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이 받은 축복
2007-06-2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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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갈렙이 받은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 주일에 렘넌트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서 예배 중에 헌금하는 시간이 있었다. 기도하면서 우리 후대를 위해 중심을 보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감사한 것은 작년에 약 1600만원 헌금이 되어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이 되었는데 올해는 작년의 배인 약 2800만원 정도가 헌금이 되었다. 여러분의 기도 속에 렘넌트, 후대가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한 헌금이 우리 후대들을 살리는 일에 귀중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단순히 헌금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산업현장에 제자를 키울 만큼의 경제력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지난주에 또한 목사님들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목회 대학원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현장에서 사역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수15장을 지난주에 이어서 보고 있는데 1-12절에 보면 “유다자손의 땅이라”하면서 땅에 대한 것이 나오고, 13-1절9까지는 갈렙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나온다. 또 20-63절까지는 전혀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계속해서 생소한 지역이름이 나와서 읽어도 부담이 되는 장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생소한 단어라 할지라도 부담 갖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땅을 분배받는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언약가진 우리와 관계된 현장을 부분 부분을 정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실 축복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현장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를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신앙의 기본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신앙의 기초 중에서 시작이요, 끝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복음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인 복음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을 놓치고 껍데기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복음의 체험이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이것이 복음의 시작, 복음의 원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들이 진짜 체험되어질 때 모든 저주는 끝나고 사단은 틈타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부분을 놓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복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윤리적인 차원으로, 인생의 교과서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꺾어버리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체험하느냐에 따라서 실제적인 축복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고, 정복의 역사로 응답받게 되어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가문을 보라. 아브라함이 훌륭해서 근원적인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이 완전히 책임을 진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지만 결국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으로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셨다.「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무엇 때문인가? 복음의 사실적인 역사를 붙잡게 되었을 때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 아브라함이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보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갖게 되었다.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국은 그 자리에서 이삭이 죽기 직전에 수양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의 생명이 죽어야 되는데 자신 대신에 수양이 죽게 되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이 복음을 사실적으로 생명을 가지고 체험했기 때문에 근원적인 축복과 더불어 어떤 자리에 가든지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 가문의 야곱을 보면 간사하고 거짓말쟁이이다. 끝까지 인본주의를 썼던 야곱이다. 그러나 이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셨는데 모든 위기와 문제를 통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시고 엄청난 축복을 쏟아 부으신 것을 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때문이다. 요셉 또한 시대적인 축복을 받게 된 배경이 있다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렵고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복음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되면 모든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발판이 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놓고도 그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과거에 일어났던 상처는 하나님의 축복을 새어나가게 한다. 진짜 복음을 체험하고 사실적인 역사로 붙잡게 되면, 그 모든 상처들이 결국은 사람을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기회가 되고 발판이 된다. 그런데 상처 속에 붙잡혀서 원한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모세를 보면 피 언약 한 가지를 붙잡았는데 모세의 발걸음 앞에 10가지 재앙이 일어나는 기적을 맛보았고, 광야 길을 걸어가는 40년 동안 발이 트지 않고 옷이 헤지지 않도록 완벽한 응답을 주셨다. 또한 우상의 문화를 정복하고, 가나안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신 엄청난 축복을 주신 것이 바로 모세였다. 그 모세가 피 언약을 하나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로 인도하신 것을 보게 된다. 초대교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가 그 시대의 문화, 종교, 현장을 정복했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복음 중의 복음이다. 이 사실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이 있게 될 때 여기서부터 모든 축복, 응답의 문이 정복의 역사로 우리의 현장에 나타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 여자의 후손이 임마누엘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7:14에「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그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마1:21-23에 보면「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그 예수님께서 마16:16에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증인되어서 모든 현장에 참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것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될 때 여기에 모든 세상을 정복하는 귀중한 응답들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외에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참된 그리스도의 축복을 놓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상의 것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것을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을 때에 참된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 안에 모든 축복을 담아주셨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우리 신앙의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이 되어야 한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할수록 그때부터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들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일이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엄청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없는데 일이 잘되는 것은 결국 실패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우리만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난 이 후에도 후대에게 이 축복과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정말로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영원한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의 역사이다.
이 복음에 대해서 사실적인 체험을 할수록 이 땅의 인생들이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보이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사단의 존재가 보이게 된다. 빛이 내 안에 들어와야 어둠의 세력들이 보이게 된다. 생명의 빛,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될 때, 악한 사단의 정체가 보이고 우리의 싸움이 영적인 싸움임을 깨닫게 된다. 이 악한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천사가 타락한 것이다. 이 존재가 인간 창조 이전에 있었음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창3:1에도 있고, 창1:2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으로 역사했고, 계12장에도 보면 이 악한 사단이 인간창조 전에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 사단의 역사가 최초의 인간이 아담, 하와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다.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을 타락한 사단이 완전히 꺾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사단의 말을 듣게 되고, 실패를 가져온 것을 가지고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존심이 꺾여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이 사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의 자존심이 꺾여지게 된 것이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복음을 주신 것이다. 진짜 우리가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세상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존재가 보여지고,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진다. 이 때서야 비로소 신앙생활의 성공이 찾아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에 사단의 존재가 깨달아지고 인식되면서 왜 주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명령하셨는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의 힘으로 이 땅에 살아갈 수 없고, 악한 사단의 세력을 우리의 힘으로 꺾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성령, 그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약속하셨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소원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깨닫게 될 때 유일성의 응답이 오게 된다. 요셉이 노예로 갔는데 어느 날 총리가 되었다. 몸부림을 친 것도 아니었다. 다윗이 목동으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유일성의 응답이라고 한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 오는 것이 유일성의 응답과 더불어 만남의 축복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의 축복 속에서 언약적인 축복이 무엇인가가 보여 진다. 만남 속에서 봐야 하나님이 주신 언약적인 축복이 이해되어진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사실적인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적인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면 그때부터 유일성의 응답, 만남의 축복, 언약적인 축복을 응답으로 누리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의 갈렙이라는 인물은 만남의 축복을 받았다. 이 갈렙은 지도자 모세를 만나는 축복이 있었다. 모세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출애굽의 역사 속에 인도받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는 축복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었고, 광야를 가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었다. 지도자 모세를 만나는 만남의 축복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갈렙은 믿음의 동력자 여호수아를 만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전부이다. 참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은 주시게 되어있다. 그래서 자신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늘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늘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만남 속에서 믿음이 전달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데도 불신앙이 전달되기도 한다.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늘 부정적인 말을 하며, 남의 말을 하고, 비판하고 결국 과거의 상처에 매이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보면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말을 안 해도 가시방석 같은 불편한 자리가 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가서 믿음이 전달되는 사람이 있고, 불신앙이 전달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보면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이 붙는 사람인가? 내게서 사람이 떠나는 사람인가? 롬16:17에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할 말씀 중에서「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라고 했다. 우리 자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가는가, 붙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만남의 축복이다. 언약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이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게 되어있다.
두 번째로 이 갈렙이 받은 축복이 있다면 언약이 성취되는 곳에 주역이 된 것이다. 언약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가는 곳에 언약이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성취되는 지역에 주역이 되게 되어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린 것이 갈렙이라는 인물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결국은 언약의 사람으로 연결이 되어지게 된다. 언약 속에 있으면 언약이 연결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이 언약을 가지고 누리고 있으면 지역에 언약이 성취되어지고 이 언약이 성취되는 일에 주역이 되는 것을 누리게 되어진다. 갈렙이 받았던 축복이 바로 이러한 축복이다. 민14:1-10에 보면 아주 중요한 순간이 왔다. 가나안땅의 점령을 앞두고 모세가 정탐꾼을 보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불신앙적인 보고를 하였다. 그때에 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의 보고가 맞지만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 땅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한 시대를 바꾸어놓는 귀중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신 역사이지만 그 축복된 역사에 한 시대를 바꾸는 일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주역으로 쓰임 받을 것을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을 분배하는데 있어서 아낙산지에 갈 사람이 없었다. 전부 아낙산지 앞에서 갈렙이 나와서 옛날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언약을 붙잡은 부분을 이야기한 것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놓고도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는 불신앙의 보고와 어떻게 그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 위기시대에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하면서 아낙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아낙산지를 쟁취하게 되는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언약 붙잡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 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민족이 살게 되어진다. 언약 잡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살아난다. 나로 말미암아 나와 가정이 살고 우리 교회가 살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약을 달라고 기도하길 바란다. 특별히 갈렙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 언약가진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언약이 성취되는 일에 쓰임받는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축복을 누려야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세 번째로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정복하게 되어진다. 민14장에 가나안땅을 얻게 되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아낙산지를 차지하게 되고, 본문에 보면 아버지의 성읍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뒤에 믿음의 후계자 옷니엘을 세우게 된다. 나중에 이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지고 이스라엘의 훌륭한 사사가 되어지는 엄청난 축복을 갈렙을 통해서 받게 된다. 한가지 언약만 누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우리가 항상 체험하고 나가야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속에서 엄청난 영적인 축복의 눈이 열려지고 그 속에서 오는 유일성의 응답, 만남의 축복, 언약적 축복을 누리게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렙이 만남의 축복을 누린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여러분의 생애에 바울같은 전도자를 만난다면 여러분의 생애는 성공한 것이다. 주의 종들이 정말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평신도 사역자를 만난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 만남의 축복이 언약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시대적인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오늘 이 언약과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만남이라는 것을 통해서 축복을 회복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하는 모든 일에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축복의 주역이 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갈렙이 받은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 주일에 렘넌트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서 예배 중에 헌금하는 시간이 있었다. 기도하면서 우리 후대를 위해 중심을 보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감사한 것은 작년에 약 1600만원 헌금이 되어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이 되었는데 올해는 작년의 배인 약 2800만원 정도가 헌금이 되었다. 여러분의 기도 속에 렘넌트, 후대가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한 헌금이 우리 후대들을 살리는 일에 귀중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단순히 헌금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산업현장에 제자를 키울 만큼의 경제력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지난주에 또한 목사님들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목회 대학원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현장에서 사역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수15장을 지난주에 이어서 보고 있는데 1-12절에 보면 “유다자손의 땅이라”하면서 땅에 대한 것이 나오고, 13-1절9까지는 갈렙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나온다. 또 20-63절까지는 전혀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계속해서 생소한 지역이름이 나와서 읽어도 부담이 되는 장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생소한 단어라 할지라도 부담 갖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땅을 분배받는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언약가진 우리와 관계된 현장을 부분 부분을 정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실 축복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현장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를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신앙의 기본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신앙의 기초 중에서 시작이요, 끝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복음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인 복음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을 놓치고 껍데기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복음의 체험이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이것이 복음의 시작, 복음의 원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들이 진짜 체험되어질 때 모든 저주는 끝나고 사단은 틈타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부분을 놓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복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윤리적인 차원으로, 인생의 교과서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꺾어버리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체험하느냐에 따라서 실제적인 축복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고, 정복의 역사로 응답받게 되어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가문을 보라. 아브라함이 훌륭해서 근원적인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이 완전히 책임을 진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지만 결국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으로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셨다.「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무엇 때문인가? 복음의 사실적인 역사를 붙잡게 되었을 때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 아브라함이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보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갖게 되었다.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국은 그 자리에서 이삭이 죽기 직전에 수양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의 생명이 죽어야 되는데 자신 대신에 수양이 죽게 되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이 복음을 사실적으로 생명을 가지고 체험했기 때문에 근원적인 축복과 더불어 어떤 자리에 가든지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 가문의 야곱을 보면 간사하고 거짓말쟁이이다. 끝까지 인본주의를 썼던 야곱이다. 그러나 이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셨는데 모든 위기와 문제를 통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시고 엄청난 축복을 쏟아 부으신 것을 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때문이다. 요셉 또한 시대적인 축복을 받게 된 배경이 있다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렵고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복음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되면 모든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발판이 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놓고도 그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과거에 일어났던 상처는 하나님의 축복을 새어나가게 한다. 진짜 복음을 체험하고 사실적인 역사로 붙잡게 되면, 그 모든 상처들이 결국은 사람을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기회가 되고 발판이 된다. 그런데 상처 속에 붙잡혀서 원한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모세를 보면 피 언약 한 가지를 붙잡았는데 모세의 발걸음 앞에 10가지 재앙이 일어나는 기적을 맛보았고, 광야 길을 걸어가는 40년 동안 발이 트지 않고 옷이 헤지지 않도록 완벽한 응답을 주셨다. 또한 우상의 문화를 정복하고, 가나안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신 엄청난 축복을 주신 것이 바로 모세였다. 그 모세가 피 언약을 하나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로 인도하신 것을 보게 된다. 초대교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가 그 시대의 문화, 종교, 현장을 정복했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3:15「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복음 중의 복음이다. 이 사실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이 있게 될 때 여기서부터 모든 축복, 응답의 문이 정복의 역사로 우리의 현장에 나타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 여자의 후손이 임마누엘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7:14에「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그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마1:21-23에 보면「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그 예수님께서 마16:16에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증인되어서 모든 현장에 참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것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될 때 여기에 모든 세상을 정복하는 귀중한 응답들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외에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참된 그리스도의 축복을 놓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상의 것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것을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을 때에 참된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 안에 모든 축복을 담아주셨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우리 신앙의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이 되어야 한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할수록 그때부터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들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일이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엄청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없는데 일이 잘되는 것은 결국 실패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우리만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난 이 후에도 후대에게 이 축복과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정말로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영원한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의 역사이다.
이 복음에 대해서 사실적인 체험을 할수록 이 땅의 인생들이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보이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사단의 존재가 보이게 된다. 빛이 내 안에 들어와야 어둠의 세력들이 보이게 된다. 생명의 빛,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될 때, 악한 사단의 정체가 보이고 우리의 싸움이 영적인 싸움임을 깨닫게 된다. 이 악한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천사가 타락한 것이다. 이 존재가 인간 창조 이전에 있었음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창3:1에도 있고, 창1:2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으로 역사했고, 계12장에도 보면 이 악한 사단이 인간창조 전에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 사단의 역사가 최초의 인간이 아담, 하와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다.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창조된 인간을 타락한 사단이 완전히 꺾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사단의 말을 듣게 되고, 실패를 가져온 것을 가지고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존심이 꺾여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이 사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의 자존심이 꺾여지게 된 것이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복음을 주신 것이다. 진짜 우리가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세상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존재가 보여지고,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진다. 이 때서야 비로소 신앙생활의 성공이 찾아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에 사단의 존재가 깨달아지고 인식되면서 왜 주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명령하셨는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의 힘으로 이 땅에 살아갈 수 없고, 악한 사단의 세력을 우리의 힘으로 꺾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성령, 그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약속하셨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소원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깨닫게 될 때 유일성의 응답이 오게 된다. 요셉이 노예로 갔는데 어느 날 총리가 되었다. 몸부림을 친 것도 아니었다. 다윗이 목동으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유일성의 응답이라고 한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 오는 것이 유일성의 응답과 더불어 만남의 축복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의 축복 속에서 언약적인 축복이 무엇인가가 보여 진다. 만남 속에서 봐야 하나님이 주신 언약적인 축복이 이해되어진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사실적인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적인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면 그때부터 유일성의 응답, 만남의 축복, 언약적인 축복을 응답으로 누리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의 갈렙이라는 인물은 만남의 축복을 받았다. 이 갈렙은 지도자 모세를 만나는 축복이 있었다. 모세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출애굽의 역사 속에 인도받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는 축복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었고, 광야를 가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었다. 지도자 모세를 만나는 만남의 축복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갈렙은 믿음의 동력자 여호수아를 만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전부이다. 참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은 주시게 되어있다. 그래서 자신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늘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늘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만남 속에서 믿음이 전달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데도 불신앙이 전달되기도 한다.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늘 부정적인 말을 하며, 남의 말을 하고, 비판하고 결국 과거의 상처에 매이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보면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말을 안 해도 가시방석 같은 불편한 자리가 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가서 믿음이 전달되는 사람이 있고, 불신앙이 전달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보면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이 붙는 사람인가? 내게서 사람이 떠나는 사람인가? 롬16:17에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할 말씀 중에서「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라고 했다. 우리 자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가는가, 붙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만남의 축복이다. 언약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이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게 되어있다.
두 번째로 이 갈렙이 받은 축복이 있다면 언약이 성취되는 곳에 주역이 된 것이다. 언약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가는 곳에 언약이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성취되는 지역에 주역이 되게 되어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린 것이 갈렙이라는 인물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결국은 언약의 사람으로 연결이 되어지게 된다. 언약 속에 있으면 언약이 연결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이 언약을 가지고 누리고 있으면 지역에 언약이 성취되어지고 이 언약이 성취되는 일에 주역이 되는 것을 누리게 되어진다. 갈렙이 받았던 축복이 바로 이러한 축복이다. 민14:1-10에 보면 아주 중요한 순간이 왔다. 가나안땅의 점령을 앞두고 모세가 정탐꾼을 보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불신앙적인 보고를 하였다. 그때에 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의 보고가 맞지만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 땅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한 시대를 바꾸어놓는 귀중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신 역사이지만 그 축복된 역사에 한 시대를 바꾸는 일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주역으로 쓰임 받을 것을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을 분배하는데 있어서 아낙산지에 갈 사람이 없었다. 전부 아낙산지 앞에서 갈렙이 나와서 옛날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언약을 붙잡은 부분을 이야기한 것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놓고도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는 불신앙의 보고와 어떻게 그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 위기시대에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하면서 아낙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아낙산지를 쟁취하게 되는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언약 붙잡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 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민족이 살게 되어진다. 언약 잡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살아난다. 나로 말미암아 나와 가정이 살고 우리 교회가 살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약을 달라고 기도하길 바란다. 특별히 갈렙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 언약가진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언약이 성취되는 일에 쓰임받는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축복을 누려야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세 번째로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정복하게 되어진다. 민14장에 가나안땅을 얻게 되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아낙산지를 차지하게 되고, 본문에 보면 아버지의 성읍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뒤에 믿음의 후계자 옷니엘을 세우게 된다. 나중에 이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지고 이스라엘의 훌륭한 사사가 되어지는 엄청난 축복을 갈렙을 통해서 받게 된다. 한가지 언약만 누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우리가 항상 체험하고 나가야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이 복음의 사실적인 체험 속에서 엄청난 영적인 축복의 눈이 열려지고 그 속에서 오는 유일성의 응답, 만남의 축복, 언약적 축복을 누리게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렙이 만남의 축복을 누린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여러분의 생애에 바울같은 전도자를 만난다면 여러분의 생애는 성공한 것이다. 주의 종들이 정말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평신도 사역자를 만난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 만남의 축복이 언약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시대적인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오늘 이 언약과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만남이라는 것을 통해서 축복을 회복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하는 모든 일에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축복의 주역이 되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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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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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136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135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134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133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132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 3:8-18 | 2024-12-15 | |
1131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
1130 | 뜻을 정한 자 | 단1:1-9 | 2024-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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