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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딤후3:13-15)
서론: 신앙생활의 제일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를 이루는 최고 응답은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언약을 붙잡을 때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사탄은 지금도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유익이 없고, 손해를 주고, 시간 낭비인 것처럼 속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것처럼 지금도 확신이 없고 말씀을 놓친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속지 말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에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놓치면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 주간 모든 것의 시작을 정확한 언약을 붙잡고 절대 망대가 세워지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함(딤후3:1-5)
가. 나 중심과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말세 때에 말씀을 절대 기준 삼고, 말씀에 확신을 가지게 하옵소서.
나. 말씀을 놓쳐서 속거나 속이는 자가 되지 않고 말씀으로 답을 주는 자 되게 하옵소서.
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도움으로 세상과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라. 마음 중심에 언약의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시고, 후대들에게 정확한 언약 전달하게 하옵소서.
2. 말씀이 확신, 기준 된다면
가. 말씀의 확신과 기준 가지고 손해 보더라도 말씀 따라가며, 모든 것을 복음으로 재해석하게 하옵소서.
나.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함께하시며 인도하시기에 복음을 진정한 답으로 붙잡게 하옵소서.
다. 말씀이 절대 기준이 되어 문제와 선택하는 일에서 자유함을 얻고, 성령 인도 받게 하옵소서(요8:32).
라. 말씀에 대한 확신과 절대 기준 속에 사탄이 결박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맛보아 알게 하옵소서(시34:8).
결론: 말씀 붙잡고 기도함으로 말씀의 확신에 거할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 속에서 살아계신 말씀이 확인되어 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후대들에게 올바른 언약이 절대 망대로 세워질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과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으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대,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말씀만을 절대 기준 삼고,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한 주간 말씀만 절대 기준으로 삼고, 말씀에 깊이 뿌리내림으로 말씀 성취의 증인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월 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딤후3:13-15)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멘.
딤후3:13-15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고해 같은 인생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길에 등불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한 날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야 할 길들이 환하게 보여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가장 제일 중요한 부분들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을 보면은 말도 안 되는 말에 속아서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기꾼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은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주로 이야기를 듣고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최고의 응답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그 현장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현장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말씀의 성취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까? 그것은 정확한 언약을 붙잡는 데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시작이 있다면은 정확한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말씀에 대해서 멀어지고, 무관심해지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불신자들이 말씀에 대해서 멀어지고, 무관심한 건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예수 믿는 성도들조차도 말씀에 대해서 멀어지고,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별 유익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말씀하고 있죠. 마지막 때 바른 교훈을 듣지 않는다 라고 4: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둔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4:4절에 보면은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말씀에 무관심하게 살아 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죠.
악한 사탄, 마귀가 아담을 유혹했습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죠. 다 따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손해 주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바로 하고, 말씀 따라가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고, 손해 주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주일 나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붙잡는 것이 시간 낭비인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죠, 우리가 예배드리는 시간에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영적인 역사들이 예배하는 시간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니까 예배 드리는 시간, 와서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손해 되는 것 같고,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1:1-13절에 이 말씀은 창조의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사야40:8절에 영원히 성취되어지는 말씀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붙잡아야 되죠.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 하와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죠. 그런데 아담, 하와가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우리가 죽을까 하노라.”, 한다고 했어요. 이게 어떤 면에서 우리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때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가 말씀 받았던 것처럼 그러니까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탄이 마음대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못 붙잡고, 확신이 없으면은 모든 것을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죠. 언제나 우리 인생은 선택하는 것들의 연속이 되어져서 인생이 되어지죠. 날마다 작고 큰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판단을 잘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선택을 말씀을 놓치니까 잘못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 결과는 뻔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정말로 말씀에 대한 확신 가지고 말씀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전도자 바울은 사도행전18: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말씀에 붙잡혔다 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한 언약으로 마음에 담겨졌다는 말이죠.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붙잡혀야 되고,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되고, 말씀만 기준되어야 합니다. 왜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 앞에 우리 성도들이 흔들립니까? 정확한 언약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래요. 정말로 하나님의 정확한 이 언약의 말씀이 우리에게 심겨져야 되고, 우리 후대에게도 이 정확한 언약의 말씀이 심겨져야 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사건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고, 현실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어 있고, 모든 응답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 예를 들까요? 오늘 새벽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요셉입니다. 어릴 때부터 요셉은 정확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그 마음에 담겼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의 모든 걸음 속에 일어난 사건들 전부 길이였어요. 현실 속에 속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응답을 현실 속에서 찾아낸 겁니다. 모든 응답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은 정확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우리 안에 절대 망대로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함
그러면 이 하나님의 정확한 언약의 말씀이 절대 망대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습니다마는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질 않아요. 마음에 담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말씀의, 믿음의 역사들을 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실은 우리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 말씀이 되어지는 겁니다.
왜 우리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까? 분명히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은 디모데후서 3장 처음부터 보면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 라고 말씀했어요. 무엇 때문에 고통하느냐? 3:1절부터 쭉 읽어보면은 결국은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서 고통 가운데 빠진다고 말씀했습니다. 디모데후서3: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부 자기 중심, 자기 생각대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자기 주장만 하고, 그러니까 교만하고, 자랑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다 말씀했어요. 그리고 부모를 거역한다 했습니다. 말씀이 기준이 안 되어지니까 전부 자기 기준으로, 세상 풍속 문화대로 살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고통하는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읽었습니다, 디모데후서3:13절에 말씀하고 있죠.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놓치면은 끊임없이 속습니다. 기준이 없으니까 속게 되는 것이죠. 기준이 없으니까 모든 것 보면은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 말들이 다 그럴듯하고, 맞는지 틀린지 판단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또 그럴듯한 이야기하는데 말씀으로 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답을 주는 것 같은데 사실은 거짓말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속아서도 안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속여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속는 겁니다. 여러분 한가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말씀 아니면 다 틀린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리가 속입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해라. 노력해라. 최선을 다해라. 남을 이겨야 내가 이길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세상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이죠. 그래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정말로 맞는 것입니까? 물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마는, 그것 가지고 우리는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도움을 얻어야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승리도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중심에 흐르는 이론이 무엇입니까? 내가 남을 이겨야 내가 승리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귀중한 비밀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위한다고 하는 말들이 다 속이는 말이에요. 그냥 쉽게 우리가 ‘최선 다해라,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 조차도 말씀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 속이는 말들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때 속고 속이는 시대라고 말씀했어요.
그리고 또 오늘 디모데후서3:5절에 보면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은 능력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습니다, 포럼도 그럴듯하게 합니다. 그런데 능력이 없어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를 반드시 마지막 때 핍박을 당한다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핍박과 어려움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디모데후서 3장 읽지 않은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을 것이다.”
여러분 예수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박해를 받을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핍박이 있다는 말이죠. 마태복음 24장에도 보면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주겠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핍박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죠. 환란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내 이름 때문에 결국은 많은 모든 민족에게 핍박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 받는 민족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나라 또한 어떤 면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를 공격하는 그런 법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들입니다. 학생 인권 조례 이런 문제들도 마찬가지고, 차별 금지법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고, 동성애법도 마찬가지고, 조용하게 헌법들을 자꾸 바꾸려 합니다. 사실은 기독교만 꺾으면 되기 때문에 조용하게 기독교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정확한 언약의 말씀이 없으니까 뭔가 좌파, 우파로 나뉘어서 지금 양 극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인데 좌파, 우파가 있을 수가 없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니까, 너무 말씀 속에서 벗어나 버리니까 우리의 생각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판단을 잘못하게 되는 것이죠.
분명히 말씀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말씀하셨죠. 마지막 때에, 고통이 오는 때에 승리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니까 언약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어져야 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여러분 중심에 언약의 말씀이 기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언약의 말씀을 심어 주시길 바랍니다.
2. 말씀이 확신, 기준 된다면
그러면 두 번째입니다. 말씀이 확신되어지고 기준이 되면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입니다. 다른 것들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맞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 맞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틀리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틀릴 수가 있어요.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맞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에 나오는 기생 라합은 어떠했습니까? 거짓말로 세상 역사를 바꾸는 일들을 감당한 사람이 바로 라합입니다. 그래서 그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다말은 어떤 여자였습니까? 시아버지와 근친상간으로 애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들었습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맞아 죽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너무 틀릴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복음만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을 붙잡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3:5절에 보면은 마귀가 아담, 하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피조물인데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타락한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자기 말이 옳고, 자기 생각을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틀리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좋으면은 좋은 것이다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자기가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자기 생각이 항상 맞다 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맞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하나님만이 항상 옳습니다. 자기 주장, 내 생각들 틀릴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복음으로 판단하고, 복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져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일들을 복음인가 아닌가로 판단하지, 내가 가진 경험과 내가 가진 지식으로 판단으로 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시간 지나고 나면은 아닐 때가 너무나 많잖아요. 절대로 내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시켜서도 안 됩니다.
사사기21:25절에 사사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죠. 사사 시대에 계속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보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또 타락하고, 재앙이 반복되어 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면서 살았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은 그때만 조금 듣다가 말씀 전하는 주의 종이 죽으면 또 말씀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은 무엇을 말합니까? 어떤 면에서 우리는 날 때부터 내 중심, 물질 중심, 성공 중심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할지라도 우리도 자칫 잘못하게 되면은 나도 모르게 나 중심, 세상 중심, 성공 중심의 삶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복음이고 뭐고 없습니다. 나한테 손해 되면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복음 중심이, 말씀 중심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죠.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철저하게 각인되고, 뿌리 내리고 체질된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잘못된 것들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이 들어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순간에는 복음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는 사실이에요. 오직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복음만, 하나님의 말씀만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나의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대학생들 학교에 또 입학하게 되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학을 이제 서울로 가는 아이들도 있고, 또 지방에 대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제 개학을 앞두고 서울로 가게 되는 아이들이 인사하러 제 방에 들어옵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또 많은 학문들을 공부하겠죠.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의 강의들을 또한 듣겠죠. 좋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말씀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학 들어가서 공부할 때 재해석해야 다른 것에 빠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복음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들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다니는 동안에 이상한 사람으로 바뀌어져요. 물론 젊은 날에 우리가 주장해야 되는 것도 있겠죠. 그러나 제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고,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끝내고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모든 걸 물으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복음으로 모든 것들을 보면은 제대로 보는 겁니다. 진정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답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은 틀린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가지고 세상을 봐야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고,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봐야 사람들을 제대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말씀이 여러분의 철저한 기준이 되어져야 된다 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은 먼저 어떤 문제가 와도 상관없게 됩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도 영향받지 않고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8:32절에 말씀하고 있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어떤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자유할 수 있게 된다는 그 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기준이 되어진다면은 어떤 문제가 오고, 어떤 환경에 당한다 할지라도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기준 되어지면은 그 속에서 그로 말미암아 완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 그냥 성령 인도 이야기하는데 성령 인도가 사실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말씀이 기준 되어지면은 사탄이 결박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6:17절에 보면 하나님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성령의 검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결박되어지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말씀이 내게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역사하는 통로가 되고, 완전하게 사탄에게 속게 되어짐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임을 알고, 그 사실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삶 속에 나타납니다. 시편34: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여러분 여호와의 선하심을 어떻게요?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복음이 기준인 사람은 말씀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아 알게 되어지는 그 능력의 역사들이 누려지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인품을 보고 축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해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보고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제대로 말씀 붙잡고 확신 가운데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능력의 역사들을 나타내십니다. 말씀의 능력의 역사들을 맛보아 알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자를 일컬어서 결국은 ‘제자’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1절에 말씀하고 있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말씀했습니다. 누가 제자입니까? 복음이 절대 기준인 사람이 제자입니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요한복음8:3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우리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은 제자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인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중심에 담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절대적인 언약, 이 언약이 절대 망대로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의 과거들이 있고, 오늘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확신에 거하라.”, 말씀하고 있죠. 어떻게 하면 확신에 거할 수 있습니까? 말씀 붙잡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확신에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그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축복이 있게 되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확인되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면서 확신 가운데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릴수록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디모데후서3:15절에 말씀하고 있죠.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릴 때부터 받아야 된다 라는 말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은 연세 드신 분들 보면은 말씀이 맞다 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각인된 것들이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서 좀처럼 바뀌어지지 않는 것들을 봐요. 여러분 이미 성장한 나무는 어떤 면에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려 하면은 어렵습니다, 오히려 부러지게 되죠. 그런데 어린 나무는 어떻습니까? 렘넌트 때 무엇이 들어가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각인된 대로 모든 것들이 미래로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후대들에게 올바른 언약이 절대 망대로 잡혀질 수 있도록 그 심부름을 저와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항상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보통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 아이들, 우리 렘넌트들에게 어릴 때부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있도록 정확한 언약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라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과 말씀으로 판단하고, 말씀이 기준 되어지지 아니하면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대, 흔들릴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알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이 말씀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언약의 말씀들이 우리 안에, 우리 후대들에게 세워지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만이,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임을 알고, 여러분 개개인들이 이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고요. 우리 후대들에게 어릴 때부터 말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일에 우리 모든 어른들이 또 심부름 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절대적 기준인 말씀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게 하옵소서.
2. 오직 하나님, 말씀, 복음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게 하옵소서.
3. 위기를 만난 이 시대와 민족을 살리게 하옵소서.
|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 1527 |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 딤후3:13-15 | 2026-02-08 | |
| 1526 |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 시119:9-16 | 2026-02-01 | |
| 1525 |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려라 | 출14:13-14 | 2026-01-25 | |
| 1524 |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다! | 눅5:1-11 | 2026-01-18 | |
| 1523 | 모든 것을 넘어서 | 삼하16:5-14 | 2026-01-11 | |
| 1522 | 대로를 열라 | 사62:6-12 | 2026-01-04 | |
| 1521 | 송구영신예배 - 대로를 열라 | 사62:6-12 | 2025-12-31 | |
| 1520 |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 삼하6:12-23 | 2025-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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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4 | 어디에 서 있는가? | 삼상22:1-10 | 2025-11-23 | |
| 1513 | 선교가 길이다 | 롬11:25-26 | 2025-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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