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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에벤에셀을 확인하고 누리는 미스바 운동
(삼상7:3-14)
서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걸림돌, 현재 가로막는 벽, 미래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나의 시선은 오직 말씀과 하나님께 향해야 합니다. 오늘 미스바 운동으로 사사시대는 완전히 끝나게 된 것입니다.
1. 우상을 제하라
가. 우상에서 떠나게 하소서.
• 세상 풍조를 따르고 쫓아가는 우상을 제하게 하소서(출20:4-5, 엡2:2-3, 골3:5-6).
• 내가 하려는 우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나.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고 있는 우상을 점검하게 하소서.
2. 여호와만 섬기라
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게 하소서(롬3:10, 롬3:23).
•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게 하소서(창1:27, 요1:12, 행4:12).
나. 오직 그리스도가 중심되게 하소서(히10:19-20, 갈2:20).
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소서.
• 말씀이 영혼, 생각, 마음에 각인, 뿌리, 체질 되게 하소서.
라. 말씀을 묵상하다가 믿고 확신하게 하소서(사55:9, 고후1:20).
•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 인생이 변화되게 하소서(출애굽기 14장, 행27:24-25).
• 말씀을 따라가다가 말씀성취를 보게 하소서.
3. 미스바로 모이라(미스바 원어 뜻 : 망대)
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망대를 세우게 하소서(잠18:10).
나. 언약 붙잡고 기도하게 하소서(렘29:11-13).
다.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를 회복하게 하소서.
결론: 에벤에셀, 여기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삼상3:10).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삼상3:13-14). 다윗을 세우셔서 왕정시대를 여시고 성전을 건축하셨습니다. 미스바 운동을 통해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모든 여정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이 완벽하게 준비하신 여정을 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눈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고, 언약 붙잡고 기도하며 예배하며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6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에벤에셀을 확인하고 누리는 미스바 운동”
(삼상7:3-14)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아멘.
삼상7:3-14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서로 쳐다보시면서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누리십시다.’,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담임목사님 사역을 위해서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가셨지만 우리 교회의 응답이고, 우리의 응답입니다. 미주 복음화, 미국대학, 그리고 캐나다 렘넌트들이 일어나는 것은 본부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인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또한 온전히 마음을 합하여서 정말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을 함께 누리는 복된 한 주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가지고 ‘에벤에셀을 확인하고 누리는 미스바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단어가 있지요.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운명이라 여겨질 만큼 내 발목을 조으고, 나에게 족쇄가 되어지는 그러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내가 넘어설 수 없는 한계와, 또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그러한 문제들, 원치 않게 반복 되어지는 실수와 실패들이 나에게 걸림돌이 되어지고, 그게 내 운명이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이, 내 잘못도 아닌데 가문에서 내려오는 그러한 육신적인, 또 영적인 대물림들이, 또 나를 괴롭히고, 나를 힘들게 할 수 있지요. 다 과거입니다. 지나간 것이 우리의 발목을 조아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오늘 내가 무너진다 라는 겁니다. 오늘 내가 좌절하고, 오늘 내가 낙심하고, 오늘 내가 주저앉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미래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내가 과연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지금 내 이 수준으로, 이 모습으로 과연 가능할까, 그러한 생각들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고 나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 되는 나를 쳐다볼 것이 아니라, 모든 주관자가 되시고,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이 맞추어져야 되는 것이지요.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답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지금까지 안 되었던 나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것은 저 뒤에 치워놓고, 오늘 우리의 모든 시선은 오직 말씀과 하나님께 향하는 가운데 진짜 하나님이 지금까지 내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지는 않았을 거에요.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는 그러한 응답의 시간 되어 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의 책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주셨어요.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먼저 말씀으로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답을 말씀 속에서 찾아야 됩니다. 오늘 이 본문 속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과거의 나의 걸림돌, 현재 내 앞에 가로막고 있는 벽들, 그리고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완전히 해결 되어지고, 치유 되어지는 그러한 복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떻게 보면 똑같습니다. 이들이 여기에 모이기까지는 400년 동안에 14번이나 반복 되어졌던 그러한 실패 속에서 이들이 나아온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14번 안 계속 반복되어 졌지요.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서 구원하시면 그 순간은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조금 지나면 하나님을 떠나고, 배교하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들을 채찍으로 또 막대기로 깨닫게 하셔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게 열방의 나라들이었지요.
그러면 이들이 도저히 우리가 할 수가 없구나, 우리가 이 저주와 재앙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오늘 8절에 보면 부르짖으면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또 구원자를 보내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13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오늘 구원받는다 해도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또 이 재앙이 오지 않을까? 15번째, 16번째, 17번째 계속 오지 않을까 그러한 두려움이 이들 마음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사시대는 오늘 사무엘상 7장 이 미스바 운동을 통해서 사사시대는 완전히 종식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늘 블레셋한테 지는 겁니다. 20년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엘리 제사장 때에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는데 이 전쟁에서 진 겁니다. 그래서 4천 명이나 죽었어요. 그래서 장로들이 돌아와서는 우리가 자꾸 전쟁에 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의 성막에 있던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과 전쟁하러 나선 거지요.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또 지지요. 그 전쟁으로 인해서 3만 명이나 죽게 되어집니다. 그 장소가 어디이냐? 미스바 옆 에벤에셀, 에벤에셀과 미스바 그 사이입니다. 그 장소에 이들이 모인 거에요.
그런데 그 장소에서 또 들려옵니다. 누가 쳐들어온다고요? 블레셋이 쳐들어 온다는 거에요. 20년 전의 그 상처가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옵니다. 무섭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냐? 그런데 사무엘은 전쟁 준비는 하지 않고 예배, 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 그런데 그 모든 상처도 오늘 이 사건으로 완전히 끝나게 되어 집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반복 되어진 실패와 또 실수, 그로 인해 오늘의 내가 낙심한 그런 마음속에, 또 오늘 부딪히는, 넘어설 수 없는 그러한 절대 불가능의 문제들, 그것 때문에 희망 없고, 소망 없이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완전히 자유롭고 진짜 참된, 해결 되어지고, 치유 되어지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상을 제하라
첫 번째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우상을 제하는 것이지요. 우상은 어떻게 시작되어 졌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그 마음을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리가 비어버린 것이지요. 그 텅 비어진 하나님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부림치면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한계 가진 내게는 의지할 대상이 되어지고, 늘 모자라고 부족한 결핍의 상태에 있는 내게는 뭔가 채울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가 하나님을 앉혀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을 앉히고, 그 하나님의 자리에 동물을 앉히고, 그 하나님의 자리에 일월성신, 해와 달과 별, 자연 만물을 그 자리에 앉혀 놓고, 또 나의 신념과 나의 철학을 그 자리에 앉혀 놓고, 그게 하나님인 양, 거기에서 위로받고, 거기에서 힘을 얻고, 거기에서 답을 얻고, 거기에서 평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창세기 3장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진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우상이 문화화가 되어진 것입니다. 모든 문화는 우상숭배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우리 한국의 음악이 무엇입니까? 국악이지요. 국악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무당의 굿에서 왔습니다. 한국의 전통 무용, 다 무당의 굿, 춤사위입니다. 다 어디에서 오느냐? 이 우상에서 온 겁니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어져서 나도 모르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화가 뭐냐? 우상숭배 할 수밖에 없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의식하지 못하면 그냥 살아가는데, 그냥 잘 사는데 나도 모르게 우상숭배 속에 빠져들고 그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출애굽기20:4-5절에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삼사 대까지 이르게 되어지는 겁니다. 나로부터, 내 자녀로부터 또 삼사 대, 이게 끊어 놓지 않으면 또 저 후대로부터 또 삼사 대 계속 되어지는 것이죠.
에베소서2:2-3절에 이 우상숭배하는 자에게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이 우상숭배 하는 자들의 인생은 어떠하냐? 3절에 늘 생각하는 게 그 마음에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여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진노를 머리 위에 얹고 살아가는 겁니다. 골로새서3:5-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 탐심으로부터 시작 되어진 우상숭배가 어떤 결과를 낳냐?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우리가 우상숭배하면 이러한 진노가 임해요.
그런데 우리는 착각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데, 나는 이제 우상숭배 안 하는데, 나는 여기서 벗어났는데? 다 착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이스라엘 민족들이 여기서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라 한 이 말씀이 이들이 여호와를 제쳐두고, 여호와를 진짜 다 버리고, 떠나고, 우상만 섬긴 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들의 삶은 늘 제사 속에 있었습니다. 성막에 가서 제사를 지냈어요. 상번제를 드리면서 아침저녁으로 늘 번제를 드렸습니다. 1년에 한 번은 대속죄일로 온 백성들이 속죄함 받는 그러한 제사를 드렸고, 1년에 세 번의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에는 성막에 모여서 함께 제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 행위를 안 한 게 아니에요. 그걸 그대로 하면서 이들은 그 마음에 자기의 약한 부분, 하나님으로부터 답이 나지 않는 부분, 그 부분에 우상을 두고 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상에서 자유로우십니까? 나는 우상숭배하지 않는다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마음에 두 마음이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섬기지만 여전히 세상을 따르고, 세상 것을 쫓아가는 내 속에 나의 우상이 있습니다. 그걸 제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시키는 것만 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보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만드는 이러한 일에, 건축에 고용되어 가지고, 이들이 그것을 고역하면서 벽돌을 만들고, 이게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광야 4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주는 것만 먹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들이 어디에 왔습니까? 가나안 땅에 왔어요. 이제 정착해서 살아야 됩니다. 가나안에 와보니까 모든 먹는 것은 농사를 지어야 되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요. 그런데 이들이 농사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배워야 되겠습니까? 가나안 사람한테 배워야겠죠. 가나안 농경법은 과학적이고, 그런 농경법이 아니었다 라는 거에요.
그들의 농경법은 다 씨 뿌려놓고는 맨날 제사 지내는 것,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풍요의 신들에게 제사 지내며 이 뿌린 씨앗을 번성케 하고, 풍요롭게 해가지고 우리가 먹을 것이 많게 풍년을 이룰 수 있도록 맨날 제사를 지내는 겁니다. 이들이 와서 농사를 배우는데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바라보기보다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것을 듣고, 그걸 따라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그게 이들 삶 속에 들어와서 당연한 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당연한 게 되어 있는 거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배웠던 모든 것들, 세상이 가르치는 지혜와 지식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전제로 해서 가르치는 학문이 있습니까? 여러분 배우는 학문 중에 하나님이 절대주권자로 계신다는 이 말과 함께 배운 학문이 있으십니까? 심지어 요즘에는 신학교에서도 그 이야기를 잘 안 해요. 그렇게 배워서 지금까지 여러분들 살아온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속에 뭐가 있냐? 신앙,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찬양하고, 이때는 하나님이 생각나는데 내 평상시의 삶 속에서 하는 설거지하고, 밥하고, 직장 가서 일하고, 여기에는 하나님이 없는 거에요. 당연하죠, 내가 해야 되는 게 맞죠. 그런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인정 되어야 돼요, 그 속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어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서 내가 하려고 하는 그게 우상인 겁니다. 내 안에 두 마음이 있다니까요?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과, 또 내가 알아서 하려는 것들, 내가 알아서 하려는 게 과연 내가 알아서 하는 겁니까? 세상의 지혜와 지식과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그 어떤 틀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무의식중에 자리 잡혀 있는 그 우상의 틀들이 아닙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거에요, 거기서 나오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그 어떤 방법들을 따라가고 있다 라는 거에요. 다 내 기준이 되어 있는 겁니다. 왜? 창세기 3장 사건 그때부터 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오늘 앞서 보신 것처럼 우상숭배는 뭐라고요? 탐심입니다. 탐심이 뭡니까? 내 마음과 내 육체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게 탐심이에요, 그게 우상숭배입니다, 거기서 시작 되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에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판단하는 기준이 있죠. 그게 내 안의 우상이에요. ‘아,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렇구나, 이렇구나, 저 사람은 저런 죄를 지었구나, 저 사람 못 쓰겠네.’, 그게 내 안에 나의 기준으로 잡혀 있다면 그게 내 우상이 되어 있어요.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어요. 내 신념이 우상 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라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라? 이게 그들이 그것만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겸하여 섬기고 있다는 겁니다. 겸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고 있는 내 안에 나의 우상이 무엇인가?
이번 한 주간 동안 정말 스스로 질문하며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믿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고, 예배하고, 내 모든 삶의 방향이 전도와 선교다, 결론은 내려졌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가장 사소한 부분,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부분, 그게 틈이 되어져서 사탄이 나로, 탐심으로, 탐욕으로 사로잡아 우상으로 끌고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위에는 항상 진노가 임해 있는 거에요. 하나님보다 앞서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우상을 모두 다 제하여 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여호와만 섬기라
두 번째입니다, 여호와만 섬기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말씀하셨죠. 여호와만 섬겨야 됩니다. 하늘 위로, 땅 아래로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한 분밖에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의 의지할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맡기실 만한 분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여호와를 섬깁니까? 여호와를 섬기기에 앞서서 하나님과 만나야 되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여호와를 만날 수 있고,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그러한 욕심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나버렸죠.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로마서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하는 사람은 참 그나마 양반입니다. 성경에 로마서 1장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다.”, 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도 없는데 아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요. 이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작정하신 시간표에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사탄의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자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기 위해서 육을 가지신 주님은 승천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게 하셨죠.
이 일을 이루신 그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하셨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중심이 안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죠.
히브리서1: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우리의 새로운 살 길이 되어주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4:23-24절에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데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함으로 나와야죠. 그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영과 진리로 가능한 겁니다. 영은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진리는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비로소 우리를 만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그리고 그리스도는 곧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랬어요. 말씀이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라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고, 하나님의 축복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돼요.
율법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율법은 유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약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뭐냐?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에스겔서 26장의 새 언약을 말씀하시면서 내 영을 저들 속에 두어서 그 영으로 하여금 이 말씀을 지키게 하겠다 하셨어요. 옛 언약은 돌판에 새긴 그 율법을 우리가 보고 지키라 하셨다면, 새 언약은 그 언약의 성취자 되신, 율법의 완성자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두셔서 그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지배받는 그러한 삶을 사는 자는 율법의 성취를 이룬다고 말씀하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되고, 우리의 삶이 오직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어야 되고, 그래서 갈라디아서2:20절 말씀처럼 나는 죽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와 함께하게 될 때에 당연히 우리 안에 말씀이 살아 역사하시게 되는 거에요. 말씀이 성취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각인하고, 말씀이 뿌리내리고, 말씀이 체질 되어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는요. 항상 영적 싸움 하셔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영혼 속에 각인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의 마음 밭을 옥토와 같이 만드셔서 진짜 말씀 받기 전에 내 마음이 백지장과 같이 깨끗하게 되어져서 떨어지는 그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주관하시고, 이 말씀을 마음으로, 또 믿음으로 받지 못하게 만드는 그 흑암의 권세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 받고 떠나가도록 정말 영적 싸움하면서 이 자리에 나오셔야 돼요. 말씀이 담겨져야 됩니다. 말씀이 담겨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의 성취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늘 말씀이 있어야 돼요. 그 말씀이 내 마음과 내 영혼 속에 담겨지도록 우리는 영적 싸움 싸워야 돼요.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가 내려져야 됩니다. 뿌리는 모든 자양분을 끌어모아서 나무에다가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말씀으로부터 나와야 돼요. 우리의 모든 삶을 삶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아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내리도록 우리는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묵상을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묵상을 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자꾸 팝니다. 금광을 캐는 것도 아닌데 자꾸 말씀을 파고, 말씀을 연구하고 그래요. 말씀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겁니다.
여러분 묵상의 끝은 여러분 말씀을 묵상을 딱 할 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딱 일어설 때는 ‘야, 이게 이 말씀이구나!’, 하고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야, 이 말씀을 하나님이 이루시겠구나!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이 말씀이 진짜 내 앞에 성취되어 졌구나!’, 그 확신 가지고 일어나야 돼요. 그게 묵상의 끝입니다, 그게 묵상의 끝이에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묵상을 ‘도대체 이 말씀이 뭘까? 오늘 도대체 무슨 말씀 하려고 하시지?’, 그러면서 자꾸 연구합니다.
연구하는 데 연구하는 그 기준도 다 나에요. 내 수준으로 됩니까? 내 수준으로 이해가 안 돼요. 이사야55:9절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이 머리로 이해가 되어집니까? IQ 200 이상 되시는 분 계십니까? IQ 200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겁니다. 말씀을 믿어야 돼요, 말씀은 아멘으로 받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1: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확신으로 가져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묵상하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 붙잡고 계속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이 말씀대로 내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홍해 앞에 섰습니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여기서 죽게 되었다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딱 서서요, 설명도 안 해요, 그리고 외칩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실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도대체 이 말을 몇 명이나 이해했겠습니까?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했겠습니까? 아니 앞에 홍해가 막혀 있고, 뒤에 애굽 군대가 쳐들어오는데 우리 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야? 이해됩니까?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아멘 하면 됩니다. 아멘! 하나님이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믿음으로 아멘 하는 순간 그 말씀이 내게 성취 되어지는 겁니다.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사도행전27:25절에 사도바울이 광풍 가운데서 전날 주의 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지죠. 그러면서 그다음 날 그 배에 승선한 사람들 앞에서 바울이 담대하게 외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말씀을 받을 때 이렇게 받으셔야 돼요. ‘오늘 도대체 무슨 말씀이야?’, 이해 안 되더라도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는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고하셔야 돼요. 사도행전에 베레야 교회를 향해서 이야기할 때 그렇게 이야기하죠. 이 베레야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가 하나님을 말씀을 받을 때에 상고했다고 했어요. 어떻게 상고했냐?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그걸 확인하는 거에요. 그걸 확인해야 되지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해 안 되더라도,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이 말씀이 크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아멘으로 받는 거에요.
그리고 그 믿음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 말씀을 자꾸 묵상한다는 것은 깨달아 알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 말씀대로 되어질 믿음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는 거에요. 일어날 때는 깨달음이 사실 내 인생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인생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에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정말 말씀이요 내게 각인 되어지고, 내게 깊이 뿌리 내려져서 이렇게 되어지면 체질이 말씀 체질이 되어지는데 모든 삶 속에 말씀 따라가고, 말씀이 성취 되어지는 응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죠.
3. 미스바로 모이라
세 번째입니다.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어요. 우상을 다 제하고, 이제 여호와만 섬기기로 했다면 미스바로 모여라. 이 미스바의 원어의 뜻이 망대입니다, 미스바의 뜻이 망대에요. 이 말은 미스바에 모이라,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망대를 세우라는 거에요. 잠언18:10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우리의 망대는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망대는 여호와에요. 하나님만이 우리의 망대가 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거에요.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에 안전함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우리의 삶에 안전지대가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곧 망대를 세우는 겁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곧 미스바에 모이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미스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사무엘이 이들을 모아놓고 5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기도를 통해서 만나는 겁니다. 예레미야29:12-13절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언약 붙잡고, 이 말은 앞에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 포로 되어지는 것이 저주와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내가 희망과 미래를 주기 위함이다, 평안을 주기 위함이다 라고 11절에 말씀하세요.
그리고 그 약속 붙잡고,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라는 거에요. 그렇게 되어질 것을 믿음으로 가지고, 오늘 내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만나줄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이 말씀대로 이루겠다는 거에요. 우리가 여호와를 섬긴다 할 때에 그 여호와를 섬긴다 라는 것은 기도로 시작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의 중심을 다해 언약 잡고, 기도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미스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번제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렸어요. 요한복음4:23절에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 그러셨습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미스바로 모이라,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모이는 것,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서 있는 이것이 바로 미스바에 모이는 것이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고, 그게 곧 나의 망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망대를 세운다, 그것은 24 기도의 비밀과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 그 자리입니다.
이 미스바라는 것은 망대를 뜻한다 그랬죠. 이 미스바는 사실 지역 지역마다 있었습니다. 요단 동편에도 미스바가 있었고, 이게 지명이 되어진 곳도 있지만 사실 어느 모압의 미스바, 또 어디에 미스바, 베냐민의 미스바 이러면서 그 지경에 이렇게 성을 쌓아놓고, 거기에 망대를 다 세워놓은 거에요. 다윗은 일천 망대를 세웠죠, 다윗은 일천 미스바를 세운 겁니다. 그렇게 망대를 세워놓고, 거기에서 이들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죠. 오직 여호와만이 우리의 망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망대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거에요.
오늘 말씀에 이들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해결되어 졌습니까?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될 때에 여호와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예배함으로 미스바에 모이게 될 때에, 이때에 망대를 세울 때에 하나님이 이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히 끝내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망대가 세워져야 돼요. ‘성삼위 하나님이 이 시간 보좌의 능력으로 내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영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의 그 능력이 내게 임하였어요.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이 믿어지고, 그래서 나를 속이려는 이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지고, 나를 속이는 사탄의 권세,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이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신 그 여정을 내가 가는 겁니다. 이 기도가 내게요, 늘 드려져야 돼요. 성삼위 하나님이 내게 임재해 달라고.
그리고 이 망대의 축복이 나를 통해서 내 가정에, 내 현장에, 또 우리교회에 전달 되어지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그게 미스바 운동이에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누가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주 우리 로마서 8장을 목사님 통해서 봤잖아요? 8:31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죄 없다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고, 누가 우리를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망대, 견고한 망대는 여호와의 이름이다 말씀하는 거에요. 여호와 안에 우리의 안전지대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내 중심에 나의 것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우상을 제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내 안에 진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그 말씀이 선포 되어지는 예배의 자리에 우리가 모여야 되는 겁니다. 그게 망대를 세우는 거에요.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이 성삼위 하나님이 내게 임재하시고, 나와 관계 되어지는 모든 현장에 성삼위 하나님의 그 보좌의 능력이 전달 되어지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그 망대를 세울 때에 우리의 인생에 어떤 축복이 임하냐? 에벤에셀의 축복이 임하게 되어지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때 오는 축복, 응답이 이 에벤에셀의 축복이에요. 에벤에셀을 확인하는 겁니다. 에벤에셀이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과거에 반복 되어지는 재앙, 그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이 오늘까지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도우고 계셨구나. 그걸 언제 깨닫느냐?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기로 결단하며 정말 미스바에 모여 망대를 세우게 될 때에 하나님이 나의 모든 과거, 실패된 그 과거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오셨구나 라는 게 보여지는 겁니다. 에벤에셀이 확인 되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현재의 문제 또한 해결 되어집니다. 블레셋이 이들을 쳐들어 왔을 때에 10절에 하나님이 싸우셨습니다. 우리가 망대를 세우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그 견고한 망대 속에 우리가 들어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싸우셔요. 13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또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14절에 빼앗겼던 성읍도 하나님이 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나아가 평화가 임하게 되어지죠. 그리고 우리의 불안한 미래, 그 미래에도 또한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미래 사사 시대를 끝내고, 이제 왕정 시대를 열면서 진짜 하나님의 언약 잡은 이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게 하셨죠. 나의 실패된 과거, 그것이 쌓여서 만들어 낸 오늘의 저주와 재앙들, 그것으로 인해서 불안과 두려움에 잡힌 미래 그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망대를 세우는 미스바 운동을 통해서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여정을 준비하시고, 인도하셨음을 우리는 보게 되어집니다. 어떤 것도 버릴 게 없어요.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 가지 문제, 사건들 속에 가능성이 없어서 불안 가운데 떨고 계십니까? ‘야, 내가 이러다가 쫄딱 망하는 게 아닌가? 내가 이러다가 진짜 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내가 침몰하는 게 아닌가?’, 혹시 그렇게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그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십니까? 그 속에도 하나님은 에벤에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그 자리에 없어야 된다면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그 자리에서 뽑아서 다른 데에 넣으실 겁니다. 내게 그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이 내게 필요해서 주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이 완벽하게 준비하신 여정을 가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속에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며 나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의 눈을 나에게서 돌이켜서 여호와를 바라보고,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신 여호와를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언약 잡고 기도하고, 예배함으로 나오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레를 발하시고, 하나님이 앞서가셔서 이 블레셋 군대를 다 멸하시고,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에벤에셀 하게 되어지는 것이죠. 이러한 축복 누리는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어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망대를 세우는 미스바 운동을 통해 에벤에셀을 누리는 전도제자의 기도
1.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우상을 떠나 오직 여호와만 기도와 예배로 섬기게 하옵소서.
2. 절대 망대의 축복이 나와 교회와 현장에 전달되는 미스바 운동 속에 있게 하옵소서.
3. 미스바 운동으로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에벤에셀의 축복임을 확인하고 누리게 하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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