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를 아는 모든 사람은
2007-09-3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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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의 인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예배하는 가운데 세상 현장, 저주의 현장을 축복의 현장으로 바꿀 수 있는 성령 충만함을 얻는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여호수아를 아는 모든 사람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불신자도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고, 불신자들도 살아가야할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잠16:4에「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사람들조차도, 불신자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들조차도 존재하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위대한 인생을 마무리한 한사람, 여호수아 앞에 우리는 서있는 것이고, 그의 마지막을 보고 있는 것이다. 29절에「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했다. 31절에「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호수아를 본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섬겼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셔서 우리를 통해 이 땅과 이 민족 가운데 하나님을 보고 만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유를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어떻게 잘 살게 할 것인가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고, 좀 더 고상한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가문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모두다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전도서에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은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고 있다. 솔로몬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성경에 보면 솔로몬만큼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없다. 또 솔로몬은 그 주위의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조공을 바칠 만큼 지혜가 뛰어났다.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체험하고 맛본 솔로몬의 고백이 전도서에 잘 나타나 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전도서에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헛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헛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참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로 온 것을 붙잡으면 신앙생활에 성공하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다른 것을 붙잡게 되어있고, 결국 마지막에 무너지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모르면 공부를 해도 참된 지혜가 없고, 또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것을 이유로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사하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면 지나고 보면 전부 헛된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을 다 살아놓고 허무에 빠지고 공허함속에 빠지고,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게 되고, 그리고 또한 그것을 참지 못해서 자살을 하는 비참함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 성도님 중 한분이 불신자로 있을 때에 나름대로 자녀들을 출세시켜보겠다고 모든 시간과 체력을 다 활용을 해서 남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 결국 자녀들을 좋은 대학을 졸업시키고 박사를 만들고 다 성공시켰다. 그리고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 출가를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에게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가’하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자녀 성공을 위해서 뒷바라지를 한다고 사실은 자신의 생을 전체다 드렸는데 자녀들을 다 출가시키고 나니까 마음에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왔다. 그래서 갈등과 방황 속에 있다가 복음을 받은 분을 보았다.
무언가 나름대로 우리 인생에 유익을 가져다 줄줄 알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지나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썩어 없어질 것에 인생을 투자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은 삶의 이유가 바뀌어진다. 복음을 알고 누릴 때부터 우리 인생의 이유가 바뀌어진다.
어떤 분이 평생 우상숭배를 하고 집안에 불상을 갖다 놓고 복을 달라고 빌고 살아왔는데 결국 지나놓고 보니까 된 것이 없음을 발견했다. 자녀들에게도 영적인 문제가 오고 심지어 외손녀, 그 밑의 대까지도 문제가 오면서 결국은 이 분이 그런 실패 속에서 복음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복음을 들을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고백을 하면서 일흔이 넘는 연세이지만 남은 생애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다. 참된 인생의 이유가 붙잡혀진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복을 줄줄 알고 거기에 빌었는데, 결국은 다 실패를 했다. 뒤늦게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맛보고 나서 너무 좋아서 매일 테이프를 듣고 힘을 얻으면서 내 남은 생애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의 자녀와 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밖에 없구나하는 결론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는 분을 보았다.
복음을 알 때부터 우리의 참된 인생의 이유가 붙잡혀 지는 것이다. 복음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않으면 복음을 깨달을 수 없다.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지식이 있다고 해서 복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복음을 못 깨닫는 것도 아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이다. 복음을 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깨닫는 그 때부터 복음 안에서 우리의 인생이 참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복음을 알아야 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가 나를 아는 만큼 복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서로 통해야 한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을 원어로 설명을 할 때,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간에 같이 잠자리를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데 그리스도가 나를 모르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도 나를 아는 서로 통하는 관계, 이 축복된 복음의 비밀들이 깨달아지고 누려지는 때부터 우리 인생에 참된 인생의 이유가 발견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참된 인생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회만 왔다갔다 하지마시고, 참된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야 인생에 있어서 참 인생이 시작되어진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두 가지를 생각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유 있는 인생이 되라. 오늘 여호수아가 이유 있는 인생을 살았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질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우리의 인생이 이유 있는 인생으로서 위대한 생을 마감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유를 발견하는 만큼 우리의 생애가 달라지게 되어있다.
첫 번째로 이유 있는 인생이 되라. 본문에 31절을 이번 주동안 요절로 권하고 싶은 부분이다.「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생명을 붙잡고 계신 이유를 보여 지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인도하기 위해서 여호수아를 붙잡고 계셨다. 본문에 자세히 보면, 여호수아가 사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연결되어진다. 이것만큼 참된 인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셨다. 우리 인간은 동물과 같이 공기와 밥을 먹고 있지만 짐승과 다른 것이 있다. 인간에게만 영혼이 주어졌다.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인간에게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2:7에「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만 살 수 있고, 행복하도록 계획되어있다.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나님은 축복하셨다. 우리가 빨리 응답받는 길은 간단하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빨리 응답받는 길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행복한 것이 맞다면, 여러분이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갖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체험하고 복음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나온 고백이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지난날에 행복하다고 붙잡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참된 복음을 듣고 체험하고 누리다 보니까 그것이 하찮게 보인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그 동안 세상에서 알던 행복이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치를 발견해 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만으로 행복하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으로 살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사단에게 장악 당했다. 그때부터 참된 이유 없는 인생이 되었고, 이때부터 썩어질 것을 구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니까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이 어두워지면서 결국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롬1:21-23「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사단에게 붙잡히고 그때부터 이유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지혜가 어두워짐으로 말미암아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 잘되고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롬1, 2장을 보면 하나님이 그냥 내어버려두신 것이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유기라고 한다. 욕심대로 살도록, 더러운 정욕을 따라 살도록, 상실한 마음으로 살도록 내어버려두신 것이다.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모르고 있을 뿐이다. 왜 내어버려두셨는가? 마지막 날에 할 말이 없도록. 롬2:5에 보면「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그냥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어버려두신 것이고, 결국은 한꺼번에 터트리기 위해서 쌓아놓은 것이다. 이것을 보고 잘된다고 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잘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전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롬1:24부터 쭉 나오는 내용이다. 죽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저주를 받고 살아야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신다.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된다. 혹여나 실수를 하고 죄를 지었는가? 괜찮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님 앞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죄에 대한 부분을 많이 말을 한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죄 가운데 붙잡혀 거의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죄는 내가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와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죄를 그리스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 어떤 죄악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던져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롬7:24-25에 보면 바울이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본성들 때문에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이 나온다. 자기는 복음을 받고 마음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하는데, 순간순간 자기도 모르게 죄의 법이 너무 강해서 그 아래 굴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롬7:24에「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바로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다. 어떠한 곤고함 가운데, 사망의 법 아래 앉아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붙잡는 순간에 그 죄에서 해방되는 축복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그래서 롬8:1-2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를 붙잡는 순간에 모든 실수와 실수로 인한 죄 속에서 해방되어지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귀신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귀신, 사단은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단의 세력을 알지 못하면 다 속게 되어있다. 이 악한 사단의 세력이 한번 인간을 붙잡으면 끝까지 멸망시키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을 사단이 붙잡아서 운명과 팔자로 끌고 간다. 여기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결국 알코올 중독, 도박, 마약에 빠질 수밖에 없고 안하면 안 되게 되어있다. 그 배후에 사단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한 일이 있다면 이 사단의 머리를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요일3:8에「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어떻게 우리가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사단의 세력이 꺾여 진다. 이 악한 사단은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게 되어있다. 마25:41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믿는 자들이라도 미혹하면서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우리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마귀의 세력을 꺾을 수 있도록 권세를 주신 것이다.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말씀하고 있다.
이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은 사람이 불신자를 바라보고, 불신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사실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없구나, 사단마귀에게 붙잡힌 인생이고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것이 보여 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가지고 전도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와 사건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하는 이유가 나오기 까지 계속해서 그 문제들을 바르게 보길 바란다. 자칫 잘못하면 문제에 속게 되는데, 진실하게 문제를 바라보면 ‘다 가진 것 같지만 영혼이 불쌍하구나’하는 것이 보여 진다. 그러면 그때부터 기도가 나온다.
어떤 분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도 자녀에게 문제가 온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한사람을 위해서 진실한 기도가 나기기 위해서는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나님 없이는 안되는구나, 저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불쌍하구나’하는 이 사실이 보여야 그 영혼을 위한 기도가 나오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을 꺾게 되어있고, 그때부터 참된 응답이 나오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 진짜 복음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세상을 바로 보면 바로 볼수록 하나님이 없고, 전부 마귀에서 붙잡혀 있고, 그래서 그들도 원치 않게 그렇게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보여 진다. 그때부터 전도가 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을 알아야만 제대로 참된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진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은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참된 이유를 가졌을 줄 믿는다.
두 번째로 그러면 어떻게 우리 인생을 마무리 할 것인가? 분명히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진다면 위대한 인생으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여호수아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같이 생각고자 한다. 31절에 보면「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얼마만큼 여호수아가 위대한 인생을 살았고 마무리를 잘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수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고별설교를 하면서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불러내셨고, 유월절 피 바를 때 노예에서 애굽에서 해방키셨고,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고 막아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사건과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눌 때까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이 여호수아의 고백이었다. 여호수아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설 때에 우리의 고백이 이 고백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듯이 우리를 우상 숭배하는 동네에서, 가문에서 불러내셨다. 또한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이유도 모르게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던 우리를 불러내셨다. 마치 하나님이 그냥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불러내셨던 것처럼 우리를 불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문제와 갈등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다. 믿음으로 아멘하길 바란다. 모세가 시90편에 내 생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간에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때마다 흔들리고 기복이 있고, 왔다 갔다 할지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면 그 은혜의 역사는 끝까지 하나님이 이루시게 되어있다. 빌1:6에「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복적으로 흔들려도 괜찮다. 결국은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은혜를 주셨고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끝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고백이 나와야 한다.
두 번째로 여호수아는 후대들 앞에서 중요한 결단을 하였다. 그러면서 선택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지난주 동안 보았지만 수24:15에 보면「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중요한 결단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오늘 나의 고백을 들으신다. 지난 과거를 어떻게 살아왔든지 간에 오늘 지금 이 시간부터 ‘하나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그 고백을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그래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이십니다.’ 고백을 할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들으신다. 또한 그 고백을 할 때마다 악한 사단이 듣고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다.
세 번째로 여호수아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후대들에게 영적인 경고를 한 것을 보게 된다. 20절에 보면「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영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후대들에게 영적인 경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복음을 알고 있다면 복음 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냥 가만히 둘 수 없다. 그것을 율법이 아니다.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안다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형제와 자녀, 가문을 바라보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고백을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고백하였다. 그 고백을 증거삼기 위해서 26, 27절에 나오듯이 여호수아가 책에 기록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의 결론이다.
말씀을 맺는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여호수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여호수아는 유일신의 증인이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할 수 있길 바란다.「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여호수아의 생애가 빛나고 가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유일신에 대한 증인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세우셨다. 여기에 방향 맞추고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사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여호수아를 아는 모든 사람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불신자도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고, 불신자들도 살아가야할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잠16:4에「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사람들조차도, 불신자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들조차도 존재하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위대한 인생을 마무리한 한사람, 여호수아 앞에 우리는 서있는 것이고, 그의 마지막을 보고 있는 것이다. 29절에「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했다. 31절에「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호수아를 본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섬겼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셔서 우리를 통해 이 땅과 이 민족 가운데 하나님을 보고 만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유를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어떻게 잘 살게 할 것인가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고, 좀 더 고상한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가문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모두다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전도서에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은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고 있다. 솔로몬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성경에 보면 솔로몬만큼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없다. 또 솔로몬은 그 주위의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조공을 바칠 만큼 지혜가 뛰어났다.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체험하고 맛본 솔로몬의 고백이 전도서에 잘 나타나 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전도서에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헛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헛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참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로 온 것을 붙잡으면 신앙생활에 성공하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다른 것을 붙잡게 되어있고, 결국 마지막에 무너지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모르면 공부를 해도 참된 지혜가 없고, 또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것을 이유로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사하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면 지나고 보면 전부 헛된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을 다 살아놓고 허무에 빠지고 공허함속에 빠지고,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게 되고, 그리고 또한 그것을 참지 못해서 자살을 하는 비참함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 성도님 중 한분이 불신자로 있을 때에 나름대로 자녀들을 출세시켜보겠다고 모든 시간과 체력을 다 활용을 해서 남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 결국 자녀들을 좋은 대학을 졸업시키고 박사를 만들고 다 성공시켰다. 그리고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 출가를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에게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가’하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자녀 성공을 위해서 뒷바라지를 한다고 사실은 자신의 생을 전체다 드렸는데 자녀들을 다 출가시키고 나니까 마음에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왔다. 그래서 갈등과 방황 속에 있다가 복음을 받은 분을 보았다.
무언가 나름대로 우리 인생에 유익을 가져다 줄줄 알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지나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썩어 없어질 것에 인생을 투자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은 삶의 이유가 바뀌어진다. 복음을 알고 누릴 때부터 우리 인생의 이유가 바뀌어진다.
어떤 분이 평생 우상숭배를 하고 집안에 불상을 갖다 놓고 복을 달라고 빌고 살아왔는데 결국 지나놓고 보니까 된 것이 없음을 발견했다. 자녀들에게도 영적인 문제가 오고 심지어 외손녀, 그 밑의 대까지도 문제가 오면서 결국은 이 분이 그런 실패 속에서 복음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복음을 들을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고백을 하면서 일흔이 넘는 연세이지만 남은 생애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다. 참된 인생의 이유가 붙잡혀진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복을 줄줄 알고 거기에 빌었는데, 결국은 다 실패를 했다. 뒤늦게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맛보고 나서 너무 좋아서 매일 테이프를 듣고 힘을 얻으면서 내 남은 생애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의 자녀와 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밖에 없구나하는 결론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는 분을 보았다.
복음을 알 때부터 우리의 참된 인생의 이유가 붙잡혀 지는 것이다. 복음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않으면 복음을 깨달을 수 없다.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지식이 있다고 해서 복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복음을 못 깨닫는 것도 아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이다. 복음을 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깨닫는 그 때부터 복음 안에서 우리의 인생이 참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복음을 알아야 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가 나를 아는 만큼 복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서로 통해야 한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을 원어로 설명을 할 때,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간에 같이 잠자리를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데 그리스도가 나를 모르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도 나를 아는 서로 통하는 관계, 이 축복된 복음의 비밀들이 깨달아지고 누려지는 때부터 우리 인생에 참된 인생의 이유가 발견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참된 인생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회만 왔다갔다 하지마시고, 참된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야 인생에 있어서 참 인생이 시작되어진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두 가지를 생각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유 있는 인생이 되라. 오늘 여호수아가 이유 있는 인생을 살았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질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우리의 인생이 이유 있는 인생으로서 위대한 생을 마감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유를 발견하는 만큼 우리의 생애가 달라지게 되어있다.
첫 번째로 이유 있는 인생이 되라. 본문에 31절을 이번 주동안 요절로 권하고 싶은 부분이다.「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생명을 붙잡고 계신 이유를 보여 지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인도하기 위해서 여호수아를 붙잡고 계셨다. 본문에 자세히 보면, 여호수아가 사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연결되어진다. 이것만큼 참된 인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셨다. 우리 인간은 동물과 같이 공기와 밥을 먹고 있지만 짐승과 다른 것이 있다. 인간에게만 영혼이 주어졌다.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인간에게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2:7에「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만 살 수 있고, 행복하도록 계획되어있다.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하나님은 축복하셨다. 우리가 빨리 응답받는 길은 간단하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빨리 응답받는 길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행복한 것이 맞다면, 여러분이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갖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체험하고 복음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나온 고백이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지난날에 행복하다고 붙잡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참된 복음을 듣고 체험하고 누리다 보니까 그것이 하찮게 보인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그 동안 세상에서 알던 행복이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치를 발견해 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만으로 행복하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으로 살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사단에게 장악 당했다. 그때부터 참된 이유 없는 인생이 되었고, 이때부터 썩어질 것을 구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니까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이 어두워지면서 결국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롬1:21-23「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사단에게 붙잡히고 그때부터 이유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지혜가 어두워짐으로 말미암아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 잘되고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롬1, 2장을 보면 하나님이 그냥 내어버려두신 것이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유기라고 한다. 욕심대로 살도록, 더러운 정욕을 따라 살도록, 상실한 마음으로 살도록 내어버려두신 것이다.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모르고 있을 뿐이다. 왜 내어버려두셨는가? 마지막 날에 할 말이 없도록. 롬2:5에 보면「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그냥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어버려두신 것이고, 결국은 한꺼번에 터트리기 위해서 쌓아놓은 것이다. 이것을 보고 잘된다고 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잘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전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롬1:24부터 쭉 나오는 내용이다. 죽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저주를 받고 살아야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신다.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된다. 혹여나 실수를 하고 죄를 지었는가? 괜찮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님 앞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죄에 대한 부분을 많이 말을 한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죄 가운데 붙잡혀 거의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죄는 내가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와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죄를 그리스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 어떤 죄악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던져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롬7:24-25에 보면 바울이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본성들 때문에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이 나온다. 자기는 복음을 받고 마음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하는데, 순간순간 자기도 모르게 죄의 법이 너무 강해서 그 아래 굴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롬7:24에「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바로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다. 어떠한 곤고함 가운데, 사망의 법 아래 앉아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붙잡는 순간에 그 죄에서 해방되는 축복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그래서 롬8:1-2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를 붙잡는 순간에 모든 실수와 실수로 인한 죄 속에서 해방되어지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귀신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귀신, 사단은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단의 세력을 알지 못하면 다 속게 되어있다. 이 악한 사단의 세력이 한번 인간을 붙잡으면 끝까지 멸망시키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을 사단이 붙잡아서 운명과 팔자로 끌고 간다. 여기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결국 알코올 중독, 도박, 마약에 빠질 수밖에 없고 안하면 안 되게 되어있다. 그 배후에 사단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한 일이 있다면 이 사단의 머리를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요일3:8에「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어떻게 우리가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사단의 세력이 꺾여 진다. 이 악한 사단은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게 되어있다. 마25:41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믿는 자들이라도 미혹하면서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우리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마귀의 세력을 꺾을 수 있도록 권세를 주신 것이다.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말씀하고 있다.
이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은 사람이 불신자를 바라보고, 불신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사실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없구나, 사단마귀에게 붙잡힌 인생이고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것이 보여 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가지고 전도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와 사건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하는 이유가 나오기 까지 계속해서 그 문제들을 바르게 보길 바란다. 자칫 잘못하면 문제에 속게 되는데, 진실하게 문제를 바라보면 ‘다 가진 것 같지만 영혼이 불쌍하구나’하는 것이 보여 진다. 그러면 그때부터 기도가 나온다.
어떤 분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도 자녀에게 문제가 온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한사람을 위해서 진실한 기도가 나기기 위해서는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나님 없이는 안되는구나, 저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불쌍하구나’하는 이 사실이 보여야 그 영혼을 위한 기도가 나오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을 꺾게 되어있고, 그때부터 참된 응답이 나오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 진짜 복음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세상을 바로 보면 바로 볼수록 하나님이 없고, 전부 마귀에서 붙잡혀 있고, 그래서 그들도 원치 않게 그렇게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보여 진다. 그때부터 전도가 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을 알아야만 제대로 참된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진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은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참된 이유를 가졌을 줄 믿는다.
두 번째로 그러면 어떻게 우리 인생을 마무리 할 것인가? 분명히 이유 있는 인생이 되어 진다면 위대한 인생으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여호수아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같이 생각고자 한다. 31절에 보면「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얼마만큼 여호수아가 위대한 인생을 살았고 마무리를 잘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수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고별설교를 하면서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불러내셨고, 유월절 피 바를 때 노예에서 애굽에서 해방키셨고,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고 막아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사건과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눌 때까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이 여호수아의 고백이었다. 여호수아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설 때에 우리의 고백이 이 고백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듯이 우리를 우상 숭배하는 동네에서, 가문에서 불러내셨다. 또한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이유도 모르게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던 우리를 불러내셨다. 마치 하나님이 그냥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불러내셨던 것처럼 우리를 불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문제와 갈등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다. 믿음으로 아멘하길 바란다. 모세가 시90편에 내 생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간에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때마다 흔들리고 기복이 있고, 왔다 갔다 할지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면 그 은혜의 역사는 끝까지 하나님이 이루시게 되어있다. 빌1:6에「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복적으로 흔들려도 괜찮다. 결국은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은혜를 주셨고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끝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고백이 나와야 한다.
두 번째로 여호수아는 후대들 앞에서 중요한 결단을 하였다. 그러면서 선택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지난주 동안 보았지만 수24:15에 보면「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중요한 결단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오늘 나의 고백을 들으신다. 지난 과거를 어떻게 살아왔든지 간에 오늘 지금 이 시간부터 ‘하나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그 고백을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그래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이십니다.’ 고백을 할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들으신다. 또한 그 고백을 할 때마다 악한 사단이 듣고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다.
세 번째로 여호수아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후대들에게 영적인 경고를 한 것을 보게 된다. 20절에 보면「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영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후대들에게 영적인 경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복음을 알고 있다면 복음 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냥 가만히 둘 수 없다. 그것을 율법이 아니다.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안다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형제와 자녀, 가문을 바라보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고백을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고백하였다. 그 고백을 증거삼기 위해서 26, 27절에 나오듯이 여호수아가 책에 기록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의 결론이다.
말씀을 맺는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여호수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여호수아는 유일신의 증인이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할 수 있길 바란다.「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여호수아의 생애가 빛나고 가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유일신에 대한 증인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세우셨다. 여기에 방향 맞추고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사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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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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