않고 염려치 않고 끝까지 기도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단9:2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서에 나온 책을 보면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언약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세 왕이 바뀌어지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처음 붙잡은 언약을 끝까지 붙잡고 하나님 앞에 인도받았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나온다. 이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을 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르우벤은 사실은 요셉의 장자이다. 갓과 므낫세는 야곱의 장자이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이다. 이들이 이미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그 애굽에 들어가서 그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에 그 출애굽의 역사에 함께 동참했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유월절의 어린양의 비밀과 그 비밀을 붙잡은 사람들이 400년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광야길 40년 동안 르우벤, 갓, 므낫세 자손은 이미 렘넌트들이다. 그 조상들은 이미 광야길을 가는 동안 다 장사되었다. 이 사람들이 이미 가나안 땅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요단강 앞에 이르고,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서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는 걸음 가운데 여리고가 무너지고 아이성이 점령되어지는 사건과 아모리 연합군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해와 달이 멈춤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낙산지를 점령하는 일에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12지파에게 여호수아가 땅을 그려오라고 했을 때 그린대로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땅을 그려온 대로 나눔을 받았고 나중에 도피성까지 지정을 해주고, 그리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마무리 지으면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에게 한 메시지가 오늘 본문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본문의 22:4에 보면「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이들이 받은 축복은 끝까지 오래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쓰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일과 렘넌트 운동을 위해서 끝까지 쓰임 받았던 이들의 삶을 보면서 이것이 축복된 일인 것이 보여지지 않는가? 끝까지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쓰임받았던 사람들, 나중에 이들이 자신의 땅에 돌아가서 무엇이라고 했겠는가? “얘들아, 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눌 때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저 땅을 취하였노라. 너희도 우리와 같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후손이 되거라.”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너무 멋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들은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과 손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역사를 위해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은 사람임을 보게 된다. 우리가 끝까지 오래도록 책임을 다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축복된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단순히 이들이 성실했고, 정직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보여 지는가? 그들의 중심에는 진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요단 강가에 단을 세운다. 단을 세우는데 그 단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지파, 즉 남은 9지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저들 나름대로 단을 세우는 것이 아니냐. 가서 싸우자고 말을 한다. 그것이 12절에 나온다. 그 때에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중심에 있는 말을 한다. 22:21-25에 보면「2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후일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이들의 후대들이 너희 지파는 우리 지파와 다르다, 하나님의 축복과 관계없다. 그래서 그 후일에 하나님의 축복에서 밀려날까봐. 이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갖고 있었던 후손에게 전달하고 싶은 언약이 무엇이었는가? 여기에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진짜 참된 가치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쓰임 받은 사실을 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그냥 하면 안된다. 최고의 지식이 무엇인가를 알고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된다. 거기에 위기를 만나면 도전할 수 있고, 최고의 지식과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문제 앞에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최고의 지식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는 인간의 유익,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지식을 쌓는다. 그것이 근본적인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지식을 쌓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근본문제를 아는 것이 참된 지식 중의 지식이다. 이 근본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와 사건이 일어나면 떠들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도 없고 답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 것인가? 인간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근본문제 이전의 문제가 있다. 근본문제의 뿌리가 있다. 이는 성경에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깨닫는 것이다. 겔28장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14:12-18에 보면 하나님을 대적해서 저주를 받고 그 존재가 계12:1-9에 보면 타락해서 땅에 내어쫓김을 당했다. 그것이 누구인가? 사단, 마귀, 그 부리는 졸개, 귀신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모르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특별히 인간의 근본문제 속에 있는 그 뿌리를 모르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해결 할 수가 없다. 이것을 모르니까 평생 모르고 싸우는 것이다. 이 사단의 정체가 사람들 속에 보이지 않게 들어가서 대적하도록 하고 분쟁, 갈등하도록 해서 참자유와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이것 때문에 결국은 인간에게 근본문제가 온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사단은 우리를 실수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찾아온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준다. 그러나 한 가지, 생명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용히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하나님을 떠난 그 문제, 결과로 오는 것이 불신자 상태 6가지이다. 정신의 병, 불치의 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왔다. 그 이전에 뿌리가 사단의 뿌리라는 것을 알아야 모든 문제를 바르게 보게 되어있다. 혹이나 무언가 메시지를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가? 그 영적인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부분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았던 바울이 엡6장에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말씀했다. 너무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문제, 그리고 그 근본문제를 가지고온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것이 우리에게 참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 참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문제는 사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고, 죄 가운데 빠졌다. 그것을 가지고 창3장 사건이라고 하고, 그를 원죄문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신학도 달라진다.
왜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우리 인생의 문제가 창3장의 원죄 문제, 사단에게 붙잡힌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진짜 영적인 존재, 사단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롬3:10에「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3:23에「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롬6:23에「죄의 삯은 사망이요」결국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근본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근본문제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골2:8에 보면 철학과 헛된 속임수 안된다고 했다. 우리의 근본문제, 사단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이 땅에는 없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는 한계가 오게 되는 것을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야 되는 것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다.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그 하나님이 사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그 분이 오셨는데 요1:29에 보면「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오셔서 요19:30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십자가의 역사가 우리의 시작과 그 이전의 문제까지도, 우리가 모르고 있던 영적인 뿌리까지도 다 해결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셨다. 그 증거로 부활하신 것이다. 요11:25에「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욜2:28에 말세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 성령께서 지금 계3:20에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고, 그 성령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요14:17에 너희 속에 거할 것이며, 18절에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그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요14:26-27에 보면 참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에 히1:14의 말씀처럼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는 것이다. 빌3:20의 말씀처럼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 이전의 문제 해결, 그 뿌리까지도 완전히 해결하는 지식, 그리스도. 그 참 지식을 알면 알수록 참된 가치가 발견되게 되어있고, 참된 가치를 발견할수록 참된 소망과 참된 비전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 때에 흔들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오면 그 문제 앞에 도전할 수 있고, 때에 따라 필요하다면 생을 걸 수 있는 용기가 거기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그 속에서 참된 비전과 소망을 보면 볼수록 거기에 모든 생을 거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이번 주에 재직자 수련회가 있다. 많이 참석해서 은혜 받으시기 바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얼마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오래도록 끝까지 서있느냐는 무엇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가치를 바울이 발견했던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 모든 것들이 배설물이구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 그리스도가 최고의 지식이구나.’ 정말로 인생의 문제와 이 땅의 문제가 무엇인지 안다면 참된 지식은 그리스도이다. 이 가치를 발견하기만 하고 끝까지 오래도록 여러분이 현장에 서있으면 여러분 때문에 모든 지역, 전 세계 현장에 세계복음화를 위한 시스템이 깔려지게 된다. 그 시스템 속에서 열매들이 맺혀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소중한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이다.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참된 가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오래도록 끝까지 서있느냐가 세계복음화를 하는 길이다. 그것 때문에 전 지역과 세계에 시스템이 깔려진다. 그 시스템을 통해서 열매들이 계속해서 열려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발견하길 바란다. 이번 한 주간에도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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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132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 3:8-18 | 2024-12-15 | |
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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