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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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저는 오늘 이 자리 성도님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메시지를 시작 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신앙생활이 신나고 즐거우십니까 아니면 뭔가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십니까.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인데 한해를 돌아보며 내가 하는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참 즐거운 상황 속에 직면해 있느냐 아니면 왜 이렇게 힘드냐..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고 어렵고.. 이 속에 갈등이 일어나십니까..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내 신앙생활이 정상인가 하나님 축복을 누리며 참 기쁨과 평안 속에서 살아가느냐 오늘 이 사실이 확인이 안되면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고 어렵고 답답합니다. 찬송가..394장에 보시면..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늘 이렇게 되어지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독수리와 같이 끝없이 창공을 올라간다면 이것처럼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올라가기는커녕 자꾸만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이 참 어렵다 고민합니다. 헌금해야되고 봉사해야되고 헌신, 기도 해야되지..교회안에 너무 할게 많아 힘들다고 표현합니다. 결국에는 이런 저런 사람들이 상처 속에 교회를 떠나갑니다. 교회생활 자체가 축복이 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힘에 겨워하고 낙심이 되어 졌을 때 여기에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집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힘듭니까, 과연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까? 만일 힘이 들면 무엇 때문에 힘든지 확인해 보셨습니까?
우리 성도들을 실패시키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염려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업 때문에 건강, 물질, 자녀, 남편, 아내, 학생들은 입시 때문에 염려 합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도 신자도 모두 염려하고 있습니다.
마 6장에 보시면 저와 여러분들에게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전혀 염려하지 말라. 이 염려는 이방인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보다 성도들이 더 염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성경 말씀처럼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다면 염려해야 합니다. 염려해서 키 작은 사람이 자랄 수 있다면 저는 두 배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염려를 해도 전혀 키는 커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염려는 더 큰 염려를 낳고 더 큰 고통속에 빠져가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속에 염려가 있습니까? 물질 때문에 건강 때문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염려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이런 염려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십시오. 염려가 순간적으로 일어나면 어쩔까 염려 말고 기도제목으로 바꾸고 기도화 해보십시오. 어느 순간 이런 염려가 떠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실패 첫째 요소가 염려입니다.
두 번째 요소는 불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동안 철저하게 따라다닌 문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망할 때까지 끝까지 따라 다닌 그 불신앙의 문제...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 실패 속에는 항상 불신앙이 함께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생수 마시며 불기둥 구름기둥 체험하면서 그래도 염려하고 불신앙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왜 망했습니까? 광야에 들어갔을 때 참 많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이유가 굶어서 죽었습니까 아니면 불신앙하다 죽었습니까.. 신명기 여호수아 가만히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굶어서 죽었단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는 잘 먹었지만 광야에 들어가면 다 굶어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어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불신앙하다 죽었습니다. 하나님 능력을 믿지 못해 진멸되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구약시대로 말하면 수장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들어갔을 때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보리를 거두어 먹었습니다. 이 절기를 맥추절이라 합니다. 근데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보리를 거두어 먹은 정도가 아니라 저장까지 했습니다. 수장절이라 합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성도들의 모든 삶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이게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절기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불신앙의 문제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셋째 낙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염려합니다. 불신앙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낙심합니다. 이 세 가지는 같은 수준입니다. 세 가지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속에 지금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인간적인 불안과 염려와 한숨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염려 불신앙 낙심 세 가지는 똑같은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단의 가장 강력한 작전 염려 불신앙 낙심입니다. 이 세가지 걸려들면 다른 답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넘어지는 제일 큰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물론 물질적인 문제일수도 있고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져 들어가 보면 여러분들 속에 일어나는 염려, 불신앙, 낙심 이것들이 하나님 축복을 못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저는 이 낙심에 대해 말할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낙심만 하지 않아도 성공합니다. 돈이 안 벌려져서 하는 일이 안되서 청년들은 교제가 잘못되어져 낙심합니다. 이 낙심을 체질적으로 염려도 그렇고 낙심도 그렇고 체질적으로 낙심하는 성도가 참 많습니다.
전도현장에서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자기도 옛날에 교회 열심히 다녔는데 지금 낙심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냐면 교회 내에서 한 믿음 좋은 집사님과 믿고 사업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주 믿음직스러워서 동업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사기꾼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심려를 기울여 모든 것을 바쳐 했는데 그걸 사기 쳐서 도망간것,,억울한 일입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같이 앉아 있지만 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조금 믿음이 있을때는 하나님 부르짖고 헌신도 하고 봉사하지만 조금이라도 믿음이 떨어지면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주고 사업을 같이하는 것은 자제하십시오. 자칫하면 여러분도 손해보고 사람도 잃고..어쨌든 혹시 이 교회내에도 사기꾼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조금 전 그 집사님이 하나님 믿었습니까 집사님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집사님을 믿다가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낙심해서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낙심은 무엇 때문입니까? 분명히 낙심해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인지 확인하시고 그런 부분으로부터 승리하셔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주로 사람 때문에 낙심하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 집사, 장로 때문에 전부 사람 때문에 낙심하는 것이 가장 큽니다. 선배 하나가 선을 봤는데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 이유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낙심이 되어 이 선배가 나는 평생 혼자 살겠다고 하면서 그 아버지 없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또 이런 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사역 잘하는 분이 있고 안 되는 분이 있습니다. 근데 사역이 잘 안되는 분은 사역이 잘 되는 분을 보면서 같이 힘을 얻고 내가 배우고 함께 따라다니고 기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고 저 사람은 사역이 잘 되고 나는 왜 안되느냐.. 상대적으로 ‘하나님 저 사람은 잘 되는데 나는 왜 안 됩니까..’그러면서 .스스로 낙심되어 힘을 잃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요나가 남 잘 되는 것 보고 낙심을 했습니다. 니느웨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상상치도 못하게 성경 12만명, 왕과 신하들이 다 돌아옵니다. 그러면 두 손 들고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진짜 선교가 일어났습니다.’ 라고 감사해야 되는데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낙심됩니다. ‘하나님 왜 저 원수들이 돌아옵니까.. 왜 저들이 복음을 받습니까..’ 회개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낙심합니다. 지금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기적이 일어나는데 감사하며 기뻐해야 하는데 죽겠다고 합니다. 남들이 잘 되는 모습보고 낙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남이 잘되면 격려해주고 기뻐해주고 즐거워해주고 복음의 심성이 되어야 하는데 남의 사업이 잘 된다든지 자꾸 일어서면 괜히 시기 질투가 나서 스스로 낙심하는 사람..참 힘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녀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른 집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못한다면 낙심될 만 합니다. 공부 공부 그러는 세상에 다른 집 아이들은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데 우리 집 아이가 그렇지 못하다면 또 낙심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아프면 또 낙심합니다. 심지어는 공부를 잘 해도 불안합니다.
어떻게 그 자리를 지킬까 하고..잘 되도 염려 안 되도 낙심..어쨌든 체질적입니다.
셋째는 말 때문에 낙심합니다.
직장, 여러 모임 그리고 교회 내에서 말 때문에 상처받고 낙심하는 사람..여러분 오늘 이렇게 기억하십시오.
세상 말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참말은 하나님 말뿐입니다.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교회에서도 말을 듣습니다. 문제는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그 말 때문에 얼마나 낙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제를 깔았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의 말은 가짜다 오직 참말은 하나님 말뿐이다. 여기에 중심을 가지고 있으면 누가 이런 말하고 저런 말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낙심하는 사람들 보면 틀린 말 듣고 낙심합니다. 자기에게 힘을 주는 그런 말을 들으면 괜찮은데 자꾸만 틀린 말을 듣고 낙심을 하고 좌절합니다.
또 하나는 진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사람 살리고 격려하는 힘을 주는 말만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주로 하는 말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상처 주는 말만 합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 상처주고 그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 누가 지겠습니까?
그래서 내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 생명을 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꼭 사람을 칼로 사람을 찔러 죽입니까? 칼로 찔러 죽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래서 특히 중직자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 내 말이 사람 살리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어쨌든 말 때문에 낙심을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물질 때문에 낙심을 합니다.
‘하나님 다른 사람은 잘 사는데 왜 난 못삽니까, 헌금을 하고 싶은데 못합니다.’ 어쨌든 물질 때문에 세상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이 물질 때문에 눈치를 봅니다. 못 산다는 이유 때문에..여러분 그건 속는 것입니다. 물질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중심에 얼마나 복음을 사랑하십니까? 물질이 전혀 없어도 심지어 하나님께 헌금을 할 수 없어도 여러분의 중심에 진짜로 복음이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걸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왜 물질 때문에 낙심하시고 그 때문에 천대받는다고 생각십니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시편 기자가 낙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5절과 11절입니다. 5절에 보십시오. 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11절에도 똑같은 말이 있습니다. 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낙망, 불안 이런것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으나 고라자손 이 시편기자가 낙심 속에 빠진 것은 분명합니다. 본문 정황을 보면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눈앞에 나타난 현실을 보고 낙심합니다. 9절 보시면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그렇습니다. 지금 원수의 압제를 통하여 수많은 낙심에 빠져있습니다. 10절 보시면..(내 뼈를 찌르는 칼날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비방을 당합니다. 또 3절을 보시면..(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모든 사람들이 자꾸 나를 멸시합니다. 니가 예수쟁이 맞느냐..니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냐. 많은 사람들이 멸시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직장생활 모임생활 하다보면 모든 사람이 나를 비방하고 조롱하고..그런데 이런 속에서 믿음이 없으면 낙심합니다. 수많은 원수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속에 복음이 없고 참 믿음이 없으면 세상 분위기 속에서 얼마든지 낙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자신을 보고 자꾸만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편기자 낙심한 이유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해결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무능이지요..오늘 본문에 보시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 말에 대답할 용기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무시당하는데 그러한 현실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내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내 하나님 내가 전에는 내 영혼아 내,내,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낙심이 될 때에 나를 바라보면 무너집니다. 낙심 될 일이 생기고 어려울 때 하나님 바라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질 못합니다. 자꾸만 이 어려운 문제를 여러분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려움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십니까? 그런데 내 힘으로는 안 되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느냐, 얼마나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그게 우리 살리는 길입니다. 근데 문제 왔을 때 거의 낙심하며 자기 자신 힘으로 하려하니까 더 문제가 일어납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본인의 무능력 이것 때문에 또 낙심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옛날 바라보며 낙심합니다.
그런 사람 많습니다. 나는 옛날에 참 좋았는데 내가 참 잘나갔는데..안되는 사람 보면 옛날 얘기 합니다. 시편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 내가 전에는..그리고 그 뒤에 보시면 이제 이일을 기억하고..과거를 기억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옛날에는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낙심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 드릴수 있는것에 진짜 감사하십시오.
지금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릴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낙심되어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매주일 예배에 대한 감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무 습관적으로 주일이 되었으니까..특히 토요일 밤이되면 깜짝 놀랍니다. 무슨 주일이 이렇게 빨리 오느냐 싶어서 그렇죠..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습니까? 여기다 찬송 5절까지 부르면 이가 갈립니다. 지난번에 중국에 이명훈 선교사님이 오셔서 청년부 헌신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메시지 중에 중국에는 아직 다 같이 예배드릴 수 없어서 숨어서 예배드리고 하니까 예배시간이 참 사모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배 한번 드리면 무려4-5시간 씩..그리고 찬송을 부르는데 어떤 곡은 찬송한곡이 100절까지 있고 이 한곡을 다 부르면 한 시간이 지난답니다. 그런데다가 사회자가 한번 더 부르자고 한답니다. 그러면 찬송한곡 부르는 데에 2시간 지납니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 감사하며 울며 찬송 부르고 한답니다. 근데 우리는 어떻습니까....예배 중에 1-4절 어쩌다 사회자가 한번 더 부르자 하면 인상 쓰고 짜증을 냅니다. 은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진짜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오늘 이렇게 예배드리고 찬송하는 것이 진짜 감사한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축복의 현장 아닙니까? 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인생 여기에 모든 축복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봤을 때 시편 기자 모습과 우리 모습이 닮았습니다.
현실보고 자기 자신의 무능력보고 옛날 모습 보며 낙심합니다. 그래서 오늘 결론은 이러한 낙심 속에서 승리하는 길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5절 보십시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낙망되고 불안한 현실 속에 시편기자 고백 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생 그 인생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사 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요 14: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히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본문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말씀 맺습니다. 그리스도 외에 소망이 없습니다.
물질, 남편, 사람, 환경 보면 낙심됩니다, 이 땅 모든 것이 우리를 낙심되게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 모든 소망과 약속 역사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최고의 축복과 응답이 일어납니다. 이번 한주간도 오직 하나님 바라보시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지금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무엇 때문에 낙심에 빠집니까.. 물질 봐도 낙심이 되고 내자신보면 더 답답하고 남편 아내 식구를 봐도 낙심되고 전부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심 속에서 승리하는 길을 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우리가 하나님을 발라
하나님을 바랄 때 최고의 축복과 응답이 일어남을 분명히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주의 종들이 전적으로 하나님 바라보다가 이번 한 주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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