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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사 시대와 우리 시대
(삿18:1-6)
서론: 사사기는 16장에서 끝나지 않고, 21장까지가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습니다(미가의 우상숭배, 최초의 토막살인 사건). 지난주 미가의 집에는 에봇과 드라빔이 있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서신서에 보면 바울은 ‘주 안에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 있는 것은 유익을 넘어 모든 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마6:33). 하나님 자녀에게 주신 신분에 따른 권세와 임마누엘을 누려야겠습니다.
1. 영적 안일주의임(1절)
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 붙잡게 하소서.
• 단 지파는 라이스 족속만 쫓고, 아모리 족속은 쫓지 않았음(수19:40, 삿1:34, 삿18:7).
나. 흑암 현장을 이기고 정복하는 비밀 누리게 하소서(신분에 따른 권세).
•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이 무너지게 하소서(마12:28-29, 삼상17:45, 시35:1).
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 말씀의 흐름, 기도의 흐름, 전도의 흐름, 한 지역의 흐름, 한 나라와 시대의 흐름
• 지금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게 하소서.
라. 초대교회처럼 생명 걸고 복음의 길 가게 하소서!
• 회복 시켜주신 복음 가지고 237 나라, 5천 종족을 향해 나아가게 하소서.
• 영적 안일함이 아니라 깨어 영적 싸움 싸우게 하소서.
2. 부도덕한 시대
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원인을 깨닫게 하소서(삿19:22-23, 삿19:29).
•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사회적 타락과 사회적 부도덕이 찾아올 수밖에 없음.
• 영적으로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요삼1:2).
나.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 회복 운동, 하나님 아는 운동이 회복되게 하소서.
결론: 왕이 없다는 말은 불신앙의 시대를 말합니다(삿18:1, 삿19:1, 삿21:25). 단순히 지도자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대한 결론을 맺어야겠습니다(롬1:28). 그리스도 회복 운동, 하나님 회복 운동을 일으켜서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후대가 언약의 바톤을 이어받아 한 시대를 바꾸게 되길 축원합니다.
6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사 시대와 우리 시대”
(삿18:1-6)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아멘.
삿18:1-6
■ 축복을 선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요. 그 비밀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선포하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귀중한 예배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래 사사기서는 16장으로 마무리가 되어져야 하는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16장의 마지막 사사, 12대 사사죠. 삼손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16장으로 마무리 되어져야 하는데 마무리되지 않고, 17장부터 21장까지 부록처럼, 한 책의 제일 뒷부분에 보면 부록이 있죠.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는 것이 바로 사사기서입니다. 그런데 그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는 그 사사기서 안에 두 가지 사건이 나오는데, 하나는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미가의 집 안에 우상숭배 사건, 또 한 가지는 최초의 토막 살인 사건이 그 다음 장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 보았습니다. 혼란한, 어떤 면에서 혼잡한, 그러한 사사 시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마는, 시간 가면 갈수록 복음이 희미해지면서 결국 사사기서를 마무리 하면서 얼마나 혼잡하고, 혼란한 시대가 왔는가? 우리가 살펴보았는데 거기에 한 예로, 미가 라는 집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미가의 집에 신상도 만들어졌고, 신당도 예배하는 장소죠. 신당도 있는데 그 예배하는 장소 안에는 에봇도 있고, 드라빔도 있고, 이게 어떤 일입니까? 그리고 또한 떠돌아다니는 제사장을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 집안에, 우리 가정에 네가 제사장 하라, 이렇게 세워놓는 완전히 영적으로 타락하고, 영적으로 혼란한 이러한 시대가 바로 사사 시대였습니다.
그런 영적인 타락이 오게 된 그들의 사고방식은 어떤 사고방식이었느냐? 영적인 혼란함이 올 수밖에 없었던 사고방식은, 먼저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죠. 이 복음의 비밀들을 누리면 누릴수록, 참된 유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지는데, 복음 안에 있는 그 비밀들을 모르니까 참된 유익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결국은 뭐냐? 나 중심으로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시대에 가장 큰 전도 운동에 쓰임 받았던 바울은 그의 서신서를 보면 서신서 첫 장, 계속해서 이어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러한 단어들을 가지고 인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그러한 인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평안 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이야기하는 그런 인사 차원이 아닙니다. 바울은 바울의 서신서를 살펴보면 툭하면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얼마나 영적인 실상을 알았으면, 정말로 복음인 그리스도만이 유익이라는 답인 것을 알고, 그렇게 인사가 나누어졌던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영적인 비밀을 알고, 영적인 사실을 알면 알수록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축복으로 와짐을 깨닫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 모르고 있을 때 성공한 것, 과연 그게 성공일까?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복음 알고 있을 때 실패, 그것이 과연 실패냐? 아닙니다. 복음 알고 있는 사람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중요한 응답들을 놓고,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되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지는 귀한 시간표가 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의 실패는 전혀 실패가 아니에요. 복음 안에서 작은 것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큰 열매로 맺혀지게 되어 있고요, 복음 밖에서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복음 밖에 있는 사람은 큰 것, 그것 때문에 오히려 복음을 알지 못하게 되는 영원한 실패 가운데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나니까 모든 것이 유익하던 것들을 해로 여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복음 안에 있는 것, 그게 최고로 유익한 것입니다. 유익한 정도가 아니라, 복음 안에 있으면 그 모든 다른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복음 안에 참된 유익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한 신앙생활 속에서 이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 그 자체가 응답이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신분을 주었고, 신분에 따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의 응답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복을 달라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들을 살펴보세요. 거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기도하고 있는 기복주의적인 신앙 아닙니까? 어려우면 어렵다고 기도하고, 문제 있으면 문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렇다고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중심이 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복음보다도, 진짜 제대로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되면, 여러분 그게 최고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실은 기복적인 신앙에 빠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기도들, 거의 기복적인 기도가 왜 그러냐? 신분과 권세의 응답들이 누려지지 않기 때문에 기복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복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분과 권세를 주시고, 신분과 권세 가진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늘 항상 임마누엘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겁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이죠, 이 축복의 비밀을 놓치니까 우리도 모르게 의식주의에 빠지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동행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되는데, 우리도 모르게 그게 안 되니까 나도 모르게 의식주의적인 신앙생활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여러분 사사 시대에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것. 그래서 신분과 권세도 누리지 못하고, 그래서 임마누엘 축복도 누리지 못한다 라는 것. 그런데 사사 시대 뿐입니까? 지금 이 시대를 일컬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가 이기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사사 시대나 지금 시대나 동일한 사실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또 시대를 바라보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점점 이기적이 되어가요. 자신만 알고요, 자기의 유익만 챙기고요, 자기만 잘 되면 남은 어떻든 상관없이, 남을 짓밟고라도 우리는 승리해야 되고, 올라서야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사사 시대의 상황과 똑같이 맞아 떨어짐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사사 시대의 특성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이 사사 시대의 특성이 지금 살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 속에서 제대로 된 응답을 찾아 누리기 위해서는 사사 시대의 특성들을 제대로 알고, 우리는 그 사실에서 제대로 된 언약을 붙잡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1. 영적 안일주의임
그러면 첫 번째입니다. 사사 시대 특성 첫 번째입니다. 안일주의에 빠진 것이 사사 시대였습니다. 사사기18: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여기 한 지파가 나오는데 그 이름이 단 지파입니다. 그런데 그 단 지파는 거주할 땅을 구하고 있었다 라고 오늘 본문에 반드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각 지파마다 가나안 땅을 이미 다 분배를 해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가나안 땅을 앞두고,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 지파의 땅들을 다 분배를 한 거죠. 그 가운데 여호수아19:40절에 보면은 땅을 분할할 때에 단 지파의 몫도 분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 지파들이 차지해야 될 그 땅에 보면은 사사기1:34절에 보면은 그곳에 무시무시한 아모리 원주민들이 그 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단 지파가 그 땅을 자기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아모리 족속들, 원주민들을 쫓아내야만 하는 그런 상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면은 싸움을 해야 되는데 이들은 싸움을 하기를 싫어했어요. 솔직히 어떤 면에서 싸움하기를 싫어했다기보다도 자신이 없었다는 말이죠. 단순히 단 지파가 평안을 사랑하는 지파였기 때문에 아모리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그런 말은 아닙니다. 그다음 성경을 읽어보면은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8:7절, 9절, 29절에 보면은 라이스라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과의 싸움에서는 그들을 전쟁에서 이기게 되고, 그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단순히 단 지파가 평화를 사랑하는 그런 지파이기 때문에 아모리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은 것이 아닌 것이라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 싶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지역을 점령했고, 좀 어렵다 싶은 아모리 족속들, 하나님이 지명하지 아니하신 땅을 이들은 어떤 면에서 그들은 차지한 이런 부분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답을 낸다면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땅을 정복해야 되는데 자기들의 편리한 대로 라이스 사람은 쫓아내고, 아모리 사람들은 쫓아내지 아니하고 전쟁을 하지 않았다 라는 것.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분배해 준 땅인데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들은 전혀 관심 없었다 라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오늘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복을 약속해 주셨고, 가나안 정복을 보장해 주셨고,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그냥 빠져나온 것이 아니죠. 유월절 언약의 피의 비밀들을 가지고, 피의 비밀을 가지고 누리고, 그 피를 바르고, 그 엄청난 언약의 역사를 붙잡고, 출애굽 한 구원받은 백성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붙잡고, 피를 누리고, 그 언약 붙잡고 출애굽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당연히 가나안 땅은 정복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 순간에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저주와 재앙과 또 실패와 지옥 권세에서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게 구원받은 것이죠. 그런데 아울러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지옥과 또 저주와 재앙의 권세에서 해방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흑암을 정복하고, 이길 수 있는 권세까지도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건, 현장에서 흑암의 역사를 꺾는 역사가 먼저 일어나야 됩니다. 우리의 가정의 현장에서 흑암 꺾는 권세 누리는 역사가 먼저 일어나야 되고, 우리의 산업 현장에, 우리의 지역 현장에서도 흑암 꺾는 권세 먼저 누리는 그 축복의 역사들이 먼저 누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은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우리의 모든 응답의 시작은 뭐냐? 먼저 강한 자가 결박 되어져야 된다는 것. 우리 가정에도, 우리의 산업에도, 여러분 자녀의 현장에도, 우리의 지역 현장에도 여러분 때문에 강한 자가 결박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축복된 신분으로 권세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히려 당하고 있죠. 우리의 가정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 앞에, 우리의 자녀들 문제 앞에, 우리의 산업의 문제들 앞에 우리도 모르게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종 노릇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신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흑암 꺾는 권세를 주었는데 가장 먼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권세로 흑암 꺾는 권세를 주었는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신분에 따른 권세가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는 이 비밀을 놓쳐버린 겁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그 땅을 진멸하라.”, 무슨 말입니까? 그 땅에 있는 모든 우상의 세력들을 무너뜨리고, 흑암의 세력들을 무너뜨리고, 저주의 세력을 꺾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미 그 꺾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는 것을 보장하고 있는 말이죠. 다시 말하면은 현장을 정복하는 비밀, 모든 현장에 흑암 꺾는 비밀들을 주었다 라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은 골리앗 장군 앞에 섰습니다. 그 골리앗 장군 앞에 서서 다윗이 한 말입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나아오지만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능력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이야기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진짜 싸워야 될 싸움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골리앗이 아니라, 그 배후에 블레셋이 아니라 그 골리앗과 블레셋을 붙잡고 있는 흑암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말했습니다.
다윗이 시편35: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어 주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옵소서.”, 원수들의 공격 앞에 쫓겨 다니면서 다윗이 시를 짓고 기도한 내용인데, 여기에서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어 주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옵소서.”, 이 말은 지금 자기와 원수 되어 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을 놓고 기도한 거에요. 그러니까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어 주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옵소서.”, 그러니까 당연히 다윗은 한 시대 최고의 응답들을 누릴 수밖에 없었죠. 왜냐? 현장 이기는 영적 싸움의 비밀을 다윗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적인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에요. 자신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정복하는 축복을 누가 누리느냐? 이 다윗은 누릴 수밖에 없었다 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응답받을 자격이 당연히 있습니다. 응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는 사람은 현장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현장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는 비밀이 주어졌습니다. 이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여러분 롯과 같은 사람은 응답도 못 받고, 정복도 못했습니다. 현장 이기는 비밀과 정복의 비밀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또 노아와 그 가족들은 응답은 받았지만은 현장 정복의 비밀들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리지 못했어요. 결국 그 시대가 네피림 속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셉이나 다윗, 신약에 나오는 전도자 사도 바울은 응답도 받고, 그 시대를 정복하는 비밀도 누렸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응답도 받고, 그 시대를 정복하는 비밀. 여러분 여기서 그 시대를 정복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현장을 이기고, 현장을 정복한다는 말이에요. 그 응답들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못 누리고 있을 뿐이에요.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 서밋의 응답의 최고의 축복이 뭐냐?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현장 정복의 역사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현장 정복의 역사로 이루어져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의 역사를 누릴 것이냐? 다섯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찾아내서 찾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사업하는 분들도 무조건 그냥 사업하는 게 아니죠. 이리저리 다 따져보고, 계산해 보고, 또 이렇게 사업의 흐름을 보고, 투자할 것을 투자하고, 사업을 하잖아요? 그리고 진짜 돈 버는 사람은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인답니다. 돈의 흐름이 보인대요, 흐름들이 너무 중요하죠. 우리 렘넌트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작정 공부한다고 해서, 밤낮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공부 잘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공부의 흐름들을 보고 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짧은 시간에 공부하면서도 많은 지식들을 갖게 돼요. 그건 흐름을 본다는 말이에요.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말씀의 흐름이 있어요. 지금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분명히 말씀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의 흐름이 있고요. 말씀과 기도와 전도의 흐름이 보여지면은 한 지역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흐름이 반드시 보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한 시대의 흐름이 또한 보여지게 됩니다. 다시 반대로 말씀드릴게요. 한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우리가 볼 수 있다면은 한 지역의 흐름도 보여지게 되어 있고, 거기에 말씀도, 기도도, 전도도 성취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성취, 기도 응답, 전도의 성취, 한 나라의 흐름과 또 한 지역의 흐름들이 보여지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씀의 흐름만 보여지면 다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주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시고요. 말씀을 누가 성취시키느냐? 하나님께서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세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말씀의 흐름 속에 있어야 되죠. 말씀의 흐름 속에 있으면은 ‘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성취시키시는구나!’, 보여집니다. 말씀의 흐름도 놓치고 있는데 어떻게 말씀이 성취되는 걸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시켜도 말씀의 흐름 속에 있지 않으면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취시키는 말씀의 성취를 보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게 하나님 나라의 일인데 여러분 신앙생활 한번 돌이켜 보세요. ‘정말로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여러분 자신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정말로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여러분 없다면은 심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돼요. 여러분 삶에서 말씀의 성취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는 거에요.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을 주고, 그 말씀을 하나님이 성취시키는데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응답을 못 누리는 거에요.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들을 못 보느냐? 중요한 것은 내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배운 것이 있고, 들은 것이 있고,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게 신앙의 기준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못 봐요.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고, 듣고, 배운 것, 그게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각인 되고, 뿌리 내렸잖아요? 그리고 그게 각인 되고, 뿌리 내린 그게 내 생각이 굳어져 가지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성취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장을 정복하는 비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장 정복은 그 일을 위해서 다섯 가지 흐름의 비밀들을 여러분 가지고, 누리고, 찾아내야 돼요. 말씀의 흐름, 기도의 흐름, 전도의 흐름, 한 지역의 흐름과 한 나라의 흐름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흐름을 보면은 나머지는 다 따라옵니다. 기도의 흐름도 보여지게 되어 있고요, 전도의 흐름도 보여지게 되어 있고요, 한 지역의 흐름, 한 나라의 흐름도 보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단 지파,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었어요. 그걸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잖아요? 정복할 땅을 이미 분배해 주었는데 그 땅에는 관심 없고, 자기들이 쉬운 땅, 전쟁하기 쉬운 족속과 싸워가지고, 그들을 전쟁에서 물리치고 그들의 땅을 취했지만은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편한 땅이죠. 쉬운 땅은 취했지만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땅은 싸우지 않았다 라는 것, 아모리 원주민들은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들의 편한 대로, 편리한 방식대로 그들의 모든 영적인 삶을 이끌어갔던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편리함으로, 편리한 방식대로 하나님의 이미 분배해 준 그 땅의 언약은 놓쳐버리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여러분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편하기를 원하십니까? 편하다고 옳은 길은 아니에요. 그리고 꼭 어렵게 신앙생활 하느냐? 그 말 또한 아니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편한 것이 좋은 것이지, 그래서 신앙생활도 내 편한 대로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편하고, 어렵고 그게 기준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냐, 아니냐? 입니다. 아무리 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아니면은 그 결과는 뭐냐? 나중에 가서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지금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는 것이라면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복음의 역사들을 깨닫고, 복음을 누리고, 세계복음화 하는 역사의 열매들로 맺혀지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편하고, 편하지 않고 거기에 기준을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렵다, 쉽다 거기에 기준을 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느냐, 없느냐? 때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다 보면은 여러분 복음 전하는 일에 저와 여러분이 겪는 일 아닙니까? 원치 않는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때 잘 생각해야 돼요. 그게 우리에게 어려움을 줍니까? 그게 우리에게 손해를 가져다줍니까?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우리보다 더 큰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순교의 제물까지 되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이익 중심으로, 손해, 이익을 따지지 않고, 핍박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 걸고, 그 길을 간 겁니다, 복음의 길을 간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복음 운동하는 귀한 교회로 부르시고, 복음 운동하는 이러한 일들 가운데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현장들, 그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복음,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지고, 그 속에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듦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힘듦도, 어려움도, 문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에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고, 그 어려움과 문제와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갱신시켜 나가는 것이고, 저는 확신합니다. 기어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회복된 복음을 알고, 깨닫고, 누리고, 그 누림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 가지고 237 나라, 5천 종족까지 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일에 어려움 당하면 어떻습니까? 그 일에 핍박당하면 어떻습니까? 단순히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보일 뿐입니다, 속지 마세요. 그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여러분을 망하게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로역정 아시잖아요? 천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여정을 걸어가는 기독도,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맹수가 막 달려들려고 하고 있어요. 길을 가는데, 여정을 걸어가는데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미 그 맹수의 발목은 쇠고랑이 차져 있어요. 으르렁거릴 뿐입니다. 결코 복음의 역사들을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복음의 역사 속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사역들을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누가 뭐라 하든지 간에 우리에게 회복 되어진 복음, 그 복음을 최고로 누리고, 그 복음을 237 나라, 5천 종족을 향해서 선포하는 이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나가게 되는 그런 축복의 역사들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장을 이기고 정복하는 비밀을 우리에게 주었잖아요. 왜?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라고. 영적인 안일주의 여러분 무서운 겁니다. 사사 시대의 특성이 영적인 안일주의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서운 겁니다. 우리가 언약 없이 그냥 편안하게 한번 있어보세요. 여러분 말씀 듣지 않고 그냥 한 3일만 가만히 있어 보세요. 여러분 나도 모르게 온갖 세상 것으로 나를 내 생각들을 복잡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함을 알게 됩니다. 한 일주일 있어 보세요. 우리도 모르게 사탄 충만해지게 될 겁니다. 굉장히 공허해지게 되어 있고요. 한 것도 없는데 쉬었는데도 여러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있잖아요. 한 일이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그런 말 하는 사람 있잖아요?
여러분 이 시간 예배 드리러 여러분 오셨습니다. 이 시간에 영적인 힘을 얻는 사람, 이 예배 한 시간이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뭔가 모르게 자꾸 피곤에 빠지는 사람이 있어요.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평상시 우리의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영적인 안일함 속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영적인 안일함에 빠지면 결국은 뭐냐? 우리도 모르게 영적인 노예가 되어 버려요. 그래서 결국은 저주와 실패의 역사들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영적인 노예 되었다? 성공할 리가 없죠. 결과가 실패와 저주의 역사들로 완전히 무너지게 되어 있고, 점점 더 흑암 가운데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영적으로 깨어있는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인 안일함 속에 빠지지 말고, 여러분 이 시대를 놓고, 우리 자신들을 놓고, 정말로 영적으로 근신하여 깨어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우리 하나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도덕한 시대
두 번째입니다. 오늘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사사 시대에 따라오는 결과가 부도덕한 시대였음을 보게 돼요. 부도덕한 시대,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니까 우리가 도덕 운동을 하자, 윤리 운동을 하자? 심지어 기독교 단체들 가운데서도 기독교 윤리 운동하자? 이렇게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또 성경 공부하자? 좋습니다.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사회는 갈수록 부도덕함에 빠질까요? 오늘보다 우리의 후대들이 살 미래는 더 부도덕한 시대가 온다 라고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고 있어요.
디모데후서 3장에 여러분 읽어보세요.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 부모를 거역한다, 부도덕이 아닙니까? 여러분 사실은 디모데후서 3장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이 하나같이 부도덕한 시대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지난주에 한번 설명해 드렸죠. 사사기19:22-23절에 여기도 보면은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내가 그와 상관하리라.”, 동성 연애하겠다는 말이에요. 롯이 멸망할 소돔, 고모라에 일어났던 동성연애, 여기도 또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돼요.
그런데 거기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19:25-29절에 보면은 첩이 강간당해서 죽게 됩니다. 자, 동성연애 하겠다고 요구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러면은 동성연애는 안 되니까 내 첩을 가지라고 하면서 첩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첩을 내놓으니까 그 찾아온 사람들이 그 첩을 가지고 밤새도록 이 첩과 이상한 짓을 한 거에요. 그러니까 그 첩이 겨우 새벽에 집 문턱에 와서 툭 쓰러졌는데 나가서 흔들어 보니까 죽었어요. 밤새도록 어려움 당하다가 집에 문턱에 와서 쓰러졌는데 흔들어 보니까 죽었어요. 그러니까 죽은 그 시체를 열두 토막, 끔찍스러운 말 아닙니까 사실은. 시체를 12토막을 내가지고 각 지파에 한 토막씩 보냈어요. 이게 사사시대에 일어났던 진짜 입에 담기 어려운 이런 부도덕한 시대가 사사시대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면 왜 부도덕한 이러한 시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느냐? 그 원인을 우리는 찾아내야 합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 요인들을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도덕 운동 안 해서, 윤리 운동 안 해서? 아닙니다. 아무리 윤리 운동한다고, 도덕 운동을 한다 할지라도 물론 해야 되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원인이 어디 있냐?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타락이 오게 되고, 사회적인 부도덕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라는 사실 성경 보세요. 19:1절 보세요. 레위 사람에게 첩이 있었다 했어요.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했다.”, 아니 제사장이 첩을 두었다 라는 거에요.
2절 보세요. 그 첩도 그냥 첩이 아니라 “그 첩이 행음했다.”,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으면 제사장이 첩을 두고, 그 첩조차도 행음하고, 3절에 보면은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아주 사랑스러워 가지고 막 다정하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 다정하게 말했던 이 배경에는 그 여자와 즐길 목적으로, 성적인 즐길 목적으로 했다 라는 그게 다정하게 말하고에요. 무슨 말입니까?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적인 타락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또 정신적인 문제도, 또 뭔가 모르게 마음의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먼저 영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육신과 마음과 정신들, 생각들이 무너집니다. 삶조차도 먼저 영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일서3:2절에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된다.”, 라고 했어요. 영적으로 무너지면 안 돼요. 영적으로 무너지면 그다음에 모든 것들이 따라서 무너지는 결과가 오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에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니까 사회조차도 완전히 타락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 부도덕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에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장을 이기는 비밀, 세계복음화 하는 세계 정복의 비밀들을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는 그 비밀을 주었는데 그 비밀을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현장 이기는 비밀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사에 보면은 영국에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1903년에 로버츠 목사님에 의해서 영국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사실은 그때 영국에 주일마다 장사들이 스톱 되어졌고, 아예 모든 도둑놈들도 회개하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회개하고, 실제로 엄청난 사회적인 변화가 극장도 문 닫고, 주일날 되면은 술집도 문 닫고, 이런 결과들이 일어났어요. 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변화가 일어났어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니까, 영적인 부흥 운동이 일어나니까 그 사회가 변화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동시대, 어떻게 보면 동년입니다. 한국에도 평양에서 일어난 일들이 평양 대부흥 운동 여러분 아시죠? 1903년 평양 대흥 운동, 그때 도둑놈들이 와서 회개하고, 도둑질했던 것을 다 내어놓게 되고, 이런 운동들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었어요. 영국에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최고 절정이 1907년에 한국에 오순절의 역사라 해가지고 가장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시대에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 시대도 사회적인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은 당연히 우리가 언약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를 놓고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진짜 그리스도 회복 운동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운동이 저와 여러분 우리교회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이 시대를 살릴 답이 없기 때문에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교회에 그리스도 운동, 하나님을 아는 운동이 일어나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축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가 없어요. 시대의 흐름들을 치유할 수가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 운동이 일어나야 시대가 바뀌어지고, 사회가 변화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18:1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또 19:1절에도 보면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마지막 사사기서를 결론 맺으면서 21:25절에도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무슨 말입니까?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왕이 없었다는 말은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여기서 왕이 없으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말은 단순히 이스라엘에 훌륭한 지도자가 없어서 이런 어려운 문제가 왔다? 그 사실을 말하기 위함입니까? 그런 의도의 말씀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들이 거기에 담겨져 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서에 들어가기 이전에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왕이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었습니다. 또 사사 시대에도 왜 이런 어려움들이 계속되었느냐?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이신데 그 왕인 하나님의 역사들을 거부하고, 인정치 않아서 사사 시대의 역사들이 계속되어 졌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 이상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나님이 남아 있지 않았고요. 어떤 면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는 있었을지 모르지만은 성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들이 상실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들이 상실되어 지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우상숭배요, 또 다른 것들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반복된 실패의 이유였습니다.
그렇다면은 오늘 이 시대를 결론 맺으십시다. 사사 시대뿐이 아니라 로마서1:2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음에 사람들이 하나님 두기를 뭘 한다고요? 싫어하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 왜 내어버려 두셨느냐? 마음에 사람들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데 왜 내어버리셨느냐?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터뜨리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이 한 시대에 하나님 아는 운동, 하나님 회복 운동, 그리스도 회복 운동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결론이죠. 그 역사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진짜 이 시대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사람들의 종교 의식 실태를 조사했는데요, 이미 좀 오래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부분들이 너무나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어가지고,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미국의 통계인데요.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 파악을 했어요. 우리가 알듯이 미국은 청교도로 시작된 미국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 파악하니까 한 78%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았는데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의 원리로 살아가느냐?’, 물었더니만 거기에 대답한 사람이 말씀의 원리로 살아간다는 사람들은 28%밖에 안 되었어요.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할지라도 실제로 현장 이기는 지금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그 비밀을 누리지 못하고, 안 누리고 살아간다는 거에요 사실은.
그게 오늘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 지식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현장 이기는 비밀은 없잖아요? 우리교회에 그리스도 회복 운동, 하나님 회복 운동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시대를 변화시키는 그 축복의 주역으로 서고, 우리 후대들이 또한 그 축복의 언약의 바톤을 받아서 우리 후대들도 한 시대를 살리는 그 축복된 주역으로 한 시대를 바꾸어 나가는 이 역사 속에 저와 여러분이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시대를 보는 전도제자의 기도
1. 문제와 지금 서 있는 현장이 영적으로 정복해야 할 현장임을 보게 하옵소서.
2. 참된 응답의 비밀과 세계정복의 비밀을 찾아 누리게 하옵소서.
3. 현장을 변화시키고 영적문제 해결하는 시대적인 비밀 가진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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