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십자가 복음과 나
2024-03-17 12: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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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 복음과 나
(고전1:18)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말씀이 없다면 조급하고 불신앙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으며 두렵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으나 언약을 붙잡고 마음에 결단했습니다(단1:8). 환경, 문제,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 담겨지면 답이 보여지고 가야 할 길이 보여지게 되어있습니다.
  
 1. 예수를 바라보라
  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히12:2).
   • 요셉처럼 환경과 사람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미래를 보게 하소서.
  나.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소서(창1:27).
  다. 생명 주시는 기쁨, 구원하시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사53:7).
  라. 나의 영적상태가 보좌의 배경을 누리게 하소서.
   • 모든 것 이기는 길 되신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소서(시31:8-14).
   • 하나님 자녀 된 신분과 권세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2. 십자가의 능력
  가. 인간의 운명, 저주, 원죄를 해결할 십자가의 능력을 누리게 하소서(고전1:18).
   •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음을 다 주셨음을 누리게 하소서.
  나. 날마다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충분하게 하소서(고전2:2).
  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갈2:20).
  라. 십자가만 자랑하며 영적싸움 하게 하소서(갈6:14).
  
결론: 죄와 저주, 재앙이 해결되는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의지할 때 막힌 문을 여시고 십자가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속지 말고, 십자가 붙드시길 바랍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참된 승리의 축복이 임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3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십자가 복음과 나”
(고전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아멘.
         고전1:18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십시다.’, 감사합니다. 이번 한 주간에도 날마다 여러분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나가는 길입니다. 매일 매일 승리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 이 한 날도 예배하는 가운데서 십자가의 복음이 가장 선명하게 여러분에게 붙잡히고 확인되시기 바랍니다. 또 가장 여러분에게 선명하게 확인될 뿐만 아니라, 아! 십자가의 복음으로 내가 살고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이구나,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나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하면 잘 아는 길도 으례히 네비게이션을 틀어놓고 인도를 받아 나갑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 네비게이션은 어떤 경우에 잘못된 목적지로 우리를 안내할 수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전혀 찾아가고 인도받아 갔는데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닌 것을 한, 두 번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 인생에 있어서 나침반으로 주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방황하지 아니하도록, 방향 잃어버리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문제를 보면 결국 내가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조급하게 되어 있고, 불안해 하는 가운데 빠지게 되어 있고, 불신앙 가운데 빠져서 결국 방황하는 인생을, 말씀을 놓치게 되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있는 사람은 달라요. 여러분, 말씀 있는 사람은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정확한 방향에 따라 인도를 받기 때문에, 어떤 문제와 환경과 사건을 당한다 할지라도 조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으면서 불안해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참된 믿음 가운데서 승리하는 그런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 여러분 어릴 때에 포로로 가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모함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다니엘이 또 사자 굴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그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1장에 보면 뜻을 정하였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 뜻을 정하였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마음에 결단을 하였다는 말이에요.
 그 당시에 결국은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어야 되는 상황 속에서, 왕의 음식을,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거절했어요. 왜냐? 그것은 우상숭배 앞에 드려졌던 음식이기 때문에 그 음식에 대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음식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결국 그것 때문에 환관장이 이 다니엘에게 이야기 합니다. 아마 환관장이 다니엘을 잘 봤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명령을 내렸느냐?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지 아니하면, 결국은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이야기 합니다. 한번 시험해 봐라, 많은 사람이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는데, 우리는 그것 먹지 않고 채식을 먹겠다. 그러면서 한번 시험에 봐라 그러면서 열흘을 달라고 했어요.
 환관장이 그것을 허락했지요. 만약에 열흘을 먹고 나서 그것이 차이가 난다면 먼저 내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내가 왕 앞에서 위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다니엘에게 열흘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다니엘은 오히려 어떠했습니까? 얼굴에 빛이 났더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가진 자들에게 주시는 참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여러분 붙잡아야 합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 속에서도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있었고요,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말이 사자 굴에 들어갈 위기를 당했다. 여러분, 법적으로 도장을 찍어서 왕 앞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사자 굴에 집어넣기로 했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는 말씀으로 그냥 들으니까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데요. 그 상황 속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뭔가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여유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뭡니까?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갔어요. 결국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이 마음에 담긴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서 정확한 답을 찾게 되어 있고, 가야 할 길을 하나님이 주어지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여러분 목사의 설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담겨지는 그런 축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문제가 아니에요. 어려움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좋으면 좋겠습니다마는, 다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더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담겨지면 그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답이 보여지게 되어 있고,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방황하지 않는 인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가야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다른 것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라고 성경에 주셨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은 무엇입니까? 참된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너희들이 먼저 생명 얻고, 너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생명 속에 들어오라는 겁니다. 이게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에요. 많은 것들을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경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너희가 십자가의 복음 그 속에 들어오고,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살 뿐만 아니라, 너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십자가의 복음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말씀을 받았지요.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겁니다. 내가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이 일에 쓰임 받는다면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신다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정말로 내가 십자가의 복음이 내게, 이 십자가의 복음이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전달하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되느냐? 두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1. 예수를 바라보라
 그러면, 먼저 첫 번째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와,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부활의 능력으로 생명 얻는 역사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히브리서12:2절에 오늘 이 십자가의 복음과 연결되어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하느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말씀했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가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오늘 히브리서 12장 읽지 않은 부분들 보면 그 앞에 12장 앞에 몇 장이 있습니까? 11장이 있지요. 너무 유아 틱 한 질문입니까? 네. 히브리서 12장 앞에는 11장이 있지요. 그런데 그 11장 내용들을 보면 구약에 승리했던 믿음의 사람들을 쭉 열거해 놓았어요.
 그러면서 그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한 그 열거들 앞에 반드시 붙어지는 수식어가 있었어요. 히브리서 11장 뿐만 아니고요, 성경에 모든 승리했던 믿음의 사람들 앞에 공통적으로 붙어지는 수식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믿음으로’라는 단어입니다, 믿음으로. 그래서 히브리서12: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위기들이 있고요. 또 환경들이 쳐다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기와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 환경들 속에 있다 할지라도 믿음의 주를 바라보라는 겁니다.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문제 오면 문제 속에 빠지고, 문제를 바라봐요. 위기 당하면은 그 위기를 바라봐요. 시선만 예수를 바라보면 되는데, 참된 능력 된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니까,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위기를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봐요. 그래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또 그 문제가 내가 당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 못 빠져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요셉, 결국 요셉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요셉의 형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요셉을 시기하고, 왕따 시켰습니다. 엄마가 4명이고, 배다른 형제가 10명입니다. 모든 형제들이 결국은 요셉에게 어떻게 하든지 어려움을 주려고, 그렇게 어떻게 그런 형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 그런 어려움을 당한 요셉, 어머니를 잃어버린 그 마음을 누가 채울 수 있겠습니까? 형제들의 그 시기와 왕따 시키는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요셉이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시기와 어려움들을 피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요셉은 사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바라본 겁니다.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 상황들을 바라봤다면 하나같이 요셉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미래가 없는 것이죠. 여러분 자기도 원치 않게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 빈 마음들 얼마나 공허하고, 허전하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들이 다 하나같이 어렵게 만드는 그 상황 속에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형들을 막지 못하시겠습니까?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형들을 막지 못하는 하나님이십니까, 아니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요셉의 그 어려움들을 모르는 하나님이십니까? 그런데 왜 허락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요셉은 그 어려움과 그 위기 앞에서 그걸 어려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위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에요.
 그래서 노예로 갔지만은 성경에 보세요. 노예로 간 그 삶이 원망하고, 불평한 삶이 아니었어요. 노예로 간 그 삶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고, 미래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말씀 속에 있었던 요셉은, 이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요셉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함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귀한 축복된 언약을 요셉은 보았던 겁니다. 그래서 노예라는 현실 앞에서 결국은 하나님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노예라는 그 현실이 요셉에게 있어서는 답이요, 요셉이 가야 될 길이고, 방향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다, 주를 바라 보십시다. 왜 그리스도 주를 바라보면 되느냐?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말씀했어요. 히브리서12:2절에 “기쁨을 위하였다.”, 여러분 그리스도 앞에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뭔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그게 그리스도 앞에서 기쁨이겠습니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기쁨, 그리스도 앞에서 기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적인 축복을 회복하는 겁니다. 창세기1:27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고, 그리스도 앞에서의 기쁨입니다.
 물론 여러분 신앙생활 잘하는 것 중요합니다. 또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기쁨은 창세기 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영적 사망 상태에 빠져버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회복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고, 그리스도 앞에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인간의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참된 생명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는데 그게 진정한 예수님 앞에 기쁨인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면서 그 생명의 역사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만이 저와 여러분의 모든 창세기 3장 문제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리고 운명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만이 저와 여러분을 운명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뭡니까?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여러분 십자가 사형 형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주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위에 있는 사람이 모두가 모함하면서 침을 뱉고, 죄송합니다, 귀때기를 때리고, 이래도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든 백성들이 당해야 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말씀했어요.
 그러면서 이사야53:7절에 보면은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수치를 당하면서도, 부끄러운 자리에 처해 버렸으면서도 그의 입을 털 깎는 자 앞에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 기쁨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기쁨을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에 이 땅에 머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2: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에서 우리 인생에게 생명과 능력과 모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로부터 오는 축복이 어디서 오느냐? 보좌로부터 모든 생명과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축복이 뭐냐, 우리의 배경이 뭐냐? 보좌의 배경이 우리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렇다면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할 만큼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가를 날마다 우리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되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아니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그 기쁨, 우리를 구원하신 그 기쁨의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지금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보좌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 인간에게 모든 생명을 주시고, 능력과 축복을 공급해 주시는데, 그렇다면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데서 문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는 영적인 상태, 그 사실들을 여러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느냐? 정말로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되는데 내게 있는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느냐? 지난주에 우리가 말씀을 살펴봤던 것처럼 진짜 복음을 복음 되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킹핀(King Pin),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정말로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내게 있는 무엇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치유 받아야 합니다. 
 혹이나 여러분 영적인 상태가 어떻습니까? 자꾸 사람에게 영향 받고, 사람이 인정하기를 원하고, 사람들의 말에 사람들의 어떤 분위기, 그런 분위기에 여러분 익숙해져 있습니까? 그게 정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것들인데 그 속에 내가 있으면서도 그 속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혹이나 여러분 건강과 자식의 문제들, 가정의 문제들 때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는 성도들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진짜 그리스도 바라보면은 가정 문제도, 자식의 문제도, 건강 문제도 해결 되어지는데 그게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에, 내가 당한 지금의 문제가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에, 자식의 문제가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에, 당장 내 앞에 온 건강의 문제가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속는 인생을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어떤 상황과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만 바라 보십시다.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에요,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답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심방 가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서 시편 31편 참으로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제 자신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또한 고백하는 것이고요. 시편 31:8-15절에 보면 다윗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했는가? 또 주위에 많은 둘러싸인 환경들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여러분 말씀을 좀 확인하고 넘어 가십시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시편31:9-13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3절까지.
 자, 보세요. 다윗에게는 마음에 근심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힘을 잃었다 했어요. 자기에게 오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 힘든 것이냐? 10절에 보면은 뼈가 쇠하도소이다, 여러분 사람이 진짜 아프면은 뼈가 아프다 하잖아요? 뼈가 쇠하도소이다. 그러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성경에 보면 모든 대적들 때문에 자기가 욕을 당하고, 그다음에 이웃에게서도 당하고, 또 자기에게 있는 친구가 놀라고,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피하는 거에요. 이 상황이 어떠한 상황이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다음에 나오는 12절에 보면은 결국 죽은 자는 시간 지나면 그 당시에는 기억하지만은,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기억하지 아니함 같이 내가 잊어버린 바 되었고, 내가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다 했어요. 그러면서 13절에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다 했어요.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이 이 다윗에게 있었습니까? 주위에 대한 환경들이 어떤 환경들이었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거기에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어떤 문제들 가운데 있습니까? 정말로 그 문제와 어려움과 환경들 속에 믿음을 고백 하십시다. 다윗처럼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때에 모든 흑암의 역사들이 꺾여져요.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든 불신앙의 환경들 속에 나도 모르게 그 속에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탄에게 속게 돼요.
 그러나 그런 환경이 여러분에게 설령 있다 할지라도 그 환경 속에서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환경이라도 상관없다 라는 것, 나는 그리스도 주님만 바라보겠다 라는 것. 여러분 왜 그리스도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은 그냥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쁨으로 여기시는 그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 입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모든 축복이 있는데 내가 문제 속에 속고, 어려움과 사건 속에 속아가지고, 그냥 교회에 끌려다니고요. 신앙생활 한다면서도 이 영적인 엄청난 축복된 역사를 다 놓치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는 구원의 역사, 기쁨으로 여기시는 구원의 역사,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다 가진 것입니다. 그 축복된 신분과 권세를 가지면서도 내게 있는 문제들 때문에, 내게 있는 어려움 때문에 그 축복을 놓쳐버린다면 억울한 일이죠. 다른 것이 억울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말로 구원의 역사를 주셨는데, 하나님이 기쁨으로 여기시는 그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내 작은 문제들, 어려운 문제들, 이런저런 환경들 때문에 내가 그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면 그게 바보요, 그게 가장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를 의지하겠고, 주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으로 문제와 사건들 앞에 서서 당당히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들을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자가의 능력
 두 번째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으십시다. 오늘 고린도전서1:18절에 바울의 고백이죠.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님께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기쁨을 위해서 지신 그 십자가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바울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십자가의 죽음, 부활의 복음이 인정이 안 된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또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의 핵심만 싹 빼버리고,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냥 예수 믿는 것이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내 자녀 잘 되기 위해서, 뭔가 평안하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그 정도의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내가 예수 믿어서 잘 되어야 되겠다, 내 자녀들이 잘 되고, 평안해야 되겠다. 그냥 교회 다니는 부분들이 내 인격의 수행을 위해서 교회 다닌다. 그 정도 되니까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이 일어오면은 자꾸 다른 말할 수밖에요, 다른 소리 할 수밖에요, 그게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들이 있었느냐? 그리스도 믿으면 되느냐, 아니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느냐? 정말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받느냐, 우리 조상들이 열심히 지켰던 그 율법을 우리도 지켜야 되지 않느냐?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일어났어요. 정말 그리스도만 되느냐라는 것, 다른 소리들이죠. 정말로 우리 조상들이 열심히 지켜나갔던 그 율법을 우리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냐? 그런 내용들이 교회 안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그 어떤 것으로도 사탄과 저주와 운명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 것을 깨닫기 위해서, 그래서 정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복음만이 필요하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죠. 그런데 조상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것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도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그런 생각들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떻습니까? 여러분 뭔가 우리가 복음을 가졌다 하면서도 분명히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내게는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신앙생활 하는 삶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 내가 힘든 것에 집착해요. 왜냐?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 했는데 그걸 안 믿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 내가 힘든 이런 부분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응답의 기준이 뭐냐? 내가 원하는 것이 응답 되어지면은 응답 받았다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내게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면 그걸 가지고 응답 받았다 생각해요. 그리고 내 문제가 해결되는 그 사실을 보면은 응답 받았다 생각하고, 그게 복음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그게 복음이 아니에요 사실은. 여러분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마는 내가 원하는 것, 응답받는 것이 응답의 기준이 아니고요. 어떤 면에서 내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응답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중심으로 해서 복음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을 가지고, 십자가를 헛되게 붙잡고 있는 것이라 했어요, 십자가를 헛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읽지 않은 고린도전서1:17절에 보면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마지막에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당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헛되게 붙잡고 있느냐? 단지 그리스도를 내 문제 해결되는 방향으로 알고 있는 것, 또 실제로 내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부분들로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헛되게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실은 그리스도를 헛되게 붙잡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는 것, 사형 형틀인, 저주의 형틀인 십자가에 죽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 신성 모독자였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이런 말씀을 들어보면 전부 다 신성 모독자고, 그 당시에 초대교회가 예수가 부활 하셨고,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예수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당연히 바울을 위해서 그 당시의 모든 분위기가 예수 믿는 교회들을 핍박에 앞섰습니다. 그리스도 복음을 모르고, 헛되게 붙잡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바울은 어느 날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졌어요. ‘아,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저주받은 죽음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고백했던 것이 뭡니까? 고린도전서2:2절에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했어요. 알았다는 말이에요, 지난날은 십자가 복음을 그냥 사형의 형틀로, 저주받은 그 형틀로 봤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십자가 그것은 저주의 형틀이 아니라 그 저주에 내가 당해야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당함으로 말미암아 내게 십자가로 말미암아 생명의 구원을 주신 것이구나!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는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었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갈라디아서6:14절에는 더 나아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그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했어요. 어떤 면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십자가에 대한 생각들, 헛되게 알고 있었던 그 생각들, 그 생각들을 똑같이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았겠죠.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겠다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복음, 날마다 여러분에게 정확하게 붙잡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게 매일매일 승리하는 삶이에요.
 혹이나 여러분 안에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바울에게도 그 사실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백한 것이 갈라디아서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 고집과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살아온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혔다 라는 것. 이것 때문에 내가 십자가의 복음을 누리지 못했구나! 깨닫게 되면서 내 안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야기 했어요.
 여러분 안에 세상 욕심들, 세상의 기준들, 세상의 방법들,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걸림돌로서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영적싸움을 싸움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치유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게 하는 내 안에 있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거에요. 이미 죽었는데,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죽었는데 그걸 내가 살고 있으니까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죠. 십자가의 복음이 진정한 능력인데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진짜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다른 싸움을 싸우지 마시고, 육신의 싸움, 여러분 사람 관계 속에서 그런 싸움들 싸우지 마시고요. 정말로 내가 십자가 복음을 복음 되게 붙잡는 그 영적인 싸움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오늘부터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저와 여러분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죄, 저주, 재앙, 사탄, 운명을 해결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모자람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그 능력에 의지해서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막힌 문들을 여시고, 모든 어려운 문제들 앞에 그 십자가의 복음의 역사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확인토록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정말로 날마다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한순간도 우리가 십자가 붙잡지 않고 나가게 되면 악한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다가 결국은 내 자신이 살아있고, 내 계획이 살아있고, 내 중심으로, 세상의 기준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우리도 모르게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다 받아놓고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지 마세요.
 혹이나 교회 안에 인간관계 갈등들이 있습니까? 그 갈등 앞에 속지 마시고 십자가 붙들길 바랍니다. 어려움들 있습니까? 그 어려움에 속지 마시고, 십자가 붙들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이번 한 주간 정말로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나아감으로 참된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는 그런 한 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십자가의 복음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예수님이 나의 주시고, 나의 그리스도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2.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라는 것 하나만으로 과거의 모든 답을 얻고, 오늘, 미래의 모든 길이 응답의 걸음 되기를 원합니다.
3. 복음을 복음 되게 하고, 십자가 능력을 누리며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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