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적인 증거를 영원히 기억하라
2007-01-2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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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제목을 <기념비적인 증거를 영원히 기억하라>으로 잡았다. 우리가 응답받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길은 너무나 간단하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이 든다면 그것은 무언가 모르게 신앙생활을 잘못 인도받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고 응답받는 길은 간단한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면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응답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지면 시대적인 축복을 받게 되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내 인생의 미래가 되어진다면 우리의 후대와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찬양대가 찬양을 부른 것처럼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될 때에 거기에서 시대적인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소원을 정말 내가 알고 붙잡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속에 내 인생의 미래가 거기에 방향 맞추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나갈 때에 나타나는 응답이 있다면 언약적인 축복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기념비적인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환경과 여러분이 가진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언약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하나님의 소원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맞추어 나간다면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다.
요셉이라는 인물을 보면 노예이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요셉은 언약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기념비적인 축복, 결국은 요셉으로 말미암아 모든 형제들을 먹여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리는 기념비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이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언약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걸음 속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더 완벽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요셉과 다니엘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 속에 하나님의 소원을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면 지금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완벽한 완전한 응답이 주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게 되어있다.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홍해도 요단도 갈라졌다. 여리고도 무너졌다.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추어지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다. 언약 붙잡은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움직여 나가신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움직여 나가신다는 것이다. 이 언약을 놓치면 전쟁의 포로로, 재앙으로 임하게 되어지는 것을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통해 보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언약을 놓쳐버리면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고 그 우상 숭배하는 배후에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과 고난과 고통과 실패의 역사를 겪게 되어진다. 하나님의 언약은 간단하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고 영원하고 살길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것이고 영원한 것이고 우리 인생의 살길이라는 이 자체가 바로 언약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가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면,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누리면 세계를 정복하게 되어있다. 지난 주 2부 강단의 메시지를 통해서 목사님의 말씀 증거 중에서 정말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구원의 기쁨이 전 생애를 지배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축복의 역사들이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현장을 정복하게 되어있다. 내가 그리스도 앞에 지배당하게 당하는 만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내게 넘쳐나는 만큼, 우리의 모든 현장은 정복되어지게 되어있다.
지난 특별새벽기도회 때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분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큰 상처를 한 가지 가졌다.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상처였다.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없고 도저히 용서가 안되어지는 그런 가운데 지내다가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이 들려지고 그 영혼 속에, 마음 속에 뿌리내려짐으로 말미암아 어느 날 이러한 고백이 되어졌다. 습3:17에 나오는 그 고백을 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이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 잔잔히 사랑하시는 것이 깨달아진다고 고백을 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부분이 내가 깨달아진다고 하면서 고백하는 부분이 내가 도저히 용서가 안되어지고 용서할 수도 없는 사람인데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불쌍하다, 그 영혼에 대한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복음 안에서 이해가 되어지면서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그러면서 그를 향한 용서의 마음이 나가게 되어지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진짜 구원을 받은 생명에 대한 축복의 비밀들이 내게 넘쳐나는 만큼,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이 이 땅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현장을 어떻게 정복하고 경제를 어떻게 정복하고 문화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언약 되신 그리스도의 비밀, 그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리면 누리는 만큼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일평생 동안에 정말로 기도할 것은 ‘구원의 하나님의 자녀된 이 기쁨이 내게 최고로 풍성하게 넘쳐나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 구원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내 생애를 지배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 속에서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릴수록 정복하고 다스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현장을 이기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사단의 세력이 꺾여지게 되어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가정과 가문과 자녀들에게 역사하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사단의 역사들이 떠나가게 되어있다.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현장을 정복하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고백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움직여지고 있다. 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면서 이 언약의 축복을 후대들에게 전달하는 귀한 축복된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수4장 본문을 통해서 이 언약의 축복을 내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하는 부분과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길 원한다. 특별히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린다. 하나님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하나님이 목표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이 수4장에 나와 있다. 집중해서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로 그 추복을 누리게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 하나님이 목적으로 하시는 축복,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 한주간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응답받는 축복이 있길 원한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목표로 하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 후대들을 복음의 언약의 역사 속에 세워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렘넌트 운동이다.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응답도 응답이지만 축복이 오게 되어있다. 진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응답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을 베푸신 목적도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수4장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수3장과 연결되는 것이 수4장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지막 가나안땅의 정복을 앞두고 있다. 그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앞두고 있는 그 시점에서 요단강에 이르러서 그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셨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에 발을 디뎌 놓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을 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수3장 마지막에 보면 이 말씀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요단강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같이 건넜다고 수3장 마지막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 중에서 수4장에 보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의 중심에 있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명령을 내린다. 12지파의 한 사람씩 선택해서 그 한사람씩 요단 안에 있는 돌을 취해서 어깨에 메고 나갈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돌을 어깨에 메고 나가서 결국은 길갈에 세우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왜 12지파의 한사람씩 선택해서 그 한사람들이 요단 강안에 있는 돌을 취해서 요단강 밖에 돌을 박고 기념했는가? 거기에 대한 중요한 목적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6절을 보면「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7절「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21절「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22절「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기념비적인 축복된 역사를 후대들로 말미암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가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알도록.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를 위해서 우리에게 기념비적은 축복을 주신다. 24절에「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모든 백성들로 알게 하도록 다시 말해서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의 후대들이 자녀들이 하나님만 섬기도록. 오직 그리스도 아니고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다. 우리 후대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를 바라보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로 말미암아 증거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다.
아이들이 부모님들이 율법생활을 하면 아이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다 안다. 결국은 힘이 없어서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나오지만 철이 들면 결국 교회를 떠나간다. 부모님들이 율법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녀들이 말은 안해도 보고 안다. 결국은 어릴 때는 그냥 부모 따라 쫓아다니지만 철이 들면 교회가 힘없어 보이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부모가 교회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인본주의를 쓰고 염려하고 대책을 세우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보면 결국 아이들이 부모를 본받을 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부모인 우리들이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해결자라는 답이 내려진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그 믿음이 전달되게 되어있다.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참된 믿음을, 우리 후대들에게 참된 기념비적인 축복을 전달할 것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된 우리들이 언약 안에 섬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만큼 아이들이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어있다. 영적인 사실 때문에 알게 되어있다.
우리 인생에서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인생에 문제가 왔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가지고 원죄라고 한다. 롬3:23에 보면「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말씀하셨다. 이 땅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모든 것의 문제인데 그 하나님을 떠는 그 자체를 가지고 원죄라고 한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물론 그것도 좋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원죄가 무엇인가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와 관계없이 온 원죄, 이 부분 때문에 결국 인생이 저주와 재앙과 실패를 당하게 되어있다. 결국 신분이 마귀의 자녀가 되어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음이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원죄 가운데 빠지고 결국은 마귀의 자녀가 되고, 마귀에게 장악되고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oneness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창조의 원리를 알지 않는가? 물고기는 물에 살아야 하고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oneness하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의 궤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서 결국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운명에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oneness되어야할 인생이 사단의 역사로 하나님과의 oneness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부부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자녀와의 깨어지고 모든 인간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깨어지게 되어있다. 결국은 우리 가정의 문제들, 부부간의 문제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거기서 온 것이다.
사단의 손에서, 운명에서 빠져나오는 길, 방법을 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이 누구인가? 그리스도이다. 이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답을 부모님이 갖고 있는 만큼 자녀들이 보지 않고도 알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자녀들에게 이 영적인 축복이 전달됨으로 말미암아 말 안해도 존경하지 말라고 해도 존경하게 되어있고 아이들에게 정말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답이라는 사실이 전달되어질 때 아이들은 그 속에서 공부해야할 이유와 왜 내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발견되어진다. 결국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바로 전달될 때에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 무언가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거기에 성공된 축복된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 이미 수2장에 보면 라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다고 했다. 수6장에 보면 여리고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가른 사건을 이미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다. 꼭 우리가 말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답이 있고 유일한 길이고, 내 인생의 모든 해결자라는 답이 내려지는 만큼 우리 후대들에게 이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화가 되어지는 구나라는 것이 깨달아 지고 이 사실이 붙잡혀지고 그 사실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부모를 존경하게 되어 있고 그 사실 속에서 내가 왜 살아야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부모된 우리들이 완전한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완전한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 후대들에게 바른 언약이 전달되면서 승리하게 되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의 바통을 바르게 넘겨줌으로 말미암아 참된 이 땅의 문화권을 바꿔놓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래서 본문에 수4장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후일에 내 자손들이 묻거든. 모든 삶의 중심과 소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인 렘넌트에 방향을 맞추어 나갈 때에 우리의 미래는 있는 것이고 후대들은 살아나게 되어있다. 핵심에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면 응답받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지면 시대적인 역사를 감당하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방향이 나의 미래가 되어지면 후대와 미래가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이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경 전체가 사실은 후대들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신 것이다. 언약이라는 부분이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도 이루어지는 부분도 말씀하고 있지만 언약이라는 중심에는 후대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는, 후대에 대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신학적으로 언약이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왜 그런 말을 했는가? 바로 이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된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전체를 보면 후대에 대한 축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보게 된다. 성경전체에서 이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을 보면 언제 하나님이 축복하셨고, 무엇 때문에 축복하셨고, 언제 실패를 했는가를 살펴보라. 축복하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왜 그 사람을 축복했는가를 잘 살펴보라. 전부다 그 중심에는 렘넌트, 후대에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는 7명의 렘넌트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성경이 전개 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결국에 교회의 미래는 없게 되어졌다. 세상이나 종교에서는 복음 없이 이 부분에 일찍 눈을 떠서 이 부분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교회만큼은 이 부분을 다 놓치고 있다.
신6:4-9「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자녀들에게 완전히 알게 하라는 것이다. 오늘 주보에 광고가 나갔지만 초등학교 전도신학원이 이번 학기부터 시작되어진다. 시대를 놓고 자신들을 놓고 보라. 결국은 왜 하나님이 렘넌트들을 일으키는가 그 이유가 답이 나와지게 되어있다. 어릴 때부터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그래야 복음화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초등전도신학원을 놓고 자녀를 둔 한사람 한사람이 응답받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데 엄마하고 아이가 한바탕 싸웠는데 엄마가 아이를 못 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그 앞에서 울어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조금 아이들이 머리가 크면 부모의 말이 안 들어간다. 못 이긴다. 어릴 때야 윽박질러서 따라오게 하지만 지나면 눈에 힘을 주고 아이들이 대든다. 어릴 때부터 복음에 뿌리내려지지 않으면 사실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다.
유대인을 보라. 어릴 때부터 유대사상이 완전 사상이 되어지도록. 그래서 어릴 때 가정교육. 전 세계 현장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 아닌가? 전 엘리트 현장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 아닌가? 전 세계의 모든 조직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다. 그들이 그냥 그렇게 장악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미 가정에서 완전교육이 되어진다. 조금 크면 회당을 통해서 탈무드나 율법서를 배우게 되고, 조금 더 크면 밖에 나오면서 로지(Lodge)라고해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좀 더 크면 기성세대가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프리메이슨(Free mason)쪽으로 집어넣고, 결국 그들로 말미암아 조직을 만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조직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류목사님 메시지에서 계속 말하고 있지만 프리메이슨이나 싱크탱크 이런 것들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유대인들의 작업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 세계를 장악했지만 복음 가지지 않아서 계속적인 어려움과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후대들로 말미암아 이 유대인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비밀이 복음 안에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 복음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유대인을 살리지 못한다. 땅 끝이 어디인가? 유대인이다. 유대인까지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우리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번 청소년 중고사명자대회 메시지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유대인을 능가하는, 전 세계 선진국을 능가하는 축복된 응답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하라. ‘정말 내 자녀가 유대인을 능가하는, 전 세계 엘리트 조직을 살릴 수 있는 응답을 받게 하소서’ 기도하라. 가능하다. 왜 인가? 유대인까지도 살릴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유대인들은 다 가졌지만 이 복음을 몰라서 결국 어려움과 재난의 연속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복음이 있다. 그 복음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이 복음을 통해서 유대인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은 후일에 내 자손들이 묻거든. 바로 후대, 렘넌트,. 자녀들에게 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다.
두 번째로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로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다. 오늘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 요단강가에 서있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언약궤를 붙잡고 요단강에 발을 내딛었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다. 믿음으로 언약을 잡고 나갈 때 그 어떤 문제들도 해결되게 되어있다. 믿음을 회복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잘 아신다. 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요단강과 같은 문제를 주셨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게 한 것을 보게 된다. 문제와 위기 앞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보면 된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고 있으면 된다. 그래야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이 증거되게 되어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면 그것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된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왜냐? 그래야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이 보여질 것이다. 내 노력으로 하면 내 노력으로 된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든지 믿음 회복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봄으로 그 일에 증거를 가지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문제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에 역사하셨고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계시고 미래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23절에「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과거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14절에「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여호수아로 말미암아 그 때에 현재에 역사한 것을 말씀하고 있다. 25절에 보시면「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미래까지도 보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는 완전 해결되고 끝났다.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셨다. 과거는 모두 끝나버렸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과거는 끝나버렸다. 현재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세밀하게 인도하신다.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면서 현재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마치 요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그 현재에 역사하셨던 것처럼 지금 현재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신다. 또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왜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내가 들어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방향이 내 인생의 미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방향은 구원사역,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또 이 일을 전달할 언약의 바통을 이어갈 후대에게 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것,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후대, 이 축복된 것이 언약이다.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한 시대에 기념비적인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제목을 <기념비적인 증거를 영원히 기억하라>으로 잡았다. 우리가 응답받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길은 너무나 간단하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이 든다면 그것은 무언가 모르게 신앙생활을 잘못 인도받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고 응답받는 길은 간단한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면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응답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지면 시대적인 축복을 받게 되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내 인생의 미래가 되어진다면 우리의 후대와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찬양대가 찬양을 부른 것처럼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될 때에 거기에서 시대적인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소원을 정말 내가 알고 붙잡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속에 내 인생의 미래가 거기에 방향 맞추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나갈 때에 나타나는 응답이 있다면 언약적인 축복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기념비적인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환경과 여러분이 가진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언약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하나님의 소원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맞추어 나간다면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다.
요셉이라는 인물을 보면 노예이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요셉은 언약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기념비적인 축복, 결국은 요셉으로 말미암아 모든 형제들을 먹여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리는 기념비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이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언약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걸음 속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더 완벽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요셉과 다니엘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 속에 하나님의 소원을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면 지금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완벽한 완전한 응답이 주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게 되어있다.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홍해도 요단도 갈라졌다. 여리고도 무너졌다.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추어지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다. 언약 붙잡은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움직여 나가신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움직여 나가신다는 것이다. 이 언약을 놓치면 전쟁의 포로로, 재앙으로 임하게 되어지는 것을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통해 보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언약을 놓쳐버리면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고 그 우상 숭배하는 배후에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과 고난과 고통과 실패의 역사를 겪게 되어진다. 하나님의 언약은 간단하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고 영원하고 살길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것이고 영원한 것이고 우리 인생의 살길이라는 이 자체가 바로 언약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가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면,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누리면 세계를 정복하게 되어있다. 지난 주 2부 강단의 메시지를 통해서 목사님의 말씀 증거 중에서 정말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구원의 기쁨이 전 생애를 지배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축복의 역사들이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현장을 정복하게 되어있다. 내가 그리스도 앞에 지배당하게 당하는 만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내게 넘쳐나는 만큼, 우리의 모든 현장은 정복되어지게 되어있다.
지난 특별새벽기도회 때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분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큰 상처를 한 가지 가졌다.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상처였다.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없고 도저히 용서가 안되어지는 그런 가운데 지내다가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이 들려지고 그 영혼 속에, 마음 속에 뿌리내려짐으로 말미암아 어느 날 이러한 고백이 되어졌다. 습3:17에 나오는 그 고백을 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이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 잔잔히 사랑하시는 것이 깨달아진다고 고백을 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부분이 내가 깨달아진다고 하면서 고백하는 부분이 내가 도저히 용서가 안되어지고 용서할 수도 없는 사람인데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불쌍하다, 그 영혼에 대한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복음 안에서 이해가 되어지면서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그러면서 그를 향한 용서의 마음이 나가게 되어지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진짜 구원을 받은 생명에 대한 축복의 비밀들이 내게 넘쳐나는 만큼,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이 이 땅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현장을 어떻게 정복하고 경제를 어떻게 정복하고 문화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언약 되신 그리스도의 비밀, 그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리면 누리는 만큼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일평생 동안에 정말로 기도할 것은 ‘구원의 하나님의 자녀된 이 기쁨이 내게 최고로 풍성하게 넘쳐나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 구원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내 생애를 지배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 속에서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릴수록 정복하고 다스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현장을 이기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사단의 세력이 꺾여지게 되어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내게 강한 만큼 가정과 가문과 자녀들에게 역사하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사단의 역사들이 떠나가게 되어있다.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현장을 정복하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고백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움직여지고 있다. 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면서 이 언약의 축복을 후대들에게 전달하는 귀한 축복된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수4장 본문을 통해서 이 언약의 축복을 내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하는 부분과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길 원한다. 특별히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린다. 하나님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하나님이 목표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이 수4장에 나와 있다. 집중해서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로 그 추복을 누리게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 하나님이 목적으로 하시는 축복,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고 한주간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응답받는 축복이 있길 원한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목표로 하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 후대들을 복음의 언약의 역사 속에 세워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렘넌트 운동이다.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응답도 응답이지만 축복이 오게 되어있다. 진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응답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을 베푸신 목적도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수4장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수3장과 연결되는 것이 수4장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지막 가나안땅의 정복을 앞두고 있다. 그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앞두고 있는 그 시점에서 요단강에 이르러서 그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셨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에 발을 디뎌 놓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을 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수3장 마지막에 보면 이 말씀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요단강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같이 건넜다고 수3장 마지막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 중에서 수4장에 보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의 중심에 있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명령을 내린다. 12지파의 한 사람씩 선택해서 그 한사람씩 요단 안에 있는 돌을 취해서 어깨에 메고 나갈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돌을 어깨에 메고 나가서 결국은 길갈에 세우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왜 12지파의 한사람씩 선택해서 그 한사람들이 요단 강안에 있는 돌을 취해서 요단강 밖에 돌을 박고 기념했는가? 거기에 대한 중요한 목적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6절을 보면「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7절「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21절「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22절「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기념비적인 축복된 역사를 후대들로 말미암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가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알도록.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를 위해서 우리에게 기념비적은 축복을 주신다. 24절에「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모든 백성들로 알게 하도록 다시 말해서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의 후대들이 자녀들이 하나님만 섬기도록. 오직 그리스도 아니고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다. 우리 후대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를 바라보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로 말미암아 증거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다.
아이들이 부모님들이 율법생활을 하면 아이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다 안다. 결국은 힘이 없어서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나오지만 철이 들면 결국 교회를 떠나간다. 부모님들이 율법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녀들이 말은 안해도 보고 안다. 결국은 어릴 때는 그냥 부모 따라 쫓아다니지만 철이 들면 교회가 힘없어 보이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부모가 교회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인본주의를 쓰고 염려하고 대책을 세우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보면 결국 아이들이 부모를 본받을 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부모인 우리들이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해결자라는 답이 내려진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그 믿음이 전달되게 되어있다.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참된 믿음을, 우리 후대들에게 참된 기념비적인 축복을 전달할 것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된 우리들이 언약 안에 섬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만큼 아이들이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어있다. 영적인 사실 때문에 알게 되어있다.
우리 인생에서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인생에 문제가 왔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가지고 원죄라고 한다. 롬3:23에 보면「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말씀하셨다. 이 땅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모든 것의 문제인데 그 하나님을 떠는 그 자체를 가지고 원죄라고 한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물론 그것도 좋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원죄가 무엇인가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와 관계없이 온 원죄, 이 부분 때문에 결국 인생이 저주와 재앙과 실패를 당하게 되어있다. 결국 신분이 마귀의 자녀가 되어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음이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원죄 가운데 빠지고 결국은 마귀의 자녀가 되고, 마귀에게 장악되고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oneness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창조의 원리를 알지 않는가? 물고기는 물에 살아야 하고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oneness하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의 궤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서 결국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운명에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oneness되어야할 인생이 사단의 역사로 하나님과의 oneness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부부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자녀와의 깨어지고 모든 인간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깨어지게 되어있다. 결국은 우리 가정의 문제들, 부부간의 문제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거기서 온 것이다.
사단의 손에서, 운명에서 빠져나오는 길, 방법을 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이 누구인가? 그리스도이다. 이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답을 부모님이 갖고 있는 만큼 자녀들이 보지 않고도 알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자녀들에게 이 영적인 축복이 전달됨으로 말미암아 말 안해도 존경하지 말라고 해도 존경하게 되어있고 아이들에게 정말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답이라는 사실이 전달되어질 때 아이들은 그 속에서 공부해야할 이유와 왜 내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발견되어진다. 결국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바로 전달될 때에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 무언가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거기에 성공된 축복된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 이미 수2장에 보면 라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다고 했다. 수6장에 보면 여리고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가른 사건을 이미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다. 꼭 우리가 말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답이 있고 유일한 길이고, 내 인생의 모든 해결자라는 답이 내려지는 만큼 우리 후대들에게 이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화가 되어지는 구나라는 것이 깨달아 지고 이 사실이 붙잡혀지고 그 사실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부모를 존경하게 되어 있고 그 사실 속에서 내가 왜 살아야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부모된 우리들이 완전한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완전한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 후대들에게 바른 언약이 전달되면서 승리하게 되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의 바통을 바르게 넘겨줌으로 말미암아 참된 이 땅의 문화권을 바꿔놓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래서 본문에 수4장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후일에 내 자손들이 묻거든. 모든 삶의 중심과 소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인 렘넌트에 방향을 맞추어 나갈 때에 우리의 미래는 있는 것이고 후대들은 살아나게 되어있다. 핵심에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면 응답받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지면 시대적인 역사를 감당하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방향이 나의 미래가 되어지면 후대와 미래가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이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경 전체가 사실은 후대들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신 것이다. 언약이라는 부분이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도 이루어지는 부분도 말씀하고 있지만 언약이라는 중심에는 후대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는, 후대에 대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신학적으로 언약이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왜 그런 말을 했는가? 바로 이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된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전체를 보면 후대에 대한 축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보게 된다. 성경전체에서 이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을 보면 언제 하나님이 축복하셨고, 무엇 때문에 축복하셨고, 언제 실패를 했는가를 살펴보라. 축복하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왜 그 사람을 축복했는가를 잘 살펴보라. 전부다 그 중심에는 렘넌트, 후대에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는 7명의 렘넌트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성경이 전개 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결국에 교회의 미래는 없게 되어졌다. 세상이나 종교에서는 복음 없이 이 부분에 일찍 눈을 떠서 이 부분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교회만큼은 이 부분을 다 놓치고 있다.
신6:4-9「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자녀들에게 완전히 알게 하라는 것이다. 오늘 주보에 광고가 나갔지만 초등학교 전도신학원이 이번 학기부터 시작되어진다. 시대를 놓고 자신들을 놓고 보라. 결국은 왜 하나님이 렘넌트들을 일으키는가 그 이유가 답이 나와지게 되어있다. 어릴 때부터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그래야 복음화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초등전도신학원을 놓고 자녀를 둔 한사람 한사람이 응답받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데 엄마하고 아이가 한바탕 싸웠는데 엄마가 아이를 못 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그 앞에서 울어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조금 아이들이 머리가 크면 부모의 말이 안 들어간다. 못 이긴다. 어릴 때야 윽박질러서 따라오게 하지만 지나면 눈에 힘을 주고 아이들이 대든다. 어릴 때부터 복음에 뿌리내려지지 않으면 사실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다.
유대인을 보라. 어릴 때부터 유대사상이 완전 사상이 되어지도록. 그래서 어릴 때 가정교육. 전 세계 현장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 아닌가? 전 엘리트 현장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 아닌가? 전 세계의 모든 조직을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다. 그들이 그냥 그렇게 장악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미 가정에서 완전교육이 되어진다. 조금 크면 회당을 통해서 탈무드나 율법서를 배우게 되고, 조금 더 크면 밖에 나오면서 로지(Lodge)라고해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좀 더 크면 기성세대가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프리메이슨(Free mason)쪽으로 집어넣고, 결국 그들로 말미암아 조직을 만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조직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류목사님 메시지에서 계속 말하고 있지만 프리메이슨이나 싱크탱크 이런 것들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유대인들의 작업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 세계를 장악했지만 복음 가지지 않아서 계속적인 어려움과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후대들로 말미암아 이 유대인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비밀이 복음 안에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 복음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유대인을 살리지 못한다. 땅 끝이 어디인가? 유대인이다. 유대인까지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우리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번 청소년 중고사명자대회 메시지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유대인을 능가하는, 전 세계 선진국을 능가하는 축복된 응답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하라. ‘정말 내 자녀가 유대인을 능가하는, 전 세계 엘리트 조직을 살릴 수 있는 응답을 받게 하소서’ 기도하라. 가능하다. 왜 인가? 유대인까지도 살릴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유대인들은 다 가졌지만 이 복음을 몰라서 결국 어려움과 재난의 연속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복음이 있다. 그 복음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이 복음을 통해서 유대인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은 후일에 내 자손들이 묻거든. 바로 후대, 렘넌트,. 자녀들에게 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념비적인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다.
두 번째로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로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다. 오늘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 요단강가에 서있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언약궤를 붙잡고 요단강에 발을 내딛었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다. 믿음으로 언약을 잡고 나갈 때 그 어떤 문제들도 해결되게 되어있다. 믿음을 회복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잘 아신다. 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요단강과 같은 문제를 주셨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게 한 것을 보게 된다. 문제와 위기 앞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보면 된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고 있으면 된다. 그래야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이 증거되게 되어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면 그것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된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왜냐? 그래야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이 보여질 것이다. 내 노력으로 하면 내 노력으로 된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든지 믿음 회복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봄으로 그 일에 증거를 가지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문제 앞으로 인도하셨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에 역사하셨고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계시고 미래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23절에「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과거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14절에「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여호수아로 말미암아 그 때에 현재에 역사한 것을 말씀하고 있다. 25절에 보시면「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미래까지도 보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는 완전 해결되고 끝났다.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셨다. 과거는 모두 끝나버렸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과거는 끝나버렸다. 현재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세밀하게 인도하신다.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면서 현재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마치 요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그 현재에 역사하셨던 것처럼 지금 현재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신다. 또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왜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내가 들어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방향이 내 인생의 미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방향은 구원사역,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또 이 일을 전달할 언약의 바통을 이어갈 후대에게 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것,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후대, 이 축복된 것이 언약이다.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한 시대에 기념비적인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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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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