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 구원
2024-07-14 12: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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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 구원
(요19:38-42)

   
서론: 항상 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문제, 직업, 위치에 있더라도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행1:8).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인생의 방향과 목적으로 둔다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삶을 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아는 만큼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참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되는 이유
  가. 참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소서(사7:14, 마1:23, 요1:14, 빌2:6-8).
  나.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소서.
   • 죄, 죽음, 영적 신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소서(창3:1-7, 롬6:17, 요8:44).
   • 피 제사로 죄 사함을(속죄) 누리게 하소서(레17:11, 히9:22, 고후5:21, 엡1:7).
   • 죄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골1:13-14, 벧전3:18, 갈3:13).
   • 십자가를 통해 바뀌어진 신분을 누리게 하소서(요14:16, 고전3:16).
   
 2. 예수님의 죽음은 말씀의 성취임
  가.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소서(창3:15).
  나. 십자가를 통해 일어난 말씀 성취를 누리게 하소서(출3:18, 출12장).
  다. 사53:5의 말씀 성취를 누리게 하소서.
  라. 사망을 폐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하소서(마27:62-66, 딤후1:10, 사25:8).
   •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생명’ 누리게 하소서(히2:14-15).
   
결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으로 함께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날마다 내 안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아야 합니다(마4:17, 마6:33).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기도가 망대와 여정과 이정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듯이 내가 너와 함께하기에 아무도 너를 당할 자가 없다(망대).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여정).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정표). 날마다 망대, 여정, 이정표를 통해 하나님 나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7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 구원”
(요19:38-42)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아멘.
         요19:38-42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상속으로 누리십시다.’, 할렐루야! 오늘 이 한 날, 많은 지금까지의 예배들을 지내왔지만, 오늘 최고로 그리스도 충만함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예배할 때에, 여러분 안에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지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질병의 역사들도 완전히 떠나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늘 항상 점검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내 인생의 방향과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늘 항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점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너무나 빠르게 변화 되어지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왜 인생이 살아야 되는지 이유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되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그냥 허비하면서 방황하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매일 같이 여러분이 점검해야 될 것이 있다면 내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내 인생에 진짜 중요한 방향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가? 이 사실들을 날마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직업과 환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그게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되어지고,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향한 방향이 있다면 바로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사도행전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구원받은 우리에게 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한 번 뿐인 우리의 삶이 증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에 우리의 방향과 우리의 삶의 목적이 있다면 성취될 수는 있겠지요. 여러분 나름대로 세상 속에서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애써서 뭔가 이룰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향한 정확한 계획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은 열심히 노력해 놓고 성공했는데 찾아오는 것이 공허함이 찾아오고, 결국 성공했는데 영적인 문제로 무너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정말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계획이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이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여러분 분명한 것은 이 사실을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어마어마한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왜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이 전혀 알 수도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성령을 우리 안에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깨닫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삶 속에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내 삶을 놓고 하나님이 목적하고 계시는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냄으로 실제적인 응답이 시작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사도행전 19장에 지난주 18장에 이어서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누우시는 그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무덤에 누우신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들을 우리가 제대로 찾아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찾아내야 되느냐? 여러분 왕들의 죽음도 있고, 위대한 사람들의 죽음도 있고, 영웅들의, 훌륭한 사람들의 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죽음은 그 죽음으로서 어떤 면에서 인간적인 많은 교훈들은 남길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죽음이 우리를 살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리스도로서의 죽음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죽으심의 비밀들을 알아내는 만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게 되고, 인생의 참된 성공함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다른, 예수님의 죽음의 비밀들을 찾아내면 찾아내는 만큼, 예수님의 죽음은 그리스도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정말로 그 죽음 앞에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 있고,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결하신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 만큼 누려지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참된 소망과 승리함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날, 이번 한 주간 주신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도 불렀습니다. 진짜 이번 한 주간 많은 시간들 여러분 인생을 살아오셨지만 최고로 그리스도의 깊은 충만한 비밀 속에 들어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참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이유
 그러면, 참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참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느냐? 그 이유들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참 사람이심을 증거 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성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마디로 성육신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인성을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는데 그 사실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많았었고, 초대교회에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이 이 땅에 인성을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건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왜 믿지 않을까요? 인간은 한 번도 죽으면서 부활하신 사실이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인성을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골로새 교회 안에도 보면 이미 영지주의 사상이 들어와 있어서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해 버렸어요. 또 다른 모든 단체들도 그 당시에,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의 인성을 가지고 오신 부분들을 부인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부인한다는 말이고,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부인하게 되면 우리의 속죄함을 받는 것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우리가 신앙고백 할 때마다 하는 말씀이지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4:2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말씀 하시면서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말씀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에 이사야7:14절에 미리 예언하셨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바로 이사야7: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동정녀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1:23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기록한 내용들을 보면 1:22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말씀하시면서, 23절에 이사야7:14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지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이 반드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4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말씀 되신 성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2:6-8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육신 하셨느냐?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느냐? 다른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오셨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6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근본 하나님과 본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7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뭐와 같이 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리고 8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바로 다시 말해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합니까? 아니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면은 그냥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말씀으로도 ‘너의 모든 죄는 이미 끝났어.’, 말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성육신 하시고, 그것도 왜 십자가에 멸시와 고통 가운데서 죽임을 당했습니까? 성육신하신 그 자체만 해도,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들어왔다는 그 자체만 해도 어마어마한 고통인데, 성육신 하셔서 이 땅의 가장 저주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의 멸시와 고통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왜 그런 일을 당하셨을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죽음, 영적 신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죄와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왜 죄 가운데 빠지고, 죽음 가운데 빠졌느냐? 영적 신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멸시와 고통을 당하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담, 하와가 불신앙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음과 죄의 종과 사탄의 종이 되어서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이 창세기3:1-6절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사건이 나오죠.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창세기2: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뭐요? “죽으리라.”,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죄 가운데서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반드시 죽는 죽음의 문제가 찾아왔어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본래 죄의 종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로마서6:17절에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본래 죄의 종으로 태어나면서 신분 자체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신분으로 태어나는데, 요한복음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우리에게 죽음이 왔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래부터 죄의 종으로서 결국은 신분 자체가 마귀에게 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시간 가면 갈수록 마귀에게 신분 되어 있기 때문에 멸망의 스케쥴 속에 하나하나 멸망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는 제사가 드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이 제물이 되셔서 피를 흘리는 제사의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레위기17: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생명이 피에 있다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9:22절에도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의 죄 사함 받는 길은 반드시 생명이 드려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어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모든 피를 흘리신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의 죄와 죽음과 영적 신분의 문제를 해결하신 속죄의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죽음과 영적 신분을 해결하신 속죄의 죽음이 바로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인 것입니다.
 성경에 고린도후서5: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위해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 했어요. 왜 그렇게 하셨느냐?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죄를 알지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7절에 말씀하고 있죠.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1:13-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느니라.”, 14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3: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여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들을 위해서 대신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시기 위해서 죽으신 죽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인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참된 죄 가운데서 해방 받습니다. 참된 죄에서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참된 자유함으로 승리하는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율법의 모든 저주를 해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21:23절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이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는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은 ‘아, 십자가의 죽음이 저주를 받아 죽은 죽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나의 모든 율법의 저주를 끝내기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구나!’, 바울은 깨달았어요.
 성경에 갈라디아서3:13절에 말씀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도다.”, 옛날에는 바울이 그냥 자신의 죄로 인해서 저주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줄 알았는데, 예수라는 작자가. 그런데 알고 보니까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사실들을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율법의 저주 가운데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 당해야 될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해결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우리 힘대로 지킬 수 없잖아요? 우리의 힘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율법의 모든 저주를 다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록 율법을 행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저주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더하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우리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 율법을,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4:4-6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특별히 5절에 보면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해서, 6절에 말씀하고 있죠.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리고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 말씀하시면서 그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면 신분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주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16절에 말씀하고 있죠. “또 다른 보혜사를 너에게 주사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 그 성령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3: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 부르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저주를 완전히, 영원히 끝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1:21절에 말씀하고 있죠.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 그 속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누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히브리서9: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에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자기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다시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들 이유가 없어요.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때그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며 주께 나갈 때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0: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대속물이 되셔서 영원한 죄를, 영원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다시 우리는 피 흘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모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 이 축복의 역사들을 날마다 날마다 누려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으로, 사탄의 종으로, 사탄의 종 노릇 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 신분을 바꾸는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우리의 모든 율법의 저주를 완전히 해결하는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축복된 죽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자녀 삼은 우리에게 더 이상 우리의 죄 가운데서 피 흘릴 필요 없이 완전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자유함을 누리고, 그 축복된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깨닫는 만큼 우리에게 누려집니다. 그 속에서 참된 자유함과 참된 행복이 우리에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의 응답들을 받아 누리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죽음은 말씀의 성취임
 두 번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냥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죠, 예언하셨죠.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취된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줄 아십니까? 사탄의 심부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탄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승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창세기3:15절에 사탄의 머리를 그리스도께서 깨뜨리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성취되어진 거에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희생제사, 출애굽기3:18절.
 이 희생제사가 더 구체화된 것이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할 때 그 애굽의 바로 왕의 손에서 해방된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희생제사가 구체화 된 것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것인데 이 말씀의 성취가 언제 이루어졌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사탄의 저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의 저주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해방 받았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해방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축복된 역사들을 날마다, 날마다 누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53:1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심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고난 당하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고난 당하심이 나를 위한 고난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난 당할 이유가 없이 그 안에 참된 자유함을 누린다, 치유함을 얻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3:5절에 말씀하고 있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저와 여러분이 뭐를 누리고요? 평안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뭐요? 나음을 얻었도다. 참된 평화와 나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취되어진 사실을 알고, 날마다 그리스도 붙잡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바라보며 나아가면 돼요.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참된 평화가 내 마음속에 넘치게 되어 있어요. 나의 모든 문제 속에서 참된 치유의 나음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망의 문제를 폐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사망의 문제 누가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까? 아무도 사망의 문제를 피할 자가 없어요. 마태복음27:63-66절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와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에 분명히 말했다. 죽고 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야기했다. 속이는 자들이 그 말을 듣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시체를 도둑질해 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덤을 만들고, 거기에 군인들을 파견해서 무덤을 지키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들이 기억했습니다. 사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는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그 두려움 속에 이들은 무덤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죽으시고, 성경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망의 역사들을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1:10절에 보면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가 사망을 폐하시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사망을 폐하셨다, 고린도전서15:5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을 삼키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생명의 역사는 사망을 삼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부활하신 부활의 생명의 역사가 결국은 사망을 삼키는 이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을 폐하신 역사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에요.
 이사야25:8절에 말씀하고 있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사망을 영원히 멸할 것이라,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멸하셨습니다. 히브리서2:14절이죠.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 한 모든 자들을 뭐요? 놓아 주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사망을 폐하신 그리스도, 이 땅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함으로 일평생 종노릇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놓아주려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십자가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죽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의미들을 찾아내게 되고, 승리하는 그 신앙생활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망을 폐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 영으로 함께 하십니다. 믿습니까? 이 땅은 사망의 권세 잡은 자, 악한 사탄의 종 노릇 함으로 사탄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망을 폐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시고,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 이 땅에는 모든 사람이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에게 종 노릇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참된 해방의, 놓임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시고, 또한 앞으로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내 안에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 그 비밀들을 붙잡고, 기도하면 돼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33절에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예수님이 마지막에도 40일 동안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했어요. 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했느냐? 사탄의 권세 잡은 자 마귀가 이 땅에 흑암의 나라를 가지고, 세상 임금으로, 세상 신으로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갈까요? 구체적인 비밀들을 여러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망대, 여정, 이정표.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기도입니다. 어떤 분이 지난 권찰회 때 제가 말씀드렸어요. 우리교회에 등록하셔서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계시고, 지금도 이 자리에 앉아 계세요. 아침에 이제 운동하고 씻고, 같이 매일 얼굴을 보시는 분이에요. 이제 주일 메시지 끝나고, 이제 월요일 날 가니까 이분이 무슨 말씀하셨느냐? ‘목사님 지난 어제는 망대, 여정, 이정표 왜 말씀 안 하십니까?’, 이야기를 해요.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을 다 담아놓은 것이 망대요, 여정이요, 이정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라의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망대, 여정, 이정표. 여러분 망대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게 아브라함에게 너와 함께 있는데 아무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망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에 아무도 너를 당할 자 없이 하겠다, 망대에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여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 속에 나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정표입니다. 그 지시할 땅, 가나안 땅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망대, 여정, 이정표, 한마디로 말하면 나라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망대, 여정, 이정표 그 내용들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우리의 모든 사망의 문제를 폐하신 그 그리스도가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현장, 현장 속에 승리하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를 아는 전도제자의 기도
1. 우리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전도자의 길에 있게 하옵소서.
2. 그리스도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 구원을 기도로 누리게 하옵소서.
3. 사망을 폐하시고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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