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2020-04-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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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롬12:1~2
■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인사하십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지금 우리가 예배를 이렇게 드린 지가 가만히 보니까 2달째 되어가요. 오늘 8번째 주일에 이렇게 그나마 대학부 청년부들이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3월 22일부터 시작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이 시간에 이제 대학부 청년부들 예배를 드리고 또 다음 주부터 광고가 나갑니다마는 각 지역별로 1부, 2부, 오후예배 나누어서 또 예배가 드려지게 됩니다. 지금 어려운 시간들을 모두가 지나고 있습니다. 민족으로도 그렇고요, 또 우리 개개인으로도 그렇고요, 또 실제로 경제도 어렵고, 또 우리 학생들은 학업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또 건강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부분들이 영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은혜의 풍성함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어지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 우리가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가정 가정 현장 속에서 개인교회의 축복을 누리며 단을 쌓고 있는 그런 분들도 거의 대부분이 인도를 잘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렇지 못하여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육부서에서 주일학교에서 우리 교역자들 중심으로 해서 각 교육부서들을 챙기고 있는데요, 심지어는 우리 교역자들이 선물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또 온라인으로 매일 우리 아이들을 만나서 어떻든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또 애쓰는 부분들을 보게 되어 집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뭔가 좀 삶에 여유가 있고, 또 편리해지면 나도 모르게 어떤 면에서는 전염병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음에 매몰 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좋지 않은 면도 있잖아요. 그런데 생활 속에서 좋지 않은 면들이 더욱 더 익숙해지고요, 그게 더욱 더 빠르게 습관화되어지고 체질화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이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순간 한 순 간 영적싸움을 싸움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진행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분 진지하게 생각들 해 보시고요, 또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정말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4세기에 흑사병이 일어나도, 또 세계대전들이 일어났어도 예배당 문이 닫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들은 예배당 문이 닫혀져서 예배를 마음껏 자유롭게 드릴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들 통해서 여러분 지난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 드렸는가를 한번 살펴봐야 되고요, 또 정말로 언젠가는 우리가 또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날이, 그런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모여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는 그날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함으로 나가야 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준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리 어른 분들도 하나같이 빨리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마는, 또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빨리 하나교회 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쳐요. 아마 조만간 다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지난 날 우리가 예배드렸던 부분들이 어떻게 예배드려졌었고, 또 하나님이 정말로 내게 어떠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가 이런 부분들 가지고 정말로 살아있는 예배로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그런 준비들을 해야 하는 시간들이 지금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교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예배가 너무 중요합니다. 또 예배성공이 인생의 성공이고, 우리교회 표어도 있잖아요. 예배성공이 영육의 성공입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진짜 믿지 않았어요. 정말로 믿지 않았어요. 그냥 단순히 교인들을 인도해야 하니까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성공이 인생성공이다 그렇게 앞서서 이야기는 했지만, 제가 이번에 이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가 예배성공이 인생성공이고, 예배성공이 영육간의 성공인 것을 믿지 않았구나 이런 부분들이 더욱더 깨달아졌었어요.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릴 날이 올 겁니다. 그때 그냥 모여서 예배드린다 그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런 시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하고 말씀하신 곳이 있어요. 이제 성전 문을 닫자 이렇게 말씀하신 곳이 있어요. 여러분 무시무시한 말이지요. 이 말은 요, 성경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말인데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언제냐 하면은 말라기1: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이제는 성전 문을 닫자, 성전 문을 닫는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왜 성전 문을 닫자고 하느냐? 말라기1:7~8절에 살펴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배가 더러운 떡을 가지고 나오고, 눈먼 생선을 가지고 나오고, 저는 것, 병든 것,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린다고 하니까 한 마디로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악행 하는 그 부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문 닫자라고 했어요. 성전 문을 닫자 했어요. 여러분 그러면서 말라기1:8절에 보면 총독에게 너희가 그 재물을 가지고 드려봐라 총독이 그것을 받겠으며 그것을 기뻐하겠느냐? 아니, 사람도 그것을 받지 않고, 기뻐하지 않을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고 갖고 나오니 그것을 받겠느냐 아예 그럴 바에는 성전 문을 닫아 버리자 라고 말라기1:1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자 라는 이 무시무시한 말을 하시는데 이것의 하나님의 본래 진위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이제는 때려치우자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이전까지의 그런 예배는 다 치우자 라는 거예요. 형식적이고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그런 예배들을 다 치우자라는 말이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될 것인가?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될 것인가?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서 예배 할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인데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인가?
1. 산 제사
먼저 첫 번째입니다. 산제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의 타락은 예배에 있었습니다. 예배가 무기력해지고 예배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찾아온 것이 그 시대의 타락이었어요. 언제나, 예배가 무기력해지고, 예배가 생명력을 잃게 되니까 그 시대의 타락이 찾아왔고, 그 시대의 타락 뒤에는 결국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재앙의 역사가 왔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천지만물을 왜 창조하셨습니까?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 전도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예배회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다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살펴보았지요. 모든 혈육이 다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말씀하셨어요. 이사야서를 마무리하면서 이사야66장에 마지막에 뭐라 했습니까? 모든 혈육이 다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지요. 우리가 장차 가야될 계시록21:1~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그 하나님의 나라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누려야 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잠시잠깐입니다마는 이 땅에서 누려야 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요 응답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행전1:3절에 보면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집중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이 뭐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의 일, 그 축복을 누리는 그 시간이 뭐냐?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는 천국의 잔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더 은밀히 말하면 예배는 하늘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시간이 언제이냐? 예배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7장에도 보면 참 은혜로운 찬송인데요, 거기 보면 이런 찬송 가사가 있습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난다 했어요. 예배는 어떤 것이 예배냐?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해 같이 빛나는 그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을 뵙는 그런 시간들이 바로 예배의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찬송가27장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보좌 앞에 나가는 그래서 주님 앞에 있는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예배가 세상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을 가지고 산제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예배가 천국의 잔치요, 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이 축복된 예배가 세상으로 전달되어지고 세상 속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을 가지고 산제사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다 라는 찾아내는 것이고요, 세상 속에서의 예배는 모든 것인 하나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세상 속에서... 많은 분들이 예배 따로, 세상 따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인생의 이런저런 많은 고난과 고통들, 많은 수고와 아픔들, 인생의 여러 가지 것들 다 겪고 나서 결국은 우리 인생이 정말로 영원한 축복은 예배밖에 없구나 쉽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마는 아마 젊은 청년들,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예배 따로, 세상 따로 아니냐? 우리가 직장 속에 들어가 보니까, 또 학교 현장에 들어가 보니까 예배 따로, 세상 따로 살아야지, 그게 지혜로운 삶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예배는 따로 고, 세상은 따로 다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여러분 그게 어리석은 것이고요, 그게 착각 중에 착각이고, 그게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세상은 맞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왜 재앙과 고통이 이 땅에 끊임없이 일어나느냐?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지 않으니까 끊임없는 재앙과 고통들이 이 땅에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은 맞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직장 생활 해 보십시오. 말씀 전혀, 예배 전혀, 직장 속에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게 맞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분명한 것은요, 그 사람의 그 인생은 어렵고 고난 가운데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착각이 뭐냐? 예배 따로, 세상 따로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착각이 왜 오는 지 아십니까? 정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은 예배가 세상 속으로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못 누리니까 예배 따로, 세상 따로 라는 이런 착각 속에 빠지게 되어지는 부분들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배가 반드시 어디로 연결되어져야 되느냐? 바로 세상 속으로 그대로 전달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건과 우리의 일들 속에 이 예배가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건을 일으키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증인으로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지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일들 속에 저와 여러분을 그 일의 해결자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설령,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제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문제 앞에서 답을 주는 자로 서게 됩니다. 이게 바로 산제사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비밀들이 세상 속으로 전달되어지고, 이것이 우리의 사건과 일 속으로 연결되어지게 될 때에, 결국 우리는 그 속에서 그냥 단순한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증인으로 서게 되는 것이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을 해결하는 해결자로 서게 되는 것이고,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자들로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산제사다 말씀하고 있어요. 초대교회 예배를 보십시오. 여러분 초대교회는 산제사 였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현장의 사건들 속에 그 사건들을 해결하는 증인으로 섰고요, 여러 가지 이런저런 일들 속에 그 일들을 해결하는 해결자로 섰고요,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많은 문제들 속에 그 문제의 답을 주는 자로 섰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던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산 제사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 이러한 시간들 통해서 우리 모두가 회복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배의 주인공
두 번째입니다. 예배의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되겠지요. 여러분 예배의 주인공이 누구십니까? 우리가 누가 보라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예배는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복 받기 위해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일에 큰 힘을 얻어야 일주일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목표, 예배의 목적이 무엇이냐? 오직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말라기1:10절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말라기1:11절에 보면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 까지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말라기1:11절 거기 보면 모든 민족이 나아오는데 거기에 깨끗한 제물을 가지고 나온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 까지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이 크게 될 것인데 거기에 나아오는 모든 이방민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깨끗한 제물을 가지고 나아온다 했습니다. 여기에 깨끗한 제물의 실제가 누구입니까? 말라기 1:14절에 보면 우리가 서원하게 되고 그 서원에 대한 제사를 드릴 때에 흠 없는 짐승을 가지고 나와서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서 제사를 드리니까 너희가 저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걸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드린다고 하는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서 예물 드리니까 그 예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고 오히려 저주 받는 것이 아닙니까? 말라기1: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희생 제사 하는 것은 짐승을 가지고 나아와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바로 서원 제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흠 없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오니까 저주를 받는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흠 없는 제물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깨끗한 것, 흠 없는 제물에 예표를 누구를 말하는 줄 아십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결국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흠 없는 어린 양으로써 십자가 제단의 희생제물이 되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의 문제를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친히 어린 양의 제물이 되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예배에 대한 회복입니다. 그것이 해 뜨는 데 부터 해 지는 데 까지 천하 만민 가운데서 그리스도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노래하고,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분께만 영광 돌려야 그게 참된 예배요 참된 예배의 회복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라기서에 말라기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를 드리지 않으니까 결국은 성전 문을 닫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야 되는데, 깨끗한 제물, 흠 없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데 결국 그 제물을 가지고 나오니까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46년 동안에 지어진 이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 하느냐? 그 때에 예수님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킨다는 이 성전은 무엇을 말합니까? 곧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 성전은 누구시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예배 할 때에 모든 예배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우리의 예배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우리 예배의 주인공이 그리스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지난 날 우리가 예배 드린다고 나왔지만 여러분 우리가 여러가지 행사에 프로그램에 여러 가지 이런저런 많은 일들 그게 우리의 중심이 있었지 진짜 그리스도 그 분만 노래하고 그리스도 그 분께만 영광돌리고 그리스도 그 분께 집중하는 그런 예배였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 시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깊이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해도 다 못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자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혼 속에 심령 속에 각인되어져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예배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내 영혼 속에, 우리의 모든 심령 속에 각인되어지도록 그게 예배에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다른 것 다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만 붙잡지 못하도록 그리스도만 놓치도록 하는 겁니다. 모든 열심들을 다 내게 합니다. 온갖 희생하고 수고하고 봉사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진작 예배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를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단의 전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든 것 다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놓치면 어느 날 저주와 재앙이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 다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놓치면 결국 그 인생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놓치고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종교생활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놓치고 우리가 많은 것들을 섬기고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결국 경배 대상을 바르게 모르니까 그게 바로 귀신을 섬기는 것인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교회가 많은 것들을 한다고 진짜 그리스도만 말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무지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 봉사하고, 수고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를 놓쳐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도들이 가면 갈 수록 저주와 재앙 가운데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것 할 필요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분만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그분께만 집중하기 바랍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냐?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리는 가운데 치유 받고 힘을 얻고 또 나름대로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을 얻고 치유 받고 위로받는 것은 다른 데 가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고, 우리의 모든 예배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6: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그러면서 신명기6:15절에 보면 이 하나님이 바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고, 내가 너희만 사랑하겠다 이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면서도 다른 것이 주인되었습니다. 진짜 우리 예배를 지난 날의 예배를 돌아보시면서 앞으로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산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지기 위해서는 진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높임 받는 그런 예배함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목표가 틀리면 틀린 예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립니까? 치유받기 위해서인가? 여러분 잘 되기 위해서인가? 승리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예배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그 증표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붙잡는 것이니다. 그것도 더욱 더 강단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단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예배의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증표입니다. 진짜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사람은 강단에 누가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든지 간에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말씀 흐름 속에서 응답받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게 바로 예배의 주인공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나오는 헌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가장 원하시는 것은 헌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고 나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날마다 우리가 갱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생각이 늘 바뀌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복음 아닌 내 기준, 내 배경들이 늘 바뀌어져야 됩니다. 우리는 예배 드리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과 내 기준과 내 고집 가지고 예배 시간에 앉아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이것을 바꾸라는 것이고, 이것을 갱신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날 내 기준으로 내 생각으로 내 고집으로 나아왔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당장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내가 육신적으로 손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그게 복음에 유익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합니다. 복음에 유익한 것들을 붙잡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는 것 버려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1년 전 예배 드렸던 부분들이나 또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부분들이나 똑같으면 안 됩니다. 바뀌어져야 합니다. 내 고집과 내 생각들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 주인 되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 바뀌어져야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전도도 중요하고 현장도 중요하고 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은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모든 해답들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한 사명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살이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일 예배가 내 모든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일날 이렇게 예배 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예배가 내 직장 현장으로 내 산업 현장으로 내 가정 현장으로 내 학업 현장으로 연결되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일 예배가 내 삶의 현장으로 연장되어야 되고, 내 학업 현장으로 연장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만 제대로 드려도 모든 현장들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참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참된 예배하는 교회를 찾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부분들을 정리하고 예배에 대한 부분들을 정리하면서 진짜 이제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계속되어지는 귀한 교회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살리는 축복된 역사들로 우리 교회가 응답받는 일에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4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롬12:1-2)
서론: 코로나19로 인하여 경제, 학업, 건강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적인 은혜가 중요한데 영적흐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순간순간 영적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진행되지만 “교회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모여 예배드릴 때는 변화된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말1:7-8,10) 예배자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성전 문을 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전 문을 닫자는 하나님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이전까지 그런 예배는 다 치우자! 형식적, 율법적, 종교적 예배들은 다 치우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 예배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할 것인가?
1. 산 제사
* 항상 예배의 무기력과 예배의 생명력을 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대의 타락이 찾아옴
* 창조의 목적, 구원하신 목적, 전도하는 이유도 예배 회복을 위함 => 예배가 전부 입니다!!
1) 인간의 최고 행위
(1) 예배는 한 마디로 무엇인가? -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 천국의 잔치
(2) 영원한 나라(계21:1-5), 이 땅에서 누릴 하나님의 나라(행1:3), 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시간
2) 이제 이 예배를 세상 속으로 옮기는 것 = 산 제사
(1) 예배는 하나님이 모든 것임을 찾아내는 것,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신 하나님을 누리는 것
(2) 위대한 착각 : 예배 따로, 세상 따로 =>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이 딱 맞게 되어 있음
3) 이것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우리의 사건 속으로, 일 속에 들어가게 됨
(1)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건을 이루심 – 여기에 증인으로 서는 것
(2) 현장에 들어가면 반드시 일이 일어남 – 여기에 해결자로 서는 것
(3) 개인에게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됨 – 여기에 답을 주는 것
2. 예배의 주인공
1) 예수 그리스도
(1) 예배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 – 흠 없고 깨끗한 제물(말1:11,14) => 그리스도를 예표(히9:11-12)
(2) 예배시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 - 사탄은 예배의 주인 그리스도만 놓치도록 방해!
(3) 예배의 목표(신6:13) - 그리스도께만 영광 돌려야 함 => 말씀을 제대로 받아라!(강단)
=>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분께 찬양하고, 집중하고, 영광 돌려지는 예배가 참된 예배
2) 성도 자신들이 산 제물이 되어야 함(롬12:1-2)
(1) 재물 이전에 나를 드려야 함 – 헌금, 재물, 헌신이 아닌 나를 원하심
(2) 나를 원하신다는 말 – 갱신(내 생각, 내 기준, 내 고집이 조금씩 바뀌어야 함)
=> 복음만 절대적 기준, 복음에 유익한 것 – 1년 전이나 지금의 예배가 같으면 안 됨
결론: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모든 해답들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사명은 예배입니다. 살아있는 예배가 무슨 말입니까? 주일예배가 내 모든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로 끝나면 안 되고 직장, 산업, 가정, 학업 현장으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가 내 삶의 현장으로 연장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만 제대로 드려도 모든 현장을 살리게 됩니다.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하나님께서 정말로 참된 예배자와 교회를 찾으십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와 예배에 대한 부분을 정리함으로 이제는 참된 예배가 계속 되어지는 귀한 교회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롬12:1~2
■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인사하십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지금 우리가 예배를 이렇게 드린 지가 가만히 보니까 2달째 되어가요. 오늘 8번째 주일에 이렇게 그나마 대학부 청년부들이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3월 22일부터 시작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이 시간에 이제 대학부 청년부들 예배를 드리고 또 다음 주부터 광고가 나갑니다마는 각 지역별로 1부, 2부, 오후예배 나누어서 또 예배가 드려지게 됩니다. 지금 어려운 시간들을 모두가 지나고 있습니다. 민족으로도 그렇고요, 또 우리 개개인으로도 그렇고요, 또 실제로 경제도 어렵고, 또 우리 학생들은 학업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또 건강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부분들이 영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은혜의 풍성함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어지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 우리가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가정 가정 현장 속에서 개인교회의 축복을 누리며 단을 쌓고 있는 그런 분들도 거의 대부분이 인도를 잘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렇지 못하여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육부서에서 주일학교에서 우리 교역자들 중심으로 해서 각 교육부서들을 챙기고 있는데요, 심지어는 우리 교역자들이 선물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또 온라인으로 매일 우리 아이들을 만나서 어떻든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또 애쓰는 부분들을 보게 되어 집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뭔가 좀 삶에 여유가 있고, 또 편리해지면 나도 모르게 어떤 면에서는 전염병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음에 매몰 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좋지 않은 면도 있잖아요. 그런데 생활 속에서 좋지 않은 면들이 더욱 더 익숙해지고요, 그게 더욱 더 빠르게 습관화되어지고 체질화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이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순간 한 순 간 영적싸움을 싸움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진행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분 진지하게 생각들 해 보시고요, 또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정말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4세기에 흑사병이 일어나도, 또 세계대전들이 일어났어도 예배당 문이 닫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들은 예배당 문이 닫혀져서 예배를 마음껏 자유롭게 드릴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들 통해서 여러분 지난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 드렸는가를 한번 살펴봐야 되고요, 또 정말로 언젠가는 우리가 또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날이, 그런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모여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는 그날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함으로 나가야 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준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리 어른 분들도 하나같이 빨리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마는, 또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빨리 하나교회 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쳐요. 아마 조만간 다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지난 날 우리가 예배드렸던 부분들이 어떻게 예배드려졌었고, 또 하나님이 정말로 내게 어떠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가 이런 부분들 가지고 정말로 살아있는 예배로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그런 준비들을 해야 하는 시간들이 지금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교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예배가 너무 중요합니다. 또 예배성공이 인생의 성공이고, 우리교회 표어도 있잖아요. 예배성공이 영육의 성공입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진짜 믿지 않았어요. 정말로 믿지 않았어요. 그냥 단순히 교인들을 인도해야 하니까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성공이 인생성공이다 그렇게 앞서서 이야기는 했지만, 제가 이번에 이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가 예배성공이 인생성공이고, 예배성공이 영육간의 성공인 것을 믿지 않았구나 이런 부분들이 더욱더 깨달아졌었어요.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릴 날이 올 겁니다. 그때 그냥 모여서 예배드린다 그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런 시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하고 말씀하신 곳이 있어요. 이제 성전 문을 닫자 이렇게 말씀하신 곳이 있어요. 여러분 무시무시한 말이지요. 이 말은 요, 성경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말인데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언제냐 하면은 말라기1: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이제는 성전 문을 닫자, 성전 문을 닫는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왜 성전 문을 닫자고 하느냐? 말라기1:7~8절에 살펴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배가 더러운 떡을 가지고 나오고, 눈먼 생선을 가지고 나오고, 저는 것, 병든 것,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린다고 하니까 한 마디로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악행 하는 그 부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문 닫자라고 했어요. 성전 문을 닫자 했어요. 여러분 그러면서 말라기1:8절에 보면 총독에게 너희가 그 재물을 가지고 드려봐라 총독이 그것을 받겠으며 그것을 기뻐하겠느냐? 아니, 사람도 그것을 받지 않고, 기뻐하지 않을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고 갖고 나오니 그것을 받겠느냐 아예 그럴 바에는 성전 문을 닫아 버리자 라고 말라기1:1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자 라는 이 무시무시한 말을 하시는데 이것의 하나님의 본래 진위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이제는 때려치우자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이전까지의 그런 예배는 다 치우자 라는 거예요. 형식적이고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그런 예배들을 다 치우자라는 말이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될 것인가?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될 것인가?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서 예배 할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인데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인가?
1. 산 제사
먼저 첫 번째입니다. 산제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의 타락은 예배에 있었습니다. 예배가 무기력해지고 예배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찾아온 것이 그 시대의 타락이었어요. 언제나, 예배가 무기력해지고, 예배가 생명력을 잃게 되니까 그 시대의 타락이 찾아왔고, 그 시대의 타락 뒤에는 결국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재앙의 역사가 왔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천지만물을 왜 창조하셨습니까?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 전도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예배회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다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살펴보았지요. 모든 혈육이 다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말씀하셨어요. 이사야서를 마무리하면서 이사야66장에 마지막에 뭐라 했습니까? 모든 혈육이 다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지요. 우리가 장차 가야될 계시록21:1~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그 하나님의 나라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누려야 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잠시잠깐입니다마는 이 땅에서 누려야 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요 응답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행전1:3절에 보면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집중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이 뭐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의 일, 그 축복을 누리는 그 시간이 뭐냐?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는 천국의 잔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더 은밀히 말하면 예배는 하늘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시간이 언제이냐? 예배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7장에도 보면 참 은혜로운 찬송인데요, 거기 보면 이런 찬송 가사가 있습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난다 했어요. 예배는 어떤 것이 예배냐?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해 같이 빛나는 그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을 뵙는 그런 시간들이 바로 예배의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찬송가27장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보좌 앞에 나가는 그래서 주님 앞에 있는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예배가 세상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을 가지고 산제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예배가 천국의 잔치요, 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이 축복된 예배가 세상으로 전달되어지고 세상 속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을 가지고 산제사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다 라는 찾아내는 것이고요, 세상 속에서의 예배는 모든 것인 하나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세상 속에서... 많은 분들이 예배 따로, 세상 따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인생의 이런저런 많은 고난과 고통들, 많은 수고와 아픔들, 인생의 여러 가지 것들 다 겪고 나서 결국은 우리 인생이 정말로 영원한 축복은 예배밖에 없구나 쉽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마는 아마 젊은 청년들,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예배 따로, 세상 따로 아니냐? 우리가 직장 속에 들어가 보니까, 또 학교 현장에 들어가 보니까 예배 따로, 세상 따로 살아야지, 그게 지혜로운 삶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예배는 따로 고, 세상은 따로 다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여러분 그게 어리석은 것이고요, 그게 착각 중에 착각이고, 그게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세상은 맞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왜 재앙과 고통이 이 땅에 끊임없이 일어나느냐?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지 않으니까 끊임없는 재앙과 고통들이 이 땅에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은 맞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직장 생활 해 보십시오. 말씀 전혀, 예배 전혀, 직장 속에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게 맞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분명한 것은요, 그 사람의 그 인생은 어렵고 고난 가운데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착각이 뭐냐? 예배 따로, 세상 따로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착각이 왜 오는 지 아십니까? 정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은 예배가 세상 속으로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못 누리니까 예배 따로, 세상 따로 라는 이런 착각 속에 빠지게 되어지는 부분들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배가 반드시 어디로 연결되어져야 되느냐? 바로 세상 속으로 그대로 전달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건과 우리의 일들 속에 이 예배가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건을 일으키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증인으로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지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일들 속에 저와 여러분을 그 일의 해결자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설령,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제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문제 앞에서 답을 주는 자로 서게 됩니다. 이게 바로 산제사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비밀들이 세상 속으로 전달되어지고, 이것이 우리의 사건과 일 속으로 연결되어지게 될 때에, 결국 우리는 그 속에서 그냥 단순한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증인으로 서게 되는 것이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을 해결하는 해결자로 서게 되는 것이고,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자들로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산제사다 말씀하고 있어요. 초대교회 예배를 보십시오. 여러분 초대교회는 산제사 였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현장의 사건들 속에 그 사건들을 해결하는 증인으로 섰고요, 여러 가지 이런저런 일들 속에 그 일들을 해결하는 해결자로 섰고요,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많은 문제들 속에 그 문제의 답을 주는 자로 섰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던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산 제사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 이러한 시간들 통해서 우리 모두가 회복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배의 주인공
두 번째입니다. 예배의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되겠지요. 여러분 예배의 주인공이 누구십니까? 우리가 누가 보라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예배는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복 받기 위해서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일에 큰 힘을 얻어야 일주일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목표, 예배의 목적이 무엇이냐? 오직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말라기1:10절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말라기1:11절에 보면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 까지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말라기1:11절 거기 보면 모든 민족이 나아오는데 거기에 깨끗한 제물을 가지고 나온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 까지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이 크게 될 것인데 거기에 나아오는 모든 이방민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깨끗한 제물을 가지고 나아온다 했습니다. 여기에 깨끗한 제물의 실제가 누구입니까? 말라기 1:14절에 보면 우리가 서원하게 되고 그 서원에 대한 제사를 드릴 때에 흠 없는 짐승을 가지고 나와서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서 제사를 드리니까 너희가 저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걸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드린다고 하는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서 예물 드리니까 그 예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고 오히려 저주 받는 것이 아닙니까? 말라기1: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희생 제사 하는 것은 짐승을 가지고 나아와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바로 서원 제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흠 없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오니까 저주를 받는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흠 없는 제물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깨끗한 것, 흠 없는 제물에 예표를 누구를 말하는 줄 아십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결국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흠 없는 어린 양으로써 십자가 제단의 희생제물이 되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의 문제를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친히 어린 양의 제물이 되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예배에 대한 회복입니다. 그것이 해 뜨는 데 부터 해 지는 데 까지 천하 만민 가운데서 그리스도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노래하고,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분께만 영광 돌려야 그게 참된 예배요 참된 예배의 회복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라기서에 말라기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를 드리지 않으니까 결국은 성전 문을 닫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야 되는데, 깨끗한 제물, 흠 없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데 결국 그 제물을 가지고 나오니까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46년 동안에 지어진 이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 하느냐? 그 때에 예수님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킨다는 이 성전은 무엇을 말합니까? 곧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 성전은 누구시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예배 할 때에 모든 예배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우리의 예배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우리 예배의 주인공이 그리스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지난 날 우리가 예배 드린다고 나왔지만 여러분 우리가 여러가지 행사에 프로그램에 여러 가지 이런저런 많은 일들 그게 우리의 중심이 있었지 진짜 그리스도 그 분만 노래하고 그리스도 그 분께만 영광돌리고 그리스도 그 분께 집중하는 그런 예배였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 시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깊이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해도 다 못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자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혼 속에 심령 속에 각인되어져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예배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내 영혼 속에, 우리의 모든 심령 속에 각인되어지도록 그게 예배에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다른 것 다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만 붙잡지 못하도록 그리스도만 놓치도록 하는 겁니다. 모든 열심들을 다 내게 합니다. 온갖 희생하고 수고하고 봉사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진작 예배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를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단의 전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든 것 다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놓치면 어느 날 저주와 재앙이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 다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놓치면 결국 그 인생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놓치고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종교생활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놓치고 우리가 많은 것들을 섬기고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결국 경배 대상을 바르게 모르니까 그게 바로 귀신을 섬기는 것인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교회가 많은 것들을 한다고 진짜 그리스도만 말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무지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 봉사하고, 수고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를 놓쳐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도들이 가면 갈 수록 저주와 재앙 가운데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것 할 필요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분만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그분께만 집중하기 바랍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냐?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리는 가운데 치유 받고 힘을 얻고 또 나름대로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을 얻고 치유 받고 위로받는 것은 다른 데 가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고, 우리의 모든 예배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6: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그러면서 신명기6:15절에 보면 이 하나님이 바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고, 내가 너희만 사랑하겠다 이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면서도 다른 것이 주인되었습니다. 진짜 우리 예배를 지난 날의 예배를 돌아보시면서 앞으로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산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지기 위해서는 진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높임 받는 그런 예배함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목표가 틀리면 틀린 예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립니까? 치유받기 위해서인가? 여러분 잘 되기 위해서인가? 승리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예배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그 증표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붙잡는 것이니다. 그것도 더욱 더 강단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단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예배의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증표입니다. 진짜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사람은 강단에 누가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든지 간에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말씀 흐름 속에서 응답받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게 바로 예배의 주인공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나오는 헌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가장 원하시는 것은 헌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고 나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날마다 우리가 갱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생각이 늘 바뀌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복음 아닌 내 기준, 내 배경들이 늘 바뀌어져야 됩니다. 우리는 예배 드리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과 내 기준과 내 고집 가지고 예배 시간에 앉아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신다는 말은 이것을 바꾸라는 것이고, 이것을 갱신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날 내 기준으로 내 생각으로 내 고집으로 나아왔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당장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내가 육신적으로 손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그게 복음에 유익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합니다. 복음에 유익한 것들을 붙잡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는 것 버려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1년 전 예배 드렸던 부분들이나 또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부분들이나 똑같으면 안 됩니다. 바뀌어져야 합니다. 내 고집과 내 생각들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 주인 되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 바뀌어져야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전도도 중요하고 현장도 중요하고 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은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모든 해답들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한 사명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살이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일 예배가 내 모든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일날 이렇게 예배 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예배가 내 직장 현장으로 내 산업 현장으로 내 가정 현장으로 내 학업 현장으로 연결되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일 예배가 내 삶의 현장으로 연장되어야 되고, 내 학업 현장으로 연장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만 제대로 드려도 모든 현장들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참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참된 예배하는 교회를 찾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부분들을 정리하고 예배에 대한 부분들을 정리하면서 진짜 이제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계속되어지는 귀한 교회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살리는 축복된 역사들로 우리 교회가 응답받는 일에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4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롬12:1-2)
서론: 코로나19로 인하여 경제, 학업, 건강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적인 은혜가 중요한데 영적흐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순간순간 영적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진행되지만 “교회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모여 예배드릴 때는 변화된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말1:7-8,10) 예배자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성전 문을 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전 문을 닫자는 하나님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이전까지 그런 예배는 다 치우자! 형식적, 율법적, 종교적 예배들은 다 치우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 예배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떠한 예배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할 것인가?
1. 산 제사
* 항상 예배의 무기력과 예배의 생명력을 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대의 타락이 찾아옴
* 창조의 목적, 구원하신 목적, 전도하는 이유도 예배 회복을 위함 => 예배가 전부 입니다!!
1) 인간의 최고 행위
(1) 예배는 한 마디로 무엇인가? -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 천국의 잔치
(2) 영원한 나라(계21:1-5), 이 땅에서 누릴 하나님의 나라(행1:3), 보좌의 배경을 누리는 시간
2) 이제 이 예배를 세상 속으로 옮기는 것 = 산 제사
(1) 예배는 하나님이 모든 것임을 찾아내는 것,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신 하나님을 누리는 것
(2) 위대한 착각 : 예배 따로, 세상 따로 =>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이 딱 맞게 되어 있음
3) 이것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우리의 사건 속으로, 일 속에 들어가게 됨
(1)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건을 이루심 – 여기에 증인으로 서는 것
(2) 현장에 들어가면 반드시 일이 일어남 – 여기에 해결자로 서는 것
(3) 개인에게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됨 – 여기에 답을 주는 것
2. 예배의 주인공
1) 예수 그리스도
(1) 예배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 – 흠 없고 깨끗한 제물(말1:11,14) => 그리스도를 예표(히9:11-12)
(2) 예배시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 - 사탄은 예배의 주인 그리스도만 놓치도록 방해!
(3) 예배의 목표(신6:13) - 그리스도께만 영광 돌려야 함 => 말씀을 제대로 받아라!(강단)
=>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분께 찬양하고, 집중하고, 영광 돌려지는 예배가 참된 예배
2) 성도 자신들이 산 제물이 되어야 함(롬12:1-2)
(1) 재물 이전에 나를 드려야 함 – 헌금, 재물, 헌신이 아닌 나를 원하심
(2) 나를 원하신다는 말 – 갱신(내 생각, 내 기준, 내 고집이 조금씩 바뀌어야 함)
=> 복음만 절대적 기준, 복음에 유익한 것 – 1년 전이나 지금의 예배가 같으면 안 됨
결론: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모든 해답들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사명은 예배입니다. 살아있는 예배가 무슨 말입니까? 주일예배가 내 모든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로 끝나면 안 되고 직장, 산업, 가정, 학업 현장으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가 내 삶의 현장으로 연장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만 제대로 드려도 모든 현장을 살리게 됩니다. 참된 예배가 계속되는 교회, 하나님께서 정말로 참된 예배자와 교회를 찾으십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와 예배에 대한 부분을 정리함으로 이제는 참된 예배가 계속 되어지는 귀한 교회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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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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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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