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2004-05-14 00:00:00
관리자
조회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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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난 아기를 키우다 보면 잠자던 아기가 갑자기 소란을 피우며 울 때가 있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분명히 이유가 있다. 몸이 아플 때 갑자기 울 수도 있고 배가 고플 때는 젖을 달라고 변을 보면 빨리 치워달라는 의미다. 갑자기 아기가 울 때는 엄마를 부르는 신호인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달려가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준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울 때가 많다. 하나님 자녀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날마다 승리해야 할 성도들이 상당히 진통을 겪고 어려움을 겪는 어려운 현실이 일어나고 있다. 전제를 하라. 창 3장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 땅의 인생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입시에 건강에 사업에 더 나아가서는 인생에 완전히 실패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실패 속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막연히 가만히 있으면 또는 내가 힘쓰고 노력하면 전화 위복이 되어지는가. 여러분이 위기와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에 중대한 실패가 찾아 오고 어려움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평소에 그렇게 잘 부르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고 어려워지면 어느 순간 입이 닫혀 있다. 여기에 모든 문제가 따라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저와 여러분이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 이름을 불러보라. 평소에는 그렇게 잘 부르다가 막상 문제가 닥쳐오면 왜 전혀 부르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이 많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로 나갔다. 나갈 때는 바다가 잠잠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몰아치면서 배가 전복되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다급한 그때 이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니까’ 그러면서 주님을 깨웠다. 여기에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하나님 이름을 부르셨다. ‘엘리엘리 라막사막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엄청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셨다.
갈멜 산성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 선지자가 있다. 이 엘리야 선지자가 누구의 이름을 불렀는가. 지금 바알과 앗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우상숭배자들과 대결하는 사람은 엘리야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근데 이 한사람과 850명이 함께 대결을 벌일 때 엘리야가 무엇을 제의 했는가. ‘각자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자. 나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겠다. 너희는 바알의 이름을 불러라.’ 그때 엘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자 제단에 불이 내리고 850명의 우상숭배자들을 완전히 물리치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문제를 당할 때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낙심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고백이 나온다.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다. ‘지금 가정에 너무 큰 위기가 와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말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한번 불러봐라 지금까지 니가 누구를 믿었느냐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나님, 최고의 위기 속에서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때에 니가 하나님이름을 전심으로 불러 본적 있느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봐라’
많은 경우에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외로움 괴로움 낙심 속에 빠져있고 정작 불러야 할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지금 여러분 현실이 어떤가. 위기를 만나고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원망을 하는가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가. 보통 우리가 평소에는 하나님이름 부르지, 기도하지 말은 하는데 막상 문제가 일어나면 제대로 하나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문제를 당했다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지금 여러분은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가. 거의 대개 문제가 일어나면 엄마, 가족을 부르지 하나님을 부르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님 믿음을 강조하지만 막상 문제가 나타나면 엄마, 아빠 찾지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의 시라고 했다. 시편 3편 제일 위에 보시면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서제를 달았다. 압살롬은 다윗을 아들이다. 이 시편의 배경이 뭐냐하면 다윗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어쩌면 사울 왕이 핍박을 받을 때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이다. 왜냐하면 자기속으로 난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 지은 시가 오늘 시편 3편인 것이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잃으키고 설상가상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이 다윗으로부터 떠나고 압살롬에게 모여졌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왕은 왕인데 민심을 잃은 왕이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플 때가 언제인가. 물론 사업, 입시에 실패 했을 때에도 아픔이 몰려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아플 때는 믿고 신뢰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을 때이다. 그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렸을 때 그때처럼 큰 아픔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의 배경이 뭐냐하면 배신의 사건이 다윗에게 일어났는데 그것도 가장 아끼고 믿었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제일 첫째 아들 암논이 있었고 압살롬이 있고 딸이 다말이었다. 이 암논은 배다른 형제였고 압살롬과 다말은 친 남매였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염모하게 되었다. 이복동생이 때문에 어떻게 할수도 없고 상사병으로 앓다가 암논의 부하가 그 모습을 보고 ‘왕자님 걱정하지 말라 지금부터 왕자님이 침대에 누워 아픈 척을 해라 그러면 내가 다말을 당신의 처소로 불러 주겠다’ 그래서 결국 동침하게 만든다. 그런데 암논이 다말과 결혼 해 살면 괜찮다. 그런데 다말을 취한 후에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압살롬이 알았다. 자기의 형이고 동생인데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압살롬의 마음에 원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압살롬이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그 즉석에서 어떻게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암논이 이 사건을 잊어갈 무렵에 압살롬이 잔치를 열어 모든 형제를 초청하고 거기 암논도 끼어있었다. 한참 잔치가 무르익을 쯔음에 압살롬이 칼을 빼들고 암논을 찔러 죽이고 도망간다. 이 사건 속에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다윗이다. 다말은 고통 받고 암논은 죽고 압살롬은 도망갔다. 수많은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결단한다. 이미 죽은 아들은 죽었으니 잊고 도망갔던 압살롬은 다시 불러들여 용서해주고 같이 산다. 압살롬은 아주 감사해야 하는데 자기 세력을 키워 반역하여 아버지의 자리를 뺏을려 한다. 이 사건이 전개 되어졌을 때 그때 이 세력에 다윗의 충복 아히도벨이 합류한다. 다윗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가장 큰 위기가 일어났을때 동고동락했던 그 장군이 아히도벨인데 이 반역사건이 일어났을 때 압살롬과 더불어 제일 먼저 나서 다윗을 배척했던 사람이 다윗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아히도벨이다. 여러분 상처가 나면 그 상처를 싸매주는 것이 도리다. 상처에다 대고 소금을 친다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상처를 냈는데 가장 충복인 아히도벨이 왕의 상처를 싸매고 감싸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소금을 뿌린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다윗이 도망간다. 너무 다급해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도망간다. 그때 도망가면서 하나님께 지은 시가 오늘 본문이다. 본문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최고의 위기 상황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한 것이 여호와여 라고 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러한 위기와 문제와 사건 속에서 고통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금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오늘 본문에서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메시지가 이것이다. 우리가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또 3절에 하나님의 이름을 또 부른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우리가 위기와 고통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일을 수습하기 이전에 뭔가 힘쓰고 노력하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할 때 모든 사태가 해결되어진다. 행 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에 누구든지 라는 것은 자격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보란 것이다. 내가 지금 어려움을 만났을 때 체면 차릴 필요 없다. 아이가 배고프고 위기가 있으면 체면 차리지 않고 그냥 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할 때 하나님 이름을 불러보아라. (누군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요, 언약이다. 다윗이 2m 95cm나 되는 골리앗을 만났다. 잘못하면 맞아죽는다. 지금 이 다윗은 어린소년이고 골리앗은 거의 3m가까이 된다. 더 이상 싸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승리해야 할 골리앗이 죽고 실패해야 할 다윗은 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말했다. ‘니가 나를 괴로워 하느냐. 왜 막대기를 가지고 오느냐.’ 그때 다윗이 말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나오지만 나는 니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막대기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돌 다섯 개로 쳐 죽였다 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도구다. 진정으로 다윗이 믿고 의지하고 가지고 나갔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여기에 진정한 승리가 왔다. 성문 앞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다. 근데 평생을 한번도 일어나지 못했던, 무려 40년을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어졌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그 앉은뱅이가 40년의 고통에서 일어났다. 이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 능력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한 것이 없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을 당하느냐 고통을 당하느냐. 여러 가지 갈등이 있느냐. 이런 위기와 갈등 속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행 4:!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만류했다. 베드로야 살려줄테니 예수이름만 말하지 말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 그런데 그렇게 신신 당부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이름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했다. 초대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여러분 위기 속에 처해있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힘든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할 답답한 사정이 있는가. 이때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보라.
오늘 본문 4절 보겠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 다윗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참 응답, 실제적인 응답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오늘 세 가지 중요한 결론이 났다.
3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거기 따른 결과이다. 참 응답이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것이다. 방패는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방패만 있으면 칼과 창에 절대 다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아무리 사단이 공격하고 엄습하더라도 방패 되신 하나님만 우리 앞에 있으면 우리는 죽지 않는다. 방패 속에 담겨진 의미가 엄청나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이 다윗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
두 번째 주는 나의 영광이시오.
우리가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뭐 있느냐. 어떤 사람은 돈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 그리고 어떤 사람은 명예 어떤 사람은 자녀가 자기의 영광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 영광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TV보면 탤런트, 배우, 가수들 영광이 오래 지속되는가? 나이가 조금 들면 인기가 식기 시작한다. 영광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들의 영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윗이 주는 나의 영광이시오 라고 했다.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머리로, 영광으로 삼으라. 절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지금 다윗이 쫓겨 다니는 신세이다. 지금은 아무 힘도 능력도 없고 심지어 조롱도 당한다. 다급해서 도망가는 그 뒷통수를 향해 시므이가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니가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면서 다윗을 저주한다. 이 말음 지금 다윗을 고개가 완전히 숙여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한다. 주는 나의 숙여진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숙여진 머리를 하나님이 드신다. 옛날 신하들이 왕 앞에 신하들이 머리를 다 숙이고 있었다. 절대 왕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면 왕이 그대는 고개를 들라해야 고개를 들 수 있다. 고개도 내 마음대로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게 해 주셔야 들 수 있다. 지금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얼마나 조롱당하고 멸시 당하고 있는가. 그때 다윗이 얻은 답이 주께서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다 주께서 모든 영광을 회복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삼하 15:30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 모습이 나타난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다윗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울며 고개 숙이며 도망간다. 따라가는 백성들이 모두 울면서 간다. 검찰에 끌려가는 죄인들 보면 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모든 영광이 나타나게 했다.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힘든 분이 있는가. 이 시간 하나님 이름 부르다가 진짜 회복되시길 바란다.
말씀을 맺겠다. 어렵고 답답한 분들이 있는가. 이런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이름 부르라. 다시 말하면 기도하란 말이다. 걱정하고 염려만 하지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 성도의 최고 무기가 무엇인가. 결국에는 기도이다. 여러분들 어려운 문제에 전심으로 엎드리고 기도한다면 들어주시고 응답하시고 회복하시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없으니 문제가 꼬이고 위기가 온다. 위기가 올 때 잠자는 사람이 있다.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서 오는 신앙의 잠이다. 또 하나는 사망의 잠이다. 잠을 자는데 믿음의 잠을 자는가. 사망의 잠을 자는가. 오늘 본문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사실은 오늘 이 사건의 환경을 봤을 때 다윗은 잠잘 분위기가 아니다. 다윗이 쫓기는데 잠이 오겠는가. 그런데 지금 다윗이 내가 누워 자고 깨웠으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심이다. 여기에 모든 답이 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드린다. 위기 당할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라. 영원하신 이름 모든 것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불러보라 축복이 회복될 것이다.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 이름 부르시다 최고의 축복누리는 한주 되시길 바란다.
간난아이를 키우다 보면 소란을 피우며 울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운다는 것은 엄마를 부르는 신호입니다. 저와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창3장의 인생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실패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까?
1.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① 평소에는 그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부르지만, 문제와 사건 속에서 입이 닫혀있을 때가 많습니다.
②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났습니다.
③ 주님도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전능하신 ‘엘리엘리 라막사막다니’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④ 850명의 우상 숭배자 앞에서 대결을 한 엘리야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우상 숭배자를 물리쳤습니다.
⑤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낙심이 찾아옵니다.
⑥ 어떤 청년이 가정의 위기로 죽고 싶다고 하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아라 이야기했습니다.
⑦ 문제를 당했을 때는 아버지와 친구, 애인의 이름을 부릅니까?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① 본문의 시는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②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올 때, 다윗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③ 압살롬은 다윗의 첫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범하고 나서, 버리자 계교를 세워 암논을 찔러 죽입니다.
④ 시간이 지난 후, 다윗은 압살롬을 다시 자기의 궁으로 불러 잘못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⑤ 그러나 오히려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반역을 저지릅니다. 그 안에는 아히도벨이라는 충복도 같이 있었습니다.
⑥ 다윗은 얼마나 황급했던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갑니다. 그때 지은 시가 지금의 시입니다.
⑦ 다윗은 가장 다급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⑧ 우리는 힘을 쓰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⑨ 행 2:21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⑩ 다윗이 2m95cm의 골리앗과 싸웠지만 실패해야 할 다윗이 살아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⑪ 정말 다윗이 그때 의지하고 나간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승리가 찾아왔습니다.
⑫ 성전 문 앞에 40년 동안 앉아있던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일어났습니다.
⑬ 행 4:12에 천하 만민에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다고, 베드로가 선포할 때, 초대교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때
(1) 주는 나의 방패
①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하나님이 다윗의 방패로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② 아무리 사단이 공격을 해도, 방패 되신 하나님이 있으실 때 살아납니다.
(2) 주는 나의 영광
① 세상 사람들에게는 돈, 권력이 그 사람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② 하나님은 내가 너희의 영광이다 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영광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3)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① 신하들은 왕 앞에서 머리를 숙입니다. 그때 고개를 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② 우리의 고개도 하나님이 들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영광과 영화를 회복시키십니다.
③ 삼하 15:30에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날 때, 머리를 가리고 울며 도망갔다고 합니다.
④ 그러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과 답답함에 속이 상하신 분이 있습니까? 이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무기가 기도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간다면 응답하시고 회복하십니다. 위기가 올때 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과 잠과 사망의 잠이 있습니다. 본문의 5절에 누워자고 깸이 여호와가 붙드심이라. 오늘의 다윗은 잘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붙드신 것입니다. 위기가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실 때, 모든 축복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시다가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울 때가 많다. 하나님 자녀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날마다 승리해야 할 성도들이 상당히 진통을 겪고 어려움을 겪는 어려운 현실이 일어나고 있다. 전제를 하라. 창 3장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 땅의 인생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입시에 건강에 사업에 더 나아가서는 인생에 완전히 실패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실패 속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막연히 가만히 있으면 또는 내가 힘쓰고 노력하면 전화 위복이 되어지는가. 여러분이 위기와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에 중대한 실패가 찾아 오고 어려움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평소에 그렇게 잘 부르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고 어려워지면 어느 순간 입이 닫혀 있다. 여기에 모든 문제가 따라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저와 여러분이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 이름을 불러보라. 평소에는 그렇게 잘 부르다가 막상 문제가 닥쳐오면 왜 전혀 부르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이 많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로 나갔다. 나갈 때는 바다가 잠잠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몰아치면서 배가 전복되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다급한 그때 이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시니까’ 그러면서 주님을 깨웠다. 여기에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하나님 이름을 부르셨다. ‘엘리엘리 라막사막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엄청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셨다.
갈멜 산성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 선지자가 있다. 이 엘리야 선지자가 누구의 이름을 불렀는가. 지금 바알과 앗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우상숭배자들과 대결하는 사람은 엘리야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근데 이 한사람과 850명이 함께 대결을 벌일 때 엘리야가 무엇을 제의 했는가. ‘각자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자. 나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겠다. 너희는 바알의 이름을 불러라.’ 그때 엘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자 제단에 불이 내리고 850명의 우상숭배자들을 완전히 물리치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문제를 당할 때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낙심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고백이 나온다.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다. ‘지금 가정에 너무 큰 위기가 와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말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한번 불러봐라 지금까지 니가 누구를 믿었느냐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나님, 최고의 위기 속에서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때에 니가 하나님이름을 전심으로 불러 본적 있느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봐라’
많은 경우에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외로움 괴로움 낙심 속에 빠져있고 정작 불러야 할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지금 여러분 현실이 어떤가. 위기를 만나고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원망을 하는가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가. 보통 우리가 평소에는 하나님이름 부르지, 기도하지 말은 하는데 막상 문제가 일어나면 제대로 하나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문제를 당했다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지금 여러분은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가. 거의 대개 문제가 일어나면 엄마, 가족을 부르지 하나님을 부르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님 믿음을 강조하지만 막상 문제가 나타나면 엄마, 아빠 찾지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의 시라고 했다. 시편 3편 제일 위에 보시면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서제를 달았다. 압살롬은 다윗을 아들이다. 이 시편의 배경이 뭐냐하면 다윗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어쩌면 사울 왕이 핍박을 받을 때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이다. 왜냐하면 자기속으로 난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 지은 시가 오늘 시편 3편인 것이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잃으키고 설상가상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이 다윗으로부터 떠나고 압살롬에게 모여졌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왕은 왕인데 민심을 잃은 왕이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플 때가 언제인가. 물론 사업, 입시에 실패 했을 때에도 아픔이 몰려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아플 때는 믿고 신뢰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을 때이다. 그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렸을 때 그때처럼 큰 아픔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의 배경이 뭐냐하면 배신의 사건이 다윗에게 일어났는데 그것도 가장 아끼고 믿었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제일 첫째 아들 암논이 있었고 압살롬이 있고 딸이 다말이었다. 이 암논은 배다른 형제였고 압살롬과 다말은 친 남매였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염모하게 되었다. 이복동생이 때문에 어떻게 할수도 없고 상사병으로 앓다가 암논의 부하가 그 모습을 보고 ‘왕자님 걱정하지 말라 지금부터 왕자님이 침대에 누워 아픈 척을 해라 그러면 내가 다말을 당신의 처소로 불러 주겠다’ 그래서 결국 동침하게 만든다. 그런데 암논이 다말과 결혼 해 살면 괜찮다. 그런데 다말을 취한 후에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압살롬이 알았다. 자기의 형이고 동생인데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압살롬의 마음에 원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압살롬이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그 즉석에서 어떻게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암논이 이 사건을 잊어갈 무렵에 압살롬이 잔치를 열어 모든 형제를 초청하고 거기 암논도 끼어있었다. 한참 잔치가 무르익을 쯔음에 압살롬이 칼을 빼들고 암논을 찔러 죽이고 도망간다. 이 사건 속에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다윗이다. 다말은 고통 받고 암논은 죽고 압살롬은 도망갔다. 수많은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결단한다. 이미 죽은 아들은 죽었으니 잊고 도망갔던 압살롬은 다시 불러들여 용서해주고 같이 산다. 압살롬은 아주 감사해야 하는데 자기 세력을 키워 반역하여 아버지의 자리를 뺏을려 한다. 이 사건이 전개 되어졌을 때 그때 이 세력에 다윗의 충복 아히도벨이 합류한다. 다윗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가장 큰 위기가 일어났을때 동고동락했던 그 장군이 아히도벨인데 이 반역사건이 일어났을 때 압살롬과 더불어 제일 먼저 나서 다윗을 배척했던 사람이 다윗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아히도벨이다. 여러분 상처가 나면 그 상처를 싸매주는 것이 도리다. 상처에다 대고 소금을 친다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상처를 냈는데 가장 충복인 아히도벨이 왕의 상처를 싸매고 감싸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소금을 뿌린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다윗이 도망간다. 너무 다급해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도망간다. 그때 도망가면서 하나님께 지은 시가 오늘 본문이다. 본문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최고의 위기 상황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한 것이 여호와여 라고 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러한 위기와 문제와 사건 속에서 고통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금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오늘 본문에서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메시지가 이것이다. 우리가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또 3절에 하나님의 이름을 또 부른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우리가 위기와 고통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일을 수습하기 이전에 뭔가 힘쓰고 노력하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할 때 모든 사태가 해결되어진다. 행 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에 누구든지 라는 것은 자격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보란 것이다. 내가 지금 어려움을 만났을 때 체면 차릴 필요 없다. 아이가 배고프고 위기가 있으면 체면 차리지 않고 그냥 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할 때 하나님 이름을 불러보아라. (누군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요, 언약이다. 다윗이 2m 95cm나 되는 골리앗을 만났다. 잘못하면 맞아죽는다. 지금 이 다윗은 어린소년이고 골리앗은 거의 3m가까이 된다. 더 이상 싸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승리해야 할 골리앗이 죽고 실패해야 할 다윗은 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말했다. ‘니가 나를 괴로워 하느냐. 왜 막대기를 가지고 오느냐.’ 그때 다윗이 말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나오지만 나는 니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막대기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돌 다섯 개로 쳐 죽였다 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도구다. 진정으로 다윗이 믿고 의지하고 가지고 나갔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여기에 진정한 승리가 왔다. 성문 앞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다. 근데 평생을 한번도 일어나지 못했던, 무려 40년을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어졌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그 앉은뱅이가 40년의 고통에서 일어났다. 이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 능력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한 것이 없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을 당하느냐 고통을 당하느냐. 여러 가지 갈등이 있느냐. 이런 위기와 갈등 속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행 4:!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만류했다. 베드로야 살려줄테니 예수이름만 말하지 말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 그런데 그렇게 신신 당부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이름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했다. 초대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여러분 위기 속에 처해있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힘든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라.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할 답답한 사정이 있는가. 이때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보라.
오늘 본문 4절 보겠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 다윗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참 응답, 실제적인 응답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오늘 세 가지 중요한 결론이 났다.
3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거기 따른 결과이다. 참 응답이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것이다. 방패는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방패만 있으면 칼과 창에 절대 다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아무리 사단이 공격하고 엄습하더라도 방패 되신 하나님만 우리 앞에 있으면 우리는 죽지 않는다. 방패 속에 담겨진 의미가 엄청나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이 다윗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
두 번째 주는 나의 영광이시오.
우리가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뭐 있느냐. 어떤 사람은 돈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 그리고 어떤 사람은 명예 어떤 사람은 자녀가 자기의 영광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 영광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TV보면 탤런트, 배우, 가수들 영광이 오래 지속되는가? 나이가 조금 들면 인기가 식기 시작한다. 영광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들의 영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윗이 주는 나의 영광이시오 라고 했다.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머리로, 영광으로 삼으라. 절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지금 다윗이 쫓겨 다니는 신세이다. 지금은 아무 힘도 능력도 없고 심지어 조롱도 당한다. 다급해서 도망가는 그 뒷통수를 향해 시므이가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니가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면서 다윗을 저주한다. 이 말음 지금 다윗을 고개가 완전히 숙여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한다. 주는 나의 숙여진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숙여진 머리를 하나님이 드신다. 옛날 신하들이 왕 앞에 신하들이 머리를 다 숙이고 있었다. 절대 왕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면 왕이 그대는 고개를 들라해야 고개를 들 수 있다. 고개도 내 마음대로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게 해 주셔야 들 수 있다. 지금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얼마나 조롱당하고 멸시 당하고 있는가. 그때 다윗이 얻은 답이 주께서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다 주께서 모든 영광을 회복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삼하 15:30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 모습이 나타난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다윗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울며 고개 숙이며 도망간다. 따라가는 백성들이 모두 울면서 간다. 검찰에 끌려가는 죄인들 보면 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모든 영광이 나타나게 했다.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힘든 분이 있는가. 이 시간 하나님 이름 부르다가 진짜 회복되시길 바란다.
말씀을 맺겠다. 어렵고 답답한 분들이 있는가. 이런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이름 부르라. 다시 말하면 기도하란 말이다. 걱정하고 염려만 하지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 성도의 최고 무기가 무엇인가. 결국에는 기도이다. 여러분들 어려운 문제에 전심으로 엎드리고 기도한다면 들어주시고 응답하시고 회복하시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없으니 문제가 꼬이고 위기가 온다. 위기가 올 때 잠자는 사람이 있다.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서 오는 신앙의 잠이다. 또 하나는 사망의 잠이다. 잠을 자는데 믿음의 잠을 자는가. 사망의 잠을 자는가. 오늘 본문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사실은 오늘 이 사건의 환경을 봤을 때 다윗은 잠잘 분위기가 아니다. 다윗이 쫓기는데 잠이 오겠는가. 그런데 지금 다윗이 내가 누워 자고 깨웠으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심이다. 여기에 모든 답이 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드린다. 위기 당할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라. 영원하신 이름 모든 것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불러보라 축복이 회복될 것이다.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 이름 부르시다 최고의 축복누리는 한주 되시길 바란다.
간난아이를 키우다 보면 소란을 피우며 울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운다는 것은 엄마를 부르는 신호입니다. 저와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창3장의 인생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실패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까?
1.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① 평소에는 그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부르지만, 문제와 사건 속에서 입이 닫혀있을 때가 많습니다.
②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났습니다.
③ 주님도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전능하신 ‘엘리엘리 라막사막다니’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④ 850명의 우상 숭배자 앞에서 대결을 한 엘리야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우상 숭배자를 물리쳤습니다.
⑤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낙심이 찾아옵니다.
⑥ 어떤 청년이 가정의 위기로 죽고 싶다고 하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아라 이야기했습니다.
⑦ 문제를 당했을 때는 아버지와 친구, 애인의 이름을 부릅니까?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① 본문의 시는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②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올 때, 다윗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③ 압살롬은 다윗의 첫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범하고 나서, 버리자 계교를 세워 암논을 찔러 죽입니다.
④ 시간이 지난 후, 다윗은 압살롬을 다시 자기의 궁으로 불러 잘못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⑤ 그러나 오히려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반역을 저지릅니다. 그 안에는 아히도벨이라는 충복도 같이 있었습니다.
⑥ 다윗은 얼마나 황급했던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갑니다. 그때 지은 시가 지금의 시입니다.
⑦ 다윗은 가장 다급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⑧ 우리는 힘을 쓰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⑨ 행 2:21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⑩ 다윗이 2m95cm의 골리앗과 싸웠지만 실패해야 할 다윗이 살아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⑪ 정말 다윗이 그때 의지하고 나간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승리가 찾아왔습니다.
⑫ 성전 문 앞에 40년 동안 앉아있던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일어났습니다.
⑬ 행 4:12에 천하 만민에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다고, 베드로가 선포할 때, 초대교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때
(1) 주는 나의 방패
①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하나님이 다윗의 방패로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② 아무리 사단이 공격을 해도, 방패 되신 하나님이 있으실 때 살아납니다.
(2) 주는 나의 영광
① 세상 사람들에게는 돈, 권력이 그 사람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② 하나님은 내가 너희의 영광이다 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영광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3)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① 신하들은 왕 앞에서 머리를 숙입니다. 그때 고개를 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② 우리의 고개도 하나님이 들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영광과 영화를 회복시키십니다.
③ 삼하 15:30에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날 때, 머리를 가리고 울며 도망갔다고 합니다.
④ 그러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과 답답함에 속이 상하신 분이 있습니까? 이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무기가 기도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간다면 응답하시고 회복하십니다. 위기가 올때 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과 잠과 사망의 잠이 있습니다. 본문의 5절에 누워자고 깸이 여호와가 붙드심이라. 오늘의 다윗은 잘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붙드신 것입니다. 위기가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실 때, 모든 축복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시다가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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