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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7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신앙의 위치 - 어디에 서 있는가?
(삼상23:1-5)
서론: 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헤렛 수풀에 숨어 있을 때, 유대 땅 그일라를 블레셋이 침략해서 타작마당을 탈취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은 사울 왕이 아닌 도망자인 다윗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왕국의 사울 왕이 아닌 다윗 왕국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삼상23:2). 부하들이 두려워함을 보며 다시 하나님께 묻게 되고(삼상23:4), 그일라 사람들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해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 왕에서 알려주게 됩니다. 세상은 속고 속이며, 보이지 않는 나라보다 보이는 것들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지합니다(딤후3:13).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1.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방법과 인본주의가 아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상태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 아무도 의지할 수 없고 알아주지 않는 광야와 같은 삶이 나의 영적 상태를 회복하는 축복임을 알게 하옵소서.
• 광야를 통해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고, 나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 광야 길에 하나님만이 나의 참된 피난처임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만 붙잡게 하옵소서.
• 어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며,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임을 누리게 하옵소서.
• 나의 광야를 통해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게 하시고, 이것이 중요한 발판이 되어 증인의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2. 세상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
가. 보이는 세상 나라가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날마다 붙잡고 누리게 하옵소서.
• 보이는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돕고 살리는 자로 진정한 힘 되시는 하나님만 배경 삼게 하옵소서(빌3:7-8, 20).
나.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으며, 보좌의 배경 누리는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 나의 견고한 망대가 되시며, 피난처가 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날마다 나아가게 하옵소서(잠18:10).
결론: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보이지 않는 것이 참된 축복이고 가치임을 알기에, 모든 것을 손해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 그 가치를 붙잡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와 망대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내 인생의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고 승리하는 한 주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월 7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신앙의 위치 - 어디에 서 있는가?”
(삼상23:1-5)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아멘.
삼상23:1-5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정말로 주님이 동행하는 비밀의 축복이 모든 것임을 아는 자의 고백이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옵소서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이 주께로 나아가는 가장 귀중한 축복된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 RCA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우리 많은 하나교회에서 파송 되어진 성도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또 많은 렘넌트들도 만나서 함께 기도 제목들을 나누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정말로 각기 있는 현장 속에서 교회들을 섬기며, 중요한 사역들을 감당해 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세워져 나가고 있음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이미 각 교회 안에 절대 망대로 서서 교회에 주의 종들을 돕고, 또 많은 중직자들과 성도들을 도우며, 후대를 세워 나가는 한 분, 한 분의 삶을 보면서 정말로 우리의 기도가 헛되고 있지 않음을 또 확인케 되어지는 그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우리 하나교회 식구들이 해외 현장에 나가 있음을 또 보게 되었고, 제가 금요 기도회 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그분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하나교회 홈커밍 데이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좋겠네.’, 라는 생각들도 들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각 개교회 속에 속해서 많은 응답들을 누리면서 귀중한 하나님의 귀한 사역 속에 쓰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 너무나 축복된 걸음들로 또 인도받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에 RCA때 주신 말씀의 주제가 ‘다른 것이 필요치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주제가 너무 마음에 딱 와 부딪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새벽에도 이 주제를 가지고 같이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왜 사람들이 망합니까? 필요치 않는 것을 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왜 필요치 않는 것을 합니까? 정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필요한 것들을 주셨는데, 그 필요한 것을 못 보았기 때문에 필요치 않는 것을 합니다. 다른 것을 하고, 다른 것에 붙잡히고, 다른 것을 따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필요치 않는 것을 하면서 세상에 종 노릇 하고, 세상에 심부름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요구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필요한 것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들은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필요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 나는 그리스도 믿는 데도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준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앉은뱅이의 요구를 본 것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봤다는 말이에요. 거기에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스도 이름이 선포 되어지고, 거기에 그의 문제들이 해결 되어지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역사들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정말로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지만, 진짜 필요한 한 가지를 몰라서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마지막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붙잡았는데 진짜 세상에 필요한 그 한 가지 붙잡았는데 거기에 모든 것이 따라오는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복음인 것입니다. 그 복음으로 가장 먼저 과거에서 빠져나와야 돼요. 우리의 모든 과거를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라? 잊어버릴 수가 없는데요, 여러분 생각 안 한다고 해서 생각 안 되어집니까? 아예 과거를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가 치유 되어지고, 그것이 발판 되어지고, 그것이 작품으로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입니다.
그리고 오늘 현재는 무엇입니까?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하나님 주신 것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미래는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망대, 여정, 이정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조건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복음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해결을 가진 귀한 축복된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복음인 그리스도를 가지고 누리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의 업도, 우리의 학업에도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달란트가 보여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산업 현장에, 삶의 현장에 전도와 선교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숨은 자들을 만나는 것이 전도입니다. 선교는 무엇입니까? 정말로 TCK, CCK, NCK 이런 숨겨진 제자들을 통해 한 나라를 살리는 것이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준비해야 될 부분이죠. 그리고 진짜 복음인 그리스도 그 비밀을 가지고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으면 재도전 할 수 있습니다. 재생산 할 수 있고,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 속에 들어가는 최고의 응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신앙의 위치 – 어디에 서 있는가?’입니다. 제가 미국 가기 전에도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한 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정말 우리의 신앙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 오늘 다윗을 통해서 우리서 서 있어야 될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헤렛 수풀이라는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계속 도망하는 길에 있었던 다윗이 22:5절에 보면은 헤렛 수풀이라는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헤렛 수풀은 유대 땅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숨어 있는 곳에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인 그일라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일라에서 사람이 전갈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다윗이 숨어 있는 곳에 찾아온 것입니다.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침략해 와서 타작 마당을 탈취해 갔다 라고 오늘 본문 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블레셋은 늘 항상 악질적인 행동만 일삼던 것이 바로 블레셋 사람들이었어요.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을 들어서 채찍으로 쓰신 것을 보게 돼요.
아무튼 이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는 악질이었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짓도록 내버려 둡니다. 문제는 농사 지어놓고 수확을 하게 되면 쳐들어와서 그 수확물을 다 빼앗아 갑니다. 악질 중의 악질이죠. 이건 옛날에 여러분 이렇게 수박 서리나 뭐 이렇게 서리 해 본 적 있잖아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시골에 보면은 고추 농사를 지어서 실컷 다 말려놨는데 밤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와서 다 거두어 가는 그런 도둑도 있더라고요. 사실 그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일라 사람들이 도망자 다윗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아니 사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야 당연한 겁니다. 왜냐? 그 당시에 실제로 지금 나라의 주권자가 사울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왕국의 실제 왕인 사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다윗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마지막 부분에 보여주고 있습니다마는 이 다윗의 왕국에 대한 숨겨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부분을 미리 예시하고 있는 부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윗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나도 죽을 형편인데 이게 무슨 말이냐, 무슨 소리 하느냐? 이렇게 할 수 있겠죠. 다윗 자신도 지금 피난길에, 도망자의 길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편을 살펴보면 나도 죽겠는데 너희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게 되어지는 걸 보게 됩니다. 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또 재차 묻게 됩니다. 4절에 보면 다시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했습니다. 의심해서 다시 물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변에 많은 공격들이 있으니까 정말 확신 가운데서 하나님의 귀한 계획들을 따라 인도받기 위한 물음이었던 것을 보게 되죠.
일단은 다윗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서 그일라 사람을 도와주라,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밀어붙인 것이 아니죠. 다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기도하며 나갔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 받으면 ‘내가 응답받는데 누가 무슨 소리해?’, 하면서 막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신앙의 모습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윗의 군사들의 반응이 또한 나옵니다. 가서 우리가 도와줘야 되겠다 라는 응답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군사들이 펄쩍 뛰게 됩니다. ‘아니 지금 당신 제정신입니까?’, 이렇게 나온 것이죠. 그게 3절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했습니다. 블레셋 군대에 대한 정보도 없고, 지금 다윗에게 주변에 모인 군인들은 오합지졸의 군인들이었습니다. 사실 언제 잡혀 죽을지도 모르는 처지입니다.
분명히 다윗이 군대를 가지고 와서 그일라를 구출해 낼 때에 그 소문이 또 퍼져 나갈 것 아닙니까?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당연히 ‘아니 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땅에 머무는 이 자체도 사울의 위협 속에 있는데 정말로 우리가 가야 합니까? 라고 요청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니까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일라에 가서 그들을 구원하고, 많은 가축도 얻게 되어지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거기에 그렇게 구원받은 그일라 사람이 또 사울에게 다윗을 고발해요. 아니 구원은 다윗을 통해서 그일라 사람이 구원을 받아 놓고, 그걸 또 사울에게 고발해 버려요. 디모데후서3:13절에 마지막 때에 어떤 때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점점 악화해진다 말씀하고, 사람들이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은 속고, 속이는 세상입니다. 배반과 배반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보이지 않는 나라보다도 보이는 가치를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게 이익이냐, 이익이 되지 않느냐? 그것이 가장 기준입니다. 내게 이익이라면 못할 짓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일라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도 그 나라의 실제적인 왕이 사울이니까 또 사울을 의지하는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많은 것들을 붙잡을 수 있지만 두 가지를 한 번 우리가 붙잡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1.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먼저 첫 번째입니다, 변화된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변화된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은 다윗은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기도로서 나감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잖아요? 다윗은 성소에 뛰어 들어가서 허겁지겁 먹을 것을 달라고 제사장에 요구했습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을 제사장에게 한 겁니다. 자기가 요구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것들을 알면서도 요구한 겁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 그리고 골리앗의 칼을 보고,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라고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언제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 앞에 나간다 말해 놓고, 지금은 골리앗 그 칼을 내게 달라 라고 이야기했어요.
블레셋에 들어갔다가 미친 체하고요. 그리고 모압 땅으로 또 도망가게 되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지금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기가 숨어 있는 그곳에 와가지고 도와달라는 그일라 사람들의 요청을 받게 됩니다. 그 요청을 받고 누구에게 묻습니까? 그게 2절에 나오는 여호와께, 하나님께 묻게 되어지는 모습들을 우리에게 본문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다윗을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겠습니까? 여러분 바로 광야 생활입니다. 사람들에게 광야 같은 그런 처지의 삶이 있죠. 지난날 있었던 것도 있고, 지금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광야 길을 걸어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앞으로 어떤 광야 같은 삶이 우리에게 닥쳐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광야는 무엇을 말합니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말을 건넬 곳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마는 사람들이 외롭고, 고독함 속에 빠져요. 그게 광야 같은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군중 속의 고독함을 느낀다고, 오늘의 모습들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세상의 소리들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이 세상이 빠르게 변화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모르게 외롭고, 고독하고, 우울함 속에 빠져드는 겁니다. 그게 광야 같은 인생인 것입니다. 배반하고, 속고 속이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게 되고, 의지할 곳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혹이나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중요한 응답은 광야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언제든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먼저 준비하신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었어요. 광야 같은 삶으로 인도하시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에 미디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요. 말벗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후에도 광야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짧은 생애 3년 동안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죠. 그 공생애 시작 전에 40일 동안에 광야에서 사탄, 마귀의 시험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서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귀한 역사들을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사실을 보게 되죠.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지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광야의 삶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다윗입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치열한 광야의 삶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 보고, 굴에 들어가서 피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우리가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의 모습을 말씀했죠. 또 오늘 본문 이후에 보면 엔게디 굴로 도망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광야에 요새도 있었다 했습니다. 또 십 광야의 산골에도 머물렀다 했습니다. 다윗은 한마디로 도망길에 있어서 모든 삶이 광야의 삶이었어요. 날마다 죽이려고 추격해 오는 사울 왕과 그의 군사들로 말미암아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그 광야의 삶,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 광야의 삶, 그것이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윗은 광야의 길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37편, 24편, 54편에 후대에게 다윗은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복이다 라는 것, 그냥 고백한 고백이 아니에요. 광야 길에, 도망길에 있어서 다윗이 몸으로 체험한 것이 바로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복이다 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피난처가 나에게 진정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광야의 도망과 방황하는 생활을 통해서 철저하게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굴도, 캄캄한 숲속도 나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원래 광야라는 말의 원어는 미드바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이라는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미드바르에서 다바르 말이 생성되어 졌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훌륭한 시간인 것을 우리에게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혹독한 광야 같은 삶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광야 같은 삶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떠나고, 알아주는 사람 없고, 뭔가 나는 나 혼자라는 생각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까?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또한 내가 광야에 던져졌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냥 광야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길을 그 광야를 통해서 그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일이 싫었고, 그 현장이 싫었고, 그 사람이 너무 싫었는데 정말로 깨닫고 보니까 ‘아,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내게 없었다면, 내가 큰일 날 뻔했구나!’, 라는 사실을 정말로 광야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될 때 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14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광야에 있었지만 그들의 손에 다윗을 넘기지 아니하셨다 했어요. 하나님의 손길이 다윗을 지켜 나가고, 보호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끝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광야 같은 삶의 모든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 정말로 그래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지는 중요한 사실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 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체험했다는 말이죠. 우리의 문제 있는 어려움들, 광야 같은 삶에 여러 가지 이런저런 형편들,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어지는 귀중한 축복의 통로인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문제가 오히려 중요한 사역의 발판이 되고, 또 사역의 중요한 시작이 되어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락에 떨어져 있는 그 다윗의 영적인 상태가 조금씩, 조금씩 회복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광야입니까? 우리는 광야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데 분명 그 광야는 장차 우리에게 중요한 사역의 걸음이 될 겁니다. 우리의 사역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증인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겪어보지 못한 부분들을 먼저 겪어보게 하는 거에요. 남에게 갖고 있지 않는 문제들을 여러분이 먼저 그 문제를 통해서 광야의 삶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감사함으로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 광야를 내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닙니다. 견딘다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야 광야를 견디고, 광야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될 때에 보이는 광야의 삶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이 보좌의 배경은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을 승리케 하는 원동력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보좌의 배경 누리길 바랍니다. 보좌의 능력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게 광야를 이기는 길입니다.
2. 세상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
두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상 나라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실현되어 지는가? 우리에게 미리 계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 왕국은 세상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다윗 왕국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추어 놓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나라라고 했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감추어진 나라입니다. 어떻게 형성이 되어집니까?
자, 아비아달의 손에 에봇을 들고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 읽지 않은 6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갈 때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아히멜렉의 아들이 여기 나오는 것처럼 아비아달입니다. 두 주 전에 말씀을 같이 살펴보았죠. 사울 편에 있는 도엑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나오는 아히멜렉과 더불어 제사장의 무리들을 완전히 죽이게 되었습니다. 남녀를 죽이게 되고, 그 자손들까지 죽였어요. 그런데 거기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 바로 아비아달입니다. 제사장이에요, 그래서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다 했어요. 나중에 다윗 왕국의 제사장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미 사무엘을 통해서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이 사무엘상16:13절에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의 머리에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지금 왕으로 취임이 안 되었을 뿐이지 왕이 될 사람입니다. 자, 제사장이 있고, 왕이 될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22:5절에 보면은 선지자 갓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다윗에게 조언을 합니다. 당신 여기에 있지 말고, 이 요새를 떠나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 그래서 유다 땅인 헤렛 수풀에 다윗이 숨게 되어지죠.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라고 유다 땅으로 돌아갈 것을 조언했습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 미리 이미 보여주고 있어요. 그것이 구비 되어져야 온전한 나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지금 시작된 나라입니까? 감추어진 나라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나라입니다. 장차 드러나게 될 다윗 왕국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윗 왕조를 통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는 나라 권력들을 더 의지합니다. 보이지 않는 나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나라 권력들을 사람들은 더 의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3:7절에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 의해서 구원 받아놓고,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에게 또 이 사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구원 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이죠.
그렇습니다, 세상은 속고 속이고, 배반과 배반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무너지는 아픔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물론 돈이 필요하죠. 그런데 사람들 보면은 가장 마음의 아픔은 사람들에 의해서 배반 받는 거에요. 철저히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이 나를 배반할 수 있어? 배반감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배반감에 오는 상처와 시험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함을 보게 돼요.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은 다 교회 나가봤다 하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다 사람들에 의해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시험 들고 그래서 교회 생활을 안 하는 겁니다.
여러분 미리 답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의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의지하는 만큼 사실은 상처받고, 시험들 일만 있을 거에요. 왜냐? 이 땅에는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윗이 이야기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했어요. 우리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도와야 되고, 사람을 살려야 될 신분이 바로 우리의 신분인 것입니다. 세상은 이익이냐, 아니냐? 그것이 세상의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일라 사람들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이죠. 그래서 구원은 다윗에게서 받고, 또 보이는 세상 사울 왕을 의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움은 다윗에게 받고, 사울을 의지하는 보이는 것에 더 믿음을 둔 이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제사장, 갓 선지자, 그리고 다윗과 함께한 원통한 자, 빚진 자, 이 사람들은 어느 정권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나라, 보이지 않는 정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있어야 될 신앙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세상 모든 사람은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게 그들의 가치 기준이에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보좌의 축복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살다 보면 보이는 것이 나를 확실하게 세워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이 나를 보장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힘은 피난처가 되시고,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나라가 우리의 배경인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 바울의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긴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세상적인, 육신적인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긴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빌립보서3:20절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여러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백성들을 기여코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가? 정말로 보좌의 배경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내 생애에 그리스도가 나의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입니다.’, 고백하고 나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모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막으시는 사실입니다. 14절 마지막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또 마지막 23:27-28절에 보면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지금 다윗을 추격해 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울의 군인이 전갈을 보내와요. 지금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그 걸음 속에 있어요. 그런데 사울의 군사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사울 왕에게 전갈을 전해 옵니다. 블레셋이 지금 침공해 왔다 라고, 2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전령이 와서 급히 오소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8절에 사울이 다윗을 뒤쫓기를 그쳤다 했어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대조차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사실을 보게 돼요. 다윗을 뒤쫓은 걸음을 돌이켜서 일단 블레셋 침공을 꺾고, 나가 보니까 다윗은 사라지고 없는 거에요. 완벽하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보호해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배경입니다. 보이지 않는 보좌의 배경이 우리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이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그래서 잠언18: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망대로 삼고, 그 안에 달려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세상에 불신자들의 삶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고, 가치이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손해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 그 가치를 붙잡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망대고, 피난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는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내 인생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리 인생의 내용이 되어야 됩니다. 승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어디에 서 있어야 함을 아는 전도제자의 기도
1. 광야에서 우리 인생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누리게 하옵소서.
2. 보이는 세상 나라 이기는 비밀인 하나님의 나라, 보좌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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