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2007-07-1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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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최고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렘넌트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시대에 누렸던 하나님의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셉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전 애굽을 살리게 되었다.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요셉에게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높아졌고, 요셉 덕분에 야곱과 야곱의 자녀들이 교센 땅에 머물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묵는 그 고센 땅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야곱이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바로 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할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이 요셉시대에 들어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누렸던 요셉시대 후 400년 동안 완전히 노예가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어려운 노동으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없었고, 결국은 이스라엘 자손의 여자아이는 살려주고 남자아이들은 죽이도록 명령하는 남아멸절 정책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음을 보게 된다. 요셉 자신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었지만 후손들에게 이 믿음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 이미 다 준 땅, 축복을 본인은 누렸지만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결국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그들의 자녀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따지고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저 철병거를 물리치고 살림을 차지하겠느냐”하는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얼마나 렘넌트 운동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제대로 언약을 전달하고 참된 복음을 주어서 우리 자녀들이 핑계대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면서 세계를 정복하는 일꾼들로 세워나가야 한다.
오늘 본문의 18절의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입길 원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 이 부분은 여러분의 언약으로 붙잡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엄청난 축복을 누리기 위한 전제가 나온다.「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그리고 15절에「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이 말은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알아서 하라는 말도 아니다. 이미 하나님 안에서 다 주셨기 때문에 스스로 개척해 나가라는 말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능력이 그러한 것이다. 정말 우리가 복음 때문에 나아간다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성경에 보면 땅 끝까지 이르러 만민에게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우리의 축복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를 세 가지로 생각고자 한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귀신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항아리 속에 갇혀있는, 상자 속에 가두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돌부처같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인 없다고 할지라도 그 불신자들의 인생, 영혼조차도 주장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다. 그 어떤 인생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받을 때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 시간에 바로 성령이 역사하시고 흑암의 권세들이 꺾여지고 말씀을 제대로 받을 때에 우리 안에 참된 믿음이 회복되게 되어있다. 우리가 정말 말씀을 믿는 믿음이 회복되어지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고,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승리토록 되어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맞으면 우리의 인생이 성공하게 되어있다. 아무리 잘나가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다면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오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21:1-2에「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말씀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이 생기리라 말씀하셨다. 사실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그 말씀이 환경을 뛰어넘어서 성취되게 되어있다. 그 말씀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창22:17-19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너로 말미암아 네 후손이 창대케 되겠고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지금도 성취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도 복음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의 성취이다. 지금도 우리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전도, 생명운동은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게 될 때에 그 어떤 문제와 사건과 환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기도 하신다. 결국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동원해 나가신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10가지 기적을 베풀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이 한날 온종일토록 예배하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가?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본질을 놓치는 요셉의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나온다. 므낫세가 형이고 에브라임이 동생이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에브라임이 먼저 나온다. 야곱에게 요셉이 자기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와서 야곱의 오른 손에 므낫세를 두고 왼손에 에브라임을 앉혀두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어긋나게 얹어서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리나라가 장자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듯 이스라엘 나라의 문화도 장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장자권의 축복이 있다. 그런데 오른손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장자권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오른손을 야곱이 에브라임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보고 요셉이 다시 손을 바르게 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창48장에 보면 야곱이 중요한 말을 한다. “나도 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어긋나게 손을 올려서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허락하고.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어서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야곱은 평생 동안 눈이 어두워서 사기를 치고 염려하고 인본주의를 쓰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쓴 사람이다. 그런데 말년에 가서 이 야곱이 영안이 밝아서 하나님이 미래에 하실 일을 바라보고 두 손을 어긋나게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했다.
바로 이 부분을 보면서 지난주에 2부 때 말씀을 받았다. 먼저 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다고 말씀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복음을 사실적으로 알고 사실적인 믿음을 가지게 될 때 먼저 된 자가 되어진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성경의 수16:10에 보면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에브라임 지파가 그 땅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17:13에 므낫세 지파도 마찬가지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이것이 바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실수이다.
민33:51-55「51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3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54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 55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여기에서 가나안 원주민을 다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의 요소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복음에 대한 방해되는 것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모든 우상을 파하고 모든 거민을 다 멸절시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은 그 원주민들이 눈의 가시가 되고 너희가 옆구리를 찌르는 자가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했다. 내가 남겨놓은 사단의 통로, 불신앙의 불씨들이 사단의 이용거리가 되어서 우리 눈에 가시가 되고 우리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이 복음 외에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야함을 말씀하고 있다. 불신앙을 가지게 될 때 사단이 그 불신앙을 통해서 우리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불신앙하고 염려하게 되면 사단이 그 속에서 영적인 문제를 가져오고 그 영적인 문제를 그대로 후대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이다. 완전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혹이나 영적인 문제들이 틈탈 수 있는 부분들이 어떤 것인가를 영적으로 민감하게 살펴서 끊임없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고 우리 안의 불신앙의 부분들이 우리를 실패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와 더불어 오늘 본문에 보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받은 축복을 다 잊어버리고 17:14에 보면 왜 우리에게 산지를 주냐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와 더불어 16절에 보면 저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막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깰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가 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저들을 정복하느냐고 불신앙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걸어오는 동안에 전혀 전쟁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땅에는 철병거가 준비되어 있는 가나안 주민이 있었다. 맞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불신앙의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의 기준을 소유에 둔다. 많이 가진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는 있지만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그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만족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참된 인생에게는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 우리 인생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육신에 빠졌다. 죄의 문제,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임했다. 사단의 문제, 이로 말미암아 영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남, 죄, 사단의 문제가 우리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그 어떤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이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절대적인 평안,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이 근본문제를 인간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살이 찢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셨다. 죄 가운데 빠진 인생에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주셨다. 사단의 손에 빠진 인생에게 사단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열어주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인도받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역사함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 사실을 누리게 될 때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면 보이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오늘 마치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이미 모든 축복을 받아놓고 가나안 거민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는 한 무기만 주고 산지만을 주냐고 우리가 상대가 되냐고 불평과 불신앙을 하게 된다. 참된 절대적인 평안, 행복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참된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놓치지 말고 회복하는 여러분의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개척하라 그러면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는 무슨 뜻인가? 가나안 사람들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는 말이다. 세상이 너무 거대하고 주변 환경이 견고한 여리고성처럼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고 다가오고 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쫓아낼 수 있다. 우리에게 방법 중의 방법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왜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주시는가? 바로 응답이 되면 좋은데 왜 바로 응답을 주시지 않는가? 우리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고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가? 그 부분을 왜 금방 해결하지 않는가? 그 문제 속에 있어봐야 그 문제 있는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갈등을 겪어본 사람이라야 인간관계를 문제로 가져온 사람에게 답을 줄 수 있다. 돈 문제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돈 문제 있는 사람에게 답을 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와 갈등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메시지이다.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참된 축복의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을 맺는다. “스스로 개척하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작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능력을 다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작하라는 말이다. 비록 삼림과 철병거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가진 자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에 우리가 수고하는 손길을 통해서 기념비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실 것이다. 여름 행사를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해주시고, 시간이 되시면 함께 참여해 주시고, 헌신과 수고를 해주시고, 직장에 다니시는 분은 함께 참여하고 격려하는 것이 “스스로 개척하라.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로 새롭게 시작하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는 일에 함께 동참하게 되어지는 역사이다. 17절의 마지막에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새로 시작함으로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모든 현장을 다 살리는 귀중한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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