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
2005-09-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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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늘 제목이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차저’ 라고 삼았다.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한 결과로 본인은 물론이고 자손대대로 멸망가운데 있었던 유대인들, 우리에게는 반대로 영생얻음에 참된 축복의 비밀을 주셨다. 오늘 다시 한번 인사하기바란다. “참된 생명의 축복을 최고로 누립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현장속에 준비하신 역사는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축복이다. 잘 보면 아무문제 없다. 우리가 낙심하고 힘 빠지는 이유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모자람이 없는 축복을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완전한 축복을 예비하시고 그 축복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기준은 우리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성경대로 세상이 움직인다. 성경대로 움직이실때는 기준이 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바로 하나님이 성경대로 세상을 움직이고 계시는데 성경대로 움직이시는 기준은 멸망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에 있는 사람은 승리하고 멸망가운데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안되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 46절에 영생을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엄청난 말이다. 유대인들이 알지 못해서 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팀이 전도현장에서 바리새인들, 유대인들 바라보면서 이들인 복음받기를 거부하구나 생각하면서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했다 표현하고 있고 반대로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가 있다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핍박하고 어려움이 와도 승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바르게 살아도 멸망의 현장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후대까지 멸망받는 결과가 온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역사에 있는 사람은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에도 되게 되어있다. 44절에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절에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2절에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무슨말인가. 구원의 역사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계속된 증거를 누릴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어려움과 핍박과 문제 가운데서 그 복음의 역사는 멈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결론적으로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복음운동을 막는 일은 역사를 두고 영원한 결과를 가져온다. 여러분은 어느편에 서 있는가.
복음은 매이지 않고 막히지 않는다. 그 어떤 사상과 어떤 훌륭한 영웅이 나타날지라도 복음의 역사는 매일수 없었고 증거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참된 복음의 역사속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체험해야 할 두가지가 있다.
첫째가 참된 복음운동에서 승리하기 위해 체험해야 될것이 있다면 생명에 대한 체험이다. 두 번째는 말씀에 대한 체험이다.
첫째로 생명체험이다. 체험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데 유대인들이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이 증거되었지만 그들이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여김으로 말미암아 그 복음을 바울팀들이 이방을 향한 복음증거의 기회로 삼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단순한 말이 아니라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생명체험이 가장 먼저 있어야 하고 생명에 대한 체험이 항상 누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소원은 생명운동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저와 여러분이 복음안에서 생명을 얻고, 복음안에서 힘을 얻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래서 요3:16 한 구절이 성경전체이다. 멸망가운데 있는 인간이 멸망치 않고 영생얻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래서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고 빼앗아가기 위해 온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양으로 생명얻게 하고.. 생명얻음으로 끝이 아니라 그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고전2:10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세상 신을 거두어가시고 우리안에 성령을 주셨는데 그 성령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것들을 알게 하기 위해 성령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소명과 제 1사명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참된 소원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들이 복음을 알고 생명얻고 그 생명속에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창1:27-28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는자로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창 3:1-6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생명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자 사단의 손에 속하게 되었고 좌와 저주와 운명 사주 팔자에 매여 어쩔수 없이 우상숭배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영혼과 육신이 망하고 영원한 지옥으로, 후대까지 망하는 역사에 빠지게 되었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답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 여자의 후손을 통해 참된 생명을 회복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셨다.
성경의 구약의 역사를 보라. 생명관계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 열심히 예배해도 실패하는 인생이 있다. 가인이다. 그리고 이 생명관계의 축복의 비밀을 모르니까 전체가 다 우상숭배하는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생명의 비밀을 아는 노아를 통해 그 시대를 살려가셨다. 또 다시 인간이 교만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답이 가나안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지시할땅으로 가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된 역사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생명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함으로 포로되고 노예되고 속국되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리고 우리의 제1된 사명은 우리자신이 생명얻는것이고 나 자신이 살뿐만 아니라 다른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우리의 사명이다.
바리새인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주 철저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꾸짖었다. 바리새인들이 생명에 대한 비밀을 체험하지 못해서이다. 결국은 바리새인들이 한다고 하는 것이 복음을 막는 일에 앞선 것이다. 생명없는 봉사, 복음과 관계 없는 생명없는 헌신은 종교생활로 떨어지게 되어있고 한다고 하는 것이 복음을 막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 인간의 생각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망의 길이 있다고했다. 바울도 예수믿기전에 복음을 안 들은 것이 아니라 다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완전 맥을 뚫는 성경의 박사였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세밀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에 체험이 없으니 자기가 알고 있는그것가지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이다.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나서는 계속적인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 유대인들이 생명체험이 없으니 종교생활과 형식에 빠져있다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우리가 생명얻지 못한자이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다는 사실을, 영생얻은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게된다. 그 후대들도 망하게 되어있다. 마24:2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졌다. 회복하게 위해 몸부림 쳤지만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마 27:25 그 피값을 우리와 우리자손들에게 돌릴찌어다. 모르고 그런소리를 했는데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만대로 전세계에 흩어져서 유리방황하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학살당해서 어려움당한 것을 보게 된다.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을 물론이고 후손들까지 망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회를 놓치니 유대인들이 이런 비참한 가운데 다른 어떤 민족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고난의 역사가 기회를 놓침으로 오게 되었다.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로 붙잡는 것이다. 고후6: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말씀하시면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얻을 때니라했다.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지금이 어떤 때인가, 지금이라는 시간과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교회로 불러주시고 말씀앞에 세워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주시고 구원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기회주시기 위해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셨다. 요 1:12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의 권세를 주었다고 말씀했다. 어떻게 영접하는가. 롬10:9-10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 했다.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여러분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모든 축복의 시작인 생명얻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로 말씀에 대한 체험이다.
말씀에 대한 체험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것이 사실로 체험된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 체험되어져야 그 다음에 말씀이 체험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안에 주어진다. 그래서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나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했고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11절에 이 세상 사람들이 그 빛을 영접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시면서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하나님의 자녀되는-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 생명가진 상태를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온 내주하는 상태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내 마음과 내 욕심과 내 계획대로 살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있다. 그 걸음에 내 뜻과 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말씀이 깨달아 들리어지게 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때에 내 뜻과 내 중심으로 살았던 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 받게 되고 성령인도 받는 눈이 열리면서 말씀에 대한 눈이 열림과 더불어 말씀의 성취가 되는 사실을 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성경을 읽는 사실속에 성령에 인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대 네거리에 큰 불교가 서 있다. 엄청난 세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불교 대학원을 나오는 사람이 한해 8천명이되고 신도수가 1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주지 스님이 인터뷰 하는 가운데 자신은 성경도 읽는다고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아무나 깨닫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임할때에 말씀이 들리어지고 깨달아지고 그 말씀속에 참된 축복의 성취를 보게 되어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특별히 현장전도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길이 있는데 이것이 성경대로구나 하는 사실에 눈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되면 어떤 문제와 사건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보이게 되고 그 사건속에서 여유와 평안을 보게 된다. 말씀의 성취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것은 강권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강권적으로 역사하실수도 있다. 기도도 그렇게 할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순서가 있다. 먼저 말씀을 주시고 말씀대로 성취하신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성경대로구나 하는 사실에 눈이 열릴때부터 참된 신앙생활의 축복이 시작되고 전도운동도 이것이 성경적인 전도운동이구나 확인될때부터 참된 응답이 오게 된다.
성경에 렘넌트 7명 보라. 그리고 초대교회 순교자들을 보라. 그들이 그 신앙을 지키고 이길수 있었던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라는 사실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여러분 지난 주간에도 강단을 통해 2부에 말슴주셨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말씀에 은혜받고 말씀붙잡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것이고 복음에 뿌리내리수록 말씀을 깨닫고 말씀에 은혜입고 말씀속에서 기도제목붙잡고 승리할수 있다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살지만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내 계획과 내 중심대로 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는 것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도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령의 인도하심속에서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옵소서 기도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어떤 문제와 사건을 당하든지 간에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사실이 보여지면 고백되는 것이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는 믿음의고백속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로 모든 삶을 축복으로 인도하신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행 13:26-29 보기 바란다.
26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32절에 보면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절에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함이라. 시편둘째편에 기록한 바와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우리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체험하여야 할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이다. 이땅의 모든 일들과 계획과 작정이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응해져가는 과정이다. 혹여나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에 본인에게 이해할수 없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분명한 것은 좋은 것으로, 선한 것으로 축복하시고 인도하신다. 눅 11:11-13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자가 어디 있느냐 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자가 어디있느냐. 그러면서 13절에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하신, 저주와 재앙과 죽음과 지옥의 권세를 해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고 인도하신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믿음가지고 말씀붙잡고 승리하길 바란다.
여러분 구원 받고 구원 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중요한것은 그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속에 빠져서 속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 문제와 사건속에서 하나님바라보라고 주신 문제인데 하나님 바라보지 못함으로 실패하는 것이다. 시 81:11-14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14절 여호와를 청종하면 하나님이 손을 들어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겠다 말씀하셨다. 렘 33: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너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힘을 주시나니. 말씀붙잡고 여호와를 바라봄으로 참된 승리의 축복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복음은 변하지 않고 매이지 않는다. 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하나님이 구원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게 되어있다. 여러분이 가진 복음 결국은 성취되게 되어있다. 내것을 통해 구원받았다면 불안할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작정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여주셨기 때문에 그 어떤 세력도 빼앗아 갈수 없다. 구원은 우리가 찾아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것이다. 그래서 요일5: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우리가 찾아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구원의 증거를 자꾸 은혜속에서 체험하려고 하는데 체험이 없어도 좋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전 12:3 그 어느누구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대로 붙잡으시고 성경대로 확신가지시기 바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된다 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다른 것이 여러분의 믿음에 근거가 아니라 말씀의 믿음에 근거한 믿음속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을 맺는다.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기로 본인 뿐만 아니라 자손만대 저주와 재앙가운데 실패하는 유대인이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축복이 있다. 이 구원의 은혜속에서 늘 생명을 체험하고 말씀대로라는 사실을 체험함으로 오늘보다는 내일이, 여러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더 큰 축복의 역사로 쓰임받는 귀중한 역사들이 시작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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