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평생 삶의 지표
2020-08-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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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생 삶의 지표”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아멘.
마7:13~1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영광이 크리라’세상에 외치는 자 많지만 우리는 오직 한 길 그리스도! 그 분 붙잡고 가는 것이 가장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이 한 날 예배를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 되어지는 그런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여러 관점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두 가지를 대조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와 불신앙 하는 자를 대조해서 계속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가복음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부자는 굉장한 많은 것들을 가졌고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자가 가진 것이 있고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가진 것이라고는 돈을 가지고 있었고, 명예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니까 돈도 있고 명예도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오고 갔겠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성경에 보면 날마다 호화로이 즐겁게 잔치했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가 갖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 영혼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더욱이 내세에 대해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반드시 누려야 될 영적인 축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영적인 저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모습을 모르고 부자는 살아간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오늘날 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고 영원과 내세에 대해서 있음도 알지 못하고 보이는 육신적인 것들이 모든 것들이 기준이 되어서 나를 중심하고, 세상을 중심하고, 성공을 중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조금 가지면 거기에 기뻐하고,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낙심하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해 버리는 그런 부분들이 지금 우리 세상 현장 속에 일어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부자와 더불어 거지 나사로가 나옵니다. 이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알기는 알았습니다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던 사람을 일컬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세가 있는 줄도 알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삶에서 실패한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잘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짧은 시간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제대로 걸어가야 될 길, 분명한 한 길이 있음을 붙잡고 오늘도 중요한 결단 가운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져야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길을 가고 있어요. 영적인 행로 두 가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편에는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정말로 생명의 길,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열매가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손에 붙잡혀지는 것이 없고 또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중에 결론을 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밥을 주냐 돈을 주냐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어리석어서 하는 소리예요. 하나님은 반드시 결론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 렘넌트들도 그들의 눈에 보면 예수 믿는 것이 뭔가 답답한 것 같고,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고, 뭔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조차도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답을 내시게 되어 있고 결론들을 내시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에 애굽에 노예로 있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서 40년 동안에 광야 길을 걸어 갔습니다. 430년에 비하면 40년은 아무것도 아닌 세월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430년 동안에 노에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아주 짧게 나와요. 그러나 광야 길을 걸어가는 40년, 사실은 애굽에서 빠져나온 이후에 광야 길을 걸어가는 40년의 생애를 상세하게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을 알지 못하고 진짜 복음의 길을 가지 않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결국은 헛된 삶이고 뻔한 삶이라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남겼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별 의미가 없는 삶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인생은 복음을 알고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예요. 복음을 제대로 알고, 복음의 길을 가는 그때부터 참된 인생이 시작되어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4장에 보면 가인의 족보가 나오고요, 창세기5장에 보면 생명의 족보인 아담의 족보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장 마지막 부분의 가인의 족보를 살펴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계속해서 그 이야기만 나와요. 그리고 또 중간에 누가 누구를 낳았는데 어떤 조상이 되었고, 누구는 누구를 낳았는데 어떤 조상이 되었고 거기에 유발과 야발과 두발가인을 들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5장에 보면 달라요.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면서 누구를 낳고 몇 세에 죽었더라 나와요. 차이가 있어요.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면서 자녀를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죽었더라 나와요. 그냥 낳고 죽었더라가 아니고 자녀를 낳고 살다가 또 죽었더라 이렇게 나와요. 여러분 그냥 볼 수 있습니다마는 저는 그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그렇다 복음 안에 있는 복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삶은 한 날 한 날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한 순간 산 순간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문화를 남기고 업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복음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의 걸음은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 라는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냥 낳기만 했는데도 생명 안에, 복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하루 한 순간 걸음 걸음마다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걸음을 그 축복 가운데 세우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낳고 죽고가 아니라,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자녀를 낳으면서 몇 세에 죽었더라 이것은 대단한 말이예요. 그래서 정말로 오늘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가 평생 삶의 지표로 복음의 길을 가야 되는데, 생명의 길을 가야 되는데 그럼 먼저, 복음의 길, 생명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 속에 근본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 문제 속에 있는 근본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함
문제 속에 있는 근본 문제를 볼 줄 알아야 우리가 복음의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 것인가를 알게 되어 있고, 또 복음의 길을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길만이 오직 유일한 길임을 증거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어 진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먼저, 여러분 문제 속에 근본문제, 믿지 않는 불신자들, 신앙생활 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의 삶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어요. 요한복음8:44절에 “너희는 너희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듣기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어요.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진단하셨어요.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근본은 뭐냐? 마귀에게 속해 있다 라는 것,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라는 것,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고 그래서 마귀에게 종 노릇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근본을 에베소서2:1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죄와 허물로 죽었다 라는 것, 그래서 영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상관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라는 것, 이게 믿지 않는 자들의 근본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누려야 될 인생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당연히 영적 문제 올 수 밖에 없고, 인생은 고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인생이 고난 당할 때 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결국 찾는 것이 뭡니까? 세상 풍속을 쫓아가는 겁니다. 점하고 굿하고 무당 찾아가고요, 귀신 섬기는 자들 찾아가고요, 그래서 에베소서 2:2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세상 풍속을 쫓는다 말씀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점하고 굿하고 미신 섬겨야 되고, 우상 숭배하는 자리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마귀의 종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 가운데 사탄의 종노릇 하면서 12가지 인생의 영적 문제에 딱 걸려 가지고 유리방황 하면서 결과적으로 그 인생의 결론은 멸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믿지 않는 자들의 근본이예요. 아무리 세상적으로 많은 것들을 가지고 많이 배웠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어요. 믿지 않는 자들 근본은 뭐냐? 아비가 마귀이고요, 그래서 마귀의 종노릇 하면서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 풍속을 쫓아가는데 결과적으로 결론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에서 뭔가 가지면 다 되는 줄 알고요, 뭔가 열심히 배우면 다 되는 줄 알고요, 그 근본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어느 날, 인생에게 영적인 문제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믿는 자들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 믿는 자들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의 근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믿는 자들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거예요. 그게 우리 믿는 자들의 근본 이예요. 왜냐?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떠난 창세기3장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인생도 창세기3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다시 말하면 창세기3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애씀과 열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 은혜의 길이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4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말씀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근본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요, 그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안 되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넓은 길로 가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넓은 길로 가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할지라도 고난 없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나 승리한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은혜와 능력 가운데서 좁은 길을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길, 오직 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직 한 길, 생명의 길, 오직 한 길을 선택하라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고집을 부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알고요 옹고집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고집으로 하는 게 아니예요. 무슨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도 내 생각이 있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고집을 이야기 하지요. 교회를 섬기면서도 ‘나도 내 생각이 다 있어’라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 렘넌트들도 가만히 보면 ‘아빠 엄마, 나한테 간섭 하지 마, 나도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이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전부 다 뭔 줄 아십니까? 고집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결국은 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사시대에 반복되는 실패의 가장 근본에 무엇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러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하고 나도 내 생각 다 있어 하는 것 하고 다릅니까? 나도 나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다릅니까? 같은 말이에요. 결국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 근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창세기3장의 나 중심이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나오는 고집이기 때문에 결국 고집가지고 신앙생활 하면 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집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 가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 노아는 고집 부린 것이 아니예요.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갔던 사람이예요. 노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 왜 하필 방주를 짓되 산 위에 짖느냐 비방했을 것입니다. 정신 돈 것 아니냐 비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오직의 길을 간 거예요. 올바른 길을 간 거예요. 하나님께서 얼마가지 않아서 결론을 내셨습니다. 결국은 노아와 그 식구들은 방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지만, 노아의 경고를 받지 않은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다 홍수 때문에 심판을 받았음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생활의 근거지를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근거지를 버리고 나온다는 것,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있을 수 없어서 갈라섭니다. 어쩔 수 없이 그 하인들이 싸우게 되니까 아브라함이 제안을 합니다. 네가 좋은 땅을 택하라. 그러면 나는 남은 땅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갔습니다. 그 증거가 창세기13:18절에 마무레 상수리 수풀에서 단을 쌓은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선택하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그 올바른 길을 아브라함이 선택했다는 겁니다. 쉽지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선택한겁니다.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얼마 안 가서 내셨습니다. 롯은 아무리 좋은 땅이었지만 여러분 멸망받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 했습니다. 그 땅을 선택한 롯은 결국은 소돔, 고모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누가 구출했습니까? 아브라함이 끄집어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결론을 내시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넓은 길을 가지 마시고, 올바른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선택하면서 그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11:23-27절에 보면 모세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조차도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갔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걸 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게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라면 나의 모든 것 그리스도 안에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 날마다 언약 따라가는 삶이 되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언약이 기준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 믿는 사람들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다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가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위기와 좋지 않은 환경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들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3천명의 군사를 동원해가지고 계속해서 추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분명히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었습니다. 모든 신하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붙이신 시간이다. 다윗조차도 자칫 잘못 착각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붙이신 것이 아니냐고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을 내가 어떻게 칠 수 있느냐? 언약 기준에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속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다리오 왕에게 신하들이 요청을 해서 조서를 내가지고 어떻든 걸려들 수 밖에 없는 조서를 내 붙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위기 아닙니까? 그것을 알고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도했다 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다니엘은 올바른 길, 언약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속지 말아야한다, 속지 않아야지 그렇게해서 속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속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노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애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열심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선택하면 굉장한 응답들이 찾아 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지 하나님의 능력을 안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조금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가면 굉장한 응답된 역사들이 여러분 걸음걸음 속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은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씀을 믿는다 하면서도 신학자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안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뭡니까? 아니 어떻게 홍해가 갈라질 수 있느냐? 이게 바다가 갈라지는 그 시기를 잘 맞춰서 모세가 들어간 것이 아니냐? 그게 사실 더 기적입니다. 어떻든 기적의 역사를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가운데 걸어오신 사건들도 어떻게 사람들이 물 가운데 걸을 수 있느냐? 그것도 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안 믿고 말씀을 안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여러분 조금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면 여러분 걸음 걸음마다 굉장한 응답과 역사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여러분 결국은 모든 것이 불신앙으로 보여지게 되어있고, 모든 것들을 틀리게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근본은 뭐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좁은 길로 가라
두 번째 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14절에 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래서 좁은 길로 가라 말씀했습니다. 좁은 길로 가라. 여러분 좁은 길로 가라 이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에 아마 신앙생활 어릴 때 부터 오랫동안 한 분들은 먼저 딱 드는 생각이 뭐냐? 신앙생활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물론 그것도 맞겠지요. 고난과 험난한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좁은 길로 가라 연결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좁은 길로 가라 이 말은 사실 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길이 좁은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래서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험난한 길 처럼 보이지만 그 길로 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 길은 고난만이 있는 길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는 길인 좁은 길로 가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좁은 길 하면 찬송 생각나는게 있었지 않습니까?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여러분 좁은 길 생각하면 이 찬양 생각나는데 그런데 그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고난 받고 가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그 사는 길을 가라 이 말입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결국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누구를 말합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길이 좁고 협착하고, 찾는 자가 적다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그리스도 찾는 자가 없고, 세상에 그리스도 믿는 자가 없고, 그리스도 인정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11절에 보면 자기 백성에게 왔으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찾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좁고 협착한 길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을 가야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중심으로 살지만 참된 복음 중심, 능력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 따라 신앙생활 하고 자기 이익 중심으로 삽니다. 그래서 이익 되면 교회에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안 되고 섭섭하게 하면 교회 조차도 떠납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습니다만은 이익 중심으로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복음화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합니다. 그게 좁은 길로 가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점술을 의지하고 우상숭배를 의지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말, 여론을 듣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복음 중심으로 전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좁은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말 따라 가지 마십시오. 천 인, 만 인을 만나면 만나는 사람마다 말이 다 다릅니다. 사람들의 말 따라가고, 여론신앙 되면 안 됩니다. 진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언약따라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이 세상에 그 어떤 것들 바라보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는 말은 오직 그리스도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라는 겁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 붙잡고 집중 속에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이게 좁은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이야기 하면 어리석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어 이야기합니다. 무슨 보이는 것이 다지, 오직 성령이냐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18절에 있는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이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능력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이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무슨 그리스도냐? 내가 최고 아니냐? 내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나를 성공시켜야 될 것 아니냐? 그래서 그리스도 부인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배경, 세상 사람들이 세상배경을 가지고 있으면 자랑하고, 그것 없으면 실망하고, 어디가든지 세상 배경이 내가 이렇다라고 자랑하고, 세상배경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좁은 길, 하나님의 나라 중심으로 살아가라고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다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 이 사실을 붙잡는 이 자체가 어려운 길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잡고 집중하게 될 때에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고, 237나라의 문들이 열려진 겁니다. 그 길을 우리에게 가라는 겁니다. 좁은 길로 가라.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도행전1:1절 그리스도, 1:3절 하나님의 나라, 1:8절 오직 성령 붙잡고 집중 속에 들어가서 237나라의 문들이 열려지는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여기에 맞추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붙잡고 집중 속에 우리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된 삶을 약속하셨는데 그게 바로 성령인도받는 삶입니다. 성령인도 받으면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가지고 집중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인도 받는 삶, 어떻게 성령인도 받는 삶이 됩니까? 먼저 성령인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주신 복음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복음을 주셨는데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성삼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멸망받지 아니하도록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를 요한복음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었다 했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됩니다. 그리고 단순히 영접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중심에 주인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내 안에 중심으로 오셔서 나와 먹고 마시고 교제하겠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이 나의 중심이 되도록 나의 주인이 되도록 그 때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면서 그 성령이 역사할 때에 요한일서2:20-27절에 보면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20절에 성령이 임하면 기름부으심이 있게 되면 모든 것을 안다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있게 되면 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으심이 우리에게 있게 되면 아무도 너희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친히 직접 가르친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최고의 삶인 성령의 인도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붙잡고 집중하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237나라의 문이 열려지는 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분명히 좁은 길, 생명의 길, 언약의 길, 복음의 길, 138언약 붙잡고, 14절 집중의 비밀 속에 237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모든 걸음걸음들은 분명히 그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 갈대아 우르 우상동네에 있었습니다. 그 우상동네는 망할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거기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갈대아 우르 우상동네 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축복하셔가지고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가문과 가정 다 살렸습니다. 여러분이 평생 삶의 규모인 복음의 길,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이 사실 가지고 집중하게 될 때에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이 다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증인들로 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8월 9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생 삶의 지표
(마7:13-14)
서론: 성경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말씀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을 믿는 자와 불신앙 하는 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눅16장에 부자는 하나님, 영혼, 내세, 영적축복의 비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알기는 알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 이 땅에 살면서 실패했습니다. 이 땅에서 짧은 시간동안 살아가면서 제대로 걸어가야 할 길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멸망의 길 혹은 복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복음의 길을 가는 것이 지금 당장 열매가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국 나중에는 하나님이 답을 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아무 것도 아입니다. 진짜 인생은 복음을 알고부터 시작됩니다.(애굽430년 / 광야길 40년) 복음을 알고부터 한 날, 한 걸음, 한 순간이 전부 의미있는 생애인 것입니다.(창4-5장, 가인과 아담 족보)

1. 문제 속에 있는 근본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함
1) 성경에 분명히 기록
(1) 요8:44 - 마귀에게 사로 잡혀있고, 마귀의 종 노릇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2) 엡2:1 - 마귀에게 장악되어 영이 죽었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상태
(3) 엡2:2 - 세상 풍속을 쫓아감, 12가지 인생문제, 많은 사람이 이(넓은) 길로 감
2) 믿는 사람들의 근본은?
(1)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사는 것, 어떤 문제 있더라도 하나님의 능력 체험하면 다 해결됨
(2) 결국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넓은 길을 택해서 감, 진짜 승리한 사람은 오직 한 길을 택함
(3) 신앙생활을 고집부리며 살아가라는 것이 아님 - 믿음의 사람들은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감
(4)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가야 함
(5)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면 속지 않고 언약의 길을 가게 됨
(6) 좁은 문 =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고 가는 이 길은 가는 사람이 없기에 성공하기 쉬움
=> 하나님의 능력 모르고 은혜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불신앙으로 보여지고 거꾸로 틀리게 보여짐

2. 좁은 길로 가라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 => 그것이 바로 사는 길!
1)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함
(1)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 중심이지만 복음중심, 기도와 능력 중심으로 살아야 됨
(2) 조그만한 이익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복음화 때문에 살아가는 것
(3)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기의 인생을 물어봄
=> 많은 사람들이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복음, 기도, 전도 중심으로 움직여야함
2) 오늘 말씀의 정리
(1) 많은 사람들의 여론, 남의 말을 듣고 가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가야 할 것
(2) 하나님을 아는 길은 다른 길이 없음
(1) 복음을 먼저 알아야 함(요3:16), 그리스도를 영접(요1:12), 내 중심에 그리스도가 주인(계3:20)
(2) 성령의 충만함을 기다림(행1:4-8), 성령이 임함(행2:1-13), 성령의 인도(요일2:20-27)
(3) 좁은 문은 행1:1,3,8을 붙잡고 행1:14 속에서 237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


결론: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게됩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망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불러낸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시 그 가문을 살려내셨습니다. 평생 삶의 지표, 복음의 길을 갈 때에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질 축복입니다. 복음의 길을 간다는 말은 행1:1,3,8을 붙잡고 행1:14 속에 237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현장에 가서 당당하게 이 축복을 누리고 확인하는 귀한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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