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2025년 9월 14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삼상11:1-5)
서론: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를 끝내고 왕정 시대를 시작하는 전환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인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왕정 시대의 첫 시작은 개념이 없는 생소한 상황들이었습니다. 사울도 집으로 돌아가 소를 몰고 있었고(삼상11:5), 백성들의 반대도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삼상10:27). 이러한 상황을 보며 우리는 두 가지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라(삼상10:8).
가. 기다림은 힘들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기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릴 수 있게 하옵소서(삼상10:7-8).
• 인생의 기다림의 시간 속에 하나님의 때는 결코 늦지 않음을 깨닫게 하옵소서(합2:3).
• 기다림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닌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는 증거임을 붙잡게 하옵소서(벧후3:8-9).
•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주를 바라보고 찾으며, 말씀을 붙잡는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 말씀과 기도 속에서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나. 하나님이 나를 오늘까지 기다려주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사1:18).
• 참 선지자, 참 왕,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게 하옵소서.
•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다릴 때 하나님의 말씀 성취의 역사를 보게 축복 속에 있게 하옵소서.
2.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
가. 하나님은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문제와 어려움을 주심을 알게 하옵소서(삼상11:1).
• 하나님의 자녀로 문제가 오면 적당히 해결하는 것이 아닌 말씀과 기도로 도전하게 하옵소서.
• 세상 방법, 내 생각과 기준, 내가 왕이라고 공격하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속지 않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만 섬기며, 문제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 어려울 때 더 기도 속으로 들어가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고전10:13).
결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가능함을 알고 그 이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예배하며 날마다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는 축복 속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9월 14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삼상11:1-5)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아멘.
삼상11:1-5
■ 축복을 선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평생에 주님을 찬양하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의 손을 주님 앞에 들고 나가십시다.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케 하실 주님의 은혜를 오늘 최고로 누리는 귀한 예배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무엘상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사시대를 끝내고 왕정시대를 시작하는 전환점에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왕을 따로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요구를 따라 왕을 하나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도무지 개념이 없는 생소한 상황들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11:5절에 오늘 보면 사울조차도 집으로 돌아가 소를 몰고 있었던 사실들을 보게 돼요. 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했습니다.
일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느냐? 반대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10:2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바치지 아니했다.”, 했습니다.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운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마는 오늘 두 가지를 한번 중심으로 언약을 새롭게 붙잡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제목이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그 속에 나오는 것은 바로 약속을 믿는 기다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0:8절에 보면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라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 동안 기다리라.”, 여러분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그래서 구약, 신약을 언약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구약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할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고, 신약은 그 메시야가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책이다. 그래서 언약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약속의 책인 언약에는 반드시 시간표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섬기는가 알게 되면 약속을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뜻밖에 제일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기다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사실은 방황했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헤매었습니다. 약속을 붙잡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실제로 문제와 사건 앞에 원망과 불평함으로 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 결국은 40년 동안에 광야생활 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붙잡았다면 하나님께서 문제와 사건들 통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할 것인데, 그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아마 똑같을 것이에요. 인간에게 제일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기다림이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죠.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알아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들 가운데 ‘빨리 빨리’는 어느 나라 가든지 알아듣고 있습니다. 오늘 10장에 보시면 왕으로 세워질 것에 대한 세 가지 징조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징조가 나타나면 왕이 시작됨을,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됨을 알라 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징조가 10:2절에 나오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다.”, 했고요, 두 번째 징조가 “벧엘에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10: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5절에는“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 내려오는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했습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말씀했죠. 그러면서 제일 먼저 사무엘이 사울에게 부탁한 것이 바로 오늘 8절에 7일 동안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여러분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기다림의 시간이 참 많죠. 그래서 때로 낙심하고, 때에 따라 좌절하고, 기다리다 때에 따라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도 살펴보면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왜 이렇게 우리에게 기도 응답이 없는가? 나는 너무 어려운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언제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가? 너무 늦는 것이 아닌가? 이게 우리 인간들의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들이에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박국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했습니다.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기다리면 반드시 성취되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늦는 것 같지만 늦지 않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니까 조급하게 뭔가 빨리 진행되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급하게 빨리지만, 하나님은 완전함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다 천 년이 하루 같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말씀했죠. 그리고 3: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약속의 말씀이 더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더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기다림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다 라는 사실이에요. 침묵처럼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 시간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 시간이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응답들을 준비하고 계시는 시간임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성경 몇 군데만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의 복을 받게 하겠다 말씀 했어요. 반드시 씨를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25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창세기21:1-2절에 보면은 결국 아브라함 백 세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이삭을 받게 되어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17세 때에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꿈꾸었습니다. 그 요셉이 총리가 된 시간이 언제입니까? 요셉의 나이 삼십이었어요. 바로 13년 동안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서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15년 후에 다윗은 머리에 기름 부음 받음으로 왕이 되어지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기다림으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빚어지고,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손을 놓고 무엇인가 이루어지겠지, 기다리는 것을 가지고 기다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기다림이 아니고, 우리는 주를 바라보고 주를 찾는 것이 바로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주를 찾는 것을 기다림이라면은 다른 말로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바로 기다림의 힘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다릴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만으로 기다릴 수 있는 힘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죠. 그래서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약속이 나의 삶 속에 성취 되어지는 사실들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심을 보고 사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고, 그 약속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사실을 보기까지는 우리가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그 기다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순간에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10: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되었다.”, 말씀했어요. 우리가 약속을 붙잡는 순간에 이미 하나님의 일들은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언제 성취되어 지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정확하게 성취 되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는 믿음 속에서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시는 사실들을 체험하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다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응답들을 놓쳐버려요.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을 한번 살펴볼까요?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죠. 그런데 당장 아브라함의 눈앞에는 기근이 찾아온 겁니다. 지시할 땅 가나안 땅에 가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겁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될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애굽으로 나가게 된 것을 보게 돼요. 거기서 실수하게 되고, 거기서 고생하게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절에 내가 너의 방패고 내가 너의 상급이다. 2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네 씨로 말미암아 반드시 그 언약의 역사를 이어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나 주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얘기 했어요.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기다리면 될 것인데 그 사실을 기다리지 못한 사실을 보게 돼요. 내 상황과 현실을 바라보면서 못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나 주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을 보게 돼요.
창세기 16장에 종 하갈을 취해서 누구를 낳게 됩니까?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게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역사의 전쟁이 일어나는 그 배후에 이스라엘 족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우리는 뭔가 내 자신이 거들어 들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도와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뭔가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일에서 여러분 뭔가 거들어야 될 것이 없다 라는 사실이에요. 약속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 약속을 성취시키는 이도 결국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세기21: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말씀했어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다리면 될 것인데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사실을 창세기21:1-2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약속을 붙잡는 믿음 속에서, 기도 속에서 기다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에 따라 내 환경과 현실을 바라보면 뭔가 모르게 이게 아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울이 보니까 지금 너무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3:6절에 백성들이 숨게 되고, 7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떨게 되고, 8절에 사울에게 점점 흩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보면 저 같아도 먼저 내가 주선해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예배를 드릴 겁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너무나 조급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그 예배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인 사무엘이 드려야 될 예배인데 사무엘이 늦게 오니까, 너무나 상황과 현실은 다급하니까 이 사무엘 대신 사울이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 아십니까? 13: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14절에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러분 상황과 현실을 바라보면서 기다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울에게 이 왕의 자리가 길지 않을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응답들은 기다림 속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로서 기다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시간표에 정확하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와 키커가 있잖아요? 그들의 행동을 이렇게 반응하는 부분들을 조사를 했습니다. 골키퍼는 페널티킥을 당할 때에 가만히 보니까 골키퍼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라는 거에요. 키커가 골을 어디로 차든지 간에 직감해 가지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먼저 기울어져 가지고 공을 막아야 빠른 속도로 오기 때문에 그래서 운이 좋으면 공이 걸려진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골을 차는 키커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 라고 해요. 왼쪽으로 3분의 1, 오른쪽으로 3분의 1, 정중앙으로 3분의 1, 키커들을 딱 조사를 해 보니까 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는 거에요. 그런데 골키퍼는 두 부분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져서 공을 받든지, 아니면 왼쪽으로 쓰러져서 공을 받든지 공을 찰 때 키커가 차는 공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딱 직감해서 빨리 그 방향으로 뜨지 않으면은 그 공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직감해서 뜬다 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골키퍼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라는 거에요. 중간에 가만히 있어도 3분의 1은 잡을 것인데, 왜 가만히 있지 못하느냐? 다른 사람이 보기에 멍청이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우리 신앙생활이 그런 것 아닙니까? 여러분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다리는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다림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사야1: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시는 그 은혜의 역사 때문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마치 집 나간 탕자를 아버지가 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것처럼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기다림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최고의 절정이 무엇을 통해 나타났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시는가? 그 최고의 절정이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 했습니다.
멸망 받는 세상 속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시고, 오래 참고,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참 제사장으로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해결하시고요. 참 왕으로 보내셔서 사탄의 운명 가운데 빠진 우리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고요. 하나님을 떠나 지옥 배경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미 해결해 놓으시고, 우리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이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 그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에 영접하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미 다 해결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세요. 해결해 놓으시고 지금도 오래 참고 계세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 그는 나로 더불어 먹겠다.”, 했어요. 오늘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정말 교회에서 중요한 일들을 감당해 나가셨어요.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가정 전체를 놓고 자기만 신앙생활하고 있고, 가정에 아무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부분들이 늘 기도 제목으로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요한복음16:31절 말씀이 마음에 딱 담겨졌어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가정이 복음화되기 위해서 계속 기다린 겁니다.
그런데 어떻든 하나님이 시간표 되어서 형제들이 돌아오게 되고, 이렇게 한 분, 한 분 아는 분들이 돌아오는 일들을 보게 되었어요. 자기 어머니도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늘 숙제는 아버지가 너무나 완고해서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또 기회다 싶어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리고 또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또 두 번째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중에 보니까 암까지 걸려온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에 아버지가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고, 그다음에 하나님 나라 가셨어요.
그분의 간증의 결론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셨다 라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세요. 그 기다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주님 앞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거기에 기다리는 힘이 나와요. 그것 붙잡고 기도하면 반드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2. 세상과 타협하지 마라
두 번째입니다,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여러분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분명하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 11:1절에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나옵니다. 까닭 없이 이스라엘에게 쳐들어오게 된 겁니다. 이 암몬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암몬 사람 나하스라고 했는데 이 암몬은 누구의 후손이냐? 여러분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같이 데리고 나오게 되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는데 떠나지 않고, 조카 롯은 불쌍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어떻든 챙겨서 나왔어요.
그런데 13장에 보면은 어떻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도 조카롯도 축복하셔 가지고, 결국 둘 다 너무나 재산이 많아져서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죠. 네가 먼저 좋은 땅, 네가 보기에 좋은 곳을 택해서 나가라. 그래서 조카 롯은 성경에 있는 대로 그때는 멸망 받기 직전에 소돔, 고모라 에덴 동산과 같아서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잖아요? 소돔, 고모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멸망 받게 되었어요. 거기에 조카 롯은 살아남은 거에요.
롯과 함께 두 딸이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이 두 딸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후대를 이어져 나갈 것인가? 그래서 인간적인 계산을 한 거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술 취하게 만들고, 두 딸이 번갈아 들어가서 나쁜 짓을 했어요.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모압과 암몬이에요. 여기에 암몬 사람 나하스라고 이야기했죠. 성경에 보시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때때로 바른 길로 인도해 나가기 위해서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의 채찍으로 쓰여졌던 사람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독하는 자리에 늘 섰던 사실을 보게 되죠.
그런데 이 암몬 사람 나아스 앞에 길르앗 야베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협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암몬 앞에 타협을 하기 시작합니다. 1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한마디로 말하면은 평화 협정을, 평화 조약을 맺자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마다 너희들에게 조공을 바칠 테니까 평화 조약을 맺자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세상의 종이 되어서 환란을 피해 보려는 그러한 부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문제가 오면 적당히 해결해 보려고 하는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은 전부 다 세상의 종이 되는 방법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됨을 보게 될 것인데 자신의 경험과 환경을 이용하려는 행위가 여기에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죠. 왜 우리가 계속해서 오직 그리스도 각인시키고, 복음 뿌리내리고, 체질 되어야 된다고 말씀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문제와 사건 당하면 금방 어디로? 세상 방식으로 돌아가요. 내 기준과 내 생각으로 돌아가요.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면은 내 기준과 내 생각으로 돌아가서 결국은 나도 모르게 그게 어느 날 보면은 종이 되어버려요.
거기에 암몬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모독하는데요,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다. 그러면은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다. 그러면은 언약 맺긴 맺는데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여기서 빼라는 말은 그 원래 원문에는 다 오른 눈을 파내야 너희와 조약하겠다 했어요. 그런데 또 한 가지 여러분 그 사실을 가지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요청을 합니다. 좋다, 좀 시간을 달라.
그런데 여기서 참 재미있는 부분이 나와요. 결국 이방 나라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국 이방 나라 왕에게 당하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되죠. 오른 눈을 파내야 너희와 조약하리라. 그런데 옛날 고대 군인들이 싸울 때에 그 방패를 어디에 들었느냐? 왼손에 들었습니다. 오른손으로는 무기를 가지고 싸움에 나가서 싸웠죠. 그러면 오른 눈을 빼내라는 말은 너의 모든 전력들을 다 상실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왼손을 남겨놓고, 그것 가지고 너희들 농사 지어서 열심히 조공 바치라는 거에요.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지 아니하면 사탄이 우리 인생의 왕 노릇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에요. 여기 나하스 왕의 이름의 뜻이 뱀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 뱀이나 용이나 이 존재들은 무엇을 상징할 때 이야기합니까? 마귀, 사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하스 이름의 뜻이 뱀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사탄은 우리를 공격하는데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도록. 그래서 영적인 오른 눈을 다 빼버리고, 어떤 면에서 나머지 눈은 살려둡니다. 오히려 나머지 눈은 살려둘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머지 것들을 더 번성케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결국은 세상의 종 노릇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길르앗이 여러분 돈 주면 물러나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약을 맺자, 우리가 조공을 바치겠다 말한 거죠.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가지고 나아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공격하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을 대신할 자를 찾게 되는데 그 사탄이 공격하는 무기는 바로 나라는 겁니다. 내가 왕이다, 내가 신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최고다, 세상 임금이 그렇게 속여요.
또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돈을 신으로 붙잡고 있어요. 그렇게 악한 사탄이 속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하면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은 얻은 승리까지 다 빼앗김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 가지고, 다른 것에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새 그들이 다 요구하게 되어 있어요. 결국 다 빼앗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백성의 대표라는 장로들이 거기에 어떻게 나옵니까? 3절에 보면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그런데 암몬 사람 나하스가 좋다, 일주일 시간을 주었어요. 이것은 더 모욕적인 겁니다. 상대가 안 된다 라는 의미들을 담고 있는 거죠. 여러분 그런데 여기에 백성의 장로들 대표 아닙니까? 이들이 하나님께 의지해 보려는 생각보다 죽을 지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방법에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죠.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오면은 금방 인간적인 방법으로 돌아가요. 교회에서는 믿는데 현장에서는 전혀 믿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라 이야기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다 이루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생활 속에서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 당하면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삶 속에서 승리가 없는 것이고, 기쁨이 없는 것이고, 만족이 없는 것이죠. 오히려 염려와 걱정과 고통만 더 가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믿는 사람들을 흔드는 방법을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입니다. 그러면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나가면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 것인가를 알고 나가면은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를 대신해 싸울 왕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 왕은 결국은 우리를 위해서 군림하는 왕이고, 우리를 짓밟는 왕이고, 우리의 눈을 빼는 왕입니다. 그래서 너희 재산을 빼앗아 가고, 우리의 삶을 빼앗아 가고, 우리의 생명까지도 빼앗아 가는 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10:10절에 말씀하고 있죠. “도둑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다.”, 했어요.
너희들이 요구하는 왕이 너희들이 살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너희들이 지금 왕을 찾기를 원하는데 그 왕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여러분 섬기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하고 나갈 때 거기에 참된 승리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승리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힐 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오늘 6절에 보면은 결국은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 말씀하고 있죠. 거기에 또한 분노가 일어났다 했어요. 의분인 것이죠. 우리가 문제를 만나 기도하면은 성령의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신앙생활 하면서 문제가 없는 것을 원해요. 분명히 이 땅에서 문제없는 곳은 없습니다. 공동묘지나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은 모든 현장에는 문제가 다 있게 됩니다.
이 땅에서 언제나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피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문제없기를 기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문제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헛수고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세요, 문제없으면 답도 없어요. 문제없으면 해결도 없어요. 문제가 없으면은 정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큰 역사들을, 응답들을 준비해 놓고 계시는데 그 사실들을 못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어야 결과를 보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문제,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은 누리기를 바랍니다. 환영하고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사무엘이 문제 생기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이 있게 되었고, 그리고 의분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소 두 마리를 각을 떼어가지고, 각 이스라엘 지파에게 보냈어요. 그 소가 각 되어진 부분을 받아든 이스라엘 지파들이 같이 의분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죠. 그래서 군인들이 모여졌는데 33만 명이 모여진 거에요. 그들이 새벽에 전쟁을 일으켜서 암몬 사람을 죽였습니다, 다 흩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일어나니까 사울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저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될 수 있느냐? 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죠. 11:12절에 백성들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이니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어떻게 사울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냐 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 12절에 가서는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그렇게 말한 자가 누구냐 우리가 그들을 처단하겠다 라고 나왔어요. 그러면서 15절에 본격적으로 사울을 통해서 길갈에서 왕정이 시작 되어지는 부분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크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그 문제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 속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여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0: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다.”, 라고 했어요. 오직 하나님은 미쁘시다 말씀하시고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는 분이라 말씀 했어요. 또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능히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그리스도 앞으로 기도 속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크면 큰 응답들이 준비되어 있음을 아시길 바랍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 있는 영감의 갑절을 기도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현장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데 엘리야는 성경에 보면 7번 이적을 행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어려울 때에 14번의 이적을 행한 것으로 성경에 나와 있어요. 문제를 당하고 있습니까?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큰 은혜들이 여러분에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 약속을 붙잡고, 기도 속에서 나가면은 하나님이 준비된 은혜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바라보아야 될 자가 누구인가? 붙잡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가지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모든 문제들을 가지고, 기도 속에 연결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응답들을 가지게 됩니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는 전도제자의 기도
1. 말씀 붙잡고 기도로 기다림으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심을 누리게 하옵소서.
2. 모든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백성 됨을 알고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3. 모든 것을 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 됨을 간증하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504 |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 삼상11:1-5 | 2025-09-14 | |
1503 | 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께로 | 삼상9:15-21 | 2025-09-07 | |
1502 | 누구의 통치를 받고 사는가? | 삼상8:1-9 | 2025-08-31 | |
1501 | 믿음을 바꾸는 기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삼상7:11-17 | 2025-08-24 | |
1500 | 세상의 틀을 바꾸는 남은 자 - 사무엘 | 삼상7:10-14 | 2025-08-17 | |
1499 |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 사람 | 삼상 3:15-20 | 2025-08-10 | |
1498 | 먼저 갖추어야 할 것 | 삼상3:19 | 2025-08-03 | |
1497 | 하나님이 준비하신 렘넌트 시대 | 삼상3:18-21 | 2025-07-27 | |
1496 | 말씀 앞에 나를 세워라 | 삼상3:1-9 | 2025-07-20 | |
1495 | 후대 통해 회복될 미래 | 삼상2:12-17 | 2025-07-13 | |
1494 | 보좌화의 축복을 가진 후대 | 삼상2:1-10 | 2025-07-06 | |
1493 |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 삼상1:9-11 | 2025-06-29 | |
1492 | 나의 왕은 누구신가? | 삿21:25 | 2025-06-22 | |
1491 | 사사 시대와 우리 시대 | 삿18:1-6 | 2025-06-15 | |
1490 | 영적 혼란 시대에 하나님 회복 운동을! | 삿17:1-13 | 2025-06-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