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의 말씀을 보내어 건지시는 도다
2024-09-22 12:52:49
관리자
조회수   178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024년 9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의 말씀을 보내어 건지시는 도다
(시107:19-20)
   

서론: 우리는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삶이 정리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노예, 풍랑, 감옥으로 가도 성령인도 받으면 모든 여건, 환경, 문제를 이기게 됩니다. 초대교회와 똑같은 구원을 받고 똑같은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데 왜 문제에 낙심하고 염려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각인되면 잘못 각인된 것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1. 말씀의 흐름 속에 내 인생이 있어야 함
  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언약 붙잡게 하소서(창3:15).
     • 원시 복음을 누리게 하소서(창3:15, 히11:4, 창6:14, 출3:18).
  나. 내 안에 말씀이 박혀지게 하소서.
     •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을 누리게 하소서.
     • 현장이 보여지게 하소서.
     • 성령충만 속에서 앉은뱅이가 보여지게 하소서(행3:5-6).
   
 2.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각인하라
  가. 하나님 말씀이 정리되게 하소서.
     • 말씀으로 내 생각, 마음, 영혼이 치유되게 하소서(출14:13-14).
  나.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되게 하소서(낭중지추).
     • 말씀이 능력과 힘이 되게 하소서(히4:12, 요6:63).
  다. 말씀 묵상을 누리게 하소서(시1:1-6).
     • 말씀 가지고 기도하게 하소서(마르틴 루터 / 예수님과 마귀와의 영적싸움 시5:3, 시17:3, 시119:147-148, 시119:11, 시119:130-131, 계19:13).
   
결론: 영적싸움의 무기 중의 무기, 힘 중의 힘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능력대로 고치시고, 위험에서
건져내시고 회복하실 것입니다(시107:19-20).

 

9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의 말씀을 보내어 건지시는 도다”
(시107:19-20)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아멘.
         시107:19-2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십시다.’, 오늘도 항상 듣던 말씀, 복음으로 힘을 얻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추석명절을 지냈죠? 우리 추석명절, 우리의 현장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이었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가장 귀중한 축복이죠.
 여러분 한 주간 여러분 만남과 사건과 일들 속에, 어떤 현장 속에 있었든지 간에, 여러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축복을 누렸습니까? 네,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임하는 축복 가운데서 모든 축복의 문들을 열어가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한 사람의 기도는 모든 현장을 회복하는 귀중한 축복으로 우리에게 응답으로 역사하신다 말씀을 전달 받았습니다. 오늘 제목을 한번 보십시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의 말씀을 보내어 건지시는도다.”, 말씀이 임하고 그의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건지신다 말씀 했습니다. 오늘도 이 제목 그대로가 우리 한 주간의 모든 현장에서 성취 되어지는, 그런 사실들을 체험하는 제자들의 걸음들이 되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뭔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들이 있어요. 나름 뭔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어떤 외부적인 조건과 환경들이 나를 움직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진짜 알고 보면 결국은 내 안에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움직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정리가 되어 있으면, 우리는 정확한 성령의 인도와 함께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된 역사들을 어떤 현장에서도 누릴 수가 있는 것이죠.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정리가 안 되어지면, 사실은 자기가 살아온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의 정리가, 우리의 삶에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결국은 세상이나 남이 하는 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안에 정리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요,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함이 우리 안에 만들어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실은 성경에 승리한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에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그 역사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게 된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예로 가도 상관없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요셉. 풍랑을 만나도 상관없었습니다. 누구에요? 그리고 감옥에 가도 상관없었습니다. 왜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따라 가는 삶이 되어진다면, 모든 조건과 여건과 환경과 문제를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정리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가는 삶이되어짐으로, 모든 조건과 환경과 문제를 뛰어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대교회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조건과 어려움과 문제들을 뛰어넘고, 걸음걸음마다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그런 엄청난 축복된 증인들로 세워졌던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초대교회에 임했던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그렇죠?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 초대교회 역사들이 우리에게 똑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맞죠?
 그렇다면 초대교회보다 100분의 1, 1,000분의 1보다도 더 적은 문제들 가운데서 우리는 왜 시험에 들고, 왜 낙심하고, 왜 분노하고, 왜 불평하고, 왜 무너집니까? 아니, 초대교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실들, 동일한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실들이 나에게도 임하고 있고, 초대교회가 모셨던 그 성령이 역사, 나타났던 그 성령의 역사가 내게도 임한 성령의 역사 똑같은 성령인데, 왜 나는 자그마한 문제들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나만 무너지면 다행인데 다른 사람들까지 시험에 들도록 만들어요.
 왜 그럴까요? 무엇에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 정리가 되어져서 우리의 모든 잘못, 먼저 들어가 있는 부분들이 치유 되어지고, 올바른 것들로 각인 되어져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져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성령과 똑같은 성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문제와 사건과 일들 앞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시간에 말씀이 여러분에게 딱 붙잡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각인되었던 모든 것들이 치유되어지고, 진짜 말씀을 사실적으로 붙잡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우리의 잘못된 모든 것들이 치유 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에요. 이번 한 주간에 이 말씀 두 구절 얼마 안 되잖아요? 말씀을 깊이 한번 묵상해 보세요. 다시 한번 보십시다. 19-20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이 뭐냐? 육신적으로 우리가 돈이 없으면 돈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 자녀들 잘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물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돈 달라고 기도했는데 돈 가지게 되었고, 건강 얻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건강함을 얻었다? 물론 응답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진짜 응답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상황이지, 그렇잖아요?
 진짜 응답은 다른 데 있다는 것,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중요한 곳마다 여호와의 말씀이 누구에게 나타났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봤던 것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누구누구에게 임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죠. 오늘 본문에도 보면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부르짖었더니 라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20절에 보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치유하고 원수들에게서 그들을 건지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응답은 말씀이 임하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 참된 응답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이 온전히 내 안에 말씀이 말씀 되는 역사로 나타나야 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느냐?

1. 말씀의 흐름 속에 내 인생이 있어야 함
 먼저 첫 번째입니다. 말씀의 흐름 속에 내 인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지난날의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전혀 달라요. 그런데 지난 날 보면 그냥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한 주간 현장에서 그냥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말씀 따로, 현장 따로, 말씀 따로 우리 신앙생활 따로 그렇게 신앙생활 해 왔던 삶이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주일날 말씀 받으면 그 말씀 받을 때는 은혜 받는 것 같은데 문고리를 잡고 나가면 다 잊어버려요. 심지어 어떤 제목으로 메시지 했는가? 그것도 기억이 안 나요.
 목사인 우리 목회자들조차도 말씀을 선포해 놓고도 돌아가서는 어떤 제목의 말씀이 선포되었는가 생각도 안나요. 그게 어떤 면에서 지난날의 우리의 신앙생활이었어요. 지금은 전혀 다르죠. 지금 강단에서 우리 주일날은 장로님들, 주일 오후에는 안수 집사님들, 또 수요일날은 우리 권사님들 중심으로 기도 담당이 돌아가는데 그 기도하시는 분들의 기도를 보면 진짜 이분들이 한 주간 삶에서 말씀 붙잡고, 인도받고 있구나! 다른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놓고, 기도하는 삶의 인도를 받고 있구나! 라는 것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에는 어땠습니까? 말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현장 속에 빠져가지고, 급급하게 살아가요. 그나마 기억나는 게 있다면은 말씀 통해서 진짜 이건 기가 막히게 생각나요? 뭐냐? 예화 든 것. 말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예화 든 건 생각나고, 또 설교 시간에 웃기는 이야기하면 그게 마음에 남고요. 그리고 또 뭔가 감동적인 것, 그 감동을 받고, 그리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잖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거에요. 이게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 따로, 현장이 따로였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말씀과 전혀 맞지 않는, 그래서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전혀 영적인 힘이 없고,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우리를 부르셨는데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우리 자신들이 세상에 끌려가는 이런 신앙생활의 삶이었던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말씀과 현장이 맞고, 말씀이 내 신앙생활에 맞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먼저 첫 번째로 성경의 말씀의 흐름들을 알아야 된다 라는 것. 그 말씀의 흐름 속에 여러분 인생이 있어야 된다 라는 것. 말씀의 흐름을 보고, 확인하면 할수록 나 한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를 알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진정한 감사와 함께 진정한 올바른 기도제목이 그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성경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이 바로 창세기3:15절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잘 아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언약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언약이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라는 것.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실은 사탄의 손에 붙잡혀 있고, 그래서 결국은 죄 가운데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만들어진 인간이 결국은 사탄에게 속아가지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에 붙잡힌 바 되어 있는거에요. 죄와 사망의 법에 법적으로 완전히 딱 붙잡힌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안 되어버려요. 모든 사람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뭔가에 매여가지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다른 사람 보고도 이야기하잖아요? ‘네 인생 네 마음대로 될 줄 아느냐? 한번 살아봐라.’, 무엇을 말합니까? 뭔가 모르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고, 매여서 살아간다는 말이에요. 그 배경이 뭐냐? 결국은 그 배경은 영원한 지옥 배경에 속해 있는 우리가 되어 진 것이고, 결국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얽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죄인이라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보고 타락한 인간이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창세기3:15절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원시 복음이라 하죠. 창세기 3장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면서 결국은 거기에 대한 답으로 창세기3:15절을 주셨는데, 여러분 성경에 창세기 3장과 창세기3:15절에 기록이 없다면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 전체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거에요. 왜냐? 성경은 다른 것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성경은 창세기3:15절,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고, 그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이 성경이에요.
 그래서 원시 복음이라고 하는데 첫 복음이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시 복음, 첫 복음을 주셨는데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고, 모든 문제의 응답인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우리가 정말로 사실적으로 확인하고,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겠다. 이게 복음의 원 복음이에요, 원시 복음이에요. 이게 진정한 응답이고, 해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붙잡아야 될 인간이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한 때가 지나기도 전에 이 언약을 놓쳐버린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가인입니다. 창세기 3장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놓쳐버리고, 열심히 제사했는데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어요. 왜 제사를 받지 않으셨느냐?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열심히 드리지 않아서?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여자의 후손, 이 언약을 놓쳐버리고 제사 드렸기 때문에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결국 가인의 제사가 실패 되어지고, 그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자의 후손이라는 이 언약을 붙잡은 한 사람,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어요. 그래서 가인을 통해서 돌에 맞아 죽었지만은, 히브리서11:4절에 아벨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한다고 했어요. 다른 것 한 게 없습니다. 여자의 후손 이 언약을 알고, 이 언약 가지고 예배드렸는데, 그리고 돌에 맞아 죽었잖아요? 가인에 의해서. 그런 아벨의 믿음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 그렇게 히브리서 11장에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여러분 정말로 여자의 후손, 그 언약에 대한 비밀들이 여러분에게 붙잡혀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이 언약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오게 된 것이 창세기 6장에 네피림 시대가 온 겁니다. 네피림 시대는 무엇을 말합니까? 네피림이라는 말 그 자체가 나팔이라는 말인데 그 뜻이 뭐냐 하면은 위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이에요. 위에서 떨어진 자가 누구에요? 사탄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잃어버리니까 모든 사람이 육신이 되어지고, 결국 사탄에게 붙잡혀서 만들어내는 문화가 우상의 문화, 타락의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네피림 시대가 왔는데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역사들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한 사람 노아를 선택하게 하셔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 노아에게 무엇을 만들라고 했습니까? 창세기6:14절에 방주를 너를 위해서 만들라. 너와 후대를 위해서, 6:18절에 방주를 만들라. 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방주를 만들라, 언약의 역사들을 계속해서 이어간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여자의 후손 이 언약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반대로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그 언약을 잃어버릴 때마다 언약 잡은 한 사람을 불러 세우셔서 그 언약의 역사를 대를 이어서 계속 이루어 왔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로 완전히 사로잡힌 시대가 바로 바벨탑 시대였죠. 한 세대가 가기 전에 벌써 이런 문제들이 이 땅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언약을 놓쳐버리고 또 언약을 회복하게 하고, 언약을 놓쳐버리고 또 언약을 회복하고, 그 중심은 다른 게 아니에요.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 누굽니까? 메시아, 그리스도를 놓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고,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모든 역사를 그 중심으로 움직여가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죠. 400년 동안에 애굽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열심히 살다 보니까 어느 날 그들도 언약을 놓쳐버렸어요, 여자의 후손을 놓쳐버렸어요. 그래서 애굽에 노예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거기에 그냥 이스라엘 백성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준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야기했죠,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내겠다.
 그래서 모세에게 알리신 사건이 뭡니까? 출애굽기3:18절에 희생 제사, 피의 제사,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신 거에요. 그 언약을 붙잡고 나가는 모세의 걸음 속에 모세가 지팡이를 잡았는데 그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 이야기했어요. 그 지팡이를 갖고 나가는 모든 현장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400년 동안에 애굽의 노예 세상 속에서 해방되었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붙잡게 될 때.
 그래서 여러분 그 역사 중심으로 해서 세계 역사가 흘러왔고요 사실은. 그 역사 중심으로 해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 강단을 통해서 그 언약의 역사들을 붙잡고 있다 라는 사실. 그 언약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세 시대에 복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복음이 땅에 짓밟혀지게 되고, 교권이 일어나면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죠.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는데 그 종교개혁 이후로 지금 한 500년 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로 500년이 넘는 그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또한 복음의 역사들을 우리를 통해서 회복시키시고, 그 복음의 역사들을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세계복음화의 증인으로 나가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오늘 받고, 오늘 받은 말씀이 이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말씀인 것을 확인하게 될 때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딱 맞아지게 되어 있고, 딱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딱 잡혀지는 순간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뭡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들은 일어나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인류 역사를 이끌어왔고,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이 복음이 맞는가? 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된다 라는 것.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은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딱 박혀지게 되어 있어요. 그때부터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이 세워지게 되어 있어요.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이 딱 세워지면서 이 기도제목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이 땅에서 하며 살아가야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한 삶도 나오게 되어 있고, 그 부분들이 되어 질 때에 정말로 이 땅에 무엇을 전달하고, 무엇이 흘러가도록 해야 될 것인가? 그 부분까지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내가 받은 언약이 어떤 언약이고, 그 언약 속에서 내게 기도제목을 주신 것들이 무엇인가를, 내가 만들어낸 기도제목 말고요. 그 언약 속에서만 주어지는 하나님이 주신 기도제목이 무엇인가가 보여지는 만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놓고,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가 나오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이 부분들을 전달해야 될, 이 부분들을 흘러가게 해야 될 부분들이 무엇인가가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이걸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신앙생활의 누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증인으로 나타나는 걸음까지 나오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누림이에요.
 한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40년 동안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를 봤습니다. 그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절기만 되면은 공식적으로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되기 때문에 늘 왔다 갔다 하는 그 길입니다, 그 성전입니다. 거기에 베드로도 성전에 올라가면서 그 앉은뱅이를 봤어요. 그런데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를 바라보는 순간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문이라는 사실을 봤어요. 그게 주목하여 봤다 라는 거에요. 사도행전3:4절에 주목하여 봤다 했어요. 절대적인 문이 된다는 것을 봤어요.
 그리고 그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해서 6절에 말씀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베드로에게 보여졌기 때문에 은과 금이 없어서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정말로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그리스도를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누려야 될 신앙생활이에요 여러분. 베드로만 누려야 될 부분들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누려야 될 부분들이 뭐냐? 여러분 말씀이 들려지면서 그 말씀 속에 기도제목이 붙잡혀지고, 기도제목을 따라서 내가 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 속에서 무엇이 보여지느냐? 실제적인 현장까지 보여진다 라는 거에요. 이게 신앙생활이고, 이게 신앙생활의 누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니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인 것, 보이는 것,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요? 진짜 신앙생활을 모르니까 말씀이 역사 속에 어떻게 흘러왔고, 그것이 지금 내게 역사 되었고,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그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고, 그 사실이 내게 확인되어 지면은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는 기도제목이 무엇일까가 보여지면서 현장까지 보여지는데 이 사실이 안 되어지니까 기껏 한다는 기도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 내가 잘 되어야 된다는 것, 그런 기준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 라는 것.
 오늘 이 시간에 먼저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정말로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의 흐름 속에 내가, 내 인생이 서 있는 것인가? 그래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어요. 말씀의 흐름 속에 내가 서 있는가? 내 인생이 말씀의 흐름 속에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저런 많은 일들 당할 때마다 흔들리게 되고요. 이런저런 말에 흔들리고,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들을 다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우리 하나교회는 언약의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붙잡은 언약은 오늘 우리 찬양대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그 말씀 오늘도 내게 들려주옵소서.’, 찬양했는데 바울이 그 이야기했잖아요? 빌립보서3:1절에 보면은 내가 전한 복음, 내가 늘 하는 말, 그 말을 하는 것이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리라.
 바울은 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 역사 속에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 역사를 가지고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늘 하는 말이었어요. 그게 자기에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다 했어요. 여러분 정말 우리가 듣던 말씀, 역사 속에 지금 복음을 회복시키는 그 역사 속에 내가 서 있음을 확인하는,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로 복음 받은 이 사실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를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각인하라
 두 번째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말씀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그 속에 내 인생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정리하고, 정착시켜야 합니다. 말씀의 흐름이라는 것은 역사 속에 흘러온 복음의 흐름 속에 내가 들어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그렇다면 이제는 나의 삶 속에 그 말씀이 정리가 되어져 있어야 해요, 그 말씀이 정착되어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은 우리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치유 받는 응답들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각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치유되느냐? 말씀으로 내 삶에 그 말씀이 정리 되어질 때에야 내게 미리, 이미 각인된 것들이 하나하나 치유가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이죠. 그것이 습관과 체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육신의 삶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 말씀보다도 다른 것으로 이미 다 각인되어 버린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영혼은 병들어 있는 것이고요. 영혼이 병들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될 때에 불신앙하고, 염려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인본주의에 빠지는 겁니다. 그게 영혼이 병들었다는 말이에요.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살아야 될 저와 여러분이 중요한 순간순간에 우리도 모르게 인본주의 쓰고요, 그게 영혼이 병든 거에요. 염려한다? 영혼이 병든 거에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영혼이 치유 되어지는 그런 응답들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치유 되어야 됩니다. 그 어떤 것도 먼저는 우리의 뇌에 각인 돼요. 그것이 영혼 속에 각인 되어지고, 그게 영원과 관계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치유될 때 그게 영원한 축복의 보좌와 연결되는 응답을 누리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안에 먼저 각인된 하나하나가 치유 되어져야 된다는 것.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들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각인된 것이 나와요. 우리 안에 무엇이 각인되어 있느냐?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홍해 앞에 섰습니다. 거기서 믿음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중요한 신앙의 고백을 했죠, 믿음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출애굽기14:13-14절에 나온 내용이죠. 여호와께서 너희를 건지시는데 오늘 너희가 본 이 애굽 사람들을 두 번 다시 너희는 보지 못하리라,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믿음의 고백이에요. 각인된 거에요, 모세의 영혼 속에 각인된 거였어요. 문제 앞에서 그 각인된 믿음의 고백이 나왔는데, 가만히 서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같이 그들은 모세 지도자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원망했다는 그 말 자체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죠. 그들은 그 속에 각인된 것들이 나왔어요.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애굽 살 때가 좋았다 라는 것, 왜 이곳에 불러내서 우리를 이곳에 죽게 하느냐? 애굽 살 때가 좋지 않았느냐? 애굽에서는 먹을 것을 마음대로 먹고, 또 거기에 우리의 매장지도 있고, 애굽이 더 좋았지 않았느냐? 그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거였어요. 그러나 믿음의 역사 가운데 각인된 모세의 선포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고백한 모세의 말대로 홍해를 건너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각인되어 있느냐? 그 각인된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나오게 되어 있어요.
 누차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한자 성어죠, 죄송합니다마는 ‘낭중지추’, 우리 주머니 속에 있는 바늘은 기여코 비집고 나온다 라는 것.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각인되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 각인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으로, 또 훌륭한 교훈으로, 도덕책으로 하나님의 말씀들을 읽기도 합니다. 물론 거기에 훌륭한 교훈적인 부분들이 있고요, 도덕적인 부분들이 있고요, 바르게 살아야 될 부분들이 거기에 나옵니다.
 어떤 면에서 윤리적인 부분들이 거기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 자체는, 말씀 자체는 우리에게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말씀 자체가 살아있는 능력이고, 힘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 안에 각인되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이 사실이 우리 아이들에게 각인된다? 분명히 한 시대를 살리는 일꾼들이 거기서 나오게 되어 있어요.
 특별히 우리 하나 서밋스쿨을 위해서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어릴 때부터 우리 하나 서밋스쿨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복음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해서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고, 교회 안에서 진행 되어지는 서밋스쿨에 넣어서 지금 복음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계속해서 좀 기도해 주시고, 지난 주간에 우리 김진용 목사님이 새벽 기도를 인도하시면서 서밋스쿨의 두 가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서밋스쿨에 다니는 아이 하나가 수영장을 갔는데 거기서 이 아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한 분이 서밋스쿨에 전화번호가 있는데 우리 070 잘 모르잖아요? 일반 휴대폰으로 전화하지, 070은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는데 070으로 하나 서밋스쿨에 전화가 왔더래요. 그래서 전화를 받아보니까 한 부모님이 자기 아이를 서밋스쿨에 넣고 싶다 라는 것, 어떻게 하면 들어 갈 수 있느냐? 지금 자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초등학교 2학년 그걸 다 포기하고, 그냥 서밋스쿨에 처음부터 입학시키고 싶다. 그래서 교회를 다닙니까? 교회에 다니는 아이가, 또 부모여야 입학할 수 있으니까 교회를 다니냐고 물으니까 교회는 안 다닌다 라는 것.
 그런데 어떻게 이 자기 아이를 서밋스쿨에 넣으려고, 입학시키려고 생각했느냐 하면은 주위에 자기 아는 아이를 보니까 뭔가 달라요. 수영장 가서도 가만히 지켜보니까 이 아이는 뭔가 다르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전화를 한 거에요. 그래서 전화하니까 예수를 믿고, 교회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고 하니까 하겠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아마 추석 이후로 만나서 이제 구체적으로 복음 전하고, 또 정말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봐가지고, 아이를 내년에 입학시키려고 한다 라고 우리 서밋스쿨을 담당하고 있는 김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복음이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면은 여러분 그냥 보실지 모르지만 다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 막 뛰어놀고 이런 걸 보면, 수업 마치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뛰어노는 아이들 보면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귀하게 보이고,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요. 사실은 달라요, 보는 모든 부분들이 달라요. 심지어 지금 우리 서밋스쿨에 학원의 교사를 의뢰를 해가지고, 받는 수업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학원 강사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서밋스쿨 안에 행사가 있기 때문에 그 행사 때문에 수업이 빠지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자기가 보강해 주겠다면서 오히려 더 열심히 가르쳐준다 라는 것. 그러면서 한 말이 뭐냐 하면 이 아이들은 뭔가 다르다 라는 것,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인데 그들이 신앙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하는 말들이겠죠. 뭔가 착한 아이들처럼 보인다 라는 것. 그런데 착한 아이도 착한 아이지만은 진짜 말씀이 어릴 때부터 들어가면은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왜냐? 말씀은 힘입니다. 말씀은 모든 근본을 바꾸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우리 안에 각인 되어진다?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요한복음6:63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함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다, 육은 무익하다 말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요, 바로 살리는 영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것 이전에 우리의 모든 각인을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모든 병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말씀이 각인 되어져야 돼요. 어릴 때부터 이 부분이 되어진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어떻게 쓰실지, 어떻게 그 아이를 통해서 역사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증거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각인된 아이들은 한 시대를 살려갔다는 사실들이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증거입니다. 이 증거를 딱 붙잡고, 여러분 개인들이 먼저 말씀으로 여러분 안에 인생이 정리 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후대들에게 이 말씀을 가지고 정리시켜 나가는 이것만큼 신앙의 유산 중의 유산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말씀이 내 안에 각인되도록 하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각인되어 지느냐?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마는 먼저는 말씀의 묵상입니다. 말씀의 묵상이 뭡니까? 조용한 시간에 깊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거에요. 이게 치유를 가져와요. 말씀의 묵상이 되어질 때에만 치유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시편1:1-6절에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악인은 어떤 사람이냐?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특별히 1:2절에 보면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진짜 누가 복 있는 사람이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그 율법을 주야로 뭘 하는 자요? 묵상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읽고 넘어가면 시간 지나면 그냥 잊어버려요. 정말로 말씀 받았다면 그 말씀을 가지고 깊이 기도하면서 묵상하다 보면은 그것이 우리의 뇌에 각인되고, 우리의 영혼에 각인되고, 그게 영원까지 연결 되어지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 속에서 묵상되어 지면은 그것이 나중에 생각나게 되고, 그것 가지고 기도가 되어져요. 그리고 그것이 생각나고, 기도가 되어지면은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모든 것들을 치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또 교회사에 응답받은 인물들은 항상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다 라는 것. 그냥 말씀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묵상의 비밀 가운데 그걸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엄청난 좋은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은 명상 운동을 통해서 모든 엘리트들을 다 이끌어가고 있어요. 여러분 지도자들이, 세상에 엘리트들이 왜 명상 운동에 빠지는가? 그 책도 나와 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 힘들고 어려우니까, 그래서 명상으로나마 뭔가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서, 잠시, 잠깐의 안식인데 그것이나마 찾기 위해서 명상 운동에 빠지는 거에요. 
 우리에게는 명상 운동을 능가하는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 속에서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진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치유 되어지는 그 축복을 주셨다 라는 것. 그래서 정말로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 나름대로 깊은 기도, 말씀 가지고 기도하는 묵상 운동의 귀중한 축복을 여러분이 회복하고,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 사실이 우리 후대에게, 우리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게 되어 있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각인되어 지는가? 먼저 첫 번째로 묵상 기도를 통해서, 두 번째로 말씀을 암송하는 것도 좋고요, 말씀을 쓰는 것도 좋아요. 기록하는 것이죠, 좋습니다. 아침에 제가 매일 아침에 출근을 하면 차를 세워놓고, 로비를 거쳐서 제 방에 들어가요.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 세 분, 네 분이 꼭 먼저 쉼터에 앉으셔서 열심히 뭔가 적으세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이분들 나름대로 말씀을 적고, 기록하는 부분들을 봐요. 좋습니다, 어떤 형태든지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기록하는 것, 기록하면 또 달라져요.
 또 우리 교인들 가운데는 아침에 새벽 기도 마치고도 집에 가시면서 운동하시면서 말씀들을 암송하고, 그래서 계속 암송하면서 운동하시고, 집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세요. 암송하고, 또 기록하고,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치유될 부분들이 치유되어 지면서 말씀들이 각인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그래서 성경에 보면요, 시편5:3절에 다윗은 아침에 기도한다 했어요, 나의 소리를 듣기 때문에. 시편17:3절에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다. 그러면서 시편119:147-148절 한번 보십시다. 이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들인데, 이 말씀이 자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119:147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절입니다.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녘에 눈을 떴는데 주의 말씀을 읊조리려고, 한마디로 말하면 주의 말씀을 노래하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 새벽에 눈을 떴다고 다윗이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편119:10-11절에 보면 내가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 했어요, 말씀의 능력이죠. 시편119:130-131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을 깨닫게 하나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말씀을 여는데 빛이 비추어서 우둔한 사람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주신다 라는 것. 그러면서 131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어 헐떡였나이다.”, 주의 계명들을 사랑함으로 내가 입을 열어 헐떡였나이다. 말씀을 기다리고,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19:13절입니다. 이 말씀이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는데 한번 보십시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피 뿌린 옷,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말씀에 대해서 암송하고, 말씀을 쓰고, 말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한다? 치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되면 되느냐? 여러분 말씀을 암송할 때 그 말씀이 노래가 될 정도 하면 돼요. 시편 기자인 다윗은 말씀을 그냥 시로 쓴 것이 아니라 곡조 있는 노래로 적은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외우고, 쓸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 암송될 때 노래가 될 정도로, 그러면 역사는 하나님이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말씀이 암송되고 묵상되어 지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성공과 실패가 나오게 되어 있고,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삶도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아까 말씀드린 루터, 로마서1:16-17절을 가지고 종교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 그러한 시대에, 어느 하나 복음 앞에 서지 않는 그 시대에 한 사람인 루터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이야기하면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말씀하면서 결국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그런데 그냥 이 고백을 루터가 하고, 종교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이 고백조차도 이미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었어요. 하박국2: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이 주신 말씀을 바울이 붙잡았고, 주신 말씀을 루터가 붙잡은 거에요. 그 루터로 말미암아 한 시대에 종교 개혁을 시작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붙잡혀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라는 것.
 예수님도 신명기서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 앞에서 물리친 사실,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고, 말씀은 우리에게 무기입니다. 영적 싸움의 무기 중의 무기가 뭐냐? 힘 중의 힘이 뭐냐?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처럼 여러분 말씀이 우리 안에 각인되도록 묵상 운동, 말씀 가지고 깊이 기도하는 시간, 암송하는 시간들을 반드시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능력들이 어떤 것인가를 체험하는 그런 한 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편107:19-20절, 이 말씀을 읽음으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말씀인 그리스도, 그 말씀이 내게 묵상 되어지고, 암송 되어진다? 그 속에서 치유함의 역사가 일어남과 더불어 모든 위험한 지경에서 여러분을 건지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응답 중의 응답은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건지시고, 그 축복된 역사들을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 전도제자의 기도
1. 하나님 말씀을 중심해서 나의 인생, 삶이 정리되게 하옵소서.
2.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 증인의 삶이 누려지게 하옵소서.
3. 우리의 영적싸움에 힘, 무기가 되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되게 하옵소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