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절대 진리를 놓치고 있는 사람들
2021-02-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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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절대 진리를 놓치고 있는 사람들”
(마21:18-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마21:18-3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오늘 우리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정말 이 예배가 우리 영혼 속에 심어놓으신 그 생명을 마음껏 찬양하는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는 또 우리 주일학교 부서에서는 1부, 2부 이렇게 부서별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전 9시에 1부 드렸던 부서가 있고, 또 11시에 2부 드리는 부서가 있고, 또 오후 1시 반에 또 부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주일학교도 있습니다. 오늘 아마 주일학교에서는 지금까지 온라인 예배로 인도받았다가 첫 대면예배로 오늘 모여집니다. 특별히 제 자신을 보면서 제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이렇게 예배가 온라인 예배로 계속 되어지다 보니까 내 자신도 모르게 나름대로 영적인 비밀들 가지고 인도 받는다고 하지만 뭔가 이렇게 축축 늘어지고 뭔가 이렇게 영적으로 다운되는 부분들을 제 자신이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목사인 나도 그런데 우리 렘넌트들은 더더욱이 힘들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든 우리 아이들이 예배를 회복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 교역자들과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주일날 예배에 다 드릴 수 없으면 평일날도 아이들을 불러서 일단 대면예배를 회복하자. 그래서 아마 오늘 각 부서마다 몇 부로 나누어서 같이 지금 어떻든 우리 렘넌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위해서 기도해주시고요, 우리가 예배가 이렇게 비대면 예배에서 대면 예배로 바뀌어지니까 특별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하나같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교회 와서 예배 드리기 위해서 갈급한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 아이들도 그 영혼들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대면예배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바르게 예배의 축복이 회복되어지고, 전달 되어지고,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특송 불렀던 것처럼 흑암에, 문화에 빼앗겨버린 우리 후대들을 찾아내십시다. 그래서 후대들로 말미암아 이 한 시대를 살리는 귀한 렘넌트들로 준비될 수 있도록 특별히 여러분 기도해주시고 또 우리 모두가 함께 귀한 예배에, 한 시간 드려지는 예배지만은 전에 없었던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하고 누리는 그런 축복된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나무가 말라버린 부분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엘을 다니시다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성경에 보면 시장하셨다 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아마 잎이 풍성한 무화과 나무 아래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이 없는가 싶어서 아마 나무를 쳐다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쳐다보면서 사실은 마가복음 11장에도 본문과 똑같은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마가복음11:13절에 보면 “열매 때가 아니다” 했습니다. 그러면 열매 때가 아니라면 당연히 무화과 나무 열매를 거둘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 때가 아닌 그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그 나무를 향해 저주해 버렸습니다. 그게 마가복음11:14절에 나오는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아니 열매 맺혀질 때가 아닌데 사실은 열매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쳐다보면서 저주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결국 무화과 나무가 뿌리채 말랐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무화과 나무는 그렇게 축복을 받아놓고도 사명 감당하지 못해서 저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복음을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복음의 언약은 절대진리 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절대진리인 복음을 놓쳐버리고 결국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되어버렸다 라는 사실들을 오늘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이 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호세아4: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말씀했습니다. 세상이 망하는 이유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데 그 지식은 어떤 지식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부터 주신 절대적인 진리가 없어서 망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3: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언제나 동일하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4: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풍성한 부분들을 놓고 예수님께서 저주한 부분들을 오늘 우리 자신은 혹시, 우리의 신앙생활은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화과 나무에 잎만 풍성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우리가 되돌아보면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실패한 무화과 나무 인생
그렇다면 우리가 잎사귀만 풍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든 그런 부분들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먼저 첫 번째로 실패한 무화과 나무 인생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1:13절에 보면 열매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나무를 향해서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왜 저주합니까? 물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열매 때가 아니면 당연히 열매가 없을 것인데 왜 예수님이 나무를 저주합니까? 물어야 하는데 사실은 아무도 묻지를 않았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날 제자들이 나무가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가 뿌리채 마른 것들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마가복음11:21절에 보면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했습니다. 여러분 때가 아닌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할 그 때에 제자들이 물었다면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시대적인 메시지를 받았을 것인데 사실은 그 때 묻지않고 나중에 나무가 말라죽은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 앞에 질문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잎만 무성하지 진짜 핵심은 다 빼버리고 살고 있다라는 사실을 지금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해서 나무가 마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실패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30년~40년 정도 지난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로마기가 꽂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전 세계로 유랑민족이 되어 가지고, 1948년까지 강대국인 23개 나라에 흩어져서 학살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1,400여년 동안에 유리방황 하면서 어려움과 고난들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이 학살되어지는 그런 비참한 일들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대충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여러분 그것이 무너져서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우리가 그런 모습 아닐까요? 예배에 참여하면서도, 예배에 왔다갔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배 드린다고 교회는 나오지만 정말 우리 마음 속에 말씀이 언약으로 붙잡혀지면은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데, 그냥 말씀과 상관없이 언약과 상관없이 우리가 오고가고 하는 걸음들은 아닌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그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인지는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주신 예수님의 말씀, 완성된 복음입니다. 그 완성된 복음을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완성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그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1: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1:24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말씀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영원한 진리이신, 절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지금 많은 것들이 되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 인생은 망한다 라는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 분명히 마태복음24:1-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여러 가지 이런저런 재앙과 어려움들이 일어날 것입니다만은 복음흐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시간들이 흐른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절대진리인 그 복음흐름 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흐름과 함께 이 땅에 마지막이 주어질 것인데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복음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면 결국 잎만 무성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정말로 매 시간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붙잡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냥 단순히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을 뿐만 아니라 시간시간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세상의 많은 잡다한 소리들과 세상에 이런저런 많은 지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참고만 하시고요, 진짜 여러분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집중적으로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그냥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될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 생애 속에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거하셨다고 요한복음1:14절에 말씀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습니다. 그런데 1:11절에 보면요 “하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했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신앙에 있어서 지도자입니다. 어떤 면에서 신앙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유대인 가운데 지성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그런데 이 니고데모는요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절대진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입니다. 그가 가진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가 가진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인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만은 그 약속의 말씀을 다 놓쳐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 속에 보면 극단적인 선민사상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개 취급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인 복음을 놓쳐버리고 그들에게는 복음보다도 먼저 그들이 갖고 있는 유전들, 그들이 갖고 있는 전통들, 그들이 갖고 있는 의식들, 그들이 갖고 있는 율법들을 먼저 앞세움으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마태복음16:13-14절에 보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어떤 사람은 엘리야,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껍데기로 하니까 잎만 무성하지 거기에 핵심도, 열매도, 생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영원한 절대진리,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고백한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네 신앙 그 고백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신앙생활의 껍데기, 다시 말하면 대단하다 싶지만 절대진리를 놓쳐버리니까 주님이 보실 때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능력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결국 경건의 모양만 있는 자들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될 것이 아니라 절대, 영원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반석의 축복과 함께 권세와 천국 열쇠를 누리는 그러한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
그러면 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빠졌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거짓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절대진리를 놓쳐버리고 거짓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 질문의 답에 연관된 것이 뭐냐하면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왜 “무화과 나무 뿌리가 말랐습니까?” 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거기에 대한 대답을 믿음과 연결시켜서 말씀드리는데요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아니 무화과 나무 뿌리가 마른 것들을 놓고 예수님 앞에 질문을 했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희가 만일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러면서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들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그대로 던져질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참된 믿음은 반드시 열매 맺게 되고 역사가 일어난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결국은 거짓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전 세계의 현장,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모든 전 세계 현장에 사실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중요한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뱀 속에 사단이 들어가서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런데 인간 창조 이전에 이미 뱀 속에 들어간 이 사단의 존재가 있었다 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12:1-9절에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1:2절에도 보면 인간 창조 이전에 이 악한 사단의 존재가 이미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신자들은 전혀 이 사단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아니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이 사단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사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라는 말은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행위만 바르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또 착하게 살면 될 것이 아닌가? 참고 인내하고 살면 될 것이 아닌가? 여러분 그 배후에 있는 다른 존재인 이 사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여러분 결혼해서 많은 신혼부부들이 성격 차이로 갈라집니다. 그런데 결혼할 때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살아가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니까 참고 인내해야 한다”누가 모릅니까?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 그런데 참고 인내하고, 그래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 다른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야기 합니다. 물론 착하게 살아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산다고 하면 그 바르게 산다는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르게 산다면 그 바르게 살아간다는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요 착하게 살기 이전에, 바르게 살기 이전에, 참고 인내하고 열심히 살기 이전에 그 배후에 역사하는 그 영적인 존재 사단에 대해서 여러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한 사단에 걸려가지고 귀신 들린 자들을 내어 쫒았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역들을 바라보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저 예수라는 자는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쫒아낸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 아니냐?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어떻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세간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아니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어떻게 집을 세울 수 있느냐? 여기에 강한 자는 누구를 말합니까? 마태복음12:30절에 보면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아버지와 상관없는 자다 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악한 사단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결국 원죄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원죄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당연히 어디로 갑니까? 우리가 뭔가 할려고 하면서 율법과 행함과 노력으로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변질된 겁니다. 천주교 조차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근히 그 이면에는 공을 세워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사실 아닙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구원은 죄에서 해방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단에게서 해방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만 제대로 되면 거기에서 모든 문제들이 다 풀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것 반대로 가르치면 결국 저주 받습니다. 그것 반대로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그래서 마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악한 사단의 존재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먼저 복음을 믿어야 할 이유를 우리는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먼저 복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내가 필요할 때만 아니라 항상, 때마다, 날마다 때를 따라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무슨 일 하기 이전에 흑암세력이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그 현장에 흑암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12:9절에 보면 큰 용, 곧 옛 뱀, 사단이라고 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 악한 사단이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아담, 하와 이전에 온 천하를 꾀는 사단이 하늘에서 쫒김을 당하였고, 이 하늘에서 쫒김을 당한 이 악한 사단이 결국 아담, 하와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고,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아벨을 쳐죽이게 했고, 창세기 6장에 보면 전 시대를 네피림 우상 문화 속에 빠지게 만들면서 결국 노아 홍수 시대를 당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창세기 10장에 니므롯이라는 장사가 나옵니다. 그 니므롯 속에 들어가서 결국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짓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문제, 사건, 일들 배후에 먼저 있었던 악한 사단이 역사했다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하고, 사회생활 하고, 모든 것 발전하기 이전부터 세상에 벌써 다른 세력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다른 세력이 요한복음16:11절에 보면 “세상임금”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있는 상태, 죄와 사단에 장악된 상태가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 임금이 누굽니까? 바로 악한 사단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그 영향 속에 다 있을 수 밖에 없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악한 사단이 결국은 어떻게합니까? 세상에 모든 것들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문화조차도 움직입니다. 그리고 신전들을 세워가지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들고, 그 신전들 속에 있는 우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거짓을 자기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악한 사단이다. 거기에 성경에 보면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다 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모든 인생들이 벗어날 수 없는 12가지 인생의 문제 속에서 오늘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현장에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4: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복음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복음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의 문제 해방받습니다. 로마서8:2절에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복음이신 그리스도만이 사단의 머리가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3: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멸망의 조건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현장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먼저 누려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바로 절대적인 진리인 그리스도, 복음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가정도, 직장도, 산업도, 우리의 모든 개인 문제도 거기에서 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개인과 가정과 가문 속에 있는 저주와 재앙이 우리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오게 된 문제들 아닙니까? 그리고 이미 먼저 와 있고요, 그냥 해결될 수 없습니다. 아마 이번 구정 연휴를 통해서 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지만 만남들이 있을것입니다. 또 가정과 가문을 놓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문에 영적인 흐름들을 보면 그게 내가 잘 하고 못 하고 문제가 아니라 먼저 와 있고 사실 우리와 상관없이 먼저 와 있는 문제들입니다. 내가 가기 전에 가는 모든 곳에, 또 일도 하기 전에 악한 사단이 함정과 올무를 준비해놓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 만날 수 없고요,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신 복음, 하나님이 해결하신 복음이 뭡니까? 그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먼저 누려야 할 축복이 있다면 절대진리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해결하신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먼저 우리에게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4:3절에 보면 “아브라함도 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희생제사의 비밀을 붙잡고 승리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사도행전5:42절에 보면 저희가 집에서나 성전에서나 일할 때나 언제든지 먼저 복음을 누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42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집에서나 성전에서나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먼저 복음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 세계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이 부분 때문에도 교회들이 엄청 위기를 당하고 있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근데 진정한 한국교회, 세계교회의 위기는 그런 주변의 환경 때문에 위기가 아니고요, 항상 증거 되어야 할 복음이 말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복 되어져야 할 복음이 반복 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세계교회, 한국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되어버리고요, 거기에는 아무 열매들도 없게 된 것입니다. 많은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실적이 가득 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잎만 무성한 것 처럼 되어버린 것이 지금 우리 교회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세상에 이런저런 많은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복음 말하지 않고 복음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복음을 반복해야 합니까? 왜 오늘도 우리에게는 복음이 필요합니까? 구원받기 이전에 내 삶의 체질, 내 삶의 사고방식, 내 삶의 과거의 습관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도 모르게 깊이 각인, 뿌리, 체질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음 아니고서는 절대 치유될 수 없다라는 사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도 진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왜냐? 에베소서6:12절에 보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했습니다.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싸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항상 그리스도 들어야 하고, 그리스도 반복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 항상 말해야 하고 왜 그리스도 항상 반복되어져야 합니까? 여러분 이 악한 사단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붙잡고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악한 사단이 결국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되어있다 했습니다. 왜 마약이 일어나고 알콜중독이 일어나고 범죄가 일어나고 테러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납니까? 왜 이 땅에 우리에 살아가는 삶과 상관없이 어려움의 일들 어둠의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까? 성경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있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 사단이 계속해서 이 땅에 종교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만나게 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에 한 순간도 주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주 밖에는 이 땅에 진정한 복이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려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복음에 무뎌지면 안 됩니다. 복음 듣는 부분들이 날마다 기쁨이 되고 힘이 되고, 응답이 되고 능력이 되어야지 여러분 복음이 복음을 들을 때 마다 그 복음에 대해서 오늘도 그 말이네 복음의 감각이 없어지면 안됩니다. 더더욱이 지금 이 시대를 보세요. 우리가 마음껏 예배 드리고 싶어도 예배 드릴 수 없는 상황들 아닙니까? 말씀 들을 수 없는 상황들입니다. 여러분 갈수록 복음에 감각 없도록 만듭니다. 복음에 무디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영적침체 가운데 빠져서 세상 살리기는커녕 악한 사단의 종노릇 하도록 만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왜 주일학교 예배를 거리두기 해서 몇 부라도 예배드리게 만듭니까? 우리 아이들 어릴때부터 복음에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적인 감각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래야 이 땅과 이 민족, 시대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계속 누릴 때에 거기서 오는 것이 그 안에서 모든 일들이 결국은 형통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23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음이로다.” 창세기 39장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 여러분 내가 복음으로 형통한 자, 복음의 맛을 체험하면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 어떤 일도 그냥 내 기준, 내 열심, 내 노력으로 하지 마시고 복음의 형통함을 누리면서 복음을 체험하는 그 맛속에서 일들이 그 속에서 시작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 것이 되어집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을 지속할 수 있는 비밀과 능력들을 누리게 될 때에 그 속에 뿌리가 내려지고 열매들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대한 열매들이 바로 후대와 치유와 237의 열매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에 감각없는 자가 되지말고 날마다 복음에 깨어있는 자들이 되어 이 복음이 지속적으로 누려짐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통한 뿌리, 열매들 특별히 후대, 치유, 237 그 땅을 열매로 차지하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2월 7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절대 진리를 놓치고 있는 사람들
(마21:18-22)
서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베다니엘을 다니시다가 많이 시장하셔서 무화과 나무 아래에 서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 열매가 없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막11장) 그런데 예수님은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고, 무화과 나무는 시들어 버렸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축복을 받아 놓고도 사명 감당 못해서 저주받은 이스라엘을 이야기 합니다. 성경을 보면 처음부터 아담에게 절대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절대 진리를 붙잡으면 승리하고 붙잡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호4:6, 히13:8, 행4:12)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이 진리를 놓침으로 망할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알려주었는데 지금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1. 실패한 무화과 나무 인생
1) 열매 때가 아닌 무화과를 저주(막11:13)
(1) 왜 멀쩡한 나무를 저주? 열매 때도 아닌 당연한 나무를 왜 저주? - 물어야 하는데 아무도 묻지 않음
: 그다음 날 제자들이 나무가 마른 것을 본 것(막11:20-21) => 잎만 무성, 진짜 핵심은 빠뜨리고 산 것
2) 무화과 나무가 멸망한 것처럼
(1) 주후 70년(예수님 승천하신 뒤 30-40년) 이스라엘은 망함, 예루살렘 성곽에 로마기가 꽂힘
(2) 강대국에 유랑민족, 1,400년 유리방황 => 예수님은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겠다고 함
(3) 완성된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망함(고전1:18, 고전1:24) => 날마다 복음의 흐름 속에 있는가?(마24:1-14)
3) 잎만 무성한 무화과 이스라엘
(1)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함(요1:11), 니고데모(요3:3-5), 이스라엘 백성(극단적 선민사상)
(2) 온갖 유전, 의식, 율법, 종교와 같은 무화과 잎만 무성한 신앙생활 = 경건의 능력 없이 모양만(딤후3:5)
=> 그 때에 너희는? 절대 진리를 고백한 베드로를 주님은 축복하심(마16:16, 마16:17-19)

2.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
▶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믿음과 연관시켜 답변하심(마21:21) - 진짜 살아있는 믿음!
1)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믿음
(1) 불신자들은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음,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창3:1-6, 계12:1-9)
(2) 행위가 바르면 구원을 받는가? 한 행위가 바르다는 근거와 기준도 없음
(3) 이 사실을 모르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마12:28-30) - 유대인들은 아주 중요한 것을 인정하지 않음
(4) 구원은 죄에서 해방, 저주와 지옥에서 해방, 사탄에게서 해방 => 반대의 것을 가르치면 저주 받음(이단)
2) 먼저 복음 믿음을 가져야 할 이유
(1) 복음은 항상 때마다 날마다 필요한 것, 무슨 일하기 전에 먼저 그 현장에 흑암세력이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함
(2) 세상임금인 마귀의 영향을 먼저 받고 있는 현장임, 세상의 모든 것 주관하고 문화도 움직임(요16:11)
(3) 그래서 우리의 모든 현장에 복음이 필요(하나님 만나는 길, 죄에서 해방, 사탄의 일이 깨트려짐)
=> 복음을 먼저 누려야 가정 문제, 직장 문제, 사업 문제, 개인 문제가 풀림
3) 참된 믿음과 참된 복음
(1) 누구든지 개인, 가정, 가문 속에 있는 저주와 재앙은 잘잘못과 상관없이 먼저 와 있고 해결이 안 됨
(2) 내가 가기 전에 사탄이 함정을 준비 => 하나님이 해결하신 복음을 항상 먼저 사용하고 누리는 것이 순서
(3) 한국과 세계교회의 위기 : 복음을 항상 반복 안 했기 때문임, 항상 그리스도 안에!(롬4:3, 출3:18, 행5:42)
(4) 항상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 복음 앞에 감각 없는 자가 아닌 민감한 자(엡6:12)

결론: 하나님이 복음을 계속 누릴 수 있는 은혜 주실 때에 집중해서 은혜받길 바랍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받을 때요,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때라!(고후6:1-2) 정말로 복음의 은혜 받는 이 일에 양보하시면 안 됩니다. 생을 걸고 이 부분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지 시23장, 창39장처럼 내가 복음으로 형통한 자 복음의 맛을 체험하면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 지속 할 수 있는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 속에서 뿌리가 내려지고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 열매가 후대, 치유, 237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서 절대 진리인 복음을 놓친 사람들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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