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
2007-04-1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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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제목을 20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모양 저모양의 모든 문제를 여호와께서 그리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꺠닫는 만큼 참된 평안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마음 심령 속에 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지난 주간에 전도캠프가 화, 수 이틀 동안 본 교회에서 있었다.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라는 제목으로 지난 2부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우리는 <현장에서 부활의 축복을 누리는 캠프가 되자>는 제목으로 1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서 19개의 지교회 중 8개의 지교회를 중심으로 전도캠프가 진행되었다. 총40개의 다락방이 열려지고 133명이 영접하게 되어지는 축복된 열매들이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약속 하신 부분이 있다면 말세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성령충만 받게 될 때에 세계를 복음화할 것을 말씀하셨다. 특별히 전도캠프와 지교회 중심의 사역을 통해서 이번에 특별히 제 자신에게 확인되어지고 확신 가운데 서게 된 것은 비록 시간이 더디고 지체된다고 할지라도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일을 지금 진행 중에 계신다는 부분을 확인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도 복음에 대해서 깨닫고 누려지고 또 그 복음 속에서 가정과 가문, 친지들을 바라보면서 기도제목이 나와지고 또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기어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변화시키고 바꾸셔서 하나님이 이 축복된 역사를 감당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오늘 또한 임직자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가 2부 예배 후에 진행이 된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는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계속 속에서 한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특별히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를 감당하는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일꾼이 세워지는 부분들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다. 또 이 일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자체가 축복 중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꾼을 세우는 일을 두고 기도하시되 특별히 복음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의 현장을 놓고 이 복음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꾼들이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어제 핵심에서 류목사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유럽교회, 한때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유럽교회들이 문을 닫고 교회마저도 모슬렘 권에 팔리게 되는 비극 아닌 비극들이 지금 주어지고 있다. 사분의 삼 정도가 완전 모슬렘 권이 유럽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씀했다. 무엇 때문인가? 참된 복음의 가치를 현장에서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과 우리교회를 통해서 일꾼을 세우실 때는 이 하나님의 한 맺힌 소원들이 일꾼들에게, 그 교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현장을 놓고 복음의 가치를 회복할 일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문제를 일으켜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조차도 교회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안에는 점점 교회 분쟁이 일어나고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교회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이 있다면 생명운동,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이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교회도 어려워지고 교인도 그 삶도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생명운동, 복음운동, 말씀운동이 일어나서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 지역을 그 민족을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가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꾼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흥왕하여 현장에서 세력을 얻는 역사, 현장에서 참된 제자를 세울 수 있는 참된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일꾼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하는 중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일에 함께 인도받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중요한 시간표를 지금 우리에게 맞추고 계신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오늘 본문은 가나안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차차 점령을 하고 오늘 마지막 북부지역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 본문에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차츰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고,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가문과 지역 속에 차츰 차츰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 지역을 점령해 오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기어코 승리하게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 23절 마지막에 보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무슨 말인가? 완전한 가나안땅에서의 승리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 중에 오늘 말씀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왔다. 사실은 이런 일들이 우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해서 복음의 역사를 막는 것들을 보게 된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경건하고 그렇게 거룩하고 모범적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된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해서 오히려 복음의 역사를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현장에서 복음을 막는 것은 불신자들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전도사역을 보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번에 전도캠프 가운데서도 대명지교회에서 같이 사역을 임했는데 거기에 사역하는 사역자의 보고가 그러했다. 실컷 열심히 영접해서 전도해놓으면 어느 순간에 그 지역의 교회에서 하나교회가 뭐다라고 해서 가로채가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실컷 영접을 해서 양육을 할 때쯤 되면 이제 전세살고 이런 사람에게는 내가 전기세 깎아줄게, 물세 덜 받을게 해가지고 자기교회로 데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영접하는 이 영접운동이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 양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저희교회에 등록하는 숫자보다 그 지역에 있는 교회, 그 교회들이 나서서 하나교회가 뭐다라고 해서 데리고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불신자들이 복음을 막는 것이 아니었다. 실컷 열심히 기도하고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해 놓았더니만. 모르실지 모르지만 지난번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은 저희교회에 드문드문 오시는 분이다. 얼굴을 잊을만 하면 찾아오시는 분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목사님, 희한하죠, 하나교회라고 하면 그 교회가 뭐다라고 하면서 다 일어납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게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불신자들보다도 성경을 가지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 교회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짜 복음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하난님의 원하시는 방향에 맞지 않으면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특별히 이번에 임직자를 선출하는 부분에 있어서 목사님이 가장 강하게 내세웠는 부분이 있다면 훈련이다. 장로님들이 당회에서도 다른 무엇보다도 훈련은 받아야 된다고 강조를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방향을 맞추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교역자들이 그래도 이런 분들은 됐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해가 되었다. 우리 자신들이 훈련되지 않는다면, 준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 속에서는 진정한 복음을 막는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가운데서도 분명히 붙잡을 것이 있다. 우리는 언약을 붙잡아야하고 주권을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두가지로 말씀을 리고자 한다.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것과 두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이 사실을 가져야 될 것을 말씀을 드리겠다.
첫 번째로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언약가진 사람들을 세우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이삭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야곱과 요셉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언약가진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이다. 구약에 언약이 있다면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언약이 있다면 세계복음화이다. 저주와 재앙과 운명 가운데 빠진 현장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이 언약이다. 병든 세상에, 사단과 마귀와 귀신에게 붙잡혀 있는 세상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이 언약이다. 조금만 눈을 들어서 현장을 보길 바란다. 다 병들어 있고 다 상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어른이고 아이고 상관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그 어떤 인생도 상처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병든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이번 수요일 캠프 때 어떤 한 슈퍼마켓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제가 차를 대어놓고 들어갔는데 이미 같이 갔던 팀들이 들어가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들어가니까 슈퍼를 지고 있던 연세가 많이 되어보이지는 않는 할아버지가 들어가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목사님이 오시려고 해서 제가 이런 글을 적었지 싶다면서 글을 적은 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아침에 글을 적은 부분을 간단히 말씀을 하시면서 읽어보라고 하면서 읽어 보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주었다. 그래서 제가 그 글을 읽어보니까 그 글에 내용이 한 장에 빽빽하게 적어놨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40몇 년간 살아오면서 자기가 자기 아내에게 못된 짓도 많이 했고 또 불편함을 많이 주었지만 그래도 한번도 자기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적어놓았다. 그러면서 한이 맺혀진다고 기록을 했다. 결혼하고 40몇 년을 살면서 한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한이 맺힌다는 내용을 적어놓은 것을 봤다. 그 이야기를 그 분이 하시자 저와 같이 동행했던 우리교회에 출석한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성도님이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 저도 똑같았습니다. 내가 젊을 때는 돈벌어서 자식 성공시켜야 된다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자식들 뒷바라지 했습니다. 남들보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고 한시간 늦게 자고 그래서 남다르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아이들을 성공시키고 출가시키고 나니까 무언가 모르게 마음에 허전함이 오는데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정신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을 보니까 거치적거렸습니다. 냄새도 맡기 싫고 곁에 오는 것도 싫고, 밤에 살갗이 곁에 데이는 것조차도 싫고, 그래서 늘 벽을 향해서 잠을 청하고 아니면 다른 방에서 자고 아니면 다른 방으로 쫓아 보내고 그러면서 마음에 미국에 가시면서 미국 갔다와서도 이 남자하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일이 없으니까 동생이 미국에서 쉬고 가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국에 들어가서 이 분이 주일날 자기 동생분이 다니는 교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인데. 그런데 교회에 가서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는데 어쩌면 저 목사님이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저렇게 잘 알까 싶을 정도로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누가 일러바친 것처럼 너무 정확하게 자기의 과거의 모든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답을 말씀하시는데 거기에서 이 분이 복음을 받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두 달 동안에 계속해서 말씀으로 인도받고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그러면서 미국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나에게 있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할 것인가’ 그러면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안했지만 겉은 번지르르하고 그냥 다녀서 그렇지 젊은 사람이든 어르신이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다 병들어 있다. 지식을 갖고 있고 상관이 없다. 돈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배경이 좋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상처받게 되어있고 병들게 되어있다. 이 병든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을 세우시고 그 언약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신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상관없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이다. 모세가 ‘하나님, 말도 못하고 입도 뻣뻣하고 혀도 둔한데 내가 어찌합니까?’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기어코 모세를 내세운 사실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약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나가면 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언약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시키게 되어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는 그 사실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무언가 하는 것이 편하고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구원사역에 있어서만은 내 노력과 내 의와 내 열심과 내 그 어떤 것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 구원이고 그 구원의 축복을 언약의 백성들은 받고 누리기만 하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시는가?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인격도 아니고 윤리도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가, 언약 밖에 있는가이다.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무조건 축복하신다. 문제 가운데서 언약을 붙잡고 기도를 하면 문제를 당해도 그 속에는 평안함이 임한다. 왜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여지고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시켜나가시는 사실이 보여지고 그 사실이 보여져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여지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이 보여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 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내 열심으로, 내 노력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그것이 더 오히려 익숙하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더 평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한 내가 잡고 있는 한은 염려가 계속 될 수밖에 없고, 염려거리가 일어나니까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갈등하고 방황하게 되어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신앙생활에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생활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를 보고 말씀대로 인도받고 나가는 삶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내 노력으로 나가는 삶, 결국 종교생활이기 때문에 종교생활은 하면 할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탁하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아까 우리교회에 온지 1년밖에 안되신 분은 요즘 자기가 너무 신나고 기쁘다고 하면서 주일날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어떻게 내 인생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늘 그 생각을 하신다고 한다. 주일날 말씀을 받으면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마다 이 문제와 사건들 속에서 어떻게 이 말씀을 누릴 것인가 그 생각과 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23:19「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약속하신 바를 하나님은 기어코 성취시켜 나가심을 말씀하고 있다. 사40:8에 말씀하고 있다.「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마5:18에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상관없이 성취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정말로 눈을 떠서 보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고 있다.
창1:27-28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며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 가운데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다.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약속을 주셨다. 그 임마누엘과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창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행위언약이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행위언약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만 붙잡으라는 것이 행위언약이다. 이 언약을 하나님이 인간과 세우셨다. 그러나 이 언약이 깨진 사건이 창3장이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깨어졌고 생명과 축복의 근원도시는 하나님과 단절되는 사건이 바로 창3장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된 인생, 그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인생은 어떤 행위를 통해서도 행복할 수 없다. 이 언약을 회복시키고 완성하신 분이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그 십자가 사건은 모든 언약을 회복시키신 사건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회복되어진 언약을 붙잡고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 누리는 것을 가지고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언약의 축복을 붙잡고 누리게 될 때 성령충만함이 임하게 되고, 그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생명의 역사가 파장처럼 일어나게 되어있고, 그 결과로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 북부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는,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 약속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창15:12-21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400년 만에, 4대만에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했다. 그 말씀이 성취되는 되어지는 현장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땅을 완전 정복하는 현장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간단하다. 언약의 말씀만 붙잡으면 되게 되어있다. 지난 과거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시켜 오셨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해 나가시는 것이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누리면 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필요한 일꾼은 다른 일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증인들이 세워지길 하나님은 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이다. 20절에 보면「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가나안땅의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온 것을 말씀하면서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가나안땅의 모든 군사를 일으켜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환경적인 어려움과 물질적인 문제와 많은 위기들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되어진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때에, 그 출애굽기에 보면 안가겠다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시면서 가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 말씀에 따라서 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셔야 되는데 10가지 재앙을 내리는 동안 가면 길을 막고, 가면 또 길을 막고, 이게 도대체 어떤 일인가? 가라했으면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길을 여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문, 비밀을 누려야 할 것인데, 갈려고 하면 길을 막고, 갈려고 하면 또 막고. 거기에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험에는 마귀가 주는 시험도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속임수로서 우리를 실패시키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는 기어코 그 문제 속에 해답과 축복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예수가 그리스도도심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문제를 주신 것이다.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문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 속에는 분명히 해답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그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 문제 속에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축복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길 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이 그 안에 있는데 그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내게 이러한 문제가 있는가?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 내 가정에 내 자녀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어야 하는가?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필 왜 나냐?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 속에서 해답을 발견한 자라야만 다른 문제 가운데 빠진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다. 단순한 지식과 이론과 관념으로 사람을 살리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진정한 답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문제 속에서 답을 가진 자만이 별스럽지 않은 말을 던지면서 그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답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고, 그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그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문제를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임으로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셉이 형제들이 자기를 팔았는데, 창45:1-5에 보면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다. 누가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하셨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판 사건 때문에 이제는 들통이 나서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고백한 요셉에게는 참된 자유함이 있었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시므이가 다윗의 피난 모습을 보면서 저주하는 부분들 가운데서 그 저주하는 말을 듣고 다윗의 군대의 장관이 다윗에게 내가 당장 올라가서 저 사람을 치리이까 했을 때에 다윗이 한 말이 무엇인가?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인지 누가 아느냐, 가만두어라.” 그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라. 쫓겨 가면서도 수없는 비난의 말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저를 시켜서 그 말을 하는 것이면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참된 자유함과 평안함이 그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다. 칼빈은 이 사실을 일컬어서 성도의 궁극적 구원, 성도의 견인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사실. 그 어떤 절망 가운데서, 실패했던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지키신다. 반대로 악한 사단은 반드시 멸하신다. 그것이 오늘 20절에 나와 있다. 저주받은 사람은 은혜를 못 받게 하면서 완전히 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완벽하게 건지시고 악한 사단은 완전하게 멸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오늘 임직자 선출을 앞두고 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일꾼을 뽑고 선택을 하지만 그러나 마음속에 가져야할 신앙의 자세는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다.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신다. 오늘 새벽기도에 말씀을 드렸듯이, 목사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주일날 예배도 겨우 참석하시고 앉아계시다가 돌아가신 때가 있었다. 그때 제가 이런저런 교회의 부분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여호와께서 그리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사실 속에 서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속에서 참된 믿음을 회복하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제목을 20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모양 저모양의 모든 문제를 여호와께서 그리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꺠닫는 만큼 참된 평안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마음 심령 속에 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지난 주간에 전도캠프가 화, 수 이틀 동안 본 교회에서 있었다.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라는 제목으로 지난 2부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우리는 <현장에서 부활의 축복을 누리는 캠프가 되자>는 제목으로 1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서 19개의 지교회 중 8개의 지교회를 중심으로 전도캠프가 진행되었다. 총40개의 다락방이 열려지고 133명이 영접하게 되어지는 축복된 열매들이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약속 하신 부분이 있다면 말세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성령충만 받게 될 때에 세계를 복음화할 것을 말씀하셨다. 특별히 전도캠프와 지교회 중심의 사역을 통해서 이번에 특별히 제 자신에게 확인되어지고 확신 가운데 서게 된 것은 비록 시간이 더디고 지체된다고 할지라도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일을 지금 진행 중에 계신다는 부분을 확인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도 복음에 대해서 깨닫고 누려지고 또 그 복음 속에서 가정과 가문, 친지들을 바라보면서 기도제목이 나와지고 또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기어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변화시키고 바꾸셔서 하나님이 이 축복된 역사를 감당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오늘 또한 임직자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가 2부 예배 후에 진행이 된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는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계속 속에서 한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특별히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를 감당하는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일꾼이 세워지는 부분들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다. 또 이 일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자체가 축복 중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꾼을 세우는 일을 두고 기도하시되 특별히 복음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의 현장을 놓고 이 복음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꾼들이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어제 핵심에서 류목사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유럽교회, 한때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유럽교회들이 문을 닫고 교회마저도 모슬렘 권에 팔리게 되는 비극 아닌 비극들이 지금 주어지고 있다. 사분의 삼 정도가 완전 모슬렘 권이 유럽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씀했다. 무엇 때문인가? 참된 복음의 가치를 현장에서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과 우리교회를 통해서 일꾼을 세우실 때는 이 하나님의 한 맺힌 소원들이 일꾼들에게, 그 교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현장을 놓고 복음의 가치를 회복할 일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문제를 일으켜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조차도 교회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안에는 점점 교회 분쟁이 일어나고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교회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이 있다면 생명운동, 말씀운동, 복음운동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이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교회도 어려워지고 교인도 그 삶도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생명운동, 복음운동, 말씀운동이 일어나서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 지역을 그 민족을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가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꾼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흥왕하여 현장에서 세력을 얻는 역사, 현장에서 참된 제자를 세울 수 있는 참된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일꾼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하는 중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일에 함께 인도받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중요한 시간표를 지금 우리에게 맞추고 계신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오늘 본문은 가나안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차차 점령을 하고 오늘 마지막 북부지역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 본문에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차츰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고,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가문과 지역 속에 차츰 차츰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 지역을 점령해 오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기어코 승리하게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 23절 마지막에 보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무슨 말인가? 완전한 가나안땅에서의 승리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 중에 오늘 말씀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왔다. 사실은 이런 일들이 우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해서 복음의 역사를 막는 것들을 보게 된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경건하고 그렇게 거룩하고 모범적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된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해서 오히려 복음의 역사를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현장에서 복음을 막는 것은 불신자들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전도사역을 보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번에 전도캠프 가운데서도 대명지교회에서 같이 사역을 임했는데 거기에 사역하는 사역자의 보고가 그러했다. 실컷 열심히 영접해서 전도해놓으면 어느 순간에 그 지역의 교회에서 하나교회가 뭐다라고 해서 가로채가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실컷 영접을 해서 양육을 할 때쯤 되면 이제 전세살고 이런 사람에게는 내가 전기세 깎아줄게, 물세 덜 받을게 해가지고 자기교회로 데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영접하는 이 영접운동이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 양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저희교회에 등록하는 숫자보다 그 지역에 있는 교회, 그 교회들이 나서서 하나교회가 뭐다라고 해서 데리고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불신자들이 복음을 막는 것이 아니었다. 실컷 열심히 기도하고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해 놓았더니만. 모르실지 모르지만 지난번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은 저희교회에 드문드문 오시는 분이다. 얼굴을 잊을만 하면 찾아오시는 분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목사님, 희한하죠, 하나교회라고 하면 그 교회가 뭐다라고 하면서 다 일어납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게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불신자들보다도 성경을 가지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 교회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짜 복음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하난님의 원하시는 방향에 맞지 않으면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복음을 막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특별히 이번에 임직자를 선출하는 부분에 있어서 목사님이 가장 강하게 내세웠는 부분이 있다면 훈련이다. 장로님들이 당회에서도 다른 무엇보다도 훈련은 받아야 된다고 강조를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방향을 맞추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교역자들이 그래도 이런 분들은 됐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해가 되었다. 우리 자신들이 훈련되지 않는다면, 준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 속에서는 진정한 복음을 막는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가운데서도 분명히 붙잡을 것이 있다. 우리는 언약을 붙잡아야하고 주권을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두가지로 말씀을 리고자 한다.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것과 두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이 사실을 가져야 될 것을 말씀을 드리겠다.
첫 번째로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언약가진 사람들을 세우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이삭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야곱과 요셉을 부르셔서 언약을 주시고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언약가진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이다. 구약에 언약이 있다면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언약이 있다면 세계복음화이다. 저주와 재앙과 운명 가운데 빠진 현장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이 언약이다. 병든 세상에, 사단과 마귀와 귀신에게 붙잡혀 있는 세상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이 언약이다. 조금만 눈을 들어서 현장을 보길 바란다. 다 병들어 있고 다 상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어른이고 아이고 상관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그 어떤 인생도 상처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병든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이번 수요일 캠프 때 어떤 한 슈퍼마켓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제가 차를 대어놓고 들어갔는데 이미 같이 갔던 팀들이 들어가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들어가니까 슈퍼를 지고 있던 연세가 많이 되어보이지는 않는 할아버지가 들어가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목사님이 오시려고 해서 제가 이런 글을 적었지 싶다면서 글을 적은 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아침에 글을 적은 부분을 간단히 말씀을 하시면서 읽어보라고 하면서 읽어 보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주었다. 그래서 제가 그 글을 읽어보니까 그 글에 내용이 한 장에 빽빽하게 적어놨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40몇 년간 살아오면서 자기가 자기 아내에게 못된 짓도 많이 했고 또 불편함을 많이 주었지만 그래도 한번도 자기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적어놓았다. 그러면서 한이 맺혀진다고 기록을 했다. 결혼하고 40몇 년을 살면서 한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한이 맺힌다는 내용을 적어놓은 것을 봤다. 그 이야기를 그 분이 하시자 저와 같이 동행했던 우리교회에 출석한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성도님이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 저도 똑같았습니다. 내가 젊을 때는 돈벌어서 자식 성공시켜야 된다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자식들 뒷바라지 했습니다. 남들보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고 한시간 늦게 자고 그래서 남다르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아이들을 성공시키고 출가시키고 나니까 무언가 모르게 마음에 허전함이 오는데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정신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을 보니까 거치적거렸습니다. 냄새도 맡기 싫고 곁에 오는 것도 싫고, 밤에 살갗이 곁에 데이는 것조차도 싫고, 그래서 늘 벽을 향해서 잠을 청하고 아니면 다른 방에서 자고 아니면 다른 방으로 쫓아 보내고 그러면서 마음에 미국에 가시면서 미국 갔다와서도 이 남자하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일이 없으니까 동생이 미국에서 쉬고 가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국에 들어가서 이 분이 주일날 자기 동생분이 다니는 교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인데. 그런데 교회에 가서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는데 어쩌면 저 목사님이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저렇게 잘 알까 싶을 정도로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누가 일러바친 것처럼 너무 정확하게 자기의 과거의 모든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답을 말씀하시는데 거기에서 이 분이 복음을 받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두 달 동안에 계속해서 말씀으로 인도받고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그러면서 미국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나에게 있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할 것인가’ 그러면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안했지만 겉은 번지르르하고 그냥 다녀서 그렇지 젊은 사람이든 어르신이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다 병들어 있다. 지식을 갖고 있고 상관이 없다. 돈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배경이 좋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상처받게 되어있고 병들게 되어있다. 이 병든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을 세우시고 그 언약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신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상관없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이다. 모세가 ‘하나님, 말도 못하고 입도 뻣뻣하고 혀도 둔한데 내가 어찌합니까?’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기어코 모세를 내세운 사실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약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나가면 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언약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시키게 되어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는 그 사실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무언가 하는 것이 편하고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구원사역에 있어서만은 내 노력과 내 의와 내 열심과 내 그 어떤 것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 구원이고 그 구원의 축복을 언약의 백성들은 받고 누리기만 하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시는가?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인격도 아니고 윤리도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가, 언약 밖에 있는가이다.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무조건 축복하신다. 문제 가운데서 언약을 붙잡고 기도를 하면 문제를 당해도 그 속에는 평안함이 임한다. 왜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여지고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시켜나가시는 사실이 보여지고 그 사실이 보여져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여지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이 보여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 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내 열심으로, 내 노력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그것이 더 오히려 익숙하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더 평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한 내가 잡고 있는 한은 염려가 계속 될 수밖에 없고, 염려거리가 일어나니까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갈등하고 방황하게 되어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신앙생활에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생활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를 보고 말씀대로 인도받고 나가는 삶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내 노력으로 나가는 삶, 결국 종교생활이기 때문에 종교생활은 하면 할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탁하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아까 우리교회에 온지 1년밖에 안되신 분은 요즘 자기가 너무 신나고 기쁘다고 하면서 주일날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어떻게 내 인생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늘 그 생각을 하신다고 한다. 주일날 말씀을 받으면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마다 이 문제와 사건들 속에서 어떻게 이 말씀을 누릴 것인가 그 생각과 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23:19「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약속하신 바를 하나님은 기어코 성취시켜 나가심을 말씀하고 있다. 사40:8에 말씀하고 있다.「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마5:18에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상관없이 성취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정말로 눈을 떠서 보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고 있다.
창1:27-28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며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 가운데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다.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약속을 주셨다. 그 임마누엘과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창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행위언약이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행위언약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만 붙잡으라는 것이 행위언약이다. 이 언약을 하나님이 인간과 세우셨다. 그러나 이 언약이 깨진 사건이 창3장이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깨어졌고 생명과 축복의 근원도시는 하나님과 단절되는 사건이 바로 창3장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된 인생, 그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인생은 어떤 행위를 통해서도 행복할 수 없다. 이 언약을 회복시키고 완성하신 분이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그 십자가 사건은 모든 언약을 회복시키신 사건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회복되어진 언약을 붙잡고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 누리는 것을 가지고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언약의 축복을 붙잡고 누리게 될 때 성령충만함이 임하게 되고, 그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생명의 역사가 파장처럼 일어나게 되어있고, 그 결과로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 북부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는,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 약속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창15:12-21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400년 만에, 4대만에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했다. 그 말씀이 성취되는 되어지는 현장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땅을 완전 정복하는 현장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간단하다. 언약의 말씀만 붙잡으면 되게 되어있다. 지난 과거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시켜 오셨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해 나가시는 것이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누리면 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필요한 일꾼은 다른 일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증인들이 세워지길 하나님은 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이다. 20절에 보면「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가나안땅의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온 것을 말씀하면서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가나안땅의 모든 군사를 일으켜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환경적인 어려움과 물질적인 문제와 많은 위기들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되어진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때에, 그 출애굽기에 보면 안가겠다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시면서 가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 말씀에 따라서 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셔야 되는데 10가지 재앙을 내리는 동안 가면 길을 막고, 가면 또 길을 막고, 이게 도대체 어떤 일인가? 가라했으면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길을 여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문, 비밀을 누려야 할 것인데, 갈려고 하면 길을 막고, 갈려고 하면 또 막고. 거기에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험에는 마귀가 주는 시험도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속임수로서 우리를 실패시키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는 기어코 그 문제 속에 해답과 축복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예수가 그리스도도심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문제를 주신 것이다.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문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 속에는 분명히 해답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그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 문제 속에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축복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길 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이 그 안에 있는데 그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내게 이러한 문제가 있는가?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 내 가정에 내 자녀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어야 하는가?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필 왜 나냐? 문제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 속에서 해답을 발견한 자라야만 다른 문제 가운데 빠진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다. 단순한 지식과 이론과 관념으로 사람을 살리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진정한 답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문제 속에서 답을 가진 자만이 별스럽지 않은 말을 던지면서 그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답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고, 그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그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문제를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임으로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셉이 형제들이 자기를 팔았는데, 창45:1-5에 보면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다. 누가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하셨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판 사건 때문에 이제는 들통이 나서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고백한 요셉에게는 참된 자유함이 있었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시므이가 다윗의 피난 모습을 보면서 저주하는 부분들 가운데서 그 저주하는 말을 듣고 다윗의 군대의 장관이 다윗에게 내가 당장 올라가서 저 사람을 치리이까 했을 때에 다윗이 한 말이 무엇인가?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인지 누가 아느냐, 가만두어라.” 그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라. 쫓겨 가면서도 수없는 비난의 말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저를 시켜서 그 말을 하는 것이면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참된 자유함과 평안함이 그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다. 칼빈은 이 사실을 일컬어서 성도의 궁극적 구원, 성도의 견인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사실. 그 어떤 절망 가운데서, 실패했던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지키신다. 반대로 악한 사단은 반드시 멸하신다. 그것이 오늘 20절에 나와 있다. 저주받은 사람은 은혜를 못 받게 하면서 완전히 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완벽하게 건지시고 악한 사단은 완전하게 멸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오늘 임직자 선출을 앞두고 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일꾼을 뽑고 선택을 하지만 그러나 마음속에 가져야할 신앙의 자세는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다.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신다. 오늘 새벽기도에 말씀을 드렸듯이, 목사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주일날 예배도 겨우 참석하시고 앉아계시다가 돌아가신 때가 있었다. 그때 제가 이런저런 교회의 부분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여호와께서 그리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사실 속에 서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속에서 참된 믿음을 회복하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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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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