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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누가 소경인가?”
(마20:20-34)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마20:20-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을 이어갈 전도자들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최고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최고의 은혜를 입는 귀하고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좀 떨어져 있지만 인사 나누십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네, 감사합니다. 한 가지 이렇게 바뀌어진 부분들이 이제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다보니까요 예전 같으면 딱 보면 누가 어디에 앉아 계시는가 다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 이 분이 저리가고 자리가 바뀐 부분들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모든 분들을 본당에서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모셔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죄송하고요, 어떤 분이 30분에 제 방에 인사하러 오셔가지고 목사님 벌써 본당에 자리가 없습니다 하면서 부득이하게 본당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 홀에서 소년부실, 고등부실, 각 실에서 예배드리는 모두에게 이 자리에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동일하게 임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예배시간 오는 순서대로 앉으니까 앞으로 정상적인 예배가 회복되어서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구·경북이라서 그런지 보면 꼭 앉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누가 접근하면 아예 접근하지도 못하도록 딱 버티고 앉아서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데 정말로 오는 순서대로 앉으셔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은혜 받을 수 있는 그런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는 좀 갱신되어지는 그런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목을 가지고 “누가 소경인가?” 바로 우리의 모습들을 한번 살펴봐야 하는 그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당연히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알고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애씀으로 우리의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고 믿고 구원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된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구원받은 후에 기도응답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와 관계되어 있음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과거의 어떤 체질들이 있고, 과거의 상처들이 있고, 과거의 사고방식들이 나름대로 다 있잖아요. 그 속에서 오늘 내가 생각되어지고 그 속에서 우리의 체질들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의 기도응답, 지금 기도응답과 관계 된다 라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과거, 사고방식과 체질들, 상처들, 이 모든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시간 시간 우리 자신들을 치유하고 갱신시켜 나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부딪히게 되면, 그 말씀 부딪히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온갖 사고방식과 체질들, 생각들, 이런 모든 것들이 그 때 그 때 바뀌어 지게 되어 있어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응답을 누림으로 하나님의 나라 흐름 속에서 그 하나님의 나라 길을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받을 때마다 정말로 사모함으로, 간절함으로, 생명을 걸고 말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때 그 때 우리 자신들이 갱신되어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갱신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한마디로 구원은 받았지만, 광야에서 40년 동안에, 거의 38년 동안 발이 묶인 사실을 보게 되어요. 왜 그렇습니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노예상처와 노예근성과 광야 근성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그것을 벗어버리기까지 결국은 광야 길에 38년 동안에 묶여 있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광야 길 가는 동안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 그 세대들 통해서 가나안 땅이 정복되어진 겁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갱신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38년 동안에 기다린 거지요. 다 사장되도록 기다린 겁니다. 정말로 우리 자신들이 날마다 말씀 속에서 갱신 되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씀 속에서 날마다 갱신 되어지지 못하면 세상 속에서 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 흐름들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 속에서 응답 받고 승리하고 세상을 살리기를 원하시는데,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이 갱신되지 않으니까 나도 모르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은 뭐냐?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실컷 고생하고 응답받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나중에 인생이 허무한 인생으로 무너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소경입니까?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축복 가운데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진정한 소경이 아닐까요? 눈은 뜨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가지고 이 땅에서 세상 흐름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된 역사들 다 놓쳐버리고 세상 흐름 따라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소경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부분들 우리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여전히 세상 흐름 속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
그래서 먼저 첫 번째로는 여전히 세상의 흐름 속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흐름 속에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여러분 세상 속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탄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탄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그렇다면 세상의 흐름은 어떤 흐름입니까? 창세기 3장, 6장, 11장이 세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흐르고 있는 그 흐름입니다. 창세기 3장, 6장, 11장이 옛날 성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세상의 흐름이고요, 지금도 반복 되어지고 있는 세상의 흐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노력해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죽습니다. 그리고 번성하고 굉장한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재앙을 만나서 망하게 되고요, 엄청난 대성공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벨탑처럼 완전히 무너지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게 세상이에요. 그래서 철저하게 나 중심하고, 육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세상의 흐름입니다. 그 속에 번성도 나올 수 있어요. 노아시대에도 그랬잖아요. 번성이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그 시대는 재앙 만나서 망한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요, 그 속에서도 세상 흐름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탄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 여러분 세상이 멸망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망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하나님의 나라 흐름을 탄 사람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한 구절이 나옵니다. 창세기6: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했습니다. 모두가 세상의 흐름 속에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데,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 멸망의 세상의 흐름 속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 흐름을 탄 사람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 하셨었지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모든 족속이 너 때문에 복을 받겠다 그래서 너는 복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고도 여전히 계속해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고민거리가 계속 생겨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어요. 창세기13:14절부터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그러면서 13: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다”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깨닫고 하나님 나라 흐름을 단을 쌓으면서 타기 시작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창세기39장에 보면 요셉은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탔습니다. 그러니까 노예로 가도 상관이 없었어요. 노예라는 현장인데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타니까 불신자 주인인 보디발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했어요.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타니까 이 불신자 보디발이 아예 창고열쇠를 누구에게? 요셉에게 맡기셨어요. 총리로 삼아서 요셉에게 맡겼어요. 가정총무로 삼았어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있으니까 요셉을 통해서 보디발 집에 나타났던 응답이 보디발 뿐만 아니라 그의 밭의 모든 소유물에까지 하나님의 복이 임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가 바뀌어지고 왕이 바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있었던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다 변해도 하나님 나라의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무너질 예루살렘 성을 의지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베드로는 그게 망할 흐름 속에 있다 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 현장에서 베드로가 선포한 메시지가 사도행전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말씀했습니다.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따로 누리고 있는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탄 사람들이 따로 있습니다. 계시록22:11절에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흐름을 타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달라요.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탈 사람들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겉으로는 표시 안 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결국은 악령이 그들을 지배하고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발은 땅에 딛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도 그 흐름 가운데 부르셨습니다마는 제자들은 세상 나라 흐름에 익숙했던 부분들을 우리에게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 본문의 제자들, 복음으로 구원받고 또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흐름에 익숙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기 전에, 입성하시기 직전에 모습들인데 거기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구를 합니다. 어떤 요구를 하느냐?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그대로를 요구를 해요. 그게 뭐냐? 주의 나라에 임할 때에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자리, 명예 그 부분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육신의 왕으로 오실 줄 알고 자리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몰라도 너무 몰랐지요. 우리가 물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야 될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타는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그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물질이나 명예나 자리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육신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흐름을 타고 있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준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자리, 명예, 물질,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 하고, 잘 보일 것인가? 그런 기준들이 우리에게 기준이 되어 있잖아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준이고, 오늘 예수님을 따라 붙는 제자들도 그 흐름 속에서 못 빠져나온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로마서14:17절에 보면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육신적인 그런 것들이 아니다 라는 사실 이에요. 자리, 우리의 명예, 권력, 그런 부분들 육신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면서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6:33 절에도 말씀하고 있지요.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말씀했습니다. 여기에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 이 땅의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축복인 그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도 세상적인 것들에 관심 있고, 그것들이 기준 되어서 그 자리를 오늘 요구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씀했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해요. 여러분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다시 말해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처음 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미 마태복음16:16절부터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고백했잖아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네 고백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스도 고백한 그 축복 속에서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었다 라는 말이지요. 그러면서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어마어마한 축복을 선언하셨지요.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16:21절에 보면 비로소 제자들에게 고난당하실 것과 다시 살아나야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아마 베드로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아주 성격이 급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잡으러왔던 군인들 앞에서도 뛰쳐나가서 종의 귀를 잘라버렸잖아요. 그게 베드로거든요. 아마 성격이 급한 것 같은 이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이야기 하니까 그것도 영적으로 이해를 전혀 못했지요. 그러니까 얼른 그 말을 받아서 뭐라 했느냐? ‘절대 예수님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지키겠습니다. 이 말 아닙니까? 한마디로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했어요. 처음에는 베드로가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도 말씀했습니다. 언제 말씀하셨느냐? 마태복음17:22-23절에 보면 갈릴리에서 또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갈릴리에서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 보면 또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것과 부활하심에 대한 부분을 세 번째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전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은 아는데 내 마음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귀로는 늘 듣는데 내 마음 속에 그 말씀이 담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 흐름들을 그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에게 또 묻습니다. 그러면 “좋다. 너희가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그런데 제자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전혀 이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흐름 속에, 육신적인 것에 빠져 있었던 제자들은 “좋습니다. 그 잔, 내가 마실 수 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전혀 영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주님의 비밀들, 복음의 비밀들을 우리가 알고 있다 할지라도 진짜 우리의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제자들과 똑같은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이 세상적인 것이다, 육신적인 것이다, 자리, 명예, 권력에 우리의 모든 관심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은 여러분 예수님과 동행하는지는 모르지만 눈 뜬 소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제자들과 동일하빈다. 그런데 그것은 제자들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고 나머지 제자들의 수준도 똑같았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두 명이 그렇게 하니까 나머지 열 사람도 마음에 시기가 나고, 분해 가지고 그 두 명의 제자들을 지금 식으로 말하면 째려봤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 말씀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오해하고 화를 내고 있는 부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세상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그 영광스러운 보좌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 축복의 눈이 열리지 않으니까 세상 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은 보좌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의 축복을 이 땅에서 살아가며 누릴 수 있도록 주신 축복인데 여기에 대해서 누리지 못하니까 세상 흐름을 세상 속에 속한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 흐름을 따라감으로, 그래서 무너지고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에게 보장된 축복이 있다면 보좌의 축복입니다. 그 하늘 보좌의 축복이 오늘 그리스도를 고백한 저와 여러분에게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보좌의 축복의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관심과 기준이 세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열려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하늘 보좌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이 사실, 그 보좌의 영광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간다는 사실들이 누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좌의 축복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을 가지고 보좌의 축복을 누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성취시키고 계십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세 가지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계시고,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을 가지고 보좌의 축복을 누린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신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권세, 그리고 우리가 천국 배경으로 누리는 축복, 그게 바로 보좌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에 대해서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세상 것들이 좋고, 세상 것에 취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취해서 결국은 세상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느분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이분은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이름 이야기하면 다 아실 분입니다. 우리 교회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교회의 중직자요, 장로님인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다면 “나는 천국보다 이 땅이 좋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인데, 그 분이 돈이 있으니까 교회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실까? 제 생각이 빨리 돌아갔습니다. 아 그럴 수 밖에 없구나. 저 분은 갖고 명예, 갖고 있는 물질을 놓기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신 이야기가 뭐냐면 “소 똥에 굴러도 이 땅이 좋다”는 겁니다. 여러분 왜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까? 저는 그 사람이 그냥하는 이야기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우리가 누려야 할 보좌의 그 축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이 전부인 겁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 여전하게 소경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시나 우리의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열심히 뭔가 헌신하고 봉사 한다고 하면서도 기준이 세상적인 것입니다. 세상 흐름에 못 빠져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눈 감긴 영적인 소경인 것입니다. 오늘 영적인 눈들이 열려지는 귀중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의 흐름 속에 있는 소경 바디매오
두 번째입니다. 복음의 흐름 속에 있는 소경 바디매오입니다. 이 소경인 바디매오는 소경이었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진짜 소경이 아닌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었고,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와 계신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디매오가 뭐라고 했습니까?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이야기하니까 “더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똑같은 본문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더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 소경 바디매오가 얼마나 정확하게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할 메시야인 것을 알고 있었느냐 라고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나사렛에서 나신 이가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나사렛에서 나신 이는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이미 구약에 예언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배운 똑똑한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만 이미 성경에 예언되기를 나사렛에서 자신의 문제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나신 이가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경 바디매오가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동일하게 두 번이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인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올라가서는 이 소경 바디매오는 마태복음1:1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시는데,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그 씨로 말미암아 오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더 올라가서는 사무엘하7:12-16절에 보면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소경 바디매오는 알고 있었고,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이었지만 소경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영적인 눈이 열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 뿐만 아니라 복음 흐름의 시간표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경 바디매오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을 알고, 그 복음의 흐름의 시간표를 알면서 지금 아니면 내가 이 예수를 만날 수 없구나, 그 시간표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처음이요, 마지막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올바른 신앙고백과 함께 시간표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믿음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 그걸 올바른 믿음이라 하는 것이고, 그 믿음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히브리서11:6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바디매오는 소경이지만 신앙고백을 바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표도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지금이 마지막 찬스라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경 바디매오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느냐” 할 때에 “보기를 원합니다” 할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경 바디매오는 하나님의 흐름 속에, 복음의 흐름 속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도제자의 흐름을 따라가는 자였습니다. 오늘 마지막 3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했습니다. 단순히 예수를 따랐다 이렇게 나오지만 누가복음18:4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그냥 단순히 예수를 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따르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백성들이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도제자의 흐름을 따라가는 소경 바디매오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바디매오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받은 증거와 회복된 건강을 가지고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가야한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도제자의 흐름을 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서서 그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3:13-15절에 보면 원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말씀 하시면서 함께 있게 하시고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전도도 하며 또 나가서 귀신을 내쫒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서서 귀신을 내어쫒는 권세 가지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그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8:18-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 일을 할 때에 하늘과 땅의 권세 가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제자의 그 흐름의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갈 때에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따라가고 전도제자의 흐름을 갈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사도행전1:1절, 3절, 8절의 언약입니다.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그 안에서 주어지는 힘을 얻게되면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갈 수 있고 전도제자의 흐름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 확신과 믿음으로 재창조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하면 우리에게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게 되면 우리의 모든 현장 속에 재창조의 역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복음이 완전하기 때문에 다 이룬 것이고, 그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나가는 걸음걸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회복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요엘2:28절에 보면 말세에 주님께서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시겠다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언제입니까? 사도행전1:4-8절에 보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 결국 무엇입니까? 이미 요엘서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하신 것들을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응답의 문들이 다 열려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길을, 그 흐름을 갈 수 있고, 전도제자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 그 흐름을 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그 안에서 주시는 힘을 얻게되면 그 힘 가지고 모든 것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습니다. 소경이었지만, 그러나 눈 뜬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세상적인 흐름들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가 소경입니까? 거기에 오늘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로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힘 가지고 여러분 영적인 눈이 열려짐으로, 정말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신 축복된 역사들을 누림으로 이 한해 우리에게 허락한 그 땅을 차지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흐름 속에 있는 자들의 헌신이 그냥 헌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있다면 여러분의 기도제목, 기도응답이 그냥 끝나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여러분이 있고,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여러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작은 헌신이 작은 헌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건축헌금과 선교헌금을 작정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서 여러분이 마음에 중심을 담고, 결단하고,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237을 살리는 응답으로 오게 되어있고, 우리 후대를 살리는 응답으로 오게 되어있고, 우리의 치유 현장을 회복하는 응답으로 오게 되어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마음을 담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헌신이 그냥 헌신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니다. 그게 로마서 16장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적고, 크고 상관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타는 사람으로서, 전도제자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여러분의 결단이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회복하는 그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의 응답의 시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1월 31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누가 소경인가?
(마20:20-34)
서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고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기도응답 받을 자격이 주어지고, 말씀이 성취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기도응답은 영적인 상태와 관계 있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습관, 사고방식, 생각, 체질들이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갱신 되어야 합니다. 매주 말씀 받을 때 말씀이 부딪히면 많은 부분이 갱신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길에서 근 38년 동안 발이 묶였습니다. 노예 상처, 노예 근성, 광야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갈렙 외 광야에서 새로 난 사람들만이 가나안 땅에 입국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따라 살고 그 속에서 승리하고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1. 여전히 세상 흐름 속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
1)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탄 사람들
(1) 창세기 3장, 6장, 11장 세상 흐름은 지금도 계속됨 =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죽고, 재앙, 무너짐
(2)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망할 세상 흐름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따라감(창6:8)
(3)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 받음(창12:1-3), 단을 쌓고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쫓아감(창13:14-18)
(4) 요셉(창39:1-6), 다니엘(단6:10), 베드로(행4:12) = 세상은 바뀌어도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바뀌지 않음
=>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타는 사람은 따로 있음(계22:11)
2) 세상 나라 흐름에 익숙한 사람들
(1) 본문 =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육신적인 왕으로 오실 줄 알고 자리를 부탁함(마20:22)
(2)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누릴 배경 - 구원받은 자들만이 누릴 축복(롬14:17-18, 마6:33)
3) 복음의 흐름을 모르고 있는 제자들
(1)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함(오늘 본문이 세 번째임)
(2) 복음은 아는데 내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됨 = 귀로는 늘 듣는데 마음으로는 안 믿어짐
(3) 구원받고도 세상 흐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감 => 보좌의 축복을 못 본 것
(1)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오해하고 화를 냄(영적인 소경)
(2) 보좌의 축복은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가는 것(말씀 성취, 3저주 해결, 성령의 역사)
2. 복음의 흐름 속에 있는 소경 바디매오
1)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아는 자
: 소경 바디매오가 이 말을 안 것(눅18:38-39, 마1:1, 삼하7:14)
2) 복음 흐름의 시간표를 아는 자
(1) 왜 예수님이 여기에 오셨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복음 흐름의 시간표를 알고 있었음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진 자(히11:6) = 소경이지만 소경이 아님
3) 전도제자의 흐름을 따라가는 자(마20:34 - 마4:19)
(1) 바디매오는 영적 문제로 해결 받은 증거, 회복된 건강을 가지고 복음 사역을 위해 가야 하는 것을 알았음
(2) 구원받은 후에는 복음 운동 하면서 사람, 현장, 시대, 나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막3:13-15)
(3) 하나님 나라의 힘을 회복해야 함(요19:30)
(1) 갈보리산(행1:1) -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모든 문제 해결, 이 믿음으로 확신 가지면 재창조 역사
(2) 감람산 - 복음이 완전하기에 다 이룬 것이고 믿어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 회복
(3) 욜2:28 - 말세 때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제자들이 찾아냄
=>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이 언약 붙잡고 힘 얻으면 모든 것 다 할 수 있음
결론: 누가 소경인가요? 늘 예수님 가까이 다니면서 육신의 것에만 관심 있었던 제자들 그들이 소경입니다. 그게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말씀을 왜 우리에게 주십니까? 그 말씀을 통해서 갱신하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소경이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 아닌 바디매오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하나님 나라 흐름 속에서 전도제자의 흐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헌신(청지기 작정)으로 모든 곳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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