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뜻을 정한 자
2024-12-01 12:13:11
관리자
조회수   17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024년 12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뜻을 정한 자
(단1:1-9)

   
   
서론: 다니엘서는 시대적인 답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통해 구원의 계획을 어떻게 성취하고 계시는가? 열방의 군주들과 열국의 역사와 자연의 힘을 어떻게 조정하시는가? 특별히 이 다니엘과 비교되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다니엘은 유다 나라 소멸기에 바벨론 총리로 세워졌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1.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심
  가. 절대주권 누리게 하소서(단1:1-2).
    •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게 하소서(단2:44).
    •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주옵소서(단4:32).
  나. 복음이 개인화 되게 하소서.
    • 기도 응답을 받아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소서.
    • 믿음으로 기다리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자기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의 장).
   
 2. 신분을 망각하지 말라
  가. 현장에서 신앙고백 누리게 하소서.
    • 정체성을 누리게 하소서(단1:6-7, 마가복음 5장).
  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고전3:16, 엡1:13, 엡4:30).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좌의 축복 누리게 하소서(갈2:20, 요일5:18, 눅10:19, 롬8:39).
   다. 신분에 대한 긍지를 누리게 하소서(단8:1, 단8:15, 단9:2, 고후5:17).
    • 날마다 구원받은 축복을 최고로 자랑하게 하소서.

결론: 다니엘이 유대 나라 몰락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상숭배 하는 전 세계에 나타내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될 것입니다.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모든 현장에 흑암 세력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전도자로 쓰임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12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뜻을 정한 자”
(단1:1-9)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아멘.
         단1:1-9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누리십시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확인함으로 모든 어둠의 역사들은 물러가는 그런 축복의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는 복음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가운데서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 우리 각자에게 확인 되어지고, 누려지는 최고의 예배가 되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살아온 생애를 기록한 다니엘의 전기가 아니고요,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멸망하는 그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시대적인 답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메시지가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세 가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그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성취시켜 나가고 계시는가?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그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성취시켜 나가시는가? 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요. 또 한 가지는 그 구원의 역사를 성취 시키는 일에 있어서 열방의 왕들을 어떻게 움직이고 계시는가?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열국의 역사와 자연의 힘, 그 자연의 힘을 어떻게 조정하고 계시는가? 라는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다니엘서입니다.
 이 다니엘서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면에서 실제적인 이 구원의 역사들을 주의 백성들을 향해서, 또 열 왕들을 들어서, 자연 만물을 들어서도 구원의 역사들을 설명해 가는 것인데, 특별히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 다니엘과 비교되는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요셉이죠. 요셉은 유다 나라 초창기에 세워진 사람이고, 다니엘은 유대왕국의 소멸기에 세워진 사람입니다. 요셉은 유대 나라가 형성 되어질 초창기에 세워져서 결국 애굽에서 자기 민족을 책임지게 되고, 결국 애굽까지 살리게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역사들을 누렸던 사람이라면, 다니엘은 유대왕국의 소멸기에 세워져서 바벨론의 총리직에 오르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했던 사람이 바로 다니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특별히 다니엘서를 쭉 앞으로 읽어보시면 지금 시대와 너무나 흡사한 부분들을 우리가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심
 그래서 오늘 특별히 첫 번째 시간으로서 ‘뜻을 정한 자’라는 제목으로 다니엘서 1장을 중심으로 해서 같이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뜻을 정한 자’, 어떤 사람이 뜻을 정할 수 있느냐 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뜻을 정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뜻을 정할 수 있죠.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우리의 생명과 모든 역사를 주관 해 가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많이 들어오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의 주권 이야기 하면 믿지 않으면서 내가 믿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보다도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신다는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분들을 설명을 좀 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다니엘1:1-2절에 보면 다니엘이 갖고 있는 역사, 신앙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왕국의 최후를 보여주는 부분들인데요, 대단히 비극적인 모습이 오늘 나옵니다. 그게 1절에 나오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다.”, 2절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는데 결국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가지고, 자기들이 섬기는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다 했습니다. 엄청난 비극적인, 이러한 비참한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다니엘이 이런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2절입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 라는 것,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말씀하고 있죠. 참 부끄럽고 비극적인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것이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 왕국의 멸망과 최후는 당연히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멸망과 최후가 왔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 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유다 왕국에 멸망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생겨지는 재앙은 우상숭배 때문이고요,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고, 인간의 노력만 한 결과가 인간이 실패로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바벨탑은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 노력의 실패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인간만 노력하고, 아무리 애쓴다 할지라도, 또 결국 그 인생은 바벨탑처럼 무너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시대의 결국 홍수재앙은 우상숭배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땅의 이런 재앙과 실패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전락 되어버린 모습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되었다 라는 것, 그리고 성전은 다 불타버렸다는 것, 그리고 성전에 놓여있던 거룩한 기구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드려졌던 거룩한 기구들이 결국 우상숭배 하는 바벨론 왕 앗수르 왕에 의해서 그 기구들이 전부 다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되고, 그 기구들이 우상숭배 하는 신당에 드려서 뒹굴게 되어지는, 그래서 역사를 보면 그 성전에 드려졌던 잔들을 바벨론에서는 술잔으로 사용하면서 그만큼 타락한 부끄러운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유대민족의 굉장한 슬픈 종말과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분명히 유대민족에게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슬픈 종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그렇게 하셨느냐? 주께서 바벨론의 손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붙이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다니엘서에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상이 뭐냐?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 라는 것,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로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인류 역사를 진행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2:44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것이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멸망 받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세상 나라와 세상 왕들은 결국은 멸망 받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멸망 받지 아니하고, 계속 확산 되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다니엘서입니다.
 그러면서 다니엘4:32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여기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린다 했어요.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고 있죠. 그러면서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 알기까지,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 라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발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우리 자신들이 먼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만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 우리는 쉽게 좋은 일이 있으면 이게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야기하는데, 좋은 것만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한 이 사건들, 슬프고 슬픈 사건인데 이것까지도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항간에 떠도는 이런저런 많은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일어나는 우리에게 일어난 수치스러운 일들이 우리에게 지금 와 있습니다. 사실 얼굴을 떳떳하게 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힘든 상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시느냐? 여러분 이 상황조차도 주장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본문의 사건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절대로 안일하게 살아갈 수 없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하면서 우리 자신들이 안일하게 살아갈 수 없다 라는 거에요. 대부분이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은 나도 모르게 안일하게 살아가는 삶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결국은 창피하고, 불신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어질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까? 여러분 창피하고, 속상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다시, 더 확실하게 이 상황 속에서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붙잡을 것은 꼭 우리가 붙잡아야 될 비밀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어떤 시대든지 반드시 아무리 시대가 망하고,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라는 것,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들어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신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피하고, 조롱받는 그런 형편에 처할 수도 있죠. 그리고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대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나라가 온전히 멸망해 버린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포로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안팎으로 위기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교회가 무기력에 빠지는 위기 시대를 맞이하고요. 그러니까 교회가 문 닫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를 당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상숭배 하는 자들은 더 일어나서 활개를 치고요. 우상숭배가 문화라는 옷을 입고,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서 많은 영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무기력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이 개인화되지 않아서 그래요. 이 복음이 개인화 되어야 되는데 개인화 되지 않아서 그래요. 교회가 무기력에 빠진 이유가 뭡니까? 모두가 기도한다고 하지만은 기도에 대해서 모르고요. 기도하지 않고, 기도 응답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 땅의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가면 갈수록 자꾸 고통이 더해지게 되어 있죠. 복음화 되어지고, 응답 받아야 되는데, 복음화 되어지지 않고, 응답받지 못하니까 이 땅의 고통은 여러분 통해서 해결 되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헤매이니까 갈수록 더 고통들이 가중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복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문제 생길 때마다 결국 어디로 돌아가느냐? 내 기준과 내 생각과 좀 더 나아가면 세상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서 그것 가지고, 우리가 문제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뭐냐? 상처들만 쌓이게 돼요. 여러분 복음 앞에서 문제를 봐야 되는데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의 비밀들을 확인하지 않으니까 나도 모르게 문제 당하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그렇게 신앙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문제 당하면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돌아가요. 그래서 결국은 시간 가면 갈수록 더 큰 고통들 만이 남게 되고, 상처 만이 남게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약속을 주시면서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셨죠. 그런데 약속 따라 나왔는데 당장 아브라함의 눈앞에 기근이 왔어요. 창세기 12장에 보면은 당장 아브라함의 눈앞에 기근이라는 문제가 왔어요. 그때 아브라함의 선택이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기준이에요, 자기 생각이에요. 그래서 기근 피하기 위해서 어디로? 애굽에 내려갔어요. 그래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돼요. 우리의 모습이에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걸어갔습니다.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기준으로 돌아갔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아니 애굽에서 건져냈다면은 하나님이 문제 생길 때 그 문제 속에 역사하실 것이 아닌가? 믿음으로 기다려야 되는데 자기 생각으로, 자기 기준으로 돌아가서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그런데 그 원망과 불평이 전혀 맞지 않는 말이 아니에요. 너무나 맞는 말들이에요, 그래서 속아요 사실은.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었습니까? 아무리 애굽에서 있다 할지라도, 묘가 매장지가 애굽에 있다 할지라도, 애굽에서 먹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애굽은 애굽입니다. 다시 말해 그 신분은 바뀌지 않는 노예입니다.
 거기서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이 뭡니까? 하나님께서 문제 생기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까? 그걸 바라봐야 되는데 그걸 보지 못했다 라는 거에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나를 우상 동네에서 건져냈다면은, 기근이라는 문제 왔다면은 하나님이 이 기근 앞에 어떻게 하실 것인가?’,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역사를 봐야 되는데 보지 못해서 선뜻 선택한 것이 뭐냐?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라는 것. 우리가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복음 가지고 문제 앞에 설 때에 기다릴 수 있는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어요. 기다릴 수 있는 믿음 가운데 있으면 역사는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시게 되어 있어요.
 오늘 새벽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한번 여러분 소통방에 들어가서 한번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유튜브나 아니면 다음이나 네이버 이런 데 들어가서 ‘루비 켄드릭’이라고 선교사 이름입니다. 감리교 1호 여자 선교사 이름입니다. 오늘 새벽에 새벽 기도회 때 좀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실 루비 켄드릭이라는 이 사람은 소녀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열정들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 마음들을 가지고, 복음에 대한 열정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23살 때에 자기가 ‘선교 나가겠습니다.’, 하고 선교협회에 지원을 했어요. 그런데 협회 규정상 24살 아니면은 선교사로 못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선교사로 지원해 놓고, 1년 동안 선교에 대해서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결국 24살 되었을 때 어디로 파송되어 나왔느냐? 조선, 우리나라의 개성으로 파송되어 나왔어요. 선교사로서 처녀의 몸으로. 그런데 이 땅에 와서 선교사역을 그렇게 많이 했느냐? 9개월을 했습니다. 9개월 했는데 여러분 서울에 가면 양화진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양화진에 가면은 묘역이 있는데 선교사들의 묘가 있어요. 거기에 이 루비 켄드릭 묘에는 ‘자기의 생명이 1천 개라면 1천 명에게 이 생명을 주고 싶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 생명을 이 한국에 심겠다 라는 것.
 그런데 그 상황들이 얼마나 어려웠느냐? 사실은 선교사로 파송되어 왔을 때에 한국말을 잘 못하잖아요. 그런 가운데 한국말을 배우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삶으로 이렇게 인도를 받았는데 실제로 핍박이 심해가지고, 토마스 선교사도 그때 돌아가셨고, 예수를 영접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전에 예수 영접한 사람이 자기 주위에 3, 4명이 순교로 돌아가게 되는 이런 결과들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루비 켄드릭 선교사가 결국은 급성 맹장염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9개월 사역, 그 당시에는 의료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죠. 그러니까 급성 맹장염으로 돌아갔는데 자기의 생명을 1천 명에게라도 나눠주고 싶다. 자기의 묘는 자기 심장은 한국에 심고 싶다 하면서 살아있을 때에 선교 편지를 보내가지고, 이 조선 땅이 너무나 아름다운 땅이고, 모든 사람들을 보니까 너무나 복음에 대한 순수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고, 그런 식으로 편지를 보냈어요. 1908년도 여러분 한국이 아름다운 땅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복음의 눈으로 보니까 아름다운 땅이고, 핍박이 일어나도 선교사들이 자기 본국으로 소환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선교사들이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것. 여기에서 자기 묘를 쓰겠다는 선교사들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복음 앞에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죠.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은 복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죽고 난 후에 어마어마한 열매들이 맺혀졌는데 사실은 루비 켄드릭 선교사가 죽고 난 이후에 그 협회에서 20명의 선교사가 한국에 지원 되어서 들어오게 되고, 협회에서 선교 기금이 모아져 가지고, 결국은 계속해서 한국에 후원하는 그런 선교사역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되었다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문제와 사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뭐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이 사실을 보는 믿음 가지고 나가야지, 우리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문제 앞에 속고, 상처를 가지게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정말로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문제를 보는 눈들이 열러짐으로 말미암아 그 문제들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귀한 축복된 응답으로 보여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문제 생길 때마다 우리는 뭐냐? 나도 모르게 복음은 어디에 갔는지 없어요. 그렇게 복음, 복음 이야기 하지만은 문제 생길 때마다 전부 내 기준이에요. 여기서 못 빠져나오는 것을 보게 돼요. 그러면 결국은 무엇만 남느냐? 불신앙과 상처만 가득하게 남아요. 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복음 가운데 인도해 오셨다면, 앞으로 우리교회도 또 이런 문제와 사건들을 통해 복음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 그 사실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되는데, 정말로 이 믿음이 우리에게 회복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 선교사들이 이익을 따졌고, 계산을 따졌다면은, 그들의 생명을 여기에서 죽을 이유가 없어요. ‘나 한 생명을 1천 명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어요. 계산 따지고, 이익을 따졌다면은.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나갔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을 누렸던 사실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서 1장에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결국 유대 백성들이 경험했던 이 비극적인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훈련시키시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 속에서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믿음 가지고,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 서 있을 때에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의 문제를 하나님은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시고, 무엇보다도 진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가운데 세워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분을 망각하지 말라
 두 번째입니다. 뜻을 정한 자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아셔야 되고, 두 번째입니다, 신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도 말씀했습니다. 신분과 권세, 우리의 정체성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말이죠. 지금 현장에서는 다니엘에게 요구되었던 많은 제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고백해야 될 내용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현장에서 지금 베푸시는 시험은 우리를 쓰시기 전에 우리를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쓰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다 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서? 현장에서 신앙의 고백에 대한 승리가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유대 백성들에게 신앙 고백에 대한 시험은 대개 그들의 이름을 바꾸라는 것, 개명하는 것이죠. 이름을 개명하라는 압박이 있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치하에 있을 때에 이런 예가 있었죠. 우리의 이름들을 바꾸는, 그리고 모든 것들을 일본어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바꾸는, 그래서 결국은 뭡니까? 국민성을 상실하고자 하는 그런 전략들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름과 이름 속에 있는 뜻들 중요하잖아요? 부모들이 자식을 놓고 이름을 정할 때도 그냥 함부로 정하지 않잖아요?
 앞산 순환도로 지나서 신천대로 달리다 보니까 건물 위에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해서 붙였더라고요. 이름 함부로 안 짓잖아요? 부모들이 자신의 어떤 신앙의 고백에 아이가 이렇게 자라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 이름을 짓잖아요. 우리가 생애 첫 예배 때에 아이들이 이렇게 소개될 때 부모들이 보고서를 올리는 걸 보면 태명과 함께 그 아이를 놓고, 언약으로 붙잡았던 성경 구절과 함께 그 이름의 뜻들을 이렇게 올려주는데 하나같이 부모들이 진짜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신앙의 중심을 가지고 이름을 정한 사실을 보게 돼요.
 어떤 가정에 첫 아이를 낳았어요. 그래서 당연히 이제 부모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구했겠죠. ‘아버님, 어머님 이름을 지어주세요.’, 했는데 이름을 지어줬는데 첫 번째로 완전히 탈락했어요. 뭐라고 이름 지었느냐? ‘세복’, 세계복음화 하라고 세복, 이름 괜찮지 않나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 이름을 딱 받아보더니만 탈락, 이름이 그만큼 중요해요. 이름의 의미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의 의미들을 보면은 결국 악한 사탄이 우리에게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요.
 6-7절에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나오는데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우리가 쉽게 이 이름을 잘 알고 있죠.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원래 유대인 이름이고, 그들이 바벨론 이름으로 개명된 것은 다니엘은 벨드사살 이라고 이름을 바꿨죠. 그리고 하나냐는 사드락, 여러분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 하는데 하냐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이름을 개명했어요, 바벨론식 이름으로.
 그런데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가 되신다.’, 라는 신앙의 고백이에요. 그런데 다니엘의 이름을 벨드사살, 이 이름의 뜻은 뭐냐 하면 벨은 이방신의 이름입니다. 느보신의 이름이 벨인데 그들의 보좌는 벨, 느보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벨드사살 이름하면은 너의 보호자는 벨이다, 느보다. 다시 말하면은 바벨론의 우상신이 너의 보호자다, 그 이름이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의 뜻이에요.
 그리고 하냐냐, 사드락이죠. 하냐냐는 원래 유대인의 이름으로써 이름의 뜻은 ‘하나님 같은 자 누구냐?’, 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이름의 뜻인데 바벨론식 이름은 사드락입니다. 사드락은 태양신에게 배운다 라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지금부터 사탄에게 네가 배우라는 것, 그게 사드락이에요. 그다음에 미사엘이 나오는데 이 미사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이름 하나하나가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져 있는 이름이죠.
 그런데 메삭은 뭐냐? 사크해가지고, 정욕과 욕심의 신의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신과 같은 자가 누구냐? 라는 것, 무슨 하나님의 은혜, 무슨 하나님의 응답, 그런 것이 아니라 네 욕망으로 살아가라는 이 말이에요. 그리고 아사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라는 이름인데 이 이름을 바벨론 식 이름으로는 아벳느고라고 했어요. 느고, 바벨론 우상의 이름입니다. 아벳은 종이라는 말, 아베트 해가지고 종, 우상의 종이라는 것, 하나님의 축복받은 이름이 전부 마귀를 섬기는 이름으로 바뀌도록 계명을 요구한 사실을 보게 돼요. 이름이 각자에게 자기의 정체성을 인식시켜 주는 것처럼 바벨론에 끌려가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청년들이 이름부터 바꾸도록 강요당하는 사실들을 오늘 1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름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어디서요?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그라사인 지방에 들어갔어요. 거기에 귀신 들린 자를 만났습니다. 귀신 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 거처를 두고 얼마나 힘 있는지, 쇠사슬을 끊고, 자기 마음대로 옷을 벗고, 나돌아다니는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자였습니다. 그 앞에서도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그때 그 귀신 들린 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 이름은 군대다 했어요.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귀신의 지배를 받아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죠. 내 이름이 누굽니다 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충만한 군대 귀신이 내 안에 있습니다,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상실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지금 세상은, 우리의 현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이름을 바꾸라는 거에요. 저와 여러분에게 너의 신분을 기억하지 말라는 거에요. 너의 신분을 망각하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내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그 신분을 잊어버리고, 이름을 바꿔서라도 그 신분을 잃어버리기를 원하는 것이 악한 사탄의 전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분에 대한 사실들을 신앙 고백하지 못하도록 지금도 악한 사탄이, 현장이 우리에게 공격하고 있다 라는 것.
 여러분 이름을 ‘내 이름이 다니엘입니다.’, 라고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기의 신앙 고백이 되어지죠. ‘하나님이 나의 보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심판자 됩니다.’, 자기의 신앙의 고백이 되어지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그것이 보통 이름의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악한 사탄은 그 신분을 계속해서 잊어버리도록, 망각하도록 우리에게 압력을 주고 있다 라는 것. 세상을 향해서, 현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신분을 잃어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 분명히 신분을 확인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요, 그게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린도전서3:16절에 말씀하고 있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땅에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은, 보좌의 축복과 통할 수 있는 비밀이 내 안에 있어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보좌의 축복과 응답을 누릴 수 있는, 보좌와 통하는 그 축복의 역사가 내 안에 있다 라는 것.
 에베소서1:13절에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했어요. 그리스도 고백한 저와 여러분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어요. 에베소서4:3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 했어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엎드려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천사에 의해서 보좌로 옮겨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에요. 보좌의 응답과 축복과 능력들을 공급받을 수 있는 그 축복의 비밀이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어요.
 갈라디아서2:20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요. 그러니까 보좌와 연결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받을 응답은 보좌의 응답입니다, 보좌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 걱정하지 말 것은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 했어요. 왜냐? 보좌의 축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를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요한일서5:18절에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그리고 성경 누가복음10:1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결코 너희를 해할 자가 없으리라.”, 말씀했어요. 보좌의 축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현장에서 걸음들은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 못하고, 결코 해할 자가 없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 있다, 사건이 있다, 고난 당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견고케 하시는 방법입니다. 로마서8:39절에 말씀하고 있죠.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은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보좌의 응답과 축복을 가지고, 이 땅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해할 자가 없는 완전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신분이 저와 여러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현장은 어떻게 하든지 언약의 백성인 하나님의 자녀 된 이 신분을 잊어버리도록 사탄은 공격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어떤 면에서 정복자의 입장에서는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이 불러지기를 원했지만은, 다니엘 자신은 그것을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다니엘은 다니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보좌요, 하나님이 나의 심판자라는 그 신앙의 고백으로 다니엘은 끝까지 살았음을 보게 돼요. 다니엘8:1절, 자기의 신분을 바꾸라는 그 요구 앞에 다니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는 것.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여기에 나 다니엘이라고 했죠. 8:1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9:2절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무슨 말입니까?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어떤 면에서 불러지기를 왕은 원했지만은, 다니엘은 그 요구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름을 지켜나갔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5:17절에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이름은 여러분 그리스도인입니다, 언약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이름에 대해서 악한 사탄이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계속해서 공격해 와요. 나는 언약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신분을 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악한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의 신분을 잃어버리려고 하는데, 그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구원의 축복이 우리의 평생의 가치로 남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마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있다면 내가 구원받은 사실,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사실, 이 신분에 대한 최고의 긍지가 내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모든 현장의 흑암들은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다니엘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포로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렇잖아요, 바벨론에. 그러나 자기의 진짜 신분에 대해서는 항상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신적인 신분 아니라 진짜 신분, 거기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 긍지의 결과로 나온 것이 뭡니까? 다니엘이 뜻을 정함으로 나타났어요. 신분에 대한 긍지가 있으니까 다니엘이 뜻을 정함으로 일어난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니엘이 유대 나라를 몰랐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상숭배 하는 현장에서 선포하고, 하나님의 귀중한 살아계신 역사를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은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에 선포 되어지는 귀중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부르신 우리의 이름입니다, 우리 자신의 신분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의 흑암 세력을 꺾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뜻을 정한 전도제자의 기도
1. 이 땅의 우상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최고로 높이고 선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확립하므로 현장에서 하나님의 인도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3.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 하다가 하나님만 참 하나님임을 만방에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