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전도자의 삶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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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직업은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를 해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다 .목사는 목소리부터 다르다. 폼 잡는다. 기사는 무조건 파고 들어간다. 피디 수첩이라든지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무조건 깊게 들어가고 찍지 말라고 막아도 계속해서 침투해 들어간다. 금융계통에 계신 분들은 계산이 빠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직업이 있었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바다에서 항상 있었기 때문에 늘 큰소리친다. 가룟유다는 똑똑해서 매사가 계산적이다. 향유가 얼만지 계산해냈다. 이처럼 자기의 직업에 따라 말도 나오고 행동도 나온다.
막내 여동생이 저희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동생 남편이 경찰직 조사계에 있다. 하루는 우리 집에 애기가 와 있다가 울기 시작 하는데 보통 아빠 같으면 조용히 달랠 텐데 왜울어!!울지마!! 라고 소리 질렀다. 조사계에서 범인에게 하는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직업은 못 속인다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저와 여러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들어나지 않다가 조금 말을 하다 보면 더 나가서 문제와 사건이 터져 나오면 그 사건을 계기로 여러분 에 있는 것이 터져 나온다. 만일 여러분들이 율법 체질로 가득차 있다면 어떤 사건이 터지면 조목조목 따지게 되어 있다. 신비체질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생기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며 산으로 올라가 기도한다. 인본주의 체질은 자문이 서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간구해 낸다.
지금 내가 어떤 체질이냐에 따라 여러분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속에 복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복음이 없으면 율법, 신비, 인본주의 다 나오고 결국에는 인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복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로 그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꼭 그렇게 잘 믿어야 되느냐 한다. 쉽게 말하면 별나게 믿지 말라는 것이다. 꼭 새벽기도, 수요예배, 철야 해가며 금식해야 하느냐 주일 대예배 한번만 가면 되지 라고 한다. 혹시 이 말에 은혜가 된다면 문제가 많다. 두 번째는 어디를 가든지 자기자리 자기위치를 챙긴다. 눈치는 빠르다. 복음 없이 교회 다니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 번째는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주일 한번 지키고 신앙생활이 힘들다 한다. 넷째는 사는 것이 힘들다 한다. 신앙생활이 힘들어 지니 당연한 것이다.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데 세상살이 먹고 사는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 맞는가 자신과의 관계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다섯째는 돈이 없어서 설움을 받는다고 한다. 교회가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교회에서도 차별한다며 혼자 설움을 받고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내 열심이 부족하고 내 정성이 부족하지 않느냐 자격지심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종교인들이 하는 말 그대로 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 종교인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입에서는 모든 것이 힘들다고 한다. 늘 불만, 원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혹시 내속에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가. 불신앙, 부정적인 생각이 여러분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나도 실패하고 가정도 망하고 교회전체에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러분 잘 아는 욥이라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욥에게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너무 율법적인 것이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진한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했다. 어느 정도 율법적이었는가 하니 욥 1:5 보면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함이라 했다. 아직까지 아들들이 범죄하지 않았는데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있다. 율법체질가진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 모든게 염려이다. 자기 사고나 자기 조직, 자기 중심에 비추어 못마땅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자꾸 자기자신에게 제재를 가한다. 그러니까 자기 아들들을 보며 범죄할까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을까 늘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났다. 그런 염려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졌다. 자녀들이 죽고 말았다. 혹시 여러분들이 늘 염려 불안속에 지내는가. 그러면 언젠가는 그런 불안과 염려가 여러분현실에 그대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율법체질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더 힘들고 어렵고 내 스스로 넘어지게 되어있다.
지난 핵심 때 목사님께서 나오미를 이야기 했다. 이 나오미가 모압땅에서 견디지 못하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며 고생 많았지 라며 안아 줬는데 환영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했다. 희락 평강의 의미를 가진 좋은 이름인데 마라라 불러라 했다. 이 마라는 고통, 근심, 걱정이라는 뜻이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이름인데 조금 못마땅하고 부족해도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겠다 하면 되는데 자신을 고통이라 불러 달라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가. 조금 힘들고 어려워지면 자격지심이 일어나고.. 여러분의 생각이 문제이다. 지금 여러분의 가슴속에 머릿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그 잘 못된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지고 불신앙으로 빠져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세가 가장 걱정 했던 것은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불신앙이었다. 홍해에서도 불신앙 했고, 광야에서도 마실물이 없다고, 먹을것이 없다고, 춥고 덥다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신앙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 모세가 제일 괴로웠던 것이 어떻게 하면 이런 불신앙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스라엘 1세들은 불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광야에서 완전히 시체로 변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불신앙을 가진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가나안땅을 고대했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영원한 소망의 땅 메시야 오시는 땅 그렇게 소원하며 기도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1세들은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 속에 있던 불신앙 때문이었다.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믿지 못했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리가 떨어지는 하나님의 엄청난 손길을 믿지 못해서 결국에는 그 불신앙 때문에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리고성을 만났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일 중요한 명령을 했다. 너희의 입을 들내지 마라. 들내지 말라는 것은 입떼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이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칼 한자루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을 하고 성을 뺏기 위해서는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여리고 성에서 하루 한번 빙빙 돌라는 것이다. 이때 만일 불신앙이 나왔다면 절대로 여리고 성을 돌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라도 하나 굴러 떨어지면 다 죽을 것이라고 누구 한명이 말을 해서 그 말이 옆에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면 여리고 성변을 절대로 돌 수 없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도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딱 한마디가 너희들의 입을 들내지 말라. 불신앙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여러분의 직장이 잘되고 가정이 하나님의 형통을 누리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과 잘못된 생각 부정적이 체질이 남아있는가. 이걸 먼저 복음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무너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불신앙을 근절해라. 체질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설정해도 늘 거기 대해 반기를 들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는 믿음좋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을 쓰신다. 이 믿음가지고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더 나아가서 저와 여러분은세계복음화 하고 후대를 살릴 전도자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과는 영원히 구별되어 있다.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라는 자부심이 있는가. 이 자부심이 없으면 세상에 완전히 빠져 버린다. 더 이상 그들을 살릴수도 없고 나도 세상에 속해 살 수밖에 없다. 오늘 나는 세계를 복음화 할 가장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다 여기대한 확신을 가지기 바란다. 여기에 진짜로 멋진 삶들이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오늘 메시지의 제목을 참 전도자의 삶이라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인가. 세 가지로 말하겠다.
첫째는 용서하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
복음이라 했을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십자가 없는 복음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향해 얼마나 중심이 되어있느냐에 따라 용서하는 삶이 되어진다. 이 십자가가 의미하는 내용을 보라. 이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사건이다.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전히 살아났다. 그래서 십자가의 상징이 용서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전도자의 삶은 첫째 용서하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독생자를 내어줄 정도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을 위해 독생자를 줄 수 있는가.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그런 순간에는 절대 우리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죄 때문에 하나님과 여러분의 사이가 모두 끊어졌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과 인생과 모든 관계가 죄 때문에 끊어졌다. 그런데 이런 끊어진 관계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이 모든 것이 회복되어졌다.
요일 4:10에 보면 그 십자가를 지시는 조건이 화목제이다. 화목한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관계가 같이 만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죄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끊어진 관계를 예수그리스도가 화목제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관계를 연결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다. 그만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우리가 말은 쉽게 성육신이라 한다. 성육신의 의미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낮아 질수 없다는 말이다. 일국의 왕이 거지가 될 수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완전히 낮아졌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빌 2:8 죽기까지 복종했다.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사건이 함께 일어났다.
오늘 본문에 보면 비유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1만 달라트 빚을 졌는데 이 빚을 탕감 받았다. 1만 달란트는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는 액수이다.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인데 1만 달란트 빚진자가 주인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생각을 해보면 용서 못 할것이 없다. 도저히 용서 받지 못할 저와 여러분이 용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용서 못 할 일이 없다. 다 용서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우리의 현실은 용서를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엄청난 축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서 지 못한다. 조금 내가 손해 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용서를 못한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 받았다.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부터 용서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혹시 여러분 죽어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시부모, 남편이 용서가 안 되는 분이 있는가. 지난 번 뉴스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고 한다. 물론 불신자들을 용서가 안 되겠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본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았다.
남편들 아내들 자녀 직장동료들 모두 사랑해 보라.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탕감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 용서를 한다면 얼마든지 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두 번째 참 전도자는 살리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을 준다는 말은 살린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복음의 사람이 맞다면 여러분이 들어가는 장소마다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요셉을 보라.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사람들을 살려낸다.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 받을 사람을 살리고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서 전 세계를 살렸다. 여러분이 참 전도자가 맞다면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세 번째 멋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옷 잘입고 화장 잘한다고 해서 멋있는 사람인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질 때,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졌을 때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되어진다. 자녀들에게서 나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기 싫다는 말을 듣는다면 회개하라. 여러분 가정에 자녀에게 직장동료에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축복된 사람이다.
말씀을 맺는다. 참 전도자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느냐. 여기에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멋있는 삶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세 가지를 꼭 확인하라.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살리는 역사를 감당하라. 나를 꼭 필요로 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라. 이 메시지 잡고 이번 한주간도 참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사람은 직업을 속이지 못합니다. 대화를 해보면 각자의 직업의 특색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도 직업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기에 늘 큰소리만 칩니다. 가룟 유다는 똑똑했기에 항상 계산적이었습니다. 막내동생이 경찰의 조사계에 있는데, 갓난 아이에게 범인에게 하는데로 소리를 질렀다고 하며 웃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문제와 사건을 계기로 여러분의 속에 있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율법의 체질은 조목조목 따지게 되고, 신비체질은 기도가 부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리의 체질에 따라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1. 복음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① 그렇게 잘믿어야 하냐고 합니다. 별나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
② 어디를 가던지, 자신의 자리를 챙깁니다.
③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④ 돈이 없어서 설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⑤ 그 후에 내 열심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이 들게 됩니다.
⑥ 나의 속에는 이런 불신앙의 생각이 지속되지 않습니까?
2. 성경에서 나타났던 불신앙의 요소들
①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② 욥 1:5를 보면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두려워하노라. 율법체질에서는 모든 것이 염려입니다.
③ 나오미는 모압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었지만, ‘희락‘이란 이름대신 고통이라는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④ 하나님이 본인에게 주어진 이름인데, 은혜로 살지 않고 고통이라고 불러달라고 이야기합니다.
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갈 때, 가장 경계했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입니다.
⑥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도, 결국 불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스라엘 1세들은 광야에서 시체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⑦ 여리고 성을 만났을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너희들을 들내지 말라. 입을 떼지 말라고 하십니다.
⑧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3. 막다른 골목으로 모시는 이유
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세계를 복음화하고 후대를 살릴 전도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① 첫째로, 용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준 사건입니다. (요 3:16, 요일 4:10)
②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 (빌2:8)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③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빛을 탕감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면 용서를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게 되면 되어집니다.
④ 둘째로, 참 전도자는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롬 1:16을 보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서 사람들을 살리고, 감옥에서 사형받을 사람을 살리고, 총리로 들어가 전 세계를 살렸습니다.
⑥ 셋째로, 참 전도자는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멋있는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⑦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질때 정말로 멋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을때 용서를 할 수 있을때 멋있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는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참 전도자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막내 여동생이 저희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동생 남편이 경찰직 조사계에 있다. 하루는 우리 집에 애기가 와 있다가 울기 시작 하는데 보통 아빠 같으면 조용히 달랠 텐데 왜울어!!울지마!! 라고 소리 질렀다. 조사계에서 범인에게 하는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직업은 못 속인다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저와 여러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들어나지 않다가 조금 말을 하다 보면 더 나가서 문제와 사건이 터져 나오면 그 사건을 계기로 여러분 에 있는 것이 터져 나온다. 만일 여러분들이 율법 체질로 가득차 있다면 어떤 사건이 터지면 조목조목 따지게 되어 있다. 신비체질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생기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며 산으로 올라가 기도한다. 인본주의 체질은 자문이 서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간구해 낸다.
지금 내가 어떤 체질이냐에 따라 여러분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속에 복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복음이 없으면 율법, 신비, 인본주의 다 나오고 결국에는 인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복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로 그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꼭 그렇게 잘 믿어야 되느냐 한다. 쉽게 말하면 별나게 믿지 말라는 것이다. 꼭 새벽기도, 수요예배, 철야 해가며 금식해야 하느냐 주일 대예배 한번만 가면 되지 라고 한다. 혹시 이 말에 은혜가 된다면 문제가 많다. 두 번째는 어디를 가든지 자기자리 자기위치를 챙긴다. 눈치는 빠르다. 복음 없이 교회 다니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 번째는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주일 한번 지키고 신앙생활이 힘들다 한다. 넷째는 사는 것이 힘들다 한다. 신앙생활이 힘들어 지니 당연한 것이다.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데 세상살이 먹고 사는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 맞는가 자신과의 관계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다섯째는 돈이 없어서 설움을 받는다고 한다. 교회가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교회에서도 차별한다며 혼자 설움을 받고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내 열심이 부족하고 내 정성이 부족하지 않느냐 자격지심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종교인들이 하는 말 그대로 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 종교인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입에서는 모든 것이 힘들다고 한다. 늘 불만, 원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혹시 내속에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가. 불신앙, 부정적인 생각이 여러분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나도 실패하고 가정도 망하고 교회전체에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러분 잘 아는 욥이라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욥에게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너무 율법적인 것이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진한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했다. 어느 정도 율법적이었는가 하니 욥 1:5 보면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함이라 했다. 아직까지 아들들이 범죄하지 않았는데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있다. 율법체질가진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 모든게 염려이다. 자기 사고나 자기 조직, 자기 중심에 비추어 못마땅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자꾸 자기자신에게 제재를 가한다. 그러니까 자기 아들들을 보며 범죄할까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을까 늘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났다. 그런 염려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졌다. 자녀들이 죽고 말았다. 혹시 여러분들이 늘 염려 불안속에 지내는가. 그러면 언젠가는 그런 불안과 염려가 여러분현실에 그대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율법체질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더 힘들고 어렵고 내 스스로 넘어지게 되어있다.
지난 핵심 때 목사님께서 나오미를 이야기 했다. 이 나오미가 모압땅에서 견디지 못하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며 고생 많았지 라며 안아 줬는데 환영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했다. 희락 평강의 의미를 가진 좋은 이름인데 마라라 불러라 했다. 이 마라는 고통, 근심, 걱정이라는 뜻이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이름인데 조금 못마땅하고 부족해도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겠다 하면 되는데 자신을 고통이라 불러 달라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가. 조금 힘들고 어려워지면 자격지심이 일어나고.. 여러분의 생각이 문제이다. 지금 여러분의 가슴속에 머릿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그 잘 못된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지고 불신앙으로 빠져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세가 가장 걱정 했던 것은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불신앙이었다. 홍해에서도 불신앙 했고, 광야에서도 마실물이 없다고, 먹을것이 없다고, 춥고 덥다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신앙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 모세가 제일 괴로웠던 것이 어떻게 하면 이런 불신앙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스라엘 1세들은 불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광야에서 완전히 시체로 변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불신앙을 가진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가나안땅을 고대했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영원한 소망의 땅 메시야 오시는 땅 그렇게 소원하며 기도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1세들은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 속에 있던 불신앙 때문이었다.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믿지 못했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리가 떨어지는 하나님의 엄청난 손길을 믿지 못해서 결국에는 그 불신앙 때문에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리고성을 만났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일 중요한 명령을 했다. 너희의 입을 들내지 마라. 들내지 말라는 것은 입떼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이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칼 한자루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을 하고 성을 뺏기 위해서는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여리고 성에서 하루 한번 빙빙 돌라는 것이다. 이때 만일 불신앙이 나왔다면 절대로 여리고 성을 돌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라도 하나 굴러 떨어지면 다 죽을 것이라고 누구 한명이 말을 해서 그 말이 옆에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면 여리고 성변을 절대로 돌 수 없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도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딱 한마디가 너희들의 입을 들내지 말라. 불신앙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여러분의 직장이 잘되고 가정이 하나님의 형통을 누리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과 잘못된 생각 부정적이 체질이 남아있는가. 이걸 먼저 복음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무너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불신앙을 근절해라. 체질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설정해도 늘 거기 대해 반기를 들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는 믿음좋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을 쓰신다. 이 믿음가지고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더 나아가서 저와 여러분은세계복음화 하고 후대를 살릴 전도자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과는 영원히 구별되어 있다.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라는 자부심이 있는가. 이 자부심이 없으면 세상에 완전히 빠져 버린다. 더 이상 그들을 살릴수도 없고 나도 세상에 속해 살 수밖에 없다. 오늘 나는 세계를 복음화 할 가장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다 여기대한 확신을 가지기 바란다. 여기에 진짜로 멋진 삶들이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오늘 메시지의 제목을 참 전도자의 삶이라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인가. 세 가지로 말하겠다.
첫째는 용서하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
복음이라 했을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십자가 없는 복음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향해 얼마나 중심이 되어있느냐에 따라 용서하는 삶이 되어진다. 이 십자가가 의미하는 내용을 보라. 이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사건이다.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전히 살아났다. 그래서 십자가의 상징이 용서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전도자의 삶은 첫째 용서하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독생자를 내어줄 정도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을 위해 독생자를 줄 수 있는가.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그런 순간에는 절대 우리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죄 때문에 하나님과 여러분의 사이가 모두 끊어졌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과 인생과 모든 관계가 죄 때문에 끊어졌다. 그런데 이런 끊어진 관계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이 모든 것이 회복되어졌다.
요일 4:10에 보면 그 십자가를 지시는 조건이 화목제이다. 화목한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관계가 같이 만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죄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끊어진 관계를 예수그리스도가 화목제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관계를 연결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다. 그만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우리가 말은 쉽게 성육신이라 한다. 성육신의 의미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낮아 질수 없다는 말이다. 일국의 왕이 거지가 될 수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완전히 낮아졌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빌 2:8 죽기까지 복종했다.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사건이 함께 일어났다.
오늘 본문에 보면 비유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1만 달라트 빚을 졌는데 이 빚을 탕감 받았다. 1만 달란트는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는 액수이다.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인데 1만 달란트 빚진자가 주인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생각을 해보면 용서 못 할것이 없다. 도저히 용서 받지 못할 저와 여러분이 용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용서 못 할 일이 없다. 다 용서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우리의 현실은 용서를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엄청난 축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서 지 못한다. 조금 내가 손해 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용서를 못한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 받았다.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부터 용서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혹시 여러분 죽어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시부모, 남편이 용서가 안 되는 분이 있는가. 지난 번 뉴스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고 한다. 물론 불신자들을 용서가 안 되겠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본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았다.
남편들 아내들 자녀 직장동료들 모두 사랑해 보라.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탕감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 용서를 한다면 얼마든지 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두 번째 참 전도자는 살리는 삶이 되어져야 한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을 준다는 말은 살린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복음의 사람이 맞다면 여러분이 들어가는 장소마다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요셉을 보라.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사람들을 살려낸다.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 받을 사람을 살리고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서 전 세계를 살렸다. 여러분이 참 전도자가 맞다면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세 번째 멋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옷 잘입고 화장 잘한다고 해서 멋있는 사람인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질 때,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졌을 때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되어진다. 자녀들에게서 나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기 싫다는 말을 듣는다면 회개하라. 여러분 가정에 자녀에게 직장동료에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축복된 사람이다.
말씀을 맺는다. 참 전도자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느냐. 여기에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멋있는 삶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세 가지를 꼭 확인하라.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살리는 역사를 감당하라. 나를 꼭 필요로 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라. 이 메시지 잡고 이번 한주간도 참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사람은 직업을 속이지 못합니다. 대화를 해보면 각자의 직업의 특색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도 직업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기에 늘 큰소리만 칩니다. 가룟 유다는 똑똑했기에 항상 계산적이었습니다. 막내동생이 경찰의 조사계에 있는데, 갓난 아이에게 범인에게 하는데로 소리를 질렀다고 하며 웃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문제와 사건을 계기로 여러분의 속에 있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율법의 체질은 조목조목 따지게 되고, 신비체질은 기도가 부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리의 체질에 따라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1. 복음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① 그렇게 잘믿어야 하냐고 합니다. 별나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
② 어디를 가던지, 자신의 자리를 챙깁니다.
③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④ 돈이 없어서 설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⑤ 그 후에 내 열심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이 들게 됩니다.
⑥ 나의 속에는 이런 불신앙의 생각이 지속되지 않습니까?
2. 성경에서 나타났던 불신앙의 요소들
①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② 욥 1:5를 보면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두려워하노라. 율법체질에서는 모든 것이 염려입니다.
③ 나오미는 모압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었지만, ‘희락‘이란 이름대신 고통이라는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④ 하나님이 본인에게 주어진 이름인데, 은혜로 살지 않고 고통이라고 불러달라고 이야기합니다.
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갈 때, 가장 경계했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입니다.
⑥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도, 결국 불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스라엘 1세들은 광야에서 시체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⑦ 여리고 성을 만났을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너희들을 들내지 말라. 입을 떼지 말라고 하십니다.
⑧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3. 막다른 골목으로 모시는 이유
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세계를 복음화하고 후대를 살릴 전도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① 첫째로, 용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준 사건입니다. (요 3:16, 요일 4:10)
②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 (빌2:8)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③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빛을 탕감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면 용서를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게 되면 되어집니다.
④ 둘째로, 참 전도자는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롬 1:16을 보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서 사람들을 살리고, 감옥에서 사형받을 사람을 살리고, 총리로 들어가 전 세계를 살렸습니다.
⑥ 셋째로, 참 전도자는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멋있는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⑦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질때 정말로 멋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을때 용서를 할 수 있을때 멋있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는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참 전도자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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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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