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는 인생
2024-10-06 12: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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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는 인생
(요2:1-11)
   

   
서론: 신자든 불신자든 인간의 모든 문제는 똑같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불신자는 복음을 모르지만, 돈도 벌고 세상 것을 즐기게 됩니다. 그런데 신자는 복음을 놓쳐버리니까 고생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누리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1. 신앙의 출발
  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누리게 하소서(요1:1-3, 요1:14).
    • 예수 생명을 충만히 누리게 하소서(요1:16, 엡3:19).
    •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 없이 정복하게 하소서(창1:28).
  나. 올바른 생각으로 응답받게 하소서(민14:1-10, 행27:22-24).
    •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소서.
    • 올바른 생각 속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게 하소서.
    •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짜 하나님을 만나게 하소서(행4:12).
   
   
 2. 당하는 일들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
  가. 있는 그대로 기도하게 하소서(요2:5, 요2:7-8).
  나. 그리스도를 알고 근본이 바뀌게 하소서(요5:24).
    • 그리스도를 알고 누림으로 인생이 바뀌게 하소서(물 → 포도주).
   
   
결론: 표적 중의 표적은 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가진 로마교회에 편지합니다(롬1:9-10, 롬1:15, 롬1:16).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또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늘도 나에게 복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만 높이고, 말하고, 증거 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는 인생”
(요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아멘.
         요2:1-1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상속하십시다.’, 할렐루야! 정말로 단 하루를 살아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그런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자든지, 불신자든지 당하는 문제들을 보면 결국은 모든 문제의 근본은 똑같음을 보게 됩니다. 신자들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로 주시는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면 우리의 삶이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들을, 계획들을 찾아내고 승리하게 될 것인데, 문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지를 못해요. 그래서 불신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세상 살아가면서 뭔가 신앙은 있으니까, 뭔가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는 그 마음들이 있으니까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을 내는데 삶이 고난 가운데,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로 주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복음인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들을 당하면서, 또 그 문제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몸부림치는데 점하고, 굿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뭔가 열심히 섬깁니다. 그런데 섬기면 섬길수록 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면 인생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바벨탑이죠.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실은 불신자는 그리스도를 몰라가지고, 우리 인생의 모든 답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몰라서 근본적인 저주와 재앙과 실패 가운데 살아가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고요,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은 받았는데, 그 구원 속에 있는 축복된 역사들을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면, 구원의 엄청난 축복된 역사를 누리면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는커녕, 사실은 불신자들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여러분 어떻게 들려질지 모르지만, 불신자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돈을 법니다, 성공합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면서 비록 지옥 배경 속에서 결국은 멸망 받을 지옥에 가게 되지만, 지옥의 삶을 살다가 지옥에 가게 되지만, 그나마 세상 사는 맛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불신자들을 봐요. 그렇잖아요? 열심을 내고, 노력하고 애써가지고 돈도 벌고, 성공도 하고, 그 성공하고 돈 번 것 가지고, 또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같이 즐기면서 나름대로 세상 사는 맛이 있어서 그것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재앙 받고, 지옥 배경 가운데 지옥 같은 삶을 산다 할지라도 지금은 세상 맛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불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신앙 가지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래서 오히려 신앙생활 하면서도 어렵고, 고난 가운데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 사실은 불신자는 복음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결국 망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고, 신자라도 복음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알고, 누려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고난과 고생 가운데 살아간다는 사실. 그렇다면 답이 내려지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로 복음을 바로 알고, 누리면 모든 것 끝납니다. 저는 복음에 대해서 조금 맛을 보면서 제 마음에 우리 성도들이 어려움 당하고 힘들어하고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진짜 복음이면 되는데, 복음이면 되는데’,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요.
 정말로 모든 답들을 복음에서 찾아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많이 어렵고 힘들어하는 부분들 보면서, 물론 개개인에게 시간표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제 마음에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은 ‘진짜 복음이면 되는데, 복음 안에 모든 것들이 다 있는데’, 복음을 조금 알고 보니까 그런 마음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참 목사로서 한 교회를 섬기는 자리에서 정말로 올바른 복음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이 누리고, 바로 알고 누리도록 해야 되는데 그 일에 심부름 하는 부분들이, 그 일에 심부름 하는 부분들이 안 되어서, 참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죄송하다는 마음들이 들어요.
 성도들이 복음 알고 누리면 참 감사한데, 그렇지 못한 부분을 바라보면서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목사를 세우셨고, 그 일에 심부름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일에 바르게 심부름 하지 못해 가지고 성도들이 어려움 당하는 부분을 보면 참 미안하다. 너무나 참 죄송하다 이런 마음들이 들게 됩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결론부터 붙잡으십시다. 우리 인생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하나만으로 모든 것 되게 되어 있어요. 나머지 모든 것들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시대에 우리 하나교회 만큼은, 많은 교회들 물론 다 훌륭하고, 다 멋있는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서는 모든 현장들마다 복음 하나 붙잡았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셨다! 라는 이 일에 증인으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신앙의 출발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정말로 올바른 복음을 알고,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의 출발이 바르게 되어져야 합니다. 신앙의 출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 부분을 살펴봐야 되겠죠.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이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여러분 사람들, 일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실은 훌륭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나름대로 뭔가 자기를 희생하고, 많은 사람을 도우는 그런 일들을 하셨으니까 뭔가 훌륭하고, 정말로 도덕적이고, 정말로 뭔가 남에게 하지 않은 그런 일들을 한, 가난한 사람을 도우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그런 부분들 가지고,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렇게 보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봐 준다는 것이 뭐냐?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구원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니까 훌륭한 사람으로, 착한 사람으로, 모범적인 사람으로,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요구가 뭡니까? 훌륭해야 된다, 착해야 된다, 바르게 살아야 된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그렇게 보니까.
 심지어 저는요, 어떤 한 분을 만났는데 자기는 교회를 안 다녀요. 그런데 자기 자녀만큼은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해요. 그 이유를 물으니까 교회 가면 그래도 착한 사람이 될 것이 아니냐? 한 가지 여러분 오해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 곳이 교회 아닙니다. 모범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 만드는 것은 교회 아닙니다, 그게 본질이 아니에요. 진짜 그러나 복음을 알면 착한 사람도, 모범적인 사람도, 도덕적인 사람도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복음을 모르니까 일방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뭔가 착하게 살아야 되고, 바르게 살아야 되고, 물론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어떤 면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이 일에 있어서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 행실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어요.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들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속에서 나오는 착함이, 그 속에서 나오는 행위들이 되어야 되지, 노력해서, 애써서 뭔가 만들어내는 그게 아니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고, 또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뭡니까? 온갖 세상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곳이 교회인데, 왜 그러냐? 다른 종교에서는 착하게, 바르게, 열심히 뭔가 사회를 위해서 뭔가 헌신하고 그렇게 하는데, 왜 교회는 개인주의냐?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부분들이 없지 않아 여러분 정말 복음 안에서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야 될 부분들입니다. 그게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그 예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 또한 이 자리에 앉아 예배는 드린다 할지라도 구원은 받을 수 없다 라는 것.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어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래서 요한복음1:14절에 말씀하고 있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래서 이 예수님은 바로 또한 요한복음1:1절에 보면 “하나님이시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2-3절에 보면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셨고”, 그러면서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라고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죄와 저주와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는데 그 하나님을 바로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을 내가 영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 된다 말씀했어요. 이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 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저주와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 내는 축복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생명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게 됩니다. 참 생명이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영접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요한복음1:4절에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생명 안에 사람들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다 말씀 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어요.
 그리고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인다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받지 아니하였다 했어요.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 주셨다.”, 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 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육신의 생명도 중요합니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육신적인 이 생명이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서 여러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몸을 함부로 막 내던지면 몸이 빨리 부패하게 되고요, 사실 몸이 병들게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영혼의 생명입니다. 육체를 갖고 있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 생명, 영혼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영혼의 생명이 우리를 떠나는 것을 가지고 죽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육체 안에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우리의 육체를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죽음이라고 하죠. 그러면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생명이 중요한 것인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산 영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이 땅에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하는 자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풍성함의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축복 가운데 충만함의 축복을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하기 때문에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축복이 풍성함으로 임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1:14절에 다시 말씀하고 있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1:16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했어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거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게 될 때 창세기1:28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귀중한 엄청난 축복된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누리면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자람이 없는, 부족함이 없는,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에. 이 축복된 역사들을 찾아내시고, 이 축복된 역사를 날마다 누려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정말로 내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그때부터 뭡니까? 우리의 생각이 달라져요. 생각이 달라지면 우리의 말도, 행동도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너무 중요한 것인데 어떤 면에서 정말로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빛으로, 생명으로 오셨는데 그 참된 빛이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될 때에 우리의 말들과 우리의 행동들이, 생각이 달라지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제가 성경 몇 군데를 가지고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것이 진짜 올바른 생각인가를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애굽에서 출애굽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430년 동안에 애굽의 노예 살이 했어요. 거기서 모세로 말미암아 빠져나왔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바로 광야길 가는 동안에 바로 앞에 뭐가 놓여 있습니까? 홍해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당했어요. 왜냐? 뒤에는 애굽 군인들의 추격해 옵니다. 정신 차리고,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놓은 그 사실에 대해서 애굽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로 왕이 군대를 가지고 공격해 왔어요. 뒤에 추격해 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인들이 추격해 오고, 앞은 홍해 바다가 가로놓여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어 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것이 어디 있느냐? 모세 지도자를 원망한 것이 하나님을 원망한 거에요. “왜 우리를 불러내서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지도자 모세는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서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지도자 모세의 말이에요.
 자,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누구의 생각이 맞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맞아요. 왜 우리를 불러내어 가지고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그 말이 맞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다면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맞다면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은 모세의 말이 맞는 겁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들 아시죠? 10명과 2명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그 2명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 차이는 어디 있습니까? 10명의 보고는 하나님이 없었어요. 2명의 보고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 떠났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계셨어요, 이 차이였어요. 여러분 어느 것이 맞는 겁니까?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다면은 어떤 면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맞는 거에요.
 또 한 가지 예를 들까요? 사도행전 27장이죠.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배를 타고 향합니다. 죄수의 신분입니다, 그 배에는 276명의 죄수들이 함께 타고 있어요. 어쨌든 배 안에 탔던 사람이 276명이라고 성경에 나와요. 그런데 그 배가 항해하는 가운데 풍랑을 만납니다. 얼마나 큰 풍랑이냐? 모든 짐들을 다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는, 모든 기구들도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이미 못 먹고, 굶주린 지 여러 날이 되었어요.
 한마디로 배 안에 모든 탔던 사람들은 구원의 여망이, 살아날 기미가 없었어요, 소망이 없었어요. 그 배 안에는 이미 여러분 권세 가진 자 백부장이 타고 있었고요, 돈 있는 사람 선주가 있었고요, 배의 길을 너무나 잘 아는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선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풍랑 앞에서는 권세도 필요 없었고, 돈도 필요 없었고, 나름대로 경험도 필요 없었어요.
 위기를 맞이한 풍랑 일정 가운데 그 가운데 배 밑에서 기도하던 죄수의 신분인 바울이 일어나서 위기를 당한 그 배에 탄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너희의 생명 하나도 어렵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이다.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내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지키시고, 모든 이 배에 탄 모든 생명들을 네 손에 맡기셨다.
 그러면서 바울이 고백해요.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했어요. 자, 보세요.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 가운데 있는 사람은 풍랑 가운데서도 결국은 그 풍랑 사건 속에서 지도자로서 결국 그 받은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바울이 배에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잠잠해지고 평안이 임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올바른 생각 속에서 말이 나오고, 행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올바른 생각이 응답의 시작인데 어떤 생각이 응답의 시작이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을 아는 사람의 생각이 결국은 모든 위기 가운데, 어려움 가운데서 모든 문제들을 뛰어넘어서 살리는 역사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되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진짜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어요. 만약 다른 이름을 주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라고 했어요. 오직 유일한 이름인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고, 죄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길이고,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고, 그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리의 모든 생각이 응답으로 연결된다 라는 것. 그래서 한번 따라 합시다. ‘우리의 생각이 응답이다.’, 하나님을 만난 자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를 아는 자에게,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아는 자에게 그 생각이 응답이고, 그 생각이 말들로 나타나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에요.
 말들도 잘해야 합니다, 행동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불신앙 가운데 하는 말들을 가지고, 나도 실패하고, 다른 그 말을 듣는 사람들도 실망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일들을 가져와요.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고,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하신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을 확인하는 가운데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생각, 그 속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수 있어요. 마치 바울이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풍랑도 있어요. 늘 순풍에 돛단 듯 갈 수만은 없잖아요? 어려움들이 순간순간마다 찾아와요. 그럴 때 여러분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했음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도 없으니까 생각을 바르게 하자, 그 방향으로 나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은 고생하고, 실패하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을 알고, 그 속에서 말씀 따라, 말씀 붙잡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 응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풍랑 가운데 있어도 괜찮아요,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이 있어도 괜찮아요.
 여러분 요셉은 노예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노예로 간 요셉처럼 보이지만은 정녕 요셉 자신은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 이미 요셉에게는 그 마음속에 뭐가 있었습니까? 언약이 먼저 있었어요, 그래서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요셉을 통해서 일어난 일들이 뭡니까? 결국은 자기 형제들만 살린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만 살린 것이 아니라 애굽까지도 나중에 살리는 역사가 있어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가져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라는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그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고,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라는 것, 이걸 딱 붙잡기를 바랍니다.

2. 당하는 일들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
 두 번째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말들을 통해서 표적의 역사를 체험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그런 일들이 본문에 나와요. 여러분 가나 혼인 잔치 우리 너무나 잘 아는 본문이죠. 가나 혼인 잔치에 잔치를 벌여 놓았는데 거기에 생각을 바르게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결국은 첫 번째 표적인 혼인잔치에 물이 포도주 되어지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순종하게 될 때에 거기에 일어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표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혼인 잔치라고 생각하면은 음식도 풍부하고,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이 혼인잔치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례에서 혼례라는 부분들을 압축하는 딱 떠오르게 하는 단어를 든다면 포도주입니다. 결혼식에 포도주가 없으면 안 돼요.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만약에 잔치를 준비해 놓고, 손님들을 청해놨는데 포도주가 떨어지고, 포도주가 없다? 청한 주인의 수치고, 어떤 면에서 엄청난 주인의 부끄러움이 뭐냐? 포도주가 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포도주가 떨어졌어요. 오늘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했죠.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부분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풍성해야 될 그러한 결혼식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신랑은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포도주는 빠지면 안 된다.’, 라는 거에요. 그만큼 결혼식에 포도주는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했어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 인생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가장 풍성한 곳에서 결핍이 나타나는 것, 그게 포도주가 떨어진 거에요. 필요한 것인데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사실은. 제일 필요할 데 없고, 가장 있어야 할 때 부족하고, 풍성해야 될 때 부족하고,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실은. 세상의 모든 것 다 누려도 뭔가 모르게 마음에 공허하고, 그게 포도주가 떨어진 거에요. 뭔가 열심히 행복을 찾아서 모두가 열심을 내지만은 뭔가 모르게 뭔가 헤매게 되고요. 그게 사실은 인생에 포도주가 떨어진 거에요.
 이때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했어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례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놓고,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아닌데, 자기들이 결혼식을 연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든 예수님이 그 소리를 어머니한테 듣게 되었어요, 포도주가 없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뭡니까? 여기서 중요합니다. “여자여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여기에 어머니라고 말 안 하고 여자여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여러분 여기서 여자여 하는 말은 성경 주석가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공식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공식적인 선언이 바로 오늘 혼례 잔치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하지 않고, 여자여 했던 부분들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무슨 말입니까? 인간들에게 필요한 육신적인 요구, 뭔가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당장 포도주가 없으니까 실제로 육신적으로 포도주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 필요를 채우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전혀 무안함 없이 예수님의 어머니는 뭐라고 했느냐? 하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시킵니다. 물을 떠다가 물동이에 채워라. 그리고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 있는 손님들에게 갖다 주라 했어요.
 여러분 하인들이 물을 가지고, 물동이를 채웁니다. 그리고 물을 떠다가 잔치에 참여한 연회장 손님들에게 갖다 줍니다. 그 물을 떠다가 갖다 줬는데, 물인데 그게 포도주가 되었어요. 그 포도주를 맛본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아니 잔치를 열면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는데 이 집에는 어떻게 해서 좋은 포도주뿐만 아니라 시간 가면 갈수록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계속 나오느냐? 이 말이에요 사실 본문에 보면은.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대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이야기했습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포도주가 없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뭘 빼고, 더할 것도 없이 여러분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답을 주시는, 응답하시고, 해답을 주시는 그리스도 앞에 나가는 겁니다, 그게 기도에요.
 뭔가 꾸밀 필요도 없어요,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마치 예수의 어머니가 지금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그 상황을 가지고, 그 실상을 가지고 그대로 나갔던 것처럼 우리는 뭔가 만들어내서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됩니다. 빼고 더할 것이 없다 라는 것, 혹이나 잘못된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바르게 고쳐주십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문제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께 가지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자, 하인이 물을 떠다가 물동이에 채웠습니다. 그리고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 줬습니다. 물을 떠다가 물을 갖다 줬는데 진짜 그게 물이라면 정말로 어떤 면에서 물 먹이는 것이죠. 포도주를 줘야 되는데 물을 갖다 준다는 그건 물 먹이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어난 역사가 뭡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근본적인 역사의 변화가 일어났어요. 가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결국은 뭐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라는 것.
 지금 너희들이 육신의 요구, 포도주가 필요한 부분을 요청하지만은, 여자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건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의 의도를, 심정들을 모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들어주려고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이 무엇을 붙잡아야 되느냐? 결국 우리의 피로 육신적인 요구를 이루어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다 라는 것.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물이 포도주 되는 것처럼 근본적인 변화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될 때 즉각적으로 우리의 근본이 바뀌어 집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만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근본 자체가 바뀌어 집니다. 그래서 요한복음5:24절에 말씀하고 있죠.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시간 두고 보아서 옮길 것이다?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의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뀌는 존재가 아니고,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영접하게 될 때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근본 자체를 바꾸어 가신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것이 오늘 혼인잔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부분들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누가 바꿀 수 있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무엇이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까? 우리가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무엇이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고,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마음먹으면 된다, 지금까지 마음 안 먹은 적이 있습니까? 안 되는 부분들을 놓고, 안 먹은 적이 있습니까? 마음 그렇게 먹어도 안 되었잖아요? 돈 있으면 된다, 정말로 돈이 있으면 됩니까? 아니 돈 때문에 오히려 영적문제가 오고, 오히려 타락하게 되는데요? 돈이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까? 아니에요. 진짜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서 자살합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청소년의 자살률 1위가 한국이에요. 왜 자살하느냐? 내 인생 너무나 절망 가운데 빠지니까, 절망 속에 있으니까 자살하는 것, 마지막 결단한 게 자살이에요. 그런데 자살하는 소식을 듣고, 또 자살해요. 그래서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엇을 말합니까? 인생은 자기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다 라는 것.
 그래서 노력하다가, 노력하다가 안 되니까 절망 가운데 빠지면서 결국은 자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바꿀 수가 없어요, 우리 자신들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바뀌느냐? 언제 근본과 우리의 인생이 바뀌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주인 되어지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릴 때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졌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들이 바뀌어질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도 우리에게 표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지금도 우리에게 가나 혼인잔치에 일어났던 이 표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어떤 면에서 표적 중의 표적은 내 인생이 바뀌는 겁니다. 언제 바뀌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릴 때에 우리의 인생이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소원은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라는 거에요.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하고, 너희를 보기를 원하고, 항상 내 기도에 로마 교회, 너희를 향한 기도가 내 마음에 항상 있다 했어요. 그게 로마서1:9-10절에 나옵니다. 내가 내 마음에 늘 항상 로마 교회 너희들이 있다. 어떻게 하든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을 얻기를 원한다, 바울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밤낮 쉬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바울이 로마서1:15절에 보면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 로마 교회입니다. 그런데 로마서1:15절에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했어요. 이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인데 바울은 그 로마 교회를 향해서 편지 쓰면서 뭐라고 했느냐?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아니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복음을 가지고 있는 로마 교회라니까요.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에게 또 들어야 될 것이 복음이라는 것. 로마 교회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또 들어야 될 복음이라는 것.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올바른 복음의 비밀들을 알고, 누리게 될 때 왜 또 들어야 될 복음이냐? 복음을 알고, 누리는 만큼 로마서1:16절에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능력이라는 사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로마서1:15절,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미 복음 가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했어요. 왜냐? 이 복음은 16절입니다, 같이 보십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할렐루야! 여러분 또 들어야 될 복음이에요. 복음 알고 있다?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매일매일 들어야 될 것이 바로 복음이에요.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이냐? 고린도전서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뭐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멸망 받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복음이 미련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아니 오늘도 내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교회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리스도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만 증거 하는 하나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리스도의 비밀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모든 것을 해답으로 주신 그리스도 복음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2. 현장의 요구를 채우는 것이 아닌 인생 근본이 바뀌는 복음 누리게 하옵소서.
3. 다시 들어야 할 복음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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