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2024-12-22 13: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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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서론: 예수님께서는 로마에 속국 되어 있는 상황 속에 오셨습니다. 세상적으로 희망이 없을 때 오신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의 내면에도, 세상 속에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필요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나님이 주신 선물 중의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함입니다.
   

 1. 유일한 복음
  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음을 알고 하나님과 생명 관계를 누리게 하소서(창2:7, 창1:27-28).
  나. 처음부터 나와 함께하길 원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알게 하소서(요1:14, 빌2:6-8, 마1:21, 마1:23).
  다.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저주, 지옥 배경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지금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소서(창3:15, 히4:15).
   

 2. 나의 것으로 찾아 누려라. 
  가.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마1:21, 눅2:14, 골1:26-27).
  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눅2:14).
   

결론: 그 어느 시대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영적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평안할 수 있는 비밀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보좌에 앉으시고 지금 우리와 성령의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마14:27)”.

 

 

12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아멘.
         눅2:8-14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십시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인사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기쁘다 구주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가장 귀중한 평안과 기쁨이 차고 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와 있지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함을 주시기 위해서 왔습니다. 가면 갈수록 너무나 삶이 어렵다 보니까 기쁨을 잃어버리고,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데, 정말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회복하고, 주신 말씀 붙잡고, 이 한 시대 속에서 참된 기쁨이 무엇이고, 참된 평안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전도자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한 700년 전이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를 다스릴 왕이 오실 것이다, 이사야9:6절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를 다스릴 왕이 오시는데,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느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멸시를 당하고, 짓밟히는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 회복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누가복음 2장을 읽었습니다마는 사실 마태복음 1장과 함께 예수님이 오실 그 당시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오실 그 당시에도 최고로 어둡고, 고통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에 속국 되어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보면 이 시대에 오고 오는 인생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우리에게 우리도 원치 않는 많은 어려움과 어두움과 실수와 실패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모든 것 속에서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게 바로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언약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과 나의 가정과 세상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평안의 역사입니다. 이 평안의 역사들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바로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무엇이라고요? 평화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진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알고, 누리게 될 때에 그 환경과 상황들, 여건 상관없이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시간에 정말로 완전 승리할 수 있는 비밀로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을 내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성탄, 복음을 내 것으로 누리라고 성탄의 축복을 주셨고, 그 성탄의 축복을 누릴 때에 나타나는 응답이 뭐냐? 평안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지금 우리가 많은 우리 가정들과 우리의 교회들과 교회와 국가를 보면 볼수록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당하였는데, 정말로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유일한 복음
 그러면 이 축복된 평안을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어떠하면 누리게 되는가? 먼저 첫 번째입니다. 유일한 복음을 깨닫는 만큼 우리에게 참된 평안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유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복음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참된 성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가장 문제는 뭐냐? 유일한 복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성탄의 의미를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어 있고, 그러니까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복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참된 그 속에서 기쁨과 평안함이 누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 이런 모든 영향들을 받아서, 많은 또 종교 통합주의 이런 것들이 들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진짜 유일한 복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 시대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 속에 많은 문제들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 기쁘게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예배합시다. 그 말 아닙니까? 그런데 메리 크리스마스 이 단어조차도 사실은 가만히 보면 누구나 인사할 때 메리 크리스마스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탄절 되면 으레히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하잖아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진짜 아는 자만 할 수 있는데 그 안에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악한 사탄은 이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문화들을 가지고, 사실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가부터 모르게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에 해피 홀리데이라고 해가지고 그냥 기쁜, 어떤 휴일이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싫어하니까, 카드를 보낼 때에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받을 때에 그 안에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까, 싫어하니까, 그래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해피 홀리데이라는 단어를 쓰자 해가지고 그냥 인사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왜냐? 그리스도라는 단어, 그 중요한 축복의 비밀들 속에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 들어있는데 그것을 사탄이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고, 참된 평안이 되어지는가?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27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말씀하셨죠.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모든 이 땅에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 가지고, 이 땅의 모든 만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 중 불행은 뭐냐? 하나님의 형상 가진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거에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우리도 원치 않게 악한 사탄의 운명 가운데 모든 인생들이 빠지게 되어진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에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을 담고 우리를 만드셨는데,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어요, 함께 하시기 위해서.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아담, 하와가 죄를 범하게 되었죠. 그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죄 범한 아담에게 찾아오셨어요.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죄 범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또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시대 시대마다 사실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계시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자 하는 그 사랑의 귀중한 편지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에요. 내가 너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시대마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방법으로 희생 제사를 주었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방법으로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의 소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우리 인생이 멸망 상태에 빠졌는데, 인간들의 멸망을 절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결단한 것이 ‘아, 내가 직접 인간 속에 들어가야 되겠다.’, 절대로 우리 인간의 멸망을 두고 보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내가 인간 속에 들어가야 되겠다 라는 것. 그래서 영원 속에서 인간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 들어오신 거에요. 그것이 바로 말씀으로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1: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성육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인간 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탄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한마디로 말하면은 자기의 어떤 비하 사건입니다. 이거는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버린 사건들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자기의 비하 사건입니다. 이걸 어디에서 잘 보여주고 있느냐? 빌립보서2:6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다.”,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다, 하나님이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7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자기 비하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구원받아야 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친히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시기 전부터 이미 이름이 정해져 있는데 마태복음1:21절에 말씀하고 있죠.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이름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이름을 정할 때는 함부로 정하지 않잖아요? 지난 우리 다니엘서를 보면서도 이름에 대한 부분을 설명을 했습니다마는 우리 어르신들이 그냥 아이를 낳았을 때 이름을 함부로 정하지 않아요. 그 이름 안에 중요한 의미들, 좋은 의미들을 다 담고 정하죠. 그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구약 시대에 특별히 이름은 중요한 의미들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이름이 정해져 있는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말씀하시면서 그 이름의 뜻이 뭐냐? 사역과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예수를 보내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석가나 공자나 이런 모든 세상에 여러분이 섬긴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지만은 미안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구원자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고, 아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구원의 역사에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구원의 역사는 흉내 낼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마태복음1: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뭐라고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7:14절을 그대로 마태복음 1장에 마태라는 기자가 인용하고 있는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있고, 구원자라는 이름이죠. 또 하나는 뭐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임마누엘 이름의 뜻이 뭐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훌륭했던 석가나 공자는 그들의 많은 사상들을 남기고 갔지만은, 그러나 지금 우리와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후에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바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안에 뭐냐? 임마누엘 하시는 그 성령께서, 그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 라는 사실이에요. 이 사실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구원자이고, 예수는 임마누엘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가 바로 어떻게 탄생했느냐?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마태복음 1장에 잘 설명하고 있는데요. 1: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 했어요. 예수가 어떻게 이 땅에 구원자로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오셨느냐?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이 땅에 나타났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어요.
 그리고 요셉이 이 사실을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이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19절에 보면은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의 몸에 예수, 어떻든 잉태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가졌으니까 그 아기를 가지면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가지면 그 당시에 법에 의하면은 법적으로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서 그냥 가만히 끊어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요셉도 이 사실에 대한 부분들을 인정하고 있죠.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러면서 천사들도 밝히 말하고 있는데, 20절에 보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바로 요셉도 또 주의 천사들도 마리아도 누구보다도 지금 아이는 바로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들을 너무나 잘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이 부분들이 교회사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공격 받았던 역사에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의 몸에서 잉태되었다는 말이거든요.
 이미 성경에 이사야7: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똑같은 말이에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우리가 신앙 고백할 때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한마디의 고백은요. 여러분 그냥 모르고 우리가 신앙 고백합니다마는 사실적으로 뭐냐? 악한 사탄이 벌벌 떠는 단어에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그 말은 이사야7:14절에 이미 오시기 전에 예언했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동일한 말씀이에요. 그리고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 해결하는 방법을 주셨는데 창세기3:15절이죠. “여자의 후손이 뱀에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똑같은 말이에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 라는 것. 이거를 마리아도 알았고요, 사실은 요셉도 증언하고 있고, 천사들도 증언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냥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태복음 1장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거에요. 우리 인간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마태복음1:2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의 동정녀 탄생은 이미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성경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들이 성취된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수천 년부터 예언된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동침치 아니하고, 동거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지금 우리가 누려야 될 귀중한 축복이 있다면은 정말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죄는 없으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로 역사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내가 누리느냐? 거기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다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야 했습니까? 왜 성탄 하셔야 합니까? 여러분 성탄, 거룩한 탄생이죠. 예수님의 탄생이 성탄인데 왜 성탄 하셔야 합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다른 누구로서도 창세기 3장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도 원치 않게 사탄의 운명 속에 인간이 빠진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들을 다 미리 체험하셨어요. 히브리서4:15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옛날 성경은 체휼이라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당하는 모든 지금의 모든 문제들, 나 혼자만 당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가지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들을 주님이 다 당하셨다 라는 것.
 그래서 그걸 지금의 성경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느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다.”, 우리의 연약함, 우리가 상처받고,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또 때에 따라 우리가 죄 가운데 빠지고, 또 때에 따라서 우리가 연약함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육신의 많은 질고들, 그 모든 연약함을 주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다 감당하셨다 라는 것, 다 체휼 하셨다 라는 것.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다.”, 했어요. 그런데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았다 라고 했어요. 한 가지 죄는 없으시다 했어요. 여러분 연약함 나 혼자만이 겪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우리가 당해야 될 모든 것을 다 담당하셨어요, 다 체험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어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멸망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죄와 사탄과 지옥 배경을 바로 이 땅에 주님께서 오셔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완전히, 영원히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9: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 말씀하고 있죠.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기만 하면 창세기 3장의 문제 속에서, 죄 속에서, 지옥 배경 속에서, 사탄의 손에서 완전히 해방 되어지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시겠다 말씀하셨어요. 영원히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하시겠다.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잖아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했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죄 가운데 빠지고, 지옥 배경 속에서, 또 사탄의 운명 가운데 거기에 영향 받아서 우리도 모르게 낙심하고, 좌절하는데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아예 우리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축복의 역사가 언제 우리에게 완성되었느냐? 오순절 성령 사건을 통해서,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거기에 모인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이 임마누엘이 내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든지 간에 일들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그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 해결됩니다. 왜 그 문제가 내게 왔는가를 알게 되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답도 알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하면 늘 그냥 평상시에는 임마누엘 하지만은, 그러나 실제로 문제 당하면 하나님 앞에 안 서요. 거기에 문제가 크게 보이고, 일들이 크게 보이고, 그 속에 나도 모르게 빠지는 거에요.
 그러나 여전히 그때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서 여러분 빨리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으면 어디에 서느냐?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왜냐?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임마누엘 하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함께 하시는 사실을 가지고 서면은 문제도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 볼 때도 나만 임마누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볼 때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사람을 놓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보면 진심으로 그들을 살리는 기도가 우리 가운데 나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고,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다른 사건과 문제를 볼 때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때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볼 때에 거기서 뭐냐?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돼요. 그때에 성령이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느냐? 바로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날마다 누려감으로 말미암아 진짜 성탄이 성탄 되어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의 것으로 찾아 누려라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이 성탄의 축복을 회복하고, 이것을 내 것으로 누려야 되는데 문제는 내 것으로 누리지 않는다 라는 것. 이 성탄의 축복을 회복하고, 내 것으로 누려야 되는데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모든 삶의 방향을 전도, 선교에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전도자의 삶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물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것이죠.
 그런데 궁극적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들을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는데 마가복음1:3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다고 말씀했습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탄생하셨느냐?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오늘 성경에 보면은 바로 1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했습니다. 구주로 오셨다 라는 것,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구주로 오셔서 마태복음1:21절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과 전도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 라는 것, 그러면 당연히 우리의 모든 삶을 어디에 맞춰야 되느냐? 구원과 전도의 역사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그 시간표 속에 들어가게 돼요. 왜냐?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움직이시고 운행하시는데 전도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여 가고 계시다 라는 것. 그래서 마태복음24:14절에 말씀하고 있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무엇을 말합니까? 이 전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인류 역사가 움직여지고 있다 라는 것. 그렇다면은 이 전도를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이 전도 중심으로 모든 역사가 움직여지고 있다면 그 속에 내가 있어야 됩니다. 그 속에 나의 가정이 있어야 되고, 나의 산업이 그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때 오는 축복이 뭐냐? 정말로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평안과 세상에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이 우리 안에서 넘쳐나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넘쳐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것이 우리 안에 체험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오늘 누가복음2:14절에 말씀하고 있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땅에서는,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또 한 가지는 뭐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그 중에 평화로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 중의 평화란 말이에요. 우리가 누릴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은 평화입니다. 왜냐?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기 때문에 믿습니까? 최고의 축복과 특권이 뭐냐?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평안이에요.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또한 우리의 모든 현장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을 찾는 것, 그게 전도죠.
 기뻐하심을 입을 사람들, 하나님의 작정된 자들을 찾는 것, 거기에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평안함이, 기쁨이 누려지게 되어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은 전도의 역사 속에 새 생명이 일어날 때에 그 기쁨은 말할 수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을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받게 되고,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때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기쁨은 그 어느 곳에도 얻을 수 없는 기쁨인 것입니다.
 두 주 전에 5천 종족을 위해서 이제 사역의 모든 방향들을 열어가기 위해서 귀중한 모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메시지 시간이 있었고요. 거기에 5천 종족을 놓고, 실제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 사역 속에서 각 권역별로 오세아니아 권역, 중남미 권역, 이스라엘 이런 쪽 각 권역별로 사역하는 분들이 나와서 포럼 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그 영상이나 PPT 이런 것을 준비해 가지고 보고를 하는데 짧게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7분에서 10분 짧게 설명을 하는데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 ‘아, 정말로 이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우리를 통해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이 일에 우리가 쓰임 받는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된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구나!’, 그 부분이 마음에 확 이게 일어나더라고요. 너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 분은 연세가 팔십입니다. 물론 목사님이신데 사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사모님을 새롭게 맞아들였는데 거기에 영어를 잘하는 분이에요.
 다행인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목사님은 영어를 못하세요. 저기 안동인가 어떻든 거기서 목회를 하시다가 목회를 그만두고, 선교 현장에 나갔는데 마침 미국에서 이렇게 계시던 어떤 여자분을 만나서 결혼이 되어지고, 그분과 함께 마지막 자기 평생의 사역들을 아프리카 완전 난민촌에 들어가 가지고, 진짜 완전 난민들만 모인 그곳에 들어가 가지고, 아니 팔십 된 연세 드신 그분이 뭘 하겠습니까?
 그런데 난민촌에 학교를 세우고, 거기에 아이들을 끌어모으고, 그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부분을 보면서 저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에 오는 기쁨과 감사가 저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분 생명의 역사가 현장에 일어나는 그 기쁨을 여러분 정말로 맛보시길 바랍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는데 구원 얻을 사람들을 찾아 세우는 것, 나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받았다면 나로 말미암아 현장에 기뻐하심을 입을 사람들을 찾아 세우는 것, 그 속에 세상에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여러분 넘쳐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이것을 놓치고 살아가기 때문에 늘 우리는 우리 안에만 바라보면서 되니, 안 되니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데 아니에요. 지금도 많은 심령들이 현장에 갈급해서 올바른 복음 듣기를 원하는데, 복음만 바로 말하면 되는데 그 복음을 전해줄 자가 없어가지고, 지금 현장에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다 라는 거에요. 그들을 위해서 이제는 우리가 눈을 열어야 합니다. 완전히 아프리카 난민촌이에요. 난민촌에 그 아이들이 몰려와 가지고 글을 배우고요, 복음 듣고 예배하고요.
 제게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요, 제게 마음의 기쁨이 일어나요. 제가 그 현장에 없었는데 그냥 보고 듣는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속에 바로 저것이다 라는 것. 중남미 현장도 마찬가지고, 네팔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네팔에는 지금 한국에 들어오려고 많은 사람이 준비하고 있대요. 한국어 학교에 들어가 가지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그래서 한국이 대단한 인기를, 한국 사람이 들어가면 대단한 인기를 얻는다는 거에요. 왜냐?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생명 운동을 위해서 세계복음화 할 수 있도록 나라를 격상시켜 놓았어요. 어떤 면에서 네팔 모든 사람이 한국어 공부하려고, 그렇게 몸부림친다 라는 거에요.
 여러분 그런 현장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래서 통역자들을 데려가서 복음 사역을 하는데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제자가 세워지고, 그 제자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세워지고요.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고, 또 여러분 스리랑카도 마찬가지고, 진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일으켜서 그 일들을 해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생의 마지막 진짜 기쁨과 평안이 될 수 있는 것은 내가 성탄의 축복 가운데 기뻐하심을 입은 자로서 평안의 축복을 먼저 누리고, 이 사실을 전달하는 이 일만이 우리의 가장 귀중한 소원, 하나님의 소원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축복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탄을 통해서 내게 성탄의 축복과 함께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진짜 성탄의 의미와 성탄의 비밀을 제대로 전달해서 그들 또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이 일에 여러분 쓰임 받는 귀중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탄의 축복을 제대로 누릴 때 오는 것이 뭐냐? 기쁨이에요.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했어요. 그리고 이 성탄의 축복이 우리에게 누릴 때 오는 것이 뭐냐? 참된 평안함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배우고, 돈도 있고, 나름대로 자리도 있고, 세상 사람들 앞에 인정받고, 우리가 보기에 뭔가 부족함이 있을까? 그렇게 보여지는 사람인데 알고 보면 평안함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환경인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데, 자랑할 것 없는데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성탄의 축복의 비밀을 알 때에 말씀하고 있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어요. 구원의 축복과 함께 평안함의 축복, 평안의 역사 이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왜 못 누리느냐?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의 자기 기준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려요. 자기 열심히 살아왔던 기준, 그리고 뭔가 좀 되어졌던 체험했던 기준, 또 실패했던 기준도 기준이니까, 내 중심된 자기 기준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려요. 여러분 어떤 문제를 놓고도 우리 대부분 어디로 돌아가느냐? 자기 기준으로 봐요. 맞다, 안 맞다로 돌아가요. 여러분 우리는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이게 정말 복음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봐야 돼요. 정말 복음이냐, 아니냐? 그것 가지고 보게 될 때 내 속에 잃어버렸던 평안이 오게 되어 있어요.
 또 무엇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는데 왜 평화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느냐? 두 번째로는 내가 너무 의지하는 것들이 많아요. 돈을 의지하고, 자리를 의지하고, 어떤 명예를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내가 너무나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정말로 도울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빨리 우리가 다른 것 의지하는 것들을 내려놔야 합니다.
 그리고 왜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냐? 분명히 구원받은 우리에게, 기뻐하심을 받은 우리에게 평안이라 했는데 왜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냐? 머리로만 알아요.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이것이 지식으로 알고, 머리로만 아는데, 이론적으로만 아는데 이게 내 가슴 속에 내려와야 돼요. 머리로만 알기 때문에 내 가슴 속에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수가 없어요. 기도가 안 되니까 누릴 수가 없는 거에요. 누리지 않으니까 평안이 없는 거에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정말로 성탄의 축복, 그 축복을 내가 누리고, 그 축복이 필요한 모든 현장에 나로 말미암아 전달 되어지는 그 일에 내가 서 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탄의 축복을 누리는 전도제자의 기도
1. 복음의 유일성이 무너지는 시대에 유일한 복음 누리는 참된 승리가 있게 하옵소서.
2.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참된 성탄을 내 것으로 찾아 누리게 하옵소서.
3. 우리의 모든 일 속에 성탄으로 임한 평안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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