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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을!”
(마27:16-26)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아멘.
마27:16-2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 즐겁고 또 복된 길이 있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고의 축복 된 응답들을 찾아내는 그런 참된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을”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 복음 안에서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새로운 응답을 받아 누림으로 성공된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26-27장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에 제자들의 모습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에 제자들은 배신하고 도망가고 부인까지 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일컬어서 정말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이런 의구심도 들고요, 과연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복음화 할 수 있겠느냐 이런 생각도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제자들은 변화되어졌고요 하나같이, 그리고 그 제자들은 전도자의 인생으로, 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인생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성공한 인생으로 기념되어지는 사람들이 되어졌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란다 할지라도 복음 안에 있으면 그 어느 누구도 상관없이 연약함과 부족함과 모자람 상관없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가룟 유다에 대한 부분들을 같이 살펴보겠는데요, 가룟 유다를 통해서 불행한 인생의 종말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실패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이런 생각들을 우리는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한 것들을 선택해야 하는 그런 시간들 앞에서 결국은 영원한 실패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을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실패의 역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올바른 언약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역사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이지요. 역사가 지나가고 나면 모두 잊어버려요. 그것을 통해서 아무도 배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실패로 기념되는 인생과 또 실패한 선택,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을 바라보면서 이 과거의 역사로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도록 언약을 붙잡으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공된 인생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1. 실패자의 기념이 된 가룟 유다
먼저는 첫 번째입니다. 실패자의 기념이 된 가룟 유다에 대해서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27:6-8절에 보면 예수님을 팔고 나서 받은 돈이 은 30냥입니다. 그런데 이 가룟 유다가 이 은 30냥을 성전에 던집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판 그 돈을 모아다가 밭을 하나 삽니다. 이것은 더러운 돈이기 때문에 사실은 성전에 둘 수가 없다고 해서 그 은 30냥을 대 제사장들이 모아서 밭을 하나 사는데 그 밭을 나그네들의 묘로 쓰려고 밭을 삽니다. 그래서 거기에 붙여진 이름을 피밭이라고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사실은 이 피밭이라고 불려지는 이 땅은 잊혀지지 않고 기념이 되었는데요, 단순한 실패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실패가 계속해서 기념이 되어지는 인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오늘날까지, 무슨 말입니까? 실패의 역사들이 단순히 한번 일어나는 실패가 아니라, 계속되는 실패의 인생에 기념이 되어지는 아니, 성공하는 인생의 기념이 되어야 할 것인데, 실패하는 인생의 기념이 되어지는 인생이 되었다 라는 것, 그래서 여기서 오늘날까지라고 말하고 있지요. 사도행전1:19절에 보면 사실 아겔다마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피의 땅이라는 곳인데요, 사실 유다가 그 땅에서 피를 흘렸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땅 이름을 아겔다마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피의 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가룟 유다가 실패한 인생으로 기념이 되어지는 그런 인생의 비참한 삶을 산 것인가? 여러분 사실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그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지은 죄는 더 저주스런 죄고, 더 처절한 멸망의 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하고 저주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도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베드로는 수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가룟 유다는 어떤 면에서 진짜 저주스런 그런 죄로 처벌당한, 멸망 받는 그런 죄가 되었느냐 이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실제적인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으로 친다면 가룟 유다가 더 실제적인 일을 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12명의 제자들을 먹여 살리는 재정 담당을 했던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3년 동안에 죽을 고생하면서 헌신하고 노력하고 충성했는데 처참하고 멸망 받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된 이유가 뭘까요?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했는데, 그 끝이 여러분 처참하고 가룟 유다처럼 멸망 받는다면 그것만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실패하는 인생이 없는 것이고, 그것만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실은 억울한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똑같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축복받는 길로 인도받게 됨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중요한 부분들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직분자로, 중직자로, 혹은 평신도로 헌신, 봉사, 충성을 다 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쁜 결과가 나온다면, 멸망 받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사실은 억울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룟 유다의 모습이 그냥 그대로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많은 경우 지금 교회 속에서 이 부분들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일하고 노력하고 헌신하고 또 모든 것 다 바치고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면 나도 모르게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렸다면, 다른 결과들이 나오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시 한번 더 뭔가 모르게 신앙생활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뭔가 모자란 사람 같고, 부족한 사람 같은데 저 사람 보면 시간 가면 갈수록 뭔가 축복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능력이 나타난다면 우리가 그냥 그 사실들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로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고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사실들이 내가 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 일에 저와 여러분을 증인으로 세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응답들이 내가 신앙생활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갈등과 괴로움과 고통들은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적고 큰일들이 있을 수 있지요. 또 좋고 나쁜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들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모든 문제는 해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문제 해결’이 말씀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나의 모든 일들도, 나의 모든 일어나는 사건들도 전부 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다스림 속에 들어간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내가 보기에는 안 좋은 것으로 보일 수 있고, 내가 보기에는 안 좋은 사건들로 우리에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면,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다면 그게 안 좋은 것이 안 좋은 것이 아니지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들, 모든 일들을 다스리는 것을 믿는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하나님의 인도 속에 들어간 겁니다. 그 어떤 일과 그 어떤 사건이 있어도 괜찮아요. 올바른 언약 붙잡으면 우리는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흑암권세를 깨트리시고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언약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 언약을 붙잡는 동시에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인도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차이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붙잡은 것이고요, 나의 인생, 나의 모든 일, 나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붙잡은 것이고요, 가룟 유다는 이 사실을 붙잡지 못한 그 차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베드로는 잘못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 안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 속에 있다는 이 언약을 놓치는 순간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가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감정적인 결단이 그의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도 가룟 유다도 똑같이 동일하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언약 안에서 말씀 따라서 언약 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들을 회복하는 회생의 귀한 축복의 역사가 되어진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똑같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지만, 언약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감정의 결단에 따라서 자기감정과 느낌과 기분에 따라서 스스로 목메어서 자살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를 모른 겁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인도 속에 들어간다는 이 엄청난 언약의 축복의 역사들을 이 가룟 유다는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과 기분과 느낌 따라서 결국은 양심의 가책 가지고 목메어 죽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감정 따라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느낌 따라 기분 따라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우리 신앙생활의 철저한 기준이 어디 있어야 하느냐? 언약 안에 있어야 되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언약 붙잡았다고 이야기하고, 말씀 붙잡는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늘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보면 자신의 감정과 기분과 느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내 삶이 되도록 언약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결정할 때는 거의 다가 자신의 기분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느낌에 따라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느낌과 내 감정과 내 생각대로 인도를 받게 되면 결국은 문제가 오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 올 때마다,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어디에 들어가야 하느냐?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그 언약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사실들을 보게 되어있고요,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안식이 문제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평안과 안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문제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성공자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저런 사람들의 말에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잖아요. 또 우리 자신들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되겠나? 내 자신을 스스로 보면서 그런 부분에 우리도 모르게 빠져듭니다. 전부 다 내 기준이에요. 내 생각이에요. 내 감정이에요. 내 느낌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집니다. 하나님 언약의 말씀대로 움직여집니다. 지난주 우리가 말씀 받았던 것처럼 오히려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떤 일이 여러분에게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흔들려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흔들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언약은 오늘도 이루어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 그 언약 속에 들어가자는 말이에요. 아무리 여러분이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훌륭한 생각들 가지고, 훌륭한 감정들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러분 수준이에요. 그것 가지고 있는 이상은 여러분 오늘 가룟 유다처럼 결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빠진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 속에 있는 그 언약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 날마다 실패하는 인생의 모델이 되지 말고요,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을 받음으로 성공하는 인생의 기념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실패한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이 나와요. 우리가 늘 잘 아시는 말씀인데요, 마태복음27:25절에 보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 한마디가 간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 한마디로 말미암아 실패자의 기념이 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실패자의 기념이 된 인생이 있다면 가룟 유다이고요, 실패자의 기념이 된 백성이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그들의 고백이 뭡니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었지요. 바라바를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역사 속에 엄청난 심판을 가져온 사실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되어 집니다.
사실은 복음이 이때로부터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때부터 이 복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어졌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뿌리를 바르게 내려야 합니다. 복음의 뿌리를 바르게 내리지 못하는 부모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 내 자손들이나 자녀들에게 오히려 원수가 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그 피를 나와 내 후손들에게, 내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 한마디 했는데 여러분 보세요.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유리 방황하면서 어려움 당한 백성들이 없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복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부모들,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한 모든 사람들, 그것이 그냥 단순히 내가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에게 원수가 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역사 속에, 후손들이 얼마나 큰 고통에 빠지게 된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 있잖아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깨닫고 메시야를 바로 붙잡았다면, 바라바가 아니라 메시야를 바로 붙잡았다면 놀라운 축복의 역사들이 후손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그 후손들이 역사 속에 2천 년 동안에, 1948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기까지 2천 년 동안에 전 세계에 유리 방황하면서 나라 없는 백성들로 온갖 고난과 실패의 역사들을 가져온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들이 복음 깨닫기 위한 몸부림, 너무나 귀중한 거에요. 여러분이 복음을 바르게 깨닫기 위한 몸부림,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자녀들은 그 언약을 먹고 사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이 자리에 렘넌트들 있습니까? 비록 부모님들이 연약하고 모자라고 또 잔소리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간에 언약 붙잡기 위한 몸부림을 가진 부모, 공경해야 합니다. 그 부모들 때문에 여러분이 삽니다. 부모들이 붙잡은 언약 때문에 자녀들은 그 언약을 먹고 산다는 사실,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릴지어다. 내가 한 사람 복음 붙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한 사람 복음 놓쳐버리면 그게 우리 후대에게도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들로 심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돌릴지어다. 여러분 가정에 일어나는 일들 있지요, 여러분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있습니다. 또 교회에 일어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 당하면 거의 다 대부분이 사변적인 것에서 원인을 찾고요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가정에 일어나는 일들도, 자녀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교회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일이 일어나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느냐?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돌릴지어다. 결국, 이 사실 놓쳐버렸기 때문에 가정의 문제와 이 사실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느냐? 빨리 복음 속으로, 언약이신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근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면 뭔가 모르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익숙해져 있는 부분들 때문에 거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답이 있는 줄 알고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닙니다. 문제 생길 때마다 ‘아! 내가 복음 제대로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가 나 때문에 온 문제구나!’ 알고 어디로 들어가면 됩니까? 그 피를 나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릴지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 사실을 놓쳐버려서 문제가 오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모든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까지 오는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메시야의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여기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문제 당할 때마다 우리는 붙잡아야 할 언약이 있다면 오늘도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그 속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발판 되어지고 그게 하나님이 주시는 누려지고, 그 속에서 참된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룟 유다 가만히 보면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메시야의 능력 이 사실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사단의 지배 속에서 못 빠져나와서 실패의 기념이 된 인생으로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님들 정말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 누림으로 실패의 인생의 기념이 되어지는 그런 저주스러운 일에, 그런 실패의 역사들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공한 인생으로서 기념되는 자가 되자
두 번째입니다. 성공한 인생으로서 기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실패자로서 기념이 되어서 두고두고 역사 속에 지금까지도 일컬어지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도 지금까지도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제자들은 성공한 인생으로 기념되어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성공한 일에 기념이 되어지는 그런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까? 그것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복음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 사실을 놓쳐서 모든 문제가 왔다면 우리의 인생에 성공하는 길이 있다면 진짜 그리스도, 복음으로 시작하면 우리 인생은 기념되는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한다 할지라도 결국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인생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인생입니다. 성공할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은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인생은 반드시, 반드시 저주와 재앙과 고통의 역사, 실패의 역사가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안 그런 척하고 있어서 그렇지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배경 속에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은 반드시 시간 가면 갈수록 저주, 재앙, 실패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이상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나름대로 여러분 가문에 내려오는 가문의 영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과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여러분도 원치 않게 주어지는 일들과 상황들이 있고,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상황들, 그 사건들과 가문에서 내려오는 영적인 부분들이 부딪히게 되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뭐냐하면 영적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 6장, 11장에 빠져나오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들, 일들, 상황들 그게 내 가문에 내려오는 영적인 부분과 같이 겹쳐져가지고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영적문제 있는 사람들 보면 이것 때문이다, 쉽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이미 오래된 것이고, 가문에 내려오는 영적인 부분들이고, 그게 일과 사건들 딱 만나게 되니까 영적인 병들로 터져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영적인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치유할 수 있는 답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 그 이유를 제대로 알 때에 그 영적인 질병은 치유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로마서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의 모자람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여러분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확정하셨다 말씀했습니다. ‘나는 연약한데요. 나는 못 하는데요’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까?
특별히 여러분 우리 인생은 왜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 로마서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원죄 사건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실은 우리 조상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므로 말미암아 그 원죄의 저주가 영원한 저주가 되어 가지고, 지금도 모든 인생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영적인 원죄의 저주의 배경에는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악한 사단의 손에 붙잡힌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 삶을 에베소서2:1-3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다” 했습니다.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결국은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삶이 세상 풍속을 쫓고, 사주팔자, 운명, 점하고 우상숭배하고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에베소서2:3절에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 가운데 늘 살아가는 겁니다. 사단이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이걸 누가 해결할 것입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로마서3:23절, 요한복음8:44절, 에베소서2:1-3절은 영원한 문제입니다. 그 어느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니 우리 자녀들도 똑같이 거기에 당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10:45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원죄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3: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모든 인생이 자기도 모르게 마귀를 아비로 섬기고 살아가고 있는데, 거짓말쟁이, 우리 인생을 멸망시키는 사단을 아비로 섬기고 살아가는데 그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 자가 없습니다. 왜냐? 사도행전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하 인간 중에 구원을 얻을만할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나아간다고 만들어 낸 것이 종교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길을 여시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성경구절, 여러분 마가복음10:45절, 요한일서3:8절, 또 요한복음14:6절 여러분이 평생 누려야 할 답입니다. 여러분 후손들에게 평생 전달해야 할 답입니다. 그 세 가지 단어를 합쳐서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은 모든 재앙을 이기는 이름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복음은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해결할 능력을 지닐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잡고 나가는 인생은 성공자의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은 자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6: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했는데 그 이름 고백한 베드로에게 말씀했습니다. 반석이다. 그리고 세상 나라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하나님과 소통 되어지는 그 축복을 줄 것이다. 여러분 그리스도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지금 여러분이 주는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무너뜨릴 수 없는 반석의 축복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나라 아무리 힘 있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을 이기지 못한다 했습니다. 세상 나라를 이기는 권세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소통 되어지는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다른 것 붙잡지 마시고,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성공하는 일에 기념되는, 그런 축복의 사람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다른 게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 붙잡은 게 성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자입니까? 그리스도 아는 자가 성공자입니다. 그리스도 복음 붙잡은 자가 성공의 기념되는 인생이 되는 자입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여러분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에 대한 부분들이 나옵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로, 성공의 인물들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 된 응답을 우리와 우리 후대들이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한 번뿐인 생에 정말로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서,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이 살아가지고, 내 기분과 내 감정과 내 느낌, 내 중심으로 살아서 실패에 기념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념되어지는, 하나님의 일에, 복음의 역사에 기념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6:24절에 보면 가룟 유다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없었으면 좋을 뻔한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26:13절에 보면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한 번뿐인 인생, 없었으면 좋을 뻔한 인생으로 남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여러분 영원히 기억되어지는 성공된 인생으로 기념되기를 원하십니까?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을 받아 누림으로 저와 여러분, 이 땅에서 정말 복음 때문에 영원히 기념 되어지는 성공자의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5월 16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응답을!
(마27:16-26)
서론: 마태복음 26~27장은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제자들이 배신하고 도망하고 부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전혀 세계복음화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제자들은 변화되었고, 전도자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복음 안에 있다면 상관없이 하나님이 쓰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한 부분 앞에서 영원한 실패가 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런 실패의 역사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않아야 합니다. 참된 성공자의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실패자의 기념이 된 가룟 유다(마27:6-8)
가. 베드로나 가룟 유다 사실 별 차이가 없었다
(1) 어째서 가룟 유다가 더 큰, 저주스러운, 처참한 죄가 되었는가? / 베드로는 오히려 축복받는 길로 인도받음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부르고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며 전심 다 했는데 처참한 결과가 나온다면 억울한 일
(3) 가룟 유다의 모습이 끝난 것이 아님, 지금 교회 속에서 재현되고 있음
(가) 주의 이름으로 일하고, 노력하고, 헌신하고 살았는데 어떻게 나의 신앙생활은 축복 되지 않을까?
(나) 정말 신앙생활 할수록 하나님 앞에서 영육 간의 축복을 받아야 =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구나!
나.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1)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이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해결 –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믿는 믿음
(2) 흑암 권세를 꺾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언약의 주인이 되셨음
(가) 둘 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언약 안에서 회생의 축복, 가룟 유다는 감정의 결단으로 자살
(나) 신앙생활을 감정, 기분, 느낌으로 살아감 -> 하나님의 계획이 내 삶이 되도록 언약 속으로 들어가야
(3) 문제 올 때마다 감정과 생각으로 부딪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라! (평안과 안식이 임함)
다. 실패자의 기념이 된 이스라엘 백성(마27:25)
(1)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부모,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후손에게 오히려 원수가 될 수 있음
(2)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바르게 깨닫고 붙잡지 못하니 멸망, 재앙, 고통을 후손들에게 넘겨줌
(3) 자녀들은 부모가 붙잡은 언약을 먹고 삼, 부모가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공경해야 함
(4) 근본으로 돌아가야 문제가 해결 되어짐 – 오늘까지 온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문제
(5) 가룟 유다는 자기 책임을 위해서 충실, 극단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 메시아의 능력을 의지 안 함
2. 성공한 인생으로서 기념되는 자가 되자
가. 복음으로 시작하라
(1) 아무리 세상 적으로 성공해도 창세기 3장, 6장, 11장 – 반드시 어느 날 재앙, 사탄, 지옥의 삶이 옴
(2) 상황과 가문의 영적 유산이 영적문제로 드러남
(3) 우리 인생에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가? 나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롬5:8 / 롬3:23, 요8:44, 엡2:1-3)
(4) 그리스도 복음은 우리 연약함, 실패,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녔음
(가) 모든 재앙을 해결하는 이름,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나가는 인생이 성공하는 인생
(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유일한 것임을 아는 사람(복음 가진 자체가 성공!)
나. 로마서 16장의 응답 = 식주인, 동역자, 보호자
(1) 복음 안에서 성공한 삶을 사는 기념비적인 자
(2) 가룟 유다에게 하신 말씀 -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더라(마26:24)
(3) 온 천하에 어디서든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26:13)
결론: 어떤 인생으로 후대에게 기념이 될 것입니까?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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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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