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지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축복
2025-10-13 00: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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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지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축복
(삼상18:8-16)

 
서론: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놓치지 않고, 지속해야 하고, 우리 후대까지 전달해야 합니다. 오늘 사울은 이 축복을 지속하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후대가 망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된 역사들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또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1. 사울의 신앙
  가. 우리의 신앙의 색깔이 시기와 질투로 상처에 빠져 갈등과 문제로 시작하지 않게 하옵소서(삼상18:8).
    • 비교의식과 열등감의 중심에 있는 틀린 동기와 욕심에서 벗어나 바른 동기 가지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마5:8).
  나. 시기, 질투하고 상처받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 창세기 3장 아래의 영향 있으며, 여기에 사탄이 역사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 말씀을 못 알아듣고 오해하는 젖먹이의 신앙이 아닌 어떤 말씀이든 소화하는 장성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옵소서(고전3:1-2).
    • 말씀에 눌리거나 나 중심으로 듣지 않고 말씀 앞에 중심을 가지고 진실하게 서게 하옵소서(삼상3:9).
    • 사탄이 속이는 영적문제에 빠져 실패하지 않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붙잡게 하옵소서.
 
 2. 치유
  가. 어떤 일이 있어도 상처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며, 말씀과 기도 속에서 치유 받게 하옵소서.
    • 언약 전달 위해서 먼저 치유 받고, 사탄과 흑암의 역사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게 하옵소서.
  나. 어떤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게 하옵소서.
    •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누리는 것이 하나가 되어 장성한 자의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엡4:13).
    •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 축복 속에서,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님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
    • 오직 그리스도만 기준, 배경 삼고, 육신적인 신앙, 어린아이 신앙을 넘어서 남은 자의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결론: 말씀 속에 참된 치유가 있고, 모든 해답과 응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 속에서 찾아 누리고, 강단 말씀이 나를 통해 성취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10월 1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지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축복”
(삼상18:8-16)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아멘.
         삼상18:8-1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정말로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입니까? 그냥 기쁘다가 아니라 심히 기쁜 일입니까? 그러한 분들에게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이 더욱더 확인될 줄로 믿습니다. 내 평생에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쁜 일은 예수 그리스도 의지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답을 가지고 한 주간도 나가는 그런 축복의 걸음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축복은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되고, 우리 후대들에게도 전달 되어져야 되는 것이죠. 이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들을 놓치지 않고, 지속해야 하고 우리 후대들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은 자기가 받은 엄청난 축복 지속도 안 되었고, 후대들에게 전달도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후대가 망해버린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누려갈 수 있을 것인가? 엄청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는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여러분에게 언약으로 붙잡혀짐으로 정말로 우리가 받은 축복된 응답이 우리 후대에게, 또 다음 후대에게 계속적인 역사로 전달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울의 신앙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축복을 우리가 누리고, 우리 후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 실패했던 사울의 신앙이 어떤 신앙인가를 살펴봐야 되겠죠. 사울도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 왕이 가졌던 신앙의 색깔이 어떤 색깔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 왕의 심각한 영적인 상태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갈등이 일어나고, 시험에 빠지고,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들은 어떤 면에서 드러나지 않은 과거나 마음의 상처들로서 시작 되어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죠. 이미 많은 상처들을 갖고 있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승리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다윗의 승리를 바라본 여자들이 다윗을 놓고 찬양을 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다.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다.’, 노래 했습니다. 이 노래에 사울 왕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별것 아닌데 상처받고, 시험 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기와 질투로 오늘 본문에 사울 왕에게 임한 사실을 보게 되죠.
 자신보다 다윗을 더 칭찬하니까 갑자기 시기심이 발동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열등감이 나오게 된 것이죠. 오늘 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다.”,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는 무엇이냐?”, 했습니다. 결국 다윗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들이죠. 여러분 열등감은 비교의식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부분들인데, 사울 왕은 이 다윗이 과연 나라를 차지할 것이 아닌가? 이런 비교의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교의식과 열등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죠. 그 중심에 틀린 동기와 욕심 속에서 비롯되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동기들이 틀렸다, 그 중심이 잘못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몰라요. 사람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마태복음5: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그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냥 양심적이다, 마음이 깨끗하다? 그런 차원의 말이 아닙니다. 뭔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다? 그런 차원의 말이 아닙니다. 분명히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말씀했거든요.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복음과 함께 바른 동기를 가지고 사는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평생 복음 위해 살아야 되겠다.’, 라는 그런 마음 가진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동기에 눈이 어두워져서 바른 것을 못 보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동기를 없애라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동기는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동기는 결국은 사람이 잘못되고 왜곡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 왕은 틀린 동기와 욕심에서 결국 열등감과 비교의식이 나왔고, 거기에 시기와 질투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게 증오와 분쟁으로 이어진 것을 보게 돼요. 11절에 한번 보십시오.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증오와 분쟁심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완전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부분들 보게 됩니다. 15절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였다.”, 했습니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되죠.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이 가졌던 피해의식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피해의식을 가지면 인간 관계, 사람 관계, 부부 관계, 모든 관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참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해 보면 뭔가 오해하고 있고, 뭔가 깊은 상처 속에서 좀처럼 그 오해와 상처를 못 벗어나는 것을 봐요. 그래서 나만 손해 보고, 나만 피해 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사울 왕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지혜롭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전쟁에 나가면 승리하니까, 혹시 이 다윗이 자기를 어렵게 할 것이 아닌가? 괜히 사울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괜히 피해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견제하고, 그렇게 되어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사람이 갖고 있는 상처가 그냥 상처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치유되지 못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어지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등감과 비교의식, 그게 치유되지 못하면 그것들이 어떻게 결과가 되어지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 한번 보십시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렸다.”, 했어요.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죠,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와 질투와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면 그것이 사탄이 역사하는 통로가 되어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탄이 역사해서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우리의 본성이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시기와 질투들을 우리가 갖고 있습니까? 우리의 본성들이 다 갖고 있다고 말씀했는데 왜 이런 것들을 갖고 있습니까? 창세기 3장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창세기 3장의 영향 하에 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본토가 내 중심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시기와 질투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흑암이 역사하게 되는 것이죠. 사탄이 개입하면은 결국 그것이 나중에 영적인 문제로 발전되어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 우리가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어떤 시기와 질투들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판 삼아서 거기에 그것을 가지고, 언약으로 붙잡아야 되는데 그것 잡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결국 사탄에 이용당해서 영적문제로 심각한 상태가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신앙인들을 가지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 밥을 먹지 못하는 젖먹이의 신앙인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야기했습니다. 너희가 육신에 속한 자구나, 어린아이와 같다, 밥을 먹지 못하는 죽만을 먹을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까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말씀을 제대로 못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축복으로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눌려요. 말씀을 잘못 듣게 됩니다. 또 말씀을 골라서 먹는, 편식하게 되는 것이 거기서 나와요. 여러분 말씀 앞에 바르게, 진실한 모습으로 여러분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무엘상3:9절에 말씀했습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언제나, 늘 항상, 어떤 말씀이 주어지든지 간에 말씀 앞에 우리 자신들을 내려놓고,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다 라는 그 마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도행전10:33절에 보면은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말하는 무슨 말이든지 고넬료가 듣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행전10:3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여러분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젖먹이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내게 유익하고 축복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멘하지만요, 뭔가 다른 말씀이면 내가 걸러냅니다 나도 모르게. 어떤 말씀이든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제대로 못 듣기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많은 오해를 하게 되고요. 그래서 젖먹이의 신앙인들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늘 항상 오해 가운데 빠지게 되어지죠. 그러니까 분쟁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잠시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게 될 때에 그때, 그 상황, 그 환경에서 누리면 누릴수록 환경과 만남이 다르게 보여지고, 만나지고, 누려지게 되어 있다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부분을 느끼고, 체험하게 될 때에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다 했습니다. 뭔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섭섭하고, 마음의 상처들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은 그때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그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와 사건 앞에 상처 가운데 빠지고,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의 여러 가지 말들과 환경들 여러분 별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누리게 되면 그렇게 되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치 않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만만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들을 제대로 보고, 인도받는 사실 속에 있게 되면은 그러한 응답들이 우리에게 누려지게 된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들이 안 되니까 늘 상처받게 되고, 모든 것에 오해를 하게 되고, 끊임없는 분쟁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큰 일을 하나님께서 맡길 수가 없는 것이죠.
 여러분 장성한 신앙인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어떤 사람이 장성한 신앙인입니까? 어떤 말씀이든지 소화하는 성도가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목사님들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잖아요? 말씀을 전달할 때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이 말씀은 누가 들으면 좋겠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말씀을 정리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 꼭 어떤 집사가 들어야지.’, 하면서 의도를 가지고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그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다 신경 써서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한다면은 우리는 말씀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이든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를 바랍니다. 설교로 들으면은 여러분 영혼이 병듭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서 중요한 기도를 하셨어요. 나의 연약함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이 언약으로 붙잡혀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그 어떤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고, 하나님의 언약으로 붙잡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누가복음7: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1:6절에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어요.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복음으로 실족하지 않는 그러한 자가 복이 있도다 말씀하시면서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강단에서는 복음이 선포되어 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복음으로 받지 못하고, 내게 시험들 거리로, 상처거리로 받는다면, 시험거리로 받는다면 본인이 손해입니다.
 저는 말씀을 전달하면서 때에 따라서 말씀을 참 우리 성도들에게 좀 쉽게 전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들도 많이 해요. 또 목사로서 당연히 성도들에게 말씀을 잘 전해야지 그런 마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조차도 잘못되었다 라는 사실을 저는 성도들을 만나보면서 느끼게 돼요. 말씀을 영 못 전했다고 제가 나름대로 생각하는데 그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았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봐요. 너무 말씀을 잘 전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 부분에는 성도들이 쎄한 것을 봐요.
 여러분 말씀에 은혜 받고, 말씀에 응답받는 것은 사실은 제가 잘 전하고, 못 전하고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50년 동안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50년 신앙생활을 한 그 사람에 맞게 말씀이 적용되게 되어 있어요. 이제 갓 믿는 신앙인들도 있죠. 설교 어렵다, 쉽다 상관없이 말씀이 선포될 때 갓 믿은 사람은 갓 믿는 사람 그 신앙에 맞게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이 응답으로 붙잡혀지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은 핑계를 대고, 또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에게 여러분 성도들이 은혜 받고, 못 받고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붙잡느냐? 거기에 여러분의 응답과 모든 문들이 열려진다 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복음에 방해합니다. 나도 원치 않게 잘한다고 하는 것이 뭐냐? 복음의 방해거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개입하면 영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울은 결국 여기서 못 빠져나왔습니다. 사울의 남은 생애가 백성을 통치하는 것도 뒷전에 두고, 모든 생애를 결국 다윗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쫓아다닌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아니 왕으로서 백성을 통치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왕의 힘을 가지고, 결사대를 조직해 가지고, 다윗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인생을 망친 사람이 사울 왕이었던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저와 여러분 서시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치유
 그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요. 그리고 정말로 세계복음화의 귀한 언약의 역사들, 축복의 역사들을 내가 누리고,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내게 있는 문제들이 치유 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상처받지 말고, 상처를 주지 말고, 상처가 있다면 빨리 치유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말씀 속으로, 복음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상처를 통해서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들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만 꺾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에 모든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고,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우리에게 주신 말씀, 복음의 역사는 어떤 역사입니까? 이사야53: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했어요. 우리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말씀 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19:30절에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아예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해방 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1절에 말씀하고 있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법적으로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지금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연약한 부분들을 복음을 누려갈 수 있도록 하나하나 치유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16-18절에 말씀하고 있죠.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속에 거하시겠다고 말씀 했습니다. 언제까지? 영원까지. 그래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지지 않겠다 말씀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한 부분들을 치유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저와 여러분을 내게 있는 연약한 부분들이 치유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똑같은 내게 있는 문제들, 똑같은 문제 가진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있는 증인들로 우리를 세워 나가신다고 했어요. 사도행전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그래서 땅 끝까지 증인된다.”, 라고 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살리는 증인으로 또 우리가 쓰임 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줘도 내가 별 영향받지 않는 그런 치유들이 여러분 말씀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제일 상처받는 부분들이 말로 말미암아 상처받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을 그냥 내뱉게 되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말을 한 번 내뱉게 되면 주워 담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말 하지 말고, 여러분 말할 게 있다면 강단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복음 전하는 것 말고는 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상처받지도 말고, 상처 주지도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통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통해 치유하는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말이라도 소화할 수 있어야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에게 맨날 젖으로만 주고, 밥으로 주지 못한다 말씀했어요. 이 말은 바울의 답답한 마음을, 심정을 토로한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너무 육신적이구나.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도 시험에 드는구나. 그 바울의 답답한 마음을 고린도 교회 속에서 말한 것이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여러분 걸려들지 말기를 바라고, 반드시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삶을 건드리는 말씀이기 때문에 다 해당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는 필요하고, 누구에게는 필요 없다? 아닙니다. 혹시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한테 해당이 안 된다 라고 생각하면 여러분 못 깨닫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말씀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갱신하시길 바랍니다. 걸려 넘어지는 어린아이의 신앙생활이 되지 말고, 어떤 말씀을 받든지 간에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붙잡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젖 먹는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강단 말씀으로 실족하지 않게 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강단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붙잡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붙잡을 때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에베소서4:13절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나는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에서 그 부분을 누리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그 축복의 역사 속에 이르게 돼요.
 우리가 그때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진다는 말이죠. 이게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아는 것과 누리는 것이 일치가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면 안 돼요. 우리의 삶 속에 누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 되어질 때에 그게 장성한 신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 누려진다? 그게 임마누엘의 축복이죠. 다윗에게 이 역사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훌륭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상처 주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았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을 누리니까 어떤 문제가 와도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23:1절에 말씀했죠.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 쫓겨 다니면서 고백한 다윗의 고백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는 말이에요. 진짜 행복한 환경들이냐? 주어진 환경은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다 했어요, 그러한 환경이었습니다. 그 환경이 다윗에게 영향 주지 못했다 라는 거에요.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게 삶 속에서 누리는 것이 일치가 되어지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지니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일날 강단에 받은 말씀들이 여러분 삶 속에 이어져야 돼요. 예배의 생활화가 되어져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게 성도에게 있어서 참된 행복입니다. 사도행전1:1절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죠. 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도행전1: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세계복음화의 방법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언약 붙잡고 초대교회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2:46-47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날마다 성전에서 날마다 집에서 말씀했어요. 언약 붙잡은 그 언약이 날마다의 생활화의 현장으로 이어졌다 라는 사실이에요.
 예배의 생활화가 이루어질 때에 우리의 삶에 참된 행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니까 늘 어린아이의 신앙생활을 탈피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늘 시기하고, 질투하고, 늘 시험에 들고, 말로 상처 주고, 상처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 아는 것과 여러분 삶 속에 누리는 일치함이,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나타남이 여러분 삶에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오직 기준이 되어야 되고, 오직 배경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그리스도를 알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누려지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배경과 기준은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들을 볼 때에 복음인가, 아닌가? 로 볼 때 정확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틀릴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틀릴 수 있지만 복음은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원리는 아무리 체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복음을 능가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은 복음,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어떤 분이 보면 맞다고 하는데 복음으로 보면은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만 기준 되어지고, 배경 삼는다면은 육신적인 신앙과 어린아이의 신앙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자꾸 우리가 육신적으로 흘러갑니까?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이 우리의 배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돈과 지식과 사람이 배경이고, 사람 눈치 보다가 결국 그리스도 배경이 안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배경이고, 그리스도 기준이라면 그런 것에 빠져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 기준하고, 그리스도 배경 삼는 자들을 가지고 장성한 자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장성한 자 소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어 간 사실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역사는 소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그 소수를 가지고 남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기준, 그리스도 배경을 삼음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가 되어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들이 이루어지는 역사들이 여러분 현장에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기준, 그리스도 배경 가진 장성한 자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큰 일을 맡기시고, 계속해서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치유될 부분들을 말씀 속에서 다 찾아내시기를 바라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낱낱이 찾고, 붙잡으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지속의 비밀을 아는 전도제자의 기도
1. 내 중심 한 젖먹이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2.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게 하옵소서.
3. 오직 그리스도만 기준, 배경 되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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