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2007-03-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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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지난 13일 화요일에는 우리 교회에서 대구지역 연합집회가 있었다. 3500명 정도 모여서 함께 말씀을 붙잡고 은혜를 받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두 번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첫 번째 주신 말씀이 “지역을 바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다. 바뀐 인생을 쓰시고 바꾸는 사람을 쓰시고 바뀐 단체들을 하나님은 쓰신다는 사실이다. 바뀌지 않으면 결국 역사 속에 있었던 5번에 걸친 재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그러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첫 번째로 믿음과 생각을 바꾸고 또 삶의 규모를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다. 두 번째로 주신 것은 “생명을 가진 자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생명을 가진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주시면서 이 생명의 귀한 축복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 무엇부터 인도받아야 될 것인가 말씀을 주셨고, 그렇게 되어질 때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고 그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게 되어있다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바꾸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바로 우리에게 있는 복음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복음만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악한 사단의 전략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이 아닌 것으로 목적으로 삼고 방향 삼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복음이 아닌 것을 빼내는 것이 제대로 되어지면 참된 응답을 누리게 된다. 굳이 전도를 안한다고 할지라도 기도를 안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복음 아닌 것들을 뜯어내는 만큼 응답을 받고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다.
우리에게 회복이 되어야하는 것이 있다면 복음에 대한 회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진정 그 복음의 능력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술에 의지해서 자기 생애를 살아가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상 방법으로 살아가고 세상의 모든 인본주의, 육신주의,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의 능력들을 모르는데서 오는 것이다. 핍박 가운데 있었던 바울은 그 핍박 속에서도 자신은 복음을 자랑한다고 말씀했다. 롬1:16에 보면「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말씀했다. 고전1:18에도 보면「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능력은 복음이다. 그 복음의 비밀에 뿌리를 내릴수록 세상을 살리고 지역을 바꾸고 사람을 살리게 되어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래서 이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하면 모든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창3장의 원죄문제를 한번에 끝내 버리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온 지구상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복음에 방향 맞추지 않고 살아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득적으로 찾아온 죄의 문제들 가운데 모두가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 우상숭배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인간이 최고로 높아진 것이 바벨탑사건이다. 아무리 바벨탑을 쌓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도록 주신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 복은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복음 안에서 모든 것들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고 그때부터 우리에게 참된 승리와 감사와 감격이 나오게 된다. 이번 한 주간에도 모든 삶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특별히 이 본문을 가지고 복음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을 드리려고 한다. 기브온의 거민에 의해서 복음 안에 있는 것이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하나님의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동원해야 된다. 이것은 내가 노력하고 애쓰고 몸부림을 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동원해야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브온 거민이 취한 행동이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있다면 이런 것 저런 것을 여러 가지를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한 가지 목적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해서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요3:16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왜 주셨는가? 멸망받는 세상 속에서 멸망받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벧전1: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우리가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저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결국은 영혼구원, 구원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결과이다. 왜 그러한가? 인간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는 구원받아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대일수록 인간은 영적인 문제로 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되어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은 영적인 문제로 더 심각하게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있다.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사회의 일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라.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아무리 사회가 발전을 하고 살기가 편해진다고 해도 인간은 영적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고통 가운데 빠지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그래서 딤후3장이나 마24장에 계시록에 말세에 일어날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엄청난 영계의 혼란이 일어나고 그 혼란 속에서 인생이 고통당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왜 이러한 문제들이 아무리 돈이 있어도 해결이 안되고 아무리 명예를 가져도 해결이 안되는데 왜 그러한가? 성경에서는 창3장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그 배후에 사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오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롬5:8에「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때가 아니다. 죄인 되었을 때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기준인 것이다. 구원의 기준이 행위라면 행위를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의 기준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구원은 우리의 선행과 열심, 경건 등이 인간의 것이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기준이다. 엡2:8-9「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은 절대로 인생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우리 편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고 자꾸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현장을 잘 살펴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현장은 인간은 대단한 존재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현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유대인, 바리새인들의 삶을 보라. 그들이 내세운 것들이 무엇인가? 율법과 선행과 경건, 제도와 의식과 전통에 대한 것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천주교, 구교 그들이 선행과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자녀들이 어떻게 선행을 쌓고 공로를 쌓는가에 따라서 죽은 부모들이 연옥에 있던 것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자꾸 이끌어가고 있다고하는 것을 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복음보다는 삶을 강조하고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복음보다 율법, 구제, 선행을 이야기한다. 물론 좋은 것이다. 물론 그것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강조되어지는 곳에서 결국 교회의 실패가 오고 있다.
우리 인생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데서 시작한 것이 종교이다. 종교라는 것은 모두다 그 원인과 결과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되어서 최고의 경지에 빠질 수 있고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이다. 다시 말하면 내 안에 구원을 위해서 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종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종교와 복음이 어떤 것인가를, 복음과 율법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구분만 해도 바른 응답을 받게 되어있다. 종교라는 것은 나를 계발하고 나를 닦아서 초월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종교적인 형태, 이것이 바로 철학적인 바탕과 사회전반에 흐르는 인과율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나를 자꾸 경건하게 하고 닦고 경지에 이르고 나를 수련하고 그것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주고 호소력이 있고 거기에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감동과 감화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절에 있는 스님들이 며칠 밥을 굶고 몇 년 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도를 닦았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하고 모두가 높이고 경건다고 보는 것이다. 거기에 감화,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우리가 잘 아는 예로 성철스님.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장좌불와, 등을 바닥에 대지 않고 앉아서 자고 도를 닦았다고 해서 한때 얼마나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엄청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아예 두문불출하면서 사람이 오는 것을 막고 혼자 도를 닦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언가 호소력을 주고 감동과 감화를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떳떳함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 노력해야 하고 선행을 해야 하고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지성을 쌓고 열심히 있어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해야 또 속이 시원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는 나를 버릴 수 없다는 강한 자존심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그 자존심의 배후에는 악한 사단의 깊은 궤계가 숨어있다. 바로 창3:5에 최초의 인간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라는 유혹이 거기에 똑같이 들어있다. 그래서 우상숭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하는 자는 3-4대가 망한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우상숭배는 결국 형상을 만들어놓고 빌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자는 것이다. 출20:4에「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너를 위하여 섬기는 우상. 우리 인생은 그 누구도 자기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내려놓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 싸움은 자기 자존심과의 싸움이다. 나를 버릴 수 없다는 자존심과의 싸움이다. 그 배후에 역사하는 것은 사단이다.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사단의 전략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종교를 주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주셨다. 바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은 우리 인생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복음이다. 우리 인생이 해결 할 수 없는 심각한 중대한 문제가 무엇인가? 사단과 죄와 지옥의 권세 아래 붙잡혀 있는 신분이다. 그 신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와 더불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이 이 땅에 계속해서 임하고 있다. 사단의 문제로 말미암아 나온 원죄문제,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우리가 알고 짓는 죄도 있고 모르고 짓고 있는 자범죄, 이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계속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구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이 구원이다.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내어보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피 흘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했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하면 기름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에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의 인생이 심각하게 빠져있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문제인 지옥의 사단의 죄의 권세를 꺾기 위해서이다.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시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생명이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요일5:11-12에 보면「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생명, 그리스도의 생명, 부활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느낌과 감정과 체험이 없어도 좋다. 느낌과 감정과 체험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생명이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생명주어진 자를 어찌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롬8:30-39에 보면 특별히 32절에「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다시 말해서 생명 주신 그분께서 생명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롬8:37-38에 보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생명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것이다. 눅21장에 보면 말세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다. 개인이 무너지고 교회조차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다. 개개인들이 영적인 문제로,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우상과 종교들이 일어나서 핍박이 일어나고 엄청난 영적인 문제로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눅21:18에 보면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사실이다. 생명가진 자에게. 고후4:8-9에 보면「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생명가진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는 일을 당하지만 싸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다. 답답한 일이 있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지만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받을지라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생명가진 자에게. 이 생명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는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내 공로와 내 의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 내 삶과 행동과 내 선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다.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의 우리의 의가 되셨다.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의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속지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된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마10:16에 보면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다. 뱀에게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뱀은 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뱀에게 지혜를 배우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그만큼 시급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눅16장에 보면 불의한 청지기에게 맡겼다. 불의한 청지기에게 주인이 처음에는 불의한 청지기인 줄 모르고 멀리 가면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청지기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맡아서 잘 관리를 해야 되는데 자기의 유익과 쾌락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허비했다. 그러자 그 주인이 이 그 소식을 듣고 이 청지기를 파면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불러다가 1000만원을 빌렸으면 500만원을 적어주고 100만원을 빌렸으면 50만원을 적어줬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기가 자기 집에서 쫓겨났을 때에 그렇게 하면 이 사람들이 나를 잘 봐줄 것이라는 세상적인 지혜이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절반씩 탕감을 해주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비유를 하면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장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지혜, 자기의 살길을 위해서 준비하는 지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도덕한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채찍을 맞고 벌을 받을 일이지만 그러나 장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그 지혜를 하나님이 칭찬하셨다. 야곱과 에서를 알 것이다. 야곱은 어떤 면에서 장자권의 명분을 받기 위해서 모든 것을 동원했다. 그래서 결국은 그것 때문에 야곱의 생애에 엄청난 환란이 오게 되었다. 그런데 야곱은 오직 장자권을 빼앗길 원했다. 그래서 사실은 사기를 쳐서 그 장자권을 빼앗았다. 무엇을 말하는가? 이 장자권의 명분은 구원의 축복을 말한다. 비록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채찍을 받고 벌을 받아야할 일이지만 그러나 구원의 관심과 그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거기에 뒤쳐질 수 없다는 야곱의 중심에 있는 구원이 모든 것이라는 그 중심사상이다. 우리에게는 사실 이 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그 중심이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뱀에게서 배우라,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서 배우라,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배우라고 한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하는 구원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오늘 본문에 기브온 족속이 나온다. 기브온 족속은 이방인이다. 가나안땅에 거주하는 히위족속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면 7족속이 기다라고 있는데 그 7족속을 다 멸하라고 했다. 그 중의 한 족속이 기브온 거민, 히위 족속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기브온 사람들은 축복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에서 행한 일을 들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들었다. 요즘말로 하면 복음을 들었다는 말이다.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을 듣고 남은 가나안의 6족속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이런 가운데 기브온 거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 편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부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다. 간교한 간사한 꾀를 내리는데 먼데서 온 것처럼 과장을 하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속이는 것을 보게 된다. 4-5절에「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는 속게 된다. 12-15절에「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기브온 거민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가장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를 속였다. 그래서 결국은 여호수아가 이 기브온 거민들과 화친, 언약을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무슨 말인가? 결국은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의 공동체 속에 들어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생활로 들어왔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언약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21절에 보면「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23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27절에도「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비록 과장해서 속여서 들어왔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왔다. 비록 종으로 들어왔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을 행할 자들로 들어온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 보면 이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속인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10장 이후에 보면 이 기브온 거민에게 다른 가나안의 사람들이 연합을 해서 공격을 해오는데 전쟁을 일으켜서 침공을 해오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 기브온 거민들로 인한 전쟁에 태양과 달을 멈추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언약 안에 있는가, 언약 밖에 있는가가 하나님의 기준이다. 비록 속여서 들어왔지만 이들은 생명을 구원받았다. 19-21절까지이다.「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여기에 보면 생명을 건졌다는 말은 목숨을 부지했다는 그 정도의 말이 아니다. 구원의 축복 속으로, 언약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지혜가 있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기브온 거민들과 동일하게 우리 또한 이방인이었고 약속에 있어서는 외인이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약속 안에 들어오고 생명가진 자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누리는 자로 우리를 세우셨다. 이 구원의 역사를 알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
말씀을 맺는다. 고후6:2에「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했다. 은혜의 때에 구원의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 은혜의 시간표이고 구원의 시간표이다. 내일은 은혜의 시간표일지 구원의 시간표일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언제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오늘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오늘 은혜를 입어야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브온 거민이 비록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종으로 들어왔지만 그러나 27절에 보면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수고하는 언약 안에 들어온 엄청난 축복의 사람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내일은 우리에게 은혜의 때, 구원의 때라는 보장이 없다. 오늘이 바로 은혜받는 때이고, 오늘이 구원의 시간표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핍박 속에서도 전세계를 향해서 핍박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갈 수 있었던 그 힘의 원동력이 지금이 구원의 시간표이고 지금이 은혜 받을 시간표임을 알았기 때문에 심지어 루스드라 성에 들어가서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되었지만 또다시 일어나서 그 성에 들어갔다. 왜 그러한가? 오늘이 바로 은혜의 시간표이고 구원의 시간표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가진 바울에게 하나님은 롬16장의 모든 제자를 붙이셨고 이 가슴을 가진 바울에게 하나님은 전 지역을 다니면서 교회를 세울 만큼 경제적인 축복을 허락하셨다. 구원의 시간표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의 시간표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은혜 받아야 한다. 지금 구원받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구원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오늘 최고의 축복으로 누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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