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확실해야 될 복음
2021-0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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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확실해야 될 복음”
(마23:1-12)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아멘.
마23: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오늘 제목이 “확실해야 될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서 정말로 왜 우리가 복음에 확실해야 되는가 그 이유들을 발견하는 가장 축복 된 응답의 시간들 되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한 부분들을 비추어볼 수 있도록 이미 말씀 속에 다 나타내 보여주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보면 거의 3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먼저는 복음을 가지고 은혜는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많은 인간관계, 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 앞에서 시험에 들고 요, 많은 갈등 가운데 빠지게 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안 받는 것은 아니에요. 복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이런저런 많은 일들 바라보면서, 사람관계 속에서 시험에 들고요, 그리고 신앙생활 하면서 늘 그 갈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구원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 구원 받는 일에 있어서 사실은 구원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막는 일에 쓰임 바 되는 사람 또한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 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소도 있다 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또 교회 안에 가라지도 있다고 이미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일에 불쌍한 인생이지요. 그런 일에 쓰임 바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요. 이것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마지막 세 번째 부류는 어떤 부류이냐? 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속에 거하면서 많은 문제와 사건들이 있지만, 많은 인간관계도 겪지만 그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뛰어넘어서 그 속에서 응답을 찾아내고,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을 살리고 치유하는 축복하는 제자들로 세워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이 오늘 아침에 제가 교회 나오기 전에 카톡으로 문자를 주셨어요. 뭔가 싶어서 보니까 이분은 늘 현장에 들어가시는 분이에요. 정말 마음에 중심을 담고 현장에 늘 들어가서 특수한 사역에 인도를 받으시는 분인데, 그분이 간단하게 내용을 남기셨는데 어떤 내용이냐 하면 지금 자기가 현장에서 어느 한 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전할 때마다 복음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에요. 너무나 실제로 지금 복음 받아야 될 상황인데 그 사람이, 복음 받아야 될 심각한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받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제는 포기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 가지고 낙심이 들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낙심은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갈등들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이분이 지난주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서 답을 얻었다는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 지금 시대가 불신앙의 시대라는 것, 그 사람이 복음 안 받는 것 이전에 아! 내게 먼저 불신앙이 있구나! 거기에 대한 답을 얻고 이번 주에도 그 사람을 만났다는 거에요. 만났는데 여전히 복음 앞에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마음에는 복음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모르는 그 속에서 희망이 생기더라는 거에요. 여러분, 시간 시간마다 우리에게 주는 문제와 사건들 속에서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내고 그 답을 가지고 현장에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치유하는 제자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 정말로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오늘 마태복음 23장 전체를 다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마는 사실 1~12절까지만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 23장 전체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진저’ 하면서 책망하는 내용이 본문에 나와요. 여러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나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삶이 바리새인들의 삶을 못 따라가요, 서기관들의 삶을 못 따라가요. 왜냐?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성공한 사람들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아!’,‘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아’심지어 뒤에 보면 ‘화 있을진저 이 독사의 새끼들아’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 보기에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 중에 성공한 척 보이지만, 그래서 주님과 대하면서도 주님과 가장 멀리 있는 사람, 주님과 대하면서도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 그래서 결국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바로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들 수 있겠지요.
왜 우리가 복음에 확실해야 되느냐? 여러분 정말로 생명의 비밀, 복음의 확실한 부분들을 놓쳐버리면 우리 또한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결국은 종교생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 종교생활에 빠지고 있는 한은 저주와 재앙의 역사들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확실해야 될 복음, 그 이유들을 붙잡고 오늘부터라도 하나님 주시는 응답 가운데서 정말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땅을 차지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 없는 종교인의 모습
그럼 먼저, 복음 없는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먼저는 복음 없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철저하게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왜 그러냐? 여러분 복음 없다는 말은 생명 없다는 말이고,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지요. 하나님 없으면 결국은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야 되어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게 바로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존심입니다. 왜냐? 하나님 없으니까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을 지킬 수 있습니까? 지킨다고 몸부림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을 자신이 지킬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이 없으니까 생명 거는 것은 자기를 지켜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우상숭배하고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지켜야 하니까 우상숭배 하는 거에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디모데후서4:3-4절에 보면 특별히 4절에 자기 사욕을 채울 스승을 많이 둔다 했어요. 자기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울 스승들을 많이 둔다 했어요. 그러니까 자기 사욕을 채울 스승을 많이 두게 되니까 그의 귀에는 진정 들려져야 될 진리의 말씀 복음이 들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저주입니다. 딴 게 저주가 아니고요, 우리 인생 그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야 사는데, 이 복음이 들려지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저주받은 거에요. 그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모든 삶의 기준이 그리스도가 되고 복음이 되어야 되는데, 그 그리스도가 기준 되지 않으니까 결국은 뭡니까?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우리의 생을 투자하게 되어요. 아니, 복음이 기준이 되어있지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몰라요. 그게 지금 세상 사람들 아닙니까? 자기 나름대로는 옳은 일을 행한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 옳은 겁니까? 복음이 기준이 되어져야 옳고 그름을, 먼저 해야 될 것 나중해야 될 것 이런 부분들을 알게 되는데 복음의 기준이 없으니까 사실은 그의 생애 전체를 들어서 열심히 하는데, 온 인생을 다 쏟고 쏟는데 결국은 뭡니까? 열심히 살아가고자 몸부림 치는데 고생하는 삶을 결국 살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복음 없는 종교생활 하고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혹이나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여러분, 뭔가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신앙생활이 내게 진정한 자유와 축복이, 평안이, 기쁨이 되지 못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 있습니까?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자기기준 되면 될수록, 자기중심 되면 될수록, 열심히 잘 살려고 하면 그 모든 것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없는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먼저는 자기기준으로 살고요, 두 번째로 외식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왜냐?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해야 하니까, 아니 종교인들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으니까 결국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되지요. 그게 종교인들의 특징 아닙니까? 그래서 뭔가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알아줘야 되고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제했잖아요. 기도도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기도하면서 나는 이렇게 많이 기도한다 하면서 자랑했잖아요. 전부 다 사람 앞에서 하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생명에 대한 가치가 없으니까, 생명의 비밀들이 없으니까 결국 껍데기로 신앙생활 하는데 외식하면서 신앙생활 해요. 여러분 신앙생활에 외식하는 부분들은 잘 아셔야 합니다. 먼저는 자신을 속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게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생명의 가치 있는 응답이 내게 없기 때문에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고요,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면서 살아가면서 결국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니까 자꾸 꾸미는 겁니다. 자꾸 외식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척하는 겁니다.
세 번째로 복음 없는 종교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냐? 불필요한 규칙들을 자꾸 만들어 가요. 여러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그들의 삶의 기준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마는 계속해서 성경 마태복음28:23장에 읽어보면 나옵니다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삶의 기준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행위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래서 사실은 그들은 성경도 성경이지만, 많은 규례들을 만들어 내어요. 왜냐?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되니까 많은 규칙과 규례들을 만들어 내어요.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많은 규례들을 만들어 내어가지고 그 한 부분 한 부분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결국 행위를 드러내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생명의 비밀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규례, 그것이 좋습니다마는 그게 사람의 발목을 묶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들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잖아요. 주님께서 우리가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주님께서 우리 대신 다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뭐냐? 주님이 지켜주신 그 사실을 믿는 것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들이 안 되어지니까 신앙생활 하면서도 성도들조차도 뭔가 행위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필요합니다. 생명 없는 자의 행위는 오히려 그 행위 자체가 진정한 축복에 대해서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성도들의 발목을, 다시 말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하나님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지키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 지켜주신 거에요. 그래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거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 지켜주신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인도받아 나가면 되는 겁니다. 그게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생명을 가진 자의 신앙생활은 요한복음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했습니다. 생명을 누리면 누릴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게 되고요, 생명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의 모든 삶에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이것 해야 된다, 저것 해야 된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하고 저것하고 할 수 있는 힘이 사실은 없어요. 저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간에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은혜 받는 부분들에 포인트를 두고 계속해서 복음만 강조해야 되겠다고 마음에 결단을 한 거에요. 우리가 살아봤잖아요. 몸부림치면서 바르게 인도 받으려고 해봤잖아요.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우리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우리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일 날 만이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주일 날 하나님 은혜 받는 부분들만, 그 방향 맞추어서 인도받아 나가면 그 힘 가지고 우리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은 그래도 주의 말씀을 지켜야지,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생명의 역사들을 놓쳐 버리면, 확실해야 될 복음에 대한 비밀들을 깨닫지 못하면 오히려 그렇게 애쓰는 만큼, 수고한 만큼 우리의 인생은 결국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종교생활 속에서 다가 올 수밖에 없는 저주와 재앙 가운데 고스란히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참된 확실해야 될 복음에 대한 부분들 붙잡고 모든 종교생활에서 벗어나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 가진 그리스도인의 모습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복음 가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정말로 복음인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알고 그 복음에 은혜받으면요 응답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응답이 목표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을 알고, 날마다 복음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그 영적인 상태가 만들어지고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당연히 응답들은 오게 되어진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많은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 또 사업하시는 분들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복음 알고, 기도하면서 사업하시길 바랍니다. 그 속에 사업도 당연히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렘넌트들도 자기 열심으로 공부하지 말고요, 그것은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복음 알고, 복음 속에서 주시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그 힘 가지고 학업에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당연히 따라오는 응답들, 복음 안에서 있게 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6:3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에 더하여주신다는 말은 당연히 응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 앞에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 아래에 거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 더하여주시는 은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32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이가 그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주셨습니다. 그게 따라오는 응답, 당연히 받아야 할 응답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복음의 당연한 응답을 받다 보면은 다 양보해도 괜찮고, 여러분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은 무조건 다 도와줘도 괜찮습니다. 왜냐? 다 양보하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복음을 누리면서 당연히 응답받게 되면 그 안에서 결국은 다 양보해도 승리할 수 있는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복음을 소유하고 누리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참된 가치가 발견되어 집니다. 여러분 전도자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알고 나니까 내가 지금까지 가진 지식, 그게 이 복음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을 막았구나,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 모든 지난날에 가진 지식은 뭐로 여겼습니까? “배설물로 여긴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참된 가치를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지난날 자기가 가진 자랑들, 배경들, 많은 지식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지식이 이 복음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나는 이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이야기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러면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가노라” 무슨 말입니까? 진짜 축복과 가짜 축복이 무엇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 우리의 모든 축복이 위에서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 우리의 모든 축복이 보좌에서 주시는 능력과 힘과 축복이라는 것,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과 가짜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결국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땅에 의해서 내 모든 배경들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배경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컨트롤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늘 보좌가 여러분의 배경입니다. 아멘입니까? 이것만큼 축복 된 일이 없습니다. 복음을 누리면 누릴수록 이 가치들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실 그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있다, 없다 문제 안 됩니다.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발견하면 지금 있다, 없다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 잘 된다, 안 된다 문제가 안 됩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금 돈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지금 여러분이 건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그 저주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어렵다, 지금 안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면 그 축복은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최고의 가치 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우리는 모든 경우에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승리할 수밖에 없는 자다” 아멘입니까? 잠시 잠깐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에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세요. 복음 안에 있으면 반드시 어떤 경우에도 저와 여러분은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4:10-13절에 보면 사실은 바울은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만 그 환경 속에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자기는 승리할 신분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이었습니까? 사실 바울은 로마 감옥이라는 곳에 갇힌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빈부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했습니다. 여러분 그 어려운 환경에 바울은 속지 않고, 착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가 온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생명 안에, 복음 안에 있다면 그 환경과 그 모든 문제들이 여러분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나는 빈부에도 풍부에도 거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복음 안에 있을 때, 생명 안에 있을 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바울에게만 주셨습니까? 오늘 확실해야 될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을 찾아 누리십시오.
다니엘6:10절에 보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주위에 모든 사람이 악한 계략을 썼습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거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다니엘은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감사하였다 했습니다. 다니엘6:10절에 보면 이미 다니엘은 안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6:21-22절에 보면 “왕이시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면서 사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의 천사들을 미리 보내서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렇게 안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단순한 고백이 아닙니다. 이미 다니엘은 승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달랐습니다. 감사하면서 기도했다고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입니다.

3. 복음 누리는 자에게 오는 기도응답
여러분 복음 안에 생명의 비밀들을 담아주셨고 그 생명의 비밀을 소유하고 누리며 확신할수록 그 어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 생명의 비밀을 누리는 자에게 따라오는 응답이 뭡니까? 사실은 당연한 응답이 따라옵니다. 사실적인 응답으로 다가오는데 그 사실적인 응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 사실, 이게 생명의 비밀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사실적인 응답입니다. 요한복음14:16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러분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성령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겠다. 사실적인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26-27절에 보면 “가르치시고 또 생각나게 하신다”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생명의 비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사실적인 응답이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므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신다 라는 이 사실적인 응답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적인 응답을 누리지 못하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종교생활하는 사람들은 허풍떨고, 껍데기 가지고 외식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사실적인 신앙생활이 안 되니까, 사실적인 응답이 안 되니까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뭡니까? 결국 껍데기입니다. 허풍떨고, 외식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하나님께 부름받고 처음 깨달은 것이 내가 사도로 부름 받았는데 바로 내게 가장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자인 나라는 사실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으면서 나는 성도 중에 가장 지극히 작은 성도라고 고백하면서 사역에 최고로 귀하게 쓰임 받을 때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했습니다. 사실적인 하나님의 응답들을 그때 그때마다 누리면서 고백했던 내용들입니다.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 교만하고 자만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바리새인들의 교만이 사단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교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는 자신들도 구원받지 못하고, 구원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구원의 문을 막아버린 일을 했다고 예수님이 지적했습니다. 왜냐? 바리새인들은 사단 충만하니까, 교만함은 사단이 집결하는 통로입니다. 창세기 3장에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이 교만함 속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을 지은 것이 뭡니까? “우리의 이름을 내고, 우리를 높이자” 그래서 바벨탑 쌓은 것 아닙니까? 교만함으로, 이 교만함을 가지고 온 악한 사단이 바리새인들 속에 들어가가지고 교만함 속에 빠지게 해서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까지 앞서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생명 안에서 주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될 때에 사실적인 응답이 그때 그때마다 주어지는 문제와 환경 속에서 사실적인 응답들이 누려지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실적인 응답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응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11: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성령을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빌립보서4:19절에도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사실적인 응답을 주실뿐만 아니라 생명의 비밀을 알고 누리며 이 사실 속에 거하면 거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응답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생명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흑암에 잡힌 자를 살리는 응답들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9:1-15절에 보면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종교생활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율법 가운데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공문서를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다, 얼마만큼 그 사람이 영적으로 심각하고, 영적으로 갈급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바울을 주님께서 직접 다메섹에서 꺾으시고 누구에게 붙였습니까? 아나니아에게 붙였습니다. 종교와 율법에 찌들어있는 바울을 아나니아에게 붙였습니다. 사도행전10:38절에 보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서 마귀에게 눌린 부분을 알지 못하고 시달리는 고넬료를 누구에게 붙였습니까? 베드로에게 붙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16:13-15절에 보면 종교생활 하고 있는 루디아를 살려낸 사람이 누굽니까? 바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흑암에 잡힌 사람들을 살리는 응답, 마치 아나니아가 받아 누렸고, 베드로가 고넬료를 살리고, 바울이 루디아를 살린 것처럼 이 중요한 응답들이 우리가 받을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비밀을, 확실한 복음의 역사들을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흑암에 잡힌 사람들을 살리는 응답들을 주신다 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사실적인 응답뿐만 아니라 가장 필요한 응답, 그리고 흑암에 잡힌 자들을 살리는 그 응답을 하나님은 확실해야 될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생활로 인생이 끝난다면 그만큼 비참하고 또 억울한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나쁜 짓을 해서 저주, 재앙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쁜 짓을 해서 저주받고 멸망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삶을 따진다면 말씀드렸지만 우리보다 더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 가지, 복음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철저하게 화 있을진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멸망 받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그 누구보다도 확실해야 될 복음을 붙잡길 바랍니다. 그냥 단순히 복음을 안다 정도가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다 가지고도, 열심히 살고도, 복음 하나 몰라서, 생명 몰라서, 구원 몰라서 망했다면 반대로 저와 여러분이 확실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야 이 시대에 가면 갈수록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으로 빠지는 그 삶에 빠지지 않고, 껍데기 가지고 살지 않고, 승리하면서 살고, 237나라를 소유하며 그 땅을 차지하는 그런 축복 된 응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확실해야 될 복음을 붙잡아야 할 이유들을 오늘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통해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이 축복 된 응답이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2월 2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확실해야 될 복음
(마23:1-12)
서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3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는 알지만 누리지 못하니 문제와 갈등 속에 살아가는 사람, 열심히 신앙생활 했으나 자신도 구원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 복음과 그 은혜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함으로 문제와 사건 가운데 응답 누리는 사람, 매주 주어지는 강단의 말씀을 자기 현장의 답으로 붙잡고 문제 속에 답을 찾아낸 사람은 세상을 치유하고 축복하는 제자들로 세워졌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본문은 대표적인 종교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과 함께 대화하면서도 멀리 있는 주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됩니다.

1. 복음 없는 종교인의 모습
1) 자기 기준으로 살아감
(1) 마지막 때에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둠(딤후4:3-4), 마지막까지 내려두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
(2) 외식하는 서기관,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심(마11:28-30) - 하나님 앞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관점
2) 외식하면서 살아감
(1) 자기선전을 해야 적성이 풀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특별히 알아주는 위주로 살아가니 외식하면서 살아감
(2) 자기 속에 생명의 가치 있는 응답을 못 받았기에 자신도 하나님도 속이는 의식을 하게 됨(눅18:10-13)
3) 불필요한 규칙을 만들어 살아감
(1) 바리새인은 성경에 없는 안식일 규정을 많이 만듦 – 주일날 은혜받는 쪽에 유익한 쪽으로 하라
(2)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임(요일5:3) -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님
(1) 주님이 다 이루었기에 이루신 그분을 잘 믿으면 되는 것이 신앙생활임(요8:32)
(2) 복음 없는 종교인들은 가면 갈수록 고생함, 심지어 예수 믿으면서 고생하는 것도 자랑함(딤후3:13)

2. 복음 가진 그리스도인의 모습
1) 따라오는 응답
: 정말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에 은혜 받으면 응답은 당연히 따라옴(마6:33, 롬8:32) - 학업, 사업에 증거가 옴
2) 참된 가치 발견
(1) 복음의 당연한 응답을 자꾸 받다 보면 다 양보하고, 모든 것을 다 도와주고 승리할 수 있음
(2) 복음을 진짜 소유하고 누리게 되면 시간 가면 갈수록 가치 있는 부분이 발견 되어짐(바울, 빌3:1-20)
(3)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피할 길이 없고, 별로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음
3) 모든 경우에 승리
(1) 복음을 모르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기에 모든 것이 불가능해서 염려, 시기, 비판, 인본주의로 몸부림침
(2) 허례허식, 외식, 이상한 인생으로 바뀜 => 그 이유는 천사가 교만해서 타락(계12:7-9)
(3) 참된 복음인 생명이 있으면 어떤 환경도 상관없음 – 일체의 비결(빌4:10-13), 다니엘(단6:10, 단6:14)

3. 복음 누리는 자에게 오는 기도응답
1) 가장 사실적인 응답
(1) 보혜사(요14:16, 26-27) -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비추어 볼 때 틀린 생각 많음 => 날마다 성령충만!
(2) 바울의 고백(지극히 작은 사도, 가장 작은 성도, 죄인 중에 괴수) - 자기를 찾아내고 자기를 발견함
2) 가장 필요한 응답
: 가장 필요한 것, 정확한 응답을 주시는 줄 알고 기도하면 됨(눅11:13, 빌4:19)
3) 흑암에 잡힌 자를 살리는 응답
: 복음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응답 = 아나니아와 바울(행9:15), 베드로와 고넬료(행10:38), 루디아(행16:13-15)

결론: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생활로 인생이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은 구원 받지 못하고 생명을 얻지 못하고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아무 가치 없는 껍데기 붙잡고 있다가 사탄에게 저주받아 멸망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복음밖에 없다. 복음을 지속하고 복음을 뿌리내리는 중에 당연한 응답이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한 부분에 주시는 응답들을 체험하고 흑암에 잡힌 자를 살리는 응답 받길 바랍니다. 생명의 비밀을 풍성하게 누림으로 그 땅을 차지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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