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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말씀 따라가는 자
(시119:105-106)
서론: 왜 말씀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증거고,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이며,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일까요? 바로 말씀이 내 발의 등이고, 내 길에 빛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시119:105).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축복의 말씀이 되도록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정확한 언약만 붙잡으면 모든 것이 시작되게 되어있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영혼이 만족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힘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복음을 가지고 있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혹 문제와 사건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어떤 환경 속에 있더라도 기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1. 말씀만 들으면 산다.
가. 어떤 순간에도 말씀만 들으면 살기에,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서 행복과 소망, 평안이 넘치는 예배의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나. 살면서 찾아오는 염려와 무거운 짐들을 모든 문제 해결하신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벧전5:7, 마11:28).
다.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기도로 영적 싸움하게 하옵소서.
라.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자로(딤전2:4), 모든 일에 참된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자유와 해방 누리게 하옵소서(요8:32).
2.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고(요1:1),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하옵소서(마24:35).
나. 하나님의 언약을 정확하게 붙잡음으로 하나님 말씀의 맛을 보게 하옵소서(시119:103).
다. 세상의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만 따라가며, 말씀을 확정하고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게 하옵소서.
라. 말씀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아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결론: 주의 말씀은 우리의 길에 등불이요 빛과 같습니다.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들의 후대들을 재앙 시대를 살릴 귀중한 후대들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신6:4-9). 우리 후대들에게 다른 것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망대인 하나님의 언약만 심어져야 합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자로 하나님의 절대 망대로 세워지고, 후대들을 그러한 사람으로 세워 나가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월 2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말씀 따라가는 자”
(시119:105-106)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아멘.
시119:105-10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가라 하면 가는 것이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자입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가는 자입니다.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은 오늘 제목입니다. ‘말씀 따라가는 자’입니다. 누가 제자이냐? 말씀 따라가는 자가 제자인 것입니다.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님들은 참된 절대적인 기준인 나의 인생을 놓고 말씀하시는 말씀을 따라가는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 우리가 시편119:89-103절까지 우리가 보았습니다. 89-103절까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이루어진 증거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고, 또 앞으로 이루실 말씀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러면 지금 우리가 붙잡아야 될 말씀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그 시편 119:89-103절까지의 귀중한 부분들의 답을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105절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증거고, 앞으로 이루어져야 될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될 말씀인가? 그것은 바로 말씀이 내 발의 등이고, 내 길에 빛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 119편이 몇 절까지 되어 있다고요? 성경에서 제일 긴 절입니다, 176절까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119:1-176절까지 보면은 단락을 짓는 그 단락이 22개가 나와요. 그 단락 짓는 것이 바로 동그라미를 쳐가지고 단락을 지어놨거든요. 오늘 105절에도 보면은 동그라미가 있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리고 113절에 보면은 내가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이렇게 나오죠. 이건 단락을 지어놓은 겁니다, 그게 22개 동그라미가 나와요.
22개 단락을 지어놨다는 것인데요. 시편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22개입니다. 그러면 매 알파벳마다 그것을 전부 다 찬양으로, 시로 연결해서 노래했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히브리어 알파벳 그 첫 글자를 따가지고, 그 글자마다 시를 써가는데 그게 22개 문단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말씀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시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축복의 말씀이 되도록 그 말씀을 붙잡는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확한 언약의 말씀만 붙잡으면은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라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축복된 일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는 어떤 그런 자리에 있다면 그건 안타깝고, 참 비참한 일이 될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에 영적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면은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방황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영혼에 만족할 때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되고, 인생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틀리는지 판단 기준도 흐려지게 되고,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이런 일, 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눈으로 보면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어 있고, 그 이유도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한다면은 결국은 세상의 육신적인 것에만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는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귀중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귀중한 행복인 것입니다. 혹 이 자리에 어떤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질병이 있습니다. 나는 남이 가지지 않은 갈등들이 내게 있습니다.’,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은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 말씀만 들으면 산다.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법인데요. 말씀만 받으면은, 말씀만 들으면 우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자로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는 말씀을 받으면 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힘든 순간에도 말씀만 있으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새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고, 그 말씀을 붙잡으면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그 말씀을 조금만 붙잡고 기도하면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삐거덕거리고, 뭔가 힘들고, 어렵고, 뭔가 일이 풀려지지 않은 부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말씀 받게 될 때, 말씀을 듣게 될 때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인 힘을 말씀 속에서 얻게 되어지고, 그걸 붙잡고 기도하면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참된 기쁨과 소망과 참된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평안함을 얻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5: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염려를 그냥 잊어버리라 하지 않았습니다. 내버리라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라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잊어버리라, 또 생각하지 말라, 내버리라, 이것은 종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계십니다. 모든 염려를 다 내게 맡기라 말씀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모든 염려들을 주께 맡길 때 주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4: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근심하지 말라 했고요. 마태복음11:2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에 늘 항상 우리의 입을 통해서 터져나오는 이야기가 있다면은 염려입니다, 근심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내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결할 수 있습니까? 생각지 말라 해서 생각이 안 됩니까? 잊어버린다고 해서 잊어버려집니까?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요. 내가 어떤 면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오히려 더 염려하면 염려의 꼬리를 물고, 더 생각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염려와 근심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께 맡기게 됩니까?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생깁니다. 믿음의 역사가 생기면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믿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염려를 맡기게 되는 것이고요. 믿음 없이는 절대 못 맡깁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 못 맡깁니다. 여러분 근심도 할 수밖에 없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내 마음에 믿음으로 딱 생기면은 맡기지 말라고 맡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이고, 말씀을 들을수록 우리에게 참된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우리 안에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해요. 말씀을 들으면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해요. 그래서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그 자체가 인생 자체가 노예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후대들도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한 가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금요일 날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복음이 하나하나 깨달아지게 됩니다. 여러분 복음을 모르고 살아간다? 인생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인생 그 자체가 노예입니다. 내가 노예 되어서 노예 되는게 아니라 복음을 모른다? 인생 그 자체가 노예입니다. 복음을 모른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나 자신을 알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을 알아야 세상을 알게 되어 있고,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니까 결국 인생 그 자체가 인생이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 들을 때마다 복음을 깨닫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왜 악한 사탄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느냐? 말씀 들을 때마다 그 속에서 전도를 깨닫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를 모른다면은 그 인생은 세상에 노예 돼요. 복음을 모르면 인생 그 자체가 노예고, 사실은 복음을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래서 인생이 노예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복음 속에서 참된 중요하게 보시는 전도를 모른다? 결국은 열심히 살아가는데 세상 심부름을 하고 살아가요. 세상 사람들 먹고 마시고 입는 것, 의식주에 매어서 살아가잖아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를 모른다? 우리 또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 종되어서 살아갑니다. 세상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선교를 모르면은 우리 후대가 노예 되게 되어 있어요. 우리교회가 일본 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선교하면서 붙잡았던 것입니다. 왜 그 당시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성장도 앞서 있었고, 모든 것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에 왜 우리가 수많은 돈을 들여서 선교해야 되느냐? 또 한, 일간의 감정 또한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일본 선교에 대한 부분들을 사실은 기도는 했습니다만 썩 그렇게 마음에 담기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교해야 되느냐? 그것도 일본, 다른 나라는 좋은데 왜 일본을 선교해야 되느냐? 그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선교하지 못하면은 이미 10년 앞서 있는 일본의 문화가, 네피림 문화가 우리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서 우리 후대들이 멸망할 것이다. 선교를 깨닫지 못하면 후대가 노예로 가게 돼요. 대표적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 아닙니까? 열방에게 복음 증거하기 위해서 선택된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교를 깨닫지 못했어요. 선민 사상에 붙잡혔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복음화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후대들을 결국은 노예로, 포로로, 속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깨닫고 있다? 여러분 후대들이 받을 축복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전도와 선교의 눈이 열려지고, 또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기도의 비밀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비밀을 모르면은 오늘의 노예가 되어져요. 오늘을 정복하며 살아야 되는데 기도의 비밀을 모르니까 오늘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탄,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말씀 듣지 못하도록, 들어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그래서 복음을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인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모르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비밀을 누릴 수밖에 없는 기도의 비밀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들을 아예 노예로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2:4절에 말씀하고 있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말씀했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한다. 여기에 진리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요. 여기에 진리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죄를 지었든지간에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로마서3:23절에 죄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말씀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전부 창세기 3장 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가운데 빠져 있다는 말은 날 때부터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태어났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말씀이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8:3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에게 참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안다면 우리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죄에서 해방 받았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년, 월, 일, 시를 지키며 살아야 되죠.
우리는 모든 것에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거기에 매여서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죄에서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자유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매여 살려고 노력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불신자들은 계속해서 어려움이 오니까 모든 것 속에서 어려움에 매여 살기를 노력해요.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에도 매여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짐을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6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진리다, 내가 곧 생명이다. 참된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그 사실들을 날마다 확인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두 번째입니다, 우리는 말씀만 들으면 사는데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존재하시는가에 대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인다면은 우리가 알겠는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누구시라고요? 하나님이시다 말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분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섬기는 것은 그건 우상숭배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말씀은 불변하십니다. 이 땅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모든 것이 다 변합니다. 여러분 시대도 변합니다. 아무리 많은 시대가 흘러가도 자신을 돌아보면은 ‘아, 시대가 이렇게 변했구나!’, 라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 그런 자리에 서 계신 분들 아닙니까? 여러분이 현장을 보면 볼수록,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아, 시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라는 것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한 것입니다. 불변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훌륭한 철학, 사상도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과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종말과 함께 모든 것이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24:3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완전한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냐? 구원받기에 충분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구원밖에 그 어떤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치 않습니다. 말씀 만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에 그 완전한 말씀 붙잡고, 그 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한다 말씀을 드렸고요. 영원한 말씀이라고 말씀했고, 완전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 불변하고 완전한 말씀을 항상 우리 앞서 말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말씀을 계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 사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본토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너로 말미암아 열방이 복을 받게 하겠다. 먼저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냥 따라가면 됩니다. 이 부분이 희미해질 때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어느날 호렙산 타지 않는 불꽃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이스라엘 내 백성들을 구원하겠다 말씀했어요. 그러니까 너는 가서 바로에게 내 말을 전하기만 해라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뭐라 했습니까? 나는 못합니다라고 했어요. 언제 내가 네가 하라고 했냐 했어요. 내가 할 것이니까 너는 가서 말만 하라고 했어요. 아니 나는 말도 못합니다 했어요. 그 일을 놓고 하나님은 아론을 준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말씀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찾아오시고, 계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잃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 가운데 빠졌습니다. 지도자로 나선 여호수아도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했던 것 같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 말씀했습니다. 항상 먼저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이죠. 사도행전27:24절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하나님이 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들을 맛볼 수 있습니까? 천하 없어도 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는 자가 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부분들을,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실들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34:8절에 말씀하고 있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시편119:10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송이 꿀보다도 더 단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아 알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정확하게 붙잡는 자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의 맛을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많은 고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피할 수 없는 고난들이 일어날 수 있죠. 우리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은 원치 않는 파도같이 밀려오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 인생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무엇으로 이기겠습니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난을 이겨내었기에 히브리인들은 말씀에 대한 그 사랑을 시편 119편에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가? 왜 말씀을 읽어야 하고, 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까? 왜 말씀에 깊이 잠겨야 합니까? 시편119:105절입니다. 이 말씀이 내 발에 등이고 내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등이고, 빛이라 했습니다. 왜 말씀이 등이고, 빛이라 했을까요? 세상은 어두우니까, 세상이 환한 대낮 같으면 등과 빛이 필요 없는 것이죠. 여러분 어떤 면에서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 인생 자체도 어두운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어두움이 본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우주에 어두움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창세기1:2절에 말씀하고 있죠.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인간 창조 이전에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창세기1:3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빛이 임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세상의 본질이 어두움인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과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등불이 있어야 되고, 빛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은 누구십니까? 요한복음8:12절에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빛이 누구십니까? 그리스도가 빛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했어요. 그냥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다 말씀 했어요. 세상이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와 함께 다니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당연한 것이죠. 빛 되신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니까 우리의 모든 걸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원래는 내 안에 빛이 없어요, 인간에게는 빛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빛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말씀의 빛으로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등과 빛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말씀 했는데, 그것을 깨닫게 되면은 106절에 대한 마음의 각오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105절 한절만 말씀을 드리려고 하다가 106절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다, 내 길의 빛이다. 여러분 깨달았다면은 그 말씀에 대해서 여러분 맹세하고, 그 말씀을 여러분 안에 굳건하게 잡는 그게 필요하죠. 다른 말로 해서 말씀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10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까 맹세하고 굳게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붙든 말씀에 결국은 내가 붙들리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붙잡으려고 결정하는 순간에 내가 말씀을 붙잡았다고 생각하는데 주의 말씀이 나를 붙잡고 인도해 나가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붙든 것이 결국 나를 붙들게 돼요.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을 놓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붙든 것이 뭔가? 그게 결국 나를 붙들게 돼요. 어차피 인간은 자기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붙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를 붙들고 나를 사로잡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아니에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이라고 붙들었는데 지금 어떻습니까? 그 돈이 나를 사로잡고 있어요, 돈이 나를 붙잡고 있어요. 그게 우리 기준이 되어 있잖아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명예를 나는 붙잡았는데 결국은 그 명예가 나를 사로잡고 있어요. 그래서 조그만 명예가 손상되어지면은 못 참는 거에요. 왜냐? 내가 명예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기왕에 사로잡히려면은 영원한 것들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이따가 없어질 사람의 것을 붙잡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여러분 인생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을 통해서 모든 현장에 말씀의 살아 역사함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응답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마다 굳게 확정하는 것이 필요해요. 진짜 입으로만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다 고백하지 말고, 그게 맞다면은 맹세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굳게 여러분 마음에 확정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여러분의 인생을 말씀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우리가 들어간다면은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 되어지는 겁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이 보여지니까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한계되지 않고, 문제가 안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을 정복하는 증인들로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길에 등불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미래 길의 빛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붙잡아야 우리는 오늘을 승리할 수 있고, 미래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만 말씀 따라가지 마시고, 신명기6:4-9절에 있는 말씀이죠. 마음에 여러분 말씀을 새기고, 후대에게 새겨진 그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그 길만이 우리 후대들을 재앙시대 살릴 귀중한 후대들로 세워나가는 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느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에 사로잡혀서 그 말씀이 각인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후대들을 살리라고요.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 있었습니다. 금요일에는 우리 하나렘 어린이집 영적 군사 파송식이 있었고, 어제는 하나 서밋스쿨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자리들이었어요. 우리 후대들에게 다른 것 들어가기 전에 정말로 절대 망대인 하나님의 언약만이 심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 우리 하나 서밋스쿨 졸업식 때 절대 망대의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렘넌트들과 부모님들과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절대 망대의 작품이라는 말은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절대 망대, 그걸 위한 작품이라는 말이에요.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사람은 누구십니까?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시고, 우리 후대들을 그러한 사람으로 세워 나가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 따라가는 전도제자의 기도
1. 정확한 언약의 말씀 붙잡는 것이 날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되게 하옵소서.
2. 말씀 통해서 주시는 은혜, 영적인 힘, 하나님이 하시는 일 보게 하옵소서.
3. 날마다 확정케 될 하나님의 말씀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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