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
2026-02-15 15: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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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5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
(시119:89-104)

  
서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사55:8-9). 요셉을 성공시켜서 총리로 만드는 것이 아닌 노예로 만들어서 총리로 만드시고, 젊고 힘 있는 모세가 아닌 80세 된 노인 모세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시골 출신인 엘리야와 엘리사를 부르시고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과 믿지 않는 자들의 생명도 주장하고 계십니다. 오늘 시편 119편은 많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참된 말씀을 붙잡음으로 승리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언약을 붙잡는다면 우리 또한 응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잡고 힘을 얻으라(사40:8). 
  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지금도 성취되기에 세상의 것을 붙잡지 않고 말씀만 붙잡게 하옵소서(사40:8).
  나. 살아 있는 말씀 붙잡고 말씀 성취의 응답 누리며, 날마다 말씀의 흐름 속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히4:12).
  다. 예배 때마다 모든 인생의 답을 내는 말씀과 메시지를 붙잡는 자 되게 하옵소서.
  라. 나의 인생을 반드시 성취되는 말씀 위에 두고, 내게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하옵소서.
  
 2.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말씀(사7:14)
  가. 복음을 아는 것을 넘어 체질이 되도록 날마다 임마누엘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사7:14).
  나. 모든 것을 복음의 눈으로 보며, 어떤 문제와 상황에서도 상관이 없는 복음의 비밀 누리게 하옵소서(고후4:8).
  
 3. 성도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사14:12-20)
  가. 영적인 힘이 없게 하고, 신앙생활을 안 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의 존재를 보는 눈을 열어주옵소서(사14:12-20).
  나. 날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나라는 것을 통해 속이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시작하게 하옵소서(마12:28, 엡6:12).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내일을 준비해 놓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계복음화의 종으로 지금까지 끌고 오셨기에,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성취되는 말씀 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체질 되어지고, 영적 싸움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한 주간에 말씀을 가지고 가는 모든 현장마다 승리하는 축복된 걸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월 15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
(시119:89-104)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5.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아멘.
         시119:89-104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오늘 구정 명절입니다. 보니까 우리 성도들 흩어져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또 타 지역에서 오늘 가정에 오셨다가 이렇게 함께 예배에 참여한 분들도 있습니다. 보니까 우리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직장 생활하고 있는 우리 렘넌트들도 이 자리 예배에 참여했고, 또 제주도에서 할머니 집에 온 렘넌트들도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왔든지 오늘 여러분이 최고의 축복의 은혜의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세상에 빛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교회가 희망이고, 우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는 모든 현장들마다 특별히 구정 명절을 당해서 빛 되신 그리스도가 증거 되어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올해 들어와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 위에 우리 자신들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이라는 시리즈로 같이 말씀을 인도받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을 어디에 세워두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먼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분이 이해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상식적이고, 지식적이고, 윤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틀리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역사하시는 부분도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틀리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과학적이면서도 과학을 뛰어넘는 초과학적이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와 전혀 다른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시켜서 총리로 보내면 되잖아요? 그런데 노예로 만들어서 요셉을 총리로 보냈습니다. 한참 힘 있는 모세를 쓴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80세 된 노인을 하나님은 쓰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죠. 한 시대를 살리는데 저 시골에 있는 길르앗 사람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세계복음화의 중요한 시간표 속에 농사꾼을 부르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엘리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먼저 신앙생활 속에 여러분이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55:8-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다.”, 했습니다.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다.”, 했습니다. 9절에 말씀하고 있죠,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다.”, 말씀했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시죠. 어떤 면에서 우리가 현장에서 살다 보면 ‘나는 하나님 없어, 하나님 안 믿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안합니다만 그 사람들의 생명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들풀도 하나님이 먹이신다 말씀했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되어야 되는데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모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어마어마한 비밀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 받게 되었습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멸망 받도록 만들어서 결국은 성전이 불타버리고, 왕이 사로잡혀가게 되는데 그것도 두 눈 뽑혀서 사로잡혀가게 되는 그런 비참한 사실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중요한 인물들이 다 포로 되어 갔던 시대가 바로 바벨론 포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말씀을 통해서 이 한 부분, 한 부분을 우리가 확인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가 알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시편 119편은 시편 가운데 제일 긴 편입니다. 몇 절까지 있는 줄 아십니까? 176절까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실은. 가장 긴 절을 갖고 있다?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편 119편의 저자를 다윗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119:1절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여호와의 율법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면서 참된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안에 적용시켜 나가야 될 것인가? 그것을 붙잡은 사람이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를 계속해서 176절에 이르기까지 계속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시편 119편을 가지고 역사적인 배경으로 바벨론 포로 시기에 쓰여졌다 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졌죠. 그래서 좀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왕도 두 눈 뽑혀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훌륭한 좋은 일꾼들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도 불타버렸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모여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면은 율법, 토라에 대한 부분들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모여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생명처럼 붙잡는 그런 부분들을 시편 119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참된 말씀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한다는 사실들을 시편 119편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른 시편들처럼 찬양 시만을 말한 것이 아니에요. 고난과 혼란의 시대 속에서 말씀으로 다시 서려고 하는 신앙의 고백들을 담고 있는 것이 시편 119편입니다.
 그래서 포로 된 속에서 해방될 때까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한 소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켰습니다. 우리가 이 언약을 붙잡는다면 우리 또한 응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오늘 제가 시편 119편을 이사야서를 배경으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세 가지 성경 구절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인생을 두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잡고 힘을 얻어라(사40:8).
 먼저 첫 번째로 이사야40:8절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에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죠. 너희가 포로가 되었으니까 힘을 길러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게 힘이 없어졌으니까 너희가 군사력을 키워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높은 산에 올라가라, 그리고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라 했어요. 포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붕과 높은 산에 올라가라 했습니다.
 왜 지붕과 높은 산에 올라가라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올라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사야40:8절이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은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말씀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풀과 꽃은 마르고 시듭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말씀 붙잡는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점치는 그런 행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점이 다 있죠.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전들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점칠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지금도 성취되고 있기에 점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15: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말씀했어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를 얻게 하고, 또 성경으로 말미암아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말세에 그대로 성취되어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0:11절에 말씀하고 있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했습니다.
 베드로후서2:6절에 보면은 본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말씀했어요. 소돔,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뭐를 삼으셨다? 본을 삼으셨다 말씀했습니다.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이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고, 본을 삼으라고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죠.
 그래서 이사야22:23-24절에 보면은 이 말씀이 우리의 몸 안에 잘 박힌 못처럼 되어야 된다고 했어요. 잘 박힌 못 위에 이스라엘의 모든 영광이 걸리듯이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잘 박히게 될 때 거기에 모든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 박힌 못처럼 될 때에 거기에 왜 하나님의 영광이 다 회복되어 집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4: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활력이 있다,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 말씀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붙잡을 때 포로에서 해방되어지는 귀한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이렇게 보면은 환경들, 상황들은 어렵지만 어떻게 하든지 간에 말씀 따라서 인도받기 위해서 나가는 부분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돼요. 그리고 그냥 말씀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핵심들을 놓치지 않고 인도받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틀림없이 그 사람들은 응답들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의 중심들을 알지 못하고 핵심들을 다 놓쳐버리고 열심히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성경 공부 모임에 말씀을 좀 전달해 달라 해서 갔었습니다. 나름대로 각 교회 속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인도받고 있는 분들이에요. 나름대로 사회적인 어떤 지위도 있는 분들이에요. 제가 처음 만남을 통해 가지고 그 현장에서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언약의 흐름에 대해서 쭉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의외로 많이 놀랐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각 교회 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고, 나름대로 열심이 있기 때문에 모여서 공부도 하고 있었어요. 물론 한 교회가 아니에요. 각기 출석하고 있는 교회들이 다 달라요. 그런데 그들이 하나 되어서 성경 공부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뭔가 열심이 있으니까 성경 공부하기 위해서 모여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의 가장 중요한 언약에 대한 부분들을 설명했더니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거에요.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 이 말조차도 알아듣지 못해요. 정말로 깜짝 놀란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하나님의 중요한 말씀의 핵심들을 제대로 알아야 되는 것이고, 그래서 말씀의 흐름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떤 환경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하고, 응답받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내가 있다 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사실은. 어떤 환경과 어디에 있다 할지라도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응답받고,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핵심인 복음을 놓쳐버리면은 그의 신앙생활은 갈수록 바리새인화 되어집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화 되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 시편119:89-104절까지 우리가 읽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붙잡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89절부터 여러분 쭉 성경을 보시면은 93절까지 보시면 이미 있었던 증거의 역사들을 굳게 붙잡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5절부터 96절에 보면은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7절부터 103절까지 보면은 지금 말씀을 굳게 붙잡고 힘을 얻어야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이미 있었던 증거를 붙잡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9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또 어려움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에 미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말씀을 붙잡게 될 때, 그 말씀의 축복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 대대에 그 말씀의 축복이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이 가정과 가문 속에서 복음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여러분 한 분이 붙잡은 그 복음의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가정 대대로 축복 속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하고 있죠, “주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나이다.”, 여러분 주의 말씀을 붙잡는 그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 대대에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누구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의 말도 중요하잖아요?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점쟁이의 말을 듣고도 인생을 걸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붙잡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일날 예배에 참여할 때마다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한 시간 예배가 내 인생의 모든 답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메시지를 주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매 시간들마다 같은 시간에, 그냥 같은 자리에서 예배드린다고 해서 똑같은 예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 오늘 나에게 최고의 응답의 메시지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고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을 전하며, 또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동안에 그러한 마음의 기도 제목들이 담겨져요. 똑같은 예배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최고의 응답받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늘 반복되어지는 예배지만은 반복된 예배가 아니라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가 붙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생애 모든 답을 낼 만큼의 메시지를 주시옵소서.’, 그러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 시간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자에게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있는 말씀들이 성취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8:5-10절에 보면은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로마의 관원이죠. 그런데 그 백부장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위해서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내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합니까? 내가 네 집에 들어가겠다 했습니다. 그때 이 백부장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내 수하에도 부하가 있는데 부하들에게 이대로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합니다.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되는 줄을 믿습니다. 말씀의 역사가 시공간을 초월한 능력의 역사라는 사실을 로마의 백부장이 안 것이죠. 그래서 말씀만 하옵소서 했습니다. 그때 하인이 낫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을 놓고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만 붙잡으면 된다는 이 믿음이 있게 될 때 말씀은 살아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 생길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말씀을 붙잡으면 됩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을 붙잡았는가? 그걸 찾아보시고, 그 말씀을 붙잡으면 돼요.
 군인이었을 때 어떻게 말씀을 붙잡았고, 목동이었을 때 어떻게 말씀을 붙잡았고, 왕이었을 때 말씀을 붙잡았고, 그게 다윗을 통해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잖아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다.”, 목동이 되었을 때 다윗이 붙잡은 거에요. 또 군인이었을 때 “여호와께서 나의 방패요, 여호와께서 나의 요새가 되신다.”, 군인 때 다윗이 붙잡은 거에요. 왕이었을 때 다윗이 붙잡은 것이 뭡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나의 왕이 되심을 붙잡았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붙잡았는가?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보여주고 있어요. 공무원이 붙잡아야 될 말씀이 무엇이며, 군인들이 붙잡아야 될 말씀이 무엇이며, 정치하는 사람이 붙잡아야 될 말씀이 무엇인가?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찾아내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9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이라 했어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주의 말씀이 계속해서 7,000여 가지 성취되어 졌음을 우리에게 성경학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되었는데 오늘까지 있다 라고 했어요. 지금도 계속 성취되고 있다는 말이죠. 9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멸망 받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지 않았다면 멸망 받았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3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말씀했어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95-96절에 보면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95절에 한번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귀중한 말씀을 붙잡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악한 자가 나를 멸하려 하지만은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했어요. 앞으로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다는 말이에요. 96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미래를 놓고 모든 것이 끝이 있지만 여기에 끝이 있다는 건 미래를 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히 크고, 넓고,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았다 라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도 중요하고, 이루어질 말씀도 중요하지만 지금 말씀을 붙잡고 힘을 얻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97절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했어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붙잡게 될 때 그 말씀이 꿀처럼 달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103절에 그렇게 고백하고 있죠,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말씀 붙잡고 말씀의 성취를 보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다니이다. 히브리인들은 어린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면 히브리어 공부, 토라 공부를 하잖아요?
 그러면 히브리어 그 알파벳 그 위에 꿀을 발라 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알파벳 위에 꿀을 발라 놓으면 그 꿀을 핥아서 그걸 달도록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이처럼 달다는 것들을 교육시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읊조리게 될 때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요, 성취됨을 알기 때문에 꿀보다 더 단 말씀으로 우리에게 붙잡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늘 묵상되어 진다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말씀의 묵상 속에 들어갈 때 9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수들의 지혜보다 더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9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하다 했습니다. 10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더니만 모든 노인보다 더 지혜롭다 말씀했습니다. 노인보다 지혜롭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 어르신들은 그들의 어떤 경험들, 그들의 명철함이 지혜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른들일수록 많은 경험들을 통한 지혜들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노인들보다도 더하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제대로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이 말씀 붙잡고 전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면 미래가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사도행전2:17-18절에 하신 말씀이죠. 언약의 말씀이 붙잡혀지니까 그 말씀 속에서 미래까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이 다입니다. 6일 동안에 무슨 힘으로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미래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겁니다. 마치 요단강이 언제 갈라졌습니까? 여리고가 언제 무너졌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가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뒤를 따라갈 때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진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어디에 두실 것입니까? 말씀 위에 두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도 성취되어지는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 위에 여러분의 인생을 두시길 바랍니다.

2.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말씀(사7:14)
 두 번째입니다. 말씀을 어디에 둬야 되느냐? 이사야7:14절입니다. 첫 번째로는 이사야40:8절을 말씀드렸죠. 두 번째 이사야에게 포로 시대에 포로에서 해방 받는 답을 말씀했습니다. 이사야7:14절이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습니다. 도저히 불신자들이 이해 못 하는 말이죠. 어떻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습니까? 그러나 너무나 과학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아들을 낳아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어요. 인간의 혈통으로 와서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했어요. 그래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 임마누엘은 무슨 말입니까? 사실 이것을 소수가 붙잡았는데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는 복음을 잘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복음을 잘 압니까? 그런데 가면 갈수록 왜 교회들이 힘이 없습니까? 왜 교회들이 문을 닫게 됩니까? 심지어 유럽 교회는 문 닫은 지 오래되었고, 미국 교회들조차 문 닫고 있고, 아니 미국 교회에 신학교들조차도 이미 운영이 안 되어서 문을 닫고 있는 신학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중독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렇게 과학이 발전하고, 뭔가 시민 의식이 발전한 일본은 정신병자들이 수두룩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짜 우리가 복음을 압니까?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다 복음을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아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 복음이 체질되어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체질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복음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라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 되면은 포로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말씀했어요. 단순히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완전히 체질되어야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보든지 간에 복음으로 깨달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와도 괜찮다는 것이 복음 안에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고린도후서4:7-9절에 말씀하고 있죠. 특별히 고린도후서4: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죽지 않는다 했어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그게 복음입니다. 왜 어떤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느냐?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보배인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이게 복음이 체질된 것입니다. 그냥 여러분 단순히 복음을 아는 것에 끝나지 마시고 정말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 임마누엘의 축복 누리게 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복음 들었잖아요, 교회들 다 복음을 말하잖아요? 그 차원의 복음이 아닙니다. 정말로 사단을 꺾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임마누엘, 복음이 체질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3. 성도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사14:12-20)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더더욱 이해 안 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14:12-20절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영적 사실을, 영적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사야14:12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열국을 엎은 자라 했습니다.
 16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한다.”, 했어요.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말씀했습니다. 1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황무하게 하고 성읍을 파괴하고 결국은 백성들을 포로 되게 한다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실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전혀 없습니다.
 이사야14:12-20절에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가 싸워야 될 악한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적인 싸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2:28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을 내어쫓는 영적 싸움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은 전도자 바울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6:12절에 말씀하고 있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걸 모른다면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신앙생활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게 지금도 흑암의 역사로 완전히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흑암으로 끌고 가면서 우리를 완전히 포로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사탄에게 붙잡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갈수록 우상 숭배에 빠지고,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요한복음16:11절에 악한 사탄의 존재를 세상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4:4절에 세상 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44절에 보면은 불신자들의 아비라고 말하고 있어요. 정말로 영적인 사실에 눈이 열려져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가문을 그냥 육신적으로 바라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될 부분들이 무엇인가가 이번 여러분 걸음을 통해서 보여지는 그런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보여져야 영적 싸움이 시작되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일을 준비해 놓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세계복음화 하는 종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 오셨는데 우리가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을 어디에 둬야 될 것인가?
 첫 번째로 영원히 성취되어지는 말씀 위에 두시길 바라고,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복음이 체질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영적 싸움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참된 해방의 승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모든 걸음들, 만남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과 함께 또 정말로 여러분에게 중요한 복음이 체질되어지고, 영적 싸움에 눈이 열려짐으로 말미암아 가는 모든 현장들마다 승리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걸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어디에 인생을 두어야 하는지 아는 전도제자의 기도
1.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따라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2. 말씀 붙잡고 복음 체질이 되어지며 영적 싸움을 통해 해방되는 역사 누리게 하옵소서.
3. 우리의 중요한 내일을 준비해 놓으시고 오늘 나의 인생을 준비케 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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