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치료하시는 하나님
2006-06-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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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사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이다. 27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것을 가지고 제목을 잡았다.
제목을 정하면서 본문을 읽어가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제목을 정하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제목을 정해지는 데에 따라 설교도 다르게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주일날 예배 때 제목을 보고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엄청난 축복의 비밀을 나타내실 것이다. 제목을 삼고 싶었던 부분은 치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기어코 하나님의 자녀를 축복하신다는 것이다. 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27절에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풍성함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중에 특별히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제목으로 잡았다. 한 주간 우리의 불신앙이 치료되고 믿음을 회복합시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한 것이 있다. 왜 하나님 나를 부르셨고 어떠한 곳에서 나를 부르셨고 무엇 때문에 나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모든 것이 우선이 되어야한다.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성공하는 요소로 보지만 영적인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것부터 모든 축복과 응답이 시작되어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작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을 발견하고 깨닫는데서 모든 것이 시작이 되어야한다. 왜 자꾸 신앙생활을 하는데 힘이 없고 갈등이 생기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치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될 때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기 위한 40일간의 여정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분명히 발견되고 붙잡아 진다면 그 속에서 그 목적에 따라 움직이게 되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목적이 발견되어지게 되면 우리가 움직여지게 되어있고 내 인생이 만들어가진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문제를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된다.
바울에게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중심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 중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바울은 기도가 되었다. 롬1:9-10에 보면 하나님이 내 증인된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을 얻기를 원하노라. 어찌하든지 로마의 성도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기도대로 롬16장을 보면 로마를 복음화할 일꾼들이 바울에게 붙여지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나님께서 나를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신다는 일이 학교 현장에서 발견되어진다고 말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쉬운 것이 아니고 이것이 모든 축복의 시작이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복인데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니까 어려움에 빠지면 불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본문에 보면 가나안 땅에 가는 길에 물이 없어지는 어려움을 당하였다. 마라지역에 가니까 물이 써서 먹질 못하니까 흔들리고 원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지난주 출15:1-18에 보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너무 기뻐서 모세를 중심으로 찬양을 할 때는 언제고 얼마 되지 않아서 물 때문에 또 원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도응답이 되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면 내가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인가 의심할 때도 있다. 결국은 주저앉아버릴 때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렇게 빠지게 되어있다. 지난 금요일 전도학교 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기도응답이 되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응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도응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하는 의문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무 응답이 없는 것 같다고 할지라도 신앙이 주저앉아있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에도 하나님은 시선은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은 응답하고 계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빌 1:6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비록 아무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 나가고 계신다. 빌1:11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인도해나가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속지마라.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이 시대에 전도자로 부르신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어있음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 데려가시면 되는데 왜 이러한 어려움을 주시는가?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 데려가면 되는데 왜 광야의 길에서 어려움을 주시는가?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과 우리의 방향이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신분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으로 할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백성을 때에 따라서 고난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 자꾸 어려움을 주시는가?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본문의 26절에 나 여호와의 말을 청중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이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명 받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때에 따라서 고난을 주실 수도 있는 것이다. 시81:13에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기를 원하고 내 도 행하기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시고 이렇게 되어질 때 하나님의 능한 손을 들어 대적을 하나님께서 치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청종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되어있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 볼때 그 안에서 모든 축복을 해결하도록 하셨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는 분들은 시50:15에 보면 환란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축복의 눈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을 알고 바라보는 것에서 모든 것이 바로 되게 되어있다. 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자꾸 일어나는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할 인간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데서 이 모든 문제를 당한다는 사실이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세상에 점점 어려움과 고통이 계속되는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육신적인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아무리 지식과 명예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육신적인 것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단의 전략은 눈에 보이는 것에 통해서 그러한 것들을 주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돈이 있으면 편할지도 모른다. 명예와 지위가 있으면 편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은 행복한 것이 아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부분은 돈도 많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모르니까 그러한 갈급함이 삶 속에서 나타나는데 아무리 주변에 모든 환경이 갖추어지고 다 잘 대해준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결국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어떤 분은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참된 평안이 없으니까 밤새도록 떠돌아다녀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육적인 것만으로는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영적으로 부유하다고 하면 그 속에서 참된 축복과 평안이 나타나도록 되어있다.
요삼1:2에 내 영혼에 잘된 것 같이 범사에 잘되고, 영적인 것을 모르고 잘되고 있는 것은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반대로 영적인 힘을 알고 있는데도 힘이 없고 잘 되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잘 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적인 힘을 잃게 될 때에 모든 삶도 되지 않는 것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적으로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다운된 상태가 되면 모든 것이 귀찮고 신경질이 난다. 생활자체가 힘들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육신적인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영적으로 만족해야 평안과 안식이 나타난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고난의 길로 인도해 나가시느냐면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하나님만 알고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바라볼 수 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서 해방받게 되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걸음걸음마다 기적으로 역사하게 되어있다. 그 어떤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그 어려움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잊지말아야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놓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버림 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후4:7-10절에 보면 우리는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연약하고 힘이 없고 늘 죄 가운데에 있는데도 그러한가? 그렇다. 우리 자신을 보면 쓰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부르셨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롬5:8에 보면 우리가 잘해서 우리를 부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 때 진정한 응답의 문이 열려지게 된다.
삼상19장에 보면 앗수르왕이 이스라엘을 공격을 하는데 히스기야왕이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날 밤에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동원하셔서 18만 5천을 송장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다른 것을 쳐다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쳐다보시기를 원하신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시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나니. 문제와 사건을 당할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사인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얼마나 큰 것 인가를, 신분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신다. 26절에 보면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네게 내리지 않으리니.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고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힘든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고생하며 실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할 이유를 알았을 때 신분을 깨달았을 때부터 본격적인 축복의 문을 열어가셨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깨닫고 누려지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축복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고, 전도자로 축복하여 부르셨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참된 응답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하지 못하는 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 땅에는 저주와 흑암의 세력들이 일어난다. 우리를 얼마나 축복된 자리에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자녀된 축복의 비밀이다.
아브라함이 이 축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창14:17부터 보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전쟁을 통해서 끌려간 것을 알고 아브라함이 구출해내면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보면서 모든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하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소돔왕에게 나는 실오라기하나라도 취하지 않겠다. 그것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까봐 나는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신을 축복하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의 신분에 대한 확신, 하나님 나를 축복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그 만큼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창30:25-31에 보면 야곱이 얼마만큼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시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확신이 있는만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어있고 세상의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라반의 하나님의 역사를 야곱을 통해서 보았고 야곱도 그 사실을 인정한 부분이다. 여기에 보면 야곱이 보면 아무것도 내게 줄 것이 없다. 자기 신분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신분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는 신분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아는만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이 공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정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야곱이 확신했던 부분은 하나님만이 나를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야곱이 가지고 있던 신분의 확신이었다.
창34장에 보면 야곱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야곱이 창35:3에 보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자신의 신분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벧엘은 하나님을 만나고 누렸던 장소이다. 그곳에 언약이 있는 장소에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가자. 다른 것이 아니라 야곱의 신분에 대한 확인과 고백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참된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분을 확인하고 회복하는 것이 참된 응답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내 신분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은 마28:18-20은 명려잉기도 하지만 우리의 신분이기도 하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신분인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께서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신분을 가진 자녀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분을 회복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복음화의 대열속의 하나교회 안에서 목회자로, 중직자, 평신도로 부름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한 신분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계속 되어진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축복된 자리임을 깨달아야한다.
셋째, 왜 자꾸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서 7족속 31왕을 꺾어야하는데 가나안땅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꺾어야하는데 믿음을 가지고 이러한 사명을 깨닫고 들어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광야 속에서 그 믿음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성경과 세계 역사를 보면 우상이 창대해지고 우상숭배가 극에 달하게 될 때에 이유없이 재난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마지막에 일어나는 일이 전쟁인 것이다. 교회사와 역사를 통해서보면 바벨론과 앗수르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속국 삼았는가? 왜 세계에 전쟁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역사를 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특별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솔로몬이 우상숭배하는 이방여인들을 데려와서 우상섬김을 하였는데 그로 말미암아 그 이후에 나라가 둘로 나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상숭배가 나중에는 비극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을 바로 전하면 나라가 회복되게 되어있다. 재난과 어려움이 나타나도 우리가 현장에서 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세상은 회복되게 되어있는 것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어려움을 당하게 하였는가? 가나안땅에서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꺾기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셨다. 여호와를 바라보는 시각과 축복을 깨닫는 신분회복과 가나안 땅에 무엇을 해야하는가 사명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어려움으로 인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에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모세는 어떻게 했는가?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모세가 나무를 던짐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 쓴물이 먹는 물로 바뀌어지는 역사의 능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를 했더니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게 되어있다. 언약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게 되어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가는 걸음동안 광야같은 걸음을 인도하시는가? 참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를 아는 사람은 중요한 일이 생기면 또 기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직장 속에서 성공하는 길이 있는데 많은 자본, 최고의 기술, 자본과 기술이 없다하더라도 미래를 보는 눈을 갖고 있으면 성공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한 미래를 보는 눈은 하나님을 아는데서 그러한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영감에 의해서 글을 쓰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책들이 많이 읽히고 팔려진다. 노래를 하는 사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은혜를 받게 될 때에 엄청난 역사가 우리의 걸음 속에 역사하실 것이다. 이번 한주간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그 어려움과 힘듬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축복을 회복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축원한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무엇을 하기 전에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확인하여야 할 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된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것부터 확인하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참된 응답, 축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왜 자꾸 힘이 듭니까? 왜 자꾸 갈등이 생갑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출발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축복된 길인데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해 자꾸만 어려움을 당하고 흔들리고 원망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꾸 고난 가운데로 데리고 가십니까?

<본론>
1. 하나님만 바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출15:26)
1) 하나님 아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것만 되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시81:13-14, 사40:31)
2) 왜 세상 인생이 멸망받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3) 육신의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4)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롬8:31-39, 고후4:7-10)
5) 다른 것을 자꾸 쳐다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삼상19:14-35, 히스기야왕)

2.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 가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분회복)
(출15:26 나의 모든 규례를 지키면)
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모르면 고생을 합니다. (아브라함/야곱)
2) 마 28:18-20 축복이지만 신분입니다. - 모든 족속을 제자 삼을 신분입니다.
3) 세계복음화하는 하나교회, 목사, 중직자, 성도로 부르심의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앞으로 할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명회복)
1)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7족속 31왕을 꺾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우상숭배를 막아야하기 때문입니다.
2) 성경과 역사에서 보면 우상으로 말미암아 재난이 임하고 그 다음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3) 우리가 올바른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이 나라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4) 가나안에 들어가서 7족속 31왕을 멸하고 우상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이때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모세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출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1)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2)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아는 사람은 중요한 일이 생기면 또 기도를 합니다.
3) 하나님을 바라보고 은혜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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