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어디에 서 있는가?
2025-11-23 14: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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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어디에 서 있는가?
(삼상22:1-10)

   
서론: 오늘 다윗의 생애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망을 갑니다. 거짓으로 제사장을 속여 떡과 칼을 얻는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두려움에 다시 도망간 곳이 블레셋이었고, 정체를 들키자 미친 체하고 침까지 흘리며 다시 도망가게 됩니다. 아둘람 굴로 도망한 다윗에게 가족들이 오게 되고,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갈급한 자 4백 명이 모입니다. 교회도 이같이 배경이 없고, 지식이 없는 갈릴리 시간표를 가진 자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갈급한 자 4백 명을 통해 한 시대를 살리시고, 다윗 왕국의 중요한 일꾼들로 쓰셨습니다. 어려움과 고난은 있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망대가 세워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를 통해 다윗을 인턴십 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어도 지금도 하나님의 망대가 만들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불신앙 하지 않아야 합니다. 광야와 같은 길에 모든 걸음을 축복의 여정으로 누려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시작 - 왜 이런 사람이 모였을까?
  가.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언약 때문에 반드시 승리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 나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만들어가시기에 날마다 오직 복음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빌1:6).
  나. 하나님의 방법인 그리스도를 붙잡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고 모든 것에 승리하게 하심을 알게 하옵소서(마9:12, 고전1:27).
    • 나의 불가능을 깨닫고, 내 기준과 내 체험이 아닌 복음으로 누구든지 이해하고 수용하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 시간표는 반드시 오기에 지금 안 되더라도, 성령충만함이 덮여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제자 되게 하옵소서.
  다. 나의 삶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편에 있게 하시고, 사람을 죽이는 사망의 편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 그리스도로 영적인 힘을 얻고, 날마다 마음의 참된 평안과 안정을 누리는 영적 상태가 되게 하옵소서.
   
 2. 생명이 먼저이다
  가. 제도와 법이 아닌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 먼저임을 알게 하시고, 사람을 살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나. 생명과 복음을 가진 자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옵소서.
   
결론: 갈급한 자, 환란 당한 자, 상처받은 자들이 변하여, 다윗 왕국의 공신이 되고 충성스러운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자라고 연약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치유하시고 시대의 재앙을 막을 자로 쓰실 것입니다. 언약 붙잡고 사람을 수용, 이해하고 생명을 살리는 그 길에 서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월 2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어디에 서 있는가?”
(삼상22:1-10)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아멘.
         삼상22:1-10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누리십시다.’, 오늘 은혜로운 찬양 너무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 일에 심부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확인하시고, 하나님 주시는 근원적인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남미 순회 사역으로 3주간 교회를 비웠었습니다. 그전까지 살펴본 내용들이 사무엘상 쭉 같이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중남미 순회 사역 가기 전에 사무엘상 21장 마지막 부분들을 같이 좀 언급 했었고, 오늘도 사무엘상 21장과 22장을 가지고 중요한 부분들을 확인하면서 언약을 붙잡는 시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무엘상 21장과 22장은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번 주간에 사무엘상 21장, 22장을 한번 쭉 조용하게 묵상하면서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다윗이 놉 땅에 제사장으로 있는 아히멜렉에게 도망쳐 갔었습니다. 사울을 피해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성소로 도망가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다윗이 거짓말을 통해서 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이는 부분들이 21장 전반에 나와요. 제사장이 왜 당신 혼자냐고 하니까 왕의 명령이 너무나 급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해서 내가 지금 혼자 왔다고 했어요. 도망길에 있는 이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속이는 행동이죠. 그리고 제사장에게 내가 지금 너무 배가 고픈데 떡을 좀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성전에 들여졌던 진설병 떡은 제사장과 제사장 자녀들만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이 모를 리가 없어요. 그런데 그 떡을 너무 배가 고프니까 좀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왜 당신에게 칼과 창이 없느냐고 아히멜렉이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너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그것을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다윗이 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요구합니다. 혹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칼과 창이 있지 않느냐? 물으니까, ‘아, 마침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 쳐부수고 난 후에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저 제사장들이 제사 드린 에봇 뒤에 있는데 그 칼이 있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다윗이 제사장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 골리앗의 칼을 내게 좀 달라고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사무엘상 17장에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 앞에 섰을 때의 다윗의 모습을 아시죠? 얼마나 지금 다윗이 무너졌으면, 또 얼마나 자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면 자기에게 그 골리앗의 칼을 좀 달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시듯이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골리앗이 다윗 앞에 나올 때에 다윗이 이야기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라고 했어요. 그런 다윗이 지금 사실 얼마나 무너졌으면 지금 그 골리앗의 칼을 좀 내게 달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또 그 이어서 보면 거짓 처신으로 말미암아 사실은 다윗은 적군이었던 블레셋에 도망하게 되어져요. 블레셋 왕인 아기스 왕 앞에 서게 되어지죠. 블레셋은 적군의 나라입니다마는 거기에 도망가니까 그곳 사람들도 이 다윗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혹이나 마음에 두려움이 있어가지고 다윗은 거기서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미친 체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대문에 거적 거렸다 했어요. 침을 흘렸는데 그 침이 수염에 내려오도록 침을 흘렸다 했어요.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한 것이죠. 그래서 아기스 왕이 결국은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해서 쫓아 보내고, 광야로 도망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있어서 사실은 얼마나 많은 그 명성들이 올라왔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향해서 하나님께 찬양한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다윗은 엄청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21장, 22장 본문에 보면 완전히 곤두박질치고 있는 부분들 보게 돼요.
 사실은 사울은 왕으로서 군사를 3천 명 특공대를 동원해 가지고,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추격해 온 상황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아둘람 굴로 결국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굴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 죽으면 시신을 두는 곳, 매장지가 바로 굴입니다. 또 아주 위험한 형편을 당하게 될 때에 급하게 은신처로, 피난처로 피하는 곳이 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굴속으로 이 다윗은 피난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의 왕국이 이 굴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마치 우리 기독교가 무덤에서 시작된 역사인 것처럼, 다윗의 왕국에 세워진 모든 시작이 굴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돼요. 아둘람 굴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굴로 찾아왔어요. 당연히 다윗 때문에 아버지도, 그 형제도 어려움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겠죠. 지금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다윗입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이 당연히 어려움 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정치적인 부분들 속에서도, 어떤 면에서 이게 정말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무조건 잘 되는 겁니까?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까? 만사형통한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예수 믿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불편한 일도 있을 수 있고, 당연히 어려움과 핍박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세상의 기준이 교회에 들어오다 보니까 교회조차도 예수 믿으면 무조건 잘 되어야 되고, 무조건 만사 형통해야 되고,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예수 믿는 신앙생활에 올바르게 인도받게 될 때 한 번도 핍박과 어려움들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도 엄청난 핍박 가운데 어려움 가운데, 고난 가운데 있었던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둘람 굴에 있었을 때 다윗이 그 마음 중심을 고백한 시가 있는데 그게 시편 142편과 시편 57편에 보면은 굴에 있을 때 그 마음 상태가 어떠한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 굴에 있을 때 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내려오게 되고, 그리고 오늘 2절에 보면은 거기에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그곳에 모였다 했어요. 환란 당한 자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 환란을 당하는 자들이 거기에 모였고, 또 빚진 자는 무엇입니까?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자들이 그곳에 모였어요.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였다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회로부터 고립 되어지고, 거절당한 변두리 인생들이 사실은 이 아둘람 굴에 모여진 것이죠. 한마디로 말하면 갈급한 자들이 아둘람 굴에 모여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구원받을 자의 그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이 처음에는 갈급한 자들이, 다시 말하면 갈릴리 시간표를 가진 자들이 모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배경 없고, 배운 지식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로 시작된 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메뚜기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3장에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의 고백이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더이다 했어요. 오늘날 교회의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기에 아둘람 굴에 모여진 400명이 그러한 사람들이었어요. 뭔가 갈급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400명 갈급한 자를 통해서 한 시대를 살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이들이 나중에 잘 훈련된 군대가 되어졌습니다.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나라의 조직을 하는 이 일에 중심이 되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 이유 때문에 많은 고난과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도, 고난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분명히 그때도 망대는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턴십 시킨 겁니다. 도망 다닌 시간이 15년이에요. 광야에서 도망 다니면서 거기는 사람이 원해서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겪은 그 상황은 누구나 원치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왕이 뒤쫓아 와줘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광야에서 쫓겨 다니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배웠고, 군사 전략 전문가로서 서게 되고, 매복 전문가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철저하게 중요한 다윗 왕국을 세워 나가기 위해서 인턴십 시킨 사실을 미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어떤 문제들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분명히 지금도 하나님의 절대 망대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와 어려움 속에 낙심하지 말기를 바라고, 불신앙 하면은 불신앙의 망대가 세워져요. 다윗은 한 번도 불신앙 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윗에게 다윗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절대적인 망대를 세워 나갈 수밖에 없는 그 축복 가운데 광야 길에 모든 걸음들의 여정이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시작 - 왜 이런 사람이 모였을까?
 그래서 오늘 본문 사무엘상 21장과 22장을 통해서 크게 두 가지 좀 중요한 언약을 좀 확인하고 잡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왜 이런 사람이 다윗이 있는 그 아둘람 굴에 모였을까요?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하나님의 시작은 반드시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시작은 언제든지 미약하죠. 그러나 언약 때문에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붙잡은 언약 때문에 여러분의 연약함 상관없이 승리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요셉이 깨끗해서 보디발의 유혹을 물리친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순결을 지켜야 된다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그것을 이길 수 있습니까? 보디발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비밀은 요셉에게는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만들어 가십니다. 반드시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 다 제쳐 놓으시고, 오직 그리스도 복음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1:6절에 말씀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신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일에 우리의 연약함과 미약함 상관없습니다. 언약 갖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쓰셔서 귀중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일에 계속해서 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잘 아셔야 합니다. 언제든지 뭐든지 모자라고, 연약한 자들, 없는 자들을 하나님이 부르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9:12절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다 했습니다.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오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죄인이요, 소망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잠깐이라도 그리스도, 복음을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작은 늘 갈릴리 사람이었다 라는 것, 약한 자를 부르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라는 것.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에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선택해서 지혜롭게 하신다고 했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해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2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신다 말씀했어요. 왜 세상에 배운 사람도 많고, 훌륭한 사람도 많은데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까? 왜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셨습니까?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한 자를 부르시고, 의로운 자를 불러서 헬라의 귀부인 같은 엘리트들을 불러모으는 방법을 오늘도 주님은 쓰고 계시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 다락방 운동 처음 할 때에 우리교회를 통해서 많은 해외 현장에 문들이 열려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 특별히 여자 권사님들, 성도님들이 복음에 충격받으니까 그 충격받은 걸 가지고 미국에 가서 팀사역 들어가 가지고,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까지도 감동을 주고, 이 운동 속으로 들어오도록 인도받은, 인도함을 그때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분위기 있고, 고상하고, 뭔가 폼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처음에 미국에 이 다락방 복음 운동을 전달한 우리 하나교회 한마디로 아줌마들, 몸빼 입고 나가서 복음 전한 사람들이었어요. 그 복음 듣고 미국에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도 ‘아, 성경적인 전도 운동이라 하면서 우리가 이 운동 속에 들어가야 되겠다.’, 하면서 그 당시에 많은 분들이 훈련 속에 들어온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흠이 많습니다. 사실은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표고, 그것이 하나님의 시작인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너희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 말씀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비록 부족하고 모자란 자 같지만 그 속에 참된 제자가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런 사람들을 택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 기준 말고, 복음을 막고 있는 내 기준, 내 생각과 내 모든 체험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자기 자신이 의가 되어 가지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가 나의 의지, 자기 자신의 의를 가지고, 신앙생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 기준 가지고 신앙생활 하지 말고, 그게 결국은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제자가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의 방법을 안다면은 그 어떤 사람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거기에 흑암의 역사들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한계가 있잖아요? 인간관계 속에서 사실 다 막히는 겁니다. 뭔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관계를 통해서 시험 들고, 무너지고, 상처받고, 다 막히는 겁니다. 그 인간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겁니다. 거기에 흑암의 역사들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여러분 복음으로 나 자신이 치유 받기를 바라고,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치유 받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복음 아니고는 절대 치유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갈급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압니까? 영적문제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압니까? 조급합니다. 그래서 막 이리저리 설칩니다.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옮기게 되고, 뭔가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고, 그래서 자꾸 신통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미안합니다만 좀 더딜지라도 복음으로 치유되어야 진짜 치유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복음으로 치유되어야 진짜 치유가 일어남과 더불어 제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반드시 옵니다. 혹시 지금 치유가 안 된다 할지라도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덮여질 때까지 기다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제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아둘람 굴에 피했던 400명, 어느 날 보니까 그들은 훌륭한 군인과 나라를 조직하는 그런 용맹스러운 군인이 되어졌던 사실을 보게 돼요. 시대를 움직이는 제자로 세워졌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성경 한번 보십시다. 역대상 12장 한번 보세요. 400명이 어떻게 변화되어 졌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12:8절 한번 보십시다. 400명의 아둘람 굴에 있는 사람들의 명단 지파들을 쭉 11장, 12장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12:1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다.”, 했죠. 그리고 8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하나같이 용맹한 용서가 되었음을 보게 돼요.
 그리고 넘어가서 역대상12:22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큰 용사들이 되었다 이야기하고, 큰 군대를 이루었는데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 했습니다. 오합지졸의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으니까 하나님이 이들을 들어서 용사로, 큰 군대로 들어 사용하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움직이는 제자들로 세워졌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날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생명의 편에 서 있느냐? 사망의 편에 서 있느냐?’, 신앙생활은 줄을 서는 겁니다. 오늘 제목이 어디에 서 있느냐 했죠. 줄을 서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줄에 있습니까? 생명의 편에 서 있느냐? 사망의 편에 서 있느냐? 오늘 사울은 사실은 사망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셀나무 곁에 아래에 앉아 있는데 사울의 손에 들려진 것은 단창이었습니다. 이 단창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수호하기 위한 창이 아니에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창이었어요. 다윗이 수금 칠 때도 사울 왕이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죠. 그것도 귀신 들려가지고 창을 던졌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창, 여러분 어떤 면에서 늘 다윗은 일생 자체가 사망의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에요. 죽음의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에요. 여러분 말은 안 하고 있지만은 영적인 상태는 지옥이 되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다윗은 사망의 편에 서지 않고, 죽음의 편에 서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편에 산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충분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힘을 힘이 있는데 힘을 쓰지 않는다 라는 건 어려운 것 중의 어려운 겁니다.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보세요. 뭔가 조금만 힘 있으면 그 힘 가지고 다 사용하잖아요? 아니 사촌, 팔촌까지 있는 힘을 끌어당겨서 자기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그 힘을 사용하고자 하잖아요?
 다윗은 힘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자기를 위해서 전혀 힘을 쓰지 않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어요. 그가 가진 힘으로 뭘 했습니까? 어떻든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힘을 주는 그 일을 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생명의 사람을 살리는 상징으로 쓰여졌던 사람이 다윗이죠. 그 후손을 통해서 결국은 생명의 그리스도 주가 오신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 두 가지입니다. 내가 정말로 사망의 편에 서 있느냐? 생명의 편에 서 있느냐? 사울은 늘 사망의 편에서 죽음의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 자체가 아예 비뚤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성경 읽은 22:7-8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무엘상 22장으로 올라가서 7-8절 한번 보십시오. 어떤 면에서 뭔가 있지도 않은 상황을 머릿속에 이 사울은 생각하게 되죠. 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절에 보면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날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다.”, 라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다 거짓말이고, 나름대로 상상 속에서 어떤 면에서 모든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편에, 죽음의 편에 서 있으니까 당연히 그의 모든 영적인 상태의 생각들은 두려움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인 힘을 얻고, 여러분 영적인 상태가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리스도 조용하게 묵상하는 가운데 여러분 마음의 평안함, 뭔가 마음의 안정됨 그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이냐에 따라서 결국은 거기에 응답들은 오게 되어 있어요. 늘 사울은 죽음에 대한 사망의 편에 서 있어서 그 생각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응답이 있지도 않은 생각들을 상상 속에 하면서 두려움에 빠지는 거에요. 반대로 다윗은 생명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리고, 힘을 줄 것인가? 여러분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의 편에 서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생명이 먼저이다
 두 번째로 생명이 먼저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놉 땅으로 도망가게 되었죠. 서론 부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너무 배가 고프니까 떡을 달라 했어요. 그런데 제사장 아히멜렉이 떡을 줍니다. 율법에 맞지 않는 거에요, 불법입니다. 다윗은 성소에 들어가서 떡을 달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 다윗은 떡을 먹을 자격이 없어요. 레위기 24장에 보면 떡은 제사장과 그의 자손들이 먹을 수 있는 거에요. 전혀 떡을 먹을 자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히멜렉은 떡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행동도 틀렸고, 제사장 아히멜렉의 행동도 틀린 것입니다. 연약해서 넘어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죠.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부분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또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 가운데서 ‘법이냐, 생명이냐?’, 이걸 따질 때가 많아요. 여기에 많은 충돌을 갖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제도와 법이 우선이냐, 생명이 우선이냐?’, 여기에 많은 갈등이 있고, 충돌함을 가져오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생명이 먼저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고자 법이 존재하는 거에요. 어떤 면에서 율법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모든 행동은 틀린 겁니다. 율법에 맞지 않은, 법적으로 안 맞는 거에요.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이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운영 되어지는 부분들 속에서 필요한 것이 규정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에도 규정집이 있습니다. 그 규정집에 의해서 당회원 장로님들의 기도 속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고, 또 바르게 운영해 나가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 보면 그 규정에 매이다 보면 생명의 역사, 복음의 역사들을 막을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법과 제도가 먼저가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먼저입니다. 사람이 살아나야 그 사람에게 법도 제도도 먹혀드는 것이죠.
 참 감사한 것은 우리교회에 규정집을 지었고, 만들고 나서 우리 장로님들이 맨 앞에 예외되는 한 부분을 붙이자고 했어요. 그래서 규정집 제일 앞에 보면은 한 장으로 이렇게 붙여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목표로 전도 목회를 위한 교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한 모든 규정과 모든 일들이 진행되어야 된다.’, 라고 딱 명시를 해놓고 있어요, 제대로 인도받은 것이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법과 제도 가지고, 뭔가 마음의 갈등들이 오고, 다툼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것 때문에 싸움까지 해요. 법을 말하면서, 필요합니다,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하게 듣고, 참된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 내용을 예수님께서 거론하셨어요. 마태복음 12장에 보면은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프니까 밀밭 사이로 지나가니까 옆에 있는 밀밭을 부벼가지고 먹었어요.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그것도 안식일에 범한 거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야기 했습니다. 아니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오늘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마태복음12:3-7절까지가 다윗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범하였다 라고 법을 가지고 나왔어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먼저 한번 읽어보십시다. 3-7절까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제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우리는 법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시장해서 떡을 요구한 다윗의 손을 들어줬어요. 제사장 아히멜렉의 손을 들어줬어요. 율법적으로 따지면 두 사람의 행동은 틀린 것입니다, 법적으로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것이 우선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중요한 기능이어야 합니다. 성소, 교회의 중요한 기능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일에 그 어떤 것도 앞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교회는 생명 살리는 교회로 쓰임 받는 그 축복의 역사를 누리기 바랍니다.
 나중에 보면은 정말로 이것 지키지 않은 것들 때문에 정죄하고, 사실은 심판하고, 고발한 사람이 나와요. 그게 21장, 22장에 보면은 도엑이라는 사람이 나와요. 에돔 사람, 에서의 후손이죠. 여러분 에서 알죠? 하나님의 편에 서있지 않은 언약 밖에 있던 사람 그 후손이 도엑이라는 사람인데요. 21장에 보면 도엑이라는 이 사람이 사울 왕의 어떤 면에서 집사로서 중요한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고, 칼을 준 그 사실을 커튼 뒤에서 딱 듣고 봤어요. 그게 21:7절에 나와요.
 그래서 그것 가지고 사울 왕에게 고자질을 합니다. 내가 딱 봤는데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어서 먹이더라. 여러분 지금 다윗은 사울에게 있어서 적입니다. 그러면 그 적을 먹였다 라는 것은 같이 적과 공모하는 것이죠, 왕을 대적하는 것이죠. 그래서 왕이 아히멜렉을 부릅니다. 아니 네가 왜 공모하고, 대적하느냐? 그러니까 아히멜렉이 거기서 다윗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만큼 충성된 종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다윗만큼 당신을 지키는 호위무사가 어디 있습니까? 왕에게 이 아히멜렉이 다윗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사울이 더 열받은 겁니다. 지금 죽이기 위해서 쫓아다니는데 이 다윗을 칭찬하니까 더 열 받은 겁니다. 그 자리에서 좌우에 있는 호위병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아히멜렉 제사장과 그 집들을 완전 멸하라 했어요. 그런데 좌우에 있는 호위병 군인들이 그 사실을 두려워해서 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누가 나왔느냐? 도엑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 도엑이 결국은 제사장 에봇 입은 사람 85명을 한꺼번에 죽였어요.
 그게 22장에 나와요. 85명의 에봇 입은 사람들을 한몫에 죽이고, 아히멜렉은 물론이고, 그 자녀들 남녀노소 심지어 젖먹이까지 죽였다 했어요. 그 가운데서 아히멜렉의 아들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왔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다윗 왕국의 제사장이 되어진 사실을 보게 돼요. 여러분 사람을 법으로 심판하고, 정죄하고, 고발하게 될 때 결국은 많은 사람을 죽이는 자리에 서게 됨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생명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고,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둘람 굴로 피했던 400명이었습니다. 갈급한 자, 어떤 면에서 환란 당한 자, 상처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윗 왕국이 세워진 이래 개국 공신이 되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윗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자라고, 연약한 우리를 이 시대에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 언약 안에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 근원적인 힘을 주실 것이고, 우리를 치유하실 것이고, 시대의 재앙을 막을 사명자로 저와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언약만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사람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비밀도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길에 서 있느냐, 어디에 서 있느냐? 우리 자신들을 점검하면서 이 한 주간 주신 응답들을 찾아 누리는 귀한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언약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시간표 보며 수용, 이해하는 사탄 꺾는 비밀 누리게 하옵소서.
2. 늘 생명의 편에 선 자 되게 하옵소서.
3. 교회가 모든 사람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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