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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21:15-23)
서론: 기도 24로 행복한 것이 제자입니다. 기도 25로 힘을 얻는 것이 전도자입니다. 기도 영원을 누림으로 완성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것을 우리 후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미래가 되어집니다. 이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전도자의 바톤 네 가지 입니다.
1. 우리의 현장을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함
가. 현장과 현실 앞에서 옛날로 돌아가는 체질을 버리게 하소서.
• 염려 체질, 불신앙 체질, 노예 체질, 애굽 체질에 속지 않게 하소서.
• 날마다 그리스도를 붙잡는 영적 싸움 싸우게 하소서(로마서 7장).
• 말씀을 따라가는 응답 받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요21:3-4, 잠14:12, 16:3).
나. 현장을 보면서 어떤 시대인지를 보게 하소서.
• 복음에 갈급한 제자를 보게 하소서(마28:19-20, 막16:15-20).
2.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주신 사명을 누려야 함
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소명 의식을 가지게 하소서(요21:15-17, 사43:1).
나. 후대를 영적 서밋으로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요21:19-20, 고후4:7).
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에 속지 않게 하소서.(요21:21, 요21:23, 고후11:25-27, 고후4:8-10)
결론: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3:5).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나를 살리는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인간관계, 갈등, 문제, 어려움에 빠질 수 있지만 그 모든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음을 알고 속지 마세요. 과거의 모든 습관과 체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21:15-23)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아멘.
요21:15-2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십시다.’, 오늘 우리 찬양대 어려운 곡을 하셨어요. 곡을 고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이 렘넌트 시대를 마음에 품게 하려고, 어려운 곡을 선택하셔서 어려운 곡을 소화하면서 찬양을 하셨습니다. 어떻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 마음속에 정말로 렘넌트 시대를 마음에 담는, 시대 시대마다 축복된 지역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같이 렘넌트 시대를 마음에 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축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이죠, 어제까지 렘넌트 리더 수련회가 우리교회에서 진행되어 졌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정말로 은혜 가운데서 또 우리 렘넌트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선포되어 졌습니다. 한 2천 4백여 명 참석한 가운데서 그중에 이제 44개국에 한 570명 정도 외국에서 온 렘넌트들이고, 그래서 전체가 한 2천 4백여 명 참석한 가운데서 귀중한 리더 수련회가 진행되어 졌습니다. 특별히 너무 기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고맙고요.
또 이 일에 우리 온 교회 성도님들이 진짜 기도도 기도지만은, 또 물질 드려서, 또 직접 헌신해 가시면서 그 더운 날씨에 정말로 땀 뻘뻘 흘려가면서 교통부로, 또 봉사부로, 이런저런 모양으로 수고해 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번 주간에도 이제 세계 렘넌트 대회가 일산에서 한 1만 4천여 명 모인 가운데서 진행되어 집니다. 우리가 이 리더와 대회를 놓고, 수요일마다 우리 장로님들의 기도가 너무나 힘이 되었고요. 또 그 기도 응답으로 우리 렘넌트 한 명, 한 명이 정말로 한 시대를 살릴 귀중한 복음 엘리트로 준비되어질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님 중심으로 해서 수요 기도회는 끝났지만 오늘 새벽에 제가 좀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냥 대회를 앞두고 한 번 기도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좀 계속되어 졌으면 좋겠다. 기도의 불씨가 우리 하나교회에 계속 좀 지펴졌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 정말로 이제는 237 나라를 살려야 하고요. 그리고 정말로 5천 종족의 많은 인재들을 불러들여서, 훈련 시켜서, 응답받는 제자들로 세워서 이제는 내어보내야 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도 여러분 많이 기도해 주셨지만은 정말로 이제는 본격적인 기도가 시작 되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냥 237 나라를 살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이제 237 나라를 통해서 5천 종족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을 훈련 시켜서 그들을 재 파송해서 이제는 한 번도 복음 듣지 못한 5천 종족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은 너무나 귀중한 응답들을 우리 앞에 준비해 놓고 있는데 이 일을 우리가 기도 없이는 누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정말로 우리 하나홀을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든지 해서 정말로 계속해서 우리가 주중에 기도하는 것들도 매일매일 돌아가면서 로테이션으로 기도팀들을 좀 움직여서 기도하는 그런 기도 시간들도 가질 필요가 있겠다 라는 생각들을 해요.
제가 일반 어느 서울에 큰 교회에 아주 유명한 목사님 설교를 유튜브가 나오니까, 워낙 이제 잘 나오니까 한 번 듣는 가운데 쇼츠라고 짧게 나오는 그 메시지를 잠시 들었는데요.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 설교하기 위해 주일날 서 있지만은, 자기 뒤에는 지금 기도 특공대가 기도하고 있다 라는 것. 지금 설교하기 위해서 본인은 강단에 서서 메시지를 전하는데 자기 교회 안에 강단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 특공대가 있는데, 이 특공대가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자기가 지금 설교하는 이 시간에도 뒤에는 기도하는 특공대가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어떤 면에서 진짜 우리에게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회복 되어야 될 기도, 기도만 제대로 알고 누린다면 다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가 대회를 놓고, 이제 기도회를 시작했다면 이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시작이 되어서 우리교회 구석구석에서 기도의 불씨가 일어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저희들이 누려 가십시다. 그래서 교회 어느 곳에든지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특별히 예전에는 우리 송현교회에 있을 때는 밑에 지하에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그냥 바닥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도 있었지만 그러나 특별히 기도굴이 있어가지고, 기도통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게 어떤 면에서 송현교회를 교회 되게 만들었던 저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기도하기에 너무나 바쁜 시대에요. 그렇잖아요? 정신없는 시대에요. 그런데 진짜 바쁠수록 기도해야 해요. 정신없을수록 기도해야 돼요. 그래야 제대로 인도받고, 제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서, 응답의 길을 따라서 우리는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정말로 복음과 함께 너무나 중요한 훌륭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복음을 누리는 기도 속에 우리 하나교회가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237 나라와 5천 종족을 살리고, 많은 후대들이 일어나서 정말로 세계복음화의 주역들로 세워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의 하나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번에 리더수련회 때도 주신 메시지가 그거에요 사실은. 다른 게 아닙니다. 기도로 누리는 24, 기도로 누리는 25, 기도로 누리는 영원, 그리고 그 축복을 가지고 우리의 후대들에게 기업으로, 작품으로, 유산으로 남기자 라는 거에요. 특별히 우리 리더에 참여하지 못한 우리 모든 성도들도 우리 전체에서 진행 되어지는 메시지들은 여러분 그 흐름들을 좀 정리를 하셔서 기도제목들을 잡으시고 함께 기도하시고, 또 우리가 렘넌트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렘넌트들이 실제로 어떤 메시지를 잡았는가? 그 사실을 좀 알고, 같이 기도해야 될 것 아닙니까? 기도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진짜 지금 렘넌트들이 어떤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가? 그 사실을 알고, 중직자들이 기도해 주셔야 되고, 모든 성도들이 기도해 주셔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이번에 리더 때 나온 메시지들을 좀 정리하셔서 여러분 기도제목으로 붙잡으시고, 또 대회 때에 중요한 메시지들이 또 나올 겁니다. 우리교회에 주일 학교만 해도 한 130여 명이 참석하게 되고, 많은 또 일반인들도 참석하게 되는데 정말로 렘넌트들이 붙잡는 귀중한 언약의 메시지를 같이 우리교회가 붙잡음으로 하나님께서 시대를 통해 주시는 언약 붙잡고, 시대적인 응답을 우리교회가 누려가는 하나교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너무나 많이 들었던 설교고, 너무나 많이 보았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러분 붙잡게 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의 현장을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함
어떻게 하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주님이 주신 어린 양을 먹일 것인가? 먼저 첫 번째입니다. 주님이 주신 어린 양을 먹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장을 제대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사실 20장, 21장 이어져서 연결 되어지는 부분을 보면 제자들은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로 돌아갔느냐? 자신의 옛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현장에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 어부생활 하던 그 직업, 그 옛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어요.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장에 보면은 베드로를 중심해서 제자 6명이 결국은 자기가 하던 일,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 생활로 돌아가요. 6명이 같이 자기가 하는 일을 위해서 나서게 되어지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시간표인데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그의 6명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복음 하지만은 우리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복음 아닌 염려 체질로, 불신앙의 체질로, 노예 체질로, 애굽 체질로 돌아가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평상시에는 복음 이야기해요, 늘 들은 것이 복음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제에 딱 부딪히면 나도 모르게 염려가 먼저 나오고, 불신앙이 먼저 나오고, 또 걱정이 먼저 나오고, 그래서 결국은 옛날 체질로 돌아가 버리는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순간도 정말 우리의 체질들을 안다면은 복음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돼요. 그토록 많은 복음을 들어왔는데 그렇잖아요? 그토록 많은 복음을 들어왔는데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옛날로 돌아가요. 너무 쉽게 턴 해요.
그래서 ‘아, 정말 우리는 매일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날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언제나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항상 복음이어야 되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돼요. 왜냐? 안 그러면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목사지만은, 또 강단에서 복음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냥 정신 빼놓고 있다면 불신자들 말이죠.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옛날 체질로 돌아가요. 옛날 생각으로,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온갖 염려들로, 걱정으로 돌아가요.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아, 정말로 내게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 싸움이라 하죠. 영적 싸움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순간 영적인 잠을 자게 되면은 악한 사탄이 그 틈을 이용해서 우리를 어디로 돌아가게 하느냐? 옛날로 돌아가 버리게 만들어요. 왜냐? 옛날 것이 좋으니까. 옛날 것이 좋은 것이 뭡니까? 나를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좋은 삶을, 좋지도 않은데 결국 알고 보면 그게 나를 망하게 했던 것인데, 악한 사탄은 나에게 좋은 것을 줘가지고 떠나게 만드는데 그게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삶을 좋게 보여서 거기에 빠뜨린 거에요 사실은. 그래서 나도 모르게 깨어 있지 아니하면, 영적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한순간 돌아가요. 그래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는다.”, 말씀했어요.
영적 싸움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앞으로, 날마다 복음 앞으로, ‘오늘도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내게 오늘도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입니다.’, 이 고백으로 나아가게 될 때에 우리 자신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옛날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과 축복을 문제와 사건에서 발견하고, 새로운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비 된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날마다 영적 싸움에서 정말로 우리가 복음 앞에 서서 복음에 대한 결단을 가지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있어 보세요. 복음과 전도와 기도와 멀어져요 내 삶이. 교회 강단도 마찬가지에요. 전도 이야기하지 않으면요 처음엔 모릅니다. 그런데 한 달 가고, 1년이 지나고, 2년 가고 하면은 전도와 나와 멀어져요.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으면은, 복음에 대해서 말하지 아니하면은, 한순간도 복음에 대해서 말하지 아니하면은 어느 순간 알고 보면 나도 모르게 복음과 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돼요. 기도와 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전도와 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돼요. 그렇다면은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는 상관없이 내 열심으로 살아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내 열심으로, 내 지식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열매가 맺혀집니까? 세상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요. 그러나 참된 응답들은 있을 수가 없어요. 복음과 멀어져 있고, 기도와 멀어져 있고, 전도와 멀어져 있는데 내가 열심 낸다고 해서 물론 어느 정도의 성취감은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죠.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은 있을 수가 없다 라는 사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제자들이 수고하고, 열심을 내었습니다. 고기 잡으러 옛날로 돌아가서 수고하고, 열심을 내었습니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 그 제자들이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어요. 그런데 그물을 걷어보니까 고기가 잡혔습니까, 잡히지 않았습니까? 잡히지 않았어요. 그게 우리의 인생이에요.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고, 자신을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서 열매가 맺혀지느냐? 아니에요. 우리의 모든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14: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생각에는 맞을 수 있지만은 하나님 편에서는 안 맞을 수 있다 라는 것. 우리의 편에서는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안 맞는 겁니다. 그렇다면은 저와 여러분이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의 편에서 맞는 것을 선택해야 될 겁니까? 안 맞지만은 하나님께서 맞다 라는 것을 선택해야 되겠습니까? 대답 좀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맞다는 편에 서야 되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잠언16: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여러분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하나님께 맡겼다 하면서도 내가 다 챙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해요, 염려해요. 문제, 사건 당하면 걱정하고, 염려해요. 예배 들어와서 예배실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동안에 이 시간에는 내가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고리 딱 잡고 나가면은 또 내가 주인 되어서 나를 챙겨요. 그러니까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늘 염려, 걱정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잠언16:3절에 말씀 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이게 쉬운 것 같지만 쉬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은 모든 걸 맡길 때 거기에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응답들이, 하나님이 준비한 새로운 길들이 그 속에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 안 맡겼다는 증거가 뭐냐? 우리는 나가면 늘 염려합니다, 늘 걱정합니다. 하나님께 안 맡긴 거에요. 진짜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맡긴 것인지, 안 맡긴 것인지 하나님이 더 잘 아세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걸 내가 맡겼다 해서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겼는지 안 맡겼는지는 하나님이 잘 아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될 때에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어떤 문제 앞에서든지 간에 그 상황과 문제에 상관없이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참된 상황과 어려움들 속에서도 그 속에서 참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누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게 하나님께 맡겼다 라는 증거에요. 여러분 문제 있다, 어려움 있다, 그 속에 여러분 기도하잖아요? 문제 가지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불안하면은 움직이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을 누릴 때까지, 평안함을 주실 때까지, 평안함을 주실 때에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먼저 증거가 뭐냐? 평안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맡긴다 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맡긴다 라는 부분들은 무엇을 가지고 맡긴다는 말입니까?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귀중한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제자들은 자기의 지식 가지고, 자기 경험 가지고,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마는 고기 하나 잡지 못했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21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제자들의 배에 오르셔서 너희에게 고기 있느냐? 물었어요. 고기가 없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했어요. 그리고 그물을 던지고 올렸더니만 21:11절에 보면은 고기가 몇 마리 잡혔느냐? 몇 마리요? 153마리가 잡혔어요. 그물에 가득하게 고기가 잡혀가지고 그물을 끌어 올리게 되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 따라갈 때에 응답받는 인생이 되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이 제자냐?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는 사람이 바로 제자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가 제자고, 그 말씀 따라서 내 이익과 손해에 상관하지 않고, 비록 손해 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말씀하면은, 말씀이라 하면 거기에 아멘하고 갈 수 있는 자가 바로 제자라는 사실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준비된 응답들을 하나님이 주시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짜 말씀 따라가면은 현장이 보여집니다. 여러분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어떻게 어린 양을 먹이느냐? 제가 첫 번째로 결국은 우리의 현장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된다, 필요하다고 말씀했는데, 정말로 말씀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서면은 현장과 현실이 제대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그 제자들은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3년 동안 공생애 때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은 자,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일들이 이루어졌다면 ‘진짜 이 땅에 필요한 것들이 오직 그리스도구나!’, 현장을 보면서 거기에 대한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들이 나와야 되는데 그 이유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돌아갔느냐? 옛날로 돌아갔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요한 핵심입니다. 현장에 대한 하나님의 이유들이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고기 잡으러 옛날로 돌아갔어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현장에 나를 왜 보내셨고, 현장에 나를 왜 부르셨느냐? 하나님의 이유를 발견하게 될 때 그 속에서 실제적인 우리에게 주신 우리를 부르심과 우리에게 주신 사명들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들이 살았던 현장과 현실을 바라볼 때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붙잡아야 되는데 그 사실을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장들을 보십시다. 현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왜 부르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에는 진짜 복음만 필요한 제자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복음만 말하면 그 앞에 하나님 앞에 헌신할 많은 제자들이 숨겨져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숨겨져 있으니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진짜 복음 듣고, 살아날 갈급한 사람들이 현장에 숨겨져 있어요. 이 사실에 눈이 열려질 때마다 우리는 정말로 ‘이 복음이 모든 것이구나! 이 복음이면 되는 것이구나!’, 라는 답들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어떤 자매가 어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이 자매는 미국에서 교수로 계시는 분인데 사실은 교회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받는 분이에요. 그래서 한국 시간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간 차이가 있잖아요? 미국이니까. 그런데 그 시간에 실제적인 메시지를 그 시간에 듣기 위해서 잠도 자지도 않고, 들어와서 메시지를 듣는 자매인데 이 자매가 고백해요. 한국에 들어와서 또 많은 머리에 혼란들이 일어나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찬양하고,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 답이 딱 내려지더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분의 고백이 뭐냐? ‘아, 나는 정말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나는 정말로 복음이 갈급한 사람이구나!’, 늘 메시지 가운데 인도받는 사람이에요. 처음 메시지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늘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인도받는 자매에요. 그런데 그 자매의 고백이에요. ‘나는 목사님 복음이 너무 갈급해요. 복음이 너무 갈급해요. 복음이면 다입니다. 복음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들어와서도 뭔가 혼란들이 조금 왔는데 찬양하고, 메시지를 딱 듣는 가운데 모든 갈등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라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의 성령 인도 아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이렇게 복음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복음만 말하면 살아나는 제자가 있어요. 이 현장을 볼 때마다 뭐냐? 실제로 ‘아, 다른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구나! 현장에는 지금 다른 것이 없어서 멸망 가운데 재난 가운데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 하나 없어서 멸망 가운데 빠지는 것이구나!’, 이게 현장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에는 여러분 여러분은 건강하게 와서 예배 드리지만은 귀신에게 사로잡혀 가지고요. 이상한 질병에게 완전히 붙잡혀 가지고요. 예배도 못 드리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밤마다 술 마시고, 귀신에 사로잡혀서 자기도 자기 자체를 어떻게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치 마가복음 5장에 보면은 사실은 발 차꼬에 매였지만은 그 차꼬를 풀어 헤치고, 공동묘지에 나가서 막 밤새도록 돌아다니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그런 자들이 이 땅에 숱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런 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여러분 진짜 복음 아니고는 안 되는 겁니다. 현장을 제대로 보면 볼수록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이해는 안 되지만은 그러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갖고 말씀을 가지고, 갈급한 마음으로 예배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24장입니까? 성경은 가지고 있지만 그 말에 대한 이해를 못 해요. 그러니까 답을 찾지 못하니까 갈급함으로 나아가는,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그 사람들처럼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들으나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러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오늘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라는 거에요.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진짜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장을 제대로 보면 볼수록 뭐냐? 복음이 필요한 이유들을 제대로 깨닫게 되어 있고, 그때부터 우리의 모든 삶에 제대로 된 응답들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나는 지금 현장과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우리의 현장과 현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 자신들을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현장을 바라보면서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될 때에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주님이 부탁하시는 어린 양들을 우리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현장에 대한 제대로 된 눈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주신 사명을 누려야 함
두 번째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린 양을 먹일 수 있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알고,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부르셔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고, 누릴 때에 내 어린 양을 우리는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15-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세 번의 질문을 했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어보았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이 만약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여러분에게 ‘야, 신봉준. 네가 나 사랑해?’, 묻는다면,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찾아오셔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야, 너. 나 사랑해?’, 묻는다면 어떻게 질문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러분, 하나님이 구원하시도록 예정하고, 불러주신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예정된 자, 불러주신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돼요.
그래서 성경에 요한복음6:6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이 스스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오게 하셔서 이 자리에 오신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셔서 오셨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성경 요한일서4: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8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느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말씀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오게 된 것이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러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내 어린 양은 누구를 말합니까? 예, 불신자 맞습니다. 새가족들 맞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결국은 새신자도 새신자 이지만은 우리의 후대들, 우리의 모든 렘넌트들, 어린 양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에 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으면 여러분 마음의 후대와 렘넌트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은 제가 아까 우리 찬양대가 찬양한 부분들을 가지고 설명드렸지만은 렘넌트 시대를 마음에 품은 자들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의 주역으로 세우셨고, 그 마음을 품고,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도 하나님이 축복하셨어요. 언약에 대해서 성경에 말씀하고 있죠. 그런데 그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반드시 빠뜨리지 않고, 말하고 있는 것이 뭐냐? 후대에 대한 약속이에요. 언약과 함께 반드시 나오는 것이 있다면은 후대에 대한 약속과 후대에 대한 축복이에요. 너로 말미암아 네 자손이 복 받겠다. 분명히 후대와 후대의 귀한 축복된 역사들이 언약 속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렘넌트들을 우리의 마음에 담고, 후대들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고, 기도하면서 우리 후대들이 정말로 영적 서밋에 설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의 배경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제가 말씀드렸고, 오늘 1부 마치고 나니까 이제 미국에 또 8월달에 바로 박사 과정에 유학 들어가고 있는 우리 권사님 딸이 와서 인사하는 부분을 놓고, 제가 말씀드렸던 부분입니다. 우리 렘넌트들은 그냥 성공하는 성공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무엇이 목적이냐? 복음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엘리트가 되는 거에요. 그게 영적 서밋이에요. 서밋 하니까 뭔가 성공해야 된다, 잘 되어야 된다 이야기하고, 엘리트, 엘리트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는 그런 엘리트를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엘리트, 그걸 가지고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 서밋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가고, 감옥에 가고, 그 환경들 참고, 인내하고, 견뎌가지고 나중에 총리 되었다? 그래서 요셉이 성공한 것이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는 총리가 아니었어요. 창세기45:5절, 45: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왜 총리 세웠느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그 생명의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영적 서밋은 뭐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살리는 엘리트가 되는 겁니다.
우리 후대들이 그러한 축복의 주역으로 서야 돼요. 마지막 때에 마태복음 24장이나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은 고통 하는 때가 오는데 교회도 고통하고, 무너지고요. 거기에 많은 후대들도 고통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23:28절에 말씀하셨죠.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손을 위해서 울라.”, 했어요.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입니다, 많은 후대들이 무너집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시대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의 엘리트들로 세워나가는 곳.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사명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명이요, 하나님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교회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 시대를 막을 복음 가진 엘리트, 영적인 서밋, 이러한 서밋들로 우리 후대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여러분 든든한 기도의 배경이 되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일을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방법도 말씀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우리 후대들을 영적 서밋으로 세워 나갑니까? 우리의 힘으로 안 돼요. 그래서 우리에게 방법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19-22절에 보면 나옵니다. 19-22절에 우리에게 주신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19절 마지막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뭐라 했습니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리고 22절에도 보면 말씀하고 있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열심을 낸다고 해서 우리 후대들을 영적 서밋으로 세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 그게 우리와 우리 후대들을 영적 서밋으로 세워나가는 방법입니다. 나를 따르라, 너는 나를 따르라.
그러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따라가는 거에요.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인도받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따라가게 될 때 내 속에 능력 되신,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4:7절에 보면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나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 같은 저와 여러분이 우리 안에 있는 보배인 그리스도 따라가면 능력이 ‘아,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이구나!’,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것이 뭐냐? 영적 서밋의 응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우리 후대들을 영적 서밋으로 세우는 이 작업을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먼저 앞서서 말씀 따라가십시다, 주님을 따라가십시다, 주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십시다. 그래서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보배인 그리스도께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그런 우리 하나교회 모든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악한 사탄이 공격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것을 가지고 공격하느냐? 오늘 본문에 보세요. 악한 사탄이 사명 감당하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쉽게 말하면 인간관계를 통해서 사명 감당하지 못하도록 공격해요.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20-23절에 쭉 보면은 베드로가 사명의 메시지를 듣고 나서 요한을 보면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니까 예수님은 거기에 상관하지 말라고 오늘 성경에 보면 22절에 말하고 있죠. “네게 무슨 상관이냐?”, 23절에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상관하지 말라, 그가 어떻게 되든지 그것 상관하지 말라. 우리가 많은 경우 사람 관계, 인간관계 때문에 거기에 붙잡혀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악한 사탄의 전략에 빠져들 수 있어요. 사람 관계 때문에 갈등하고, 사람 관계 때문에 염려하고, 불신앙 하고, 거기에 딱 붙잡혀 가지고, 진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 감당하지 못하는 거에요. 오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했죠.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상관하지 말라. 우리가 많은 경우 인간관계, 거기에 붙잡혀 가지고, 주신 엄청난 사명들을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명을 위해서 나가는 걸음 앞에 핍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박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되어야지?’,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어려움들이 있고, 예수 믿기 때문에 핍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백하기를 뭐라고 고백했느냐 하면은 고린도후서11:25-27절에 보면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했어요. 그리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돌로 한 번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다 말씀했어요. 그리고 추위와 굶주림, 어려움을 당했다는 말씀했는데 아니 복음 전하는 바울의 걸음 속에 어떻게 이런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 전하는 베드로도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죽음이 어떤 죽음일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데, 순교로 말미암아 죽게 될 것을 미리 말씀했어요. 베드로도 복음 전하는 이유 때문에 순교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18절에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명 감당하는 일을 나가기 위해서 핍박도 있을 수 있고, 박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우리는 넘어질 자가 아닙니다. 믿습니까? 확신이 없어요?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고린도후서4: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했어요. 여러분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안 당한다는 말입니까? 싸임을 당한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우리를 둘러싸는, 우겨싸임을 당하는 문제들이 많습니까? 또 답답한 일들을 당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많은 어떤 박해도 있고요,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일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그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예수 생명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고린도후서4:10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어떤 고난과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왜냐? 우리 안에는 예수 생명이 있어서 그 생명이 우리 몸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은 승리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명 감당하는 일에서 핍박과 어려움들, 세상 사람들도 어려움 당하는데 그렇잖아요? 우리에게 어려움 없다? 아니에요. 우리는 핍박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거기에 낙심 당하고, 망하지 않습니다. 보배인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고, 그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말씀을 붙잡으세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첫 번째는 우리의 현장을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라는 것. 두 번째는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통해서 나를 부르시고, 주신 사명을 누려야 되는데 어떻게 그 사명을 누릴 것인가? 귀중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이 말씀 붙잡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진짜 렘넌트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는 그런 축복이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님의 어린 양을 먹이는 전도제자의 기도
1.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의식과 소명의식과 사명의식으로 나를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 사명 감당을 방해하는 내 안의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게 하옵소서.
3. 오늘 누릴 응답, 미래를 준비하는 축복인 후대에게 영원한 것을 전달하게 하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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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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