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신앙의 걸림돌
2004-05-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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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진실한 성도는 모든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갈등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감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걸림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발목이 붙잡힌 것이 2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불신앙입니다.
조금만 가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달이면 갈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1대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불기둥, 구름기둥, 반석에서 나오는 물, 만나와 메추라기를 체험하고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신앙이 없습니까?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믿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우리 속에 불신앙이 존재하면 불신앙을 제거해야 합니다.

두 번째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에는 눈에 보이는 우상과 보이지 않는 우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불상, 마리아상, 돌, 나무 등 형상이 있는 우상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은 섬기지 않습니다. 불상, 고목나무 앞에 절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생활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이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3:5-6을 보십시오. 성경은 음란, 부정, 사욕, 욕심, 탐심. 이 모든 것들이 우상숭배라고 하고, 이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합니다. 육신에 속한 것이, 육신에 우선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남편, 자식, 물질, 건강, 심지어 내 자신이 우선시 되어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한되어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상숭배가 진행되고 있고 불신앙 속에 빠져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밟은 전철을 우리가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자존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모든 원인은 내게 있습니다. 이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상당히 놓치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자신의 존재가치’. 쉽게 말하면 ‘내가 누구인가?’ 좀 더 나아가면, ‘나를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면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상당히 기분이 나쁩니다. 헌금을 좀 하면 목사님과 여러 사람들이 헌금 많이 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중요한 일을 한 것에 대해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들이 자존심에 속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조금만 상해도 마음의 문이 닫힙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함으로 신앙생활에 타격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자존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면 여러분과 저에게 큰 타격이 생깁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자존심으로 인해서 큰 일을 당할 뻔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아람나라의 나아만 장군입니다. 아람나라를 살린 장군이라서 왕과 백성이 신임하는 장군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그가 문둥병자라고 합니다. 그 시대 최고의 불치병입니다.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나아만 장군의 한 계집종이 사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하였습니다. 완전히 가로막혀있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길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제시받았을 때에 바로 결단하였습니다. 신하를 데리고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도착하여 기별을 보냈습니다. 맞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별하였지만, 엘리사는 문 밖에 나오지도 않고 종에게 명하여 요단강 가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때 나아만은 자존심이 당했습니다. 아람은 큰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장군이었습니다. 자신을 맞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존심이 크게 상하여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지혜로운 종이 말을 하였습니다. 더 어려운 일도 해야하는데, 몸을 일곱 번 씻는 일이라면 할 수 있지 않냐고 말을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그 말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 나아만을 보십시오. 죽어가는 상태임에도 자존심은 살아있었습니다. ‘내가 누구냐?’, ‘아람의 대 장군이 아니냐?’, ‘너희들이 나와서 환영해야 하지 않느냐?’ 이 자존심 때문에 자칫하면 죽을뻔 하였습니다. 갑옷을 벗고, 쓸데없는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물 속에 옷을 입고 들어가십니까?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이 군복입고 폼 잡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벗어던지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그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든 것을 벗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축복을 누리기 위해 이곳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있습니까? 그 자존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상황은 아닙니까? 하나님과 말씀 앞에 완전히 엎드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자존심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자존심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행10장에 보며 고넬료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방문하자 뛰어나가 절을 합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대장군입니다 높은 자리입니다. 베드로는 식민지 국가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분적으로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절을 해야 합니다. 은혜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어던졌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타나시고 세례요한의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이 그 제자들을 데려오던지, 다른 조치를 취해야하지 않냐고 말을 할 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 완전히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자기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 붙였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맞습니까? 이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내 자존심을 완전히 땅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 자신이 사는 길입니다. 사도바울이 은혜를 받으니, 자기의 자존심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배경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배경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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