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2025-05-18 12:17:16
관리자
조회수   127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025년 5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삿11:1-11)

   
서론: 세상적인 관점으로 나와 사람들을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성경은 하나님 관점으로 세상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것, 악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보실 때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들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을 붙잡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 다음 세대들의 삶에 열매가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1. 선한 것, 악한 것?
  가. 입다를 통해 우리의 영적인 모습을 보게 하소서(삿11:1-3).
   • 우리는 원죄 가운데 태어나서,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엡2:12).
  나. 언약 가진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소서(하나님 보실 때 선한 사람). 
   • 오실 메시야,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 붙잡게 하소서.
  다.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영적싸움 싸우게 하소서(삿11:6-7).
   • 옷니엘(구산 리사다임) / 드보라(야빔) / 기드온(미디안) / 입다(암몬).
   • 선한 왕(우상 깨트림) / 악한 왕(우상숭배 속에 빠짐).
  라. 하나님의 계획 붙잡게 하소서(다윗 – 시27:10, 요셉). 
 
 
 2. 삶의 성공적인 조건
  가. 평상시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누리게 하소서(삿11:9, 삿11:11).
   •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 가운데 평안 누리게 하소서.
   • 바울은 감옥에서(빌1:20) / 모세는 홍해 앞에서(출애굽기 14장) / 여호수아·갈렙(민14:9) / 다윗(시23:1).
  나. 문제 당할 때마다 복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임마누엘 체험의 기회).
  다. 복음을 아는 정도가 아닌 복음화 되게 하소서(삿11:30-31).
   • 깊이 내재된 상처가 복음화 되게 하소서(레18:21, 삿12:1-2).
 
 
결론: 왜 날마다 말씀 속에 들어가야 할까요? 말씀 받을 때마다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입다는 승리하고 나서 통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영적 싸움 싸우는 자가 선한 자입니다. 날마다 말씀 듣다가 영·육 모든 부분과 과거 상처가 치유되고 복음화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치유되고 삶이 복음화 될 것입니다. 

 

5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삿11:1-11)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아멘.
  

  ■ 축복을 선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여러분에게 참된 지금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에게서 참된 감사와 자랑이 지금 무엇입니까?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지금 우리의 기쁨이 그리스도이고, 우리의 자랑과 감사가 그리스도라면 가는 곳마다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고, 또 정말로 갈급한 자들이 여러분 통해서 해답을 얻는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정말로 참된 기쁨, 감사, 찬양이 그리스도가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또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된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아마 여러분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말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도 하게 됩니다. 제가 어느 교회 잠시 유튜브를 보는 가운데서 주어와 함께 기도제목으로 잡아 놓았던 부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쭉 적어 놓았더라고요, 그런 가운데서 제가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결국 세상의 관점으로 하면 된다 라고 나가고, 할 수 있다 라고 나가는 그런 지금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교회도 동일하게 세상과 별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들,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중요합니다. 또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도전하고,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이 소극적인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보다 더 잘 살 수 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과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보다 더 잘살 수 있다? 일리 있는 말들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게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답은 아닙니다.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삶보다는 더 윤택하고 더 나은 삶이 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망하게 되어 있어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면에서 잘 될 수 있죠. 그리고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뭐냐?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은 망하는데 좀 잘 되어서 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요. 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더 빨리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결론은 둘 다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보고, 사람들을 보면 안 됩니다. 세상을 볼 때에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 우리 자신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보시느냐? 이 사실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과 우리의 인생들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성경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축복된 존재로 창조하셨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서 가장 축복된 존재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세상에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이 비밀을 잘 모르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 하나님이 보시는 악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보시는 선한 것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찾아내야 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별다름 없는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악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사람들의 기준하고는 달라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것,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악한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라서 어떤 면에서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뭐냐?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것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음을 우리는 알게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의 열매로 맺혀지게 될 것인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을 붙잡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그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다음 세대는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교훈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죠. 열심히 살아라 이야기 합니다. 잘 살아라 이야기 합니다. 훌륭한 말들이고, 자녀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들입니다마는 그러나 은밀히 알고 보면 틀린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열심히 살아라, 잘 살아라, 여러분 내가 지난 날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그게 우리의 후대, 우리의 자녀의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게 우리 후대의 미래를 책임져야 될 부분들이 그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을 붙잡고, 그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반드시 우리 후대의 삶에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시간에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선한 것, 악한 것?
 그러면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악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은 사람의 눈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그 말들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우리 모두가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차원이 다른 선한 사람이 따로 있고, 악한 사람이 따로 있다 라는 것,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인과 죄인 그것을 넘어서서 악한 사람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입다를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사사인데요, 입다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입다의 고향이 길르앗이에요. 입다의 아버지 이름도 길르앗입니다. 동네 이름도 길르앗이고, 아버지 이름도 길르앗입니다. 그런데 길르앗 사람이 원 부인을 제켜놓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취해가지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여자가 오늘 1절에 보면 기생이다 이야기 했어요.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기생의 아들이에요. 다시 말하면 매춘부, 창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죠. 배가 다른 형제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다가 하나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리드하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어떤 면에서 불가능한 일들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사사로 세워놓은 사실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입다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불행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출신 성분이 아주 안 좋아요. 그런데 그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죠.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이니까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그래서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기업을 너는 도저히 줄 수 없다 라는 거에요. 무슨 말입니까?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곳에서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쫓겨나 가지고, 도망가서 거하게 된 땅이 돕이란 땅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돕이란 곳에 도망에서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했다.”, 그러면서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은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잡류는 어떤 사람을 가르켜 말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갖고 있는 불량배들, 그 불량배들의 우두머리가 된 사람이 누구냐? 바로 입다라는 사람이에요. 길르앗이라는 집에서 쫓겨나 가지고, 돕까지는 한 25킬로 됩니다. 길르앗에서 돕이라는 지역까지는 한 25킬로 되는데 그곳에 쫓겨나 가지고, 거기서 모여드는 불량배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된 사람이 바로 입다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입다의 모습을 보면서 영적으로 우리의 모습들을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재앙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원죄 가운데 태어났어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입다가 기생의 자녀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원한과 상관없이 우리는 뭐냐? 모든 인간은 원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형제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했죠.
 그렇습니다, 원죄 가운데 태어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이 없는 자이더니”, 우리의 모습이었어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진노 받을 수밖에 없는 원죄 가운데 태어났고, 하나님의 약속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오늘 입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입다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었다 라는 것. 왜 하나님이 이런 입다를 쓰셨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입다를 통해서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사람은 단 한 사람입니다. 언약 가진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뭐냐? 언약이 있느냐, 언약이 없느냐? 이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보고 계시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이 무엇입니까? 이 땅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진정 알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주신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을 붙잡은 사람을 가지고 언약을 붙잡은 자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밝히신 그 문제가 바로 인간의 근본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밝히신 문제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다 라는 것, 그로 말미암아 죄와 저주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 라는 것, 그리고 평생을 사탄에게 묶여서 지옥의 고통 가운데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근본 문제고요. 그 해결할 분을 하나님이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붙잡는 자마다 구약 시대에도 쓰임 받게 되었고, 신약 시대도 다른 사람이 쓰임 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인 언약을 붙잡은 사람들마다 쓰임 받게 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은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그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그 시대에 흑암을 꺾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쓰신 사실을 보게 돼요.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끝까지 영적 싸움을 싸운 그 시대에 흑암 꺾는 영적 싸움을 싸운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셨고, 그런 교회를 하나님이 쓰셨다 라는 사실이에요.
 구약에 한번 보세요. 우리가 지금 사사기서를 살펴보고 계시는데요. 첫 번째 사사가 누굽니까? 옷니엘입니다. 여러분 옷니엘은 언약 붙잡고, 그 시대의 흑암의 역사를 꺾었는데, 그 시대 흑암의 역사들이 어떤 역사로 나타났느냐? 구산 리사다임이라고 흑암과의 싸움이 있었어요. 그다음에 여자 사사로서 드보라가 나왔습니다. 그 여자 사사 드보라는 가나안 왕 야빈과의 영적 싸움을 싸웠어요. 그리고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이죠. 기드온, 바로 그 시대의 흑암의 역사인 미디안과의 영적 싸움을 싸웠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입다 마찬가지입니다. 오실 메시아인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그 시대에 흑암 꺾는 영적 싸움을 싸운 사람이 입다였습니다. 그 시대의 흑암의 역사는 어떤 역사로 나타났느냐? 암몬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흑암의 역사들이 그 시대에 나타났음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왜 부르셨느냐?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영적 싸움을 싸우라고, 이 시대에 흑암과 싸워서 승리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오신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이 시대에 영적인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는, 흑암 꺾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 분명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언제든지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에요. 정말로 그리스도 그 이름의 언약을 붙잡고, 그 시대에 흑암의 세력과의 영적 싸움을 싸우느냐, 싸우지 않느냐?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왕기상, 열왕기하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들이 나와요.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 백성들의 왕들이 나오는데 그 왕들을 쭉 소개하면서 어떤 왕은 선한 왕이었고, 어떤 왕은 악한 왕이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선한 왕을 이야기했을 때는 공통적인 특징이 뭐냐? 우상을 깨뜨린 왕들. 그렇잖아요? 우상을 깨뜨린 왕들을 선한 왕이다 했어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왕들을 일컬으면서, 지칭하면서 이 왕은 선한 왕이다. 그 선한 왕은 뭐냐? 그 시대의 우상을 깨뜨리는 왕. 악한 왕은 뭐냐? 우상숭배 속에 빠진 왕을 악한 왕이다, 그렇게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합니까? 우상과 싸우는 사람이냐, 아니면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냐? 싸우느냐, 노예가 되느냐? 그 문제라는 사실이에요. 이기느냐, 지느냐? 그 문제가 이 땅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온 입다는 어떻게 쓰임 받았습니까? 바로 지금 싸움이, 암몬과의 싸움이 영적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나섰던 사람이 바로 입다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입다는 참 애국자다. 왜냐? 사실 입다는 자기 동족에게서 내어 쫓겼잖아요. 그런데 당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를 당하니까 장로들이 모여가지고,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는 입다를 데리고 와서 우리의 장관으로 세우고, 우리가 머리가 되게 하자, 그래서 싸움 싸우게 하자 그렇게 요청했잖아요?
 그래서 장로들이 가서 입다에게 갔습니다. 돕 땅에 가서 입다를 만나보고, 데려오자 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당신이 와가지고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 했습니다. 그때 입다가 뭐라 했느냐? 6절 마지막에 보면 “당신이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절에 보면은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얼마나 상처를 가졌겠습니까? 태어난 것도 자기도 원치 않게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래서 자기의 유업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동족에게서 내어 쫓겼는데 당장 나라가 위기를 당하니까 그들의 장로들이 와가지고, 네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어 달라 요청합니다. 그때 입다가 이야기합니다. 아니 언제 쫓아 보낼 때는 언제고, 다시 나를 찾아왔느냐? 쉽게 말하면 그 말이에요.
 그런데 성경학자들이 이 부분을 놓고 입다는 진짜 애국자다. 왜냐? 자기 동족에게 내어 쫓겼는데 다시 자기 동족을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돌아간다는 그 자체가 애국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그렇게 보여집니까? 애국자라서 결국 그들의 장로들의 요구를 받고, 그들에게 돌아가서 그 나라를 구합니까? 그게 아니었다는 거에요. 물론 결과적으로 그게 애국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지금 이 싸움이 영적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암몬과 싸우는 이 싸움이 영적 싸움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참 모자라고, 부족하고, 연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된다면은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의 부족과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배경과 상관없습니다. 지금 이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를 입다는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요구 앞에 나갔어요. 애국자라서 애국하기 위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흑암 꺾는 영적 싸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입다는 그의 부르심에 나가지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지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다윗을 예로 든다면은 여러분 가정에서도 어떤 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다윗이 아닌가? 여러분 잘 아시듯이 사무엘이 이새를 통해서 많은 다윗의 형제들을 다 불러들이잖아요. 한 명, 한 명 사무엘 앞에 인사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가만히 보니까 그래도 이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다시 이새에게 묻습니다. 다른 아들이 없느냐? 그때 이새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아, 막내가 지금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다른 다윗의 형제들은 다 사무엘 앞에 와서 인사를 했는데 다윗은 양 치고 있었어요 사실은. 가족 가운데서도 인정받지 못한 어떤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다윗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7:10절에 보면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를 영접하시리니”, 여기에 다윗의 고백이에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을지라도, 여러분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다윗, 어떻든 사무엘이라는 선지자 앞에 섰을 때 사무엘이 그 다윗의 머리에 기름 부어서 기도하게 되죠. 중요한 언약이 그 사이에 전달되게 되죠. 그런데 사무엘로 말미암아 머리에 기름 부음 받는 그 순간부터 성경에 보면은 사울 왕이 본격적으로 죽이려고 공격해 옵니다. 군대를 조직해 가지고 아예, 지금처럼 말하면은 특수부대를 조직해 가지고, 어떻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원한이 생기면 얼마나 많은 원한이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그 다윗이 나라가 위기를 만나게 되니까 그 다윗이 나서서 그 위기 만난 나라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게 되는 나서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애국자라서 나서게 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사울 왕이 고난의 역사 가운데 빠뜨리기 위해서 죽일 계획을 가지고 찾아왔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다윗은 나가게 됩니다. 애국자로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국 나갔던 언약의 사람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원한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요셉만큼 원한 가질 사람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원한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하나님의 귀중한 계획을 알았기 때문에 요셉에게 있어서 감옥에 가는 것도, 노예로 가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원한이 원한 되지 않았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 안에 언약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 흑암 꺾는 그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자면 여러분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저와 여러분, 우리교회가 진짜 그리스도만 붙잡고, 이 시대의 흑암 꺾는 영적 싸움을 싸우는 귀중한 축복된 교회로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귀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삶의 성공적인 조건
 두 번째입니다. 우리의 삶의 성공적인 조건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찾아내야 되는데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쓰신 부분을 놓고서 우리가 언약을 붙잡아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요. 먼저 첫 번째로 여러분 오늘 4-6절에 보면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죠.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그나마 이렇게 나가서 전쟁할 수 있는 군인들이 있지 않았습니다. 빈번한 군대가 이스라엘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입다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죠.
 그때에 입다가 어떻게 말했느냐? 도움을 요청하는 그 장로들의 요구 앞에 9절에 한번 보십시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마지막에 보면은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기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한번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무슨 말입니까?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잘나서, 나의 군대가 힘이 있어서 그들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붙이시면 그 전쟁에서 나는 승리할 것이다 라는 사실에 대한 부분들을 고백하는 내용이었어요. 이게 입다의 고백이었죠. 어떤 면에서 입다는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 때문에 승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붙이시면 나는 이길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당했습니까? 어떤 사고와 어떤 어려움들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 되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다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문제와 사건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이 사실이 진짜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붙잡혀진다면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많은 상처들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아, 정말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사실이 진짜 믿어지면은 그 상처, 실패가 어떤 면에서 우리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게 오히려 치유되어서 발판이 되어지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본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이 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라는 것. 이걸 언제 누려야 하느냐? 평상시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은 평상시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사실을 누리는 사람의 고백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고백은 천지 차이에요. 여러분 성경을 한번 보실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은 그 현장을 놓고, 바울의 제자들 두 부류가 나뉘어졌어요. 어떤 사람은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이유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어찌 전도자가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것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니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복음 전하는 일에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 소식을 듣고 낙심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한 부류는 이 바울이 매임을 통해서 오히려 더 힘을 내어가지고, 복음 증거 하는 이 일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건 앞에서 뭐라고 말했느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 했어요. 평상시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린 바울의 고백입니다. 문제와 어려움 당할 때에 그의 고백이 달랐어요. 여기에 악한 흑암의 역사들이 틈 탈 수가 없는 것이죠.
 모세, 평상시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이 모세는 이미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홍해라는 바다가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앞에서 평상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을 누렸던 모세는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했어요. 평상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본 누렸던 모세는 문제가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는 그 축복의 역사로 보여졌다는 말이에요.
 여호수아와 갈렙도 마찬가지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가지고, 10명의 정탐꾼들이 보고할 때 불신앙의 보고를 했는데, 그러나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 땅의 보호자들은 그들에게 떠났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올라가서 속히 그들을 취하자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평상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누렸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은 달랐어요. 그러니까 그 고백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결국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어지는 그 축복의 역사를 누린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누렸는데 대표적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가장 어려울 때에 그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만 봐도 얼마나 다윗이 하나님이 평상시에 함께하시는 사실을 누렸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죠.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결국은 왕궁에 있을 수 없어서 도망하게 되죠. 도망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밑에 있는 군대 장관이 다윗을 바라보면서 막 피 흘린 자여, 피 흘린 자여 하면서 저주했습니다.
 그때 다윗 밑에 있는 군대 장관이 다윗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왕이여. 내가 당장 저 개 같은 사람을 죽이겠습니다.’, 그때 다윗이 뭐라고 했습니까? ‘가만두어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 있지 않느냐?’,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 라는 거에요. 평상시 나와 함께하는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 속에 있을 때 문제 당할 때, 어려움 당할 때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오히려 악한 것, 그것 때문에 선으로 바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중한 축복으로 다윗은 그 문제들을 바라봤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에게 문제가 왔다면은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습니다. 그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그 시작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문제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임마누엘을 누리는 축복의 시작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당할 때마다 어디로 들어가야 되느냐? 복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난 저주가 왔을 때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기3:15절 복음을 주셨잖아요?
 네피림 문화로 말미암아 사람 지었음을 한탄할 때 그때 창세기 6장에 보면은 그 속에서 바로 해결 받을 수 있도록 방주의 언약을 주셨잖아요?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주시면서 전부 문제가 임마누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우리에게 주셨던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원치 않는 이런저런 일들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의 축복의 역사들이 시작되어지는 그 역사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은 복음화 되어야 될 이유들이 나와요. 먼저는 정말로 우리가 평상시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비밀을 날마다 누리면은 우리의 삶이 시간 가면 갈수록 복음화 되어지는데, 복음화될 이유가 나오는데 오늘 입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복음화되지 아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오늘 3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절에 “내가 암몬 자손에게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우리가 복음화 되어지지 아니하면은 결국은 중요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체질이 복음으로 바뀌어지지 아니하면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에 결국은 또 실수하고, 실패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어져야 된다 그 말입니다. 무엇으로? 복음으로. 우리가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화 되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입다가 장로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내가 전쟁에 나가서 싸워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내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면은 내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 첫 번째 만나는 그 사람을 누구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 하나님께 서원하게 되는 이런 부분들이 나오죠. 내가 제일 처음 만난 사람,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그 사람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 라고 입다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기도 모르게 평상시에 체질 속에 남아 있는, 우상 문화에 찌들어 있는 그런 모습들을 오늘 우리에게 입다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문화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이에요. 어떤 면에서 입다는 돕에서 배운 겁니다. 다시 말하면은 잡류들하고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평소에 깊이 숨겨진 것이 튀어나왔는데 그게 우상의 문화가 드러난 거에요. 여러분 그 당시에 사람을 잡아서 제사 지내는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거민들이 몰렉 신에게 드리는 우상숭배 중의 하나였습니다. 몰렉 신 숭배가 성행했는데 가나안 땅에 그 사람들은 뭐냐? 사람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오늘 입다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나를 만나는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을 누구건 여하를 불문하고 그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 여러분 신명기서와 레위기서를 보면은 몰렉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강도 높게 계속해서 10번 넘게 경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레위기18: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하지 말라.”, 했어요. 왜냐? 그것이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했어요. 여기에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한다, 번제로 드린다는 말이죠. 그 당시에 가나안 땅에 쉽게 있었던 자녀를 바치는 번제로 드리는 그런 우상숭배 중의 하나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입다의 서원은 그 뿌리를 이방 종교에 두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복음화의 삶이 안 되어 있다는 말이죠. 한마디로 말하면은 불신자 방법으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이 복음화되지 못한 부분들이 오늘 입다를 통해서 그대로 절실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는데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누구냐? 외동딸인 자기의 딸을 보았어요. 무남독녀인 자신의 딸을 본 겁니다.
 이건 무엇을 말합니까? 금방 승리를 맛보기도 전에 슬픈 사건이 입다에게 오게 된 거에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체질이 안 바뀌어지면은 결국은 응답받고 나서 또 금방 실패함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복음을 안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복음화 되어지시길 바랍니다. 복음화 되어져야 해요. 쉽게 우리는 복음을 안다, 안다 하는데 아닙니다. 복음화 되어야 되고, 그 복음이 우리의 현장화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보세요.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12:1절부터 쭉 보면은 입다가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오니까 그 시비 건 지파가 나왔어요. 에브라임 지파가 늘 뒷북을 치는 지파인데 에브라함 지파가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옵니다. 어떤 시비를 걸어오느냐? 아니 전쟁에 나갈 때 우리 지파하고 같이 나가야지 왜 너만 나가느냐? 그러면서 이 에브라임 지파가 뭐라 하느냐? 너와 너희 지파들을, 길르앗 사람들을 불사르겠다 이야기합니다. 그때 입다가 화가 나가지고, 길르앗 사람을 동원해 가지고, 에브라임 지파를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에브라임 지파를 죽이는 그 잔인함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지난날 살아왔던 입다의 모든 삶 속에 받았던 상처들, 어떤 면에서 배다른 형제로서 서자의 서러움들, 내어 쫓기는 어떤 상처들, 그런 상처들이 순간적으로 덮고 있었는데 복음화 안 되어지니까 순간적으로는 덮고 있었는데 그게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게 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잔인함이 나오느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상처들이 복음화되지 않으면 결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왜 날마다 말씀 앞에 나가야 되느냐? 여러분 말씀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 말씀 받을 때마다 우리 자신들의 상처들이 치유되게 되어 있어요. 드러나지 않는 깊은 내면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되게 되어 있고, 그와 더불어 실제적으로 뭡니까? 복음화 되어지는 역사가 말씀 들으면 들을수록, 말씀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복음화 되어지는, 삶이 복음이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잘 다스렸지만은, 승리하고 나서는 그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잔인하게 되죠.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날마다 말씀 앞에 들어가서 말씀 들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육 간의 모든 부분이, 특별히 우리의 과거 상처들도 치유 되어지고, 우리의 삶이 복음화 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한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하나님이 선한 것을 무엇을 가지고 선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느냐?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그 시대의 영적 싸움을 싸우는 자를 하나님은 선한 자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계속 복음 속에 있어야 되고, 복음 들어야 되느냐? 이 복음이 복음화 되어지지 아니하면은 잠시, 잠깐 우리는 승리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은, 영원한 승리를 누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날마다 복음의 말씀 속에서 우리의 모든 영육 간에 병든 부분들이 하나하나 치유 되어지고, 복음화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여러분이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아는 전도제자의 기도
1. 어떤 조건도 넘어설 수 있는 하나님의 선한 기준인 언약 붙잡게 하옵소서.
2. 문제가 임마누엘의 시작이 되게 하옵소서.
3. 지속적인 말씀으로 삶이 복음화의 응답 누리게 하옵소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9 자기를 이기는 비밀 삿15:14-20 2025-06-01
1488 지속적인 은혜를 누려라 삿13:1-5 2025-05-25
1487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삿11:1-11 2025-05-18
1486 하루도 중단되면 안되는 복음화의 역사 삿9:1-6 2025-05-11
1485 후대까지 전달되는 언약 삿8:22-28 2025-05-04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 2 3 4 5 6 7 8 9 10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