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내가 필경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2007-06-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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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제목을 <내가 필경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2절 마지막을 보면「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이 구절을 가지고 제목을 삼았다. 구성경에 보면 “내가 필경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나와있다. 필경이란 말은 내가 반드시 그들을 쫓아내겠다는 더 확실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을 가지고 <내가 필경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도록 한다. 오늘 완전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올 한해 우리 교회와 다락방하는 전체 교회에 주신 “정복”이라는 언약이 있다. 우리 교회는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다락방 전체의 교회가 언약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 3개혁을 통해서 3정복의 축복을 누리자는 것이다. 3가지 정복의 역사는 현장정복, 경제정복, 문화정복의 축복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머무르는 자리, 내가 처해있는 모든 문제, 현장에서 성공하고, 경제축복이 회복되며 우리가 사는 문화를 살리는 문화권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소원이다. 현장을 정복해야 그 속에 경제적인 축복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것을 가지고 내 인생, 내 가정과 가문, 지역, 이 땅의 전부를 바꾸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문화정복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그러한 것이다. 창1:27-28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모든 현장을 정복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런데 정복하며 살아야하는데 정복당하고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 환경과 현실과 상처에 속고, 사람들의 소리에 눌리고, 거기에 끌리게 되고, 또 조롱당하며 사는 것이 지금 현장의 모습들이다. 창3장의 저주에 빠진 대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확인하고 우리의 언약으로 붙잡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내가 필경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완전정복의 축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정복의 축복을 누릴 것인가? 크게 두 가지로 설명을 하고자한다. 첫 번째로 참된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들을 정복하게끔 되어있다. 오늘 12절에 보면「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불신앙에서 말한 말이 아니라, 오늘 갈렙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완전 정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복음 자체가 정복을 말하는 것이다. 어제 핵심에서 말씀이 있었지만, 능력이 있는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했던 복음의 비밀, 막강한 힘을 가졌던 애굽이 깨닫지 못했던 복음의 비밀, 강대국인 바벨론과 앗수르가 깨닫지 못했던 복음의 비밀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것을 가지고 정복하는 것이다. 핍박 가운데 마가다락방교회인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 핍박을 이겼는가? 복음을 알 정도가 아니라 그 복음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핍박을 이겨나갔다. 우리가 어떻게 현장을 정복하는가? 완전정복의 축복을 누리는가?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완전정복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시대 시대마다 어느 때에 교회가 위기를 당했는가? 교회 속에 복음이 사라지고 복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교회가 위기를 당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회복시키신 것은 우리로 말미암아 교회를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이 축복된 역사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복음을 가지고 모든 시대를 회복할 축복을 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리고 복음 안에 주신 축복을 가지고 완전정복의 축복을 누려야 될 것이다.
먼저 복음에 대해서 안다면,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양면이 다 담겨져 있다. 고전1:18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멸망 받는 자들도 있고, 구원을 받는 자도 있다. 구원 속에서 형벌도 나오는 것이고, 그 뒷면에 축복도 선언하고 있는 것이 복음이다. 빌1:28에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 편지를 보내는 내용에서 멸망의 증거와 구원의 증거가 무엇이냐?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는 복음이 구원의 증거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복음 속에는 형벌도 있고, 축복도 담겨져 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담,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와 재앙 가운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 사망과 저주와 재앙 가운데 빠진 아담과 하와에게 그 형벌 가운데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는데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사단에 대해서 완전 승리한다는 귀중한 언약을 준 사실을 보게 된다. 멸망 받는 자리에 빠졌는데 그 자리에 빠진 아담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선언하셨다. 사단에게서 완전 승리할 것을 말씀하셨다. 가인도 마찬가지이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해서 결국 돌로 쳐 죽이는 역사상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가인이 두려워서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그 이마에 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면케 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한 것을 보게 된다. 노아시대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같이 어울려서 네피림시대가 오게 되었다. 우상숭배의 시대, 완전히 멸망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면서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분명히 멸망도 선언되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은 축복받을 한 가정, 노아가정을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길을 여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이 땅에서 그 축복과 그 평안과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완전한 축복을 주신 것도 구원이다.
우리가 구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문제와 죄의 문제와 사단의 문제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 안다면 어린수준의 신앙생활이다. 거기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실추된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이루길 바라신다. 단순히 건짐 받은 것만 구원이 아니라 그 구원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구원의 축복을 누림으로써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 또한 구원이다. 그래서 먼저 원수로부터 구출하고, 구출된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축복과 새로운 안식과 새로운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생명을 권고를 해서 구원받은 자에게 축복의 역사가 선언된 것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킬 때에 출애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바로왕의 손에서 세상 손에서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에 저 가나안땅의 축복까지도 바라보시고 출애굽을 시도하게 하셨다. 구원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다. 요10:10에 보면「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하심이라」먼저 우리를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 받게 하시고, 죄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사단의 손에서 완전한 자유함을 주시고,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종 되었던 우리 인생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 존귀하심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이 축복,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축복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이 사실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복음을 누리는 기도라고 한다. 오늘 묵상기도드릴 때 읽은 고전2: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세상의 영을 거두어가시고, 하나님께서 온 영을 주셨다고 했다. 그 영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에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세계복음화를 하고도 남을 완전한 축복을 구원과 함께 누려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누리는 것을 신앙생활,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절에 가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뒤에서 그냥 구경하는 불교신도가 있었다. 그 분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절하는 사람들이 어떤 내용으로 기도를 하냐고 물으니까 저 사람들은 가정에 재앙이 닥쳐오지 않도록, 자기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의 기도는 그들의 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것이다.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앙과 저주가 다가오는데 그 사실을 달래기 위해서하는 기도가 불신자들의 기도이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무엇을 달라는 것의 기도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참된 기도는 나의 부족과 나의 연약함과 나에게 있는 두려움, 재앙, 재난의 역사를 위해서 그것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주신 이 복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신령한 모든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 안에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축복,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면서 영원히 함께 살아간다는 것으로 우리는 모든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왜 기도하는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한다.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는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부족을 채워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나안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든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기도를 요구했는가? 내가 누려야할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내가 부름 받은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운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누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것은 모든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신8:9-10은 가나안땅에 들어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고,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는 땅, 10절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고. 모자람이 없는 가나안땅에서 하나님이 왜 기도하게 하셨는가? 모르면 누리지 못하고 당하게 되니까.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채워주셨다. 승리와 영광이 보장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 그 축복을 기도를 통해서 누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도를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해 주셨다. 그 사실을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누려야 한다.
어떤 분은 자신은 기도를 안한다고 말을 했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했다. 불신자들처럼 달라고 할 필요도 없고, 문제와 사건이 터지면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최후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하고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을 했다. 엎드리면 10분 이상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을 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축복, 그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기도를 통해서 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있는 것이다. 이를 누리지 못하면 결국 사단의 속임수를 통해서 우리가 당하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축복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붙잡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오늘 본문의 갈렙은 복음의 축복을 충만하게 누린 것을 보게 된다. 완전승리의 축복을 누렸는데 15:14을 보면「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준 땅을 분배받았을 때, 기업으로 받은 땅에서 적들을 쫓아낸 기업은 갈렙 족속밖에 없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반복해서 그들의 적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철병거가 너무 강하여서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갈렙은 세 명의 거대한 장군들을 쫓아내는데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좇아내었고. 완전승리의 축복을 누렸다. 복음의 축복의 비밀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을 쫓아내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모든 것을 다 지웠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틈을 이용해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실을 하나하나 갈렙이 그 적들을 그 기업으로 받은 땅에서 다 쫓아냈던 것처럼 복음의 축복을 비밀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누리지 모하게 하는 무언가를 다 쫓아내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이와 더불어서 갈렙은 자기만 누린 것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명의 축복이 넘쳐나 이것을 전달한 것을 보게 된다. 15:17-19이다.「17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19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갈렙이 자기만 축복을 누린 것이 아니라 그의 딸, 사위에게도 윗샘과 아렛샘을 생명의 풍성한 축복을 나누어주는 승리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된다. 복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릴 때에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으로 나와 더불어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이 살아나게 되어있다. 우리의 평생기도제목은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리고, 그 복음의 축복 속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질 때 모든 현장에 완전정복의 축복이 있게 되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 갈렙은 분명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다. 갈렙이 중요한 고백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면서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수14:10에 보면「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12절에 보면「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갈렙이 중요한 고백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하게 붙잡고 그것을 확인하고 승리했던 사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언약으로 붙잡혀지니까 그 어떤 장애물도, 대적도 그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두려운 상황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8절에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불신앙의 보고를 하는 상황에서도 갈렙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론이 불신앙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갈렙은 하나님의 완전한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아니했다. 인간관계 속에서 승리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도 받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10절에 보면「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자신의 육신적인 한계도 뛰어넘고 환경과 현실도 뛰어넘는 것을 보게 된다. 12절에「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한 언약을 붙잡은 갈렙으로 말미암아 그 환경과 현실, 인간관계, 육신의 한계조차도 뛰어넘는 축복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히 붙잡고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환경과 현실과 나 자신에게 속지 않고 언약을 붙잡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축복을 누리길 축원한다.
또한 갈렙은 최고의 축복이 기업인 헤브론을 받게 된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이 헤브론은 조상들에게 중요한 약속을 하실 때마다 헤브론 땅에서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과 교통, 교제, 사랑이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것이 헤브론이다. 사단이 다른 것들은 다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은 막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갈렙은 이 약속의 땅인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다. 이 헤브론은 메시야가 오실 예루살렘 땅을 말하고 있다. 후일에 다윗후손들이 이 예루살렘 위에 성전을 지었다. 그리고 이 갈렙의 후손, 자녀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었다.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개인도 물론이고 가정과 가문, 후대에게도 모델이 되어지는 엄청난 축복을 누린 사람이 갈렙이다. 분명한 언약을 붙잡으므로,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완전 승리했다. 오늘 이 축복이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걸음 속에 사실적인 정복의 역사로 나타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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