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니
2025-11-02 14: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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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주일 1부 예배   김삼현 목사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니
(시23:1-6)

   
서론: 급변하는 이 시대에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와 말씀, 기도를 놓치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누구와 함께하는지를 모르고 방황하게 됩니다. 다윗의 인생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비밀을 누리며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시편 23편). 평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사람으로 하나님이 빚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언제나 나의 목자이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1. 골리앗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가. 내 앞에 골리앗과 같은 문제와 사건, 나의 연약함에 속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게 하옵소서(삼상17:45).
  나. 두려움과 비교 의식으로 인해 오는 영적문제와 정신 문제에 빠지지 않고, 나와 함께하시며 목자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삼상17:37).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밧세바 사건 - 죄를 지었을 때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영적 긴장감을 놓쳐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나. 지금도 욕심과 정욕으로 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속이는 사탄에게 속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비밀 누리게 하옵소서. 
  다. 그리스도 아닌 다른 것들로 살아가는 내 안에 죄를 발견하며 회개하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에 충분함을 날마다 고백하게 하옵소서(눅5:32). 

 3.  압살롬 반역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가. 죄를 묵인하며 더 큰 죄가 일어남을 알고, 죄에서 돌이켜 함께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나.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싸우지 않고, 나를 구원하고 용서하신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다.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관계 사이에 하나님만 들어가게 하옵소서.
   
결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며, 하나님으로 늘 충분함을 고백하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과정 중에 오는 위험과 유혹, 배신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심을 고백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내 동기와 욕심, 계획, 야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 주간 오직 주만 바라보며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예배자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11월 2일 주일 1부 예배 김삼현 목사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니”
(시23:1-6)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시23:1-6

  ■ 우리 옆에 분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호와는 언제나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담임목사님은 지난주 월요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중남미 사역 중에 계십니다. 여러분 무시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통역으로 사역하시는 우리 박요한 목사님, 그리고 박근석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최상국 목사님, 박관희 목사님도 함께 하십니다.
 오늘은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 나누겠습니다. 요즘 세대가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발전하고, 변하고 있죠. 산업도, 문화도, 그리고 언어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되죠. 소중한 사람들, 가족들, 건강, 결국 자신을 놓치게 됩니다. 진짜 중요한 신앙생활, 복음을 놓칠 수도 있다 라는 거에요. 바쁘게 살다 보면 기도, 말씀, 예배를 자연스럽게 놓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오면 어느 날 ‘하나님이 살아 있나?’,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죠.
 요즘 건망증 가지신 분들이 참 많아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순간순간 깜빡깜빡하죠. 어떤 건망증 심한 분이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어요. 한참 가다 보니까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그래서 택시 기사에게 물어봤습니다. ‘기사님 지금 어디로 갑니까?’, 택시 기사가 ‘어이 깜짝이야. 언제 탔어요?’, 이 기사님은 손님이 탔는지도 모르고,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와 말씀을 놓치면은 영적 건망증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그걸 놓치게 되니까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윗처럼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가 함께하시는 그 비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인생은 목동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과 음모, 가정의 아픔을 가진 드라마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라는 이 신앙 중심의 고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결론은 부족함이 없다 라는 거에요. 시편 23편의 집필 시기와 배경은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만큼은 다윗의 평생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평탄한 길만 허락하지 않았죠. 모든 과정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사람으로 빚어가셨습니다. 오늘 다윗의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목자이심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골리앗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첫 번째로 골리앗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무엘상17:1-58절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다윗과 골리앗 사건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용을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앞에 골리앗 같은 참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 골치 아픈 사람, 그리고 상처, 나의 연약함. 하지만 다윗 앞에서 그 골리앗은 사울 왕과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했던 그런 시대적인, 국가적인 위기가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탄의 일로 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영안이 열려 있기 때문에 영적 싸움의 대상을 쉽게 파악합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은 무기, 전술, 피지컬의 싸움이 아니에요. 내 안에 영적 무기력과 불신앙과 두려움이 골리앗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우리는 믿음의 중심을 갖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워야 됩니다. 사무엘상17:45절에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지금으로 치면 다윗은 한 중2 정도 되는 소년이었지만 영적 거인이었어요. 골리앗의 겉모습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괴물이었지만, 실상은 사탄의 꼭두각시였습니다. 다윗의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에서 그 능력이 나왔습니다. 다윗의 과거, 평상시의 삶을 보면은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24시 임마누엘을 누렸어요. 사무엘상17:37절에 보면은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지셨다. 그래서 당연하게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지시리다. 주님이 함께하는 영적인 비밀을 다윗이 평소에 누리고 있었던 거에요.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기 전에 골리앗과 대결을 해야 된다. 막 기도를 하고 갔겠습니까? 아니에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간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배달의 민족이죠. 배달 갔다가 골리앗을 본 거에요. 그 말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놓치고, 성령충만을 놓치고, 기도를 놓치면은 영적으로 어느새 무너져 있게 됩니다. 그래서 골리앗 같은 문제가 왔다? 벌벌 떨 수밖에 없죠. 성경에는 365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은 영이에요. 사탄이 활용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적문제의 시작은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정신 문제의 시작도 두려움에서 시작돼요. 행복한 사람들은 절대로 정신 문제에 안 걸립니다. 생각과 마음, 과거에 대한 상처가 또 반복될까봐 두려움이 결국에는 나를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골리앗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있다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그 고백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나는 충분하다는 얘기에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교 의식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전설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엄마 친구 아들’, 누군지 몰라요. 하지만 그 엄마 친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돕고, 결혼도 잘합니다. 그 엄마 친구 아들 때문에 우리 렘넌트들이 시달리고 있어요. 그건 유니콘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힘들어요. 이 광야 같은 인생 가운데 주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고, 스펙을 쌓아야 되는 거에요.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될 때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인생을 통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지만 늘 아프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님이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아픈 데 집중하지 말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거기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먼저 구원하신 거에요. ‘아, 전도자로 날 불렀구나!’, 그게 지금 오늘의 응답입니다. 나아야지 응답이 아니라 지금 내 상태가 응답인 거에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2. 밧세바 사건 - 죄를 지었을 때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두 번째로 밧세바 사건, 죄를 지었을 때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는 진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엄청난 시편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이렇게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다스린 지 한 18년, 20년쯤 될 때 다윗이 서른 살 때 왕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한 20년, 그러고 나서 50세쯤 되었을 때 이 밧세바 사건이 터집니다. 사무엘하11:1절에 보면은 그 내용이 나옵니다. 20년 다스리니까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되고, 전쟁에 다윗이 나가지 않아도 시스템이 잘 돌아갈 만큼 전투력이 좋았습니다. 영적 긴장감이 사라지니까 다윗의 눈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때 외로웠냐? 아니에요. 이미 부인이 7명이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분 있죠? 성경 좀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하5:13절에 보면은 더 아내를 두고 또 아들, 딸들을 낳았다 라고 나옵니다. 아내 이름이 이제 아내가 7명이기 때문에 이름을 다 말하면 너무 길고, 그냥 아내 1호, 2호로 얘기하겠습니다. 부인 1호가 미갈이죠, 사울 왕의 딸입니다. 이 미갈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인 2호를 통하여서 암논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달아서 이렇게 7명의 아내들이 생기죠. 참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죠. 그리고 인간은 정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단순히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 아니라 사실 이 사건은 십계명의 6계명부터 10계명을 범한 거에요. 하나님을 놓쳤을 때 그다음 계명들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만큼 권력이라는 게 무서워요. 권력을 잡으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놓치게 됩니다.
 여러분 직장 생활 많이 하시지만 직장 내에서 그 권력 구도 참 무섭죠. 저도 청년들이 이렇게 직장 생활의 어려운 것들을 상담을 많이 합니다. 상사 때문에 힘들고, 그 안에 또 정치적 세력들이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 때문에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요. ‘때려 치워라.’, 그러면 놀랍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해요 대부분 보면. 당장 그만둘 사람들은 저까지 오지도 않아요. 이미 그만두고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비밀을 놓치면은 세상 권력에 눌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나와 보면은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 또 일찍 조기 퇴직하시는 분들 보면은 그 안에서는 어떤 네임드가 있는 것 같지만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만큼 권력은 사실 부질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시간표를 진짜 잘 활용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 비밀을 놓친다면은 오늘 다윗처럼 그 권력을 갖고, 죄를 지을 수 있다 라는 거에요.
 여러분 밧세바 사건은 설명 안 드려도 다들 잘 아시죠? 밧세바가 누굽니까? 충신 우리야 장군의 아내에요. 그 아내를 임신시키고, 그걸 숨기기 위해서 또 여러 가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야에게 휴가를 줘서 집으로 불러들여요. 우리야가 집에서 밧세바랑 잠을 자야 되는데, 자기 전우들은 전쟁터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편하게 잘 수 있습니까? 집에 안 들어갑니다. 진짜 멋있는 사람이죠. 다윗은 그 사람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자기 위에 있는 사령관에게 이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라. 이 우리야는 자기를 살해할 편지를 가지고 다시 전쟁터에 가서 죽게 되죠. 이런 계획적인 살인이 일반 살인보다 더 죄질이 무겁습니다. 자기의 권력,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교묘한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12:7-9절에 보면은 나단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다윗의 죄를 드러내게 되죠.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나단 선지자는 목숨 걸고 간 거에요. 다윗이 그만큼 죄를 지을 정도면은 그 죄를 드러냈을 때 그 권력 가진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나단이 절단 날 수 있는데 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한 것이죠. 누가복음5:32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은 죄인을 찾아오십니다. 내 안에 반복되는 흑암의 실체가 있죠. 반복해서 짓는 죄, 그런데 그 죄가 언제 활성화되냐? 잘될 때에요, 잘 나갈 때입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내 안에 밧세바 여러분 지금 발견하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귀의 유혹은 너무 달콤해요. 이걸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까 어떻게 보였습니까?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라고 나옵니다. 그게 마귀의 유혹이에요. 그래서 내가 충족될 만한 것들, 내가 달콤하게 느끼는 것들, 거기에는 반드시 여러분 기도로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았죠. 그는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목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시편51:10-1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때 시편23:3절 말씀처럼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죄 지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없애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죄인이에요.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대신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이미 죄가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아도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게 승리의 고백이에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충분합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것 때문에 더 가지려고 하고, 거짓말을 하려고 하고, 남의 것들을 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충분합니다.’, 없다 할지라도 여러분 충분하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채워주세요. 옛날 없다, 없다 라고 하니까 ‘아, 없구나 그러면 없이 살아라.’, 이렇게 허락하신 거에요. 제가 늘 얘기하는 게 있죠. 부정적인 기도하지 마라. 우리는 늘 달라고 얘기합니다, 결핍의 기도에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어떻게요? 범사에 감사하면서. 여러분 늘 충분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거에요. 그 고백이 내 안에 밧세바를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3. 압살롬 반역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세 번째로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셨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죠. 그 배신과 상처, 충격 엄청났을 겁니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그 배경이 있습니다. 다시 다윗의 부인으로 가면은, 압살롬이 누구냐면은 다윗의 부인 4호입니다, 네 번째 부인이에요. 그 네 번째 부인이 압살롬과 딸 다말을 낳았습니다. 사무엘하13:11-17절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 부인 2호 암논이 4호 부인 딸 다말을 강간을 하게 되죠. 그리고 버려버립니다. 그래서 이 다말이 오빠인 압살롬에게 가서 처절하게 그 상처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왕실에서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은 다윗 왕에게 보고가 올라가죠. 이 사건을 들은 다윗은 사무엘하13:21절에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였으나. 자, 각오하세요. 심히 노하였으나, 그걸로 끝이에요. 심히 노하였기 때문에 이 암논을 당장 끌어들여서 이렇게 자르든지, 태형을 하든지, 감옥에 넣든지 형벌을 내려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다윗 왕이 화만 내고 끝낸 거에요. 압살롬이 어떻겠습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에요. 아버지가, 왕이, 그리고 이때는 왕이 거의 판사거든요? 판사가 판결을 제대로 못 내렸다? 내가 심판해야 되겠다. 압살롬이 2년 후에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압살롬에게 많이 좀 몰렸어요, 많이 따랐습니다. 그 기회를 잡아서 쿠데타를 꿈꾸게 되었죠. 그러면 다윗이 왜 암논을 벌하지 않았습니까? 밧세바 사건이 걸리는 거에요. ‘아, 나도 그랬지.’, 면이 없는 거에요. 아버지도 그랬잖아요?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그리고 정치적으로 볼 때 암논은 다윗의 장자입니다, 왕권을 계승할 사람이에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국민들의 여러 가지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거에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쓱 넘어가려고 했던 겁니다. 죄를 묵인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더 큰 죄가 일어난다는 거에요. 주님 앞에 서야 되는데 그냥 자기의 어떠함으로 이 죄를 몰라볼 때 압살롬은 반역을 꿈꾸게 됩니다.
 사무엘하15:6절에 보면은 “이와 같이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훔치니라.”, 사람들이 다윗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죠. 이때 다윗이 민생 지원도 좀 해 주고 하면 좋은데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권력 다툼에 늘 긴장된 상태였죠. 이 여세를 몰아서 압살롬의 반역을 도운 2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주된 참모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원래는 누구냐면은 다윗의 정책 자문관, 곧 다윗의 제갈공명 같은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이 어느 정도로 유능하냐면은 사무엘하16:23절에 보면 그때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보는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 전략은 백발 백중이라는 얘기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다윗 정치력에 문제가 왔을 때 압살롬에게 돌아선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아히도벨이 누구냐면은 다윗의 부인 8번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이 아히도벨은 늘 다윗 옆에서 다윗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어요. 자기의 너무 예쁜 손녀, 그 손녀를 갖기 위해서 손녀의 사위를 죽인 살인자, 아주 나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정치력에도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죠. 아히도벨의 계략은 탁월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막았어요. 왜 막았냐? 후새라는 또 다른 인물을 통해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도운 사람이 아이도빌과 후새에요. 후새가 누구냐면은 겉으로는 압살롬을 도운 것 같지만 실상은 다윗의 스파이였습니다. 사무엘하15:32-37절에 보면 이 내용이 나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게 하기 위해서 다윗에게서 이렇게 나간 다윗의 사람이죠. 그래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이 후새의 계략을 통하여서 막 지연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아히도벨 같은 경우에는 한 번도 자기 계략이 실패한 적이 없는데 압살롬에게 와서 자기 계략이 채택되지 않은 거에요. 사무엘하17:23절에 보면은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자기 집으로 가서 자살합니다.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자기의 어떠함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 결국에는 마귀에게 속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님이 후새를 통해 사용했다 라는 겁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조언을 무시하고, 후새의 말대로 전쟁을 지연시킵니다. 그 지연시키는 시간을 통해서 다윗은 도망을 하고, 결국에는 압살롬이 패배합니다. 사무엘하15:31절에 보면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는 다윗의 기도가 응답되었죠. 이렇게 후새가 도와줬지만 사무엘하15:30절에 보면은 다윗이 감람산으로 도망갈 때 머리를 가르고, 맨발로 도망갔습니다. 왕의 자리를 잃고, 아들의 반역으로 쫓겨나는 길, 그 길을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부족함이 없음은 주님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은 것처럼 억울할 때, 힘들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과 싸울 수 있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았어요. 결국 복수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압살롬이 머리가 길었어요, 굉장히 잘생겼습니다. 전쟁 중 말을 타고 가다가 이 긴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이상하게 죽게 됩니다. 그때 사무엘하18:33절에 보면은 다윗이 통곡을 해요.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내가 죽었어야 되는데, 다윗은 반역한 아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버지로서 목자 된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슬퍼했습니다. 여러분 아들의 반역보다 아들을 잃은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상처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처럼 누구에게나 슬픈 가정사, 슬픈 인생사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배신과 상처로 결론 내리지 마시고, 용서로 마무리 지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나 중심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용서하고, 구원하신 그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돼요. ‘주님. 나를 위로해 주시고, 나를 치유해 주시옵소서.’, 여러분 절대로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실망하지 마세요. 기대한 만큼 실망합니다. ‘오빠 실망이야.’, 오빠들, 남자들은 늘 힘들어요. 알 수 없는 여자들의 마음을 우리는 늘 예측해야 됩니다.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오빠 나 살쪘지?’, ‘어.’, 그러는 순간 끝장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시작됩니다. ‘아니야 네가 제일 이뻐.’, 여러분 때로는 거짓말이 우리의 영혼을, 육신을 살리게 됩니다. 요즘에 황혼 이혼율이 굉장히 높죠. 우리나라가 한 20년, 30년 전만 해도 남자들이 참 살 만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이때까지 눌려왔던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심판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했던 그 어머니들이 지금 와서 ‘내가 이 나이 될 때까지 밥해 주고, 시중 들어야 되냐?’, 이런 황혼 이혼이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요즘 어르신들은 이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답니다. 최대한 집에 안 들어가는 거에요. 아침에 나와서 밤에 들어가는, 그래도 이 부인들이 요즘에는 이제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이 나오잖아요? 남자는 여성 호르몬이 나오고, 매 맞는 어르신들이 그리 많대요 요새에. 어떤 70대 어르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제 밖에 나가려고 준비하다가 맞았대요, 아침부터 눈에 띈다고. 어떤 80세 어르신은 2시간을 맞았답니다. 아침에 눈 떴다고, 눈을 계속 감고 가셔야 되는데 안 갔다고. 어떤 90세 할아버지는 3시간을 맞았대요. 아침에 자는데 부인이 갑자기 문을 열고 확 들어와서 네 친구들은 다 산에서 자는데 너는 왜 집에서 자냐고. 하나님만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배우자도 믿을 게 못 돼요, 우리 집사람은 예외입니다. 사람에게 기대한 만큼 남는 건 실망과 상처밖에 없어요. 여러분 영적으로 거리 두기 하시기 바랍니다.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만 들어가야 돼요. 아멘.

 결론입니다.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시고, 그 하나님으로 나는 늘 충분합니다. 여러분 이 고백을 적용하는 예배자로 사시길 바랍니다. 다윗의 삶은 우리가 늘 다윗의 어떤 성공한 것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괜찮게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좀 힘든 막장 드라마 같은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끝까지 붙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러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 인생의 각 어려움마다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밧세바의 유혹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압살롬의 배신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세 번째로 예배자는 상황과 형편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왕이기 전에 예배자였습니다. 다니엘도 예배자였어요. 요셉도 예배자였어요. 여러분 인생에 하나님만 예배자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고백을 하지만 참 잘 안될 때가 많죠. 여러분 내가 없을 때, 내가 죽을 때 여호와만 나의 목자가 됩니다. 갈라디아서2:20절이죠. 내 동기, 욕심, 야망, 계획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본질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할 그리스도만이 본질입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도 오직 주만 바라보며 삶 속에서 모든 우상을 내려놓고, 예배자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여호와는 언제나 나의 목자이시니
1.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 누리게 하소서.
2. 세상 유혹과 나의 기준과 우상에 속지 않는 말씀 충만, 성령충만함을 주소서.
3. 나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변화되는 응답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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