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2024-01-28 12: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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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골1:13-23)

  
서론: 당시 골로새 교회는 여러 가지 철학과 사상이 들어와서 복음의 본질을 놓쳐버렸습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으로 골로새 교회를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던진 것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과 행사가 아닌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 하는지 이유를 깨닫고 붙잡는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가. 세상의 방법으로는 영적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 부모가 사랑을 자녀에게 주어도 영적문제, 근본문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 그리스도 아니고는 하나님을 만나고, 죄에서 해방 받고, 사탄의 운명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 복음이 담겨져서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확인하게 하소서.
  나. 복음의 능력과 절대가치가 회복되게 하소서.
   •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창조주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소서(골1:16).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소서(마28:18).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담게 하소서(방주, 골2:2-3).
   • 오직 그리스도 안에 모든 답이 있다는 사실에 결론을 내리게 하소서.
  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게 하소서(골1:20).
   • 바울처럼 십자가 복음만 자랑하게 하소서(갈6:14, 고전1:18).
  라. 보좌를 우리의 배경과 소속으로 누리게 하소서(골1:13, 요일3:8).
  마. 속량, 곧 죄를 사하신 십자가의 능력을 누리게 하소서(골1:14).
   • 우리의 행실이 아닌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닌 기도의 배경이 되게 하소서.
  
  2. 이 복음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가. 모세처럼 믿음에 굳게 서게 하소서(골1:23).
  나. 반석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터가 되게 하소서.
  다. 복음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7·7·7 기도).
  
결론: 우리 현장을 놓고, 내 자신을 놓고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충분하고, 완전하고, 오직 그리스도면 된다.”라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한 간절한 메시지가 담겨져야 합니다. 복음의 유일성을 가지고 이 땅과 현장을 치유하는 증인들로 세워지시길 축원합니다.

 

 

1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골1:13-2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아멘.
골1:13-2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영원한 응답으로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누리십시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2부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 하나교회가 영원한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오늘 설교의 주제에요. 영원한 말씀으로 굳게 서라.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던지는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만일 너희에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다른 말로 하면 영원한 복음의 말씀 위에 굳게 서라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이 영원한 복음의 말씀 위에 굳게 서라고 말했을까요? 이 골로새서는 사실은 에베소에서 바울 팀이 3년 동안 전도사역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때에 회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에바브로 라는 사람이 골로새 교회를 세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골로새 형편은 뭐냐? 골로새 교회 형편은 무엇이냐 하면 교회 안에 복음보다도 유대 교회에서 말하는 의식주의, 또 천사 숭배하는 신비주의, 여러 가지 이런저런 철학의 사상들, 이런 모든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순수한 복음의 본질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바울이 옥중에서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골로새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에 이런 저런 형편들을 듣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말씀을 던지고 있는데, 너희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섰으면 좋겠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면서 결국은 골로새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이론, 유대교에서 강조하는 의식주의, 천사들 숭배하는 신비주의적인 부분들, 그런 모든 것들보다도 교회 안에 지금 자리 잡고 있는 이상한 사상들보다도 그보다 더 우월하고, 더 확실하고, 더 탁월한 것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을 살펴보았지요. 정말 우리가 제1 사명이 있다면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제1 사명이에요. 왜 복음 안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그래야 모든 것들을 복음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모든 현장, 여러 가지 이런저런 사건과 일들을 복음의 눈으로 보면, 지금 당하는 응답도, 어려움들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느냐? 지난주 제목이 ‘복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라.’ 했는데, 먼저 그 복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는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해요. 그게 성도들이 제1 사명으로 붙잡고, 그 속에 있어야 되는 것이고, 우리 모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런저런 많은 행사들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복음을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뭔가 교회에 이런 저런 많은 일들, 그 일에 뭔가 소홀히 여긴다 할지라도, 물론 소홀히 여기라는 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설령 소홀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짜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개인이, 여러분 가정이, 우리 후대가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늘 항상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에요. 내가 정말로 복음 안에 있는가 없는가?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산업이, 우리의 자녀들이 진짜 복음 안에 있는가? 없는가? 이 사실을 날마다 확인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우리에게 되어져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복음 안에 서 있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서 있으면 서 있을수록, 복음의 눈으로 보면 볼수록 오늘 제목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왜 오직 복음이어야 되느냐?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 되는가? 여기에 대한 답들이 복음 안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복음 속에 있는 그 능력의 비밀들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왜 복음이어야 되고, 왜 그리스도여야만 되는가? 거기에 대한 답들을 가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많은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마는, 신앙생활에 정말로 이유 없는, 복음이어야 되는 이유를 깨닫게 될 때에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응답들은 새로운 응답으로 여러분 걸음들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서 여러분 정말로 왜 그리스도여야 하는가?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오늘 바울이 골로새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사상들이 잡다하게 들어와 있는 부분들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면 충분하다, 그리스도는 완전하다, 이 마음으로 복음이어야 된다. 이 사실을 증거 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복음이어야만 되는 이유들을 붙잡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복음이어야 하는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왜 복음이어야 되는가? 여러분 세상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 그 문제에 대한 원인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회 현장에 여러 가지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회운동도 일어나고, 정의운동도 일어나고요, 어떤 면에서 신비운동도 일어나고요, 많은 운동들이 이 땅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원인을 잡은 것이 사회운동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운동 하면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생을 거는 겁니다. 그냥 정의운동 하는 것 아닙니다. 정의운동 하는 사람들 한번 보세요. 거기에 나름대로 생을 걸었어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이 땅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밝히고 있는데, 이 땅에 당하는 모든 문제 근본은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빠졌고, 그 결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의 손에 우리가 붙잡힌 바 되어졌어요. 그래서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찾아오는 결과는 사회문제 이전에, 개인의 문제 이전에, 어떤 정의문제 이전에 영적인 문제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방법으로는 이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 죄의 문제, 사탄의 문제, 영적인 문제이지요. 그것을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의 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주셨는데, 그 답을 알게 될 때에 왜 오직 예수여야 되느냐? 왜 오직 복음이어야 되느냐? 왜 그리스도여야 되느냐? 거기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영적인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에게 찾아온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찾아온 영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 지금 얼마나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들이 발전합니까? 앞으로 여러분 정말 건강관리 잘 하세요. 조금만 잘하면 120세, 130세까지 산다고 해요. 그냥 말이 아니고, 그만큼 의학이 발전하고 있어요. 물론 120세, 130세 산다? 그것도 또한 문제겠지요. 그런데 어떻든 생명은 연장되게 되어있어요. 그만큼 의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어떤 면에서 첨단과학이 발전해 가지고 앞으로 우주시대가 열려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주시대가 열려지고,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의술이 발전한다 할지라도 인간이 어느 날 당하고 있는 재앙과 저주와 고통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문제는 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라는 것, 육신의 문제도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사회문제도 아닙니다. 사회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회를 뜯어고쳐야 된다. 그래서 사회운동을 하잖아요. 정의운동을 하잖아요. 진짜 알고 보면 사회운동도 아니에요. 정의운동도 아니에요. 근본을 잘못 보는 거에요. 근본은 뭐냐?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답인 그리스도가 필요한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문제 해결하는 유일한 답으로 그리스도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근본 문제 해결의 답은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여러분 강단을 통해서 자기 기분을 좋게 하는, 충족시키는 메시지를 원하겠죠, 좋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나름대로 사람들마다 뭔가 희망을 잃어버렸으니까, 갈수록 너무나 어려워지니까 뭔가 소망을 주고, 힘이 되는 그런 메시지가 선포 되어지면 좋겠다, 좋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원치 않게 어려움 당하니까 뭔가 위로의 메시지를 받고 싶죠. 위로의 메시지, 그래서 힘내라, 참아라, 인내하라, 좋습니다, 뭔가 소망의 메시지 좋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 좋습니다. 나름대로 그것은 근본 문제를 몰라가지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기도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은 그 요구 따라 교회가 나간다면 나중에 교회는 문 닫게 돼요. 그 요구 따라, 성도들의 요구 따라 메시지가 거기에 맞춰서 나간다면은 결국은 그 순간은 위로받을 수 있었고, 뭔가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은, 근본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교회는 가면 갈수록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곳이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는 어떤 곳이냐? 사람의 필요가 무언가를 알고, 그 필요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필요는 무엇입니까? 사실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있고, 사람들의 필요를 모르고, 필요를 모르니까 요구하는 것만 요구해요. 그런데 진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이 해결되는 것이 필요한 거에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에 빠진 자죠. 그 현장을 놓고 베드로가 사도행전3:4절에 보면은 자세히 주목하여 봤다 했어요. 단순히 그냥 앉은뱅이다? 그 사실이 아닙니다. 자세히 주목하여 봤다 했습니다. 거기에 자세히 주목하여 봤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 사람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를 봤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나온 답이 사도행전3:6절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안다면은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되는가? 왜 오직 복음이어야만 되는가? 거기에 대한 답들이 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복음이 담겨지지 아니하면은 우리를 지금도 무너뜨리는 흑암의 역사들, 저주와 재앙으로 몰고 가는 악한 사단의 역사들이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우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담겨져야 우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부모 된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사랑하죠.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잖아요? 그래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서 뭔가 해주려고 합니다. 뭔가 많은 것들을 물려주려고 하고요,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 자녀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려고 하죠. 그러나 아무리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녀에게 있는 영적문제와 자녀에게 있는 근본 문제, 자녀에게 있는 여러 가지 고난의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녀들이 당하는 영적문제, 고난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말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무엇을 담도록 해야 되느냐?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가 담겨지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그게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금, 토, 일 시대를 열자고 합니다. 세 가지 뜰을 놓고 교회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이 땅의 근본을 알기 때문에, 근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재앙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오직 복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답을 내게 해서 정말로 이 한 시대에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렘넌트들로 세워나가자는 거에요. 그게 바로 금, 토, 일 시대를 열자는 것이고요. 그게 바로 세 가지 뜰에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내가 당한 재앙의 문제를 전달하지 않도록, 우리가 이제까지 모르고 실패했다면 이제는 우리 후대들에게 그 유산들을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거기에 심부름하면서, 발판되어지면서 우리 자녀 한 아이, 한 아이를 오직 그리스도로 각인, 뿌리, 체질 되어지도록 하자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은 그것만큼 귀중한 일이 있을 수 없잖아요? 진짜 인간이 당하는 근본 문제를 안다면은 그것만큼 귀중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아니고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어요. 그리스도 아니고는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그리스도 아니고는 사단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알게 될 때 그 속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그리스도가 없어도 된다면 영세 전부터 계획하신 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굳이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면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면은 여러분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사실 필요 없는 것이죠. 인간의 근본 문제 이 사실이 없다면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면은 굳이 교회에 나올 이유도 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근본 문제 해결이라는 답을 교회가 붙잡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지, 좋은 교훈들을 말하고, 사람들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해주고, 뭔가 힘 되는 위로의 말들을 하고, 그럴 이유라면은 교회는 사실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 찾아가 보세요. 얼마나 많은 좋은 말들, 좋은 교훈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거북스럽게 교회에 나올 이유도 없는 겁니다.
 우리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왜 그리스도여야만 되느냐? 인간의 근본 문제 때문에. 절대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저주와 재앙과 고통의 문제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유일성을 붙잡고,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느 덧 교회도 너무나 많은 골로새 교회처럼, 그래서 바울이 감옥 안에 있으면서 교회 안에 이런저런 많은 소리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발 복음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복음이면 된다, 복음으로 충분하다, 복음이면 완전하다. 이 간절한 마음으로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믿음 위에 서기를 바란다고 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가 그런 시대에요. 교회들이 복음을 다 놓쳐버리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사람들의 요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근본을 알고, 거기에 답을 주는 교회로 우리교회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오직 예수만 붙잡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직 예수만 붙잡고 그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려갈 때 어떤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 축복을 누려야 되느냐?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옵니다. 복음의 능력과 절대 가치가 어떤 것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먼저 16절에 보세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주고 싶었던 메시지입니다. 복음이 능력이다, 복음이 가치 있는 것이다. 오늘 16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붙잡아야 되느냐?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라는 것. 단순히 종교에서 말하는 예수가 어떤 선지자다? 아니에요. 뭔가 앞서서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선각자다? 아니에요. 종교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다? 아니에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창조주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 그 부분 아닙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했어요. 그리스도는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창세기1:26절에 이미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실 때에, 그 이전에 또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이전에 성삼위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실 것을 계획하셨어요.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누구냐 라는 거에요. 단순히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 뭔가 일깨워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뭔가 좋은 교훈을 주고, 그런 선지자나 그는 종교적인 선각자가 아니라는 것, 오직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6절 그다음에 보세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했습니다. 여기에 잘 보세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왕권들,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았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는 창조주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마태복음28:18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활 메시지를 던진 메시지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했습니다. 여기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가졌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16절에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나 만물 다 그로 말미암아”, 다시 말하면 쉽게 말하면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 그걸 내가 가졌다 라는 것.
 여러분이 믿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모든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지금 듣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지금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그리스도를 담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내가 말하고 내가 듣는 그리스도는 하늘의,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어마어마한 복음의 축복이 우리 안에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하기 때문에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이 권세를 사용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에요. 하늘의 권세, 땅의 권세, 모든 권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권세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복음의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복음 안에 참된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비밀로 주셨어요. 그래서 육신적으로 알 수 없어요. 육의 눈을 가지고 깨닫지 못해요. 비밀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 입은 사람만이 아는 것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비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아담에게 바로 이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겠다. 그리고 그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어떻게 해요? 상하게 할 것이다. 권세를 가지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뭘까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고,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된 권세들을 사용하고 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를 사용하고, 누려야 되느냐?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 사망에 빠졌어요. 그래서 시간 가면 갈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 삶 자체가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 지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후대조차도 망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답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여자의 후손이에요. 하나님이 비밀로 주신 답이에요. 그래서 어느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은혜 입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고, 정말로 비밀을 가진 사람은 그 비밀을 아는 만큼 또 누리게 되어 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아담에게 결국 하나님이 비밀로 주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여자의 후손이라는 사실. 이 그리스도만이 사탄과 운명과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어려움 없도록, 아쉬울 것이 없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게 노아 시대에요. 하나님을 굳이 믿지 않고서도 아쉬울 것이 없었어요. 그게 노아 시대인데 그 노아 시대, 그래서 결국은 육신이 되어버려서 하나님께서 그 노아 시대를 홍수로 심판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때 하나님은 노아와 모든 인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는 길이 있다 라는 것, 다시 말하면은 비밀을 말씀하셨는데, 사는 유일한 길을 말씀하셨는데 그게 바로 방주 속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무리 모자라고 연약해도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비밀이에요. 방주만이 살길인 것을 우리에게 노아 시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방주는 오직 그리스도를 말하죠. 이 시대에 살길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단순히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종교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진짜 복음을 놓치지 말라는 거에요. 왜냐? 복음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창세기3:15절 그 답을 주셨던 것처럼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복음을 놓치지 말라. 왜냐? 그 복음이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골로새서2:2절에 하나님의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라 말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골로새서2:3절에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이 사실을 여러분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 담지 않고, 오직 다른 것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여러분 마음에 담게 될 때에 다른 것 다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주시리라.” 말씀하셨죠. 그리스도 그 이름을 구하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게 될 때 거기에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걸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2:2절에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그 안에는 모든 지혜도, 지식도, 모든 보화도 감추어져 있다 했어요.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라면은 한 가지 물어보십시다. 여러분 사탄의 비밀도 있겠죠. 사탄의 비밀이 뭘까요? 다 주면서도 한 가지, 그리스도 놓치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에요.
 여러분 욥을 한번 보십시다. 먼저는 욥의 역사들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범위 내에서 악한 사탄이 욥을 공격해 왔는데 먼저 물질을 쳐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날려 버렸어요. 그리고 자녀들을 건드렸죠, 자녀들을 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자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왔어요, 건강을 쳐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욥을 바라보면서 비웃었습니다, 인간관계도 다 망가뜨렸어요. 그러면서 욥에게 악한 사탄이 그래도 너 하나님 믿을래? 사탄의 숨은 전략입니다. 모든 것 다 무너뜨리고, 그래도 너 하나님 믿겠냐? 이게 사탄의 숨은 전략이에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욥은 거기에 속지 않았어요.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다 라고 욥기1: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그 입으로 범죄치 않고 원망치 않았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1절에 보면 오히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 나도 내가 태어나게 한 것도 하나님이시고, 결국 죽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이 바로 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런 부분들 앞에서 절대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아닙니다. ‘그냥 언젠가는 괜찮겠지. 참아야지.’, 그렇게 욥이 그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니었어요. 성경에 보면은 결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욥이 믿었습니다. 욥기19:26절에 보면은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언젠가는 참고, 이겨내서 여러분 이 부분들을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욥이 그 어려움을 이긴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리스도를 믿고, 욥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육체 밖에서 부활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라는 이 확신에 대한 부분들이 욥이 가지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복음 안에 모든 답이 있음을 알고, 여기에 우리가 결론 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겁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 감옥 안에 있다.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말한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해서 위로하고, 힘내라고 해야 되는데,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는 그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그러나 바울은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 바라보면서 뭔가 말하고 싶은 불붙는 마음들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창조주시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여러분 창조주이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 이미 이 바울은 인간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고, 교회 안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말이에요. 진짜 인생에게 찾아온 문제를 안다면은 복음이면 된다 라는 것, 그걸 바울이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 겁니다. 너희가 복음을 시시하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복음이면 된다 라는 것, 복음은 충분하다는 것, 복음은 완전하다는 것, 복음은 모자람이 없다 라는 것, 그 사실을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성도들을 향해서 전하고 싶어서 마음에 간절함입니다. 왜 복음이면 된다 라는 것이냐? 창조주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충분하다는 것, 완전하다는 사실들을, 이 말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바울의 마음에 불붙었다는 사실. 여러분 우리의 현장을 제대로 알면서 현장을 보면서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정말로 오직 복음이면 된다 라는 여기에 대한 답들이 내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복음이면 됩니까? 20절에 또한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인데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그 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화평을 이루었다 했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그 복음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하는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이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이 당시에 저주의 상징입니다. 사형 형틀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사형 형틀이 뭐냐? 그게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볼 때 저것은 저주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조차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 앞에서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초대교회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거든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거기에 열받은 겁니다. 아니 저주받은 자를, 그렇잖아요? 저주받은 자를 부활하셔서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니까 바울이 여기에 열받고,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치는 그 자리에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바울이었어요. 동일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죠, 저주받은 자가 그리스도라 하니까. 그리고 심지어 구체적으로 정부의 정식적인 허가를 맡았습니다. 살인 면허를 받아가지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 도상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이 사울을 부르신 겁니다. 그때 바울이 주여 뉘시니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했어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바울이 만나게 되죠.
 그때 이후로 바울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십자가는 저주받은 것으로 알았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 대속함을 받은 이 축복된 역사가 십자가구나. 그래서 나는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만을 말해야 되겠다, 십자가 외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야 되겠다, 갈라디아서6: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나는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알지 못하고 있었을 때는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저주받은 사람이 못 박힌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나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 그리스도가 죽은 것이고,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인생의 문제가 끝났음을 알게 될 때에 ‘나는 십자가만 자랑하겠습니다.’, 그 고백이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18절에 말씀하고 있죠.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리스도,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어지는 귀중한 축복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겁니다. 이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음의 능력이에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성경에 보시면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 13절에 한번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 그의 사랑의 나라로,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우리의 배경과 우리의 소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게 붙잡힌 바 되어서 거기에 종노릇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악한 사탄의 역사들이 여러분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아예 거기에서 건져내셨다 라는 것. 요한일서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했어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냈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여러분 사랑의 아들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게 우리의 배경이에요, 보좌가 우리의 배경이에요. 사랑의 아들의 나라, 우리의 소속은 뭐냐? 지난 날은 모르고 흑암의 권세에 빠져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보좌가 나의 배경이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보좌의 능력을 누리면서 보좌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거기에 하늘 군대가 동원 되어지는 엄청난 축복된 배경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소속이에요. 비록 우리의 발은 땅에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은,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서 하늘 보좌를 배경으로 해서 하늘 천군,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응답과 237 나라를 살리는 빛으로 우리에게 지금도 함께하시는 그 축복의 보좌의 배경 가지고 우리는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14절에 보면은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다.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다 했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끝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오늘 22절에 보면은 단순히 그냥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사함 받게 하는 속량을 베풀어 준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힌 내용이 나옵니다. 22절 한번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할렐루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단순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더 기가 막힌 상황은 우리를 거룩한 자로, 흠 없는 자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 때문에 세운다 라는 것. 여러분 거룩합니까? 우리의 생각들이 얼마나 틀린 생각들이 많습니까? 우리의 행위들, 여러분 솔직히 죄송합니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마는 우리 행위들을 다 사람들이 알도록 까발린다면 아무도 사람 보고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저조차도 그래요, 저를 보고 제 자신의 내면의 문제들과 또 살아가는 삶의 문제들을 다 여러분 앞에 공개한다면 아무도 나를 보고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거룩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흠 없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그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능력인가를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십자가, 십자가 이야기를 합니다마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말을 하지만은 실제로 그 능력을 모르고 살아가요. 죄사함 받을 정도가 아니라 거룩한 자로, 흠 없는 자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된 복음 안에 있는 능력, 이 복음 안에 있는 가치를 깨닫고, 누리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고,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고,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거룩한 자라 하셨어요. 그렇다면은 여러분 같이 예배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는 옆에 성도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러한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 오늘부터 아마 준비하면서 예배 들어갈 때에, 찬송할 때에 전 스크린에 가사만 띄워 올렸잖아요? 예배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로 예배 시간만큼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찬송할 때 이곳저곳을 많이 비췄는데 물론 요즘 미디어가 많이 발전해가지고 그런 부분에 대한 뭔가 예배하는 같이 참여하면서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예배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겠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비치다 보니까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람 나오면 기분 나빠요.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해요. 왜 영상을 돌려 비춰가지고 자기가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는데 그게 딱 나오면 그날 은혜를 못 받아요.
 여러분 정말로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요, 흠 없는 자요, 책망받을 것이 없는 자라면은 옆에 있는 여러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여러분 눈에 보기에 좀 이해 안 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흠 없는 자요,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입니다. 내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사람을 어떻게 보시느냐? 그 사실을 가지고 사람을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보게 되면은 정말로 이분이 어떻게 이 복음을 받아서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감사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도 있지만은, 어떻게 이분이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알아서 이 자리에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이 자리에 있는가? 그 사실을 보면서 위해서 배경 되어서 기도해 주게 되어 있어요. 사람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고요. 혹이나 여러분에게 눈앞에 그런 것들이 보인다면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배경 되어서 기도해 주라고 이 사람을 내게 붙이셨고, 이 문제를 내가 보게 하셨구나!’ 깨닫기를 바랍니다.
 판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정죄할 분은 하나님이세요. 어떤 면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인간에게 판단 기준이 생겼는데 아니에요,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국은 엄청난 축복된 역사로 인도해 나가시는데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치 못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흠 없다 하시는데 내가 거기에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진짜 지난 수요일날 우리 김 목사님이 말씀했습니다. 교회에 이런저런 문제가 보이거든 ‘아,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문제를 보게 하셨을까?’, 기도하라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들을 보면은 왜 하나님이 이런저런 모습들을 내게 보게 하셨을까? 그걸 놓고 말 많이 하고, 비판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아, 기도하라고’, 그래서 정말로 기도의 배경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자 있다면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온 것만 해도 감사한 것인데 하나님이 이 형제를 붙들어주셔서 진짜 복음 안에서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쓰임 받는 제자들로 세워질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해 주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은 진짜 그리스도여야만 되는 이유를 알고, 그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복음의 절대적인 능력과 가치들을 깨닫고, 누리는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 복음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그러면 어떻게 이 복음을 누릴 것인가? 오늘 23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어떻게 이 복음을 누릴 것인가? 이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내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믿음에 서라 했어요. 믿음에 서라. 출애굽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에 서지 못했어요.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함께,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붙잡고 광야 길을 걸어가면 되었는데, 출애굽은 했습니다마는 당장 앞에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이 오니까 그 문제들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실제로 출애굽 한 이후에 홍해를 만났고, 요단을 만났고, 또 여리고가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들을 보세요,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애굽에 잘 있는 우리를 이끌어 내어서 여기에서 죽게 하느냐?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계획들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주신 축복도 놓쳐버렸고, 애굽에서 빠져나왔다는 건 모든 문제 해결 되었다는 말이거든요? 그 축복도 놓쳐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으로 섰던 한 사람이 있어요,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말씀하고 있죠.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서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애굽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믿음을 고백한 한 사람 모세, 그가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오늘 이 시대에 믿음이 없는 시대에 여러분만큼이라도 믿음에 굳게 서길 바랍니다. 하신 일과 함께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믿음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뭡니까? 터 위에 굳게 서라. 나름대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요, 종교 위에 굳게 서 있는 사람도 있고요. 돈이 다가 되어 가지고 돈 위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이 있고, 건강이 다라고 해가지고 건강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터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그런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돈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나중에 돈 때문에 무너져요. 건강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나중에 건강 때문에 무너져요. 우리의 터는, 영원한 터는 반석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신앙의 터를 어디에 두느냐? 그리스도 앞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세 번째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여러분 믿음의 역사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께 터를 두고, 우리가 받은 복음의 역사를 가지고, 흔들리지 아니하면. 흔들려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지 못해요 흔들려서. 그래서 정말로 흔들리지 말고, 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뭘 하느냐? 우리에게 주신 응답들을 가지고 이제 뭘 합니까? 기도하면 돼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미 복음의 완전한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 9-10절입니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 그러면서 구한다 말씀했고요. 그러면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절에 보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왜 흔들리느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지 못하니까. 왜 흔들리느냐? 9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느냐? 복음 가지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7, 7, 7 기도입니다. 복음 가지고 기도하는 것, 기도하면 할수록 그 속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돼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왜 복음이어야 되느냐?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장을 놓고, 아니 나 자신을 놓고도 오직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잖아요? 그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된다 라는 그 부분에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면은 여러분 어느 날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실패와 저주와 재앙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저주와 재앙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되는 이유. 그리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면 충분하구나! 그리스도면 완전하구나! 그리스도면 된다 라는 바울이 감옥 안에 있어서 감옥 밖에 있는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간절하게 전하고 싶었던 그 메시지가 여러분 마음에 담겨짐으로 참된 복음의 유일성이 여러분 통해서 드러나고, 이 땅과 이 현장들을 치유하는 증인들로 세워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복음의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는 전도제자의 기도
1. 현장의 필요를 보고 오직 그리스도여야 하는 이유를 붙잡는 자 되게 하옵소서.
2. 복음의 소망으로 흔들리지 말며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3.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인 후대, 치유, 237 선교의 기업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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