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라
2023-11-05 13: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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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라
(애3:40-41)

  
서론: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직후에 기록한 말씀이며 슬픈 노래입니다. 왜 예루살렘, 지금 이 시대가 멸망할까요? 복음이 희미하고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근본문제(창세기 3장 사탄 문제, 죄의 권세, 지옥배경)를 해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로 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재앙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을 지켜나가는 교회와 주의 종을 찾고 계십니다.(행4:12, 요15:5). 
  
 1. 눈물과 한이 있어야 함
  가. 복음의 눈물을 회복하게 하옵소서(애1:2, 애1:16).
   • 예루살렘이 과부처럼 되었고 많은 고난 가운데 빠졌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애1:1,3).
   • 예배가 중단되며 어린 후대들이 포로가 되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애1:4-5).
  나. 복음의 한(말씀의 한, 언약의 한)을 깨닫고 미래 소망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셨고 말씀이 실종되어 멸망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애2:6, 호4:6-7).
   • 말씀을 놓쳐서 불신자차럼 살지 않고 말씀을 이정표로 붙잡게 하옵소서(애2:9, 시119:105).
   •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언약을 놓친 그리스도인이기에 언약부터 회복하게 하옵소서.
   • 주의 종과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 언약만 선포되어 현장을 회복하고 시대 재앙을 막게 하옵소서.
  
 2. 복음적 고통이 있어야 함(애3:1-5)
  가. 소돔, 고모라를 보며 괴로워한 롯의 고통스러움을 깨닫게 하옵소서(벧후2:7).
   • 비록 복음을 전하지 못하더라도 죄악의 관영함을 보고 고통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는 강단이 되도록 기도하게 하옵소서.
   • 인격이 훌륭하고 어마어마한 교회가 아닌 정말로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 어릴 때부터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포럼 하는 그 영적비밀을 후대에게 전달하게 하옵소서.
   • 언제부터인가 복음을 듣지 않아도 우리 삶이 편하게 살아가지 않는가? 점검하게 하옵소서.
  
결론: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라는 오늘 말씀을 놓고 나를 샅샅이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애3:40-41). 그러면서 정말 복음을 놓친 것이 아닌지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살아날 뿐 아니라 모든 현장을 살리는 답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것은 잘 말하는데 복음만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드는 기도도 시작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진짜 믿어야 합니다. 정말 복음을 회복하고 마음과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 시대 재앙 막는 전도자들이 될 것입니다.

 

11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라”
(애3:40-41)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아멘.
         애3:40-4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십시다.’, 진짜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소원에 매인 바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한 시간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한번 뿐인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소원에 매인 바 되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귀중한 제자들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이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을 당하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들을 여러분 무엇으로 하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도 원치 않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고요,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우리가 생각지 못한 갑작스런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지기도 하고, 또 우리도 원치 않는 질고까지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겪기도 합니다. 거기에 대한 해결들을 무엇을 가지고 해결하십니까? 오늘 혹이나 개인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나, 가문의 문제나, 또 여러분 자녀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나,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에 대한 답들을 오늘 찾아서 돌아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어요. 오늘 요절로 본문에 나와 있는 두 부분을 우리 40절, 41절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입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는 것처럼,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이런저런 많은 풍랑이 있고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풍랑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은 바 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 돌아가면서 우리의 모든 마음과 손을 하나님을 향해서 들면서, 기도함으로 나가게 될 때에, 우리의 지난날의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오히려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는 발판이 되어지고,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정말로 귀중한 답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여러분 한 주간 현장에서 이 한 시대에 재앙을 막을 전도자로 세워지는 그러한 귀중한 축복이 있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지은 글입니다. 예루살렘이 B.C. 586년에 멸망을 당했지요. 멸망을 당한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여기에 애가라는 말은 슬픈 노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결국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왜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서서 눈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만에 회복되는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현장을 정복하고 살려야 될 하나님의 사람들이 왜 현장에 노예 되어 있고, 포로 되어 있고, 속국 되어 있는가? 사실 예레미야 시대에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희미해지고 복음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 예루살렘이 멸망당했다면, 오늘도 이 땅에 결국은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 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여러분 열심히 안 살아서가 아니에요.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결국 한 가지입니다. 복음이 희미해지고 복음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세상을 살리라고 부름 받은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들조차도 포로 되고, 노예 되고, 속국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정확한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정말로 복음에 대해서 알고, 누리고, 전달할 수 있는 그 축복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재앙을 막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이 복음이 희미해지고, 복음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포로로 끌려갔다면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노력하고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모르는 저주와 재앙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그러면 결국은 복음은 무엇일까요? 복음은 어떤 것을 가지고도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살고 안 살고가 문제가 아니고요,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절대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근본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복음이에요. 그러면 그 근본문제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은 사탄의 문제, 그 결과로 죄의 권세 가운데 빠지게 되고, 결국 본인과 상관없이 배경이 되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옥배경입니다.
 이 지옥배경은 내가 지옥배경 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과 상관없이 어느 날 보니까 나도 모르게 나의 배경이 지옥의 배경인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지금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눈에 안 보이니까 알 수도 없는 것이고요, 듣긴 듣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계속해서 듣잖아요. 듣긴 듣는데 그냥 하는 말들이지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창세기 3장의 사탄의 문제, 죄의 권세, 나와 상관없이 오게 된 지옥의 배경이 정말로 나와 상관없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무뎌가지고, 영적으로 무뎌가지고 자기문제로 안 받아들여요. 그래서 결국은 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답이 안 돼요. 왜냐? 자기문제로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그 속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답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 인간의 근본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안다면 우리가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땅의 싸움은 다른 싸움이 아닙니다. 정말로 오직 그리스도이냐? 다른 것으로 우리가 열심히 살 수 있느냐? 그 싸움이에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싸움이 이 땅의 싸움이에요. 어떤 면에서 재앙 중의 재앙이 있다면 지금 지구상에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전쟁과 기근과 많은 재앙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 했지요. 천재지변의 많은 부분이 일어날 것을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재앙이냐? 아니에요. 진짜 재앙 중의 재앙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상실한 것이 재앙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것이고,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이끌어 가시는, 바로 축복의 문들을 그리스도께서 여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영접하게 될 때에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것을 가지고 생명이라고 해요.
 우리는 종교인들이 말하는 좋은 말 듣는 것이 아니에요. 교훈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말과 교훈들은 종교생활에서도 많이 가르치고, 일반 종교에서도 많이 말 합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도 너무나 좋은 말들 붙여 놓았는데, 그렇잖아요. 화장실에 가도 얼마나 교훈되는 말들, 소크라테스가 한 말들, 위인들이 영웅들이 했던 말들 많이 붙여 놓았잖아요?
 그런데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죽었던 내 영이 살게 되고, 나에게 생명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1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을 떠나서 영으로 죽어 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산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말하고 있어요. 좋은 말들 아니에요 여러분, 교훈되는 말들 아니에요. 그것 찾으려면 다른 종교에 가세요. 여러분 세상을 향해서도 세상에 많은 책들을 읽어도 그런 말들 많이 이야기 하고 있어요. 먼저 깨달은 철학자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말들 많이 합니까? 그것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 땅의 싸움은 다른 싸움이 아닙니다. 진짜 오직 그리스도이냐? 그리스도 아니냐? 이 싸움이에요.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성의 싸움이라는 사실,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갈라디아서1:6절에 뭐라고 말씀했느냐? 다른 복음은 없다 했어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그 당시에 복음으로 구원 받아 놓고도 행위로 구원의 역사들을 돕는다는 이 갈라리즘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으니까, 바울이 그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무엇이라 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혹이나 다른 복음을 말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했어요. 다른 복음은 없다 했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만을 선포하고, 유일성만을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땅의 유일한 답인 것을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결국은 승리하는 싸움에 마지막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붙잡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 싸움이에요 사실은. 베드로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치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이지요. 그것 때문에 그 베드로 팀이 결국은 잡히게 되고, 가두어졌어요. 가두어진 그 자리에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이 이야기했어요. 도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했느냐? 그때에 베드로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니라.”
 할렐루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했어요. 이 땅에 천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구원 줄 수 있는 것은 안 된다 라는 사실, 죽었던 생명이 살아날 수는 없다 라는 사실이에요.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 그 이름만이 우리를 살리는 이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서 너희가 본 이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다 말씀했어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걷게 된 것이다 말씀하고 있어요. 마지막 날일수록 우리의 영적싸움은 진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붙잡았느냐? 붙잡지 않았느냐? 그 싸움입니다.
 요한복음15:5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것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뭔가 이루어졌습니까? 오히려 그게 여러분 나중에 그게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여러분이 어느 날 보면 ‘아, 내가 이 부분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공했다는 그것 자체가 이것 때문에 내가 실패하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열심도 아니에요. 열심을 내려면 절간에 가면 더 열심을 냅니다 여러분보다. 능력도 아닙니다, 신비도 아닙니다. 능력과 신비는 다른 종교에서도 행해요. 우리는 무엇입니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고, 이 땅에 살아가는 승리의 삶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끝까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싸움은 다른 싸움이 아니에요.
 지금 어떤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사탄이 교회 안에 장악해서 다른 복음을 심었어요.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다? 그게 종교 다원주의 아닙니까? 왜 유일하게 그리스도만 믿어야 되느냐? 그리스도만 말해야 되느냐? 악한 사탄이 교회를 파고 들어가지고 교회 안에도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어요. 아닙니다, 능력도 아니고, 신비도 아니고, 열심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만 증거 되어야 되는 것이 교회요, 교회의 사명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내가 살아요, 그래야 교회가 살고, 그래야 한 시대를 살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이 왜 멸망 받았느냐? 다른 게 아닙니다. 유일한 복음인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고, 그 멸망을 지켜본 예레미야가 눈물 흘리면서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게 오늘 예레미야애가입니다. 그래서 먼저 저와 여러분은 이 한 시대에 유일성의 복음이 사라지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가져야 될 눈물이 있어요, 가져야 될 한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면 눈물 흘리고 하는데 그런 눈물 말고요, 진짜 유일성의 복음을 가진 여러분이라면 현장을 바라보면서 복음에 대한 눈물과 복음에 대한 한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눈물이 있어야 복음이 회복되게 되어 있고요. 복음에 대한 한을 가지게 될 때에 미래가 소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말씀 받으면서 내가 정말로 우리 오늘 찬양대 찬양했던 것처럼 애통한 심령으로 현장을 보게 하사 오직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말하면 정말로 복음만이 필요한 현장을 향해서 복음에 대한 눈물과 한이 있느냐? 그 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시대에 재앙을 막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회복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가 정말로 예레미야가 가졌던 그 복음의 눈물과 복음의 한을 여러분이 담고 가시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눈물과 한이 있어야 함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살펴본 것은 예레미야는 복음의 눈물과 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렸느냐? 오늘 성경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1:2절에 한번 보세요. 1:2절에 예레미아가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는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본 예레미아가 밤에 슬피 운다, 그래서 눈에 눈물이 뺨을 흘러내리는데 그다음에 보면 위로할 자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복음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유일성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이 함락 되어진 그 사실 앞에 이 예레미아가 그 현장을 놓고, 눈물 흘렸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복음의 유일성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어떤 현장으로 바뀌어졌느냐? 한번 보세요, 1절에 보세요, 중간에 보면 나오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열방 중에 크던 자가 아무도 돌보지 않은 과부 같이 되었다 했어요. 아무 소망이 없는 과부 같이 되었다 했어요. 그리고 1절 마지막에 보면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뭐요? 공주였는데 강제 노동하는 자가 되었도다. 오직 유일성의 복음을 놓쳐버린 예루살렘 성이 얼마나 고통 가운데 빠졌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3절에 말씀하고 있죠.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 갔도다.”, 환난과 많은 고난이 여러분 그렇습니다. 유일성의 복음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많은 고난들을 당할 수밖에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런데 오늘 1:5절에 보면 그 고난조차도 하나님께서 재앙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기 위해서 고난을 주셨음을 보게 돼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언약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은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들도, 힘든 것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깨닫고, 복음으로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이나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 눈물 가운데 있는 분들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영적문제로 말미암아 고난 가운데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언약의 역사들을 놓쳐버리니까 고난 가운데 빠지고요. 그다음에 4절에 보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인데요. 4절에 “절기를 지키러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절기를 지키러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예배가 중단 되어졌음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예배가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축복되게 붙잡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가 중단되는 인생이 된다면은 여러분은 어느 날 모든 부분들이 결국은 여러분에게 문제 거리로, 실패 거리로 여러분을 에워싸고 있을 겁니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냐?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 예루살렘 그 멸망의 이유 중에 뭐냐? 먼저 과부 같이 되었고, 고난 가운데 빠졌고, 예배가 중단 되었다 라는 것. 여러분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창조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배하는 자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모든 축복을 다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예배가 중단 되었다 라는 것, 그러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냐? 여러분 이사야43:21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 백성은 나를 위해서 창조했는데 나를 뭘 하기 위해서? 찬송케 하기 위해서,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고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살리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단되지 않도록 여러분 기도하세요.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예배가 중단되지 않는다면은 그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영원한 것으로 누려질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가서도 예배는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축복이 바로 예배인 것인데, 그런데 예루살렘 성의 멸망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있다면 이 예배가 중단 되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유럽, 복음으로 시작한 것이 유럽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큰 건물들은 남아 있지만은, 예배가 드려지지 않아요. 그래서 유럽에 모든 영적인 문제들이 얼마나 엄청나게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장임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심지어 여러분,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모슬렘이 75%입니다. 기독교인은 0.1%도 안 돼요. 그래서 오히려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개신교, 기독교를 이단으로, 아예 기독교, 개신교를 이단으로 봐요. 그러면서 있는 교회들도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없어가지고 이리저리 쫓겨 다닐 수밖에 없어요.
 프랑스에 어떤 우리 대구에서 파송된 선교사님은 예배드리는 장소에 있었는데 그 예배드리는 장소에서 주인이 나가라 해서 나왔는데 결국은 자기 중직자 사업장에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차려놓고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다 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교회가 있어도 그 교회에 한 교회가 차지해서 예배드리는 게 아니라 여러 교회들이 시간을 나누어서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무슨 말입니까? 예배가 사라졌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가장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예배인데 예배는 그냥 단순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린다? 그게 아닙니다. 많은 이유와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에요.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하늘 보좌의 문들이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그 예배 드릴 때마다 하늘 보좌의 하나님의 응답이 보좌에서 축복과 응답과 생명으로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이 예배하면서 기도하게 될 때에 하늘 군대가 움직여지면서, 모든 막힌 문들이 열려지면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산업에도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이 예배를 통해서 동시에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예배 속에 담겨져 있어요. 그런데 이 예배가 끊어졌다? 당연히 저주와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인생에게 고난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창조의 목적을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면, 그런데 이 예배가 끊어졌다면 갈수록 어렵고, 힘듦과 저주와 재앙이 왜 오느냐? 여러분 인생에 예배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은 가장 비극인데 후대가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어요. 한번 보세요 5절에,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후대들을 다 데리고 가서 결국은 그들을 죽였어요. 똑똑한 제자들만, 똑똑한 사람은 살려놨는데 그들이 나중에 다니엘 이런 사람이고요, 다 후대들을 죽였어요. 왜 그러냐? 그들을 살려놓으면 나중에 화근이 되어지니까. 그렇습니다, 사탄의 전략이에요. 시대 시대마다 후대를 멸살시키는, 몰살시키는 사탄의 전략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하면서도 자식들을 많이 낳았어요, 출애굽기 1장에 보면. 그래서 애굽의 왕인 바로 왕이 걱정이 딱 되는 거에요. 혹시나 이 백성들이 이렇게 많아지면 나중에 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를 대적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머리를 썼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이들을 남자 아이들을 다 죽여야 되겠다. 그래서 히브리 산파들을 불렀습니다. 불러서 명령을 내렸죠, 히브리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거기에 아이를 받아내면서 남자 아이거든 그 자리에서 다 죽여라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입힘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번성케 되었다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탄의 전략은 후대들을 멸망시키는 겁니다, 후대들을 몰살시키는 겁니다. 역사 속에 보세요, 교회사 속에 보세요. 결국은 과부처럼 되어지고, 고난 당하게 되어지면서 예배가 중단 되어지면서 후대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어떤 면에서 그게 예루살렘 멸망의 시대뿐이겠습니까? 우리의 현장을 보세요. 후대들 사탄한테 다 빼앗겨 버렸어요 지금. 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 16절에도 나오죠, 16절에 보세요.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린다 했어요. 여러분 진짜 참혹한 현장을 보고, 예레미야는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의 현장을 보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의 눈물을 가지길 원하세요. 다른 것 때문에 울지 마시고요 여러분, 진짜 현장에 복음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당하고 있고, 과부처럼 되어버리고, 후대들이 멸망하는 그 현장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이 마음에 담고, 복음에 대한 눈물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에 대한 눈물이 있는 그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한 시대에 복음을 회복시켜 나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복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 그 눈물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돼요. 내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할 것이 아니라 진짜 현장에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과부처럼 고난 당하고 있고, 후대들이 멸망 받고, 예배를 잃어버리고 있는 이러한 실정에 있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내가 정말로 복음의 눈물들이 내게 있는가? 오늘 점검해 보는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예레미야는 복음의 한이 있었어요. 다시 말하면 언약에 대한 한, 말씀에 대한 한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2:6절에 한번 보세요. 2:6절에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절기를 지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세 가지 절기는 꼭 지켜야 합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오순절과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고, 추수해서 거두게 하는 수장절, 이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은 꼭 지키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세 가지 절기에요. 그리고 심지어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철저했습니다.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죽이는 자리까지 내보냈어요.
 무슨 말입니까? 절기와 안식일이 유대인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인데 그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결국 절기와 안식일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말은 주일이 없어졌다는 말이고, 다시 말해서 말씀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말씀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이 없으면 방자히 행합니다. 그래서 잠언26:19절에 말씀하겠죠. “백성이 묵시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방자히 행한다.”, 여기에 묵시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말하고 있는데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무례하고, 건방지게 행한다는 말, 그게 방자히 행한다는 말이에요. 무례하고 건방지게 행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망한다 라는 것, 뭐가 없으면? 묵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가 없으면 결국 무례하게 되고, 방자하게 되고, 결국 망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멸망 당하느냐? 왜 내 백성이 멸망 당하느냐? 호세야 4:6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세상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영적인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말씀하면서 내가 지식을 버렸으니 말하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렸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놓치면 안 돼요. 그런데 이 예루살렘은 바로 말씀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놓쳐버린 현장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가 했던 것은 바로 말씀의 한, 언약의 한을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어요.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언약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시고,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여러분을 이끌어가시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모서3:7절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먼저 주의 종들에게 알리시고, 모든 일들을 행해가신다 말씀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놓쳐버렸다? 이 말씀을 잃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불신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여러분 불신자처럼 세상에 같이 경쟁하고 살아간다? 결국은 불신자들의 종 노릇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얼마나 열심 냅니까? 얼마나 똑똑합니까? 어떤 면에서 불신자들 가운데 많은 재물 가진 사람도 많고요, 훌륭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불신자들과 같이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내가 영적인 비밀이 없다면은 내가 불신자들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어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걸음들을 인도하시는데 시편119:105절에 말씀은 우리에게 이정표로, 시간표로, 길로 주신 부분들을 말하고 있는데 시편119:10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뭐요?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뭐가요?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다, 내 발 앞에 등이에요. 내 가는 길에 뭐요? 빛이다. 정말로 내 발에 등으로, 내 길에 빛 되신 말씀을 내가 제대로 붙잡게 되면은 어떠한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등과 빛이 되신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받기 때문에 확신 가운데 서게 돼요.
 그런데 이 말씀의 인도를 받지 못하니까, 등과 빛이 되신 말씀을 놓쳐버리니까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고, 갈등하게 돼요. 확신 가운데 있어도 이길까 말까 한데 세상 속에 살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등하는데 그러니까 세상과 같이 살아가면서 세상에 종노릇 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 심부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2: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2:9절 우리가 중요하게 붙잡아야 될 내용입니다. 2:9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자, 보세요.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 있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불신자와 똑같이 살아간다는 말이에요. 그럴 수밖에요, 말씀을 놓쳐버리니까. 심지어 그 마지막에 보면은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했어요. 지도자들도 불신자와 똑같이 말씀이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가고, 심지어 선지자들도 말씀을 받지 못하니까, 묵시를 받지 못하니까 불신자와 똑같아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주의 종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중직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언약의 말씀이 교회 안에 힘이 있도록,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주의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주의 종들에게 묵시가 막혔다 라는 것은 저주 중의 저주에요. 특별히 앞세우신 주의 종들을 위해서 말씀이 막히지 않도록 여러분 기도해야 돼요.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이에요 여러분.
 그리고 주의 앞선 지도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되느냐? 정말로 말씀을 놓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백성들, 세상 속에서 많은 성도들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불신자들을 살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지, 똑같이 불신자 사는 세상 속에 같이 살아가서는 안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 말씀을 통해서 주의 백성들이 말씀에 인도받으면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을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우리교회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언약을 놓친, 언약의 말씀을 놓친 그리스도인 입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게 되죠, 말씀을 놓치게 되면 아무런 능력이 없게 됩니다. 그것이 예레미야는 그 현장을 바라보면서 한이 된 거에요. 지도자들도 불신자와 똑같이 살아가지, 종이라고 선지자들이라고 하는 주의 종들이 말씀이 막혀 있지, 그러니까 똑같이 교회 안에 모든 부분들이 불신자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부분을 보면서 그게 결국은 예레미아 선지자에게 한이 되어버린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 이스라엘은 나라 크기가 크지 않아요. 여러분 잘 아시듯이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가 이스라엘의 크기입니다. 그런데 그 자그마한 나라가 언약을 붙잡았을 때 주변의 강대국들을 다 다스렸어요. 그런데 언약을 놓쳐버릴 때 주변의 강대국에게 다 당했어요.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자리가 그러한 자리입니다. 내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언약이 내게 회복된다면 여러분을 통해서 모든 현장들을 다 살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현장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그 현장 속에서 언약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종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진짜 강단을 통해서 올바른 언약이 선포될 수 있도록 주의 종들과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여러분이 다른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마시고, 정말로 강단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 최고의 비밀인 그리스도만 듣고,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이 한 시대를 살려내는 귀한 축복된 회복의 역사 속에 여러분 자신들이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눈물과 복음의 한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가졌던 것이에요.

2. 복음적 고통이 있어야 함(애3:1-5)
 두 번째입니다. 예레미야는 복음에 대한 눈물만 가진 것이 아니라 복음의 고통을, 뼈를 깎는 고통을 가졌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4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죠.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시고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느니라.”,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복음 때문에 뼈를 깎는 고통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그 사람 한 사람 나온다면 그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시대의 재앙을 막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소돔, 고모라가 하나님이 내린 유황불로서 멸망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의인 롯을 건져내죠. 그래서 베드로후서2:7절에 보면은 소돔, 고모라가 멸망 당하기 전에 얼마나 음란으로 타락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거기에 올바른 의인 롯을 건져냈는데 그 롯은 복음을 전하지 못했지만 그 멸망 당하는 소돔, 고모라를 향해서 탄식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베드로후서2: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의인이 롯을 말하죠.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한지라. 의로운 심령이 의인인 롯이 멸망 받게 될 음란과 타락으로 찌들어 있는 소돔, 고모라를 보면서, 멸망할 현장을 바라보면서 의로운 심령을 가졌다고 했어요. 어느 정도로 타락했느냐?
 여러분 잘 아시죠? 소돔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소도마이트(sodomite)’라고 그거는 소돔의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천사 둘이 소돔에 왔어요. 그때에 그 소돔 지역의 사람들이 이 롯 집에 와가지고 그 천사 둘을 내놓으라.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리라. 그들과 상관하겠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말이에요. 그 당시에 그렇게 음란과 타락이 소돔, 고모라에 있었어요. 그들과 상관하리라, 그러니까 롯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 우리 집에 두 딸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에 두 딸을 취하라. 그만큼 모든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영적으로 완전히 음란하고, 타락한 그 땅이었어요. 그런데 그 땅에 대한 상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누구냐? 롯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돔, 고모라는 결국은 유황불로 심판을 받게 되었어요.
 예레미야 때도 사실은 예레미야가 멸망 받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눈물로써 한을 가지고, 뼈를 깎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70년 만에 소돔, 고모라는 멸망 받았지만 70년 만에 예루살렘 성은 도로 회복되는 역사를 가져왔다는 사실이에요. 복음을 놓쳐버린 현장을 바라보면서 눈물과 한을 가지고, 뼈를 깎는 고통 가운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현장을 놓고 기도하는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한 시대에 재앙의 역사들이 끝이 나고, 회복되는 축복의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냥 우리교회만 잘 사는 것이, 우리교회만 잘 뭔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나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닙니다. 한 시대에 재앙을 막을 전도자들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어요. 그렇다면 복음에 대한 눈물과 한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고요. 그와 더불어 정말로 복음 때문에 놓쳐버린 모든 현장의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뼈를 깎는 고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후대를 위해서 금, 토, 일 시대를 열자는 것이 무엇입니까? 후대들을 현장에 다 빼앗겨 버렸어요, 문화에 다 빼앗겨 버렸어요. 후대가 교회에 없으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금, 토, 일 시대를 열어서 어릴 때부터 우리 후대들에게 올바른 복음의 능력을 가르치고, 말씀과 기도의 비밀들을 전달해서 한 시대에 재앙을 막을 후대들로 세워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시대에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에요,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후대들은요, 꼭 기억하세요. 여러분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한 시대에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렘넌트들로 여러분을 준비시키시고, 여러분 부르셨다는 사실, 이걸 딱 잡고 나가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애가3:40-41절,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기에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을 놓고, 나를 샅샅이 살펴보라는 거에요. 말씀을 놓고 내 자신을 샅샅이 돌아보면서 살펴보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복음 속으로 들어가고, 복음을 회복하자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 복음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내게 그게 악세사리 정도로 나에게 있는 복음이냐? 그러면 응답받을 수 없고, 사탄을 이길 수 없어요. 이 복음이 나의 24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라는 겁니다. 나의 삶을 말씀을 놓고, 샅샅이 살펴보면서 내게 복음이 안 된 부분이 무언가를 살펴보면서 완전 복음 속으로 돌아가라, 그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41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했어요.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자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기도가 시작 되어져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손뿐 아니라 마음도 들고, 진짜 기도 속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복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과 손을 들고 기도하게 될 때에 시대의 재앙을 막는 전도자들로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의 응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자녀의 기도
1. 하나님의 소원인 현장에 나의 한과 마음 눈물이 있게 하사 언약을 선포하는 제자로 서게 하소서.
2.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오직 복음만을 회복하는 교회 가정으로 미래의 재앙을 막고 살리는 전도제자의 축복 누리게 하소서.
3.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고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참된 기도를 시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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