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2024-02-04 12: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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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골1:20-23)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누구이신가? 여기에 답이 내려져야 합니다.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롬16:25). 정말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때 모든 현장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가정, 가문, 만남 속에서 응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가. 복음을 알아야 하는데 놓치게 하는 사탄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 베드로처럼 나의 숨은 계산이 무너지게 하소서(마16:23).
  나. 세상의 방법, 사람의 노력과 열심으로 원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하소서. 
   • 하나님의 방법은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하소서. 
   •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으로 변화 시키셨음을 누리게 하소서.
  다. 내가 살려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게 하소서(마26:74).
   • 예수님이 40일 동안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붙잡게 하소서(요20:19-22, 행1:3).
   • 무너지고 낙심하던 제자들처럼 생명 걸고 기도하게 하소서(행1:14).
  마. 머리로 아는 그리스도가 아닌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소서(행3:6).
   •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와서 사망, 저주, 재앙이 완전히 끝나게 하소서.
   • 복음의 능력이 체험 되어져서 복음이 절대가치 되게 하소서(행4:12).
  
 2. 십자가의 당연성
  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하소서.
  나. 복음으로 모든 문제, 사람, 과거, 상처가 보여지게 하소서.
   • 복음으로 재해석 하는 눈이 열려지게 하소서. 
   • 요셉과 바울처럼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소서(창45:5, 갈6:14).
  다.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골1:22).
   • 복음의 완전성을 누리게 하소서(요19:30, 히9:28).
   • 복음의 절대성을 누리게 하소서(롬8:1-2, 요8:32, 롬5:8, 롬5:10, 롬5:12).
   • 복음의 영원성을 누리게 하소서(히13:8).
  
결론: 아침에 그리스도 묵상, 자기 전에 그리스도로 답을 찾아내고, 낮에 그리스도로 모든 만남과 일을 보시면 됩니다. 복음 누리는 기도 속에서 과거가 발판, 오늘의 시간표,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설 명절 모든 만남 속에서도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참된 평안과 안식, 참된 승리가 찾아지기를 축원합니다.

 

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골1:20-23)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아멘.
         골1:20-2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영원의 응답으로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누리십시다.’, 할렐루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은 오직 십자가만 붙잡고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1부 찬양대에도 십자가에 대한 찬양을 주었었어요. 가사 가운데 보면 목적 없이 방황하는 나에게, 소망 없는 나에게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그런 찬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은 방황하던, 목적 없이 살아가던 내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방법이었고요,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우리는 참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한 시간의 예배가 여러분 모두에게 십자가의, 그 그리스도의 능력이 체험되고 누려지는 최고의 시간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이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이번 한 주간 구정 연휴를 통해서 흩어지게 되겠죠. 또 우리 가정들, 가문들 만나는 만남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귀한 제목이 그대로 여러분 가정과 가문에 성취 되어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마음속에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제목이 바로 시댁이 복음화 되는 거에요. 추석이고 구정이고 명절 때만 되면 모여서 제사 지내고 하니까, 빨리 우리 시댁이 복음화 되면 좋겠다 이런 마음들 가지고 늘 기도 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상숭배로 완전히 찌들어져 있는 가정이고, 또 종가집이다 보니까 늘 명절 때만 되면 제사를 지내야 되니까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나고,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을 우리 가정과 가문에 전달할 것인가? 그래서 늘 마음에 담고 있는 기도제목이 시댁의 복음화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감사하게도 시어머니가 복음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이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 세례문답에 임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세례문답에 임하기 전에 이 며느리가, 이 여 집사님이 자기 시어머니에게 미리 이야기를 한 겁니다. ‘어머니 분명히 목사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물을 거에요. 그러면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나의 주님이다 그 이야기만 하세요.’, 연세가 드셨으니까 시어머니가 잘 모를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반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냐 물으면 나의 주님이다 계속해서 교육을 시킨 겁니다. 세례문답식이 되었어요. 목사님이 아니나 다를까 그 시어머니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그때 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주님이십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요. 자꾸 나의 주님이다, 나의 주님이다 하니까 아, 우리 며느리의 주님이다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며느리의 주님이십니다.’ 이야기를 했대요.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겐 누구시냐? 여기에 대한 답이 여러분 내려져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바르게 신앙생활 하고, 많은 헌신과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누구신가?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말고요, 교회 강단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말고요,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정말로 누구인가? 여기에 대한 올바른 답이 내려지는 것부터, 그때부터 올바른 신앙생활이 시작되어지고, 그때부터 참된 응답이 시작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로마서 16장에 말씀했어요, 로마서16:25절에 나오죠. 나의 복음과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가 된 사실들을 바울이 고백한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우리 자신을 향해서 질문을 던지세요. ‘나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지난주에는 왜 오직 복음이어야 하느냐,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 하느냐? 거기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죠.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마음속에 늘 항상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앞에 여러분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누구냐?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가진 만큼 모든 현장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어있고, 또 이번 주간에 가정과 가문을 만나는 그 만남 속에서 중요한 하나님의 응답들을 그 속에서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처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또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어떤 면에서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을 때에, 또 많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늘 실패하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고, 또 성공한 적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었고, 별 뾰족하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신분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은 실패한 사람들이었고, 성공한 적이 없었던 인생이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뭔가 한 자리를 얻을 것에 대한, 주님이 뭔가 한 자리 줄 것이 아니냐?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보았던 기적들이 있거든요, 능력들이 있거든요. 병자들이 치유되어지고, 귀신 들린 자들이 쫓겨나고 이런 부분들을 보니까 이 예수님을 따르면 뭔가 내게 한 자리가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로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고 난 후에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고난당하실 것과, 죽임 당하실 것과,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죠. 그때에 베드로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들고 나왔느냐? 자기가 예수님을 지키겠다는 거에요. 예수님 앞에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예수님은 죽으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왜냐? 우리가 이제까지 주님을 따랐는데 그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에요 사실은. 마음에 자기 계산이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절대로 그러한 일이 주님 앞에 일어나지 않겠다 했어요. 내가 죽더라도 지키겠다 했어요.
 그때에 23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 말은 뭐냐? 네가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을 알아야 되는데, 정말 그리스도 복음을 알아야 사는데, 악한 사탄이 이 그리스도 복음을 모르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 여러분 사람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모든 사람들, 제자들조차도 그래요. 어떻게 하면 내가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출세할 것인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그게 사람의 일이에요. 그리고 또 사람의 일이 뭡니까? 그 당시에 사실은, 예수님 당시에 로마 속국 되어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모두가 관심이 뭐냐? 어떻게 하면 빨리 해방될 것인가? 그게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었고, 거기에 따랐던 제자들의 관심도 결국은 어떻게 하면 한 자리하고 성공할 것인가, 출세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로마 속국 속에서 해방 받을 것인가? 그게 사람의 일인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들을 인정할 수가 없었죠.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그 말들도 믿어지지 않았고, 십자가 사건은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죽는다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런 일이 절대로 주님 앞에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
 여러분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의 방법이 뭐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뭐냐? 하나님의 일이 뭐냐?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원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일을 모르니까 결국 십자가 사건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것이죠. 절대 그런 일이 주님 앞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과 사람들의 노력과 열심으로는 우리에게 찾아온 원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길이 하나입니다. 그게 뭡니까? 사망에서 생명을 주신 겁니다. 사탄의 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지옥의 백성 되었던 저와 여러분을 천국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축복의 역사들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루시는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제자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그런 일이 절대로 주님 앞에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했어요.
 결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죠.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상황이 일어나니까 사실은 예수님과 나와 상관이 없어야 됩니다. 왜냐? 예수님 때문에 내가 어려움 당할 수 있거든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상황에 딱 부딪히니까 제자들이 전부 다 하나같이 부인해 버렸어요. 그냥 단순히 부인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이 마태복음 26장에 보면은 74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맹세하고 부인했다 했어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여 계집종 하나가 예수와 함께 있는 자라고 이야기하니까 그 현장에서 베드로가 맹세하고 부인했다.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맹세하고 부인했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상황에 부딪히니까. 그러면서 74절에 보면은 저주하면서 맹세했다 했어요.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말씀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왜냐? 예수님과 관계를 가진다면, 관계 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면 자신에게 당장 어려움이 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맹세하고,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그냥 단순히 부인한 그 정도가 아니라 저주했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게 누굽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였어요. 저주하면서 맹세했다 했어요.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어요. 요한복음 20장에 보면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한 군데 모여가지고 두려워 떨고 있었어요.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뭐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이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결국은 예수님께서 사도행전1:3절에 보면은 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40일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말씀했습니다. 감람산 사건이죠, 40일 동안에 집중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이때에 비로소 제자들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거에요. 이때 비로소 제자들의 모든 관심도 바뀌어지고, 이때 비로소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도 바뀌어 진 겁니다, 아예 인생관이 달라진 겁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결국은 어디에 모였느냐? 무너지고 낙심했던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뭐냐? 간절하게 약속 붙잡고 기도했어요. 그게 사도행전1:14절이에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은 낙심했던 사람들이에요, 무너졌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감람산에서 40일 동안 집중 훈련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들을,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나서 그들의 인생관이 바뀌어 지면서 무섭고, 두려움이 물러가고, 이유 없이 그들이 모여 가지고 그들은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 일어난 역사가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복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제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거에요. 그래서 나가는 현장에 첫 번째 선포한 메시지가 뭐냐? 사도행전2:36절입니다. 보세요,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어져서 제자들 입에서 선포하는 메시지가 뭐냐? 사도행전2:36절 한번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행전 3장에 보면은 그 당시에 아무도 관심 없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나면서 못 걷게 되었다는 말은 운명에 빠진 자죠. 그래서 이 앉은뱅이가 날마다 어디에 있었느냐? 유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구제거든요? 동전을 던져주는 구제입니다. 유대인들의 삶에 베여 있는 것이 구제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성전 미문에 앉으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유대인들이 동전을 던져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아무도 관심 없었던 앉은뱅이였어요.
 그런데 베드로가 이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그 앉은뱅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면서 그 앉은뱅이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사도행전3: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했어요. 그냥 내가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식적으로 내 안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게 생명으로 찾아오신 그 그리스도를 내가 너에게 준다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알고 나니까 베드로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향해서 결국은 자기에게 주신 그 그리스도의 비밀, 살아서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자기의 영혼 속에 역사하고 있는 그 그리스도를 선포한 것입니다. 단순히 머리로, 지식적으로 아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의 실제로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를 선포한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사실을 알고, 생명으로 역사하신 그 그리스도를 체험하니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말씀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돈을 가지고 우리 인생의 문제, 운명의 문제 해결할 수 있나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할지라도,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할지라도 인생이 가진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에 우리의 인생의 운명을 붙잡고 있는, 영적문제를 붙잡고 있는, 영적인 문제라는 것은 악한 사탄의 손에 붙잡힌 것을 말해요. 사탄의 손에 붙잡힌 것이 영적문제에요.
 그 영적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에 흑암의 역사들이 떠나감으로 해결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순간에 사망과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이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나면서 못 걷게 된 자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했는데 그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발목에 힘을 얻었다 했어요. 그냥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기뻐하며 찬양했다.” 했어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한마디로 그냥 저주와 재앙과 운명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서 기뻐하며 찬양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또한 4장에 보면 제자들이 또 핍박을 당하게 되죠. 온갖 누명을 뒤집어 씌워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핍박을 가하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이후로 예수 믿는 자들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핍박을 가하면 가할수록 예수 믿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야 되는데 늘어나게 돼요. 그 가운데 특별히 사도행전 4장에 보면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대제사장들이 이 베드로와 요한을 어디에 세웠습니까? 종교 법정에 세웠어요.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 종교 법정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게 된 겁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 베드로가 핍박하는 그 종교 법정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데 예전 같으면 예수님을 부인했을 베드로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천하 인간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제자들의 많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는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들을 체험하면서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예수가 부활하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부활하신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모든 생각과 마음들이 달라지면서 그들의 인생이 바뀌어졌는데, 비로소 부활의 그 사건의 증인들로 세워진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내려지지 않으면 우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그 신앙생활은 종교 생활이에요. 여러분 종교 생활은 결국은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우상숭배 하는 자들이 당하는 저주와 재앙과 똑같은 일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그리스도 모르고, 종교 생활하면 똑같이 당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모든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서 참된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복음을 주신 그 복음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신앙생활이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전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늘 복음을 들었지만 복음이 복음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활하신 그 사건을 딱 부딪히면서 결국은 무엇을 깨달았느냐? ‘아,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구나!’,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왔어요. 그리고 복음의 능력이 체험 되어진 것이죠. 그와 더불어 복음의 가치가 발견 되어지고, 실제로 복음의 절대 가치가 보여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왔든지 간에 여러분 세상적인 기준과 세상적인 어떤 내용들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왔다면은 오늘 이 시간에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그 참된 그리스도의 축복의 비밀들이 여러분에게 절대 가치로 붙잡혀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예배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절대 가치가 여러분에게 붙잡혀지는 그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자가의 당연성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무엇을 통해서 이루냐?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십자가 많은 말들을 해요. 그런데 정말로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 우리 자신들이 먼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들을 제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가?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나름대로 뭔가 신앙에 대한 부분들을 마음에 담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묻잖아요? ‘예수님이 어디 있니?’ 묻습니다. 그러면 말을 못하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이미 우리가 가르쳤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그렇잖아요? 마음에 있다는 말이에요. 말을 못해도 이렇게 두드려요.
 그리고 제가 유튜브를 보니까 5살인가, 6살인가 꼬마 아이인데 구원의 길 한 것을 영상으로 올려놓았어요. 기가 막히게 하더라고요, 우리는 더듬거려서 하지도 못하는데 5살, 6살 난 아이가 구원의 길 영상을 담아가지고 이렇게 유튜브에 아마 부모가 올려놓았겠죠. ‘아, 정말 똑똑하다.’ 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영상을 보면서 정말로 이 아이가 구원의 길을 할 때 하나님의 형상 나오잖아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과연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단어를 알고 있을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그 사탄의 존재를 이 아이가 과연 알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게 됩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복음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지 그냥 지식적으로 알고 설명할 수 있다? 그게 아닙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정말로 복음으로 모든 문제가 보여 지는 것, 그게 복음을 아는 거에요.복음을 안다는 것이 뭡니까? 복음으로 사람이 보이는 것, 복음으로 모든 나의 과거가 복음으로 보여지는 것, 그게 복음을 아는 거에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상처들이 보여지는 것, 그게 복음을 아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한마디 단어로 말한다면 복음으로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려지는 것을 가지고 복음을 안다 라고 합니다.
 저는 이 복음에 대한 내용들을 계속해서 말씀을 받으면서, 확인하면서 정말로 내가 복음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더라고요. 문제와 사건 보면은 복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인간적인 기준으로 봐요. 우리가 쉽게 이야기 하잖아요? ‘복음으로 끝났는데’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쉽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게 정말로 내게 끝났는가? 끝나지 않은 것을 나는 봐요. 쉽게 우리가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래요. ‘저 사람 복음 모른다. 복음으로 답 안 났네?’, 우리가 쉽게 말을 던지잖아요? 나도 모르게 판단해요. ‘저 사람 복음 몰라서 하는 소리다. 복음으로 답 안 났다.’, 여러분 정말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 아니에요.
 저는 복음의 역사들을 조금만 알면 알수록 모르겠어요. 내가 복음을 너무나 모르고 있구나! 그러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함이, 그리스도에 대한 갈급함이 날마다 일어나요. 우리가 쉽게 이야기 하잖아요? 복음이면 끝났고, 복음은 충분하고, 완전하고, 맞습니다. 맞는데, 맞는데 저는 복음을 알면 알수록 ‘내가 너무 복음을 모르고 있구나. 복음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복음을 안다는 것은 뭐냐? 복음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고, 복음으로 모든 사건과 일들을 재해석하는 것을 가지고 복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요셉 한번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 받아서 노예로 팔렸습니다. 13년 동안에 결국은 노예 되어지고, 감옥에 가고 했어요. 누명 쓰고 그것도 감옥에 들어갔어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그의 신분이었어요, 노예라는 신분이었어요. 아마 저와 여러분이 그 환경 속에 처했다면 하나같이 전부 다 정신 돌았을 겁니다, 머리 돌았을 겁니다.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 형들의 미움 받아서 노예로 팔려갔죠. 노예 생활 하다가 뭔가 잘 되는 응답들이 일어났는데 결국은 또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갔죠. 그게 한, 두 해가 아니라 13년입니다. 그러면은 공황장애증이 올 수밖에 없고, 정신 문제 올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데 요셉은 그러지 않았어요, 모든 것들을 복음의 눈으로 본 거에요.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45:5절에 보면은 형들 앞에 요셉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내가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 앞서 먼저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했어요. 복음의 눈으로 본 거에요 사실은.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여러분 천지 차이입니다. 종교적인 눈으로 보느냐? 율법적인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정말 복음의 눈으로 보느냐?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날마다 복음 속에 들어가서 복음의 눈으로 모든 것들을 재해석함으로 참된 응답과 축복이 여러분에게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종교적으로, 율법적으로 보게 돼요. 그러면은 문제는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문제가 와요. 그래서 정말로 우리의 눈들이 열려져야 합니다. 날마다 복음이 왜 필요합니까? 나도 모르게 우리의 눈들이 자꾸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복음을 계속 듣는 것이고, 복음이 우리 안에 각인되도록 하는 겁니다.
 그 때에 비로소 복음의 눈으로 모든 것들이 보여질 때 모든 것이 내게 응답으로 누려집니다. 복음으로 재해석 되어지면 내게 상처 주는 사람 만나도 그 상처 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 나는 그게 응답으로 누려지게 돼요. 문제 주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내게 상처주는 말을 할지라도 그 말이 내게 응답으로 누려지게 돼요. ‘아,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갱신하도록 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어 있어요.
 바울이 생각하는 십자가는 저주였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십자가는 저주였습니다. 사형수가 받는 가장 극한 사형 형틀이 뭐냐?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성에서 만나게 되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이 제일 먼저 고백한 것이 뭐냐? 고린도전서1: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저주라고 생각했던 십자가 그게 구원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지, 구원받은 나에게는 그게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6:14절에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다른 것 말하지 않겠다 했어요. 그리스도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이야기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거에요. 내가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당해야 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저주와 재앙이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 되어지고, 자유케 된 사실을 알고, 나는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리스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로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감사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들이 뭐냐? 22절에 보세요. 그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말씀하시면서 22절에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육체의 죽음,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다 말씀 했어요. 그렇습니다, 창세기 3장 해결된 것이 바로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이 해결할 수 없는 창세기 3장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멸망은 내가 당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10:45절에 대속물이 되심이라 말씀하고 계시죠.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를 일컬어서 고린도후서5:17절에 보면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와 저주와 사망과 운명에서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말이에요. 그게 새로운 피조물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들이 바로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 축복을 날마다 회복하고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은 복음의 완전함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30절에 “다 이루었다!” 하셨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 바로 다 이루었다 말씀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삯이 사망인데 십자가에서 그 모든 문제를 끝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없는데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게 다 이루었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 이루신 그분이 우리에게 영원한 축복의 역사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히브리서9:28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할렐루야! 단번에 자기를 드리신 바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해방 시키신 그 축복의 역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그리스도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은 절대적인 겁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가 없어요. 왜냐? 십자가의 복음이 내게 있다면. 그래서 로마서8:1절에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했어요.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정죄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8:3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혹이나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갈등들이 있습니까? 과거 때문에 내가 묶여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까? 내가 상처진 부분들이 있습니까? 자유 하시길 바랍니다. 로마서8:2절에, 1절에는 정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8: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했어요. 그 어떤 과거의 상처에서도 해방하시고, 자유롭게 되시길 바라고, 사람 관계 속에서, 갈등들 속에서도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연약할 때 찾아오셨어요. 로마서5: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무너져 있을 때에 찾아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로마서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근본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로마서5:10절에 보면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렇습니다. 연약하고 죄인 되었고, 원수 될 때에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려분에게 주신 축복이 영원한 해방과 영원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엄청난 축복의 역사 속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연약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연약할 때에 찾아오셔서 경건한 자를 위해서 죽으심이라 말씀했어요.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서 죽으심이라,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말씀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원죄에서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그 원죄 가운데에서 그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을 당연히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증거를 보내셨는데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정하셨다 말씀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원수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우리가 섰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이 축복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날마다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그리스도의 모든 것 되심과,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것 붙잡고 누리면 됩니다. 이 그리스도는 히브리서13:8절에 있는 말씀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니라.”, 그냥 지식적인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서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말씀했어요.

 날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속에 들어가서 정말로 여러분 확인하십시다. ‘내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 여기에 모든 문제의 답들이 다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은 정말로 다른 것 누리지 마시고, 다른 것 시작하기 전에 그리스도 묵상하세요. 하루에 잠자리 들기 전에 여러분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면 그 모든 일들을 놓고, 그리스도로 답을 찾아내세요. 그리고 낮에 모든 만남과 사건들 있잖아요? 이런저런 사람 만나고, 일들을 당하잖아요? 그 모든 것에서도 그리스도로 보세요.
 그러면 그리스도로 누리고, 그리스도로 답을 얻고, 그리스도로 보는 부분들이 뭡니까? 그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보좌의 능력,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 빛으로 나타나는 그 역사를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게 복음 누리는 기도에요, 그게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에요, 그리스도 묵상하는 거에요 그게. 그러면 힘을 주시는데 나의 모든 과거를 발판 삼게 하시고, 오늘 하나님의 시간표가 보이게 하시고,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 볼 수 있는 귀중한 눈들이 열려집니다. 그게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누리는 기도입니다 그게.
 우리가 그리스도 묵상하라니까 그냥 단순히 그리스도 이름, 그리스도 이름, 그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우리가 날마다 누리고, 그걸 기도 속에 담는 겁니다. 그러면은 결국 우리에게 영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의 축복이 주어지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우주,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장악할 수 있는 그런 힘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면서, 실제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귀중한 교회를 살리고, 우리의 후대들을 살리고, 우리의 모든 치유의 귀한 병든 자들을 살리는 귀중한 응답들이 우리에게 누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날마다 아침 눈 뜨면 그리스도 묵상하고, 밤에 잠자리 들기 전에 그리스도로 답을 얻고, 하루의 모든 만남과 사건 속에 그리스도를 가지고 보고, 그게 7가지 기도한 내용들입니다. 그 기도를 늘 항상 마음에 묵상하고, 담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든 것들이 응답으로 누려지는 그런 축복의 한 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번 한 주간에도 모든 만남 속에서 구정 기간에 이런저런 많은 분들을 만나겠죠. 그 만남 속에서도 이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그래서 참된 평안과 안식이, 참된 승리가 여러분에게 찾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십자가의 복음을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하나가 인생의 답이 되게 하소서.
2. 그리스도의 능력이 인생을 돌아보는 능력이 되게 하소서.
3. 복음으로 재해석, 도전함으로 가정, 가문, 후대, 현장, 교회 살리는 힘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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