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2007-09-2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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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의 인사입니다. 반석 되신 예수 위에 서십시다.
이번 한 주간 추석을 앞두고 우리의 걸음들이 움직여진다. 특별히 오늘 이 한날 추석을 앞두고 많은 만남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모든 현장들을 두고서 오늘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메시지와 응답을 받는 최고의 축복의 날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장을 잘 아시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실 것이다. 오늘 이 한날 특별히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말씀을 깨닫는 주의 은혜를 입는 축복을 입길 바란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 주간에는 언약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정해 나가게 될 때 그것이 현장과 사람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축복된 응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씀을 드렸다. 언약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른 답을 줄 수 있다. 그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현장에서 살아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오늘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추석을 앞두고 귀중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정리해야 한다. 이미 추석을 앞두고 오고가는 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기도제목들이 발견되어질 것이다. 특별히 추석명절 전후로 해서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가정과 가문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그와 더불어 가정과 가문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붙잡는 축복이 있게 될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나 한사람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가정과 가문을 살리고 우리의 후대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된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16:31에「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이 언약을 붙잡고 이번 추석 명절이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이 꺾여 지고 가정과 가문이 복음화 되어 지고, 새로운 기도제목과 응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할 것이다.
우리 가정은 다 믿고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요셉의 가문이 완전 복음화 되었다. 그리고 요셉 때문에 불신자인 보디발의 집의 모든 소유에 까지도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셔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가문을 이루게 하신 것이 우리에게 와 있다. 오늘 여호수아도 그러한 고백을 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고백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고 축복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가정과 가문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참된 축복을 확인해나가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특별히 이번 명절 시간에는 다른 것들보다도 생명이라는 단어를 마음 중심에 갖고 현장에 나가시길 바란다. 모든 일들을 진행하고, 만남과 사건 속에 생명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보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축복이 만남, 일, 사건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든지간에, 가문이 어떤 환경에 있든지 상관없이, 우상숭배를 하는 가정과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가정과 가문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영적인 힘을 얻게 되어있고 엄청난 축복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분명히 이번 한 주간에 많은 것을 붙잡아야겠지만 생명이라는 단어를 마음의 중심 속에 담고 만나고 일하고 이동하길 바란다.
지난 주간에는 가장 은혜 받았던 단어가 이 생명이라는 단어이다. 지난 금요일 전도학교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지난주 2부 메시지의 본문은 자기 재산을 요구해서 재산을 부여받은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완전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은데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결단을 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새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눅15:23절에 보면「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그러면서 24절에「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 생명의 축복에 대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 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사실적인 현장이 새롭게 보여지고 많은 부분들에서 응답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많은 성도들이 문제와 사건을 당하게 될 때에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가 어디에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생명을 받는 것이다. 생명을 얻은 자들은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 생명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증인되어지는 것이, 또 내가 속한 현장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시스템이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 계획, 소원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을 찾지 말고 그것은 모두 생명과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10:10에「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3:16에도「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20:31에는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6:40에는「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다른 것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누리고, 생명의 증인이 되어지고 생명의 시스템이 되어지는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모든 문제, 가정의 문제, 가문의 문제도 이 사실 속에서 봐야한다.
왜 우리가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는가? 이유는 생명 때문이다. 학생들은 왜 공부하는가? 공부해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생명운동 때문에. 생명의 증인으로 우리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 생명의 증거를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생명을 향한 것만이 있다. 무언가 모르게 자꾸 다른데서 방법을 찾으려고 하니까 가면 갈수록 문제가 오고 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가문에 살아가는 생애동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런 문제일수록 문제 속에서 다른 계획은 없고 생명의 계획만이 있는 것이다. 생명의 계획만 내게 있다. 이 사실을 진짜 알아야 그 문제를 바로 보게 되어있다.
어떤 분 가정에 심방을 가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직장생활의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를 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가운데 제 마음에 ‘결국은 현장에서 생명을 누리지 못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답이 내려졌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이 자기 아들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셨다. 그 말씀을 나누면서 제게 또다시 확인되어지는 것이 결국은 생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혹여나 다른 것으로 여러분의 문제가 보여 진다면 그것은 잘 못 본 것이다. 우리가 작고 큰 문제를 당할 수 있지만 그 문제에 상관없이 결국은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고, 생명이 증인되게 하는 것이고, 생명의 시스템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여러 불신앙적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생명을 가지고 보면 진짜 불신앙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언약, 생명의 한이 우리에게 붙잡혀 지게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을 때에 그 복음이 주어지는 그 시대적인 배경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복음의 역사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진짜 은혜 받은 사람들만 알 수 있도록 주신 것이 바로 복음이요, 생명의 역사이다.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들이 내게 있는 생명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게 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시간표가 보여 진다. 그것은 서두를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것이 보여지니까 조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장 총명함으로 지혜로움으로 인도받는 길이 생명을 가지고 문제와 사건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에 마음 중심에 생명을 가지고 형제, 부모님을 만나길 바란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할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있다. 이 생명의 역사들이 이번 한 주간에 걸음마다 확인되고 체험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제목으로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 말은 여호수아가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고별설교를 한 말인데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우상숭배를 하지말라는 것이다. 그의 전 인생을 놓고 그의 마지막 생애에 그의 민족에게 그의 후대들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를 24장에서 말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겟노라” 이 부분을 가지고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생명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섬길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생명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얻는 길을 알아야 한다. 우리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그 생명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 원리 속에 언약이 들어있다.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약속하신 말씀이 그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아무런 규모나 질서 없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원리대로 창조하셨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땅이 공허하고 혼돈한 무질서한 상태에서 제일 처음에 창1:3에 빛을 창조하시고, 그 후에 하등식물부터 고등동물까지 순서대로 창조하신 것을 보게 된다. 그냥 아무렇게 질서 없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날을 봐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첫째 날에는 빛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해, 달, 별이 창조되었다. 둘째 날에는 궁창이 창조되었다. 다섯 째날에는 궁창에 있어야할 새와 물고기가 창조되었다. 셋째 날 땅, 바다, 식물을 창조하시고 여섯째날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바탕들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이후에 짐승, 인간을 창조해나가셨다. 무작위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하나하나 창조한 것을 보게 되어 진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창1:26-28「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시리아어 역본에는 온 땅의 짐승과」하나님이 창조의 원리인 생명적인 원리를 가지고 창조하셨다.「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에게 모든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완전한 축복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을 친히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창2:7에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존재인 영혼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창2:7에 하나님과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 이 창조언약이 충족되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우리 삶 가운데 충족되어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리라고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그 증표로 선악과를 우리에게 주셨다. 창2:17이다. 행위언약을 주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왜 우리에게 선악과를 주셨는가하면 하나님과의 생명관계를 누리도록 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이다. 우리를 실패시키기 위해서 선악과를 주신 것이 아니다. 선악과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안되는구나’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알고 누리게 하려고 선악과를 주신 것이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언약의 징표로 주신 것이 선악과이다. 이 선악과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나의 창조주이구나’ 이 사실을 매일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명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선악과이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선악과를 범하게 되었다. 창3장 사건은 인간의 타락사건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떠나 죄와 불신앙의 사건이고, 사단의 사건이고, 언약의 파기사건이다. 이 창3장의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이 땅의 모든 피조물조차도 허무함에 결국할 수밖에 없는 완전 저주가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가 깨어짐으로 모든 것에 문제가 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한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자말자 악한 사단의 영이 인간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결국은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가? 왜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복을 달라고 빌고 있는가? 왜 종료를 가지고 미신을 하고 굿을 하고 왜 점쟁이를 찾아가는가? 안가면 안 되게 되어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서 떠났고 악한 사단이 인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해야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래서 인류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인 인간을,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창조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복을 달라고 비는 비참함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롬1:23-25「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지금 우리의 현장 이야기이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이 보여 진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에 빠져서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신 인간이 하는 것이 우상숭배를 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끊어짐으로 사단의 영이 인간의 영을 주관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인생에게 비참한 영적인 문제가 오게 된 것이다. 롬1장에 보면 불신자 상태 6가지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 해결책을 주셨는데 창3:15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 사실을 창세기의 4족장을 통해서 창3:15을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서 창3:15을 붙잡을 때에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출1:8에 보면「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길로 주신 창3:15을 놓쳤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또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굽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10가지 재앙이 내렸다. 그들에게 임한 10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결국 저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거기에서 결국은 유월절 어린양의 비밀을 말씀했다. 창3:15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참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갱신하고 준비해야 할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가나안땅에 창3:15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정복하게 되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
그 창3: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말씀하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요1장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1:1에「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4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말씀이신 하나님, 그 분이 그리스도이신데 우리 안에 오셨다. 그 분의 이름이 예수이고, 그 분이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담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셨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막히면서 요19:30에 “다 이루었다” 모든 저주를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모든 저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알고 붙잡는 순간에 끝난 것이다. “다 이루었다” 구원사역을 완성 했다는 것이고, 생명의 길을 여셨다는 것이다.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더 놀라운 것은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을 먹고 마시는 생명적인 관계이다. 이 속에서 모든 것들이 다 되게 되어있다. 이 생명 속에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나오게 되어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현장에 있든지 간에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이 관계가 되어 지면 어떤 현장도 응답의 자리, 축복의 자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자리로 바뀌어진다. 추석 명절 때 사실 그렇게 편하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세계복음화의 방법이 임마누엘이고, 가나안 정복의 길이 임마누엘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현장이든지 그를 정복하는 길이 있다면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에 그 어떤 현장도 그 현장이 응답의현장이 되어지고, 축복의 현장이 되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감사의 현장이 되어 질 것이다. 이번 한주간 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이 언약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신앙적인 결단을 하게 된다. 자기 인생의 전 생애를 두고 백성들 앞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수24:2에 보면「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우상숭배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 14절을 보면「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15절에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16절 마지막에도「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그들의 결단이다. 20절에도 보면「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23절에도「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가? 우상숭배는 사단이 틈타는 직접적인 길이 되기 때문이다. 악한 사단의 최고의 전략이 결국은 경배대상을 우상숭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4장에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을 하고 주리실 때에 악한 사단이 예수님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시험을 하는데 그 세 번째가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엎으려 경배를 하면 네게 모든 것을 주리라’ 결국 사단의 목적이 이것이다. 우상숭배를 해서 복을 받았는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빈손으로 주님 앞에 나갔지 않은가? 그런 현장을 바라보면서 정말 우리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붙잡아야 한다. 우상숭배는 망하는 길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수아가 고백했던 것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생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현장을 보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결단이 나오게 되어있다. 어떤 현장이든지 생명을 가지고 현장을 보면 오늘 여호수아의 고백이 나의 고백으로 드려지게 되어있다. 그때에 흑암이 꺾여 진다.
말씀을 맺는다. 본문 15절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여호수아가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고, 14절 마지막에도 “여호와만 섬기라”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관계를 회복하고 물질적인 축복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사람관계도 회복되고 사람도 살아나게 되어있다. 억지로 맞지 않는 배경 속에서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말로 하나님만 섬겨야 되겠다는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가정과 가문의 관계도 해결해 주시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물질적인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 신앙의 결단이 주어지게 될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듣고, 악한 사단도 듣는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결단하게 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 여리고가 무너지는 역사, 사단의 왕국이 무너지고,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귀중한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추석 명절 많은 만남 중에 생명을 가지고 중심에 ‘정말 나는 하나님만 섬겨야 겠다’는 결단이 주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번 한 주간 추석을 앞두고 우리의 걸음들이 움직여진다. 특별히 오늘 이 한날 추석을 앞두고 많은 만남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모든 현장들을 두고서 오늘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메시지와 응답을 받는 최고의 축복의 날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장을 잘 아시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실 것이다. 오늘 이 한날 특별히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말씀을 깨닫는 주의 은혜를 입는 축복을 입길 바란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 주간에는 언약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정해 나가게 될 때 그것이 현장과 사람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축복된 응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씀을 드렸다. 언약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른 답을 줄 수 있다. 그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현장에서 살아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오늘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추석을 앞두고 귀중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정리해야 한다. 이미 추석을 앞두고 오고가는 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기도제목들이 발견되어질 것이다. 특별히 추석명절 전후로 해서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가정과 가문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그와 더불어 가정과 가문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붙잡는 축복이 있게 될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나 한사람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가정과 가문을 살리고 우리의 후대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된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16:31에「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이 언약을 붙잡고 이번 추석 명절이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이 꺾여 지고 가정과 가문이 복음화 되어 지고, 새로운 기도제목과 응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할 것이다.
우리 가정은 다 믿고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요셉의 가문이 완전 복음화 되었다. 그리고 요셉 때문에 불신자인 보디발의 집의 모든 소유에 까지도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셔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가문을 이루게 하신 것이 우리에게 와 있다. 오늘 여호수아도 그러한 고백을 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고백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고 축복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가정과 가문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참된 축복을 확인해나가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특별히 이번 명절 시간에는 다른 것들보다도 생명이라는 단어를 마음 중심에 갖고 현장에 나가시길 바란다. 모든 일들을 진행하고, 만남과 사건 속에 생명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보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축복이 만남, 일, 사건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든지간에, 가문이 어떤 환경에 있든지 상관없이, 우상숭배를 하는 가정과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가정과 가문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영적인 힘을 얻게 되어있고 엄청난 축복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분명히 이번 한 주간에 많은 것을 붙잡아야겠지만 생명이라는 단어를 마음의 중심 속에 담고 만나고 일하고 이동하길 바란다.
지난 주간에는 가장 은혜 받았던 단어가 이 생명이라는 단어이다. 지난 금요일 전도학교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지난주 2부 메시지의 본문은 자기 재산을 요구해서 재산을 부여받은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완전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은데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결단을 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새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눅15:23절에 보면「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그러면서 24절에「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 생명의 축복에 대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 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사실적인 현장이 새롭게 보여지고 많은 부분들에서 응답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많은 성도들이 문제와 사건을 당하게 될 때에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가 어디에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생명을 받는 것이다. 생명을 얻은 자들은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 생명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증인되어지는 것이, 또 내가 속한 현장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시스템이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 계획, 소원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을 찾지 말고 그것은 모두 생명과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10:10에「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3:16에도「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20:31에는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6:40에는「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다른 것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누리고, 생명의 증인이 되어지고 생명의 시스템이 되어지는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모든 문제, 가정의 문제, 가문의 문제도 이 사실 속에서 봐야한다.
왜 우리가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는가? 이유는 생명 때문이다. 학생들은 왜 공부하는가? 공부해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생명운동 때문에. 생명의 증인으로 우리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 생명의 증거를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생명을 향한 것만이 있다. 무언가 모르게 자꾸 다른데서 방법을 찾으려고 하니까 가면 갈수록 문제가 오고 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가문에 살아가는 생애동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런 문제일수록 문제 속에서 다른 계획은 없고 생명의 계획만이 있는 것이다. 생명의 계획만 내게 있다. 이 사실을 진짜 알아야 그 문제를 바로 보게 되어있다.
어떤 분 가정에 심방을 가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직장생활의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를 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가운데 제 마음에 ‘결국은 현장에서 생명을 누리지 못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답이 내려졌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이 자기 아들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셨다. 그 말씀을 나누면서 제게 또다시 확인되어지는 것이 결국은 생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혹여나 다른 것으로 여러분의 문제가 보여 진다면 그것은 잘 못 본 것이다. 우리가 작고 큰 문제를 당할 수 있지만 그 문제에 상관없이 결국은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고, 생명이 증인되게 하는 것이고, 생명의 시스템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여러 불신앙적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생명을 가지고 보면 진짜 불신앙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언약, 생명의 한이 우리에게 붙잡혀 지게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을 때에 그 복음이 주어지는 그 시대적인 배경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복음의 역사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진짜 은혜 받은 사람들만 알 수 있도록 주신 것이 바로 복음이요, 생명의 역사이다.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들이 내게 있는 생명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게 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시간표가 보여 진다. 그것은 서두를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것이 보여지니까 조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장 총명함으로 지혜로움으로 인도받는 길이 생명을 가지고 문제와 사건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에 마음 중심에 생명을 가지고 형제, 부모님을 만나길 바란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할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있다. 이 생명의 역사들이 이번 한 주간에 걸음마다 확인되고 체험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제목으로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 말은 여호수아가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고별설교를 한 말인데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우상숭배를 하지말라는 것이다. 그의 전 인생을 놓고 그의 마지막 생애에 그의 민족에게 그의 후대들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를 24장에서 말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겟노라” 이 부분을 가지고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생명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섬길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생명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얻는 길을 알아야 한다. 우리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그 생명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 원리 속에 언약이 들어있다.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약속하신 말씀이 그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아무런 규모나 질서 없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원리대로 창조하셨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땅이 공허하고 혼돈한 무질서한 상태에서 제일 처음에 창1:3에 빛을 창조하시고, 그 후에 하등식물부터 고등동물까지 순서대로 창조하신 것을 보게 된다. 그냥 아무렇게 질서 없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날을 봐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첫째 날에는 빛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해, 달, 별이 창조되었다. 둘째 날에는 궁창이 창조되었다. 다섯 째날에는 궁창에 있어야할 새와 물고기가 창조되었다. 셋째 날 땅, 바다, 식물을 창조하시고 여섯째날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바탕들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이후에 짐승, 인간을 창조해나가셨다. 무작위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하나하나 창조한 것을 보게 되어 진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창1:26-28「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시리아어 역본에는 온 땅의 짐승과」하나님이 창조의 원리인 생명적인 원리를 가지고 창조하셨다.「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에게 모든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완전한 축복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을 친히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창2:7에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존재인 영혼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창2:7에 하나님과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 이 창조언약이 충족되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우리 삶 가운데 충족되어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리라고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그 증표로 선악과를 우리에게 주셨다. 창2:17이다. 행위언약을 주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왜 우리에게 선악과를 주셨는가하면 하나님과의 생명관계를 누리도록 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이다. 우리를 실패시키기 위해서 선악과를 주신 것이 아니다. 선악과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안되는구나’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알고 누리게 하려고 선악과를 주신 것이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언약의 징표로 주신 것이 선악과이다. 이 선악과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나의 창조주이구나’ 이 사실을 매일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명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선악과이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선악과를 범하게 되었다. 창3장 사건은 인간의 타락사건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떠나 죄와 불신앙의 사건이고, 사단의 사건이고, 언약의 파기사건이다. 이 창3장의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이 땅의 모든 피조물조차도 허무함에 결국할 수밖에 없는 완전 저주가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가 깨어짐으로 모든 것에 문제가 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한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자말자 악한 사단의 영이 인간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결국은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가? 왜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복을 달라고 빌고 있는가? 왜 종료를 가지고 미신을 하고 굿을 하고 왜 점쟁이를 찾아가는가? 안가면 안 되게 되어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서 떠났고 악한 사단이 인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해야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래서 인류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인 인간을,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창조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복을 달라고 비는 비참함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롬1:23-25「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지금 우리의 현장 이야기이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이 보여 진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에 빠져서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신 인간이 하는 것이 우상숭배를 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끊어짐으로 사단의 영이 인간의 영을 주관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인생에게 비참한 영적인 문제가 오게 된 것이다. 롬1장에 보면 불신자 상태 6가지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 해결책을 주셨는데 창3:15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 사실을 창세기의 4족장을 통해서 창3:15을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서 창3:15을 붙잡을 때에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출1:8에 보면「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길로 주신 창3:15을 놓쳤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또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굽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10가지 재앙이 내렸다. 그들에게 임한 10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결국 저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거기에서 결국은 유월절 어린양의 비밀을 말씀했다. 창3:15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참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갱신하고 준비해야 할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가나안땅에 창3:15의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정복하게 되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
그 창3: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말씀하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요1장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1:1에「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4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말씀이신 하나님, 그 분이 그리스도이신데 우리 안에 오셨다. 그 분의 이름이 예수이고, 그 분이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담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셨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막히면서 요19:30에 “다 이루었다” 모든 저주를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모든 저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알고 붙잡는 순간에 끝난 것이다. “다 이루었다” 구원사역을 완성 했다는 것이고, 생명의 길을 여셨다는 것이다.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더 놀라운 것은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을 먹고 마시는 생명적인 관계이다. 이 속에서 모든 것들이 다 되게 되어있다. 이 생명 속에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나오게 되어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현장에 있든지 간에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이 관계가 되어 지면 어떤 현장도 응답의 자리, 축복의 자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자리로 바뀌어진다. 추석 명절 때 사실 그렇게 편하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세계복음화의 방법이 임마누엘이고, 가나안 정복의 길이 임마누엘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현장이든지 그를 정복하는 길이 있다면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에 그 어떤 현장도 그 현장이 응답의현장이 되어지고, 축복의 현장이 되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감사의 현장이 되어 질 것이다. 이번 한주간 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이 언약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신앙적인 결단을 하게 된다. 자기 인생의 전 생애를 두고 백성들 앞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수24:2에 보면「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우상숭배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 14절을 보면「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15절에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16절 마지막에도「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그들의 결단이다. 20절에도 보면「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23절에도「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가? 우상숭배는 사단이 틈타는 직접적인 길이 되기 때문이다. 악한 사단의 최고의 전략이 결국은 경배대상을 우상숭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4장에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을 하고 주리실 때에 악한 사단이 예수님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시험을 하는데 그 세 번째가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엎으려 경배를 하면 네게 모든 것을 주리라’ 결국 사단의 목적이 이것이다. 우상숭배를 해서 복을 받았는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빈손으로 주님 앞에 나갔지 않은가? 그런 현장을 바라보면서 정말 우리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붙잡아야 한다. 우상숭배는 망하는 길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수아가 고백했던 것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생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현장을 보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결단이 나오게 되어있다. 어떤 현장이든지 생명을 가지고 현장을 보면 오늘 여호수아의 고백이 나의 고백으로 드려지게 되어있다. 그때에 흑암이 꺾여 진다.
말씀을 맺는다. 본문 15절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여호수아가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고, 14절 마지막에도 “여호와만 섬기라”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관계를 회복하고 물질적인 축복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사람관계도 회복되고 사람도 살아나게 되어있다. 억지로 맞지 않는 배경 속에서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말로 하나님만 섬겨야 되겠다는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가정과 가문의 관계도 해결해 주시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물질적인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 신앙의 결단이 주어지게 될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듣고, 악한 사단도 듣는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결단하게 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 여리고가 무너지는 역사, 사단의 왕국이 무너지고,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귀중한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추석 명절 많은 만남 중에 생명을 가지고 중심에 ‘정말 나는 하나님만 섬겨야 겠다’는 결단이 주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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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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